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 이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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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사회의 성격은 불완전함, 불충분함, 결여 등으로 규정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적극적인 것으로서, 자연환경과 사회적 계획의 지배로서, 스스로의 사회 존재를 변질시키고 부패시키며 해체시킬 수 있는 것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의지로서 규정되어야 한다(p246)... 원시사회의 경제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원시사회에서 경제가 자율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247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민족학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원시 문화들을 서구 문명을 중심으로 이른바 구심운동을 하는 대상으로 간주해왔다. 진정으로 고대적 사회에 대해 우리가 사회가 아닌 고대적 사회의 실재에 맞는 담론을 만들기 원한다면 시각의 완전한 전복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류학이 우리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34


 피에르 클라스트르 (Pierre Clastres, 1934 ~ 1977)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La Socie'te' Contre l'Etat de Pierre Clastres>에서 원시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서구중심주의에서 분명 벗어난다. 원시사회-> 노예제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라는 단선적 발전론적 입장에서 원시사회는 다음 단계로 이행을 위한 초기 단계이며, 내부모순에 의해 붕괴될 수 없는 사회다. 이러한 초기예비단계라는 기존 시각에 대해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 자체에서 완전성을 발견한다. 그러한 완전성은 원시사회에서경제면에서 이미 잉여 생산물을, 정치적으로는 독재를 방지하는 일종의 장치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종종 공동체의 연간 필요 소비량에 맞먹는 잉여 식량을 생산했다는 것, 즉 연간 필요 소비량의 두 배를 충족시키거나 혹은 두 배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식량을 생산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p18) 이 지적은 단순히 고대적 사회가 고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계경제라는 개념이 실제 원시사회가 처했던 경제적인 현실보다 오히려 원시사회에 대한 서구 관찰자들의 태도와 습관을 반영하고 있는 "과학적" 허위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19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 imago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61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속의 추장의 모습은 권력을 통해 지배하는 권력자의 모습이 아니다. 끊임없이 주변에 의해 흔들리는 추장의 모습. 이러한 추장의 모습은 J. G. 프레이저 (James George Frazer, 1854 ~ 1941)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 A Study in Magic and Religion>에서 보여지는 '신의 살해'를 떠올리게 한다. 절대적인 존재인 신을 대리하는 대리자에 대한 살해. 이 같은 의례 또한 절대권력에 대한 또다른 견제장치는 아니었을까.


 추장의 역할은, 비록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지도자는 집단의 경제활동, 의례활동을 계획하고 이끌지만 의사 결정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이 집행될 것이라고 확실할 수 없다. 끊임없이 도전받는 권력의 이러한 본질적 취약함으로 인해 권력 행사는 독특한 성격 tonalite을 지니게 된다. 즉 추장의 권력은 그 집단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49


 다른 사람들과 다른 추장에게만 요구되는 능력 - 말하기와 같은 - 마저도, 그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아닌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추장 스스로가 입증해야 하는 사회 공동체의 요구는 독재에 대한 견제장치로 작동한다. 또한, 권력사회에서 발화(發話)는 그 자체로 명시적 의미를 갖지만, 원시사회에서 발화는 모호하고 중의적인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저자는 이 같은 원시사회의 견제와 모호함을 통해 권력사회의 첫 번째 계단이 아닌, 반(反)권력사회로서 원시사회를 조명한다.


 언어가 곧 폭력의 반대라면, 말하기는 추장의 특권 이상의 것으로서, 그것은 권력이 강제적 폭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집단이 가지는 수단이자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매일 반복되는 보증으로 해석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말에는 언어에 내재하는 소통의 기능에서 벗어난 애매모호함이 숨겨져 있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60


  발화된 말은 교환되는 메시지인 동시에 모든 메시지의 부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호로서도 기호의 반대물로서도 발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아야키족의 노래는 우리들에게 열려진 소통의 기능으로서도, 또한 자아 구성의 닫혀진 기능으로서도 전개될 수 있는 언어활동의 이중적이고 본질적인 성질을 가리킨다. 이러한 반대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언어활동의 역량은 기호와 가치로 나누어질 수 있는 언어활동이 지닌 가능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156


  오랫동안 인류의 정치사는 중앙집권화 여부에 따라, 경제사는 어느 에너지를 활용했는가에 따라 우열을 판단해왔다. 그렇지만, 역사속에서 우리 인류는 과연 끊임없이 진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권력에 대한 견제가 무너지면서 부족제사회에서 왕정으로 넘어가고, 경제적으로 삼림이 황폐화되면서 나무 대신 석탄을 활용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변화, 인류 사회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퇴보는 아니었을까.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 대신 인간의 행복지수가  반비례하여 낮아지는 이유도 설명되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원시사회에 대한 현대인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 여겨진다..


