다만 임의로 죽을 수 없는 게 사람의 목숨이란 말씀이오. 설령 삶이 죽음보다 고생스러울지라도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게요. 제가 일개 의생으로 칠십 평생 얻은 것이라고는 사람의 목숨이 소중하다 그것이었소. 제 목숨뿐만 아니라 남의 목숨도, 죄가 있다면 사람마다 죄가 있을 것이요, 갚음이 있다면 사람마다 갚음이 있을 것이요, 살아야 할 사람이 죽는 것은 개죽음이요,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짐승일 따름, 사람은 아닐 것이외다. 

치수의 지체, 최치수의 재물, 최치수의 학식, 최치수의 오만, 그런 것이 말할 수 없는 큰 덩어리가 되어 자신은 그 밑에 짓눌리어 자꾸 작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그를 슬프게 했고 걷잡을 수 없게 안정을 잃게 했던 것이다.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오라 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싶을 때 그는 겉돌려 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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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리랑 4 (개정판) 아리랑 (개정판) 4
조정래 지음 / 해냄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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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조사사업은 크게 네 가지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고 있었다. 첫째, 조선의 전 국토를 대상으로 총독부 소유의 땅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모든 종류의 토지 소유자들을 명백히 하여 세금을 철저하게 징수하자는 것이었다. 셋째, 조선땅 전체를 샅샅이 측량하여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자는 것이었다. 넷째, 양반계층의 재산을 보호해 줌으로써 식민성 지주로 예속시키는 동시에 친일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내자는 것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3>, p35/243

<아리랑 4> 에서는 토지조사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는 비극이 그려진다. 명목상으로는 신고 기간 내에 신고를 하면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것이 총독부의 설명이었지만, 관공서 공무원들과 ‘지주총대‘라는 중간관리인들의 농간으로 제때 신고서가 배부되지 않았고, 배부받은 이들도 글을 잘 알지 못해 작성하지 못해 결국 많은 토지가 총독부에게 넘어가고 만다. 작가는 <아리랑 4>에서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백성들의 게으름이 아닌 양반들의 횡포와 기득권에서 찾는다.

백성들이 무식한 것은 그들이 글배우기를 싫어했거나 아둔을 타고나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글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었다. 상것들은 절대 글을 읽힐 수 없는 것이 수백 년에 걸친 규범이었다. 그건 양반층이 자행한 횡포고 억압이었다. 양반층은 권력을 독점한 상태에서 일제의 세금만 안 낸 것이 아니었다. 그 권세를 세세만년 누리기 위해서 백성들을 뭇믹한 바보로 만들어 마음대로 부려왔던 것이다._조정래, <아리랑 3>, p6/243

결국 양반층은 송수익의 말대로 위로는 왕족을 업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짓밟아가며 권세와 부의 감미만 빠는 그릇된 부류들인지도 몰랐다. 사실 그들이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면 백성들을 모두 강압적으로 우민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고, 반란을 두려워해 사람을 그렇게도 잔인하게 병신을 만들 까닭도 없는 것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3>, p40/243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면, 일제 하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진 일차적인 원인은 총독부의 간교한 정책에 있겠지만, 이러한 정책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조선 시대 지배층인 양반들의 폭정에도 원인이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과 ‘정의‘가 여전히 이슈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는 우리 사회의 영원한 과제는 아닌가 싶다.

또한, 전쟁, 가뭄, 홍수, 전염병에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위협에 노출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사회 법칙인 듯하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격변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처럼, 일제 하에서도 정치, 종교의 실력자들은 혼란을 틈타 자신의 세력을 유지/강화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작품 안에서 확인하게 된다.

사찰령은 승려들의 행동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법은 뒤로 절 재산을 확대시켜 주고 승려들이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혜택을 감추고 있었디. 총독부는 조산의 불교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으로 통합시키는 동시에 전국의 큰 절을 지역별로 선정하여 30개 본사(本寺)로 정하고, 작은 절들을 그 휘하에 속하게 했다. 그런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갖추게 한 것은 바로 조선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는 불교를 장악하자는 것이었다. 그건 지배세력인 양반계층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회유하고 유인해 가며 자기네들 편을 만들어가는 것과 똑같은 수법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3>, p70/243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친일(親日)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양반들과 불교계. 1910년 전후로는 불교계로부터 친일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결국 1940년대 등록된 모든 종교에서 신사참배(神社參拜)를 받아들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속(俗)에 종속된 성(聖)‘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근대(近代)가 아닌 중세(中世)가 열린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찰의) 혜택은 바로 토지조사사업에서 나타났다. 양반지주들이 우선적으로 보호를 받은 것처럼 모든 절들의 사답도 보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뿐이 아니었다. 총독부가 강탈한 역둔토까지 암암리에 배당받게 되어 절들은 오히려 재산이 불어나고 있었다. 총독부는 농토를 미끼로 불교계를 장악해 나가고 있었고, 중들은 배가 불러가는 대신에 왜놈들을 위해 목탁을 치는 친일배들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_조정래, <아리랑 3>, p18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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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와이드웹은 국제문화의 공통 요소들을 강화했지만, 생산자 수가 늘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미래의 문화생산물들은 과거의 문화생산물들보다 일관성이 훨씬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는 더 파편화되고 더 다양해질 것이다. 자유가 커지고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각각의 집단은 앞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것에 집중하고 실험은 덜 할지도 모른다. 지구촌이 여러 지역으로 분할될 수도 있는 것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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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장과 (문화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문화정치는 서로 부딪치면서도 공생하는 관계라는 것이 드러났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시장의 과제는 시장에 나타나는 모든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 욕구는 대체로 과거의 소비, 경제적 능력, 교육, 이용할 수 있는 여가시간, 접근성, 사회적 계층화 같은 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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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 말하였다. "대저 혼란스러움을 구원하고 폭력을 제거하는 것을 의병(義兵)이라 이르며, 무리가 많은 것을 믿고 힘 센 것에 의지하는 것을 교병(驕兵)이라 말합니다. 의로운 자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으며 교만한 자는 먼저 망합니다.(10/59) - P10

대저 패왕(覇王)의 뜻을 가진 자는 진실로 장차 사사로운 원한을 풀어버려서 은덕으로 사해를 밝히게 될 것이니 이것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세 번째입니다. 바라건대 장군은 의심하지 마십시오!(10/59)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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