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Zeitgeist이란 신기루이다. 교차영향들을 상쇄하는 온갖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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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도체 제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세계화"가 아니라 "대만화"였다. 기술은 확산되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한 줌의 기업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살펴봐도 세계화의 불가피성이란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미국의 기술 정책은 그 흔한 상투적 어구에 인질로 잡혀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변화는 반도체 업계 리더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정부의 도움을 원했지만 동시에 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세금을 낮춰 주거나 규제를 완화해 주는 일이라면 그런 변화는 미국 내에서의 사업을 더 쉽게 만들어 줄 것이므로 반도체 업계로서도 기꺼이 수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가 오는 것은 원치 않았다.

진짜 논점은 따로 있었다. 중국이 세계의 기술 인프라에서 더 큰 역할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저지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영국의 신호정보 signal intelligence 기관의 장을 역임했던 로버트 해니건
Robert Hannigan은 이렇게 주장했다. "서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누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대신에, 우리는 중국이 미래에 세계의 기술 강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 위험을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 많은 유럽인의 생각도 비슷했다.

이렇듯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단계마다 요구되는 도구, 소재, 소프트웨어 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것은 모두 한 줌의 회사들이 만들고 있는 터라, 반도체 생산의 급소를 통제하는 일은 훨씬 쉬워졌다. 그 병목 중 다수가 여전히 미국 수중에 있다. 미국이 직접 갖고 있지 못한 병목은 대체로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의 것이다.

물론 중국이 기술적으로 뒤처진 처지에 놓일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더 많은 반도체 산업이 중국으로 향할수록, 중국은 기술 이전을 요구할 만한 지렛대를 손에 넣게 된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수출 제한을 거는 건 점점 더 큰 손실을 불러오게 될 것이며, 중국은 여전히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막대한 인력 풀을 지니고 있다.

반도체 부족의 주요 원인은 공급 측면보다 수요 증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이었다. 새로운 PC, 5G 스마트폰,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 결국에는 우리가 연산력을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전 세계 정치인들이 반도체 공급망의 딜레마를 잘못 진단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알게 된 진정한 공급망 문제란 공급망의 취약성 때문이 아니라 이윤과 권력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었다. 대만은 정부가 제시한 큰 그림과 자금에 힘입어 경이로운 성장을 이루었고, 그 결과 반도체 산업 전체가 재구성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기술 제재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병목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일인지 보여 주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중국 반도체 산업은 성장했고, 이는 미국이 쥐고 있는 병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으로 하여금 대만의 방위를 보다 진지하게 고려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이 대만에 집중되는 것은 세계 경제에 위험 요소가 되고 있으며, "실리콘 방패"가 중국을 막지 못한다면 그 위험은 현실이 될 것이다.

미국의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만의 TSMC가 필요하다.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가 없으면 TSMC는 애플의 최신 칩을 만들 수 없다. ASML은 미국의 사이머, 독일의 트럼프와 자이스의 핵심 부품에 의존한다. 이토록 촘촘하고 정교한 글로벌 공급사슬 덕분에 우리는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기술을 영위하며 살 수 있다. 반도체 국수주의는 위험천만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발상이다. 대한민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 외 수많은 반도체 기업 또한 글로벌 공급사슬의 일부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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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기술을 놓고 볼 때 중국은 한심할 정도로 외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서 설계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미국 혹은 미국 동맹국에서 제작되었다.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시진핑은 생각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크건, 시가 총액이 얼마나 높건, 인터넷 기업이 그 핵심 구성 요소에서 외부 세계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그 공급망의 ‘생명줄’은 다른 이들의 손에 쥐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베이징은 기술을 감시의 목적으로 극대화하면서 AI와 독재주의를 결합한 21세기 혼종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중국이 저항의 목소리를 추적하고 소수 인종을 억누르는 데 사용하는 감시 시스템마저 인텔과 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의 칩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었다.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놓고 볼 때 반도체 설계, 지식재산, 장비, 제조, 기타 다른 단계 등을 종합해 보면 중국 기업은 6퍼센트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조지타운대학교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39퍼센트, 한국은 16퍼센트, 대만은 1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다른 어디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첨단 로직 칩, 메모리 칩, 아날로그 칩의 경우 중국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설계,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기계 장치, 한국과 대만의 제조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시진핑이 근심에 빠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 한국, 네덜란드, 대만이 반도체 생산 공정의 중요 단계를 독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덕분이다.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은 미국의 팹리스 기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성장할 수 있었고, ASML의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는 샌디에이고에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만들어 내는 전문적인 광원 생성 장비가 아니면 작동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17년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 박수를 보내던 청중 중 그 이면에는 심지어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마저 상상하지 못했던 과격한 세계 경제 개편의 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병철이 건어물상이었던 삼성을 세계 최고의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만드는 테크 기업으로 키워 낸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정부 규제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값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관계에 계속 공을 들였다. 둘째, 서구와 일본이 개척한 제품군을 특정해서 그것을 같은 품질에 낮은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셋째,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회사들과 경쟁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주저 없이 세계화를 선택했다. 이러한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삼성은 한국의 전체 GDP 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익을 달성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지식재산을 훔쳐서 화웨이가 혜택을 본 면이 있겠지만 화웨이의 성공을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지식재산과 영업 비밀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화웨이처럼 큰 회사를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화웨이는 효율적인 제조 공정을 개발해 낮은 비용으로 고객이 만족할 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화웨이의 연구개발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화웨이는 중국의 다른 테크 기업들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투입한다.

