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고명섭은 ‘극장’을 철학자의 삶과 사유의 세계로 이해하며, 하이데거의 세계라는 극장에서는 존재의 드라마가 공연되었다고 본다. 또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존재와 진리의 드라마를 쉼 없이 써내 무대에 올리는 드라마투르기의 역사였다."(1권 73면) 따라서 하이데거는 평생 존재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존재론은 그의 인생과 분리되지 않는다

고명섭의 이 책은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성과를 거의 모두 망라하였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향후 하이데거 철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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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의 민주주의론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6
가라타니 고진 지음,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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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독자들의 접근이 용이한 '대담'이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서로 씌여진 <세계공화국으로>의 자매편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세계공화국으로>보다 흥미로운데, 첫째 인간 가라타니와 그의 사상 사이의 상관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둘째 1960년대 대학생부터 가장 최근의 사상적 역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옮긴이 후기 , p186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의 <정치를 말하다 柄谷行人 政治を語る>의 성격은 옮긴이 후기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저작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정치를 말하다>가 그의 전집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 여겨진다.


 메이지 이래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국가나 네이션은 명확히 능동적인 주체로서 존재합니다. 사실 일본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일본제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국가에 의해 시작되어, 이후 민영화되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경험에서 보면, 국가나 네이션을 그저 표상이나 상부구조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국가나 네이션은 단순히 환상이나 표상이 아니며, 그 자체의 교환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32


 저자는 <정치를 말하다>에서 자신이 '자본주의=국가=네이션'이라는 도식을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조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위와 같은 관점은 <트랜스크리틱>에서 보다 상세히 논의되는데, 그 계기는 소련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였다. 관념론적인 그의 탐구가 이 사건 이후 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음을 저자는 본문을 통해 밝힌다. 그렇다면, 무엇이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공산혁명을 실패로 끌고내려갔는가?


 1991년에 소련이 현실적으로 붕괴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오히려 소련이라는 존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p68)... 소련붕괴, 즉 미소 이원적 구조의 붕괴는 동시에 철학적 논의의 리얼리티를 빼앗아갔습니다. 소련이 붕괴하자,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탈구축적 힘에 기대한다는 식의 레토릭은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탈구축적 힘은 완전히 노골적이 되어 전 세계를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지요.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69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상품교환이라는 경제적 하부구조에 초점을 맞췄기에 계급을 넘어선 국가와 네이션의 문제에 답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그러한 하부층위의 문제가 아닌 상부층위에서 국가와 네이션과 관계를 맺으며 존속한다. 이와 같은 고진의 관점은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주장한 관점 - 시장경제 위에 다른 층위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라는 교환양식 - 을 떠올리게 한다. 


 마르크스는 초기부터 화폐 또는 자본재경제를 종교비판을 응용하여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이 과제를 <자본론>에서 완수하려고 했지요. 이것은 역사[史的] 유물론의 공식과는 무관합니다. 역사유물론에서는 경제적 하부구조(토대) 위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말하자면 상품교환이라는 하부구조에 의해 형성된 종교적 상부구조로서 존재합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46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국가와 네이션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즉 스탈린주의나 파시즘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반성에서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게 되고, 또 고유한 차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p80)...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국가나 네이션을 상품교환과는 다른 교환양식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81


 이처럼 마르크스 이론은 국가와 네이션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힌다. 한계상황에서 고진은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를 등판시킨다. 칸트가 <영구평화론 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f>에서 보여준 하나된 세계로서의 가능성 안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구체적으로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모습으로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 실현될 것이다.


 칸트는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을 구별했습니다. 또는 이성의 '구성적 사용'과 '규제적 사용'을 구별했습니다. 구성적 이념은 현실화되어야 하는 이념입니다. 규제적 이념은 결코 실현될 수 없지만 지표로서 존재하고, 그것을 향해 서서히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념입니다.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가 부정한 것은 구성적 이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71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성은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유란 자발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칸트는 도덕법칙으로 이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그저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서도 다루어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타인을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득이합니다. 그러나 타인을 수단으로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상대를 목적(자유로운 존재)으로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칸트는 상인자본을 개재시키지 않는, 생산자들의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을 제창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76


 고진의 <정치를 말하다>는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설명하는 <트랜스크리틱>, 그리고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세계사의 구조>라는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입장이 간략하게 나마 모두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말하다>는 그의 전집의 <프롤레고메나 Prolegomena>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트랜스크리틱> <세계사의 구조>로 들어가 보자...


