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玄黃 宇宙洪荒(천지현황 우주홍황). 하늘과 땅은 검고 누렇다. 우주는 넓고 크다. 

 

 宇(우)는 공간을, 宙(주)는 시간을 의미하므로, 말 그대로 宇宙는 시공간(space-time)을 말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현대 천체 물리학의 이론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3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으로 이루어진 4차원의 시공간. 그렇다면,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 배경 : 시공간


 어떤 시간간격에 걸쳐 있는 공간을 '시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공간상의 한 구역이란, 특정 시간 동안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공간, 즉 시간과 공간을 모두 고려한 4차원의 공간을 의미한다.(p98)...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공간 자체가 가속운동을 판단하는 궁극적 기준임을 말해 주고 있다.(p110) <우주의 구조 The Fabric of the Cosmos> 中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3차원이지만, 시간이라는 개념 역시 공간상의 차원과 유사하기 때문에 4번째의 차원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하나의 사건을 정의하는데 필요한 정보는 3개가 아니라 4개인 것이다. 이들 중 3개는 공간상의 위치를 지정하고, 나머지 하나는 시간을 지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한데 묶어서 '시공간 space-ti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p89) <엘러건트 유니버스 the elegant universe> 中


2. 우주의 시작 : 인플레이션 이론


 우주의 시작과 관련하여 최근 인정받고 있는 이론은 급팽창이론(急膨脹理論) 또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론으로 부른다. 우주가 초기 폭발로 이루어졌다는 빅뱅이론(big bang theory)과 우주가 평탄한 이유를 설명한 정상우주론(正常宇宙論, Steady State theory, Infinite Universe theory, continuous creation)을 인플레이션 이론은 종합한다. 인플레이션 이론의 핵심은 우주의 처음은 빅뱅이론과 같은 대폭발로 설명될 수 있다지만, 지금 관측되는 우주가 안정적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답으로 요약된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에 의하면 우주 초기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중력이 척력으로 작용하여 우주공간이 엄청난 빠르기로 팽창한 시절이 있었다.(p403)...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질량과 복사는 중력에게 에너지를 빼앗기고 인플라톤장은 중력으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한다.(p431)... 우주가 지금처럼 고-엔트로피 상태로 끊임없이 진행되고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초기의 우주가 아무런 덩어리나 주름 없이 매우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구조> 中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이 우주상수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한 우주의 안정성에 대해, 인플레이션 이론에서는 '힉스장' 또는 '인플라톤장'의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초기 우주의 높은 밀도 상태에서 고에너지 상태의 중심점(힉스장)으로 인해 발생한 척력(斥力)으로 우주는 매우 빠르게 팽창되었다는 것으로 우주의 시원(始原)과 과정(過程)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가장 초장기 상태의 우주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등장한 이론은 초끈이론 superstring theory다. 그렇지만, 여기서 잠시 초끈이론과 관련한 두 개념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숨겨진 차원'과 '대칭'이 그것이다.


 우주공간에는 질량과 에너지에 의한 인력보다 음압에 의한 척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척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주상수가 가져온 놀라운 결과이다.(p390)... 아득한 옛날, 우주의 밀도가 매우 높았을 때 힉스장의 값은 에너지 그릇의 가장 낮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힉스장을 흔히 '인프라톤장 inflaton field'이라 부르는데, 이 장은 음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력적으로 엄청난 척력을 행사하여 공간 내의 모든 지점들이 서로 멀리 도망가도록 만들었다. 인플레이션은 우주를 확장시켰다. Inflation drove the universe to inflate."(p397)...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질량과 복사는 중력에게 에너지를 빼앗기고 인플라톤장은 중력으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한다.(p431)  <우주의 구조> 中


3. 숨겨진 차원 : 칼루자-클라인 이론 


 우주의 시공간이 4차원을 넘어선 다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낯설게 들린다.  신학(神學)의 세계에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다(요한 20 : 29)'고 넘어가겠지만, 과학(科學)의 세계에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한 설명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칼루자-클라인 이론 Kaluza-Klein theory은  숨겨진 차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칼루자-클라인 이론 자체는 폐기된 상태로, 다차원에 대한 개념만 이해하도록 하자.) 차원의 연장선상에서 초끈이론에서는 9개 공간 차원을 사용하고, 통합이론인 M 이론에서는 10개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4차원 세계의 모든 점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다섯 번째의 차원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왜 지금껏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한 가지 깔끔한 설명은 다섯째 차원이 극히 작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에 있을까? 이를 이해하는 한 방법은 우리의 4차원 우주를 좌우 양쪽으로 무한히 뻗은 1차원의 선으로 보는 것이다... 기하에서의 선은 본래 길이만 있고 두께는 없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서 상상하는 선은 배울이 매우 높은 돋보기로 보면 미세하지만 두께를 가진 선으로 생각한다. 이 선을 정원 호스로 여길 수 있다. 이 정원 호스를 잘랐을 때, 그 단면은 1차원의 기본적인 한 모양이다. 따라서 이 원은 4차원 시공의 각 점들마다 붙어 있는 여분의 5차원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p17)... 다섯 번째의 차원은 프랑크 길이(Planck length)라고 부르는 약 10의 -30승 cm에 불과한데, 이토록 작은 크기로 존재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를 관측하기란 사실상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하겠다.(p19) <휜, 비틀린, 꼬인 공간의 신비 The shape of inner space : theory and the Geometry of the Universe hidden Dimensions> 中


