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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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한민국史 01>는 한홍구 교수가 2003년에 쓴 한국현대사(韓國現代史) 관련한 역사교양서다. 대부분 현대사를 다룬 책들이 해방 이후의 시기를 시간적으로 기술하는 '편년체(編年體)'로 작성되었다면, <대한민국史>는 주제별로 서술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으로 작성된 차이가 있다. 시간적으로 서술된 역사책의 경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의 중요도 등을 독자(讀者)가 판단하기 어려운 반면, 사건 위주로 서술된 <대한민국史>는 현재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의 근원을 파들어가고 있어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1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민주혁명, 친일파문제, 수구와 보수의 차이, 주한 미군 문제, 징병제 등이다. 책이 쓰여진 2003년으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특히 다음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1. 승리의 짜릿한 감격은 없었다 : 민주혁명과 주권(主權)문제


 책이 쓰여진 2003년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완성(完成)된 혁명(革命)은 존재하지 않았다. 엄밀하게 본다면,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과 5월 조기 대선을 가져온 '촛불 혁명'도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제대로 시민혁명의 결실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생각된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제국주의적 근대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다음 시대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척결하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현실에서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p19)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반적으로 전근대(前近代)로 규정하는 조선시대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낫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저자 한홍구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해석한다.  '전시작전통제권(戰時作戰統制權)' 문제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적어도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대한민국의 국군보다 주체(主體)의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임시정부를 계승하였다고 자임하는 대한민국 역시 국군에 대한 작전지훠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똑같이 작전지휘권이 없다 해도 상황은 너무도 달랐다. 1950년 7월 이승만은 작전지휘권을 미국에 이양하면서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는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조직해야 했기에 수치를 느끼며 작전지휘권을 넘긴 임시정부와 달리, 이승만 정권의 작전지휘권의 이양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p45)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이하 전작권)'는 진보와 보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감한사안이다. 전시작전권을 '한미연합사'에서 가지고 있어야 보다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이른바 보수진영의 가장 큰 주장이다. 그렇지만, 전시작전권 환수는 진보주의자들이 아닌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시대의 전통을 가지기 위해 힘을 가져야한다는 논리가 오히려 '보수주의'에 맞는 것 같다. 최근 미국 국무장관 틸러슨의 발언처럼 "일본은 동맹, 한국은 파트너"인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이라는 적(適)만을 쳐다보고, 파트너인 미국에게 등을 내주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다. 이런 한국군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고대 그리스 보병 전술인 '팔랑크스(Phalanx)'가 연상된다.


[그림] 팔랑크스(출처 : http://rnsauswp.tistory.com/50) 


'팔랑크스'는 밀집된 대형으로 긴 창과 큰 방패로 구성원 서로를 보호하는 구조로 구성되기에 전방의 적에게는 강한 반면, 측방과 후방의 적으로부터는 매우 취약한 한계를 가진 전술이다. 주적(主適)(?)인 북한군외에는 매우 취약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는 한국군의 모습을 고대 그리스 전술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자신의 등뒤를 우방이라고 믿고 싶은 '미국'에게 맡기자는 보수주의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 또 다른 생존 방식, '편가르기' : 진정한 보수의 과제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지켜야 할 전통의 내용이 과연 어떤 것일까? 보수주의자들은 "뿌리 없는 것"에 대한 깊은 혐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보수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뿌리 없음이며, 전통적 보수주의와의 단절이다. 게나 고둥이나 다 보수주의자라고 목청을 돋우는 이 부박한 시대에 우리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장엄하게 사라져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p145)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전통은 아쉽게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없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일제 식민지 상황과 한국전쟁을 통해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보수의 모습은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구한말(舊韓末)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건창(李建昌). 그는 동학교도들이 난을 일으키자 짐승을 사냥하듯 이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한 보수주의자였다... 이건창은 도지사인 관찰사를 두 명이나 파직시킨 장골이었다... 동학농민군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을 난에 이르게까지 한 학정을 더 매섭게 비난한 사람이 이건창이다.'(p146)


'당대 명문의 후예인 보수주의자들이 신학문을 배우는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자금을 댔다. 그러고 나니 정작 자신들의 몸을 거둘 널빤지 관 하나 살 돈도 없어 가난한 동포들이 한푼두분 모아 마련해준 관에 몸을 누이고 고국으로 돌아와야했다.'(p150)


