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는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해방이후의 현대사를 바라본 책이다. 개인적으로 뉴라이트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지만, 뉴라이트 사관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했다는 점에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역사관에서는 객관적 실증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유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을 역설하는 저자의 역사관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미시적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바라볼 때 대한민국의 건국주체가 이 땅에서 성장한 근대문명세력임을 밝히는 저자의 글 속에서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주체로서 중앙아시아, 북간도,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군과 중남미와 하와이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이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역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다. 때문에 이 책의 논조를 찬성하기 어렵지만, 앞에서 말한 바처럼 대중을 대상으로 뉴라이트 역사관이 무엇인가 잘 설명한 점은 인정할만하다.

위에서 말한 저자의 뉴라이트 역사관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는 다른 역사책과의 대조를 통해 다른 페이퍼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요컨대 자유 이념에서 바라 본 역사의 발전은 타협적이며 개량적이며 점진적이며 진화적이다. 지난 20세기의 세계사를 성찰하면서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어둡고 부정적이고 정체적으로 비쳐진 대한민국의 역사가 밝게 긍정적으로 달리 해석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그렇게 재해석된 우리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p39)

대한민국의 건국은 개항 이후 이 땅에서 성장한 근대문명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성리학의 전통사회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말하였다. 긴 역사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인간들의 삶의 원리에 있어서 일대 전환을 의미하였다. 그 대전환의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사회의 혁명적인 파괴나 재편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온건하고 점진적인 사회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낡은 사회구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그 속에 성장한 계층이 그대로 지배적 지위를 누려서 신생 국가에 걸 맞는 혁명적 기풍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바로 그 속에 장차 한국인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인 풍요를이끌어낼 문명의 잠재력이 듬뿍 담겨 있었다.(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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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2-05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란 개념은 미국식 반공주의에 국한되어 있다 봅니다. 이들은 항상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합니다. 그들이 해석한 자랑스러움이란 친일파를 앞세워 노동자 농민의 요구를 무시한 것과 유신독재의 역사입니다. 즉 북한이라는 제1의 적이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그런 전쟁의 위협속에서 버텨내 부국강병을 성취했다는 체제우월주의적 셩격이 강하죠.

그리고 이들은 역사라는 학문에서 말아야할 짓을 합니다. 북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며 그럴 것이다 라는 가정을 세우죠. 예를들면 몽양 여운형의 좌우합작이 공산화의 길이었다는 논리처럼요.

어떻게 보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상에 빠진거라 볼 수 있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5 14:02   좋아요 1 | URL
^^:) Nam Gi Kim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역사가 개인이 정치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목적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이용하는 것은 역사가의 사명에서 어긋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의 사관뿐 아니라 독자의 역사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Nam Gi Kim 님 미국은 잘 다녀오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NamGiKim 2019-02-05 14:06   좋아요 1 | URL
네 미국은 잘 갔다왔습니다. 미국 동부(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 워싱턴 DC), 캐나다(토론토), 서부(LA, 라스베가스, 센프란시스코, 그랜드 캐년)해서 총 1개월 간의 긴 여행이었죠.

참고로 12월엔 예상치 못한일로 그리스와 터키도 갔다왔습니다. 정말 많이 놀러갔다 왔네요.ㅎ 네 호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9-02-05 14:24   좋아요 1 | URL
좋은 시간이었겠군요. 저도 오래전에 2개월간 미국 배낭여행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레이 하운드와 암트랙을 타고 다녔었는데 ㅋ Nam Gi Kim님 남은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NamGiKim 2019-02-05 14:29   좋아요 1 | URL
전 메가버스 이용했죠.ㅎ

레삭매냐 2019-02-07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랑케 실증 사학의 맹신적인 후예들이
우리나라 사학계를 망쳐 놓은 게
(어떤 면에서 보면 식민사학의 영향
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추의 한
이라고 생각합니다.

뉴라이트 사관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메리 설날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9-02-07 13:44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또한 극단적인 민족주의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과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현대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Joony2 2023-07-31 0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오래된 글이지만 혹 답장을 받을까 싶어 댓글 답니다.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입문자인데요. 부담이 안 된다면,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인 현대사 책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서중석 교수님에 대해서 좌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이영훈 교수의 이 책을 사볼까 했더니, 역시나 망설여지네요. 워낙 논란이 많은 분이라..