 끈이론으로 예견되는 공간의 차원이 우리가 알고 있는 3차원보다 훨씬 높은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우주의 초기에는 현존하는 3차원도 아주 작은 영역 속에 갇혀 있었으므로 '기존의 3차원'이나 '여분의 차원'이라는 구분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들 중에서 여섯 개의 차원은 그대로 남아 있고 나머지 세 개는 팽창하는 공간과 함께 엄청난 규모로 커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p511) <우주의 구조> 中


 중력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수행된 실험결과로 미루어볼 때, 만일 우리가 3-브레인(brane)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여분차원의 크기는 거의 1/10mm 까지 허용된다. (p542) <우주의 구조> 中 


4. 대칭 


 초끈이론 중 많은 내용은 대칭(對稱 , symmetry)의 원리에 의해 설명된다. 사실 대칭은 물리학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는 개념이다.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역행렬((逆行列, inverse matrix), 통계학에서 베리맥스(Varimax)를 활용한 타당성 분석 역시 대칭을 활용한 예가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대칭의 개념은 매우 효과적인 연구 방법이다. <휜, 비틀린, 꼬인 공간의 신비>는 이런 방식으로 도출된 '칼라비-야우' 다양체를 통해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넘도록 하자.



[사진] 칼라비-야우 다양체(Calabi-Yau manifold)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VividSpecters/mathematics-calabi-yau-manifold/)


 대칭을 이용하면 온갖 종류의 문제들을 더 쉽게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xy=4 라는 방정식의 모든 해들을 구한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무한히 많은 해가 있으므로 한참 걸릴 것이다. 하지만 x=y라는 대칭성을 조건으로 부과하면 2와 -2라는 단 두가지의 해만 존재한다.(p190)...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에너지가 낮은 상태"라고 보며, 이런 상태에서는 초대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는 초대칭이 나타나 입자와 초입자가 동일하게 보인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일정한 에너지보다 낮은 상태에서는 초대칭이 깨지면서 입자와 초입자는 질량등의 여러 성질들이 서로 달라진다.(p190) <휜, 비틀린, 꼬인 공간의 신비> 中


6. 초끈이론 superstring theory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이론이 초끈이론이며, 여기에 공간차원을 하나 확장시킨 이론이 M이론이다. 초끈이론과 관련하여 이미 다른 리뷰에서도 다루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끈의 특징과 초끈이론을 요약한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내용으로 대신한다. 


 끈은 두 가지의 매우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다. 첫째로, 끈은 특정 크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의 범주 안에서 성공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수많은 진동패턴들 중 하나가 중력자(중력의 매개인바)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끈이론은 중력까지도 자연스럽게 포함하는 '만물의 이론'으로서 다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p254) <엘러건트 유니버스> 中


 끈이론에 의하면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최소단위는 끈이며, 끈의 진동패턴은 입자의 질량과 힘전하를 결정하는 가장 원초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끈이론은 아주 작은 영역 속에 여섯 개의 차원들이 똘똘 감겨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영역은 너무나 작아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관측된 적이 없지만, 끈 역시 만만치 않게 작기 때문에 숨겨진 차원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진동하면서 앞으로 이동하고 있는 끈의 입장에서 볼 때, 숨겨진 차원들의 기하학적 특성은 끈의 진동패턴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끈의 진동패턴은 소립자의 질량이나 전하를 나타내기 때문에, 결국 이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숨겨진 차원의 기하학적 특성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셈이다.(p311) <엘러건트 유니버스> 中


 2000년대 이후 초끈이론. M이론과 관련한 많은 우주론 Cosmology 관련 책들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과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위의 개념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개념들을 연계시키는 몫은 온전히 독자들의 과제다. 예를 들면, 초끈이론의 끈을 통해서 우리는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개념을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지식은 더 단단한 끈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면 수학의 세계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는  최근 천제물리학의 개념에 대해 자연스럽게 독자를 안내하고 한 책이기에, 그러한 면에서 훌륭한 천체 물리학 입문서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여기에 머무르기에는 우리의 호기심이 크기에, 이제는 수학적 관점에서 우주의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휜, 비틀린, 꼬인 공간의 신비>는 기하와 위상수학을 활용하여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우주의 모양 The Shape of Space>과 함께 페이퍼로 정리할 계획임을 밝히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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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1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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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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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7-17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주 의미가 시공간이란 뜻이었네요. ㅎㅎ
물리학에서 대칭성이 너무 약방의 감초 느낌입니다. 아마 추측컨데 물리학이 대칭성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때 또다른 도약이 시작될거란 느낌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7-17 21:50   좋아요 2 | URL
우연인지 몰라도 ‘우주‘의 작명은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물리학 곳곳에서 ‘대칭성‘이 활용되다 보니, ‘대칭성‘이 없는 물리학은 생각하기 어렵네요. 반면, 대칭성을 뛰어넘는 이론이 나온다면 말 그대로 직접적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물리학의 혁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galmA 2018-07-18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차원 이론을 도킨스는 소설처럼 여겨서 좀 슬펐어요ㅡ.ㅜ).... 명석하고 객관적이라는 과학자들도 의견이 이렇게 갈리니 일반인 너무 힘듬😥

