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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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라는 동물의 복잡한 성격 분석과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풍요롭게 하려는 그의 시도들은 니체 사유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후기 저작들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지구의 변환을 위한 그의 고귀한 '이상들'은 기괴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냉소적인 순진함만을 드러내고 있다... 핵심적인 측면에 있어 니체는 이상주의자이자 도덕주의자로 남게 되며 니체의 사유 역시 바로 그 한계 안에서만 우리를 인도할 수 있게 되었다. _ <How To Read 니체>, p182


 저자는 니체의 사유에서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디오니소스적 긍정, 영원회귀 (Ewige Wiederkunft)에 대해서는 긍정하면서도, 초인(Ubermensch), 도덕적 이상주의로의 회귀 등 후기 철학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이는 니체가 기존의 '선과 악'의 개념인 '좋음-나쁨' 대신 '강함-약함'으로 대치한 것처럼, 플라톤/기독교의 형이상학을 부정한 '부정의 형이상학'을 제시했다는 비판으로 읽힌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명제는 모순이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이 명제의 변화 지향점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긍정한다. 그렇지만, 디오니소스의 많은 내용을 차용한 기독교에 대해서는 날을 세운다. 각론에서는 찬성하지만, 총론에서는 반대하는 모습. 이것이 니체 비판의 한계가 아닐까? 이 한계 내에서 니체는 읽혀야 할 것이다. 니체가 그렇게 싫어했던 칸트가 '이성의 한계 내에서 종교'를 살피려 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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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은 비서관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는 동이 트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
출근길 시민들이 계엄군을 만나게 되면 자칫 흥분하고 그러다 유혈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둘째는 동트기 전에 계엄을 해제하되 흠이 잡히면 안 된다는것. 우리 절차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저쪽에서 무효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죠." - P10

2024년 12월3일 밤, 국회는 분명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였다. 폭거가 문턱까지 쳐들어왔지만, 끝내 정의를 지켜냈다.
비상계엄 발령부터 해제까지 6시간이 걸렸다. 유례없이 신속하고 빠른 대응이었다. "짧은 순간 가장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조오섭)" "긴박한 순간에 각자가 있어야 할 위치를 지켰다(이시현)" "빠듯했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목숨처럼 지키려고 했다(이관후)"
등 저마다 평가가 조금씩 달랐다.  - P15

윤석열은 이후 오전 0시32분부터 이진우에게 1~2분 간격으로 연달아 세차례 전화를 걸고, 오전 0시48분 조지호에게 전화를 했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이 이때 이진우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한 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하고, 조지호에게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원들을 포고령 위반으로 전부 체포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 P19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에는 뇌물죄를 적용한 적이 몇 차례 있지만, 최종적으로 김건희씨에 대한 뇌물죄적용 여부는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재판 단계에선 더 엄격한 증명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김건희씨와 윤석열, 두 사람이 모의했다는 게 인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입증해야만 김건희씨가 공동정범으로서 공범이 된다. 부부 공모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건 윤석열의 인지 여부다. - P24

핵잠수함은 더 강력한 핵억지력과 역내 군사적 영향력을 한국에 줄 것이다. 더 큰 역할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핵잠수함 보유국으로서 한국은 미국의 군사안보적 압력에서 어떻게 자율성을 확보할 것인가? 핵잠수함이라는 ‘선물‘이 미국주도 ‘전략적 유연성‘의 수단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외교적 안전망을 마련할 것인가? 핵잠수함 추진 승인은 이런 질문의 시작이다. - P28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인공지능을 사용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성형 AI 사용을 막을 수도 없고, 막는 게맞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막을 수 없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는 방법을 레퍼런스 삼아 학생들과 다시 합의해야 한다. 결국 생성형 AI 활용을 금지하기보다 가이드라인을 두고 투명하게 사용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P33

그렇기에 고운사 사찰림과 같은 자연복원이 가능한 숲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이런 자연을 우리는 지금 "돈이 되는 자연으로 만들자"는 구호로 다시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 산불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가 새로운 개발의 명분이 되는 순간, 이 축복은 되돌릴 수 없는 손실로 바뀐다. - P36

사람들이 말하는 ‘안락사‘란 무엇인가. 생애 말기에 병원(요양원 포함)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 통증 없이 죽고 싶다는 희망, 병원보다는 집에서 죽는 것이 더낫다는 믿음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 주목할 것은 환자가 생애 말기에 어디서든 (집이든 시설이든) 통증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의료시스템이다. 그리고 연명의료결정제도의 확충이다.  - P40

