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통해 도시 엘리트들의 읽기·쓰기 능력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고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대 수메르어는 이미 수세기 전에 구어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나, 부유한 바빌론 주민은 여전히 이를 공부하여 시와 학문을 이해했다. 또한 신전 예식에 필요한 일부 기도문과 성가 역시 수메르어를 이용했다. 그리고 법률 문서 등에서 수메르어가 널리 통용되던 함무라비 왕조 때와는 대조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데도 수메르어를 공부하는 것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 주는 강력한 도구였다. 누구나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사다난한 시기에 마르두크의 역할은 재해석되기 시작하여 바빌론 왕과의 관계가 영구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4 마르두크는 점차 단순히 ‘주인’(벨)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세상을 지배하는 독보적인 통치자로 인식되었다. 왕권은 더 이상 타고난 권리로 여겨지지 않고, 신이 바빌론의 왕으로 인정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바빌론의 새로운 왕위 승계 원칙은 부친에게서 아들로 왕권이 전수되는 아시리아 등 주변국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정치권력이 왕가에서 마르두크 신전으로 옮겨 가며 신전공동체가 정치적 주체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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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정치적 지형은 함무라비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기존의 강대국인 엘람과 얌하드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다수의 군소 국가들이 이제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수사와 할라브의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 바빌론 왕국의 영토는 페르시아만에서 북부 이라크까지 아우렀다.

고고학자 도미니크 샤르팽은 바빌론의 라르사 합병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바빌론의 문화적 영향력이 이후 2천 년 동안 중동에서 지속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라르사 궁정의 세련되고 교양 있는 인물들은 소박한 함무라비 궁정에 편입되면서 바빌론의 정치·종교·문화·문학·예술 등 다방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바빌론’ 문화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자료는 함무라비법전이다. 이 법전은 함무라비가 새로이 건설한 왕국의 통합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여 년 전 우르 왕국이 몰락한 뒤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던 이 지역의 도시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그의 전략에 있어 새로운 법규범의 도입은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었다. 함무라비법전은 각 도시국가의 수용과 안정을 보장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텍스트 첫 줄의 기록에 따르면 가장 높은 두 신 즉 신들의 주인 아누와 땅의 주인 엔릴이 함무라비를 통치자로 정하고, 바빌론과 마르두크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함무라비가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수도 바빌론이 새 왕국 내에서 명성을 떨치자, 바빌론의 도시 신 역시 신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를 통해 지역 신에 불과하던 마르두크가 서서히 전 세계의 독보적인 지배 신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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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와 피셔는 경제학 재발명의 상이한 노선을 대표했다. 케인스는 정부의 조세와 지출이라는 재정적 임무들을 강조했다. 피셔는 불황기에 가격을 올리고 그런 후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정부의 통화 관련 임무들을 강조했다. 이상적인 19세기 신념의 수호자를 자처한 하이에크는 더 오래된, 제한 정부라는 방책이 옳다고 주장했다. 어떤 재발명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재발명도 필요치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이 정치 권력에 대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케인스주의는 그에 상응하는 경제 권력의 확대에 대한 분명한 인정을 요청했다. 거칠게 말해서, 고임금은 보통선거권에 대한 케인스식 등가물이었다. 케인스의 메시지는 미래 상황을 예측하는 기업가들이 이미 어렴풋이 감지한 것에 가까웠다. 즉, 고임금은 더 많은 소비자를 의미하고 더 많은 소비자는 더 큰 이윤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임금은 기업에 유리한 것이었다. 자유주의는 유권자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케인스는 소비자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자유주의에 촉구하고 있었는데, 노동자가 곧 소비자라는 점에서 소비자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이것은 독특한 것이었다. 슘페터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기업가적 모험을 자본주의 정신으로 만들었다.