 역설적으로, 극우주의자들로부터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이들이 태생적으로 '보수파'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념의 문제라고만 하기에는 한국의 이른바 진보파는 그 뿌리부터 너무 보수적이다. 장준하는 극우민족단체 민족청년단 간부, 함석헌은 신의주반공의거의 배후이자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한 사상가, 문익환은 미군 통역장교, 계훈제는 우익반탁진영의 행동대장, 김수영은 의용군에 나갔다가 탈출하여 거제도에 수용된 뒤 남쪽을 택한 반공포로, 리영희는 국군 장교 등이었다.'(p151)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旣得權)'을 지키고 싶은 무리일 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과 타인을 공간으로 분리시키고, '빨갱이'로 매도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수정당'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설 땅이 일제 말기의 친일 행위로 인해 사라졌다면, 진보적 지식인들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와중에 철저히 이 땅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덕목인 도덕성, 일관성, 책임감, 지혜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당치 않은" 족속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적도 없고, 희생한 적도 없다.'(p152)


 그렇다면, 우리가 보수주의자라면 진정으로 지켜야 할 전통(傳統)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글을 통해 잠시 전통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요컨대, 우리 민족 문화의 전통은 부단한 창조활동 속에서 이어 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족 문화의 전통은 형상화된 물건에서 받는 것도 있지만, 한편 창조적 정신 그 자체에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 문화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것은 지나친 자기 학대(自己虐待)에서 나오는 편견(偏見)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 이기백, <민족 문화의 전통과 계승> 中 -


그렇게 본다면, 개인적으로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 중 하나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촛불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최근의 사건이지만, 민주화에 대한 뜻을 19세기말 동학혁명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면, 그 정신은 앞으로의 우리 노력에 따라 전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1] 눈 내리는 겨울 운동장



[사진2] 초봄의 운동장


[사진3] 꽃핀 봄날의 운동장


우리는 이미 겨울을 지내왔고[사진1] ,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사진3]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초봄에 와있다.[사진2]  그런 과정을 지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史> 01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더불어 진정한 보수의 가치에 대한 물음을 제시한 좋은 교양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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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7-04-28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는 잘 모르지만, 정당정치의 계보를 보면 민주당이 보수 정당이고 새누리당은 수구 정당이 맞는데
보수 진보 개념 자체가 잘못 쓰이고 있는듯 싶어요.

프레임정치는 그만들하고
보수진보 제대로된
정체성정치를 바래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8 14:16   좋아요 0 | URL
^^: 네 아무개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좀 더 세부적이고 실천적인 공약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제시해야 함에도 아직 우리 정치 현실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이번 대선에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2017-04-28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8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7-04-28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백범 김구 선생님을 우익,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좌익, 우남 이승만을 수구로 분류한 적이 있는데,

현실을 무시한 판단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367147

겨울호랑이 2017-04-28 15:36   좋아요 1 | URL
^^: 마립간님의 분류가 한홍구 교수의 관점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민족주의성향이 강한 분인데, 좌익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드네요.. 물론 당대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이 민족주의 성격이 강하긴 합니다만, <조선 상고사>에 나타난 모습은 우익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약산 김원봉 선생님은 확실하게 좌익쪽일 것 같아요..

마립간 2017-04-28 14:4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위의 판단은 대학 입학 직후에 했던 것인데, 당시에 ‘약산 김원봉‘을 포함해 북한 관련 인물 (그리고 죽산 조봉암 등)에 대해 무지했었습니다.

2017-04-28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8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1 0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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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홉스 지음, 진석용 옮김 / 나남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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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Liviathan>은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 ~ 1679)의 저서(著書)이며,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전쟁 The war of all against all'의 출처로 일반에게 유명한 책이다.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로 이름만 유명한 <리바이어던>은 1권과 2권으로 나뉘는데, 1권에서는 인간과 코먼웰스(commonwealth)에 대해, 2권에서는 기독교 코먼웰스와 어둠의 나라에 대해 언급한다.