겨울호랑이 2023-07-31 09: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재웅님 부족한 글을 읽고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처럼 역사에 역사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객관적인 역사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서중석 교수, 이영훈 교수 책을 모두 읽고 이재웅님께서 판단을 내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그 전에 어느정도 기준을 마련한다면 가볍게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를 읽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큰 무리없이 사실 관계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쓴 책이라 이 책으로 큰 틀을 잡으시고, 세부 내용에서 보다 깊게 들어가신다면 좋은 독서라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재웅님께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비전공자분이시라면 이렇게 보는 것도 좋겠지만, 만약 전공자분이시라면 학계분들의 추천을 받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볍게 참고만 하시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모아 좋은 독서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

young026 2023-09-29 21:31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어떨까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062700

겨울호랑이 2023-09-30 08:27   좋아요 0 | URL
제가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를 읽어보지 않아 책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책 소개를 보니 작가들이 생각하는 주요 지점에 대한 상반돤 관점을 안내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논점을 정리하신 후 통사를 통해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라 여겨집니다.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관점에서 역사를 보시려고 하는 노력을 응원합니다. 좋은 독서 되세요!
 

「신사와 선비」의 책 표지는 책 내용을 잘 표현한다. 당당한 표정을 짓는 옆 모습의 신사와 용맹한 기사 그 사이에 백과사전이 한 편에 있다면, 반대편에는 표정을 알 수 없는 선비의 뒷모습과 붓이 그려져 있다. 앞 모습의 서양문화와 뒷 모습의 선비. 이 표지는 저자의 역사관을 잘 드러낸다.

「신사와 선비」에서 저자의 입장은 명확하게 아래의 문장들로 요약된다. 중세 서양의 기사도 정신은 근대 신사도로 변화, 발전되어 현대선진유럽 문명의 정신근간을 만들어냈다. 반면, 우리 선비정신은 성리학에만 치중해서 합리성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근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동서양 문화 차이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타당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신사와 선비」에서는 기사도 정신의 기원을 난폭한 기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보급되었다고 말한다. 즉, 기사도 정신이 기사의 윤리로 외부에서 강제된 것이다. 외부에서 강제된 이 윤리는 결코 기사들의 정신을 대표하지 못함을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예루살렘에서 자행된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세를 통해 기사도 정신은 결코 기사들의 사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사도 정신에 의미가 부여된 것은 중세 이후 문학의 보급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그 과정에서 기사도 정신은 낭만적으로 미화되었다. 결국 기사도 정신은 실패한 사상이었다. 오히려, 기사도 정신의 실패로 기사로 대표되는 군사력과 과학, 자본(신사도), 종교가 결합하여 서구 문명의 진출이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표출되었다면, 기사도와 신사도는 계승관계가 아닌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반해 선비 사상은 조선 유교 사회의 지배 사상이었다. 성공적으로 사상이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에 조선은 반세기를 존속했고,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조선의 비극이었음을 놓고 본다면 문제는 선비사상이나 기사도의 내용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책의 내용이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상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사회가 수탈당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지적하는 편이 더 설득력있지 않았을까. 여기에 ‘우리가 근대화할 역량이 없었는가?‘ 하는 문제까지 던지자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니, 근대화와 관련된 한 문장만을 짚도록 하자.

이 나라는 사실상 선비공화국이라서 자발적 근대화가 불가능했다(p234)

「신사와 참배」에 나오는 위의 문장은 저자의 역사관을 잘 나타내는 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한 반론을 하자면 일이 너무 커지니 여기서 일단 논의를 멈추겠지만, 개인적으로 저자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밝히는 것으로 일단 미룬다. 다만, 「신사와 선비」는 이러한 단점에도 블구하고 역사의 단편적인 사실을 핵심적으로 잘 제시한하고 있으며 이는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신사와 선비」는 책의 장점이 단점을 덮을 정도는 못된다는 개인적인 의견과 함께 이번 리뷰를 마친다.





돌이켜보면 유럽인들은 중세 이후 수백 년동안 많은 역사적 경험을 축적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기사도와 신사도의 전통을 의식적으로 계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과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 근대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시민의식(Consciousness)이라 불리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내가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서구 시민사회는 여러 가지 역사적 경험을 겪으며 점차 ‘저항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현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부각된다. 21세기 서구의 시민권(citizenship)은 대략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p124)



 조선은 책으로 일어났으나, 책으로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지식의 독점이 깨지고 각계각층이 선비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오직 성리서만을 고집하는 구태의연함 때문에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안타깝지만 19세기 말의 우리 역사는 이렇게 평해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p205)