겨울호랑이 2018-07-18 07:36   좋아요 1 | URL
그만큼 과학도 세분화되고 기존 상식들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나타내는 일화인듯 하네요. 자신의 전문분야 이외에는 쉽게 믿기 어려운...과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만능인들이 나오기는 더이상 어려울 듯 합니다. 덕분에, AglamA님도 저도 머리 아픈 세상에 살게 되었어요.ㅋ 혹시, 저만 그럴까요? ^^:) 그럴지도... ㅜㅜ

베텔게우스 2018-07-18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에도 여러 분과가 있건만, 개인적으로 최근 생명과학에 꽤 경도되어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많이 잊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말씀하신 천체물리학을 접하고 나니 지구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네요. 자유의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이 우주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들은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소개해 주신 책들은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항상 객관성과 엄밀함을 잃지 않는 겨울호랑이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8 09:34   좋아요 1 | URL
제가 적은 글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부족함이 많습니다. 베텔게우스님께서 직접 읽어보신다면, 훨씬 많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예 돌아보지 않으면 모를까, 조금만 들어가도 자신이 모르는 분야가 많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좋은 독서 되시길 바라면서, 아울러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8-07-22 16: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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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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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로고스 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 Logotherapy' 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빈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p168)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는 빅터 플랭클(Viktor Emil Frankl, 1905 ~ 1997)박사가 아우슈비츠(Auschwitz)에서 강제수용되었던 당시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에 바탕한 심리학 이론 로고테라피(Logotherapy)에 대한 개괄을 설명한 책이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자신과 주변인들의 심리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해 나가고 있다. 


[사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출처 : http://lightandlife.org/wpll/?p=1174)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p49)... 이런 반응들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첫번째 단계에서 두번째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p52)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강제수용소에 들어간 수감자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게 되나, 곧 이어 그런 상황에 무감각해지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혐오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고된 수감 생활 속에서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반면, 저자는 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 provisional exist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p128)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저자 빅터 플랭클는 인생의 목표는 사랑이며,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저자는 힘든 수용소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으며, 후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p78)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p120)...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 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p121)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인간은 괴롭고 끔찍한 상황에서 이를 견디어 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 태도의 자유와 이에 따른 선택이 그것인데, 선택을 위해서 인간은 자신 삶의 의미를 먼저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닌, 자신이 갈 길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p138)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이처럼,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는 자신의 수용소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한 로고테라피 이론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먼저 환자는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후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찾기를 요청받고, 그 의미에 맞는 삶을 살아간다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할 수 있다. 


[사진] 기도 (출처 : http://bisporodovalho.saranossaterra.com.br/aonde-esta-sua-mente-e-o-que-ela-esta-pensando/)


 로고테라피에서 우리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自由義志)'강조와  삶의 의미 발견(召命) 등의 요소가 이를 뒷받침한다. 로고테라피 속에서 다분히 종교(宗敎)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수용소 생활을 통한 저자의 실존(實存) 체험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 인간은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로고테라피에서는 종교적인 면을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로고테라피가 기독교 사상과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우리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종교를 넘어선 인간 보편의 '종교적 체험'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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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2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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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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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18-07-14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은 끊임없이 인간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고, 종교와 인문학적 영역에서는 의미 있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과연 과학이 말하는 객관성으로 진정한 객관적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학 또한 세상은 어떠어떠하다는 믿음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과학도 그저 새로운 사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겨울호랑이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4 10:40   좋아요 1 | URL
베텔게우스님 말씀처럼 과학의 세계에서는 생물학적으로는 개체 단위보다 유전자 단위로 생각을 하고, 물리학적으로는 양자역학적으로 이론을 전개하고 있기에, 예전과 달리 인간은 더 이상 독립된 대상이 아닌 일종의 ‘합‘에 불과한 듯합니다. 반면,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에서는 여전히 개체 중심적인 이론을 전개하기에 이들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러한 학문간 충돌 속에서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조금 더 붙인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플랭클은 높은 단계의 사상을 하위 단계의 사상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입니다. 베텔게우스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2018-07-14 1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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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1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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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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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1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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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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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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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식민지가 대영제국에서 독립하려는 합당하고 정당한 이유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독립선언문의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제퍼슨은 정부가 너무 가혹한 정책으로 일관할 때 인간은 정부의 형태를 바꿀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정부의 정통성은 '국민의 동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동의를 얻지 못한 정부는 통치권이 없다는 것이 논지의 기본이었다.(p96)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미국사 The story of America> 中


