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0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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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대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는 자뵨=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 시스템이 존재한다. 먼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방치되면 반드시 경제적 격차와 계급대립으로 귀결된다. 그에 대해 네이션은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자본제경제가 초래하는 모순들의 해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세와 재분배나 규칙들을 통해 그 과제를 해결한다. 자본도 네이션도 국가도 서로 다른 것이고, 각기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접합되어 있다. 그것들은 어느 하나를 결여해도 성립하지 않는 보로메오의 매듭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1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1941 ~)의 <세계사의 구조 世界史の構造>는 '자본(capital)', '네이션(nation)', '국가(state)'의 긴밀한 연계로 얽혀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의 기원과 문제점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대안에 대한 논지가 담겨있다. 고진이 본문에서 '보로메오의 매듭'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고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주장에 주목한다. 고진은 헤겔의 <법철학>에 나타난 사회 구조를 파악하려는 관점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드러난 역사를 정신적인 것이 아닌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을 통해 시스템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우리는 1990년 이후의 상황 하에서 칸트, 헤겔, 마르크스라는 고전철학이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재검토하는 것은 액추얼한 문제이다. 이 경우 우리는 칸트는 헤겔에 의해 극복되고, 헤겔은 마르크스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통념을 배척해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칸트를 각지의 자본과 국가에의 대항운동이나 코뮌이 나누어지고 대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시 읽어야 한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427


 그렇지만,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철학자들의 논지를 그대로 빌려오지 않는다. 헤겔의 논지는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하는데는 유용하지만, 이들의 관계성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비판되며, '생산양식'에 주목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기에 부족함이 있어 고진에 의해 '교환양식'으로 바꾸어 해석된다. 이처럼 <세계사의 구조>에서 고진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논지를 '가로지르기(trans- )'를 통해 현재 문제를 해석하는데, 최종적으로 이러한 논의의 종점은 '초월적인' 칸트의 '세계 공화국'에 이른다.


 헤겔이 <법철학 강의>에서 파악하려고 한 것은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매듭이다.  이 보로메오의 매듭은 일면적인 접근(approach)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헤겔이 변증법적 기술을 취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헤겔에게 있어서는 이런 매듭이 근본적으로 네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한 상상력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망각되고 있다. 즉 네이션이 상상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망각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매듭이 지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23


 칸트는 홉스와 마찬가지 전제에서 생각하고 있다. 홉스는 주권국가(리바이어던)에 의해 평화가 실현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평화는 국가 내부만의 것으로 국가 간에는 없었다. 한편 칸트는 국가 간의 평화상태를 창설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 상태가 세계공화국이다... '세계공화국'이란 국가들이 지양된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차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있는 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영원평화는 일국만이 아닌 다수의 나라에서 '교환적 적의'가 실현됨으로써만 실현된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35