유헙의 최상층 지배자들(왕과 교회의 최상층 사제들)은 기사들의 난폭한 행위를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사회질서가 혼란에 빠지면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로마교황청이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황청은 기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하달했다... 교황청의 거듭된 요구는 점차 기사들의 행동강령으로 자리 잡았다...(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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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5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2-07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미쿡으로 선비 문화 견학하러
가신 어느 의원 나리의 행적이 문제가
되어서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민중들의 삶과 괴리된 성리학 질서를
신봉한 조선 선비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7 13:46   좋아요 1 | URL
바른 선비상을 세우고 본받아야하는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문제라 여겨지네요...

cyrus 2019-02-10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교, 선비만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하기에는 단조로워요. <신사와 선비>를 안 읽어서 판단하기가 이르지만, 중세 기사도 정신이 유럽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껄끄럽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문명의 중심은 늘 남성이었다는 점과 주변부의 여성이 문명 발달에 기여한 일을 은폐하기 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10 17:51   좋아요 0 | URL
cyrus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물론 과학에서 모형화가 단순화, 추상화의 과정을 거치는 작업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이 책에서 변수 설정이 잘 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를 남성과 여성을 기준으로 하는 관점에는 제가 익숙하지 않아 쉽게 말하기 어렵네요^^:)
 

 조선 후기에 씌여진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는 우리의 세시풍속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다만, 많은 풍속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고 있어 학계에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책에서는 당대의 풍속과 이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설날 조선의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 풍속에 설날 가묘(家廟)에 인사드리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고 한다. 남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세장(歲裝 : 설빔)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제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사돈지간의 부녀자들은 서로 곱게 단장한 어린 계집종을 보내 새해 안부를 묻는데, 이런 어린 종을 문안비(問安婢)라고 한다. 조선 영조 때의 참봉 이광려(李匡呂)의 시에 "어느 집 문안비가 문안하러 어느 집에 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p38) <동국세시기> 中


  저자 홍석모(洪錫謨, 1781 ~ 1857)가 묘사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모습에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이어져 오는 풍속이 담겨있어 전통(傳統) 명절인 설날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민간에서는 잘 아는 젊은이를 만나면 "과거 급제해라", "벼슬해라", "재물 얻어라" 따위의 말로 덕담을 하며 축하한다... 오행점(五行占)을 쳐서 새해의 신수를 점친다. 오행에 각기 점사(占辭)가 있는데, 나무에 장기알처럼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새겨 일시에 던지고, 바로 놓였는지 뒤집혔는지 보고서 점괘를 얻는다.(p43) <동국세시기> 中


 새해의 첫 날을 경사스러운 날로 보고 덕담을 건네고 점을 치는 모습은 우리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 ~ AD 17)의 <로마의 축제들 Fasti>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게르마니쿠스 공이시여, 야누스가 공에게 축복받은 한 해를 알리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나쁜 것은 말하지도 생각지도 마시오. 오늘은 좋은 날이니 좋은 말만 해야할 것이오. 

소송에 귀 기울이지 말고 사악한 말다툼일랑 당장 멀리하시오. 

오늘은 그대들의 일을 뒤로 미루시오(제1권 63 ~ 73)...

시작에는 전조가 들어 있는 법이라오. 

그대들은 맨 처음 듣는 말에 조심스럽게 귀를 세우고 

복점관(卜占官)은 맨 처음 눈에 띄는 새를 풀이하지요. 

이때는 신들의 귀도 신전처럼 열려 있어서, 어떤 혀도 

헛된 기도를 올리지 않고 말하여진 것은 무게가 나가는 법이라오."(제1권 1월 178 ~ 182) <로마의 축제들> 中


[사진] 떡국(출처 : 위키백과)


 맵쌀가루를 쪄서 큰 판자 위에 놓고 자루가 달린 절굿공이(떡메)로 수없이 찧고 길게 늘여서 기다란 다리 모양의 떡을 만드는데, 흰떡이라고 한다. 동전처럼 잘게 썰어서 육수에 넣고 끓인다. 쇠고기, 꿩고기, 고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는데, 떡국(餠湯)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니, 빠뜨릴 수 없는 세찬이다.(p38)<동국세시기> 中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설날의 모습 또한 확인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세뱃돈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전통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동국세시기> 역해자가 세뱃돈의 유래를 추측했듯, 저도 <로마의 축제들>안에서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퍼진 이유를 넘겨짚어 봅니다.


 세뱃돈에 대한 언급은 조선 말기의 <해동죽지 海東竹枝>를 제외한 여타 세시기 및 세시기속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도덕 관념상 친지에게 세배를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추측이지만, 문안비에게 주는 수고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p48) <동국세시기> 中


 지금은 돈이 제일이오. 재력이 관직도 가져다주고 

재력이 우정도 가져다주며 가난한 자는 어지서나 유린당하지요... 