 하워드 진(Howard Zinn, 1922 ~ 2010)의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A young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미국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독립선언'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역사책이 위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다면,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식민지들이 성장할수록 지배계급은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게 되었다. 최고의 부유층(富裕層)과 극빈층(極貧層)이 존재하는 사이에 백인 중산층(中産層)이 발전했다... 상층계급은 중산층의 충성을 얻는 데 성공했는데, 여기에는 분명 중산층에게 대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p51)... 1760년대와 1770년대의 지배계급은 최적의 방법을 찾아냈다.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에 관한 말이었다.(p52)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1776년 무렵 북아메리카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의 일부 중요 인사들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나라를 세운 후 합중국(United States)이라 칭한다면 대영제국을 위해 식민지를 관리해온 사람들에게서 토지와 재산, 정치 권력을 빼앗을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각으로 미국 혁명을 바라볼 경우 매우 천재적이고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Foundiing Fathers)은 200년 이상 잘 운영되고 있던 국가 통제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p53)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사진]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american-revolution/declaration-of-independence)


 <살아있는 미국 역사>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대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미국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어린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저술한 책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다루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역사를 저술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은 정복이나 살인과 같은 끔찍한 일들을 진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역사를 정부, 정복자, 지배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정부 또는 국가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하는 것이 된다. 그런 역사 속의 배우들은 왕, 대통령, 장군들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농부, 유색인종, 여성, 아이들은 대체 어떤 존재들이란 말인가? 그들 역시 역사를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다.(p24)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살아 있는 미국 역사> 속에서는 미국의 인종, 계급, 성, 연령 문제가 종합적으로 제기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문제, 아프리카 노예 문제, 유럽으로부터의 이주민 문제등을 안고 시작한 미국은 출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온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의 그물망은 흑인들을 아메리카의 노예제로 옭아매었다. 이 그물망은 굶주린 정착민들의 절망적인 위기감, 고향을 잃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무기력함, 노예무역 상인들과 담배 재배자들에게 보장된 이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을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법과 관습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식민지 지배자들은 백인들과 흑인들이 평등하게 함께 단결하지 못하게 차단하기 위해 가난한 백인들에게 신분상의 작은 이익과 혜택을 주었던 것이다.(p40)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영국에서 건너온 법률과 사고방식은 여성들에게 또 다른 족쇄가 되었다. 여성이 결혼할 경우 남편이 그녀의 주인이 되는 것이 당시의 법률이었다. 아내에 대한 권리가 남편에게 있었다. 죽이거나 평생 낫지 않을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 남편은 아내에게 체벌을 가할 수도 있었으며, 아내의 재산과 소유물 또한 남편의 소유가 되었다. 아내의 재산이 곧 남편의 재산이기도 했다.(p81)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1979년 미국에는 아파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살 수 없는 아이들이 100만 명이나 되었다. 그 아이들이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증거 자료가 없었다. 17세 이하 1,800만 명의 아이들은 치과에 가본 적도 없었다... 매리언 라이트 에덜먼(Marian Wright Edelman)은 의회에서 아동 건강 프로그램 예산을 8,800만 달러 감축함으로써 아동 보호를 위한 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p263)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살아있는 미국 역사>에서는 미국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또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부의 대농장주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흑인 노예들과 가난한 백인들이 베이컨의 반란 같은 대규모 봉기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은 흑인들과 백인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버지니아의 노예제를 연구한 역사가 에드먼드 모건은 <미국의 노예 제도, 미국의 자유>에서 인종차별이란 흑백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은 백인 지배자들이 흑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장했다는 것이다.(p51)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살아있는 미국 역사>는 처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출발한 신생국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는데, 하워드 진의 글을 통해 저자의 역사관을 자세히 살펴보자.


 필자는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숨겨진 단면들, 사람들이 권력층에 저항하거나 함께 단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순간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과거의 역사 가운데 전쟁의 장면보다 선의와 용기의 장면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미국 역사에 대한 필자의 접근 방법이다.(p25)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이러한 저자의 글속에서 조셉 캠벨(Joseph Cambell, 1904 ~ 1987)의 영웅(英雄)에 대한 정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살아있는 미국 역사>를 바라볼 때, 하워드 진이 바라보는 '민중'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오직 탄생(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p2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中