 내가 말하는 반복은 구조적인 것입니다. 자본주의에는 반복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경기순환이 그렇습니다. 공황->불황->호황->공황 .... 왜 이런 순환이 존재하느냐 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발전하면서 공황과 불황을 통해 폭력적인 도태와 정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반복은 말하자면 반복강박적인 것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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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네트워크 2 - 지역을 넘어선 교류 케임브리지 세계사 8
크레이그 벤저민 지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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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교환 체계가 존재했고, 그 중심지에 복잡한 구성의 대규모 어스워크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호프웰의 사회-정치적 구조는 서로 평등한 관계의 무리 혹은 부족 공동체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들이 장례 시설과 연관된 캠프나 마을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씨족 네트워크와 경제적 교환 체계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을 포괄하는 더 큰 범위의 공동체는 훨씬 더 큰 지역을 아울렀고, 공통된 우주론에 기반을 둔 상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p512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지역을 넘어선 교류 Cambridge World History Vol. IV>에서 독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발견한다. 그리고, BCE 1200 ~ CE 900년까지의 세계에  오스트레일리아나 미크로네시아의 부족 단위 소규모 교류로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는 실크로드(Silk Road)와 같은 거대한 교류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같이 문명들간의 교류 형태를 갈라놓았는가? 


 우연한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겠지만, 박트리아는 언제나 역사의 교차로에 놓여 있었다. 그곳은 문명이 시작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었다. 박트리아에서 내륙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인도아대륙, 근동, 지중해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 만났다. 어떤 이유에서든 박트리아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 특성상 문명 소통적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그 사회는 환경 때문에라도 다문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p128


 아쉽게도,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에서는 이러한 지역별 차이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그저 역사 속의 수많은 문명(文明)과 시대에 남긴 이들의 자취를 보여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만약, 이 물음에 대해 궁금하다면 다른 책들을 참고하도록 하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이 시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청동기 시대로부터 철기 시대로의 변화가 시작된다. 청동기가 제사장으로 대표되는 성(聖)의 상징이라면, 철기는 왕/군주로 대표되는 속(俗)의 상징이다. 성의 권위가 쇠퇴하고 속의 권력이 올라가면서 이들은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제국의 통치권을 두고 다른 형태의 교환관계를 맺는다. 


 당시의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금속 기술과 전쟁 기술의 혁신이었다. 예컨대 유라시아 지역에서 전차(戰車) 사용이 유행한 시기는 기원전 제2천년기였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바 인도유럽어족 가운데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는 언어의 사용자들이 당시 이미 이란고원과 인도아대륙에 진출해 있었는데, 말 사육과 전차 사용이 그 증거였다(p34)... 마지막으로 중요한 변화는 청동기 대신 사용한 철기였다. 유라시아 세계에서 철기의 사용은 군사 분야 뿐만 아니라 종교적 관습도 바꾸어 놓았다. 검(劍)은 더욱 강해졌고, 청동긱에 글자를 새겨 신전에 성물로 바치는 관습도 시들해졌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p35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형태로,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의 형태로 등장한 종교(통치이념)은 제국을 유지하는 사상적 기반과 사회의 틀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왕/군주는 저마다 '신의 뜻'과 '천명 天命'을 외치며 자신들이 실리를 채우기 위한 명분을 만들어 끊임없는 확장을 꿈꾸었다. 그리고, 당대의 여건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상황에 놓였을 때 그들은 교류를 통해 다른 문명과 공존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최고 권력자들은 저마다 제국을 꿈꾸었다. 즉 왕국의 군주가 천상의 신을 대신하는 지상의 대리인으로 선정되고자 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기독교 개종이 다양한 전략적 의미를 지녔다. 이를 통해 세계 권력의 헤게모니에 동화되고 적응할 뿐만 아니라 그에 저항하고 차별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기독교 교단 조직의 통합 위계질서는 동서 로마 지역에서 모두 새로운 계급 상승의 기회를 제공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p273