옛날에는 구리를 선물했으나 지금은 금이 더 좋은 전조로 통하니까 

옛날 돈이 새 돈에게 져서 자리를 내둔 것이지요. (제1권 1월 217 ~ 223) <로마의 축제들> 中

 

설이 오기 전날인 2월 4일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入春)입니다. <로마의 축제일>에서도 음력 설날 즈음인 2월 9일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로 보고 있습니다.

 

 닷새 뒤에 샛별이 찬란한 빛과 함께 바닷물에서 떠오르면 

 그때는 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아직도 추위가 남아 있습니다. 

 떠나는 겨울은 큰 흔적을 남기는 법입니다.(제2권 2월 149 ~ 152) <로마의 축제들> 中


[사진] 입춘대길 건양다경(출처 : 서울신문)


 이제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 유명한 춘련(春聯)을 예전처럼 문에 붙이지는 않지만, <동국세시기>에 있는 춘첩자에는 좋은 내용의 글이 담겨 있어 이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대문과 방문의 신령이 불길한 것을 물리친다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며 집안은 넉넉하고 사람은 풍족하다

 비바람이 순조로워 계절이 온화하고 풍년이 든다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다

 모든 재앙 물러가고 온갖 복이 찾아온다

 입춘이니 대단히 길하고(入春大吉) 봄이 오니 경사가 많다

 요임금의 세월, 순임금의 세상

 임금 사랑하여 도가 태평하길 바라고 나라 걱정하여 농사가 풍년 들기 원한다

 부모는 천년 동안 장수하고 자손은 만대에 걸쳐 영화롭다

 천하는 태평한 봄날이요, 사방에 아무런 일도 없다

 나라에는 좋은 때 만나는 경사가 있고 집에는 먹고 살 걱정이 없다

 재앙은 봄눈 따라 녹고 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난다

 북당의 훤초는 푸르고 남극성은 밝다

 하늘은 봄날에 가깝고 인간 세상에는 오복이 온다

 닭이 울어 새해의 덕을 알리고 개가 짖어 작년의 재앙을 쫓는다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려 온갖 복이 온다

 봉황은 남산의 달을 보며 울고 기린은 북악의 바람을 맞으며 노닌다

 대문으로 춘하추동 복을 맞이하고 방문으로 동서남북 재물을 들인다

 여섯 마리의 자라가 절하며 남산같은 장수를 바치고 아홉 마리 용은 사해의 보배를 실어온다

 하늘은 세월을 더하고 사람은 수명을 더하며, 봄은 천지에 가득하고 복은 집에 가득하다(p61) <동국세시기> 中


 위의 글을 읽으니 올 한해 토정비결 괘가 위와 같다면 좋은 일만 가득한 한 해가 될 듯 합니다. (아마 힘들겠지요?) 입춘이 '작은 설날'로 들어온 올해, 이웃분들 모두 입춘을 통해 액운을 쫓고 설날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하며 이만 인사드립니다. 행복한 설 연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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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3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3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3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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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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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9-02-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떡국도 맛있게 드시고요~~^^

겨울호랑이 2019-02-05 08: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평형은 죽음과 같다. 거기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주의 평형은 클라우지우스의 열소멸, 즉 완전히 균일한 우주를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평형 상태에 관심이 있지만 그 외 세계에서의 평형 상태는 절대 종결을 의미한다. 모든 생명은 평형에서 벗어나 존재하고, 궁극적으로 태양에서 오는 끊임없는 에너지의 유입이 지구에 생명이 있게 한다.(p160) <모양> 中


 끊임없이 가용 에너지는 공급받는 계와 진짜 평형 상태가 아닌 어떤 불변의 정상 사태를 향해 변화해 가는 계에서, 열역학 법칙은 그 계의 최종 상태를 결정하기에 더 이상 충분치 않다. 다시 말하면 지속적인 에너지 다발(flux)이 평형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p156) <모양> 中


  필립 볼(Philip Ball)교수의 형태학 3부작 중 <모양>의 리뷰에서 우리는 평형을 이루는 힘을 설명한 엔트로피(entropie)법칙과 이에 대항하는 끊임없는 에너지의 유입(influx)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주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다룬 책은 없을까. 이러한 물음이 이번 페이퍼의 주제이며, 그 주된 답은 베르그손(Henri-Louis Bergson, 1859 ~ 1941)의 <창조적 진화 L'Evolution creatrice>로부터 찾을 수 있다.

