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유망한 산업과 기업을 발굴해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기술과 산업의 장기 전망과 추세를 알아채는 고도로 숙련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반면 부동산 대출은 쉽고 빠르다. 담보만 잡으면즉각적으로 이자수익이 꽂히고, 당기순이익이 급증한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와 ‘부동산 도박‘
에 빠진 사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몫으로 전가됐다.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집을 살 수 없게 되었고, 중소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이다 문을 닫는다. - P13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부동산, 특히 주택을 매개로 움직인다. 주택을 담보로 삼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은행의 가장 주요하고 든든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원리금을 상환받지 못하면 그주택을 처분해 빌려준 돈을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 주담대는 꾸준한 이자수익 보장뿐 아니라 회수 가능성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우량 자산이다.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약 1927조원) 가운데 60% 정도인 1123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 P15

 ‘금융 배제‘는 ‘금융 독점‘과 동전의 양면이다. 경제학 교과서 관점에 따르면 여유자금을 가진 돈 많은 쪽이 자금을 빌려주고, 돈 없는 쪽은 빌린다.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주로 부동산을 보유한 부자들이 많이 빌리고 그 돈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해서 가격을 더 올린다. 가진 자들이 돈도 많이 빌리는 현상을 ‘금융 독점‘이라고 부른다. 소득과 자산이 적은 대다수 청년들은 은행에 내밀 명함도 없다.
- P16

 당시 금융기관들은 외국계 컨설팅회사들에게 자문했는데, ‘한국 조선업엔 전망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포기 결정을내렸다. 결국 조선업은 붕괴 직전으로 치달았다.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금융기관들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금융기관들이 조선산업의 사업성을 평가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컨설팅 회사들 역시 재무나 구조조정의 전문가일 뿐 산업은 몰랐다.
당시 20만여 명에 달하던 조선업 부문의인력이 이 사태 이후 2년 사이 8만명으로 줄었다. - P19

집단소송은 원칙적으로소송 참여자들뿐 아니라 같은 피해를 입은 모든 당사자에게 확정판결 효력이 미치지만, 공동 손해배상 소송은 소송 참여자에게만 효력이 미친다. 지금의 대규모공동소송에 쿠팡이 방관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P25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지역마다 의과대학을 세워달라는 목소리는엄청 높은데, 제가 진주 경상대병원부터 제주대병원까지 10여 년 지역 의료에 있어보니, 정작 지역의 거점 의료기관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이 그리 높지 않다. 같은실수를 해도 빅5 병원은 괜찮고, 지역 대학병원은 욕을 먹는다.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지역 병원을 지켜보고 이용해주셔야 나와 내 가족이 아플 때 믿고 갈 수 있는 병원을 곁에 둘 수 있다. - P35

윤석열 정부 시절의 방통위에 비해 의사결정의 효력은 좀 더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의제를 통해 의도했던 바가 이번에도 잘 실현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합의제는 그 합의를 수행할 주체 혹은 합의의 공간을 만드는주체로서의 정치, 그 합의의 장에 들어갈 자격과 수준을 지닌 전문가, 그리고 그곳에서 결의된 합의를 합의가 아닌 의사결정보다 더 나은 것으로 받아들여줄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작동하기 어렵다.  - P40

공적연금제도가 세계 최초로 시작된 건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 때인 1889년이다. 획기적 정책이었지만 이것이 노동자의 복리를 위한 정책으로 평가받지는않는다.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이 5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연금 수급 연령은 70세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의 연금제도는 체제에 위협이 되던 사회주의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으로 진화했다. - P52

