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p29) <신화의 힘> 中


 조셉 캠벨(Joseph Cambell, 1904 ~ 1987)과 빌 모이어스(Bill Moyers, 1934 ~ )는<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을 통해 '신화(神話, Myth)'가 현대 우리 삶에서 주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생각하기 쉬운 신화가 과연 '잠재력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p41) <신화의 힘> 中 


 자연은 곧 우리의 본성이고, 신화에 등장하는 멋진 시적 표현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반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외부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어서, 신화적 이미지를 읽으면서도 그것을 우리 자신과 관련시키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내면의 세계는,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와 구조와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 외계는 우리가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바로 이 외면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 외면의 세계와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p118) <신화의 힘> 中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신화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의례(儀禮)를 통해 사람들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내면 세계를 표현하게 되는데, 사회적으로 신화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외면의 표상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 내면을 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도 신화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이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허상(虛像)이 아닌 실상(實像)을 바로 보기 위해 우리는 삶의 근원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모험을 하는 이를 캠벨은 '영웅(英雄, hero)'라 부른다.


  우리는 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졌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적인 원형이에요. 우리 삶의 시작에는 두려움도 없고 욕망도 없어요. 그냥 시작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러다 존재하게 되니까 여기에서 두려움과 욕망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려움과 욕망을 버리고, 우리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한 점으로 돌아가보세요. 이 한 점이 바로 요체랍니다.(p394)... 이 발화점은 존재의 모습이 확정되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선악과는 무관하고, 공포도 없고 욕망도 없는 순수무구한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생성되는 삶의 모습입니다.(p395) <신화의 힘> 中


 우리 삶의 에너지는 바로 무의식의 심층에서 솟아오릅니다. 우리 삶은 어디에선가 쉴새없이 솟아오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으로 끊임없이 생명을 내어보내는 곳, 이곳이 바로 무궁무진한 에너지의 근원인 것입니다.(p393)<신화의 힘> 中 

 

 캠벨에게 영웅은 세상을 구원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화해시키는 노력을 하는 이,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벗어나 초월하는 존재가 캠벨이 말하는 영웅이며, 영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작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p89)...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p91)...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p92)<신화의 힘> 中


 영웅의 시련에서 핵심은,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낼 수 있지요. ...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인 겁니다.(p234) <신화의 힘> 中


 시련과 이의 극복을 통해 영웅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된다. 모든 시공간( Time- Space)을 넘어선 영원(永遠) 속에서 영웅의 모험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자신안에서 서로 다른 두 세계(몸-마음, 필멸-불멸, 삶-죽음 등등)을 통합시키고 만물이 하나됨을 진정으로 알았을 때 끝나게 된다.


 속세의 근원은 영원입니다. 영원은 스스로 이 세상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신에 관한 기본적인 신화적 관념이 바로 영원입니다. 신은 하나여도 속세에 내려와서는 여럿으로 나뉘어 우리 안에 거하게 되지요. 그런데 영원이라는 것은 모든 생각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p102)... 끝나지 않는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p405)  <신화의 힘> 中


 '초월자'라는 말의 본뜻은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의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p126)... 무엇이든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범주를 초월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p127) <신화의 힘> 中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이 만물이라는 것은 이승에서는 선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고 악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이면을 꿰뚫어보아 버리는 것이지요. 여기에 이르면 속세적 욕망이나,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놓여납니다.(p301)... 필멸(必滅)의 팔자와, 우리 안에 있는 초월적 영생불사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p409)... 형이상학적 깨달음이란 '우리'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 '우리'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p211) <신화의 힘> 中

 

 <신화의 힘>에서 캠벨은 '신화'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며, 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근원을 깨닫고 자신을 변모(transformation)하는 도구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의 사회적 기능과 개인적 기능은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하지만, 때로는 충돌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캠벨은 다음과 같은 말로 '깨달음'을 강조한다. 깨달음을 통해 우리 삶의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신화가 현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된다.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p34) <신화의 힘> 中


[사진] Darth Vader(출처 : www.starwars.com/databank/darth-vader)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현대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진짜 괴물 같은 힘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삶에 대한 위협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p265) <신화의 힘> 中


