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역사적 국면이 고유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의 국면 속에 역사의 ‘연속성‘과 ‘변화‘라는 이질적인 측면이 하나로 합해져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역사적 국면은 역사의 ‘순환‘과 역사의 ‘화살‘이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국면과 다른국면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역사의 ‘순환‘이 지배적일 때변화는 양적이고 제한적이다. 반면 역사의 ‘화살‘이 지배적일 때 변화는 질적이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 P192

이쯤에서 역사의 세 가지 엔진을 다시 살펴보자. 첫째는 지식, 기술, 생산성의 축적이다. 둘째는 잉여의 통제를 놓고 벌이는 지배계급 간의 경쟁과 투쟁이다. 셋째는 잉여의 크기와 배분을 놓고 벌이는 계급 간의 투쟁이 그것이다. 바로 이 세 엔진의 상호작용이 역사를 앞으로 끌고 나간다. - P192

종교개혁의 핵심은 봉건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지주인 가톨릭교회와의 단절이었다. 자유로운 질문과 논쟁이 폭발했다. 프로테스탄트는 무엇보다도 중산층의 종교였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발달된 지역에서 자본주의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던, 산업 성장의 개척자들이었다. - P239

결국 자본주의는 경쟁적으로 자본축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융합한 결과다. 오직 이윤을 붙여팔기 위해서만 사야 하는 상인의 원리,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생산성의 변화, 각각의 경제 파트가 자본들 사이의 경쟁 단위가 돼 버린 상황. - P359

노동에 대한 대가와 노동력에 대한 대가의 차이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비밀이다. 임금이 노동에 대한 대가라면,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가치에 대한 정당한 지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금이 노동력에 대한 대가인 경우, 임금은시장의 거래가격에 따라 결정되고, 자본가들은 이윤을 얻기 위해임금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라고 노동자에게 요구하게 된다. - P360

보호무역과 식민지주의는 서로 경쟁해가면서 강도를 더해갔다. 이는 장기불황의 세 번째 결과를 낳았다. 바로 강대국들 간의 긴장고조와 군비지출 증가다. 이 때문에 주요 자본주의 국가 내부의 권력 관계는 재구성되었다. 정부, 군부, 무기업체는 서로 연계되어 군산 복합체‘를 구성했다. - P412

붕괴의 원인은 금융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은행부채가 없었다면호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스템은 한마디로 깊이 병들어있었다. 1970년대부터 낮은 수익, 수용력 초과, 소비 부족에 시달린이 시스템이 수요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채를 늘리는 것이었다. 금융투기가 거대한 거품으로 부풀어 오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화려해 보이는 신자유주의 이면에는 영구적인 ‘부채 경제‘라는 현실이 존재했다. - P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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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지음, 김주식 옮김 / 책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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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해군 관련 사건들에 대한 연대기를 단순히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역사에서 어떤 해군 관련 사건을 그 사건의 인과관계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전략적이거나 전술적인 토론도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일반적인 전쟁 결과와 국가 번영에 미친 해양력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328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Alfred Thayer Mahan, 1840 ~ 1914)의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은 해양력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럽/미국사이며, 이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헤게모니(Hegemony)가 교체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자연스럽게 마한은 제해권을 통해 자본주의(capitalism), 제국주의(Imperialism) 주도권 교체를 설명한다.

역사 속에서 헤게모니 경쟁의 최종 승자는 당연히 영국이다. 그리고, 영국에 헤게모니를 넘겨주기 전까지 강력한 해운제국은 네덜란드였다. 그렇다면, 네덜란드가 영국에 뒤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모든 자원을 해운에 쏟을 수 있었던 영국과는 달리 대륙의 일부로서 주변 강대국 - 프랑스, 스페인 - 과 끊임없는 전쟁을 기울여야 했던 지정학적 요인이 가장 큰 차이였으며, 결정적으로 영국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으로 네덜란드 오라녜 공 빌럼이 윌리엄 3세(William III, 1652 ~ 1702)가 되면서 네덜란드의 물적/인적 자원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패권은 넘어가게 된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영국과 프랑스 중의 한 나라와 항상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전쟁은 네덜란드의 재정을 고갈시켰으며, 해군을 파괴했고, 무역과 제조업과 상업에서의 급속한 쇠퇴를 초래했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273