'나는 통치자를 리바이어던(Liviathan)에 비유했는데, 이 용어는 <욥기> 마지막 2개 절[33~34]애서 가져온 것이다. 하느님은 "리바이어던"의 강대한 힘을 일컬어, 교만한 자들의 왕이라고 하였다.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p412)



[그림] 리바이어던 (출처 : http://starplace1.tistory.com/entry)


1. 리바이어던의 탄생


그렇다면, 리바이어던은 왜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 홉스는 이것을 인간이 미래를 걱정하는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은 '종교'가 생겨난 자연적 원인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특히 남달리 신중한 사람은 프로메테우스(신중한 사람)와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광막한 코카서스 언덕에 결박된 채 날마다 독수리 한 마리가 그의 간을 쪼아 먹는다. 밤이 되면 독수리에게 쪼인 만큼의 간이 다시 회복된다. 앞날을 멀리 내다보고 걱정하는 인간 역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죽음이나 빈곤이나 혹은 이런 저런 재앙의 공포 때문에 잠시라도 편할 날이 없다... 마치 어둠에 있는 것처럼 원인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한, 항상 인간을 따라 다니는 이 영원한 공포는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p150)


공포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인간의 평등성'이라는 문제가 추가된다.  홉스는 인간들 간에는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육체적, 정신적 능력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절대우위(絶對優位)의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상호 불신감은 더 커져간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에 빠지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영화 <배틀로얄 Battle Royal(2002)>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 한 학급 친구들끼리 죽고 죽이는 상황을 소재로 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의 비참함을 깊이 느끼게 된다. 



[사진] 영화 배틀로얄( 출처 : http://www.koreafilm.co.kr/movie/review/battle_royale_review.htm)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간혹 육체적 능력이 남보다 더 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양쪽을 모두 합하여 평가한다면,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p168)


'이와 같이 상호간에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예상되는 위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그것은 곧 폭력이나 계략을 써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배하여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일이다.(p170)...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다.'(p171)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수단을 생각하게 된다. 그 수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법(law)'이다. 홉스에 의하면 '법(法)'은  사회구성원간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한 공인된 규칙이다.


'인간이 그러한 가혹한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의 일부는 인간의 정념에서, 일부는 인간의 이성에서 생겨난다... 이성은 인간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적절할 평화의 규약(規約 article)들을 시사한다. "자연법"(Laws of Nature)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러한 규약들...'(p175)


'법은 공인된 규칙이기 때문에 그 효용은 인민의 자유의사에 따른 활동을 구속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충동적인 욕구나 성급함, 경솔함으로 인해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행동을 제한하는데 있다.'(p446)


그리고, 인간은 법을 통해 하나의 자연인 또는 사회적 인격에 그 힘을 집결시킬 때 가장 큰 힘을 획득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회적 합의에 의해 때 군중의 의사를 위임받은 괴물  '리바이어던'은 탄생하게 된다. 마치 상법(商法)에서 회사(會社)에 법인격(法人格)을 부여하는 것처럼 리바이어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 된다. (이런 면에서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리바이어던은 '재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힘(power)은 미래에 분명히 선(善)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수단이다.(p121)... 인간의 힘 중 가장 큰 것은 다수의 인간이 동의하여 단 한 사람의 자연인 또는 사회적 인격에 그 힘을 결집하는 경우이다.'(p122)


'군중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인격에 의해서 대표될 때, 만약 그것이 그 군중 개개인 전부의 동의에 의해 그겋게 된 경우, 하나의 인격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것은 대표자의 "단일성(unity)"이지, 대표자의 단일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을, 그것도 유일한 인격을 지니는 것은 대표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중의 "단일성"은 이해될 수 없다.'(p221)


 2. 홉스의 기본 전제와 로봇 공학 3원칙


홉스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전제와 더불어 다음의 2가지 원칙을 추가로 제시한다. '평화를 추구하라'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방어하라'는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성의 계율 혹은 일반적 원칙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은, 달성될 가망이 있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해도 좋다." 이 원칙의 앞부분은 자연법의 기본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평화를 추구하라"는 것이고, 뒷부분은 자연권의 요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방어하라"는 것이다.'(p177)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의  '로봇공학의 삼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연상시키는 홉스의 원칙 속에서 사회적 인격체 리바이어던은 탄생된다. 상식에서 괴물이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 ~ 1975)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원칙은 다음과 같다.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제2원칙 :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제3원칙 :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공포와 사회계약의 이행