인텔은 오늘날에도 PC와 서버 분야에 쓰이는 칩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첨단 칩의 생산 능력에서는 한 발 뒤처진 상태다. 한편 TSMC와 삼성은 대만과 한국에서 가장 최첨단의 제조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 칩 조립과 패키징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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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라는 용어는 통시대적인 용어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특정한 시기(기간)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일본(정부)의 정책에 동조하거나 협력한 이들은 전근대에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에 협력한 조선인들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않았다. 통상 학계나 친일파 청산 관련 법령에서 규정하는 "구한말 이래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 지배와 일제의 대외 침략에 적극 협력한 부류"가 곧 이 책에서 다루는 친일파다. _ 변은진, 박한용, 이용창,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조선귀족, 중추원, 친일단체(1910~1937)를 중심으로>, p20/588


 제78주년 광복절. 지난 해부터 3.1절, 광복절 등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전부터 기념일의 의미를 훼손하는 극우집단의 소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공공의 장(場)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은 참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도 대통령은 광복절에서 광복보다는 건국, 좌익척결, 일본과의 우호,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경축사를 했다. 또 다시 참담해지는 마음.


[관련기사]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 특이점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12073


  광복절을 맞아 뉴스타파에서 예전에 만든 <친일과 망각>을 다시 본다. 자신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잊기를 강요하고, 광복 대신에 건국을, 독립 대신에 반공을 보다 높이 외치는 이들. 시간이 흘러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지고, 친일파 대신 친일파 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넘겨받은 지금 우리가 친일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나간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현재 화합을 이뤄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얼핏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친일과 망각>은 우리에게 친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나는 과거문제를 잊기 위해서라도 이걸 묻기 위해서라도 나는 과거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정리하는 그런 이리 빨리 됐으면 좋겠어요.' 


 <뉴스타파 -민국 100년 특집>의 윤경로 친일 인명사전 편찬 위원장의 말은 우리가 왜 친일을 기억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주는 문장이라 여겨진다. 일신의 안녕을 위해 가야할 길을 가지 않은 자와 힘든 길인 줄 알면서도 가야할 길을 간 이들을 살피고 이를 통해 미래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지 못한 것은 적시에 정리되어야 할 것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는 반민특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친일파는 그저 단지 일본과 친한 이들이 아니라, 일제의 흉포한 식민통치에 부역하고 민족을 배반한 자들이다. 청산되지 못한 세력의 계보에 속해 제국의 군인, 경찰, 밀정, 낭인들이 저지른 발길질과 뺨 때리기 정치를 칭송하기에 친일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이들은 모두 그런 의미에서의 '친일파'다. 기꺼이 제국의 신민이 된 자들이며, 그 체제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행위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이 만들어놓은 기득권을 고스란히 쥐고 지금도 그 반역의 역사를 이어나가려는 자들은 모두 다 '친일파'다. '친일파'는 따라서 '역사적 개념'이며 '정치적 개념'이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세력의 '실명'(實名)이다. _ 오익환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p28/284


 일제의 요구는 시기마다 달랐고, 친일파 또한 이러한 요구에 맞춰 각 시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 영향도 각각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합병' 이후 일제가 '매국'을 요구할 리 없다. 이때부터는 식민통치에 대한 협력이 본질적인 요구이며, 친일파는 여기에 보조를 맞추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전쟁협력행위가 일제의 핵심 요구였고 여기에 맞춰 친일파들은 내선일체·황국신민화를 부르짖으며 전쟁협력행위에 복무했다. 나라를 팔아넘기라는 요구에는 매국이, 식민통치에 협력하라는 요구에는 직업형 친일이, 전쟁에 조선인들을 동원시키라는 요구에는 전쟁협력형 친일이 각각 대응된다. 매국과 전쟁협력 가운데 어느 것이 죄가 무거운가 하는 식의 법률적 접근은 역사적 현상인 친일문제를 제대로 해명하는 데 부적절할 수 있다. 결국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의 변화 과정과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친일파들의 행위를 검토해야 한다. _ 변은진, 박한용, 이용창,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조선귀족, 중추원, 친일단체(1910~1937)를 중심으로>, p390/588

