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는 도덕의 기원을 해부해 도덕이 이타적 성향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는데, 니체는 레의 주장을 피상적인 인식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더 파고들어가 결국 도덕이 비도덕적 뿌리에서 자라난 것임을 밝혀낸다. 이 작업은 특히 《아침놀》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뒷날 《도덕의 계보》에서 가공할 폭로 작업으로 완결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동정의 도덕’을 분석하고 비판하기 시작한다. 니체는 타인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약자들이 쓰는 무기라고 여긴다. 그들은 강자들의 약점을 찾아내는데, 그것이 바로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약자들은 이런 강자들의 약점을 이용한다. 강자들의 동정심을 끌어내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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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강자는 동정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천재 혹은 최고의 지성은 강한 활력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데,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따뜻한 마음, 동정심의 도덕은 삶의 강한 활력,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제거해버린다. 사회주의가 꿈꾸는 보편적 평등의 유토피아는 인류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니체에게 이 생각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원칙이다. 인류는 오직 천재, 위대한 지성, 강력한 개인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니체의 이 천재 사상은 뒷날 초인 사상으로 이어진다.

《아침놀》은 최악의 건강 상태에서 요양지를 전전하며, 그리고 고통의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밝은 조명탄 같은 정신의 고양 상태를 거치며 쓴 575편의 단편 모음이다. 《아침놀》에 대해 니체는 자서전에서 "이 책으로 도덕에 대한 나의 전투가 시작된다"《이 사람을 보라》, ‘아침놀’, 1절라고 선언한다. 도덕에 대한 전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아침놀》에 와서 그 전투가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집요하고 치열한 것이 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 책은 후기 니체의 도덕 비판서들의 진정한 예고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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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는 2100년경에 109억 명에 도달해 정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증가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26억~38억 명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중요한 추이는 세계 인구의 고령화다.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연령 순으로 나열할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은 2020년 31세에서 2050년 38세로 상승할 것이다. 70세 이상 인구는 같은 기간에 6%에서 17%로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유례가 없다.

중국, 유럽, 북아메리카는 팬데믹 첫해에 배출량이 줄고 공기 질이 향상된 반면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공기에 유해한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오존을 포함한 초미세먼지(PM2.5)의 양이 이미 적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큰 개선은 없었다. 도로에 차량이 줄어들고 많은 산업 활동이 중단되면서 평시에 환경에 배출되던 온실가스가 사라졌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밀라노, 베네치아, 바르셀로나 같은 세계 도시들에서 대기 질 향상이 관측되었다.

2030년이 되면 10대 주요 작물 중 9가지의 성장률이 정체되거나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최소한 부분적인 원인으로 작용해 작물의 평균 가격이 상당히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늘어나는 모래 폭풍은 갈수록 기후변화와의 관계가 커지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바다 온도의 증가와 미국 남서부의 모래 폭풍 증가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그 일대에서 바람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그러면 토양이 건조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극지방은 세계 평균보다 2~3배 빠르게 온난해지고 있어서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2°C높다. 이 급격한 증가는 2050년이면 여기서 두 배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극도의 고온과 관련된 산불이 점점 잦고 강력해진다. 이 산불은 탄소가 풍부한 땅을 점점 집어삼키고 연소를 통해 대기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기 때문에 해빙, 온실가스 배출, 북극 온난화의 순환이 가속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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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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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손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옵니까? 말씀해 주시면 손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물건을 찾아 드리겠사옵니다.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 p162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에서도 전천당의 베니코는 변함없이 손님에게 소원을 묻는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만약, 지금 연의가 <전천당> 앞에서 베니코를 만났다면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연의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말할까, 아니면 가장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할까. 얼핏 두 가지가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 다른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마치, <인기 통통 떡>과 <꽃미남 마스크>처럼.

류스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 두 개가 어떻게 다른데요?" "글쎄요, 지금 모습 그대로 인기를 끌고 싶다면 <인기 통통 떡>을, 꽃미남이 되어서 인기를 끌고 싶다면 <꽃미남 마스크>를 권해 드리옵니다." 류스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 p21

지금 내 자신을 그대로 사랑해 주도록 주위를 바꾸는 힘을 가진 <인기 통통 떡>과,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꽃미남 마스크>는 모두 인기가 좋아지게 하는 물건이지만, 변화시키는 상대가 조금 다르지. 마찬가지로 만약 누군가 소원을 물었을 때,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것도 조금 다른 것이라 생각해.