 

 식물과 동물은 양분을 얻지 못하면 소멸한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기 자신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마치 큰 불길이 작은 불길을 그것의 양분을 소모함으로써 다 태워 버리고 소멸시키듯이, 소화의 근본적인 원인인 자연적인 열도 자신이 들어 있는 재료를 소모한다.(466b 29 ~ 32) <자연학 소론집> 中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oteles, BC 384 ~ BC 322)가 <자연학 소론집 Parva Naturalia>에서 동물과 식물을 비교, 대조하면서 수명의 길고 짧음 설명한 바 있다. 베르그손도 진화가 창조적 과정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동물과 식물로부터 출발해 '생명의 약동(elan vital))'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의 약동은 요컨대 창조의 요구로 이루어진다. 그 약동은 절대적인 방식으로 창조할 수는 없다... 생명의 약동은 거기서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는가?(p375)... 소화, 호흡, 순환계는 동물을 소제하고 수선하며 보호하고 가능한 외적상황에서 독립적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무엇보다도 동물이 운동으로 소비할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p376)... 그러면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섭취된 양분에서 생긴다. 왜냐하면 양분은 일종의 폭발물로서 이것은 스스로 축적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한 불똥만을 기다릴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식물이다.(p378) <창조적 진화> 中


 설명이 길어질 것 같으니, 버트런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의 도움으로 빠르게 정리해 보자. 그에 따르면 베르그손은 <창조적 진화>에서 동물들 가운데 새로운 분기점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본능과 지성이 분리된 것으로 파악한다, 또한, 시간을 생명이나 정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특징으로 설명하고, 그중에서도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 intuition으로, 이와 관련된 시간을 지속 duration이 라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 안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통합되고,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올바르게 인식한다는 것이 베르그손의 주장이다. 


 시간의 모든 순간들을 동일한 열에 놓고 본질적인 순간도 정점도 최고점도 인정하지 않는 과학에서 변화는 더 이상 본질의 감소가 아니고 지속도 영원성의 용해가 아니다. 시간은 흐름은 여기서 실재 자체가 되며 사람들이 연구하는 것은 흘러가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과학적 인식은 그것을 완성하는 또 다른 인식을 불러내야 할 것이다.(p504) <창조적 진화> 中


  베르그손이 말한 생명체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 이 개념을 이해할 때, 다음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본다. 즉, 생명체의 시간을 이루는 재료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재료가 되는데, 이들 재료는 서로 다른 양과 질을 가진다. 이처럼 재료가 반대되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는 필멸(必滅)의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적당히 버무리며  일단 '시간'을 마무리하고, 다시 생명의 약동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들은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며 항상 움직임의 상태에 있다. 주변의 것은 이것에 맞춰 작동하거나 이에 거슬러 작동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는 곳을 옮긴 것들은 본래 주어진 것보다 더 오래 살거나 더 짧게 살지만, 반대되는 것들을 가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에서도 영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료라는 것은 곧바로 반대되는 것을 가지기 때문이다.(465b 25 ~ 32) <자연학 소론집> 中


 베르그손의 설명에 따르면 고체화(固體化) 되기를 거부하는 생명의 움직임이 '생명의 약동'일 것이다. 그리고, <모양>에 따르면 생명의 약동이 직면하는 방해 중 하나가 생명 외부에서 작용하는 엔트로피 법칙이 아닐까 여겨진다. 만약,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 ~ 1947)의 우주론(宇宙論)을 담은 <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로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 전체는 그 본질적인 점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다음에는 그것을 유연하고 변형가능한 관(管)속에 풀어 놓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 관들의 끝에서 생명은 무한히 다양한 일들을 수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약동이 물질을 관통하면서 단번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약동은 유한하고 단 한 번 결정적으로 주어졌을 뿐이다. 약동이 나타내는 운동은 때로 빗나가고 때로 분열되며 항상 방해에 직면한다.(p379) <창조적 진화> 中

 

 진보의 기술은 변화의 한복판에서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며, 질서의 한복판에서 변화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생명은 산 채로 미이라가 되기를 거부한다. 질서의 어떤 단조로운 체계 내에 오랫동안 정체하게 되면 정체하게 될수록 생기 없는 사회의 붕괴 소리는 그만큼 더 커지게 마련이다.(p641) <과정과 실재> 中


 <과정과 실재>에서는 서로 다른 대립자(對立者)들의 진보와 변화를 통해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데, 이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모양>에서 말하는 '엔트로피-반(反)엔트로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거기에 자리잡은 의식에 대해 어떤 가치를, 어떤 절대적인 실재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시간이 끊임없이 스스로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창조는 이 체계가 일체를 이루고 있는 예측불가능한 것과 새로운 것의 구체적 전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속은 물질 자체의 사실이 아니라 물질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의 지속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두 운동은 서로 연대하고 있다.(p498)  <창조적 진화> 中