오라녜 공은 영국의 왕위를 차지하기를 바랐는데, 그것은 평범한 개인적인 명성의 확장이 아니라 루이 14세의 세력을 영구히 억제하고자 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최대한으로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영국 원정을 위해서 네덜란드 연방으로부터 함정, 군자금, 그리고 병사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윌리엄의 요구에 대해 망설였다. 왜냐하면 프랑스 국왕이 제임스를 자신의 동맹자로 선언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윌리엄의 영국 원정은 결국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이 될 것잉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덜란인들의 행동은 결국 루이에 의해 결정되었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285

그렇다면, 프랑스가 패권 경쟁에서 밀린 이유는 무엇인가? 마한에 의하면 그것은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전 시기까지 재상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 1619 ~ 1683)와 성공적인 국가 운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XIV, 1638 ~ 1715)가 대륙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프랑스의 해운력은 감퇴되었고, 이는 헤게모니 쟁탈전에서의 패배로 이어졌다는 점이 저자의 설명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세계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유추할 수 있다.

루이 14세는 군함을 제외한 프랑스의 해상 이익에 계속해서 등을 돌렸다. 그는 평화적인 해운과 산업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군함도 거의 쓸모가 없거나 불확실한 존재가 될 것임을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강력한 육군 건설과 영토확장을 통해 동맹을 체결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프랑스를 해상에서 물러나게 만들고 간접적으로는 네덜란드의 세력을 해상에서 궁지에 빠지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132

프랑스는 영국과 거의 비슷했으며 다른 적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분명히 부와 신용 면에서의 차이였다. 프랑스는 단독으로 많은 적을 상대했지만, 그 적들은 영국의 보조금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356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에서 저자는 해군과 육군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전시가 아닌 평시에서 활용에서 발견한다. 육군은 전시외에는 활용이 불가한 반면, 해군은 다르다. 전시에는 군함으로, 평시에는 무역선으로 선박의 전용이 가능하며 적지않은 경우 해적선으로도 이용가능하다는 점에서 육군은 비용(費用)인 반면, 해군은 자산(資産)으로 설명된다. 결국, 한정된 국부를 어디에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가에 따라 국력이 결정되었다는 설명을 마한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제시한다.

해상을 왕래하는 선박은 돌아갈 항구를 갖고 있어야 하고, 가능한 한 먼 곳까지 자국의 보호를 받으며 항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전시에는 무장함선이 보호 임무를 수행한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한 나라가 해군을 단순히 군대기구의 일부로만 유지시키는 경우를 제외하면, 해군의 필요성은 상선이 존재하면서부터 시작되고 또 그것과 더불어 사라진다고 한정된 범위로 이야기할 수 있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73

이처럼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은 해양력의 역사를 보여주지만,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와 헤게모니의 역사도 함께 보여준다. 이는 자본주의가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지된 제국주의임을 반증한다. 본문에서는 해양 전술과 관련된 내용도 상세히 다루어지지만, 그러한 전술적인 면보다 바다를 중심으로 제국을 구축했던 제국주의 국가의 전략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시각으로 보는 편이 보다 유용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바다에 접해 있는 국가의 정책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열쇠는 교역을 요구하는 생산, 교역품들을 운반하는 수단으로서 해운, 그리고 해운 활동을 도와주고 확대해주는 동시에 안전한 거점을 증가시켜서 해운을 보호해주는 식민지, 바로 이 세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정책은 그 시대의 사상 그리고 통치자의 성격과 통찰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변해왔다. _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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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도 신학기와 환절기가 겹친 3·4·5월은 소아과가 붐빈다. 올해는 차원이 다르다. 마스크 착용이 전면 해제되고 지난 3년간 코로나19 유행으로 주춤했던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단체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감기 바이러스 7~8종이 일시에유행하고 있다. RS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나을 즈음이면 보카 바이러스에 보카 치료를 끝내면 아데노바이러스에 다시 걸리는 식이다. 3월부터 두 달째 약을달고 사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치료 시기를 놓쳐 폐렴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 P13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을 문제까? 이 ‘특수 시즌‘이 지나면 지금 당장 목도하는 극단적 형태의 소아과대란은 약간 풀리겠지만 소아과 의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은 앞으로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몇 년째 전공의를 확보하지못한 진료 과목은 전공의 확보율을 반등시키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공의 정원이 비었던 그 병원, 그 과에 전공의로 들어가면 1년 차 레지던트가 2~3년 차 레지던트의 일까지 모두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팔라지는 저출생 기조도 예비의사들의 소아과 선택을 주저하게 한다. - P17