 민중(people)이라는 이름의 영웅(hero)들이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끊임없이 재생되고 부활하는 과정을 미국 25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려낸 책. 그 책이 <미국민중사>이고,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 역사>는  이를 위한 도입부(Intro)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PS. <살아있는 미국역사>를 읽으면서 이 음악이 계속 연상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미국 민중사>를 잘 나타내는  OST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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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18-07-11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미국 역사서들이 주로 국가와 지배층을 기본 단위로 하여 역사를 바라보았다면,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는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관점을 취했네요. 그런 시각으로 보면, 과연 미국사는 그 시작점부터 모든 개인이 자유를 위해 투쟁한 역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더욱 듭니다. 겨울호랑이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2 00:13   좋아요 2 | URL
비록 미국의 역사가 짧지만,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베텔게우스님의 말씀을 통해 저 역시 다른 관점에서 미국사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7-12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7-15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조만간 미국 민중사 읽어볼 생각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5 1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독서 시간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괴델의 아이디어는 사실상 "S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문장 S를 만드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해보면 그런 문장은 참인 동시에 증명 불가능하다. 이런 문장을 수론의 언어 내에 짜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 괴델의 놀라운 성취이다... 괴델의 두 번째 불완전성 정리는 "이론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순인 공리계 T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것이 무모순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괴델은 T가 무모순이면,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수론의 문장으로 부호화했을 때) T로부터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따라서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참이면서도 증명불가능한 문장이다.(p259) <Mathematics 2> 中 


<괴델의 증명>은 괴델(Kurt Godel, 1906 ~ 1978)의 불완정성 정리(Godel's incompleteness theorems)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한 책이다. 얇은 분량의 책이지만,  불완정성 정리의 전체적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라 여겨진다. 책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괴델은 정리를 도출하기 위해 초수학(meta-mathematics 수학을 설명하는 언어)을 수학의 질서로 끌어들인다. 각각의 언어에 정수를 부여함으로써, 초수학적 개념을 수리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괴델은 '임의의 산술공식 G는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산술 공식 스스로 주장'하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사상(寫像 mapping)의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즉, '대상 object'의 한 영역에서 구체화된 관계의 추상적 구조가 다른 영역의 '대상' 사이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괴델이 그의 증명을 구축하는 데 바탕으로 삼았던 것도 바로 이런 특징이었다.(p83)... 괴델은 참값으로 진술된 어떤 초수학적 명제에 대응하는 산술 공식이나 그 명제의 부정 否定에 대응하는 산술 공식은 어떤 것도 산술 계산식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법을 고안했다.(p85) <괴델의 증명> 中


 괴델이 입증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얻은 주된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괴델은 산술 전체가 포함되는 포괄적 체계의 무모순성을 초수학적으로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증명했다. 그런 증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산술 체계의 정리를 유도하는 데 사용되는 변형 규칙과 근본적으로 다른 추론 규칙을 사용해야 한다는 자체 모순이 있다.(p76) <괴델의 증명> 中


  괴델의 두 번째 결론은 더욱 놀랍고, 가히 혁명적이다. 공리적 방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사실을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다. 괴델은 <수학원리>를 비롯해서 산술학이 전개될 수 있는 다른 어떤 체계도 근본에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달리 말하면, 모순되지 않는 산술 공리로 이루어진 임의의 집합이 주어질 때, 그 집합에서 유도될 수 없는 참값의 산술적 명제가 있다는 것이다.(p77) <괴델의 증명> 中


 '어떤 체계를 설명하는 명제의 무모순성을 그 체계 내에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정리되는 '괴델의 증명' 를 바탕으로 서양 철학의 오랜 과제인 신 존재 증명(Proof for the Existence of God) 과제를 다시 살펴보자. 괴델의 신 존재 증명 식은 다음과 같다. 


공리1. (이분법) 속성은 그 부정이 부정적일 경우에만 긍정이다.

공리2. (닫힘) 속성은 긍정적인 속성을 가진 경우에만 긍정이다.

정리1. 긍정적 속성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다시 말해 실례를 가질 수도 있다.)

정의.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만이 신적이다.

공리3. 신적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속성이다.

공리4. 긍정적인 속성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정의.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리2.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 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의. NE(x) : 핵심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x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공리5.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은 신적이다.

정리3. 신적인 x는 반드시 몇몇 개가 존재한다. (p382) <신의 베틀> 中


  괴델의 신 존재 증명은 이처럼 '신적인 것은 몇몇 개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지지만, 이것이 신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식 이전에 이미 '신(神)적인 것'에 대한 전제가 증명에는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위의 증명에서 일관성, 긍정성, 존재성 등을 신의 속성으로 받아들였을 때에만, 다음 공리와 정의로 넘어갈 수 있는 이 증명은 객관성과 타당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중세 철학의 신 존재 증명을 살펴보자. 


 켄터베리의 안셀무스(Anselmus Cantuariensis, AD 1033 ~ 1109)가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Monologion & Proslogion>에서 '존재하는 것들 중의 가장 좋은 것, 가장 큰 것, 가장 높은 것'을 신(神)이라 부르는 것에서 증명을 시작하고, 이러한 존재가 존재할 수 없다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신 존재를 증명한다. 