 마지막으로, 가면(mask)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다스베이더(Darth Vader)가 쓰고 있는 '가면'은 이어지는 캠벨의 신화 4부작의 핵심어(key word)이기도 하다. '가면'을 통해 무형(無形)의 존재가 유형(有形)의 존재로, 영원의 존재가 현세에 임하면서 축제가 생명력을 얻는다는 <신의 가면> 속의 가면과 스타워즈(Star Wars)의 가면은 다른 의미를 지니겠지만, 캠벨의 저작에 흐르는 일련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축제에서 가면은 그것이 표현하는 신화적 존재의 참된 환영(幻影, apparition)으로 숭배되고 경험된다. 가면을 만든 것은 사람이며 그것을 쓰고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신의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의례가 행해지고 있는 동안 그 신과 동일시된다.... 그러한 신의 환영은 구경꾼과 행위자의 감정에 실제적인 힘을 미친다.(p35) <신의 가면 1 : 원시신화> 中


 

 위에서 보듯 <신화의 힘>은 캠벨의 신화학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이기에, 신화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신화의 힘>의 대담 내용은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경우 <The Power of Mtyh>은 좋은 대본집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Episode 1,2 편은 조회가 되지 않기에 3편부터 시청해야 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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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도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한 정치경제학에서 가치라는 단어는 언제나 교환가치를 의미한다. 이것을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그의 후예들은 교환가능한 가치(exchangeable value)라 불렀는데, 이는 교환가치(exchange value)로 써야한다.(p24)... 교환가치는 가격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는 한 물건의 가격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돈으로 표현된 그 물건의 가치를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의 가치, 즉 교환가치는 그 물건의 일반적인 구매력, 다시 말해서 그 물건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 전체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역량을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p25) <정치경제학원리 3>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는 <정치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에서 가치(價値, value)를 가격(價格, Price)과 구별하여 사용한다. 가치와 가격 모두 시장(市場, market)을 매개로 형성된다고 했을 때, 화폐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 사회에서 교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 ~ 1950)는 <증여론 Essai sur le don>에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문명의 사례를 통해 시장 형성 이전의 교환행위를 분석했다.

 

 시장가치(市場價値, valeur venale)밖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도 시장가치 외에 감정가치(valeur de sentiment)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은 단지 상업적인 것만이 아니다... 선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는 좀 더 열등한 상태로 떨어지며, 답례할 생각 없이 받았을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p249) <증여론>


  사회생활이라는 특수한 생활에서는 우리 사이에서 아직도 일컬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빚이 남아 있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접'은 언제나 돈이 더 많이 들고 큰 것이다... 초대는 제공되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빠지면, 그것은 나쁜 징조, 질투와 '저주'의 조짐 또는 표시였다.(p253) <증여론>


 증여(또는 선물)하는 행위가 사회 생활의 기초라는 모스의 분석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직장 회식(會食)문제, 역사적으로는 조공(朝貢) 외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증여론>과 연관되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스의 의견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모스의 분석에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셜 살린스(Marchall Sahlins)는 <석기시대 경제학 Stone age Economics>에서 모스의 <증여론>에 대해 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음을 비판했다. 

 

 하우는 비록 영(靈)이라고 하더라도 퍼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 자체가 저절로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재화 자체가 위험스러운 것이 아니라 재화를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행위가 비도덕적이다. 따라서 속인 사람은 다름아닌 정당화될 수 있는 공격에 노출된다는 의미에서 위험하다.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사회는 교환관계와 교환형태를 통해 타인을 희생시켜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자유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그런 사회이다. 라나피리가 제시하는 요지는 호혜성을 초월한다.그것은 선물이 적절하게 보답되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보답이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234) <석기시대 경제학> 中


 살린스에 따르면 원시시대에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이익을 따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는 원시시대 인간은 이타적 존재라는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과 맞닿아 있는 반면, 모스는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의 견해에 가까운 것으로 대조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고 일단은 넘기자.