홉스는 사회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유롭게 이루어진 계약과 마찬가지로 공포에 의해 이루어진 계약 역시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는 결격사유가 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보는 현대법의 사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말의 힘만으로는 인간이 스스로 맺은 신의(信義)계약을 이행하도록 만들 수 없다...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정념은 공포심 하나뿐이다.'(p193)


'코먼웰스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강도의 협박에 못 이겨 돈을 주기로 한 경우에는, 시민법이 그 강요된 채무를 면제해 주기 전까지는 그 돈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 자유의사에 의해 어떤 일을 하기로 계약한 것이 합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공포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로 계약한 것도 역시 합법적인 것이다. 계약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이상, 그 계약을 위반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다.'(p189)


 홉스의 기본전제는 부분적으로 오늘날 우리 헌법에도 반영되고 있다.  '인간의 평등성'(헌법 11조)과 '인간의 평화추구'(헌법 98조 평화통일), '개인의 방어권'(헌법 37조 자유와 권리 보장)' 등의 형태로 반영되는 홉스의 전제는 개별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와 같이 전투적인 어휘는 다분히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연상케 하며, 이러한 극단성으로부터 '리바이어던'이 도출된다고 생각된다. 


'이 자연법 속에 정의(正義 justice)의 원천이 있다. 신의계약이 성립되기 전에는 어떠한 권리도 양도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만인이 만물에 대하여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불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신의계약이 맺어지면 이것을 깨뜨리는 행위는 "불의(不義 injustice)란 간단히 말해서 "신의계약의 불이행"을 말한다. 불의가 아닌 것은 무엇이든 정당한 것이다.'(p194)


비록, 홉스의 사상이 이런 극단성으로부터 도출되었지만, <리바이어던>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만은 아니다. <리바이어던1>에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 추구, 학문 목적, 개인의 감정 등을 설명하고 있으며, 1권 전체 내용의 3분의 1정도의 양을 할애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의 <학문의 목적>,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 ~ 1677)의 <에티카>과 함께 내용을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외에도, 사회 계약 측면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리인 또는 대표자에게 위임된 권한이 무엇인지 모르고서 그와 신의 계약을 체결하는 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가 본인이 아닌 신의계약에 대하여는 의무를 지지 않으며, 따라서 위임한 권한에 반하여 혹은 그 범위를 넘어서서 체결한 신의계약에 대해서도 의무를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p218)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우리가 대표자에게 무엇을 위임하는 지도 모르고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홉스는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이 리뷰를 쓰는 시점은 2017년 5월 대선을 눈 앞에 둔 시점이다. 지금 시점에 홉스의 경고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시대를 넘어선 충고가 담겨있기에 <리바이어던>은 우리 시대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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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7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우리 사회는 사회 통합과 평화라는 명분으로 ‘공포심’을 조장합니다. 사드 기습 배치는 대선 흐름의 판도를 뒤집어서 보수 세력의 승리를 유도하려는 꼼수로 느껴졌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7 11:57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cyrus님 말씀처럼 ‘공포‘는 정권을 유지하는 보수로 가장한 수구세력의 오래된 통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끊임없이 ‘위기‘를 강조해서 비상경영을 상시경영체제로 유지하는 기업 운영 방식 역시 ‘공포통치‘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되네요...

2017-04-27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7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7-04-27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틀로얄.. 참 의미있게 봤습니다.. 사람들은 잔인하다.. 황당하다.. 엽기적이라면서 비판했지만 영화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을 읽지 못 했거나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겠지요,, 정작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배틀로얄 영화를 혐오했거든요.. 저는 배틀로얄 그 영화를 수 십번 넘게 반복해서 봤습니다..