AI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공일반지능은 좁은 의미의 정보처리과정으로 쪼그라들거나 일반지능의 많은 요소가 생략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략과 의도적 변형 덕분에 AI는 초지능에 가까운 지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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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웹 - 세계화의 세계사 히스토리아 문디 8
윌리엄 맥닐.존 맥닐 지음, 유정희.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기술과 재화와 태도가 각 문명의 중심부에서 사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지역별 문화적 성향이 확립되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곳에서 사회적/환경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한 지역의 지배층이 도시적인 습관과 사치품을 손에 넣기 위해 문명화 방식을 모방하기로 결정하게 되면, 그들은 고유한 전통과 권리, 관심을 포기해야 했다. _ <휴먼 웹>, p116


 상호작용과 교환의 세계사. <휴먼 웹>의 영어 원제 <The Human Web : A Bird's -Eye View of World History>에서 표현되듯이 새의 시선(A Bird's -Eye View)에서 지상에 펼쳐진 거미줄(Web)을 내려다보는 관계의 세계사가 이 책의 주제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존재하던 인류 공동체는 상호교류를 통해 긴밀하게 다른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상호 교류를 강화하며 별도의 역사가 아닌 공동의 역사, 세계질서를 확산시켜왔다. 연결되는 관계는 '전문화'된 인간을 요구했고, 전문화의 결과 개인의 생존 능력은 떨어지는 대신, 사회의 능력은 점차 증가되었다. 사회라는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그것은 결국 불안정성의 원인이 되었다. 


 이 책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흐름은 '관계의 강화', '연결망의 확산'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서  문명의 중심지와 이를 모방하려는 주변지들의 관계는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중심지-주변지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시대가 흐를수록 중심지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어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내부적 변화는 보다 극적으로 확인된다. 


 1000년과 1500년 사이에 올드월드 웹의 중심지에서 일어난 변화는 나머지 세계에서 발생한 모든 변화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500년 동안 교류가 급증하고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생산량이 증가하고 시장가격과 정치적 명령에 따라 인간의 노력이 효율적으로 동원된 결과, 올드월드 웹의 불안정성은 점차 증가했다. _ <휴먼 웹>, p215


 내부의 결핍을 외부와 교류를 통해 채우고자 하는 요구는 연결망을 확산시켰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를 강화시켰다. 문명의 차이는 연결망의 흐름을 결정지었으며, 원재료와 상품, 화폐와 물자의 교류는 확산되었지만, 교류의 불평등성도 함께 증가되면서 세계화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음을 <휴먼 웹>은 보여준다.


 1450년 이후의 3세기 반 동안 세계의 개별 웹들이 융합되었다. 게다가 어느 웹에도 속해 있지 않던 여러 지역도 웹 안에 편입되었다. 1800년에 이르자 9억에 달하는 세계인구 가운데 월드와이드 웹에 통합되지 않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p296)... 1500년과 1800년 사이에는 그 기능이 대서양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세계의 웹들은 월드와이드 웹에 통합되었으나, 사람, 물자, 사상, 감염증이 이동하는 속도는 수메르 주변에 처음으로 메트로폴리탄 웹이 형성되었을 때보다 약간 빨라졌을 뿐이다. _ <휴먼 웹>, p298


 <휴먼 웹>은 세계화의 흐름이 18세기 이후 보다 거세졌음을 설명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 흐름 속에서 예전에는 지역별 과제가 세계화를 통해 전 인류의 과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도시화, 기후 문제와 같은 인류 공통의 문제에 대해 유례없이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한 인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750년과 1914년 사이에 타이트해진 웹은 인구폭발, 대의정치의 형식, 각국의 국민적 정체성, 산업화를 널리 확산시켰다. 이 모든 것은 불균등하게 퍼져 나가, 각 사회 내에 그리고 다른 사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을 조성했다. 낡은 속박은 타파되고 구제도는 붕괴되었으나, 그것을 대체한 것은 새로운 안정이 아니라 혼란과 불확실성이었다. 세계는 아직도 18세기에 시작된 대격변의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_ <휴먼 웹>, p374