  <세계사의 구조>에서 우리는 다양한 보로메오의 매듭을 만나게 된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현재 자본주의 구조와 이들을 나타내는 '감성-상상력-오성(지성)' 그리고 이들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마르크스-헤겔-칸트'의 주장까지. 그렇지만, 이들 보르메오의 매듭은 서로 정합(整合)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환양식 A에서 교환양식 B로 옮겨갈 때, 유목상태에서 정주상태로의 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국가가 태어나듯, 이들은 다르지만 동시에 공통된 부분을 갖고 있다. 다르지만 같은, 조금씩 어긋난 구조 속에 생겨난 틈 사이에서 생겨난 균열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잘라냈을 때, 고르디우스 매듭을 풀어낸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E 356 ~ BCE 323) 처럼 문제를 풀어내고 '세계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교환양식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전작 <트랜스크리틱>이 칸트, 마르크스, 헤겔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라면, <세계사의 구조>는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보다 많은 역사와 정치철학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이 책은 <트랜스크리틱>을 통해 얻은 '비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다 깊게 하는 계기를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네이션-국가는 네이션과 국가라는 이질적인 것의 결합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립하기 전에 실은 자본=국가, 즉 자본과 국가의 결합이 선행하고 있다. 이것이 절대왕권이다. 네이션이 나타나는 것은 그 후, 즉 절대왕권이 시민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후이다. 간단히 말해, 네이션이란 사회구성체 중에서 자뵨=국가의 지배 하에서 해체되어 가던 공동체 내지 교환양식A를 상상적으로 회복하는 형태로 등장한다. 네이션은 자본=국가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본=국가가 가져오는 사태에 항의하고 대항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자본=국가의 결락을 보충해서 매우는 것으로서 출현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04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처럼 상품교환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했다. 그곳에서 성립한 것은 일반적인 등가물(화폐)에 의한 교환이다. 국가는 이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는 국가와 법이 없으면, 상품교환이 성립하지 않는다. 즉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는 화폐가 가진 힘을 불러오지는 못한다. 화폐는 국가에 의해 주조되지만, 그것이 통용되는 것은 국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다. 상품(소유자)들의 세계 속에서 형성된 힘에 의한 것이다. 국가나 제국(광역국가)이 하는 일은 화폐의 금속량을 보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화폐의 힘은 제국의 범위를 넘어서기에 이른다. - P47

미니세계시스템은 교환양식A에 의해, 세계=제국은 교환양식 B에 의해, 세계=경제(근대세계시스템)은 교환양식C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이것을 안다면 그것들을 넘어서는 세계시스템X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A의 고차원적인 회복에 의해 형성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은 군사적인 힘이나 화폐의 힘이 아니라 증여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칸트가 ‘세계공화국‘이라고 부른 것은 그와 같은 세계시스템의 이념이다. - P66

화폐경제는 개인을 공동체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제국=코스모폴리스의 인민으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급진적 평등주의‘는 공동체에 존재했던 평등주의, 바꿔 말해 호수적 경제와 윤리를 파괴해버린다. 즉 그것은 빈부의 격차를 가져온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보편종교가 등장하는 전제이다. 요컨대 보편종교는 제국형성 과정에서 교환양식 B의 지배하에 교환양식 A를 교환양식C를 통해 해체해갈 때, 이에 대항하는 교환양식D로서 출현한 것이다. - P207

네이션이란 상품교환의 경제에 의해 해체되어가는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에 다름 아니다. 네이션은 말하자면 자본=국가에 결여된 ‘감정‘을 거기에 불어넣는 것이다. 헤겔은 <법철학 강의>에서 홉스적인 국가를 ‘오성적 국가‘라고 불렀다. 그것은 거기에 ‘감정‘이, 따라서 ‘네이션‘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이 생각하기에 자본=네이션=스테이트야말로 진정한 ‘이성적 국가‘인 것이다. - P312

우리는 호수적 원리의 고차원적인 회복을 소비=생산협동조합에서 보아왔다. 이제는 그것을 국가 간의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 국가연방을 새로운 세계 시스템으로 형성하는 원리는 증여의 호수성이다. 증여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강한 ‘힘‘으로서 작동한다. 보편적인 ‘법의 지배‘는 폭력이 아니라 증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세계공화국‘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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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7-25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게 훌륭한 책인 듯 합니다 ^^
전 이 책 읽고 거진 보름 동안 충격에 잠 못 이룬 것 같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3-07-25 23:10   좋아요 1 | URL
아, 북다이제스터님께 <세계사의 구조>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느껴집니다.저도 철학-역사를 넘나들면서 의미를 해석하고 자신의 관점과 향후 전망을 제시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글이 정연하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조금 더 공부해야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다른 전집으로 보완해보려 합니다 ^^:)
 

당시 위기의 원인이 외부와 내부 모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부분적으로는 내부적으로 일어난 문제들, 특히 간언의 실천을 포함한 올바른 정치적 규범과 고대의 이상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탓했다.