우리 모두 거대한 전투장에 갇혀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적을 만들고 싸워 이겨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게임이 참여하게 된 것.... 그것의 부조리함.. 불편함을 영화를 통해 재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왜 우리는 독해져야 하고 폭력에 무뎌져야 했는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던져지죠.. 배틀로얄.. 굉장히 철학적인 영화입니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겨울호랑이 2017-04-27 17:28   좋아요 1 | URL
저는 만화책으로 먼저 읽은 후 영화를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만화가 더 참혹했고, 더 많은 메세지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섬 전체가 피범벅이 될만큼 많은 피로 덮힌 이 영화속에서 메세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영성님처럼 여러 차례 작품을 접한 후에야 피를 걷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듯 합니다^^:

. 2017-04-27 18:24   좋아요 1 | URL
아 만화책은 더욱 리얼하더군요.ㅎㅎ배틀로얄 만화, 영화를 모두 접한 분과 실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네요.ㅎㅎ 저도 작품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을 가리고 무조건적으로 외면하는 편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가..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많이 봤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ㅎㅎ 일본 애니 많이 봤죠..ㅎㅎ 보면 겉으로는 유치해보여도 철학적인 만화가 많지요.. 만화책을 많이 읽으시는 겨울호랑이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뭐든지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보다 내면의 깊음이 중요한 것이겠죠...ㅎㅎ

겨울호랑이 2017-04-27 18:27   좋아요 1 | URL
^^: 네 영화는 시간 관계상 많이 편집되어 흐름이 많이 끊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김영성님께서는 일본어를 잘 하시니 직접 원서로 읽으셨겠습니다. 일본어가 주는 미묘한 맛을 느끼셨을 것 같아 많이 부럽습니다.^^:

. 2017-04-27 20:33   좋아요 1 | URL
안타깝네요,, 시간 관계상 많은 내용을 영화화 할 수 없으니.. 그러한 면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만화를 통해 더 깊고 많은 내용을 접하신 분들이라면 그러한 면이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ㅎㅎ 배틀로얄을 미국드라마처럼 드라마화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ㅎㅎ

일본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원서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ㅎㅎ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나 고유명사.. 해석하기가 매우 힘들더군요... 일본어가 주는 미묘한 맛.. 예.. 한국어 해석과는 다른 느낌일겁니다.. 일본 작품은 확실히 일본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AgalmA 2017-04-2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위계를 만듭니다. 모든 생물종, 국가, 가족, 학교, 직장, 군대 어떠한 관계에서든... 지구조차도 우주의 중심으로 보지 않았습니까ㅎ
소위 선에 속하는 사랑은 법이 되지 못하고(포괄적 윤리) 공포를 법으로 두어 세상이 더 이 지경인지도요ㅎ 역사를 다시 되돌린다 해도 그렇겠지요. 힘의 파괴력, 죽음... 그것을 생과 삶의 대칭으로 뒀지만 사실 그 힘이 더 위력적인 건지도요. 기필코 뚫고야 마는 창이라고나 할까.

겨울호랑이 2017-04-29 22:57   좋아요 1 | URL
인간이 사랑보다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성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하네요. 좋은 것에서 나빠져도 중간은 가지만, 나쁜 것에서 더 나빠지면 생존할 수 없기에 ‘공포정치‘가 더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에도 몸은 굶주림을 두려워해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변화시켜 저장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다른 대응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AgalmA 2017-04-29 23:03   좋아요 1 | URL
네. ‘생존을 위한 본성‘ 동감입니다. 그게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나를 위한 본성‘으로 더욱 견고해진다는 게 문제적이겠죠. 축적된 이데올로기는 더욱 교묘히 방향키 역할을 할 것이고.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도 크지 않겠죠. 재밌어요. 생물의 삶이란. 훗.

겨울호랑이 2017-04-29 23:25   좋아요 1 | URL
^^: 마치 삶을 초월한 절대자 같이 관조하시네요 ㅋㅋ AgalmA님 즐거운 토요일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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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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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 1970)의 종교(宗敎)관련 에세이(essay)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는 종교에 대한 러셀의 생각이 담긴 여러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제목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주제와 연관된 글 두편을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자.