 이 모든 사태의 기점(起點)에 바로 반민족적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와해가 놓여 있다. 1949년 6월 6일, 그날이 우리 역사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이날을 우리는 모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반역의 역사가 당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라는 자의 명령으로 시작된 날이며, 이후 우리 현대사의 무수한 희생과 굴곡,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왜곡된 역사의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_ 오익환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p2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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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8-16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생식물이 숙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생존 기반이 사라지지 않듯 윤짜장 같은 극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친일의 생존 기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3-08-16 15:28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다만, 극우가 힘을 받으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이들의 속내가 다 드러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점까지 보다 깊이 그리고 널리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3-08-18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경축사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저렇게 말하지? 했더니 남편이 웃더군요.

겨울호랑이 2023-08-18 08:18   좋아요 1 | URL
이제는 친일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을 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막상 들으니 마음이 참담해집니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은 소리를 표현할 문자를 자연 모방적, 논리적, 체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점은 모음을 자음과 구별한 것, 초성과 종성의 소릿값을 동일하게 한 것 못지않게 대단한 점이라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의 뛰어난 기계를 취하려는 자는 결코 외국의 기계를 사들이거나 기술자를 고용하지 말고, 반드시 자기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배우도록 하여 그 사람이 그 일에 종사케 하는 것이 좋다.

조선의 도공은 청자 대신 백자 굽는 기술을 활짝 꽃피웠습니다. 백자 제작은 청자와 같이 시작되었지만, 고려 귀족이 비취색을 너무 좋아해서 완전히 뒷전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이 유교 국가를 표방하면서 검소하고 질박한 백자가 선호되었습니다. 청자를 만들던 도공들은 상감에 사용하던 백토를 청자 전체에 발라 백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백자는 청자 위에 장식을 했다는 뜻에서 ‘분청사기’라고 합니다.

목판본은 새길 때 공이 많이 들지만 인쇄 분량이 많을 때는 효율적입니다. 반면 금속활자는 조립과 해체가 쉽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을 조금씩 찍을 때 목판본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죠. 중국은 인구가 어마어마한 만큼 책을 값싸게 공급할 때는 목판본 인쇄가 금속활자 인쇄보다 더 유리했겠죠? 그에 비해 고려나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대체로 다품종 소량 인쇄에 적합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나 조선이 중국에 비해 금속활자 기술 개발에 훨씬 적극적이었던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봐도 수원 화성은 놀라운 설계에 따라 지어져 산뜻함, 견고함, 효율성의 결정체로 다가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전통 방식의 돌 성과 새로운 방식인 벽돌 성이 조화를 이루어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 겁니다.

당시 철도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어서 세계열강은 식민지를 비롯한 약소국의 철도 부설권을 따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99년 일본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철도가 놓였습니다. 일찍부터 일본은 한반도를 거쳐 중국 대륙까지 이어지는 철도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대륙 침략을 위해 철도가 꼭 필요했거든요. 철도를 우리 힘으로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과학문명이 실제로 세계에 기여한 현상은 의학 분야에서만 보이는데,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삼 재배 기술입니다. 인삼은 중국 기록에서 기원 전후 시기부터 약효가 알려진 이래 20세기 이전까지 최고의 건강 상품으로 인정된 약재입니다. 역사시대 이래 인삼은 중국 황제에게 바치던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한국과학문명의 가치는 세계에 끼친 영향보다는 세계 문명의 수용과 활용,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빛을 발합니다. 중국은 오늘날의 서양문명이 그러하듯 엄청나게 커다란 문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문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선진 문명에 주눅 들지 않고 한국문명이라는 몸체로 그 문명에 맞서 수천 년 역사를 엮어왔습니다. 천문학, 수학, 의학, 농학, 지리학, 군사기술, 그리고 인쇄술이나 도자기 제작 기술과 같은 수공업 기술, 의식주 관련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보였는데, 선진 과학기술의 변용과 독창적 발휘가 특징입니다. 중국과학문명을 모방하면서도 독자적으로 건설하고 유지해온 문명이므로 동아시아과학문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과학문명은 더 나아가 세계과학문명의 일원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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