국가 세입의 상당한 증가가 꼭 중앙정부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지는 않았다. 상업세와 이금은 1860년대 이후 본질적으로 지방 재정이 되었고, 이는 정치적 탈중앙화와 함께 이루어진 지속적인 재정적 탈중앙화 과정의 일부였다.

청 부흥의 가장 큰 제약은 국방 공업, 철도 건설 같은 다른 현대화 계획을 위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는 능력의 부재였다. 민간 영역은 투자하기를 주저했고, 정부는 세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중국의 정부 세입 부족은 청 정부가 폭넓은 공업화의 달성과 경제 현대화를 진전하는 데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중국 경제의 측면에서 1895년 이후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활동의 폭발과 극적 성장 국면의 시기였다. 일본에 그리고 최혜국 조항으로 다른 모든 외국인에게도 공장을 설립할 권리를 인정했던 1895년 조약의 조항들이 뚜렷한 영향을 미쳐 공업과 광업 사업에 대한 해외투자의 빠른 팽창으로 이어졌고, 마찬가지로 중요한 결과로 그들과 경쟁하는 중국 민간 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패배한 전쟁들은 두 가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중국에 위험이 닥쳤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요구와 제안이 더 긴급하고 급진적이 되었다. 중국에 민족주의가 나타나서 강력한 정치적 요소가 된 것이 이 시기였다. 둘째, 전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심각한 좌절로 통치 엘리트들은 자강운동이 실패했으며 중국은 그 운동을 재설정하고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청의 경제·사회·재정 정책의 핵심 문제는 정치적 중심이 권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을 주저하는 것이었다. 인구 증가, 1인당 세입의 정체와 감소, 세계적 경쟁이라는 상황에서 중국은 제도적 고갈로 무력해졌다. 제도 변화와 혁신의 부재는 새로운 행정적 계획을 실행하거나 전국적 비상 상황을 다루고자 자원을 동원하는 정치 중심의 능력을 제약했다.

근본적으로, 중국은 국가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작고, 너무 저비용으로, 너무 약한 채 있었기 때문에 잘못 통치되었다. 중국의 재정적·행정적 쇠퇴는 도광 불황 때 시작되어 19세기 내내 악화되었다. 18세기 중반의 전성기와 비교해 볼 때, 청은 훨씬 더 지불 능력이 없었으며, 부패하고, 비효율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혁이 제국을 지배하던 정치적·경제적 지도 집단들의 지위, 소득, 미래의 전망 등을 위협할 때마다 결합력을 제공했던 같은 회복력이 제도적 개혁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단기적으로 회복력은 위기 동안 청 제국의 영토를 온전히 보존시켰다. 그러나 필요한 변화를 지연시킨 것은 격동의 20세기의 급진화와 갈등에 더해진 장기적 비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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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요인은 OTT의 영향력 확대와 티켓 값 상승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OTT를 통한 시청각 경험이 극장을 대체했고 영상을 소비하는 패턴 자체가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 P12

"글로벌 플랫폼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나 새로운 인재의 등장이 경색되고 위축된 시기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 같다. 토종 OTT도 사정이 어렵고 잘되는OTT도 제한적이라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기회가 역설적으로 줄고 있는 셈이다." - P13

티켓 가격의 가파른 상승도 이런 요인을 부추겼다. 팬데믹을 거치며 요금이 약 40% 인상돼 1만원 언저리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로서는 허들이 높아진 셈이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이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서 인식했다기보다 여가 시간을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측면이 있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 P13

영화발전기금도 고갈된 상태에서 작은 영화나 중간급 규모의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공적기금의 수혈이 필요하다. 어디를지원함으로써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인지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점이다. - P15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가리키는 ‘카르텔‘이 뭔지 여전히 뿌옇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야당, 시민단체, 노조를 넘어 사교육 시장까지 카르텔로지목되면서 카르텔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카르텔인플레이션‘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공방이 뒤따른다.  - P20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번 인사를 무게추가 용산(대통령실)에 쏠린 ‘다목적 가능성비 인사‘라고 평가한다. 2024년 총선을고려하면 대통령실로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입혀 선명한 성호과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 비서를관들을 정부 부처에 내려보내 국정 장악력을 극대화한 뒤 속도감 있게 국정과제를 달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 P23