숨겨진 비밀은 바로, 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핵협의그룹에 있다. 정부는 핵협의그룹을 강화된 확장억제의 알맹이로꼽고, 심지어 제2의 한·미 방위조약이라고까지 칭한다. 정작 차관보급 회의체에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빛 좋은 개살구같지만, 한·미 핵협의그룹은 한·미·일3자 핵협의그룹으로 변신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숨겨진 비밀이다. 나아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포함한 아시아 핵협의그룹으로 확대해갈 것이다. - P27

정부 관계자들은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전략적 모호성‘이 아닌 ‘전략적 명확성‘을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러시아와 각을 세우더라도 한·미·일 삼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미·일 핵협의그룹이 만들어지면 동북아시아에서 이 전략적 명확성이 가시화되는 조치가 될 것이다.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중국·러시아 2개 나라가 한국에 대한 위협을 전략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시기가 눈앞에 닥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무역, 한반도비핵화와 평화 체제, 그리고 미래의 한반도 통일 등 우리의 국가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나라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 P28

그런데 AI가 개를 포함한 온갖 동식물과 물건과 풍경과 개념의 이미지를 텍스트에 연결 지어 ‘복원 (생성) ‘해내려면,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쌍이 필요하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인터넷상에서 긁어모은 50억 개가 넘는 이미지 - 텍스트쌍을 학습했다. 출처는 워드프레스 같은개인 블로그 플랫폼, 디비언트 아트 같은아트플랫폼, 게티이미지 같은 이미지 플랫폼 등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따로 동의를 구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 P35

논란의 핵심에 ‘화풍‘이 있다. 인간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하는 데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데 국내외적으로 화풍(그림체·스타일)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이 보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표현‘이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장려하는 취지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화풍이고, 어디부터가 표현인가? 생성 AI의 등장으로 누구나 짧은시간에 특정 아티스트 스타일의 작품을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누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해당 예술가에게 작품을의뢰할까?  - P38

생성 AI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공들이는 걸 포착해주는 독자들이 있길 바란다. 번역가로서 엄밀한 표현을 쓰려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시간을 들인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보면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문장들, 특히정치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거기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넘어간다. 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자체가사회적으로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면, 특히 기자들이 끝까지 질문했으면 좋겠다. 말의 의미에 대해서. - P41

반면 정부는 피해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돕는 데에는 선을 긋는다. 주거까지는 정부가 지원하겠지만, 재산 손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세 사기도 단지 사기의 일종일 뿐이란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 P44

대통령의 연설은 눈앞의 청중을 기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서 질문을 한 단계 더 들어가보자.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왜 미국 의회에서 연설했나?‘ 청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만족한 상대를 대상으로 우리 몫을 얻어와야 한다. 그 지점에서 윤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을 따져봐야한다. 외교에는 국적이 있기 때문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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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이해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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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을 포함한 서방의 언론이 개전 이후에 내보낸 뉴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발견했다. 이것을 미디어와 사실 fact의 관계 변화라고 해도 좋겠다. 진실 truth은 어떤 도덕적 함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실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다. 포스트트루스 post-truth의 진행 단계가 고속화/고도화되면서 이제 미디어는 사실이나 진실에 특화된 사회적 체계와 기능에서 이탈했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권부 mediocracy가 되어 사실과 진실을 선별하고, 기사를 권력자원화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201

