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비너스 b판고전 14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 지음, 이충훈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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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형성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볼까? 인간이 깃드는 최초의 장소를 어떤 방식으로 묘사해볼까? 어떻게 그 황홀한 공간이 어두운 감옥으로 변해, 형태도 갖추지 못하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태아가 그곳에 머무르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그토록 큰 쾌락을 만들어준 것이, 그토록 완전한 존재가 처음에는 그저 살과 피뿐이었을까? _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 <자연의 비너스>, p21


 생명의 근원과 종(種)의 다양성에 관한 모페르튀의 <자연의 비너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별다른 내용이 없는 책이다. 세포, 유전자, 단백질 등에 대한 개념없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과 경험만으로 생명에 대한 물음에 답한다는 것이 얼마나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기에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많지 않다. 


 태아의 나머지 부분은 나날이 다양한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한다. 태아가 결국 세상에 태어날 순간이 오면, 그것은 자기를 감쌌던 막을 찢고, 태반이 자궁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동물의 암컷은 태아와 태반을 이어주었던 혈관끈인 탯줄을 자기 입으로 끊어내면서 더는 불필요해진 관계를 끝낸다. 그리고는 산파가 탯줄을 동여맨 뒤 잘라낸다. 이상이 하비의 관찰이다. _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 <자연의 비너스>, p54


 이러한 내용상의 명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비너스>가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직 종교(宗敎)의 권위가 과학(科學)을 압도하던 시대에 신(神)이 정한 질서와 인간에게 주어진 의지(意志)의 관계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아직 발견되지 않는 미지의 부분에 대한 생각은 경험적 사실로부터 도출된 가설(hypothesis)을 보여준다. 현실을 설명하는 가설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여러 노력.  이같은 과정 속에서 권위는 무너졌고, 근대(Moern)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자연의 비너스>는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책의 의의를 찾게 된다...


 동물은 본능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에게 적합한 것은 구하고 자기에게 해로운 것은 피하게 되는데, 동물을 이루는 가장 작은 부분들도 이러한 본능을 갖는 것은 아닐까? 이 본능이 정액을 이루는 부분들 속에 흩어져 있고, 동물 전체보다 각 부분에서 강하기가 덜할지라도, 이들 부분이 필요로 하는 결합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죽고 난 뒤에도 이 부분은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그 부분으로 인해 동일한 종의 동물만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 부분과 결합하는 모든 부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면서 가능한 모든 종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_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 <자연의 비너스>,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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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궁리하는 과학 6
자크 모노 지음, 조현수 옮김 / 궁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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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구조 자체는 그 모습 그대로는 그 어디에도 미리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의 설계도는 그 구조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자체에 이미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가 그처럼 자율적이고 자발적으로, 즉 어떠한 외부의 개입이나 새로운 정보의 주입도 없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_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p128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은 생존 生存을 위한 생명체의 필연적인 선택과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들의 우연적인 결합과 생성 사이의 간극에 주목한다. 자기 보존과 종족 번식을 위한 생명체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가치와 윤리를 만들어 냈다면, 생명 활동이 단백질 결합이라는 과학적 지식, 이들 사이에서 무엇이 본질 本質이라 할 수 있을까.


 바로 세 개의 리간드 사이에서 이뤄지는 협조적이거나 길항적인 상호작용은 완전히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리간드 자신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전적으로 단백질과 각각의 리간드 사이에서만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_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p106


 <우연과 필연>에서 저자는 진정성이라는 영역에서 윤리와 지식, 우연과 필연이라는 상충되는 요소들의 만남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발견한다. 표적 단백질의 특정 부위와 결합하여 신호를 발생시키는 리간드 ligand 그리고 이와 결합하는 단백질. 생물학적 목적을 위한 결합은 오직 리간드-단백질의 결합을 허용할 뿐 리간드-리간드 간의 결합은 허용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별개의 결합에서 저자는 '윤리와 지식'이라는 리간드와 '생명체'라는 단백질을 발견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통해 우연과 필연이라는 과학과 사회의 공리를 조화시킨다. 