결국, 서양이 성공한 것은 유럽이 가진 지리적 이점과 서유럽인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지리적 이점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고, 특별한 문화역시 로마시대 교회가 우연히 결정한 가족제도 개혁에서 기원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 모두 우연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이제 동양은 지리적으로 불리하지만은 않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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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카이에 소바주 5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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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의 밑바닥에는 유동적 지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고차원에서 작동하는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포착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유동적 지성 속에 제멋대로 비대칭성 논리를 작동시켜, 세계를 분리된 것 그리고 비균질한 것으로 보려고 한다. 언어구조가 그런 시각을 뒷받침해준다. 이렇게 해서 신경증적인 문명의 기초가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대칭성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무의식이기도 한 이 유동적 지성의 작용을 다양한 실천을 통해 회복하려 하다 보면, 언젠가 '마음'을 인간이 회복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_ <대칭성 인류학>, p190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대칭성 인류학>의 얼개는 윗문단이 잘 요약한다. 신화의 세계 안에서 대칭적 구조에 의해 구성된 통합된 세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여라는 한 세계(문화). 이에 대항하는 문명의 세계에 의해 비대칭적 구조로 분열된 교환의 세계라는 또 다른 세계(문명). 이들 두 다른 세계의 간극에는 의식적인 언어구조와 구조를 만들고 지탱하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자리한다는 것이 카이에 소바주의 전반적인 세계관이다. 문명에서 문화로, 교환에서 증여로, 비대칭에서 대칭으로. 저자는 시리즈를 통해 유동적 지성을 통한 문명 전반의 되돌림을 강조하고, 이것이 그대로 마지막 권의 제목이 되었다.


 현대세계가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현생인류의 '징표'이자 현생인류의 '마음'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유동적 지성=무의식에서 직접 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성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시도 자체를 '대칭성인류학 anthropologie symetrique'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_ <대칭성 인류학>, p135


 <대칭성 인류학>에서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시도를 불교의 세계관과 연계시킨다.    

 국가라는 권력에 의한 문명의 분리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저자는 유일신교와는 달리 불교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독자들은 다원성의 종교인 불교를 통해 이제는 파괴되어 버린 신화의  세계를 복원하고 대칭성 구조를 세울 수 있다는 저자의 의도를 마지막 권에서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지성의 작용에는 '거대巨大지성'과 '미세微細지성'의 두 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유동적 지성은 이 중에서 미세지성을 나타내고, 언어와 일체가 되어 의식의 작용을 낳는 지성은 거대지성으로 분류되겠지요. 바꾸어 표현하면 대칭성에 의해 작동하고 고차원적인 구조를 한 무의식은 미세지성의 작용을 할 수 있지만, 비대칭성의 논리를 작동시키고 삼차원의 구조를 한 현실세계를 인식하는 의식은 거대지성이 되는 셈입니다. _ <대칭성 인류학>, p203


 1권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에서 신화의 세계를 소개한 저자는, 2권 <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을 통해 국가 권력으로 문화에서 문명으로의 폭력적 이행을 고발하고, 3권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에서는 '증여'가 '교환'으로 변화되며 일어난 상실을, 4권 <신의 발명 - 인류의 지와 종교의 기원>에서는 유일신교 교리가 가져온 단절을 풀이했다면, 마지막 5권 <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권력의 탄생을 경계했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와 비교하자면,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는 문화와 사회 구조의 근원적 변동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맞닿아 있다.


 이처럼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는 체계적으로 야생/신화의 세계 회복에 대해 대칭성이라는 구조를 통해 풀어가기에 공감하며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저자가 언어와 논리구조에 강한 현대인들을 의식해서인지, 신화의 세계 내에서 수학적 구조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아닌가 싶은 부분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마치 <신약성경>에서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구약의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이사야서>의 구절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랄까. 수학적 논리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도 충분히 현대사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통의 회복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나, 인류 역사 안에서 국가, 종교, 경제의 변화가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잘 보여주고,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 독서의 의의를 둔다...


