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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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의 내용은 방대하기에 요약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나, 내가 파악한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 책에서 언급하는 2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 : α = r × β
단, α :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r : 자본수익률 β : 자본/소득 비율

2.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 : β=s/g 단, s : 저축률 g : 성장률
저축률이 높고 성장률이 낮을 수록 자본/소득비율( β)은 높다

제2기본법칙으로부터 도출되는 사실은 '저축을 많이 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거대한 자본총량을 축적할 것이고, 이는 사회구조와 부의 분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상의 2가지 법칙으로부터 부의 불평등에 대해 정리한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국부'는 특정시점에 특정 국가 거주자들과 정부가 소유하고,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모든 것의 총시장가치다. 국부는 '민간부문의 부'와 '공공부문의 부'로 나뉜다. 여기에서 공공부문의 부는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의 부보다 매우 적기에, '민간부문의 부'가 차지하는 부가 '국부'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민간의 부'가 축적되는 방식은 크게 '자본'과 '노동'으로 축적되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근 경제학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인적자본'에 의한 부의 축적은 그 논의의 크기보다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노동'으로 축적되는 몫보다 α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일반적으로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노동'에 비해 거시경제적으로 더 중요하다.

'자본' 그 성격상 '자본축적'의 과정을 거쳐 점점 더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소유하는 것보다 '자본'을 소유하는 것이 보다 부유해질 수 있게 된다. 보다 유리한 자원인 '자본'은 세습되기 때문에, 상속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더 유리한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현대사회에서 국제공조를 통한 '글로벌 누진적 자본세'의 도입이 필요하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내용으로 논리가 전개되며, 각 내용을 실증하기 위해 선진국(주로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실증데이터를 통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책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통점은 생산요소 중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반면에, 차이가 있는 점은 시대적 배경 마르크스 당시 부재해던 '중산층' 개념이 '세습중산층'으로 나타나,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주체로서 '노동자' 대신 '세계각국' 정부를 들고 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21세기 자본>을 읽으면서, "경제학"이 "수학"으로 점철된 최신 경제사조 대신 최초 태생했던 "정치경제학"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피게티 주장에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고민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일부 경제현실을 설명하는 것에 무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β=s/g 법칙의 현실 적용문제다. 피게티 본인도 'β=s/g 법칙은 자산 가격이 평균적으로 소비자 물가와 같은 수준으로 변화할 경우에만 유효하다(p205)'고 말한다. 이 말은 금융외환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며, 물가 상승률이 2%도 안되는 상황에서 채권 등 자산 거품이 끼어있는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에게 '노력만 하면 다 살 수 있다'는 막연한 구호보다 '지금 사회가 잘 못되었다' 메세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마치,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를 통해 공산사회로 이행하지 않았듯이, 새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보다 평등한 복지사회로의 이행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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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5-18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언제부턴가 너무 읽고 싶었는데 ㅜㅜ 엄두가 안나서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역시 만만하진 않겠네요 ㅜㅜ ㅎㅎ

겨울호랑이 2016-05-19 17:24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시나몬님
겉보기엔 양이 많은데 대부분이 통계테이블이라 생각보다 양이 많진 않더라구요. 또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어보실 수 있을거에요^^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북프리쿠키 2016-05-20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나몬님 맘이 딱 제맘이네요 경제학전공자인데도 이거 뭐 엄두가ㅎㅎ반쯤 이해하려나 싶어욘ㅎ

겨울호랑이 2016-05-20 20:5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북프리쿠키님 저도리뷰를 남겼습니다만, 사실 저도 완전히는 모르겠어요 몇 회독을 더해야 온전히 이해할 것 같아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 인종.명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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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명종의 치세에서 두드러진 것은 이들 왕보다는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다.

조선의 측천 무후를 꿈꾸던 그녀의 시대가 인종과 명종의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인종은 불과 2년 남짓의 짧은 재위기간을 보냈고, 명종은 문정왕후 사후 역시 2년 정도 재위기간을 지냈기 때문에 왕의 뒤에서 실제 권력을 쥐었던 그녀의 존재가 더 커보인다.

문정왕후는 인사문제와 불교 부흥 정책을 펼쳐, 사대부들의 많은 비판을 받는 인물로 실록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가 유교 중심 국가임을 감안하면, 문정왕후의 불교 부흥 정책은 당대 사대부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문정왕후는 역사에 '악녀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그녀에 대한 '악녀'평가가 공정한 것인지, 아니면 기득권에 의해 왜곡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를 파악하는 것도 또다른 역사의 과제인 듯하다. 다만, 나는 조선 전기에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성 지도자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에서, 여러 공과를 말하기 전에, '문정왕후의 섭정' 의의를 찾고 싶다.

동시에, 이 시대에는 척신(戚臣), 훈구파들이 득세하게 된다.
문정왕후의 집안인 파평 윤씨가 중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세력을 꺾고 득세하게 되는데, 이러한 외척과 사림의 대결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 선조때부터는 다시 사림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며, 정조 이후 순조부터 고종 대원군 시기까지는 풍양 조씨, 안동 김씨 등이 정권을 잡는 세도정치시대가 된다.

조선 전기에는 새로운 나라를 정립하느라, 정권에 대한 내부투쟁양식이 주로 '왕권-신권'의 구도였다면, 조선의 체제 정립에 따라 '신권'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른 갈등이 새롭게 떠오른다. 이런 다양한 양상의 갈등구조는 조선 사회가 그만큼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조선=당파싸움'이라는 공식에 익숙해져서 '또 싸움이냐?' 라는 시선으로 조선시대를 바라보기보다, 각 갈등의 원인과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여러 사안별로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역사를 하나로 규정하기 보다, 역사 속의 다양하게 나타난 삶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 역사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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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6-05-18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동김씨의 정순왕후가 더 악명높지 않을까요?