 

원시교역의 경제적 균형은 자율적인 개인이나 기업이 구매자와 판매자로서 대등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그것은 공동체 내부 경쟁을 금지하고, 서로에게 관대성의 의무를 지고 있는 파트너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끌어모으며, 관대하지 않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제도적 배열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유사한 '가격'을 도출한다.... 원시적 교역체계는 재화의 가용성과 효용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교환율을 통해 이들 개인을 거래 관계 속으로 끌어들인다.(p383) <석기시대 경제학> 中

 

 세밀하게 검토해보면 사실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진술은 하나의 유용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수렵채집민이 풍요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비극이고 인간은 무한한 욕구와 희소한 수단 사이의 항구적인 불일치하에서 힘겨운 노동의 원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한다.(p26) <석기시대 경제학> 中 


 교환의 동기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는 두 저자(모스, 살린스)지만, 이들 모두 민속지학(民俗誌學, ethnography)의 관점에서 교환과 원시 시대의 경제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 1892 ~1957)는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 Man makes Himself>에서 이들의 방법 자체를 비판한다.

 

 현존 야만인들이 선사시대 수준의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조직, 신앙체제, 친족체계 등이 선사시대와 비슷한 수준이고, 그 이후 변화 발전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p76)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中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과 도시혁명>에서는 교환 행위를 개인과 공동체 내부의 관점 분석하기보다 '도시-비도시', '정주생활지 - 유목생활지' 사이의 교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중심지- 주변부' 관계로 교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폐쇄계(closed system)의 교환에서 개방계(open system)의 교환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신석기 혁명이 정점에 달하자 정주생활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반 건조지역에서 정주생활에 적합한 곳은 제한적이었고 이에 충적대지와 소택지를 중심으로 한 관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p157)... 충적대지의 정착민의 경우, 잉여농산물은 풍부한 반면에 축산물, 어류, 사냥 고기, 그리고 귀금속 등이 부족하기에, 그들 주변의 수렵채집민이나 유목민과의 교역으로 그 부족분을 보충하였다. 이에 자연스럽게 신석기시대의 자급자족적 경제는 상호의존적 경제체제로 변모해 나갔다.(p165)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中


 육상운송에서 바퀴달린 수레의 사용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바퀴는 도자기 생산을 위한 녹로에도 사용되어 기계 산업의 길을 열었다.(p179)... 문자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고, 이런 문자로 경험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고대인의 사고에 침투해 들어갈 수 있다.(p263)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中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혁명을 도시혁명으로 이끈 요인 중에 바퀴와 언어를 언급했는데, <말, 바퀴, 언어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는 이와는 달리 중앙유라시아 초원 유목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변경은 경제적 필요가 공공연한 적대감을 막아줘 귀중품들을 상호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평화로운 교역의 장소로 그려질 수도 있고, 혹은 문화적 오해와 부정적 선입견 및 양자를 연결하는 제도의 부재로 인해 증폭된 불신의 장소로 그려질 수도 있다. 농경적인 유럽과 초원 사이의 변경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즉 인정사정없이 대립하는 농경과 목축 사이의 경계로 여겨졌지만, 이는 잘못된 선입관이다.(p346) <말, 바퀴, 언어> 中


 <말, 바퀴, 언어>의 저자 데이비드 W.앤서니(David W. Anthony)는 '농경민족 VS 유목민족'의 관점에서 청동기 시대 유라시아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 협조하는 관계였음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석기 시대 경제학>의 살린스와 통하는 바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참나무에 의하면 서기전 3760년 이후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가 돌아왔지만, 그때는 다뉴브 강 하류 하곡과 발칸의 문화가 극적으로 변한 뒤였다. 서기전 3800년경 이후 나타난 문화들은 가정의례에서 여성상을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더 이상 구리로 된 나선형 팔찌나 국화조개로 만든 장신구를 차지 않았다.(p334)... 야금술, 채굴, 토기 제작 기술은 양이나 기교 면에서 급격히 퇴보했고 토기제작 기술은 양이나 기교 면에서 급격히 퇴보했고 토기 및 금속 물품은 양식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고유럽의 종말은 서기전 6200년 스타르체보-크리슈 개척자들에 의해 시작된 전통을 단절시켰다.(p335) <말, 바퀴, 언어> 中


 앤서니는 환경적인 요인 또는 알 수 없는 어떠한 요인에 의해 고유럽 문명이 종말을 고했고, 이러한 농경 문화의 쇠퇴 속에서 기마 유목 민족의 등장은 새로운 지원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전쟁으로 더욱 악화한 흉작이 좀더 유동성 있는 경제 체제로의 이동을 촉진했을 것이다. 이런 이동이 일어나자 초원의 목축 부족은 꾀죄죄한 이주자 혹은 경멸스러운 습격자에서 탈피했다. 요컨대 새로운 경제 체제가 요구하는 가축 자원을 풍부하게 거느린 족장이자 후원자로서 더 큰 가축 떼를 관리하는 새로운 방식을 습득한 이들로 탈바꿈한 것이다.(p378) <말, 바퀴, 언어> 中