 유교는 진(秦)나라(221 ~ 210 BCE) 때 크게 쇠퇴한 적이 있었다. 진나라에서는 법가(法家)를 통치 철학으로 채택했는데, 유교의 최대 라이벌이 바로 법가였다. 법가를 기반으로 진나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내세워 전국 시대에 6개의 다른 왕국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진나라가 멸망하고 서한(西漢, 202 BCE ~ 9 CE)이 들어서자 유교에 획기적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는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었다. 한나라의 유학자들은 기꺼이 기회를 붙잡았다. 그들은 시대적 도전을 감당하기 위해 유교의 새로운 교리를 발전시켰고, 당시 신생 제국의 기반을 다져야 했던 한(漢)제국이 당면한 과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p336


 이 시기 고대 제국들은 농업에 기반한 나라들이었다. 생산에는 비옥한 토양과 적절한 온도, 때에 맞춰 내리는 비 등 자연요소가 중요했고, 소수의 특산품이 지배층에게만 판매되었기에 오늘날의 교류와는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지만 그렇기에 고대 제국은 비교적 수평적인 국가들의 연합체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제국주의(Imperialism)과는 달랐다. 그렇게 본다면, 같은 시기 바다로 가로막힌 해양 문명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그들의 교환양식이 '증여'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은 문명의 특성이라기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물은 풍부하지만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지역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 모여서 이른바 문명을 만들었다면, 그들과는 달리 문명을 만들지 않았던 이들에게 애니미즘 이상의 종교도, 조개 이상의 화폐도 없었던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하나의 축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 하면 그리스 사상과 전통이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된 일이었다. 학자들은 이를 헬레니즘화(Hellenization)라고 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이 동쪽을 향해 계속해서 뻗어 나가는 동안 그는 그리스 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새로운 도시와 군사 거점을 건설하여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군부대를 주둔시켰다.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동부 유럽 등지에서 새로 건설된 도시는 250개가 넘었다. 이러한 도시와 식민지는 헬레니즘 전파 및 그리스와 타문화의 융합에 막강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8 : 제국과 네트워크 2> , p150


농업 생산은 제국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으로, 운하 시스템과 카나트(qanat, 건조 혹은 반건조 지대에 지하수를 끌어 저장하는 수로 체계) 건설에서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었다. 건설 공사의 결과 이집트에서 아라비아, 그리고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경작지 면적이 확장되었다. 수로 건설의 혁신적 성공 이후로는 강 유역에서뿐만 아니라 건조 지대에서도 농업이 가능했다. 유라시아 세계에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경제 체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 P50

청동기 문화의 몰락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먼저 노예 반란 등 내부의 사회 및 경제적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외부자의 침략과 이주 문제가 있었는데, 이들이 도시를 파괴하고 무역과 생산 체제에 혼란을 초래했다. 전투 방식과 무기의 변화도 원인이었다. 특히 철제 무기가 도입되면서 전투에서 보병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졌고, 그 결과 전차를 이용하는 왕과 부유한 귀족의 힘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연재해가 있었다. 화산 폭발, 지진, 가뭄 등으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고 기근에 시달렸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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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계를 없애버리면 ‘가상 세계’, 곧 이 현실, 이 현상 세계만 남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도 사라져버린다는 것, 이것이 니체의 통찰이다. 참된 세계, 신의 세계, 절대자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이제껏 이 현실 세계의 삶에 의미를 구했고 이 삶에 가치를 부여했는데, 그 참된 세계가 사라지면, 이 세계의 의미도 가치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앙이고 공포이고 저주다. 니체의 철학은 바로 여기서 다시 출발하는 철학이다.

니체의 주장은 "도덕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내가 철학자들에게 선악의 저편에 서고, 도덕 판단이라는 환상을 뒤로 넘겨버려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요구는 나에 의해 최초로 정식화된 통찰, 도덕적 사실이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에서 비롯된다."《우상의 황혼》,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 1절

니체가 머릿속에 그리는 자유로운 인간은 자유롭게 삶을 음미하고 즐기는 단순하고 소박한 자유인이 아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인간은 잔인한 전사다. 그는 복지에 반대한다. 천민과 약자를 계속 살려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호전성과 잔인성이 니체 철학을 구성하는 주요한 정조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짤막한 말로 니힐리즘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는데, 그때의 니힐리즘이란 "초감성적인 것의 지배력이 쇠퇴하고 소멸함으로써 존재자 전체가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해가는 저 역사적인 과정"을 말한다.