 인류는 문명(文明)을 매개로 상호 연결망을 강화하며, 보편성을 확대시켜왔다. 그 결과 근대화로 대표되는 보편문명을 얻는 대신, 전통문화로 나타나는 문명의 개별성을 잃었다. 이제는 '인류 문명'이라는 연환계에 묶인 인류공동체는 문명에 닥친 보편과제를 잘 협력해서 해결할 수 있을까?  긴밀한 연결을 통해 어느 때보다 인류애는 높아졌으나, 그 이상의 협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잘 풀어내지 못한다면, 인류는 그대로 대멸종의 시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제도가 과학/기술의 발달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부조화, 세계화 과정에서 쌓여온 불안정성을 안고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우리가 연결된 인류의 운명을 한 단계 높은 도약으로 이어갈지 아니면,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며 막을 내릴지는 현재 우리에게 달려있음을 생각하며 독서를 갈무리한다...


 1870년과 1914년 사이에 진행된 급속한 세계화가 불평등을 낳자, 분개한 사람들은 내셔널리즘과 전쟁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1914~1918년의 전쟁은 일부에게는 내셔널리즘과 전쟁을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일부에게는 그것을 더욱 신봉하는 동기가 되었다.(p444)... 도시화와 인구성장은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사회변화였다. 대부분의 문화적 도전과 변화는 도시에서 기원했지만 인간의 이데올로기, 제도, 관습은 기본적으로 농촌이라는 환경에서 형성되었다. _ <휴먼 웹>,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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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하이데거 How To Read 시리즈
마크 A. 래톨 지음, 권순홍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존재자의 존재는 존재자가 바로 그 존재자로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그것이다.(p25)...  유의미한 사물들은 다른 유의미한 사물들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사물들의 존재 방식을 이룬다. _ <How To Read 하이데거>, p26


 존재자(Seiendes), 존재(Sein), 현존재(Dasein)... 


 <How To Read 하이데거>는 용어부터 낯선 하이데거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입문서다. '있는 것' 자체로서 존재자, 존재자가 존재하는 근거, '있음'으로서 존재, 존재자 중 유일하게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현존재. 현존재는 자신을 '실존(Existenz)'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해한다. 현존재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세계 내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현존재이기에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변화하는 양상 속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일상생활에서 그는 언제나 실존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현존재의 유동적인 질문과 답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야 비로소 고정된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본질이다.


 현존재는 본래적인 결단(Entschlossenheit)을 통해 죽음을 선취(Vorlaufen)함으로써, 죽음 이전에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삶의 매 순간, 위기의 순간 찾아오는 불안감(Angst)이 찾아올 때, 현존재는 이를 뿌리치고  본래적인 자기로의 결단(Entschlossenheit)을 통해 자신의 전체(Ganzheit)를 인식하고, 비본래적인 타자(Das Man)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하이데거는 특히 '미래를 향한 기투(Entwurf)'를 강조한다. 현존재인 우리가 아무 근거 없이 허공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한계(피투성)를 딛고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내던지는(기투) 행위를 통해 본래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How To Read 하이데거>는 난해한 하이데거 철학의 얼개를 차분히 설명하며, 독자들이 하이데거 철학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입문서다.



현존재(Dasein)는 그의 존재(Sein)에서 이해하면서 이 존재와 스스로 관계하는(verhalt) 존재자(Seiendes)다. 이것으로써 실존의 형식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다. 현존재는 실존한다. 게다가 현존재는 그때마다 나 자신인 존재자다. 실존하는 현존재에게는 각자성(各自性, Jemeingkeit)이 본래성(Eigentlichkeit)과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속해 있다. - P17