 여기까지 내용을 정리해보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교환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원리>를 통해 '교환가치'과 '가격'을 구분했다. 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도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교환이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모스는 이에 대해 '증여'를 통한 관계 유지로 설명한 반면, 살린스는 '함께 살아가려는 동기'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이들의 의견 모두는 공동체 내애세 교환을 분석한 반면,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을 통한 도시화를 통해 교환을 바라보면서 거시적으로 교환과 그 영향을 분석한다. 그리고, 앤서니는 이같은 전통적인 '중심부-주변부' 관점에 반대하고, 상호협조적인 관계로 문명간의 교환을 바라보고 있다.


 <말, 바퀴, 언어>를 통해 우리는 유목민족의 문화가 결코 농경민족의 문화보다 열등한 문명이 아닌 서로 대등한 문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훈족의 아틸라(Attila, AD 406 ~ 453)로 대표되는 '야만 유목 민족'이라는 우리의 편견을 이제는 버려야할 때가 아닐까.

 

 문명과 문명권 인식에 관한 잣대로 유목기마민족들이 창조한 제반 문화 요소를 가늠해 보면, 그들 역시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권을 이루어놓았음을 갈파(喝破)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통해 그들 공유의 결과물(結果物)인 문명을 창조하여 인류 문명의 공영에 기여하였다... 요컨대 그들의 문화는 문명 구성 요소에서의 독특성(상이성)과 문명의 시대성 및 지역성이 보장되고 생명력이 유지됨으로써 문명권 형성의 제반 요인들을 구비하였던 것이다.(p227) <고대문명교류사> 中


  해류(海流)에서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만나는 곳에 어장(魚場)이 형성되는 것처럼,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가 만나는 곳에서 활발한 교역이 일어났으며 그 중심지가 바로 중앙아시아라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세계열강들이 이곳에서 펼치고 있는 게임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의 서진> <그레이트 게임> <현대 중동의 탄생>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소 늘어진 페이퍼가 되버렸지만, '교환'이라는 주제로 <국부론>으로부터 <중국의 서진>을 관통하는 일련의 흐름을 정리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말, 바퀴, 언어>에서도 '증여'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다만, 모스의 <증여론>과 다른 증여의 역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계급사회에서의 '증여'는 상대적으로 평등산 시기의 '증여'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회의 종교와 사회 구조는 모두 맹세로 구속되는 약속에 기초했는데, 그 약속이란 후견인(또는 신)이 피후견인(또는 인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소와 말을 선물로 줄 것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이 의무를 보증하는 맹세는 원칙적으로 고 유럽 텔 출신의 피후견인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p378)... 인도, 유럽 공통조어 사용자들은 훌륭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선물과 명예 그리고 예상치 않은 약탈/노획물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성취에 기초해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p379) <말, 바퀴, 언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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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3-09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를 볼 때마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서적이 늘어나는것 같아서 즐겁기도 하고 부담도 됩니다! 항상 좋은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즐건 주일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19-03-09 22:55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께 즐거운 부담을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감사의 말씀 전하며, 막시무스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9-03-10 0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보한스 2019-03-16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움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9-03-16 11:32   좋아요 0 | URL
바보한스님께 작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9-03-1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겨울호랑이 > <총, 균, 쇠> : ‘도전과 응전의 역사‘에 대한 근본적 물음

오늘 올린 「중국의 서진」과 관련하여 「총, 균, 쇠」의 내용과 관점이 의미있다 생각했는데, 마침 2년전 올린 글이 있어 참고로 올립니다. 자세한 비교는 추후 페이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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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서진을 위한 사전 작업을 바라보다


 17세기 중반 중국의 유라시아 정복을 위해서는 당시 청에 닥친 기근과 안정적인 보급문제의 해결이 선결과제었다. 청나라의 이러한 필요는 조선에게 있어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7년의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병자호란을 바라본다면 <남한산성> 속에 묘사된 주화파 - 주전파 논쟁이 의미가 있을 것인지는 조금 더 생각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1630년대 청 제국은 어떻게 자신의 역량을 축적하고 있었는지 소현세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문명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유라시아 원정을 바라보다
