《안티크리스트》에서 흥미로운 것은 니체가 실존 인물 예수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데 반해,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로 세운 바울로에 대해서는 한없이 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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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반도 평화‘가 우리의 핵심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예방 외교가 중요하고, 북한과도 대화해야 한다. 긴장 완화, 신뢰구축을 통한 비핵화 협상이 평화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를 ‘가짜 평화‘로 돌아붙이며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식 ‘전쟁불사론‘은 문정인 교수가 보기에 위험하다. 안보는 평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전쟁은 일어나면 복원·복구가 힘들다. 개인적 원한도 생겨 치유와 협상 또한 어려워진다. 예방이 최선책이다. 또한 북핵 위기 대처에 대한 현 정부의 스텝도 잘못됐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기보다 한·미 동맹, 한·미·일공조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문정인 교수는각 나라가 추구하는 국익과 목표는 각기 다르다고 말한다.  - P11

 평화는 어떻게든 서로 양보해서 수용할 수 있는 접점과 공존의 논리를 찾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압도해서 승리하는 건 전쟁이지 평화가 아니다. 우리국민은 전쟁 없는 평화를 원한다. 그래서예방 외교가 중요한데, 대안의 가능성을배제하는 외통수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어찌 보면 ‘힘에 의한 평화론‘이야말로 가짜 평화다. 안보는 평화의 필요조건일 뿐충분조건은 아니다. - P13

현 정부 자체가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국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은 많겠지만. 그런데 지금 같은상황에서 북한 이슈를 다루려고 하니 미국과 동맹이 필요하다. 정작 미국은 북한만 다루는 동맹에는 관심이 떨어진다. 중국까지 견제하는 동맹이 필요하다. 자꾸일본을 동참시키라고 한다. 현 정부는 원하든 원치 않은 결국 중국을 잠재 위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은 우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본다.이 과정이 더 심해지면 한·중 관계는 나빠지고, 북·중 관계는 좋아질 것이다. - P13

어떤 점에서 차가운 평화인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대량살상무기, 기후변화, 전염병 대응은 중국과 협력할용의가 있다고 했다. 대신 무역과 기술 분야는 아주 치열한 경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지정학적 문제 (타이완, 남중국해 등)나 가치 문제 (신장위구르 인권탄압 등)는 양보하지 않겠다고 했다. 바이든 식으로 중국과 협력, 경쟁, 대결이공존하는 모델을 얘기한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 신장위구르 문제는 내정에 관한 핵심 이익이라 양보할 수 없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미국과 다른 분야의 협력을 어떻게 기대하느냐고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악화되면 신냉전으로, 개선되면 G2로 갈 거다. - P15

기시다 총리가 계승하겠다고 말한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란사과 후 이를 부인하는 정직하지 못한 태도에 불과하다. 마치 ‘교‘와 ‘활‘이라는 전설의 동물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앞뒤가 다른 말과 행동을 해왔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역사 왜곡 교과서 파동에서 알수 있듯 일본의 이런 행동은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일본이 사과 후 ‘행동‘과 ‘말‘로 뒷받침하기를 원한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로 가기 위해서다. ‘반성과 사죄‘, ‘화해와 협력‘이야말로 이 길을 가는 수레에서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두 개의 바퀴다. - P18

이미 제기되던 ‘다른 목소리‘를 묵살한 채 발표된노동시간 개편안에 젊은 세대일수록 반대했고, 2030의 국민의힘 지지율마저 출렁이면서 당·정·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공동체를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법치‘만 외치며 윤석열 정부가 회피해온 ‘정치‘가 어쩌면 노동개혁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조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 P37

4·3은 40여 년간 폭동으로 규정됐다. 무장봉기의 발발 원인에 무게를 둔이들은 항쟁이라 부르자고 한다. 항쟁적측면이 존재하지만 무장대의 살상 등 과오를 고려해 사건이라고 부르자는 쪽도 있다. 사건과 항쟁 그 어디중간쯤에 있지 않나 하는 게 허호준기자의 생각이다. - P49

동생 이우진 작가는 늦었지만지금이라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있는 안전장치가 갖춰져야 한다고말한다. 그것이 만화가들이 자책에 빠져고립되는 걸 막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형과 인사도 없이 헤어져서 아직도믿기지 않고 말을 하다가도 머리가 새하얘진다. 지난 30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30년 세월도 더 볼 줄알았는데…." 이우진 작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떤 이들은 작가에게 돈을 제대로 안 줘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한다. 저는 만화가로서 당연한 권리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만화가에게 작품은 자신의 목숨과도 다름없는 존재라는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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