피셔의 생각은 다원적이었다. 경기 침체는 결코 똑같지 않았다. 경기 침체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 피셔가 저리 자금을 문제시한 것은 그것이 침체를 불황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었다. 침체의 최초 원인이 요점이 아니었다. 경제는 외부 충격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한 자연적으로 잘 굴러갔다. 외부 충격의 일부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일부는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피할 수 있는 충격의 원인은 정부였다. 불황을 야기하는 피할 수 있는 방해는 정부의 저리 자금이었다.

저리 자금은 기업들이 단기적인 소비재 투자로부터, 더 많은 대출을 요하는 장기적이고 자본 집약적인 투자로 전환하도록 장려했다. 소비에서 투자로 돈이 흘러가면 사람들은 저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인위적인 저금리는 경제의 자연적 리듬을 일그러뜨렸다. 기업들은 거대 자본 프로젝트로 이동했는데, 이는 대출 이자가 일시적으로 낮아서였지 기업들이 큰 투자를 통한 큰 미래 수익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소비자의 수요는 억제되었는데, 저금리가 돈을 투자에 쏠리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원하는 저축과 소비의 균형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억눌린 소비자 수요가 기업들을 단기적 생산으로 내몰고 장기적 자본재에 대한 과잉 투자를 포기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쟁탈전으로 내몰 때 균열이 발생했다. 하이에크의 설명은 충실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에게는 표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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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세계사 - 네안데르탈인에서 신자유주의까지
닐 포크너 지음, 이윤정 옮김 / 엑스오북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하나의 역사적 국면은 역사의 '순환'과 역사의 '화살'이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국면과 다른 국면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역사의 '순환'이 지배적일 때 변화는 양 量적이고 제한적이다. 반면 역사의 '화살'이 지배적일 때 변화는 질 質적이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역사는 세 가지 엔진에 의해 앞으로 나간다. 첫째는 지식, 기술, 생산성의 축적이다. 둘째는 잉여의 통제를 놓고 벌이는 지배계급 간의 경쟁과 투쟁이다. 셋째는 잉여의 크기와 배분을 놓고 벌이는 계급 간의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192

닐 포크너(Neil Faulkner, 1958 ~ 2022)의 <좌파 세계사 A Marxist History of the World: From Neanderthals to Neoliberals>는 인류 탄생부터 최근까지 인류 역사를 생산성 향상과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다. 신석기 시대 농경 사회의 시작과 함께 생겨난 불평등 구조는 불안정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불안정이 가져온 변화는 잉여가치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인류 역사는 이를 차지 하기 위한 쟁탈전이었다는 것이 저자가 바라보는 주된 관점이다.

'즉자적 卽自的 계급 class in itself'이란 사회관계와 경제적인 관점에서 계급이 처하게 되는 현실을 가리킨다. 반면 '대자적 對自的 계급 class for itself'은 계급의식을 갖고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적극적인 저항을 해내가는 것을 가리킨다. 노동자는 현실에 무심하고, 파편화되고, 수동적인 채로 역사의 피해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반면 자신들의 처지를 인식하고 동료들과 단합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투쟁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역사의 주체가 된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367

저자 닐 포크너는 특히 중세에 뿌리를 두고 상업자본주의(1450 ~1800), 산업자본주의(1800 ~ 1875) , 제국자본주의(1875 ~ 1935), 국가자본주의(1935 ~ 1975), 신자유주의자본주의(1975 ~ ) 등 다른 이름으로 꾸준히 이어온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변용(變容)에 대한 대응이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 혁명(革命)이라는 저자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도전(挑戰)과 혁명이라는 응전(應戰)'이라는 도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인류는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적 탐욕으로 끝없는 학살의 수렁으로 빠질 뻔했다. 이를 막은 것이 바로 혁명이었다. 처음엔 러시아, 그 다음엔 불가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로 혁명이 이어졌다. 패전한 동맹국에서만 혁명이 전염된 게 아니었다. 곧 영국, 프랑스, 이탈리에까지 퍼졌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496

저자는 본문에서 역사의 고비마다 실패한 혁명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68운동 이후 신자유주의가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요즘 저자는 '즉자적 계급'이 아닌 '대자적 계급'에 의한 궁극적 변화를 소망한다.