 <중국의 서진>에서는 유목 사회와 정주 사회의 대립 관점에서 준가르-청의 전쟁을 바라본다. 여기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몽골족의 천연두에 의한 피해가 40%에 달하는 점 그리고 유목 민족인 몽골족의 말, 양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총, 균, 쇠>와 비교해서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기에, 문명의 수수께끼의 내용까지 곁들어 진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 제국주의 국가로  청(淸)을 바라보다


 19세기에는 제국주의 피해자로 전락한 청이지만, 18세기 중앙 아시아에서 청나라가 한 행위를 본다면, 제국주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국주의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알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책이 도움이 될 듯하다. 여기에 퍼거슨도 불펜에서 대기시킨다면 제국과 관련해서 보다 안정적인 라인업이 구성될 것이다.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은 조금은 다른 내용이지만, 제국의 안정적인 유지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아 리스트에 추가한다.














4. 몽골 - 여진의 뿌리깊은 원한 관계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중국의 서진>에서는 여진족에게 가슴아프게 당한 몽골족이지만, 이들 역시 제국주의국가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을 건설한 몽골족과 여진족의 뿌리깊은 원한 관계는 금(金)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금나라를 멸망시킨 몽골 제국과 몽골의 후예를 멸망시킨 청(淸)의 관계를 보면 춘추(春秋) 시대의 오월(吳越)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이와 관련한 독서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허영만 화백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칭기스칸의 평전을 갈음해서 넣도록 한다.







 


















5. 중앙유라시아 역사와 실크로드. 그리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의 서진>은 17세기와 18세기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중앙유라시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역사책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의 흐름을 보다 많이 알고 싶다면 유라시아 통사(通史)에 대한 이해도 같이 이루어진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중앙유라시아가 가지는 중요성은 실크로드(silkroad)의 중요성과 무관하지 않다. 유라시아 역사와 실크로드에 대한 이해는 최근 미중 무역분쟁의 원인 중 하나인 일대일로 전략에 대한 이해로도 이어지는 부분인만큼 알아두면 여러모로 유용할 듯 하다.




























 6. 러시아 사회사


<중국의 서진>의 두 주인공인 청나라와 몽골(준가르)의 내용은 이정도로 정리하면 될 듯하지만, 리스트 작성을 끝내고 보니 또 다른 러시아에 해당하는 책을 고르지 않은 듯 하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이후 동방진출이 가속화된 배경과 러시아 농노제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러시아도 그렇게 서운해 하지는 않을 듯 싶다.














<중국의 서진>과 관련하여 위의 내용을 정리할 계획인데, 적어 놓고 보니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일단 말을 꺼내 놓았으니, 읽은 책들을 중심으로 천천히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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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3-05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그리의 <제국> 읽으셨네요.
무척 부럽습니다. 꼭 읽고 싶은 책이라 전 시도했다가 넘 어려워 포기했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님의 후기 기대합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3-05 20:30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도 이해하시겠지만, 읽은 것과 이해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인 듯 합니다. 저도 낑낑대면서 일단 끝내긴 했습니다만,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리뷰 작성하면서 정리하다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후에 많이 부족한 리뷰가 되더라도 북다이제스터님의 날카로운 비판 감사히 받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3-05 20:4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
이 책은 여기저기 워낙 인용이 많이 되어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10 페이지도 읽기 쉽지 않았습니다. ㅠㅠ
근데 정말 궁금한데요, 겨울호랑이 님은 대체 이 많은 책 언제 다 읽으세요?
회사도 열심히 잘, 가족에도 열심히 잘, 아기에게도 열심히 잘 하시는데... 반성 많이 됩니다. ^^

겨울호랑이 2019-03-05 21:04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제국>은 여러 면에서 어려운 책이지만, 그만큼 유익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번 읽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정말 바랄 게 없을텐데 말이지요. 어렵습니다.ㅜㅜ 북다이제스터님 앞에서 책 많이 읽었다는 말씀 드리기는 부끄러워집니다. 다만, 너무 열심히는 안하려고 한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려면 어깨에 힘들어가고, 부담이 되어서 그냥 대충~ 그때 할 일 그때 하면서 살려고 합니다.ㅋ