 객관성의 공리는 '옛날의 결속'에 내포된 허위성을 드러내며, 그럼으로써 지식의 판단과 가치의 판단 사이의 어떤 혼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두 가지 범주가 행동과 담론에서는 불가피하게 서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정성 authenticite이라는 개념이 윤리와 지식이 서로 만나는 공동 영역이 된다. 이 공동 영역에서 가치와 진리는, 서로 결부되면서도 결코 서로 뒤섞이는 일은 없으므로, 그들 사이의 상호공명 共鳴을 깨달을 수 있는 주의 깊은 사람에게 그들 각자의 완전한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_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p248


 가치와 진리라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생명체 내부에서 조합시키려는 저자의 노력은 칸트의 종합판단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칸트의 종합판단이 수학과 물리학적인 관념화된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면, 자크 모노의 종합은 생물학이라는 현실 과학에 기반한 '종합판단'이라는 점이 아닐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또다른 독서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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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제22대 총선 선방위 제재는 대부분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보도를 향했다. 역대 선방위는 여론조사 보도나 특정 후보자에 대해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편파적 보도를 중점으로 심의하고 감독해왔다.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달랐다. 사법농단 재판 1심 판결을 비판(MBC) 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CBS, 가톨릭평화방송)하는 등 선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보도에도 징계를 내렸다. - P10

"선거의 공정성은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방송 매체가 언론의 자유를 앞세워 선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선방위가 제도화됐다. 일부 방송 보도가 정치적으로 과열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방송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행정적 규제의 근거는 명확해야 하고,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 P11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민연금을 ‘구연금‘과 ‘신연금‘으로 나눠 구연금의 재정적자는 국고로 충당하고, 2006년생부터 적용할 신연금은 보험료 (15.5%)를 낸 만큼만 연금을 받는 방식으로 개편하자고 제안했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이 사실상 지지하는 안인데, 600조원에 이르는 구연금 재정적자를 메울 방안이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 신연금을 받는세대의 연금액이 매우 낮아질 위험이 있다. 연금개혁은 지지부진하고 거대 양당이 책임 있는 안을 내놓지도 않는 사이, 이 같은 ‘연금 해체론‘이 일각에서 각광을받고 있다. 시간이 없다. - P17

. PF 위기의근본적 해결 방법은 부동산 경기 회복이다. 금리인하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하는 올해 하반기로 늦춰질 것이라는 예측이 유력하다. 심지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더욱이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운이 진정되지 않으면 건설 원가 역시 내리기는커녕 폭등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연준의 금리인하 및 지정학적 위기(전쟁)가 해소되기까지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기고 PF 부실화는 계속 심화될것이다. 위기설은 달마다 새로 제기될 것이다.  - P23

파운드리 강화를 위해 인텔은 팹리스 분야와 파운드리 분야의 회계를 분리하는결정을 내렸다. 회사가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설계 부문과 생산 부문을 분리해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파운드리 부문이 높은 성과를 기록하기 위해선 인텔 내부 제품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외부위탁 생산도 적극적으로 수주해야 한다.
인텔의 파운드리 강화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타이완 TSMC에 밀려 파운드리 부문 만년 2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2위 자리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 P29

‘자위대와 미군은 독립된 지휘 계통에 따라 행동한다‘라는 말은 기시다 총리가 일본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 때마다 반복해서 한 얘기다. 그러나 70여년간 두 국가처럼 운영되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가 갑자기 통합사령부를받아들이게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미·일간 지휘체계의 일원화 역시 필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5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이미지는 11월대선이 다가올수록 그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고한 팔레스타인 난민 희생자가 급증하고,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됐는데도 바이든이 단호한 태도를 주저하자 실망한 친민주당 유권자들, 특히 아랍계 미국인들이지지를 철회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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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궁리하는 과학 4
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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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자연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자연은 생명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없는 것인 양 취급한다. 수백만 배로 번식하는 생명의 대부분은 곧 소멸하거나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된다. 바로 이것이 자연이 항상 새로운 생명형태들을 산출하는 숙달된 방법이다. 자연의 피조물들은 끝없는 투쟁 속에서 서로를 괴롭힘으로써 생존한다. 자연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가치는 찾아볼 수 없으며 특히 의미와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상 속에는 오로지 인과연결만 존재한다. _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 p226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생명은 소중하다고 개체는 말한다. 개별적인 존재에게 하나밖에 없는 생명은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계(界) 안에 수많은 생명들이 저마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유지되는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별 생명의 가치는 크게 낮아진다. 만약 생명의 의미가 있다면, 수많은 생명들의 유전형질의 변화가 생길 정도의 축적이 있을 경우다. 