1차 대전 후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실업, 파시즘 그리고 전쟁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 조직과 리더십은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의 대가는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고 나서까지 치러야 헸다. 두 번의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유럽지역에서는 노동계급 운동이 붕괴되어 1917년 같은 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전쟁이 치러졌고 이후 나치가 최악의 폭력을 이끌었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598

<좌파 세계사>에서 저자 닐 포크너는 역사의 분기점마다 좌절된 혁명을 인간의 희망의 꺾여진 것으로 해석한다. 자본주의가 갖는 내재적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혁명을 번번히 좌절시켜왔다는 저자의 인식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의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분명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세계의 주된 흐름은 신고전학파주의 경제학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임이 분명하기에 자본주의가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거나 해결되었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항상 고도로 모순적이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역동성은 우리의 능력을 놀랍도록 향상시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을 공급해준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때문에 세계의 부가 소수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인류 대중을 지속적인 박탈에 시달리게 한다. 18세기에 제국과 식민지의 모습이 정반대였다는 사실은 이런 모순을 확실히 입증해준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282

저자의 설명대로 자본주의의 모순성이 동일 대상을 '노동자-소비자'라는 다른 측면에서 양립할 수 없는 면을 극단으로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고, 마르크스가 설명한 계급투쟁이 결국 투입된 노동의 산출 가치에 대한 배분 문제라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가의 탐욕이 '최소 노동으로 최대 임금'을 받으려는 노동자의 탐욕으로 대치된다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임금과 이윤을 합친 가치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임금은 생산과정에서 투입된 노동의 가치를 전부 반영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이 임금을 지급하고 사들이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특정한 수준의 기술로 얼마만큼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한 능력이다. 자본가는 임금에 지불된 가치 이상의 가치를 생산과정에서 얻기를 바란다. 이 가치의 차이가 바로 '잉여 가치' 즉 이윤이 된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360

문제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좌파의 세계사>를 읽으며 현대사회 문제에 대한 진정한 처방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제적 헤게모니 이관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부정한 시대정신(Zeitgeist)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마르크스는 헤겔을 비판하면서 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을 주장하지만 그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 주창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Proletarier aller Lander, vereinigt euch!"는 구호에서 보여지는 단결된 노동자의 행동은 결국 또 하나의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런지.

'관념적인 시대정신'대신 '유물론적인 시대정신'을 도입하기 전에, 궁극적으로 변화된 개인, 계급의 물리적 결합 이전 개인 윤리의 화학적 변화를 먼저 강조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정신사적인 혁명을 부정한다면, 결국 다수의 눈에 사회주의 혁명은 'Post Capitalism'을 표방한 '제2의 자본주의'에 불과해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관념적이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사고 변화에 맞춰져 있었다. 특히 헤겔은 역사를 '절대정신'의 전개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절대정신은, 절대정신에 부합하지 못하는 현실과 절대정신 사이의 모순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키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 같은 관념론적인 변증법을 유물론적인 변증법으로 바꿨다. 주요한 모순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를 추동하는 것은 실재하는 사회적 세력 간의 충돌(모순)이다. 사고의 역할은 이런 세력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실천적 개입이 더 나은 방향을 향하고,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_ 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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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6-06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ㅋ
전 누구보다도 마르크스 이론 대부분에 공감하지만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구축한다는 말엔 아주 조금만 동의합니다. 오히려 상부구조(시대정신, 관념론)가 하부구조(유물론)을 구축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3-06-06 21: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대의명분이 실은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고, 그 이면에 있는 실리가 실제적인 동인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통찰은 분명 뛰어난 것이지만,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상부구조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여겨집니다. 마르크스 사상 자체가 이미 상부구조의 구성물임을 생각해본다면 공산주의 사상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비판하는 다른 형태의 종교‘로 다른 의미에서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평안한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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