북다이제스터 2019-03-05 20:57   좋아요 1 | URL
우문현답이세요. ^^
즐거운 저녁 시간 되세요. ^^
제 팬에게 안부도 전해 주시구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9-03-05 2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도 평안한 저녁 되세요!^^:)
 
중국의 서진 - 청(淸)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사 역사도서관 9
피터 C. 퍼듀 지음, 공원국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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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나는 유럽 국가들과 유라시아에서 경합하는 세 주요 제국, 즉 준가르 몽골, 러시아, 중국이 유사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세 국가 모두 지정학적 경쟁의 추동을 받아 전쟁과 무역과 외교를 통해 상대방과 경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 맞수와 경쟁하기 위해 개별 정권들은 자기 영내의 민족들과 이웃 민족들에게서 자원을 거둬들임으로써 '국가성(stateness)'을 증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실질적인 사회적/제도적 개혁을 이루게 된다.(p45)... 나는 이 정복을 중국의 '신장 新疆' 정복이라 보지 않고, 중앙유라시아와 중국 핵심부를 최대한 자신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해 중앙유라시아 국가가 거대한 중국의 관료제와 경제적 자원을 이용해 팽창한 것으로 파악한다.(p48) <중국의 서진> 中


 <중국의 서진  China Marches West: The Qing Conquest of Central Eurasia>은 청(淸)의 전성기를 이끈 강희제(康熙帝, 1654 ~ 1722), 옹정제(雍正帝 ; 1678 ~1735), 건륭제(乾隆帝, 1711 ~ 1799)가 지금의 신장/위구르 지역의 지배권을 어떻게 확립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러시아인들이 이익을 좇아서 단지 모피와 엄니가 있는 곳에만 관심이 있었던 반면, 중국인들은 안보를 추구하여 단지 즉각적인 위협에만 관심을 두었다.(p132) ...  몽골 원정은 청이 세계사적 중요성을 지니는 중앙유라시아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표지였다.(p181) <중국의 서진> 中 


 1세기에 걸친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다룬 이 시기의 주인공은 3개 제국(帝國)이었다. '중국의 서진' 결과 최후의 유목 제국이었던 준가르(準噶爾, 1619 ~ 1758)는 멸망에 이르게 되었고, 청은 이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당초 이 전쟁의 배경은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국은 자신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자신의 역량을 집결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해 관계는 중앙아시아에서 맞아떨어졌다.


 16세기 말 러시아인과 만주족이라는 두 삼림 민족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서로가 북쪽의 초원을 양분할 때까지 계속해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양자 모두 조직화와 정치기구로 인구의 열세를 보충해야 했다... 혈연관계가 통치 엘리트들을 하나로 묶었고, 농노제 혹은 속박 노예제가 농업 생산자들을 군사화된 국가에 묶어놓았다. 양자는 농경 지대 가장자리의 제한된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 군사적 귀족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양자는 농경 지대 가장자리의 제한된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 군사적 귀족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p80) <중국의 서진> 中


 '경제적 이익'과 '안보'의 관점에서 시작된 청의 진출은 러시아의 양해 속에서 가속화되었다. 중앙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묵인과 양보는 제국의 북쪽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었고, 이미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 1637)을 통해 동쪽의 조선을 제압하고, 타이완의 정성공(鄭成功, 1624 ~ 1662)을 제압하면서 제국의 남쪽 안정을 기한 청은 서쪽으로의 진출에 거침이 없었다.


 중국 황제의 갈단 원전은 러시아의 묵인이 없었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1727년 캬흐타 조약에 조인했다. 이 조약들은 중앙유라시아 권력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경선이 정해지지 않은 지역들이 없어짐으로써 변경의 모호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p211) <중국의 서진> 中


[지도] 준가르-청 전쟁(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zungar%E2%80%93Qing_Wars)


 그렇지만, 당초 강희제의 친정(親征)으로 청의 국력을 쏟아부은 이 전쟁은 예상과는 달리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이는 침입을 받았을 때 초원 깊이 철수하여 상대의 보급선을 길게 늘어뜨리고, 느슨해진 상대를 각개격파하는 초원의 전통적인 전술의 영향이 컸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의 모스크바 침입을 격퇴한 러시아군 전략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의 독일군을 맞이한 소련군 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의 전술은 전쟁을 장기전 양상으로 끌고갈 수 있었지만, 청의 물량공세 앞에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었다.