 분리의 본원적 징표이자 분리가 확대되어나가는 특권적인 장은 권력의 생성이라는 환원 불가능하고 확고하며 아마도 불가역적인 총체적 사실 그 자체이다. 일부의 구성원만이 소유하며 전체 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 즉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사회를 향하여 또는 필요하다면 사회에 반하여 행사되는 권력이 생성되는 것이다. 국가를 형성한 모든 사회들을 이러한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191


 부족사회에는 왕이 없고 단지 국가의 추장이 아닌 추장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추장이 일체의 권위와 강제력,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다. 추장제의 공간은 권력의 장이 아니며 원시사회의 "추장"은 앞으로 나타날 전제군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국가 장치가 원시사회의 추장제로부터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254

권력과 교환 사이의 관계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거기에서 권력이 지닌 문제 틀이 등장하고 구체화되는 사회구조의 가장 심오한 층위, 즉 사회의 여러 무의식적 구성의 장이 드러나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권력에 대한 거부에 자신의 전부를 거는 것은 자연에 대한 주요한 차이로서의 문화 자체이다... 문화는 권력과 자연 모두에 대한 부정이다. 그것은 자연과 권력이 문화라는 제3항에 대해 동일한 - 부정적인 - 관계만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위험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문화가 권력을 자연의 재출현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에서의 부정인 것이다. - P57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력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 P192

인간을 괴롭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이 불완전함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모든 사물은 전체 속에서 하나"라는 사실로부터 온다... 이 불완전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물은 하나이기 때문에 불행은 그 불완전함으로부터 생긴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특성이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특성이다. 하나란 불완전함의 이름이다. 과라니족의 사고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란 악 그 자체라는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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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5-06 11: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기만 했는데 이제 정말 읽어볼 타이밍인 듯 싶네요. 끊임없이 발전지향으로 나아가서 문제가 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경고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5-06 13:49   좋아요 4 | URL
이제는 언론에서 진부하게 사용하는 ‘단군 이래 최대 ~‘ 등의 표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현대 사회가 예전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되네요. 거리의화가님 좋은 독서 되세요! ^^:)

얄라알라 2023-06-08 12:53   좋아요 1 | URL
이 오래 전 나온 전문서가 요새 알라딘 서재에 가끔 올라오는 걸 보면, 겨울호랑이님의 이 리뷰가 쏘아올린 신호탄이 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화가님, 타이밍 바로 지켜 실행하신거네요. 두 분의 글을 읽게 되어 넘 좋습니다

초원 2023-05-06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빗소리가 약해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잘 지내시죠?

왕이 없는 추장제 사회는, 클라스뜨르의 논의에서 보면, 무척 매력적이네요. 저도 오랜만에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읽게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국가에 대항하는‘이라는 책제목은 뭔가 비껴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겨울호랑이 2023-05-06 19:47   좋아요 1 | URL
비가 오는 연휴네요. 덕분에 꽃가루도 먼지도 많이 씻겨 내려가 시원해졌구요. 본문의 내용을 읽으며 헤시오도스가 노래한 <일과 나날> 속의 다섯 시대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황금, 은, 청동, 영웅, 철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의 삶은 점차 퇴보한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또한 초원님 말씀처럼 ‘국가에 대항하는 ~‘ 대신 다른 표현 - ‘권력을 거부하는‘ -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네요. 그럼에도 ‘국가‘를 제목에 붙인 것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민족국가에서의 국가권력이고, 중앙집권의 종착점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구요. 초원님 평안한 주말 되세요! ^^:)

얄라알라 2023-06-08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 책 읽고 입사식의 고문에 가까운 신체화된 주민등록증이 가장 인상깊었었어요.