 [그림] 버트런트 러셀( 출처: http://bonlivre.tistory.com/474)


1.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The Existence of God


 우리는 러셀과 F.C코플스턴(Frederick Charles Copleston, 1907 ~ 1994) 예수회 신부간 이루어진 토론을 정리한 이 내용을 통해 기독교의 신 존재(存在)에 대한 한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코플스턴 신부는 많은 존재(存在)들이 존재 이유를 스스로 갖지(內在) 못하여, 존재 이유를 밖에서 찾게 되고 이러한 존재는 반드시 실재하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코플스턴 : 무엇보다도 나는, 세상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체 속에 지니지 못한 존재들이 적어도 일부는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둘째로, 세상은 실제의 혹은 상상의 총체이거나 개별 대상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데 그 어느 것도 오로지 자신의 존재 이유만 지닌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대상이나 사건들이 존재하는 이상, 어떤 경험의 대상도 자체속에 존재 이유를 가지지 못하는 이상, 그 이유는 대상들의 총체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유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반드시 실재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p247)


코플스턴 신부의 이런 존재이유의 외재성(外在性)에 대해 러셀은 '실체를 포함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석적 명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분석적 명제에서 '주어(主語)'가 실재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우리는 실재의 의미를 '술어(述語)'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셀의 기술 이론 (description theory)에서 지적한  '황금산 문제' 또는 '웨이틀리의 문제'가 여기서 다시 언급된다.


'러셀 : 신부님의 이론에 답하는 가장 적합한 출발점은 필연적 존재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연"이란 말은 명제에 붙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분석 명제 같은 것들 다시 말해 부정하면 자기 모순이 되는 그런 것에만 붙여야겠지요. 만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자기 모순이 되는 존재가 있다고 하면 나로서도 필연적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수 없겠지요. (p248)... 신부님이 지금까지 하신 얘기는, 제가 보기엔 우리를 존재론적 증명으로 되돌려 놓는 것 같습니다. "실재를 포함하는 존재가 있으며 따라서 그의 실재는 분석적이다."고 하는 증명 말입니다. 나로서는 그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실재의 의미가 무엇이냐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여기에 대해 나는, 이름 붙여진 주사(主辭: subject)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서술된 주사에 한해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상 그 실재가 술어(術語 : predicate)가 아닌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p251)


 기술이론의 내용을 신(하나님)의 실재 문제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하나님'을 하나의 주어(명사)로 놓았을 때 '세상의 원인'과 '실재'는 각각 이를 설명하는 술어(동사/형용사)에 해당하고, 이들 술부들은 각각 주어를 설명할 뿐이지 이들간 관계를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다.


'"세상의 원인은 실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분명 의미가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신부님이 "그렇다, 하나님은 세상의 원인이다."고 말한다면 그 경우 당신은 하나님을 고유 명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실재한다"는 것은 의미를 가지는 진술이 아닐 것이며,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 혹은 저것이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석 명제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p252)


 러셀의 이러한 내용에 대해 코플스턴 신부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토론은 이후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코플스턴 신부의 주장 속에는 기독교의 원인론과 목적론에 대한 주장이 담겨 있는데 러셀은 이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 첫 단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자세히 담겨 있다.


2.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담긴 신 존재에 대한 러셀의 물음


 러셀은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존재는 순수 이성에 의해 입각될 수 있다는 교리에 물음을 던진다. 코플스턴 신부와의 대담은 이러한 가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많은 분량을 기독교의 신 존재에 관한 주요 원인인 제1원인론, 자연 법칙론, 목적론, 신성을 위한 도덕론, 불의 치유론 등에 대해 물음을 제시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의 철학을 바탕으로 성립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 ~ 1274)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Schola 哲學)에 대한 러셀의 물음은 다음과 같다.


가. '제1원인론'에 대한 물음


 '아마도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론은 제1원인론일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가 보는 이 세상 만물에는 모두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사슬을 따라 점점 깊이 들어가다보면 최초의 원인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제일 마지막의 원인에 하나님이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 라는 보다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p22)


나. '자연 법칙론'에 대한 물음


'"그러나 자연 법칙은 사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기술하는 것으로서 사물의 실제 움직임을 기술하는데 지나지 않으므로 사물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자가 반드시 있다고 말할 순 없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는 순간 곧 다음의 의문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그러한 자연 법칙들만 만들고 다른 법칙들은 만들지 않았는가?" 만약에 하나님 자신의 기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뜻도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 법칙의 일관성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p25)