  준가르족은 청이라는 거대한 기계에 대항하여 놀랄 만큼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을 보호한 두 가지 결정적인 요인, 즉 그들의 기동성과 그들에 닿기까지의 거리 덕분이었다.(p658) ... 만주족은 일단 중국의 중심부를 정복하자 준가르족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인 가용 자원을 얻게 되었고, 인력/곡물/화폐가 조밀한 교환 체계 안에서 연결된 수송망을 물려받았다. 준가르족은 광대하고 통합되지 않은 공간에서 훨씬 더 파편화된 물자들을 긁어 모아야 했고, 이로 인해 그들의 국가 건설 기획은 훨씬 어려웠으며 결국 단명했다. (p657) <중국의 서진> 中


 준가르 제국의 멸망은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억압과 박해로 이어져 이후 몽골 민족은 다시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준가르-청의 전쟁' 결말이다.


  18세기 전반기 내내 과거에 이동하던 할하 유목민들의 경제는 중국 자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화폐화되었고, 청은 그들에게 원정에 필요한 가축을 대라고 점점 강하게 압박했으며, 그들은 관료제의 통제 아래 엄격한 행정적 경계선 속에 점점 한정되어갔다.(p349)... 학살 정책으로 청은 중국 서북 변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는데, 이는 한 세기가량 지속되었다. 준가르 국가와 민족은 함께 사라졌고, 준가르 초원은 거의 완전한 인구 희박 지역으로 바뀌었다.(p359) <중국의 서진> 中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의 서진 결과는 세계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17세기 제국주의 국가 청의 부상과 함께 19세기 제국주의 침턀국으로 청으로 몰락의 흐름을 파악하는 중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처럼 중국 중심부에서 힘을 비축한 청은 그 힘을 변경으로 펼치면서 제국의 영토를 최대한으로 팽창시켰다. 그렇지만, 전쟁을 통해 효율적인 관료체제를 구축했던 청 제국은, 전쟁의 종료와 함께 관료제의 효율성도 함께 잃게 되어 이후 19세기에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청의 정복은 중국 제국, 러시아 제국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중앙유라시아 민족들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는 청-준가르의 갈등을 국가 건설 경쟁 과정으로 분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쌍방은 경제적, 군사적 자원들을 동원하고, 통치 조직들을 구축하고, 정복과 통치의 이념들을 발전시켜야 했다.(p359)... 대륙을 통틀어, 몽골 제국 해체 와중에 중앙유라시아의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대제국들은 인구가 밀집된 정주 지역의 심장부를 차지했고, 군사력을 공급하기 위해 이 지역들의 자원을 이용했으며, 심장부에서 대륙의 중심부로 다시 밀고 나왔다. 경계에서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협상으로 조약을 체결해 초원, 사막, 오아시스를 가로질러 고정된 경계선을 그었으며, 변경 지역의 이동 민족들을 위한 피난처를 남겨놓지 않았다.(p38) <중국의 서진> 中


 제국 관료제의 효율성이 결정적으로 전환된 것은 18세기 중엽 무렵, 바로 제국의 팽창이 끝났을 때였다. 변경에서의 군사적인 도전이 종료됨으로써 관료 체계에서 역동성이 빠져나가게 되었다. (p699) <중국의 서진> 中


 몽골을 격퇴한 직후 남부 해안에서 새로운 도전들이 등장한 것, 초원 유목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되던 정책들이 남쪽의 해양 환경에서 실패한 것, 청에서 중안의 이해와 지방 세력가들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던 협상을 통한 타협이 탈중앙집권화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 그리고 16세기부터 진행되던 상업화가 중앙에 대한 충성심을 침식한 것이 19세기 청을 서구의 침투에 노출시켰다.(p719) <중국의 서진> 中


 이처럼 <중국의 서진>에서는 17세기에 팽창을 하던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두 제국과 이의 희생이 된 다른 하나의 제국을 다룬다. 경제적 이익을 가진 러시아를 협약으로 묶어두고, 안보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제국주의 국가 '청'은 효율적인 관료제를 기반으로 최후의 몽골 제국을 멸망시킨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세한 이야기는 다른 리스트와 페이퍼를 통해 소개하기로 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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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1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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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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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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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0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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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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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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