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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세트 - 전13권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요코야마 미쓰테루 그림,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의 원작 소설을 <철인 28호>, <요술공주 세리>로 유명한 작가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가 만화로 다시 그린 작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970년대 <대망(大望)>으로도 번역되어 일반에게 알려져 있다.
이 책을 접한 것은 아버지께서 구입하신 1970년대 초판본 <대망>을 통해서였다. 내가 책을 읽던 시점은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90년대 였다. 당시 고문서(古文書)와 같은 이 책을 읽을 때 어려운 점이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세로로 인쇄된 책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자주 바뀌는 인명(人名)이었다.
지금은 가로인쇄가 보편화되어 세로인쇄로 된 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70년대에는 세로형태의 책이 많았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아니오','아니오' 자세로 책을 읽다가, 위아래로 '예', '예'하는 형태로 책을 읽으려니 적응이 되지 않아 읽기 어려웠다. 아마도, 부정적인 가치관에서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전환시키는 것만큼 어려웠던 것같다.
여기에, 일본인들의 이름변화까지 끼어드니 정신이 없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일본인들은 이름을 자주 바꾼다. 어렸을 때 아명(兒名), 관례(冠禮) 등 일정 시기에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자기 기분이 내킬 때마다 이름, 심지어는 성(姓)도 바꾸는 일이 많다. 주인공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도 일생에 걸쳐 크게 다음과 같이 변한다. '다케치요 -> 마쓰다이라 모토노부 -> 마쓰다이라 모토야스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등장인물마다 최소 2~3번은 이름이 바뀌니, 그렇지 않아도 생소한 일본식이름에 혼란이 컸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 알라딘 이웃분이신 '붉은눈'님께서는 인물관계도를 그린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처럼 관계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달리 이와 같은 어려움은 크지 않다. 가로로 읽을 수 있고, 외모를 통해 이름이 바뀌어도 크게 혼란을 겪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소설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당대 생활상 등은 직관적(直觀的)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독자의 빠른 이해를 도와준다.
반면, 만화를 통해 작품을 접하게 될 경우 상상력이 제한되는 아쉬움은 피할 수 없다. 작가인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최대한 전투장면을 잘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만화로 표현되는 전투 장면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의 맛을 살리고 싶다면, 만화를 통해 전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한 후, 큰 테두리에서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이 그려진다. 책을 통해 느끼는 것보다 더 큰 느낌은 없기에, 여기서는 그의 생에 영향을 준 전투(戰鬪)를 살펴보고 글을 마치려 한다. 이에야스의 삶 자체가 '센고쿠시대(戰國時代)'와 함께 하기에, 그의 인생에 영향을 준 전투(戰鬪)를 3개를 주관적으로 선정해봤다. (이하 전투 내용 출처 : 위키피디아)
1. 오케하자마 전투(桶?間 おけはざまの? たたかい)
오케하자마 전투(일본어: 桶?間 おけはざまの? たたかい)는 에로쿠(永?) 3년 5월 19일(1560년 6월 12일)에 25,000이란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 국을 침공한 이마가와 요시모토을 오다 노부나가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야간 기습을 가해 요시모토를 죽이고 이마가와군을 패퇴시킨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역전극이라고 일컬어지던 유명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도카이 지방(東海地方)에 세력을 확대하던 이마가와 씨는 몰락하고 승리한 오다 씨는 이후 기나이(畿?) 제패를 향해 급성장하게 되어 센고쿠 시대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이쓰쿠시마 전투, 가와고에 성 전투와 더불어 일본 3대 야전(夜戰) 중 하나라고 불린다.

[그림1] 오케하자마 전투 격전지( 출처 : 위키피디아)
=> 오케하자마 전투를 통해 이마가와는 교토(京都)로의 상경(上京)이 저지되어, 당시 이마가와 휘하 무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옛 영지 미카와(三河), 돗토미(遠江), 스루가(駿河) 3개국을 확보하고 독립을 확보하게 된다. 그렇지만,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힘을 빌은 독립은 형식적인 독립에 그치고 만다.
2. 나가시노 전투((長篠の?い)
나가시노 전투(長篠の?い)은 덴쇼3년 5월 21일(1575년 6월 29일)미카와 나가시노 성(현재 아이치 현 신시로 시 나가시노)를 둘러싼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3만 8000명과 다케다 가쓰요리군 1만 5000명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결전지가 시타라가하라(設?ヶ原)및 아루미하라(有海原)(『藩翰譜』,『信長公記』)였기 때문에 나가시노 시타라가하라 전투라고 기록된 경우도 있다.
당시 최신 병기였던 철포를 3000자루를 준비하고 신(新)전법인 3단 발사를 실행한 오다군에게 당시 최강이라 불렸던 다케다 기마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섬멸되었다는 게 통설이지만, 여러 논점에서 이론(異論)이 존재한다.

[그림2] 나가시노 전투 (출처 : 위키피디아)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나가시노 전투'이전 '風林火山'으로 유명한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에게 '미카타가하라전투'에서 대패(大敗)하게 된다. '나가시노 전투'는 신겐의 아들 가쓰요리를 상대로 한 일종의 설욕전이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일본 천하는 급격하게 노부나가에게 기울어지게 되고, '도쿠가와-노부나가'간의 관계도 '형-동생'에서 '주군-신하'의 관계로 변하는 계기가 된다. 이 전투 이후 일본의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게 된다는 면에서도 중요한 전투라 생각된다.
3. 고마키·나가쿠테 전투(小牧?長久手の?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小牧?長久手の?い (こまき?ながくてのたたかい) 코마키·나가쿠테노타타카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 후반인 1584년 (덴쇼 1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하시바 히데요시) 진영과 오다 노부카쓰·도쿠가와 이에야스 진영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그림3] 일본 전국 시대 지도 ( 출처 : http://pre.bookcube.com/epub.php?book_num=150502575)
=> 사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는 일본 역사에 위의 2개 전투와는 달리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전투를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 다른 다이묘(大名)과는 다르게 도쿠가와를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 전투의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후대에 간토(關東)지방으로 이주하게 되고, 간토개간을 이유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참전하지 않을 수 있었고, 비축된 힘을 바탕으로 일본을 통일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실상 승패가 거의 결정되어 있었던 세키가하라전투( ?ヶ原の?い)보다 도쿠가와에게 의미가 있는 전투라 생각된다.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지지 못한 당대의 상세한 생활상 묘사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다만, 원작에 있는 인물간 대화(對話), 섬세한 심리묘사에서는 다소의 아쉬움이 있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작품의 문제가 아닌 장르의 문제라 생각된다.

[그림]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출처 : 인터넷
PS. <슬램덩크>로 유명한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작품 <배가본드>(주인공 : 미야모도 무사시)의 시작은 1600년 세키가하라전투가 끝난 장면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