 우리가 우주론을 구성함에 있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쁨과 슬픔, 선과 악, 이접과 연접 - 일자 一者에 있어서의 다자 多者 the many in one -, 유동과 영속성, 이대성과 사소성, 자유와 필연, 신과 세계라는 궁극적인 대립자들이다. 이 목록에서 대립자들의 쌍은, 마지막 쌍을 제외하고는 직관의 어떤 궁극적인 직접성을 수반하는 경험 속에 있는 것들이다.(p645) <과정과 실재> 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모든 생명체는 창조(creation)활동인 진화(evolution)를 하는데, 이러한 창조활동은 가장 발달한 본능인 직관을 통해 '지속'이라는 시간안에서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반면, 생명체 외부에 적용되는 '엔트로피 법칙'은 이에 대해 대항력으로 작용하며 이들은 서로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우주적 평형은 이상의 힘들이 만들어낸 균형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PS. 베르그손이 말한 <창조적 진화>의 시간은 유한한 반면,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 ~ 1677)의 시간은 '영원한 상 아래서 sub specie aeternitati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영원(永遠)하다. <에티카 Ethica>에서 해당 내용을 옮기며 형태학 3부작을 다시 우려먹은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정신은 영원한 상 아래에서 인식하는 모든 것을 신체의 현재의 현실적 존재를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체의 본질을 영원한 상 아래에서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 인식한다.(p354) <에티카 - 제5부 정리 29->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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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2-04 1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테리 이글턴 <유물론>에서 읽은 관련 내용이 있어 참고하시라고 옮깁니다. 아직 리뷰로 정리할 시간은 없어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생기론적 유물론vitalist materialism의 전통에 속하며, 그 전통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에서 시작하여 스피노자, 셸링, 니체, 앙리 베르그송, 에른스트 블로흐, 질 들뢰즈, 기타 여러 사상가들로 이어진다. 당신이 이 전통에 설 경우에 얻는 혜택 하나는 이원론에 빠졌다는 나쁜 평판을 듣지 않으면서 정신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나 에너지 형태의 정신은 물질 자체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전통은 일종의 비합리주의라는 질책을 받아왔다. 생기론적 유물론이 보는 실재는 불안정하고 변덕스럽고 끊임없이 변신한다. 관절염 환자처럼 뻣뻣한 범주들에 따라 세계를 분할하는 경향이 있는 정신은 이 끊임없는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 하나의 능력으로서 의식은 자연의 복잡성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서툴고 거추장스럽다. 과거에는 정신이 물질의 관성을 추월하곤 했다면, 이제는 변화무쌍한 물질이 정신을 앞지른다.

일부 생기론 학파들은 물질을 관념화하고 에테르화하는etherealize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그 학파들은 물질에서 고통을 제거하고 물질의 고분고분하지 않은 육중함을 외면할 위험에 처한다. 이런 온화한 관점에서 본 물질은 더는 아픔의 원천—우리의 프로젝트에 흠집을 내고 목표를 좌절시키는 자—이 아니다. 오히려 물질은 정신의 훌륭함과 유연성을 모두 가진다. 이것은 기이하게도 비물질적인 유형의 유물론이다.˝

겨울호랑이 2019-02-04 13:24   좋아요 1 | URL
^^:) 좋은 글을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데카르트 이래의 ‘이분법‘에 대해 스피노자는 반대에 서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서양에서 비합리주의적이라고 비판되는 학파는 물질과 정신을 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양철학과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겨집니다.

AgalmA 2019-02-04 13:4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이 그들을 너무 호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도요^^; 테리 이글턴은 스피노자, 베르그송, 들뢰즈의 생기론을 저 위의 일부 생기론으로 해석해 그들이 너무 관념으로 빠졌다고 비판적으로 보고 있어요. 이 책에선 그들에게 호의1도 없습니다. ㅜㄱㅜ (내 들뢰즈에게 흑흑...) 그래서 이 책은 반철학자인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데려오죠. 신체적 유물론, 인간적 유물론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의 이 이론이 정식 개념화될지는 미지수지만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유물론자인 테리 이글턴다운 스탠스지요.