contre는 ‘against‘의 의미여서 ‘대항하는‘이라고 번역했을까요?^^ 초원님 말씀을 들으니, 대안어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3-06-08 15:31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주민등록증은 국가의 영토 내에 구속된 개인의 처지를 잘 드러내는 도구라 여겨집니다. 저도 무심코 넘어갔었는데, 초원님 덕분에 좋은 생각할 거리를 얻었습니다.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더 풍성하게 얻어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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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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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에 끈기를 더하고 고온, 고압에서 면을 뽑으면 세상에서 가장 쫄깃한 면이 탄생한다. 바로 쫄면이다. 쫄면은 풍성한 채소와 함께 불처럼 맵고 새콤달콤한 고추장 소스에 비벼서 먹는다. 엄청난 쫄깃함과 눈물을 쏙 빼는 매운맛의 조합 덕분에 쫄면을 먹는 경험은 철인 3종 경기에 비견할 만하다. 극도로 어렵지만 극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에 탄산나트륨Na2CO3을 더하면 쫄깃한 알칼리성 국수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국수가 이 알칼리성 국수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114/336

장하준 교수의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Edible Economics: A Hungry Economist Explains the World>는 제목 그대로 요리책이다. 요리법과 요리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시에 이 책은 경제학 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수리적인 경제이론이 자리하지 않는다. 우리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한계비용체증의 법칙, 유동성 함정, 시장청산 등 이론 대신 우리 삶의 다른 축인 경제(經濟)에 대한 이야기가 책 내용의 다른 한 편을 차지한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경제학은 소득, 일자리, 연금 등에 관한 학문이라고 좁게 규정할 때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다양한 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경제학의 원리를 몇 가지라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더 중요한 차원, 즉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34/336

음식과 경제학의 조합. 다소 안 어울리는 듯한 이 조합이지만,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저자가 이들을 하나로 묶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유학 생활 초기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하고 요리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만의 요리법을 찾아낸 경험은, 이제는 신고전학파라는 경제학 제국(帝國)으로 통합된 학문의 세계에서 일종의 향수처럼 느껴졌으리라. 다양한 이론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다양한 처방을 제시하며 조화롭게 세상을 설명하는 그런 다양함을 저자는 원한다.

1970년대까지의 경제학 분야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수없이 다양한 음식 문화가 공존하며 경쟁을 벌이는 요즘의 영국 음식 분야와 닮은 데가 많았다. 모두 각자의 전통에 긍지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배우지 않을 수가 없고, 그 과정에서 의도하든 하지 않든 크고 작은 융합이 많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p28)... 1980년대 이후 경제학 분야는 1990년대 이전의 영국 음식 문화처럼 되어 버렸다. 한 가지 학문적 전통, 다시 말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메뉴의 전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학파와 마찬가지로 신고전학파 또한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심각한 단점도 있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29/336

저자 장하준은 본문에서 절대 진리, 절대 선을 말하지 않는다. 처한 상황에 따라 경제주체들에게 적절한 행동은 다른 것이며,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어야 한다. 마치 청량고추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매움을 선사하지 않듯이.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주제는 '조화'와 '균형'이 아닐까 싶다. 더이상의 리뷰는 불필요한 먹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고 책의 맛은 각자 느껴보도록 하자...

인생의 경주를 진정으로 공정하게 하려면 그 경주에 참여하기 전 모든 어린이가 경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어린이가 균형 잡힌 영양, 의료, 교육, 놀이 시간(어린이 성장에 놀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을 누리며 자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부모, 친척, 보호자 등)이 처한 환경과 상황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224/336

내 친구 덩컨은 쓰촨 요리 음식점이 고추에 대해 가진 철학을 받아들이고 매운맛에 대한 관점을 점점 바꾸면서 그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 문화의 지평이 열리고 더 맛있는 식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더 균형 잡히고, 더 공평하며, 서로 더 잘 보살피는 사회, 한마디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과 관행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24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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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5-04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중에서도 손이 제일 안가는 책이 경제학분야라서 장하준 교수의 유명한 저작들을 한번도 접해보진 못했네요. 딱딱한 수리적인 경제 이론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시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반 독자가 경제학 기본을 알아야할 이유... 설득되었습니다~! ㅋ 책소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5-04 09:44   좋아요 1 | URL
저는 초란공님과는 다른 지점에서 같은 이유로 이 책을 건너뛸까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요리책을 별로 좋아하진 않거든요 ㅋ 그런데 부담스럽지 않게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담백하게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란공님 좋은 책과 함께 여유로운 연휴 맞이하세요! ^^:)
 