 

 이 큰 선(善)은 모든 선이 그것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통해 per se 선하다. 따라서 그 밖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선하고, 오직 이 큰 선만이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선하다. 오직 그 자체를 통해 선한 것만이 바로 최고선(God)이다. 그러므로 최고선은 또한 가장 큰 것이기도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최고 summum omnium quae sunt 이기도 하다. (p19)...그리고 확실히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단순히 지성 속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p187)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中


 돌아가서, 괴델의 신 증명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보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신의 창조물인 인간은 인간과 자연을 설명하는 법칙을 포함하는 신 존재를 수학 공리 체계 내에서 모순성을 포함한 존재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결론이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쉬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이 그 내용을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개략적인 내용을 아는 것마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괴델의 증명>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가솔린 엔진( 출처 :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gasoline-engine)


 우리는 자동차 엔진의 부품과 기능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별 불편함없이 운전을 한다.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것에 큰 불편함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학에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굳이 연습장과 연필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수험생은 제외) 만화책을 읽듯이 편하게 수학책을 접했을 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나는 만화책을 편하게 읽지는 못하는 편이다.


PS 2. 어떤 체계를 설명할 때 그 체계 내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자. 이것은 '괴델의 불완전성 증명'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의미가 아닐까.


 옛날 중동지방의 어느 부유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세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17마리의 낙타를 물려 줄 터이니 맏이는 절반을 갖고 둘째는 1/3을 갖고 막내는 1/9을 갖거라.단, 반드시 산 채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고민하던 삼형제는 때마침 지나가던 상인으로부터 낙타 1마리를 빌려 유산을 나눌 수 있었다...


 공부가 안 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때는 잠시 바람을 쐬거나, 커피를 마셔보는 것이 어떨까. 잠시 주위를 환기 시킨 후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분명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아까 할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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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7-0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할걸...‘에서 빵 터져 웃습니다.
점심 먹고 잠이 쏟아지는 오후, 덕분에 경쾌하게 시작합니다.
일단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잠을 깨볼려구요~^^

겨울호랑이 2018-07-05 14:30   좋아요 1 | URL
저도 친구에게 들은 농담이었습니다. 날이 많이 덥네요. 양철나무꾼님께서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07-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연찮게 요즘 저와 비슷한 소재 책 읽으셨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7-05 20:01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시니, 북다이제스터님의 관심사가 아닌 책을 고르기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갱지 2018-07-05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아요:-), 말그대로 모순 없는 체계 안에서 증명을 하다보면 그 체계가 모순일 수 있다는 거죠? 인간이 한자락 깔고 신을 증명하듯이... 제 짧은 머리로는 한계가 오네요. 후후
문득 괴델이라는 사람의 종교적 신실함이 궁금해지네요.


겨울호랑이 2018-07-05 20:19   좋아요 1 | URL
저도 ‘불완전성 정리‘를 완벽하게 아는게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체계 내에서 그 체계의 모순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기에 갱지님의 말씀과 큰 틀에서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괴델의 삶을 보면 다른 논리학자들과는 달리 종교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니데이 2018-07-05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의 ˝아까 할 걸.˝ 같은 마음에 요즘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겨울호랑이님, 시원한 여름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7-05 21:37   좋아요 1 | URL
^^:) 제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오네요.. 뭐 지금 하는 것이 남은 인생 중 가장 빨리 하는 것이라니, 마음 편히 드시고 행복한 하루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8-07-05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선생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여전히 신 문제로 옥신각신 중ㅎㅎ
신이 있다 없다를 차치하고서 기독교적 세계가 그들의 종교를 믿는 자만 구원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폐쇄적이고 지극히 인간적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신이라는 전제에 모순이 생겨요. 그러니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란 말이 나올 밖에^^;

겨울호랑이 2018-07-05 22:03   좋아요 1 | URL
^^:) 기독교 이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도 제법 알고 임습니다. 물론 아닌 분도 있겠습니다만. 신이 있다 없다의 문제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08 23:47   좋아요 1 | URL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어디서 말이 들었다 생각했는데, 혹시 <죄와 벌>에 나오는 문장이 아닌가 싶네요...

AgalmA 2018-07-09 00:45   좋아요 1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관념적 인간인 이반 카라마조프가 신을 부정하며 내세우는 논리죠^^ 무신론을 논할 때 철학이나 기타 인문학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죠.

겨울호랑이 2018-07-09 00:28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이반도 알게 되네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속에서 도박을 좋아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혹시 그래서 ‘도선생‘은 아니겠지만요..