아빠는 연의가 무엇을 원하고 희망할 때 어두운 생각보다 밝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해. '~을 하지 말아야 해'하는 생각은 사람을 하지 말아야하는 쪽으로 끌어당긴단다. 연의가 좋아하는 '슈퍼 마리오 드라이브 게임'에서 코너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코너를 피하다 보면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이 다음 부분은 연의가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베니코에게 소원을 말했을 때 <인기 통통 떡>과 <꽃미남 마스크>의 경우 처럼 소원이 이뤄지기 위해 바뀌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연의가 바뀌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주변 사람이 바뀌는 편이 좋을까? 이것은 연의가 쓸 독후감 마지막 부분에 적어주길 바래.

참, 소원을 빌 때는 소원에 집중해야지 <칠리칠치 체리>의 주인공 고지처럼 돈이 없다는 것에 너무 신경쓰지는 말자. 연의에게는 이미 충분한 재능이 있으니까.

"손님께서는 이미 돈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없어요. 저, 정말...... 이에요."
"아닙니다. 틀림없이 갖고 계시옵니다. 오늘의 행운 동전, 2008년에 발행된 10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전천당>에 오실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4>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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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이 모든 것이 정말 가치를 무너뜨리고 역사를 되돌리는가? 언론의 자유에 일어난 일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의 어이없는 상황이 실은 배울 만큼 배웠다 생각한 민주주의를 다시금 심화학습할 기회임을 알게 된다. ‘시장의 자유’가 무자비한 양극화의 다른 이름임을 이미 경험하고도, 또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연설을 통해 극적으로 공허해진 그 위상을 재확인하고도, 자유는 여전히 강한 아우라를 지닌 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도 언론의 자유라는 태도 앞에서 우리는 마침내 허울로서의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으며 진실의 추구가 민주주의의 더 기본적인 요소임을 날카롭게 깨우친다.

그러나 ‘윤석열 퇴진’을 정말 이뤄내고 말겠다는 사람이라면 퇴로를 열어주면서 퇴진시키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지, 다시 말해 촛불시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그렇더라도 누가 주도하여 조율하고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여러 가능성을 차분하게 연마해볼 일입니다. ‘언제’냐에 따라 ‘어떻게’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2022년의 촛불행동은 그 수위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혹한을 만났습니다. 결의에 찬 시민들이 이 고비를 넘겨 시위의 열기를 지켜낸다면 새해 봄쯤 최고조에 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기가 2023년을 넘어 총선국면으로까지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고 자칫 지루한 대치상태가 뒤따를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던 대로 생각하고 살던 대로 살아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분단체제는 힘이 셉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과 민족도 지혜롭고 끈질기며 힘이 셉니다. 조선왕조 몰락기에 동학이라는 새 사상이 나와서 이 땅의 후천개벽운동을 출범시켰고, 1894년의 동학혁명이 비록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패배했으나 민중의 각성과 헌신을 보여주었으며, 식민지 아래서의 3·1혁명 같은 변혁 노력이 분단시대에도 지속되어 드디어 남한에서 촛불혁명을 일으키고 만 성취의 역사가 있습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촛불혁명의 와중에 변칙적으로 대두한 정권과의 대결이라는 비교적 선명한 목표를 갖게 된 상황입니다. 한반도와 인류사회 전체의 대혁신, 대전환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복된 시기를 사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촛불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직접 끼어들 틈새는 그 어느 때보다 협소하다. 그러나 내가 거듭 주장했듯이(예컨대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11장 「시민참여형 통일운동과 한반도 평화」) 통일과정에의 시민참여라는 게 북미관계·남북관계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시민참여 중에서 최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정권을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쫓아낸"(같은 책 284~85면) 2016~17년의 촛불대항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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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그런 ‘이익‘ 추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모든 정치 이념들이 최소한의 토대적인 공공성에 대해서 동의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즉,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계없이, 또는 나의 직접적인 이익이 단기적으로 침해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회 공동체의 정상적인 구성원이라면 동의해야만 하는 합의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_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p29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의 저자 폴 슈메이커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관점 차이를 철학적 가정과 정치적 원리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그는 결론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  pluralist public philosophy'이라는 진보와 보수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만, '보수와 진보의 합의점'이라는 결론이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유권자 또는 정치인의 성향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이들은 거칠게나마  '우파=보수=민족주의자', vs '좌파=진보=계급주의자'라는 등식과 구도에 위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위에서 앞서 말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기본 전제와 우리의 현실은 차이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중시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며 미래지향적 성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이념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이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모순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과 다른 세력을 '이념'으로 적대하며 '빨갱이'로 호칭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계급주의'적인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좌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계층보다 오히려 민족차원의 접근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들이 체감하는 정치 피로감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에도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외세 의존적인 모순은 한국정치만의 특성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정치의 특질은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원인을 찾는다면 한국만의 체제 '분단체제'로 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며, 분단의 원인이 된 '일제 식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기원이 일제 식민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식민 시대에 기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지금의 혼란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식민시대와 분단 체제의 극복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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