겨울호랑이 2016-05-19 17: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신갈나무님
저도 정조 개혁을 뒤로 돌린 정순왕후가 더 많은 실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 중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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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은 연산군의 동생으로,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보위에 오르지 못했기에, 중종반정의 공신들에게 언제나 빚진 심정으로 살았고, 신하들의 눈치를 보았으리라. 자신의 힘으로 성취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힘을 빌린다면, 그 성공은 자신의 것이 아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1945년 일제 치하에서 해방에서 보게 된다. 일제 치하 해방은 우리 힘으로 이룬 광복이 아니기에, 우리는 남북분단, 한국전쟁, 휴전 후 대치의 비극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다.

중종 시기에는 훈구세력에 대한 사림의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되었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조광조다. 가정이지만, 공신들로 대표되는 훈구세력의 기득권을 철폐하는 그의 개혁이 잘 진행되었다면,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보다 잘 극복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왕의 신임을 받고 개혁을 추진했던 조광조도 힘센 공신들 사이에서 그의 개혁의도를 의심하는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의 개혁은 무위로 그치게 된다. 조광조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은 너무도 깨끗했다는 것이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주위의 존경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올곧은 행동은 점차 주위의 질시 대상이 되고 만다. 여기에 급진적인 개혁이 추진되면서, 기득권과의 갈등은 점차 첨예화되고 개혁 좌절이라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중종은 약한 기반위에 선 불안한 위치의 왕이었고, 자신과 함께할 인물로 조광조를 신임했다. 그러나, 조광조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들자, 조광조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고, 그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 조광조를 제거하게 된다. 약한 왕이라 생각되었는데, 약했기에 떄문에 오히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더 잔인해지는 것은 인간사 전반에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인 듯하다.

중종실록을 통해 개혁에는 적정한 속도가 필요하다는 것과,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만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자신의 힘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인해야 하며, 진정한 강함은 바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러한 자신감은 나와 타인을 모두 살리는 것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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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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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은 나에게 다소 생소한 문헌이었다.
부끄럽게도 13경(經) 중 하나라는 사실도 잘 몰랐다. 이처럼 내게 인지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논의하는 효(孝)는 나에게,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개념이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을 지배했던 "孝"라는 개념이 어떻게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 치밀하게 밝히고 있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국가를 지배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막연한 충(忠)보다, 더 개인에게 와닿는 효(孝)를 강조하였다.
단순히 강조하기만 하면, 외면당할 수 있어서, 일종의 캠페인(campaign)을 벌리게 되는데 그것이 '열녀문'이 전국에 세워지게 된 배경이며, '삼강행실도'가 조선 전국에 보급된 배경이라고 한다. 이렇듯 국가에 대한 "忠"의 축소된 사상으로, 가문에서의 "孝"라는 이념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효'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효경>에서 말하는 효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효'는 단순히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의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쌍방적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효경>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더 나가서 자신의 부모만이 아니라, 천자, 제후, 공경, 대부, 서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이들을 넓게 사랑하는 이념이 <효경>에서 말하는 효의 개념이다.
이러한 효는 결코 위에서 아래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효성스럽게 하여 주변을 감화시켜 나갈 때, 사회 전반으로 효가 퍼져 나가게 되고, 효의 진정한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효경>의 주요 내용이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효도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 부모-자녀간의 따뜻한 관계그리고, 따뜻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확대를 '효(孝)'라고 할 때, 가정의 달인 5월에 우리의 부모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자녀와우리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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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 연산군일기,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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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폭군으로 길이 남아 있는 연산군.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폐비 윤씨의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는 이름하에 여러차례의 사화를 일으킨 폭군이면서, 어린 시기에 아버지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살게된 왕. 공적으로는 무능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던 인물이라고 내려진다.

모든 책을 읽을 때는 목적이 있듯이, 이번에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항상 되물어 보는 것은 `이 사건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점을 일깨워주는가?` , `나는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계속 하면서, `소통`과 `민의(民意)`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싶었다. 역사를 어느 특정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교양서적으로 하기에 무리한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원본으로 볼 수 있는 소양이 내게는 없기 때문에, 만화를 통해 큰 줄기를 파악한다는 한계점도 있지만, 잔가지 대신 큰 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내가 주제를 잡아가기에는 더 좋은 것 같다.

연산군을 바라볼 때 어머니 죽음으로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의 지도자로서 이를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가 겪은 불행은 결코 일반적인 상황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개인적 불행에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위치 때문에, 그의 영향력 때문에 그의 무능력과 비이성적인 정치에 대해 비판하게 된다.

우리는 연산군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비극적인 상황을 겪은, 아니 어쩌면 더 힘든 시기를 보냈을 같은 왕조의 정조를 알고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었지만, 자신은 신변의 위협이나, 왕위계승에 대해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후대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이로 인해 어린 시절을 숨죽이며 10여년의 세월을 `역적의 자식`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 후기 성군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무릇 지도자는 자신의 처지가 불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운명을 가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 조선전반에 걸쳐서 백성이 가장 살기 좋은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산군 초기 10년간`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는 왜구,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 등이 없어서, 백성들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고 하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후반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 하에 암울한 시기를 보냈어도, 경제적으로는 `3低`로 한동안 흑자를 기록하여 호황기를 보냈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좋은 시절`이란 어느정도의 운(運)도 따라줘야하는 것 같다. 이런 외부적 요인인 운과 내부의 여러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경제성장`, `민주화` 일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자신들의 치세에 이루어졌다고 자신들만의 공으로 돌리는 요즘의 정치인들의 모습은 별로 좋게 보여지지 않는다.

연산군 일기를 통해서, 외로운 지도자의 길과 민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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