다. '목적론'에 대한 물음


'세상 만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꼭 맞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 상태에서 조금만 달라진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목적론이다... 다윈 이후로 우리는 생물이 각자의 주위 환경에 적합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 환경이 생물에 맞추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이 환경에 맞추어 변해왔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적응의 기본 원리이다. 거기에 목적의 증거 따위는 전혀 없다.'(p28)


라. '신성을 위한 도덕론'에 대한 물음


'칸트의 도덕론에는 온갖 종류의 형태가 있는데 그중 하나에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옳고 그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의 관심사는 옳고 그름에 차이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 그 차이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만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생기는 거라면  하나님 자신에게는 옳고 그름이 아무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에게는 선(善)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아무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p29)


마. '불의 치유론'에 대한 물음 


'하나님의 존재는 이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이 한편에는 너무도 큰 불의(不義)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기 위해서는 이 지구상 삶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내세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긴 안목에서 결국 정의가 존재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 문제를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확률에만 입각해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 세상이 우주 전체의 평균적 표본일 것이고 그러니 여기에 불의가 존재한다면 다른 곳들에도 역시 불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엄청난 불의를 본다. 그렇다고 한다면 정의가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p30)


3. 종교란 무엇인가와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제시한 러셀은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이고,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함이 파생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두려움, 큰 공포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현상을 통해 확인한다.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함이 나온다면, 종교의 기반을 두려움이라고 했을 때, 종교가 잔인함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 된다.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줄 큰형님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잔인함의 어버이다. 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p40)


 러셀은 이러한 종교의 문제에서 벗어나 결국 우리가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을 통해  훌륭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고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선한 구석, 악한 구석,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두려워하지는 말자.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 자유인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 죽어버린 과거만 돌아보고 있을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p41)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제기된 신 존재에 대한 러셀의 물음은 과학적이고 치밀하다. 러셀의 물음에 대해 대답이 명확하지 못한 이유는 '신 존재 증명'이 명사적인 의미의 신(神)을 지시하는 선에서 멈췄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기존 교단의 논리에 대해 철학적 비판을 가한 후 러셀은 다음과 같은 말로 사람이 지향해야할 삶을 제시한다.


"The good life is one inspired by love and guided by knowledge." - 러셀 -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제시된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훌륭한 삶을 지향하는 러셀의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제시한다. 종교가 가져온 폐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의 지향점을 찾자는 러셀의 철학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러셀의 논리를 우리는 비판없이 수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러셀은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종교의 모든 폐해가 서양의 전통이 아니라, 동양에서 흘러든 이른바 적폐(積弊)로 규정하는 러셀의 글 속에서 '기독교의 폐해'를 동양으로 넘기고 베이컨(Francis Bacon, 1561 ~1626)이래 서양에서 강조된 과학적 탐구자세를 강조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겨난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 많은 공과(功過)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중세(中世) 천 년을 지내면서 신(God)을 강조한 기독교는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 전통(傳統)의 주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에 대한 관념을 동양적인 사상으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 또한, 러셀이 말하는 훌륭한 삶에서 '사랑'이라는 개념 역시 세계 문명에 공통된 황금률(黃金律)에 기반했다는 사실과 함께 서양의 많은 '지식'이 '신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中世) 1,000년의 시간적 영향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가 지향하는 '훌륭한 삶'이 과연 서구의 과학적인 전통만의 산물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러한 러셀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선 러셀의 통찰과 그가 지적한 문제가 현재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유익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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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3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이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어려워 보이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4-23 17:50   좋아요 0 | URL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전체 15편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2개 장(1장과 13장)을 제외한 다른 13개 장의 내용은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1장과 13장의 2개 장은 ‘존재론‘, ‘인식론‘ 관련한 내용이라 정리가 필요할 거 같아 이번 리뷰를 썼어요..^^; 주제는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 다른 장을 통해서도 종교에 관한 러셀의 생각을 충분히 맛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AgalmA 2017-04-24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양 탓으로 돌려 버리다니 하이데거가 반유대주의로 빠지는 것처럼 황당하네요 ㄷㄷ

겨울호랑이 2017-04-24 16:35   좋아요 1 | URL
^^: 그러게요. 러셀 형님을 그리 안 봤는데, ‘저엉말~ 실망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