 수의 세계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무한소와 같은 '이상수(理想數)'(이데알)가 없으면 모처럼 고안된 초실수는 순식간에 소실되어, 표준적 부분으로서의 실수만 남습니다. 그것은 마치 순수증여라는 개념이 사라져버리면 이제까지 사람들 사이에 증여로서 이루어졌던 관계가 순식간에 단순한 교환으로 변해버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_ <대칭성 인류학>, p283

신화적 사고는 과학적 사고와 완전히 똑같은 ‘이진연산‘을 사용하면서, 과학적 사고하고는 전혀 다른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독자적인 사상을 탄생시키려 해왔습니다. 그렇게 ‘대칭성의 논리‘가 작동함으로써, 교환은 증여로 뒤바뀌고, 언어에는 시가 탄생하고,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라는 사고가 생명을 되찾게 됩니다. - P20

무의식의 본질을 파헤쳐가다 보면, 아무래도 현생인류의 뇌조직에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와, 그로 인한 새로운 구조의 ‘마음‘의 발생을 연관지어 무의식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언어는 무의식계의 활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P76

현생인류의 ‘마음‘은 유동적 지성이 발생한 순간부터 우주에 탄생한 것입니다. 유동적 지성은 사람의 대뇌 속에 형성된 영역화된 지성을 횡단적으로 흐르게 하는, 새로운 작용을 하는 지성입니다. 영역의 횡단 또는 탈영역성을 특징으로 하는 유동적 지성은 그 본성상 ‘대칭성‘의 원리에 따른 작동을 합니다. 거기에는 자타의 구별이 없으며, 부분과 전체는 하나라는 직감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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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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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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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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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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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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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_ <이방인>,  P7


 엄마의 죽음과 아랍인의 죽음. '나(뫼르소)'는 두 죽음을 통해 사회와 연관된다.

 서로 다른 두 사건. 그렇지만, '사회'는 두 사건을 별개로 보지 않는다. 뫼르소와 연관된 하나의 사건. 하나의 죽음(엄마)에 대한 뫼르소의 태도는 또 다른 죽음(아랍인)에 대한 뫼르소에 대한 판결을 결정짓는다. 그런 면에서 두 사건은 별개이면서 동시에 긴밀하게 연결된 사건이다.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P74) ...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_ <이방인>,  P78


 엄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는 뫼르소의 태도는 사회가 그를 인식하는 기준이 된다.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반(反)사회적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뫼르소는 외부인, 이방인으로 규정된다. 사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이러한 인물들은 위험 인물로 낙인찍힌다. 곧 뫼르소는 반사회적 인물로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될 것이다...


 여기 물음을 던져본다. 이 판결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던 것이 그에게는 다른 방식의 사랑 표현일 수도 있었다. 눈물로 드러나지 않은 슬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상실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냉혈한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슬픔은 무의식의 심연 아래서 끓고 있을지도 모른다. 외부인이 볼 수 없는 내면과 언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을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가 그에게 가하는 다른 종류의 폭력이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엄마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살인 사건의 평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당한가? 어쩌면 그는 단순히 무관심한 인물이었고,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조금 특이한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이에 반해 살라마노 영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평소 자신의 개를 괴롭히다가 잃어버린 후에 슬픔을 표현한 노인에 대해 사회는 매우 관대하다. 끝이 좋으면, 아니 '보여지는 슬픔'이 있다면 다 좋은 것인가. 죽음의 순간에 애도의 모습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가 과연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이렇듯 사회는 우리에게 자신의 관점이 아닌 사회의 관점으로 연기하며 살아가길 요구한다. 카뮈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부조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_ <이방인>,  P137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남들이 뭐라 하든, 너 자신이 되어라.


 책을 읽으며 가수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계속 떠올린다.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고 살아가는 쿠엔틴 크리스프(Quentin Crisp)를 모델로 한 이 노래를 들으며, 나에게 주어진 '사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은 그에게 모순된 부조리의 종말이자 해방이라면, 그에게 내린 판결을 지켜본 사회는 부조리 안에서 사는 모순을 지속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뫼르소(개인)는 죽어서 진정한 (모순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얻은 반면, 사회는 모순의 굴레에서 서서히 진정한 자아를 죽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얻은 삶과 살아가면서 얻은 죽음. 사건 이후에 발생한 이것은 또다른 모순이다. 모순은 모순을 낳고, 이는 끊임없이 꼬여간다. 개인과 사회는 이처럼 여러 겹 꼬인 관계 속에서 중첩된 모순을 채 깨닫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불안정한 동거를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여운을 느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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