AgalmA 2018-07-09 00:34   좋아요 0 | URL
이번 주 내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었어요. 당시 과학과 유럽 사상의 범람 속에 도선생이 인간의 휴머니즘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엿보이는 작품이죠. 거의 다 읽고 이제 리뷰를 써야 하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ㅎㅎ....겨울호랑이님도 무슨 책을 읽다가 생각나서 말씀하신 게군요~
그래서 도선생ㅋㅋ 역시 이름은 중요해ㅋㅋ 저도 어디서는 개장수의 뜻으로 불리는 건 아닌지ㅋ 그런 이름에 관련된 언어 유희들도 도선생 책에 많이 나와요ㅎ

겨울호랑이 2018-07-09 00:3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과 과제가 늘어났네요. 한 권 읽으면 보관함에는 세 권이 쌓이니 만년 독서수지는 적자입니다 ㅋㅋ

2018-07-06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7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7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은 중국에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전래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네스토리우스 파의 생성과 중앙아시아, 중국으로의 진출과 소멸등의 과정 속에서 이들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의 내용을 따라 가보도록 하자.  

 

 안티오키아 태생이고, AD 427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를 지낸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C 말 ~ 451)가 이끄는 이단은 교회의 분열을 낳았으며,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론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두 개의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실재하며,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란 호칭도, '신의 어머니(Theotokos / Deipara)'란 호칭도 붙일 수 없고, 단지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게돈 공의회(AD 451)에서는 단성설을 거부했으며, 네스토리우스의 논문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가 두 가지 본성, 즉 인성과 신성을 가진 유일한 위격 位格이라고 선언했다. 불만을 품은 네스토리우스 추종자들은 자치적인 교회를 설립했으며, 이 교회는 이슬람교가 도래하기 전까지 폭넓게 확산될 운명이었다. 즉 민족 교회가 된 페르시아, 아라비아, 시리아, 인도, 심지어는 수백년 동안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살아남은 중국까지 확산되었다.(p155)' <중세 1 : 야만인,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의 시대> 中


[지도] 네스토리우스 교회의 전파(출처 : http://rolfgross.dreamhosters.com/ManandhisGods/CHRIST/Christianity.html)

 

 동방으로의 전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갔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영내를 빠져나와 파르티아 왕조가 지배하던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적어도 2세기 말까지는 이란을 거쳐 박트리아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부근- 지방까지 퍼지게 되었다.(p101)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AD 5세기경 칼게돈 공의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로마를 떠나 사산조 페르시아로 전파 되면서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지만,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이들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에서 박해를 당한 이들 네스토리우스 일파는 중앙아시아를 건너 중국에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여기서 잠시 당대(唐代)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샤푸르 2세의 치세(AD 309 ~ 379)에 기독교도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 312 년에 기독교로의 개종을 선언하고 이어서 AD 324년에는 동서로 분열되어 있던 제국의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AD 318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처음에는 부분적이었지만, AD 339년 이후에는 전면적인 형태로 확대되었다.(p104)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연구자별로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수일 교수에 따르면 이 비(碑)는 네스토리우스파보다 정통 기독교에 근거한 기독교도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중국에서 기존 종교와 타협을 모색하다가 자리잡지 못하고 소멸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의 저자 김호동 교수와 일치된 견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도 소멸한 이들 네스토리우스파는 어디로 갔을까. 


[사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출처 : 위키백과)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비문에 보이는 경교의 기본 교리와 전도상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당대(唐代) 경교는 신관이나 성관, 구원관 등 기본 교리에 입각해 판단하면 정통 기독교에 바탕한 고대 동방 기독교의 일파다. 2) 당대 경교는 비록 페르시아 기독교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어떤 상관성은 찾아볼 수 있으나 이단으로 모함된 네스토리우스파 그 자체이거나 또는 그 동전(東傳) 동문(同門)은 아니다.  3) 당대 경교는 시종일관 외래적 이방 요소를 탈피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타종교와 융화, 타협하고 왕치위본주의적인 전도를 표방함으로써 250여년이란 짧지 않은 생존 기간을 갖고도 토착화하지 못한 채 종당에는 중원 일원에서 멸적하고 말았다.(p97) <문명교류사 연구> 中


 비문의 서두에 천명된 경교 교리의 핵심 내용은 서방의 정통교단에서 주장하는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 양성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전교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핵심적인 관념을 불교나 도교의 용어에서 차용하던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p127)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네스토리우스 파는 중국에서 벗어나 육로 실크로드 인근 도시를 대상으로 선교를 강화했고,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다. 이들의 주된 선교지였던 중앙아시아는 몽골도 포함되는데, 이 지역의 유력부족장 역시 네스토리우스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사제왕 요한 전설의 한 갈래가 태어나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교는 9세기 후반 이래로 중국 본토에서는 종교적 탄압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서 거의 소멸되는 운명을 맞았지만, 실크로드 연변의 도시와 촌락들에서는 오히려 확고한 근거지를 확보하면서 교세를 넓혀나갔고, 오대십국 시대 이래로 줄곧 이민족의 통치하에 들어간 북중국에서도 그런 대로 명맥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스토리우스교가 이처럼 중앙 아시아와 중국 서부, 북부에서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대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많은 수의 현지주민들을 개종시켜 신도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p170)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사제왕 요한 전설 그리고 소멸