이 책은 자유주의를 편협하게 영국과 미국의 독점물로 다루지 않고 프랑스와 독일의 자유주의 전통에도 마땅히 비중을 둠으로써, 이 네 나라 모두를 대표적이지만 배타적이지 않은 핵심으로 다룬다. 논쟁의 에너지는 자유주의의 목표와 이념이 엄밀하게 말해서 서구적이고, 세속적-계몽적이고, 부르주아적-개인주의적이고, 친자본주의적 혹은 (남용되는 유행어를 사용하자면) 어설프게 세계주의적임을 드러내 보이는 데 집중된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곤경에 대한 실천적 대응으로 생겨났다. 이는 과도한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동등한 시민들 사이에서의 인간적 진보라는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한 질서를 제시했다. 그것은 국가든 부든 사회든 우월한 권력에 의해 휘둘리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는 근대적이고 냉정한 사람들에게 특히 설득력을 발휘했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것을, 그리고 사람들과 사람들의 기획을 동등하게 존중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주의는 희망과 악몽을 사회에 대한 바람직한 그림 속에 용해시켰다. 즉, 상충하는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신념들이 제거되지는 못하지만 행운과 현명한 법 덕분에 부단한 충돌이 혁신과 논의와 교류라는 환영할 만한 결과로 전환될 수 있는 그런 공간, 자연적 조화가 부재하는 비친교적 공간으로서의 사회를 그리는 데 용해시킨 것이다. 충돌이 평화로운 경쟁으로 이어지는 그림은 어떤 혼란스럽고 유동적이며 늘 놀라움을 안겨주는 사회를 자유주의자들에게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었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정당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자유주의의 지도 이념 가운데 저항과 시민적 존중은 서로를 보강했다. 시민적 존중과 진보는 긴장 속에서 서로를 끌어당겼다. 첫 번째 쌍의 경우, 저항과 시민적 존중 각각은 권력과 국민의 적절한 관계에, 단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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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면역학 교과서 - 내 몸의 면역력을 높이고 싶을 때 찾아보는 인체 면역 의학 도감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스즈키 류지 지음, 장은정 옮김, 김홍배 감수 / 보누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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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는 자기(自己)와 비(非)자기를 엄격하게 인식하여, 면역 기능을 통해 비자기를 제거하고 자기의 존재를 확립한다. 비자기로서 인식되는 세균 등의 항원에 대해서는, 특이적으로 대응하는 림프구(B세포)를 증식시켜 항체를 만들고, 항원을 몸에서 제거하여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 한다. 또, 자기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에 대해서는 자기라는 사실을 인식, 감시한다. 이때 조금이라도 변화된 자기가 발견되면 비자기로 파악하여 즉시 공격한다. _ 스즈키 류지, <인체 면역학 교과서> , p21

<인체 면역학 교과서>에서 정리하는 면역 활동의 본질은 '자기와 비자기를 식별하여 비자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자기로 인식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는 자기만 비자기로 인식되었을 때 생겨나는 '자기 면역 질환', 이와 반대로 실제로는 비자기지만, 자기로 인식하기 위해 일어나는 '모체-태아 간의 면역 관용'은 이러한 물음의 실례일 것이다.

자연 면역과 적응 면역은 림프구(T세포, B세포)의 관여 방식에 따라 구별하는데 각각은 독립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작동한다. 자연 면역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큰 포식세포는 림프구에 항원을 제시해주는 능력(항원 제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 항원 제시 기능을 가진 세포는 항원과 대적할 때 활성화되어 자연 면역과 적응 면역의 성립에 중요한 생리 활성 물질을 생산하고, T세포의 활성화를 촉진한다. _ 스즈키 류지, <인체 면역학 교과서> , p24

그런 면에서 면역 체계의 활동은 존재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라 생각된다. 그리고, 적지 않은 면역 관련 질환이 이러한 인식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체 면역학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된다. 물론, 암(癌)과 같이 면역 능력의 감퇴로부터 빚어지는 병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기능의 감소는 필멸(必滅)의 인간이 받아들어야 하는 숙명이라 하더라도, '자기-비자기'와 관련된 인식의 문제로부터 건강한 습관에 대한 배움을 받는다.

청결한 위생 관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로 포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기준은 자연적으로 외부와 접촉, 백신을 통해 세워지고 강화된다면 건강한 면역체계의 수립을 위해서는 무조건 차단이 아닌 자연스러운 외부와의 접촉이 더 유용한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그러한 유용함은 건강한 몸 뿐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면역 체계는 침입한 유해 물질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을 자기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여 공격, 제거한다. 자가 면역 질환은 이 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원래 공격하지 말아야 할 자기 유래 단백질(세포 표면의 막 단백질 등)을 공격하여 염증과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_ 스즈키 류지, <인체 면역학 교과서>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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