돌봄 영역에서의 수요-공급 불일치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 진단이 곧바로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6월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주최한 ‘이주 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국회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공적 돌봄제도정비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육아휴직이나 긴급휴가,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더 나은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 P31

조정훈 의원 법안이 ILO 협약은 우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암초까지 피해 가기는 어렵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처우를 장담할 수 없다. 이들만의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을 정한다고 해도 지켜질지 알 수 없고, 인권침해 소지가분하다. ‘국가가 관리에 신경 쓰면 될 일이라고 넘어가기 어렵다. 가사노동자는 개인 거주지에서 일하기에 일반 사업장처럼 관리되지 않는다. - P32

지리산은 1967년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육상에서가장 넓은 국립공원으로, 둘레가 320여km나 된다.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지리산에 속한 각 지자체가 이 산을 두고 어떤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정리했다. 이번에 찾은 구례와 남원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 역시 저마다 케이블카 따위 사업계획을 들고 나왔다. - P38

의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종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고, 그 문턱을 통과하면 고소득과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점점 더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는 의사들이 있다. 의료 본연의 역할이라 할 ‘생명을 살리는 과‘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전통적으로 필수의료로 분류돼온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 더해 환자의 목숨이 걸린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신경외과 등 ‘바이탈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 P40

실손보험이 도입된 이후 통증주사,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시장은 더욱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병원에서 수술방에 들어가는 마취과 의사들은 줄고, 통증의학과 의원들은 건물마다 들어서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처럼 비급여 진료로 무한정 수익을창출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의료 행위에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필수의료는 수가를계속해서 높여주더라도 기피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P42

북한의 위성 기술은 낙후한 것으로알려졌다. 북한이 궤도 진입에 성공한 광명성 3-2호, 광명성 4호는 모두 위성의기능을 하지 못한 죽은 위성이다. 두 위성은 궤도 진입엔 성공했지만 이후 흔들거리며 불안정한 운행을 해왔다. 지금까지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아서 지상과 송수신 능력이 없어 보인다. - P53

교육학에서 다양성은 전세계 학자들이 인정하는 가치다. 그러나 어퍼머티브 액션이 ‘목적이 아닌 수단만보면 헌법·법률상 차별‘이라는 앞선 판결들을 살피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예컨대 다양성을 추구해 얻는 교육적 실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계층과 인종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 게 다양성 추구에 가까운가? 어떤 인종이 소수집단인지 다수단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P58

그 변화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새시대를 대표한다는 여성 그룹은 입을 모아 나를 이야기하고 나에게 집중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나‘는무엇보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의세대와 공명했다. 셀프 브랜딩에 능하고 ‘부캐‘ 하나쯤은 기본이라는 요즘애들‘과 맥을 함께 한 셈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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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주의 탄생의 역사에 내재된 취약성과 불확실성 안에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고대 기록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바는 일단 그 안에 포함된 모순과 은폐, 재해석을 간파하고 나면 민주주의는 그 착상과 발전이 확실히 보장되었던 적도, 개인적 욕망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도 없으며, 주요 인물들과 역사가들, 그리고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폴리비오스는 기원전 160년대에 로마에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명망 높은 스키피오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파란만장한 당대의 역사를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가 압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하면서, 그 주요 요인으로 로마의 군사조직과 공화정체를 꼽았다. 폴리비오스는 그리스인이었지만 처음부터 아테네의 (이제 기울어가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더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로마가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한 후에도 계속해서 아테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갔다는 점이다. 공화국 수립 직후 로마 대중과 리더들이 다수의 권리와 소수의 권력 간의 균형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던 격동의 반세기 동안, 로마의 입법자들은 아테네에 체류하며 그곳의 법률 제도와 헌법?특히 로마인 자신들과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다고 여겼던 솔론의 개혁?을 연구하여 로마에 도입했다.