이해영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기에 ‘달의 뒷면‘과도 같이 낯설게 느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 지적한 언론에 의해 은폐된 진실은 개별 전투(combat)에서 전쟁(warfare)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쟁의 전반을 망라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외적 배경과 국내적 배경 설명에 지면의 상당부문을 할애한다. 우선 국외적 요인으로 단극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기획이 지적된다. 이미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우방이었던 서독과 일본의 경제적 부상을 저지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은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정치적 경쟁자가 될 우려가 있는 소련을 해체시켰고, 나토(NATO)의 동진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시켜왔다.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 )와 제프리 삭스(Jeffrey David Sachs, 1954 ~ )는 정확히 이 지점을 지적하며 미국 역할론을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네이콘이 추진한 30년 프로젝트의 정점이다. 바이든은 네오콘을 몰고 거대한 파국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와 미국, 그리고 EU는 또 하나의 지정학적 파탄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만일 유럽에 약간의 통찰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들은 미국의 외교정책 판탄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이라고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림비아대학 교수는 말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38

‘브레진스키 함정‘의 요체는 이렇다. 적을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유도해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전력을 약화시킨 뒤 최종적으로 압박해 무너뜨린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베트남‘이 되었고, 소련은 자국의 생산력으로 더 이상 냉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붕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목되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67

국외적 요인이 미국 네오콘의 프로젝트라면, 우크라이나-러시아 문제는 아조프(Azov)로 대표되는 극우집단 문제다. 일찍이 1940년대 볼린 Volyn 지역에서 대학살을 주도한 세력을 기원으로 하는 극우 파시스트 문제는 전쟁 이전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계 주민을 향한 폭력을 행사하며 악명을 떨쳤다.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는 이러한 사실을 펼쳐놓고 종합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본다면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후 미영 등 서방 언론에서는 거의 삭제된 부분이 우크라이나의 극우 파시스트 문제이다. 우크라이나는 적어도 전전까지 전 세계에서 네오나치가 무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였다. 그리고 무장한 나치가 거리의 정치뿐 아니라 의회와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 세계 네오나치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2014년 이른바 유로마이단은 네오나치의 공간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미국이 있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96

아조프는 군사운동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점을 기억하라. 아조프는 압도적 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아르코프 지역의 ‘우크라이나 애국자‘에서 넘어온 극우 세력이 모체이다. 그런데 아조프 민족주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달리 우크라이나 언어, 인종, 혹은 종교 이슈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조프는 ‘민족‘을 이탈리아 파시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주의로 인식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104

그런데 이런 판단을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편향된 정보와 낡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내린다면 섣부른 결정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점이고, 때문에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대해 무겁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NATO의 동진(東進)으로 러시아의 시각을 아시아로 돌린다면, 결국 다음 대립은 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일본의 갈등이 될 것은 너무도 명확한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중심으로 인도까지 포함한 인도-태평양 동맹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빠른 한미일 동맹을 위해 오염된 미군 기지 위에 살짝 흙을 덮듯 서둘러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통으로 양보하는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외교 참사.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닿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보여준 통찰이 현재 우리의 정세 분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모습이 과거의 반복이라면, 책을 통해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도 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 ) 의 <한국전쟁의 기원>리뷰에서 보다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11월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M777 견인포 142문과 155밀리미터 포탄 92만 4000발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는 155밀리미터 견인포를 감산하려 했지만 최근에 긴급 예산을 편성하여 물량 확보에 나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포병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장사정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의 포탄 재고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포탄 생산력을 늘려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은 한국에 포탄 공급을 요청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182

우크라이나전쟁은 타이완의 향배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서아시아에서의 갈등 역식 마찬가지다. 역으로 타이완 문제는 우크라이나 문제와 맞물려 중러 관계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모든 요인이 한편으로 미국 단극 체제의 동요를 수반하고 다른 한편으로 신냉전을 강화하는 경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군사적으로 한층 고조되어 3차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 또한 실재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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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3-05-13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교류하고 있는데, 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저는 2020년부터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즘을 비판해왔고, 다른 사람들이 반데라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부터 이에 대해 글은 쓴 적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읽어야할 책이 이해영 교수님의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고로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판은 이미 후원했습니다. 이것도 완독할 생각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5-13 17: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또한 언론이 다루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접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처럼 종합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어느 일방이 아닌 여러 각도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가 요즘처럼 혼란한 시기에 더욱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NamGiKim님 좋은 하루 되세요!