 이슬람 세력에 의해 포위된 중세 유럽인들에게 저 멀리 어디엔가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전설은 널리 퍼져 있었다. 사제왕 요한 전설 속의 나라는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로 생각되어지기도 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어느 왕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중에서 중앙아시아의 사제왕 요한은 칭기스칸(Cinggis Qaγan, AD 1155 ~ 1227)과 대립했던 커레이트 족의 옹 칸으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칭기스 칸은 처음에 몽골리아 최강의 세력을 자랑하던 케레이트족의 옹 칸 - 본명은 토그릴- 휘화에 있으면서 그를 도와 여러 차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몽골비사>에 의하면 개띠 해인 AD 1202년에 전투가 벌어져 케레이트측이 패배하고 옹 칸은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케레이트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어왔고, 딸인 소르칵타니 베키 역시 기독교도였다. 따라서 옹 칸은 사제왕 요한으로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던 셈이었다.(p61)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몽골비사>에 따르면 케레이트의 옹 칸은 칭기스 칸의 아버지 예수게이 때부터 깊은 동맹의 관계였으나, 몽골의 세력이 커지면서 결국 케레이트/ 나이만 부족은 몽골 부족으로 병합되고, 옹 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사제왕 요한의 전설은 끝나게 된다. 그렇지만, 사제왕 요한의 전설은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AD 1460 ~ 1524)의 항해 목적 중 하나가 기독교 왕국의 발견이라는 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랫동안 유럽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케레이드의 옹 칸은 선대 예수게이 칸 시절에,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예수게이 칸과 의형제를 맺었다. 의형제를 맺게 된 내력은 옹 칸이 자기 아버지 코르차코스 보이록 칸(소생)의 동생들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작은아버지 구르 칸과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싸움에 져서 카라온 협곡으로 숨어들었다가 겨우 100명만 데리고 빠져 나와 예수게이 칸에게 오게 되었다. 예수게이 칸은 그를 자기에게 오게 하고, 자기 군대를 출동시켜 구르 칸을 카신 쪽으로 몰아내고 그 백성을 도로 빼앗아 옹 칸에게 돌려주었다. 그 일로 해서 두 사람은 의형제가 된 것이었다.(150) (p118) <몽골비사> 中 

 

 옹칸과 셍굼은 몸만 빼어 달아나다가 옹 칸이 목이 말라 디딕 사칼의 네쿤 오손에 들어갔다가 나이만의 전초 코리 수베치의 지역에 들게 되었다. 코리 수베치가 옹 칸을 체포했다. "나는 옹 칸이다"하고 신분을 밝혔으나 못 알아보고, 안 믿고 거기서 죽였다.(165)(p165) <몽골비사> 中


 옹 칸의 딸인 소르칵타니 벡키는 쿠빌라이 칸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나라에서 네스토리우스파의 경교는 별다른 탄압을 받지 않고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AD 14세기 중반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에 의해 공동체가 붕괴되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아시스나 초원의 교역로를 따라서 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의 경우 흑사병의 엄습은 거의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시크 쿨 호반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비석들이 AD 1345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가 흑사병으로 소멸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p293)<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의 문화 공헌


 이처럼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는 역사속으로 소멸되었지만, 이들이 이슬람과 중국 사회에 남긴 영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슬람 문명은 이들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s, BC 384 ~ 322) 등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 문화를 습득할 수 있었으며, 중국 문명은 이들로 인해 기독교의 요소들을 불교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보다 사상적으로 심화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이슬람의 현자들은 두 가지 경로로 그리스의 과학에 대한 문헌을 접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방법은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중심 도시들에 남아 있던 그리스어 원본이었으며, 다른 방법은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이 그리스의 원본을 시리아로 번역한 2차 사료였다.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은 6~7세기에 페르시아 동쪽 지방에 위치한 준디스하푸르와 같은 도시에서 활동했고, 이곳은 당시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했다.(p444) <중세 1 : 야만인,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의 시대> 中


 우리에게 이단으로 알려진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의 존재는 아직 낯설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십자가를 통해 이들이 일찍이 우리 문화에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 영향은 미미했겠지만. 


[사진] 불국사 돌 십자가(출처 : http://photohs.co.kr/xe/baejae/677)

 

 중국에 전파된 고대 동방 기독교의 일파인 경교(景敎)의 이러한 융화와 타협의 일면을 이해하는 것은 인접한 한반도에 유입된 기독교의 실체를 알아내는 데 귀감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유입된 기독교가 경교라고 가정할 때, 불국사 경내에 십자가가 묻혀 있을 수도 있으며, 불교 속에 기독교적 요소가, 기독교 속에 불교적 요소가 섞여 있을 법도 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불교 속의 기독교적 요소는 어디까지나 불교 유입의 수반품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종교로서의 기독교 자체의 직접적인 유입이나 전파라고는 볼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초전에 불과한 것이다.(p599) <고대문명교류사> 中


 네스토리우스 파는 유럽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힌 인정받지 못한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이 교류하고 다양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사회와 역사는 이처럼 기억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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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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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4: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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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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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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