폴리비오스에게 12표법 도입은 반세기 전 왕정 타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로마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28 그 이유는 무엇일까? 12표법은 폴리비오스가 통치 모델의 전형이라 여긴 기틀을 제공했다. 즉 12표법은 군주(집정관), 귀족(원로원), 민주주의(켄투리아회와 평민회)적 측면을 모두 가지면서, 동시에 사회 각 집단의 권리와 책임을 법으로 규정했다.

로마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리고 기원전 449년 이후 수세기 동안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 전 계층이 체제를 비판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쪽이 더 혜택이 크다고 믿게 만든 정교한 견제와 균형 체제였다. 폴리비오스의 눈에 로마는 "수많은 투쟁과 소요를 극복"하고 마침내 콩코르디아 오르디눔(계급의 화합)을 이루었다. 폴리비오스가 글을 쓸 무렵에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한 로마가 더 이상 아테네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가 투표권을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상 모든 권력은 국가 지도층이 보유하도록 계급 차별이 도입되었다." 이 체제는 정치적·사회적 현실만큼이나 군사적 현실도 반영했다. 전투에서의 승리, 곧 로마의 성공적인 방어는 기병대인 에퀴테스 계급과 그들이 보유한 말과 무기가 제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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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 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페르낭 브로델 지음, 남종국.윤은주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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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라는 존재 속에서 변화하는 것, 움직이는 것이 꼭 문명을 구성하는 전부도, 가장 좋은 면도 아니다. 결코 아니다. 문명 속에는 단기적인, 지속적인, 때로는 장기지속적인 콩종튀르와 구조가 있다.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의 영역으로 의미 있는 침투를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난폭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혹은 역사의 사건들이 만드는 우연이라는 변수들만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하나의 패턴이 처음부터 너무나 굳건하게 정해져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16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2>는 16세기 지중해 시대의 문명(文明 Civilisation)에 초점을 맞춘다. 앞선 2-1권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가져다 준 정치, 경제가 주제였다면, 2-2권에서는 그러한 정치, 경제체제의 결과물인 사회의 변화가 주제다.


 우리는 경제적 콩종튀르와 비경제적 콩종튀르를 분리해야만 한다. 후자 역시 시간의 길이에 따라서 측정되어야 하고, 위치가 정해져야 한다. 세기적인 트렌드와 유사한 것으로는 장기적인 인구 변동, 국가와 제국의 크기 변화, 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유동성의 유무, 산업 성장의 강도가 있다. 장기적인 콩종튀르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산업화, 국가 재정, 전쟁 등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13


 결과적으로 브로델은 본문을 통해 자연의 만들어낸 구조사(構造史)의 큰 흐름이 이미 결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흐름은 국면사((局面史)를 통해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냈음을 말한다. 서로 다른 상황과 움직임 속에서 여러 계층, 집단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각 상황에서는 최선의,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다만,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적인 최적화를 달성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였고, 그에 따라 지중해의 역사 속에서 부르주아, 귀족, 왕, 유대인, 베네치아 등등의 세력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며 당대의 시대상을 만들어왔다.


 문명은 번영의 시기 ,단기적으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창조의 시기, 경제적인 승리를 구가하는 시기, 단기적인 사회적 시련의 시기를 거치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그러나 토대는 그대로이다. 토대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도 천 배는 더 견고하다. 문명이 천 번을 죽는다고 해도 토대는 견뎌낸다. 수세기 동안 단조로운 이동이 계속되지만, 전체적인 토대는 변하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40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에서 브로델의 결론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는 더이상 세계의 중심, 세계의 바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제조업에서의 주도권이 북유럽으로 넘어가고, 영국-에스파냐 전쟁(1585 ~ 16045) 이후 동지중해를 중심으로 교역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이미 콩종튀르(Conjoncture) 관점에서 분명 지중해는 활력을 잃고 있었다. 이 시기 지중해의 번영과 쇠퇴는 다른 중심지에 의해 종속되는 변수였다는 사실은 세계 패권(hegemony)를 둘러싼 전쟁은 대서양과 북유럽 플랑드르 지역에서 치뤄지고 있었으며, 지중해 연안국들은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힘을 이미 상실했음이 브로델에 의해 상세하게 논증된다.