세계-내-존재는 우리가 늘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에 처해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우리는 ‘거기에‘를, 즉 의미 있게 구조화된 상황을 갖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행동하고 실존하게 마련이다. 현존재의 한 가지 존재 구성 틀은 세계가 언제나 우리로서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특정한 방식으로 짜여 있거나 기분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구성 틀은 우리 자신이 언제나 특정한 바익으로 사물들과 관련해서 기분에 젖어 있고 또 그 사물들이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 간에 우리를 습격한다는 사실이다. 사물들이 습격하는 방식은 우리의 기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어쨌든 기분은 세계 내부적인 사물들과 관련해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기분에 젖어들게 함으로써 우리의 태도를 이끌고 구조화한다. 이렇게 보자면, 유정성은 일종의 ‘조율‘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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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 오늘의 유럽을 낳은 최초의 영토 전쟁 1618~1648
C. V. 웨지우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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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의 열풍이 일단락되면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회의를 통해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루터파에만 국한되고 칼뱅파를 비롯한 다른 신교 종파는 제외되었는데, 이 불씨가 결국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신교연합과 가톨릭동맹 사이의) 일촉즉발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1617년에 보헤미아의 왕이 된 페르디난트 2세가 신교도를 탄압하자 보헤미아의 귀족들은 그를 거부하고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한다. 이것이 30년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시작은 그랬으나 전쟁이 진행될수록 종교의 명분은 뒷전으로 나앉고, 유럽 각국의 국익이 점점 중요하게 대두된다. _ <30년 전쟁>, 옮긴이의 글, p15


 유럽 최초의 근대적 영토전쟁 30년 전쟁. 1618~1648년까지 독일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전쟁들을 통칭하는 이 용어는 단순히 '30년동안 일어난 전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 전쟁을 명분으로 했으나, 그 이면에는 유럽 각국의 국익이라는 실리가 충돌한 전쟁이었다. 제국을 꿈꾸는 군주, 영지를 지키려는 제후, 신분 상승을 노리는 용병 대장, 생존을 위한 상인과 농민 등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가 얽혔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껍데기 아래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독일은 이러한 욕망의 충돌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고, 그 비극적인 대가를 치렀다. 이처럼 종교라는 중세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국가와 민족의 이해관계라는 근대적 실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30년 전쟁은 '최후의 중세 전쟁이자 최초의 근대 전쟁'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독일 지역에는 독립 소국들의 방대한 집단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뭉쳐 중부 유럽의 지리적, 정치적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조와  부르봉 왕조의 경쟁, 에스파냐 왕과 네덜란드의 경쟁, 가톨릭과 신교의 경쟁에서 독일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각국 정부는 그 점을 깨닫고 저마다 이 분열된 나라에서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_ <30년 전쟁>, p53


 <30년 전쟁>의 저자 C.V.웨지우드는 이러한 수많은 욕망들의 대립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마드리드, 파리, 런던, 스톡홀름, 빈, 코펜하겐에서 결정된 내용에 의해 마그네부르크는 약탈당했으며, 뤼첸에서는 대군이 격돌했고, 우체돔에는 스웨덴 군을 맞아야 했던 만큼 독일 전역에 재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을 독자들 눈앞에 차분하게 그리고 작가만의 기준을 갖고 그려낸다. 작가는 주요 사건 전후로 핵심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데, 그 기준은 독창적이다. 대표적으로 30년 전쟁사 중 보기드물게 성군으로 인정받는 스웨덴 국왕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다소 박하다. 이는 곧 웨지우드가 전쟁을 바라보는 기준이 '유럽 다수에게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다주는가'에 맞춰져 있으며, 전쟁을 통해 영웅이 되는 개인의 성취보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대중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구스타프를 옹호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를 유럽 역사의 공인된 영웅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강력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어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신념일 뿐 증거에 입각한 견해는 아니다... 구스타프처럼 타고난 정복자는 아무리 평화를 희구하더라도 항상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_ <30년 전쟁>, p411