겨울호랑이 2019-02-04 13:43   좋아요 1 | URL
^^:) 아마 AgalmA님 말씀이 맞을 듯 합니다. 그렇지만, 개똥철학자인 제가 생각하기에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형이하학적인 물질에 대해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이념화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정한 유물론이 되기 위해서는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입장과 실천철학이 연계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앞에서 1차 대전의 원인 또는 발생 배경을 두 가지 관점 또는 수준에서 논의하였다. 1차 대전 발발 당시까지의 국제 관계 속에서 배태한 기본적 갈등 구조, 즉 영국과 독일의 대결구조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 그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발발의 도화선이 된 발칸 지역의 정치 상황과 그것을 통해 표출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갈등 구조의 검토였다.(p149)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1차세계대전의 기원>에서 저자 박상섭 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영국-독일의 갈등과 함께 각각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로 대표되는 '범(凡)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충돌에서 찾고 있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차 세계대전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 사건이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시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영국에 대한 독일의 도전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즉 그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언급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두 최강국의 대결에서 비롯되었고 또한 단순히 두 국가의 충돌로 그치지 않고 그 두 국가에 의해 지탱되던 권력 배분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p55)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1866),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1)을 통해 제국으로 도약한 독일은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새로운 유럽의 맹주로 영국을 위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영국이 위협적으로 생각한 것은 늘어난 독일의 철강 생산량도, 아프리카의 카메룬, 나미비아 등으로 진출한 독일식민지도 아니었다. 그보다 영국이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독일 해군(海軍)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군비경쟁(軍備競爭)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것은 바로 건함(建艦) 경쟁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해군과 관련한 두 강대국의 대립이 놓여 있었다.


 영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인 독일의 위협은 식민지 갈등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기본적으로는 영국이 그동안 3세기에 걸쳐,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는 거의 한 세기 가량 중단 없이 누려온 해상 패권에 대한 독일의 도전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p60)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1813 ~ 1907)으로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던 영국이었지만, 그들에게 중앙아시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국 유지를 위한 해양력(海洋力)이었기에, 영국은 러시아와도 기꺼이 손을 잡을 정도로 해군력은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결전이   독일과 덴마크에 걸쳐 있는 유틀란트(Jutland) 반도에서 벌어졌다.


[사진] 유틀란트 해전(출처 : 위키백과) 


 이른바 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 스카게라크 Skagerrakschlacht(독))은 해전사에서 최대의 해상 조우전이자 최후의 순수한 해상 조우전이 될 터였다. 두 나라 해군이 만들어낸 비참한 광경은  전투에 참여한 자들의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유틀란트 해전은 해전사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전투이며 학자들 간에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었다. 공식, 비공식 역사가들은 두 함대 사이의 교전을 거의 분 단위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분석했지만, 무슨 일이 왜 벌어졌는지, 실로 그 결과가 영국의 승리였는지 독일의 승리였는지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p388) <1차 세계대전사> 中


 치열한 전투였지만, 전투에 대한 평가가 모호한 것은 유틀란트 해전만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는 것 역시 이전 전쟁과는 달리 어려움이 있는데, 이는 이 전쟁이 국가 총력전(總力戰)의 성격을 가진 최조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총력전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1차 대전의 다른 기원인 '범슬라브주의-범게르만주의'가 발칸 반도에서 충돌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중왕국 체제 안에서 자치권을 누리던 헝가리의 영토 안에는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 같은 남슬라브계 소수민족과 루마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헝가리의 차별 정책은 대단히 가혹하여 인접한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와의 첨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민족국가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의 국내 정치는 바로 국제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p108)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총력전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철도(鐵道 railroad)'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유럽의 도시가 농촌을 정복하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KTX를 통해 지방중소도시 경제권을 붕괴시키고 있을 정도로 (빨대 효과) 철도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철도의 위력은 당시에는 현재보다 위력적이어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전투 인력의 공급(supply)을 담당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급된 인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을 처리한 것은 맥심 기관총(Maxim gun)으로 대표되는 현대 무기였다. 막대한 인력의 공급과 수요의 접점에서 쌓여가는 것은 전사자와 부상자였으며, 전선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참호전(塹壕戰  trench warfare)의 모습이었다.