 전쟁은 없었다. 이것은 또한 지중해가 더 이상 전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즉 전쟁비용을 치를 수 없었다는 증거였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고, 만물의 자식이며, 수많은 수원을 가진 강이고, 해안이 없는 바다였다. 전쟁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지만, 평화 그 자체의 창조자는 아니었다(p700)... 이제 대전쟁은 대서양을 따라 북쪽과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전쟁의 거점은 세계의 심장이 뛰는 그곳에서 수세기 동안 머물렀다. 이러한 이동 자체가 지중해의 후퇴를 말해주었고, 두드러지게 보여주었으며, 확고하게 만들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01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를 통해 우리는 '지중해의 황혼(黃昏)'을 보게 된다. 에스파냐의 칼레 해전 패배 이후 다시 돌아온 듯한 베네치아의 번영도,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에스파냐의 움직임도 이미 거대한 판 위에서 결정된 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구조적 움직임에 대한 고려가 없는 가정, 예를 들면 '에스파냐가 네덜란드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제국을 유지했더라면 어떠했을까?'라는 물음은 마치 체스(Chess)에서 폰(pawn)이 여왕(queen)처럼 움직이는 것을 가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할 것이다. 이제는 지중해에서 1권 구조사와 2권 국면사를 넘어 이제 마지막 사건사를 다룬 3권으로 넘어갈 차례다...


 문명의 첫 번째 실체가 경계를 설정하는 지리적 공간이라는 것 외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문명은 공간이자 영역이다. 이때 공간이라는 말은 인류학자들이 양날도끼 혹은 깃이 달린 화살 지역이라고 말할 때에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한계를 부여하지만 그 인간에 의해서 끝없이 변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p536)... 변화는 분명히 일어난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과정을 느낄 수도 없는 속도로 변화한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37


 이베리아 반도를 강타했던 곡물 위기로 인해서 이베리아 반도는 북유럽 국가들에게 막대한 양의 정화를 지불해야 했고, 이렇게 북유럽은 또다시 에스파냐의 "적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 대변동은 에스파냐, 베네치아, 피렌체, 심지어는 프랑스에서까지 가격 변동을 일으켰고, 교역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베네치아에서는 티에폴로 피사니 은행이 파산했다. 단기적인 위기, 경제생활의 극심한 혼란, 혼란의 전파와 변화무쌍한 성격이 지중해의 경제 변화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14


느리고 강력한 하나의 근본적인 움직임이 1550년부터 1600년까지 지중해 사회를 조금씩 뒤틀고 변화시켰다. 그것은 길고 고통스러운 변신이었다. 점차 커져가는 사회 전반의 불안은 공공연한 반란으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의 모습 전체를 바꾸는 사회적 성격을 가지는 격변이었음에 틀림없다... 사회는 나날이 광대해지는 토지재산을 보유한 부유하고 강력한 대귀족 가문과 점점 더 늘어나는 대다수의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로 분명히 양극화되어가고 있었다. - P512

지중해라는 혼합의 영역 속에서 많은 문명 집단들이 번성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더욱 풍성했다. 한편으로는 문명 간의 교류와 새로운 요소의 유입이 다소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각각의 집단들은 독자성을 유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파 작가들이 오리엔트의 항구를 그릴 때와 같은 분위기의 너무나도 혼잡한 항구들에서 문명들은 서로 뒤섞였다. - P523

주는 자가 지배한다. 베풂의 이론은 개인이나 사회뿐만 아니라 문명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베풂은 장기적으로는 궁핍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풂이 계속되는 한, 그것은 우위의 표지가 된다. - P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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