 생명은 물질의 질서 있고 법칙적인 행동이며, 그 행동은 물질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하는 경향성에만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에도 부분적으로 기반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절대 0도 근처에서 분자적인 무질서가 제거될 때 모든 계가 향하는 순전히 기계적인 행동을 부분적으로 나타내는 거시적인 계인 것으로 보인다. _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 p117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가치의 문제를 철저하게 거르고 다소 건조하게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본질을 파헤쳐간다. 죽음에 이르는, 열 평형상태로 가는 물리학법칙을 거스르는 유기체의 반동(反動). 저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얻어진 경험이 유기체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재의 차이를 넘어선 구조적인 약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양자뛰어넘기'는 비교적 안정적인 한 배열에서 다른 배열로의 전이를 의미한다. 전이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 공급량(W)은 두 준위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처음 준위에서 문턱까지의 간격이다. 처음 상태와 마지막 상태 사이에 문턱이 없는 전이는 관심의 대상이 전혀 아니다. 그런 전이는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지 않으며 감지되지 않는다. _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 p92


  저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과학의 관점에서 생명과 자연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신과 물질>에서 객관과 주관이 분리되지 않음을, '관측한다'는 행위를 통해 세계에 미칠 수 있다는 양자역학의 원리에서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무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몇몇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개의 생명과 우리 삶의 가치는 우리의 생각보다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개체와 연결된 각기 다른 세계가 있고, 이들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정신과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은 동일하다. 이 사정은 모든 각각의 정신과 그것의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비록 그들 사이에서 불가해한 상호 참조가 풍부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세계는 내게 단 한 번 주어진다. 존재하는 세계가 주어지고, 또 지각되는 세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관과 객관은 단지 하나이다. 물리학이 이룩한 최근의 성과로 주관과 객관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말은 옳지 않다. 애초부터 그 장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_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 p208


 물리학자가 쓴 생명에 대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쓴 과학교양서다. 마치 메스를 든 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해부를 하듯 생명의 본질에 대해 서술하지만, 우리는 이 안에서 또다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발견하게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다면, 생명이란 가치있으면서 동시에 무가치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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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소멸 - 국민총행복을 위한 지역재생의 길
박진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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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인구의 감소는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구조에서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소멸하지 않는다. 그럼 누가 농촌의 주인이 될 것인가. 떠날 사람은 떠나고 농촌에서 자기 삶을 구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남거나 새로 들어와서 살아갈 것이다... 대도시 생활과는 다른 문화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도시의 삶이 나날이 각박해지는 현실을 보면 이러한 사람들은 늘어날 것이다. _ 박진도, <강요된 소멸>, p43

박진도의 <강요된 소멸>은 농촌 문제를 다룬 책이지만, 농촌(또는 지방)이 점차 죽어간다는 '지방소멸론'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지방소멸론에 따르면 도시로 인구가 몰리기 때문에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고 결국 아무도 시골에 살지 않게 된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농촌은 도시를 보조하기 위한 주변부로서 살려야 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거부한다. 도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농촌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인구소멸 운운하는 사람들은 노동력이 감소해 경제성장이 둔화할 것을 과도하게 염려하는 성장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에 대한 부양 부담이 복지 비용 증가로 이어져 성장에 저해가 될 것을 염려한다.... 인구감소를 경제성장의 관점이 아니라,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인구가 줄면 사람의 가치가 귀해진다. 먹고살기위한 치열한 경쟁도 약해질 것이다. _ 박진도, <강요된 소멸>, p86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로 농촌의 생활 서비스 수준은 낮아지고,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농촌으로 혐오시설 이전, 쓰레기 문제 등은 악순환이 되어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주민자치, 충실한 사회서비스, 농업공익기여지불과 농산어촌 주민수당 등의 정책제안이 본문을 통해 제시된다. 농촌을 살리기 위한 세부 정책까지는 아니더라도, GDP와 생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농촌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 자체로 작은 성과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동안 우리 농정을 지배해 온 기본 이념은 '생산주의 농정'이다. 생산주의 농정의 원조는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대표되는 증산농정이다. 녹색혁명은 농약과 비료, 종자, 에너지 등 외부 투입재를 많이 사용하여, 단위면적당 또는 일인당 농업생산성으로 높여 농산물의 생산비를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p193)... 생산주의 농정에서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무시하고 오로지 값싼 농산물의 공급만을 강요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우리 농민과 농촌 주민의 삶은 악화되고, 국민은 불행하다. _ 박진도, <강요된 소멸>,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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