[사진] 프랑스 협궤철도(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46917977523721498/)


 특히 독특한 것은 기차 기계인데, 이것은 선로와 차량을 결합해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독립체를 형한다. 그 기계는 사람들이 가득 찬 객차를 이끌고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도시와 마을을 통과해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이동시킨다. 여객 철도 시스템은 일상생활 외부에 국한되지 않고, 공업, 노역, 보안의 장소로부터 벗어나 있다. 철도  기계는 농촌을 일정한 속도로 통과하면서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일상의 사회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변형시킨다. 처음으로 기계가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 경험의 전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비록 북미보다는 유럽과 일본에서 훨씬 특징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농촌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철도는 자연, 시간, 공간의 기존 관계를 재구조화한다.(p179) <모빌리티> 中


 1830년대에 시작된 유럽 철도망의 건설은 도보와 말을 이용했을 때보다 부대의 이동과 보충을 어쩌면 열 배까지도 더 빠르게 함으로써 전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철도가 등장하기 이전의 병참은 언제나 무계획적이었다. 또한 동시에 융통성을 허용하기도 했다... 철도는 평시와 마찬가지로 전시에도 엄격한 운행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아니 평시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p44) <1차 세계대전사> 中


 기관총, 독가스, 철조망으로 대표되는 제1차 세계대전의 비참한 전투 현장에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전반을 관통하는 인간 이성(reason)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무너지게 되었고, 이러한 절망감 속에 전쟁에 대한 짙은 회의는 빠르게 번져나가게 된다. 이미 1917년 즈음에는 거의 모든 나라의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같은 해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급속하게 종결을 맞이 하게 된다. 

 

 이제 전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선이 교착되어 적군과 아군이 마구 뒤섞였고, 아군의 거점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병사들은 굶주림, 갈증, 추위, 눈과 비, 수면 부족, 배설물과 부패한 시체에서 풍귀는 악취 등 온갖 고통을 다 겪었다.(p283) <사생활의 역사 5> 中

 

 병사들은 어떻게 4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을까?... 마지막 가설은 모든 병사들이 민족주의 윤리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인데, 당시의 민족주의는 알사스와 로렌의 상실로 한층 더 격화되어 있었다. 진짜 '애국교'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겨났다. 민족주의는 우파와 좌파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였다. 오로지 극소수 좌파만이 이러한 가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1914년 국제 협력 체제의 완전한 붕괴는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로 설명된다.(p287) <사생활의 역사 5> 中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은 컸고, 전승국들은 승리에 대한 배당을 나누어야 했다. 영국의 경우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견제를 위해 중동 지역에는 독립에 대한 약속을, 유럽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해 인도에서의 자치 약속을 했지만 이들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민족자결주의(self-determination)는 패전국의 지배지에서만 적용되는 원칙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었다는 사실은 민족자결주의가 한국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1916년 초에는 아랍 비밀결사 지도자인 아지즈 알 미스리가 외교언어인 프랑스어로 쓴 서신을 키치너에게 보냈다. 그가 개진한 내용은 이랬다.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완전하고 참된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 한 아랍어권 중동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영국의 지배도, 보호령도 아니다(non pas une domination ou un protectorat)... 키치너와 그의 부하들이 아랍의 지지를 절박하게 원하면서도, 후세인이 원하는 대가는 지불하려 하지 않고 위조화폐만 남발하는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었다.(p281)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저(간디)는 이미 자치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자치는 무기의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폭력은 인도의 땅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영혼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P168)... 어떤 영국 성직자의 생각을 제가 다시 표현하자면, 자치 아래 무정부 상태가 질서 잡힌 식민 통치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 고상한 성직자가 생각하는 자치의 의미와 제가 생각하는 인도의 자치는 다릅니다. 우리는 배우고 가르쳐서 영국의 통치든, 인도의 통치든 폭정을 몰아내야 합니다.(P169) <힌두 스와라지> 中


 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간략하게나마 제1차 세계대전을 정리하는 페이퍼를 작성해본다. 계몽주의(啓蒙主義)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 The first World war). 이 전쟁이 큰 전쟁(大戰)으로 역사에 남지 않고, '제1치' 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가 이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국제 정세와 이를 알지 못한 1919년 우리 조상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2019년 3.1 10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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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30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2-01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사진을 보니, 그 사이 귀요미가 아주 많이 컸네요.
그 때보다 훨씬 예뻐진 것 같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설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9-02-02 00:34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처음 봤을 때보다 몇 배 커진 것 같아요. 다만, 머리 크기는 거의 변화가 없이 몸만 커져서 귀여운 맛은 사라지고 조금 예뻐진 것 같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설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알벨루치 2019-02-01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연의와 온 가족과 함께 멋진 시간들 연휴에 보내시고 재충전하시고 오소서 ^^

겨울호랑이 2019-02-02 00:34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雨香 2019-02-04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차 대전에 대해서 공부하듯 읽었습니다. ^^ (꾸벅)
역사를 그냥 파편화하여 접하다 보니 1차대전과 3.1운동이 비슷한 시대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아챘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4 20:12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1차 세계대전을 정리하다보니 세계사 흐름안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읽어야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