2023-05-13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3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음, 송이루.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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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혁명/전쟁 같은 고난이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잘 헤쳐나갈 능력이 있으며, 이를 극복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모든 비참한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류의 적응력과 창조력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과 나, 그리고 세계 질서는 커다란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겠지만 인류는 보다 영리해지고 강인해져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번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60/760

레이 달리오 (Ray Dalio, 1949 ~ )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 The Changing World Order>의 내용을 거칠게 그리고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본주의 탄생 이후 헤게모니(Hegemony)를 장악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과 함께 각 시기별로 적절한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관점 등을 제시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장점은 전업 투자자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사를 조망한다는 점과 이로부터 독자들은 투자자의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전 세계의 모든 경제 체제를 다 겪어 보았고 그 결과 돈을 벌어 저축하고 이를 자본시장에 투입하는 것(즉 자본주의)이야말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동기이며, 자원을 배분하는 수단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불공정한 빈부의 격차와 기회의 박탈을 유발하여 여러 가지 역효과를 낳고, 불경기와 호경기가 반복되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날 각국의 정책입안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등과 안정을 해치지 않고 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제 체제를 구현해서 생산성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139/760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내용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전체적인 본문의 틀은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1930 ~ 2019)의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의 틀을 따르고, 저자만의 데이터 분석이 주를 이룬다. 세계체제 내에서 자본주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와 같은 주제라 할 수 있지만, 도출되는 결론은 사뭇 다르다.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지적한 자본주의의 본성 - 독점 monopoly - 문제에 대해 달리오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대자본가의 입장에서 적절한 투자 기회를 강조하며 이러한 기회와 혁신을 통해 지난 500년의 발전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저자의 관점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과연, 어제까지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줄 수있을까. 기후위기, 인간소외 등의 현대사회와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당연하면서도 역설적이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는 이 압도적인 부와 권력이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명나라의 황제는 해외 원정을 중지하고 문호를 닫아버린 후 쾌락에 빠져 관료와 환관에게 정사를 맡겨버렸다. 결국 내부 권력투쟁과 부패가 만연해 국가 기반이 취약해지고 군사력도 약해졌다. 실용적인 학문 연구와 혁신은 제쳐둔 채 탁상공론에 몰두했다. 이런 이유로 유럽과 비교해서 중국의 쇠퇴가 가속화된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335/760

저자는 이와 함께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다른 세계 국가들이 주변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다분히 유럽 중심적으로 간단하게 해석한다. 저자는 명(明)나라의 쇠망을 쇄국정책과 내부부패 문제로 돌리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명나라 멸망 전후의 동북아시아 상황 - 만주족의 등장, 임진왜란, 왜구 문제 등 - 에 대한 고려 없이 혁신과 진취적인 정신이 없이 향락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는 분석은 저자의 분석이 과연 얼마만큼 정밀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또한, 남아메리카의 아스텍 제국과 마야 제국의 멸망에는 유럽의 침략 이전에 이들 제국과 주변 부족간의 대립, 천연두 등 전염병의 유행 등 복합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혁신- 비혁신‘ 이라는 단순화된 기준으로 세계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책을 읽으며 드는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멕시코에 있던 아스테카제국(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은 당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인구가 많았다)과 남미에 있던 잉카제국이 가장 컸다. 그러나 곧 유럽의 침략이 시작되어 두 제국이 멸망한 후 새로운 식민지가 탄생하고 276년 후에 미국 건국의 씨앗이 뿌려졌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336/760

이러한 이유로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서술된 세계사관련 내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인 단순한 기준으로 바라본 세계사. 이러한 관점의 한계는 저자 자신이 바로 성공한 투자가 때문일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투자적격성 여부를 판단하고자 하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 그리고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 이것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가 담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만약 독자들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통해 역사적인 통찰을 얻으려 한다면 많은 한계가 있지만. 대신, 자본가, 투자자의 시각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일정 부분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진다...

마찬가지로 더 이상 경화로 이자를 지불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부채와 채권자산이 점점 커진다는 면에서 화폐/신용/자본시장의 사이클도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다. 항상 그랬듯이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채권자산을 팔고 다른 자산을 구매하려 하지만, 통화량과 자산 가치 대비 이미 너무 많은 채권자산이 시장에 풀려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상황이 되어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 통화 공급 주체는 더욱 많은 돈을 찍어낸다. 이 사이클은 수천 년간 본질적으로 같았다. 국내 질서와 혼란, 국제 질서와 혼란의 사이클도 마찬가지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4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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