 전체 독일 인구의 1/3이 줄었을 정도로 독일에 치명타를 안긴 이 비극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독일의 봉건제가 지속되고 근대화가 영국, 프랑스에 비해 뒤쳐진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이 거시적 흐름의 인과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그 흐름을 헤쳐갔던 이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30년 전쟁>의 저자 웨지우드는 전장의 전사를 그리면서도, 약탈을 피해 성당으로 피하는 노약자들을 함께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박진감 넘치는 전쟁사'가 아닌 '파괴의 문명사'로서 전쟁의 의미를 독자들과 함께 찾는다.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유럽의 압도적인 다수, 독일의 압도적인 다수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힘도 목소리도 없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든 결정은 그들을 고려하지 않고 내려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 둘씩 전쟁으로 끌려들어갔고, 모두가 진심으로 궁극적인 평화를 갈망했다. _ <30년 전쟁>, p641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30년 전쟁의 종결인 베스트팔렌 조약(1648) 을 '근대 외교사의 탄생'으로 기록한다. 이 조약은 네덜란드의 독립, 합스부르크 세력의 쇠퇴, 프랑스의 부상이라는 결과를 낳으며 국가 중심의 근대 유럽 질서를 확립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국가의 관점' 대신 전쟁의 피해자, 즉 '대중의 관점'에서 전쟁의 의미를 찾는다. 저자는 농민 계층이 전쟁 기간 동안 겪은 끔찍한 고통을 상세히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집단으로서의 농민이 전쟁 후 사회 내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 강자로 떠올랐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전쟁의 비극적 유산 속에서도 미묘한 사회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30년전쟁>은 17세기 근대 유럽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건을 보다 낮은 자리에서 올려다 본 의밌는 역사책이라 여겨진다...


 개인으로서 농민은 전쟁 중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엄중한 과세와 약탈, 폭력, 추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집단으로서의 농민은 전쟁을 거치면서 그들이 부양하는 사회의 다른 부문에 비해 강자로 떠올랐다. _ <30년 전쟁>, p624



종교개혁 이후 불과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권을 재통합한다는 꿈을 버렸다. 가톨릭이 재통합에 실패한 것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원인은 있다. 교회의 운명이 오스트리아 왕실과 긴밀하게 얽히면서 왕실의 영토 욕심이 가톨릭 교회를 옹호해야 할 세력들을 분열시켰던 것이다. - P43

신교 군주들은 프리드리히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또한 가톨릭 세력은 페르디난트를 지지하는 것으로 외국의 간섭을 방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유럽에는 프리드리히나 보헤미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오스트리아 왕가를 두려워하거나 라인 유역을 탐내는 군주들은 많았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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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치됐던 보건진료소를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다.
농어촌 주민의 일상에 가장 근접한 곳에서 예방·치료·돌봄을 수행해온 유일한 제도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완성된 해법‘을 발견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된 제도임에도 누구도 제대로 챙기고 가꾸지 않아 인력은 부족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기능과 역할 재정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남아 있다. - P15

한양대·고려대·성균관대도서관 ID가 거래되는가 하면, 올리브영무신사, 네이버, 탑툰, 카카오, 멜론, 텀블벅, 예스24 등 주요 인터넷 서비스의 ID등이 매물로 등재되어 있었다. 각 서비스매물에는 실명인증한 아이디를 제공한다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ID당 가격은100~300위안(약 2만~6만원) 수준이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 접속 정보 보호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내는 모습이다. - P17

특검 공소장에 따르면, 무인기 침투이후 북한 내부 경계가 삼엄해졌다. 북한은 경비 인력을 재배치하고 사상 교육을 강화했다. 동시에 러시아 방공무기체계를 도입하는 등 경계 태세를 올렸다. 바깥으로는 방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10월15일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와 철도를 폭파하면서 "이번 조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연결통로가 철저히 분리됐다"라고 강조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 P20

"단기적으로는 환헤지(환율변동에 따른위험에 대비해 사전에 특정 환율로 고정하는 것), 외환 스와프 연장 등의 수단으로 외환의 공급을 늘려 환율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한국의 산업구조 변화와 경쟁력 약화가원화 약세의 기저에 있다." 단기 처방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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