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가면 반려동물 시장이 예전보다 많이 커졌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개나 고양이, 새, 열대어들은 물론 이제는 곤충도 곧잘 보게 됩니다. 얼마전 장수풍뎅이를 집에 새로 들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장수풍뎅이는 마트에서 파는데, 라이벌 사슴벌레는 팔지 않는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 질문을 잊고 지내다가 어린이 곤충백과를 읽다가 작은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맞는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장수풍뎅이 수명이 사슴벌레보다 상대적으로 짧기에 마트에서 팔린다는 것입니다. 다소 엉뚱한 결론이지만,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상품으로 보고, 자본의 논리를 여기에 적용시켜 논리를 진행시켜 보겠습니다.

우리가 든 예에서 유통기간이 3주일에서 2주일로 단축된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것은 정상적인 변화가 아니라 호황, 지불기간의 단축 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한 사람의 자본가가 아니라 많은 자본가와 관련되어 여러 사업에서 다양한 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 이용 가능한 화폐자본이 더욱 많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만일 이런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생산은 확장될 것이다.(p351)「자본 2」중

칼 마르크스에 의한다면 생산과정에서 유통기간의 단축은 자본가에게 확대재생산을 가져옵니다. 반면, 유통기간이 긴 상품 생산을 위해서는 추가자본이 투하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곤충을 상품으로, 곤충 공급자를 자본가로 치환시켜 보겠습니다.

어린이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것처럼 장수풍뎅이의 수명은 1~3개월인데 반해, 사슴벌레는 그보다 몇 배 긴 1~2년을 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기업가의 입장에서는 회전율에서 장수풍뎅이가 보다 매력적인 상품이기에 마트에 장수풍뎅이만 파는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론, 장수풍뎅이가 인기가 있는 품종일 수도 있고, 그 밖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짧은 결론을 내려 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9-06-19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명의 문제에도 자본이 들어가는 군요.
뭔가 씁쓸한..
근데 귀요미와 장수풍뎅이와의 동거는 어떤가요? 잘 지내나요?

겨울호랑이 2019-06-19 20:49   좋아요 2 | URL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많은 것들이 자본의 논리로 설명되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뒤로 밀리는 듯합니다. ^^:) 가끔 귀요미가 물끄러미 장수풍뎅이를 바라보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되도록 격리시키려 합니다 ㅋ

레삭매냐 2019-06-19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트에서 파는 풍뎅이의 비밀을
알게 되었네요.

과연 자본의 파워는 어마무시하네요.

겨울호랑이 2019-06-19 21: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사실 장수풍뎅이가 더 많이 사육되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경제 관점도 상당히 영향이 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중심의 사고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9-06-20 0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6-20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곤충백과와 자본의 콜라보가 인상적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6-20 08: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1850년대에서 1890년대 사이에 잉글랜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여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일에서 19일로 줄었다. 증기선은 훨씬 빠를 뿐 아니라 외양도 커졌다. 그래서 같은 기간에 평균 총 용적 톤수는 대략 두 배가 되었다. 1870년대에 이르면 인도에서 오는 전보가 몇 시간 안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여왕은 전보를 주의 깊게 읽었다.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 치세 동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세계는 축소되었다... 1840년대 말에 이르자 전보가 육상 통신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1850년대에 이르면 인도의 건설 공사는 전신이 폭동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충분히 발전했다. 전신 케이블과 증기선 노선은 세계를 일제히 단축시키고 통제를 더 쉽게 만든 세 개의 금속 네트워크들 가운데 두 가지였다. 세번째는 철도였다.(p242) <제국 Empire> 中


[그림] 빅토리아 여왕 시기 영국제국(출처 : http://www.victorianschool.co.uk/empire.html)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1964 ~ )은 <제국 Empire>에서 영제국(British Empire)의 전성기인 19세기 말 제국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증기선, 전보 그리고 철도의 도입을 통해 유럽 제국주의가 이전 제국과는 달리 오랜 기간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을 책을 통해 강조하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과학과 제국주의의 결합에 대해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과학이 가져온 변화는 기술적인 면에 그치지 않는다.


 1850년대에 시작된 과학이 가져온 이러한 변화는 처음에는 인프라 확충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시스템이 구비된 19세기 말에는 시스템의 통합이 요청되었고, 이를 위한 새로운 이론(理論)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해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시간의 제국들 Einstein’s Clocks, Poincare’s Maps: Empires of Time>은 물리학이 상대성 이론을 통해 어떻게 응답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좌표화된 시간은 도시와 철도 시스템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동기화된 시계는 언론의 환대를 받고 길거리에 등장하고 천문대와 실험실에서 연구 대상이 되면서 이제 더 이상 이색적인 과학이 아니었다. 동기화된 시계는 기차역과 동네와 교회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과거에 전력과 하수시설과 가스가 그러했듯이 대중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근대의 도시적인 삶을 순환하는 물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p140)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독일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적인 프랑스인들도 1870년에서 1871년에 있었던 보불전쟁이 끝나고 나서, 폰 몰트케가 시간이 정확하게 맞추어져 있는 철도를 제대로 활용한 것이 프랑스 제2제정(1852 ~ 1870)을 무너뜨렸고 유럽 권력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p206)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양(量)적인 팽창이 완료된 후 이의 효율적인 활용이 국력(國力)임을 절감한 유럽 정치인들은 시간의 통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제국 내 시간이 통합될 필요가 있었고, 1905년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의 상대성 이론은 이들 정치인들에게 통합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거대 정치 조직은 행정 효율성과 관련된 공간의 문제, 연속성과 관련된 시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함축하고 있다. 구조의 유연성은 인재 발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지식 독점에 대한 공격과 관련이 있다. 또한 안전성은 통치의 발전 가능성뿐 아니라 통치 기관의 한계와도 관련이 있다.(p285) <제국과 커뮤니케이션> 中


 파바르제는 파리에 토대를 둔 국제 도량형국이 두 가지 근본적인 양인 공간과 질량을 정복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첨단 분야인 시간이 아직 개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간을 정복하는 방법은 점점 확장되는 전기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것으로, 이 전기 네트워크를 천문 관측소와 연결된 모시계에 덧붙여서 계전기들이 그 신호를 증폭시켜 보니면, 대륙 전체에 있는 호텔과 저잣거리와 교회의 뾰족탑의 시계를 자동으로 맞출 수 있을 것이다.(p294)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시간에 대해, 그리고 원거리 동시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시계를 동기화 同期化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일 두 개의 시계를 동기화하려면, 하나의 시계에서 다른 시계를 향해 신호를 쏘아 보낸 후에 그 시계에 도착한 신호의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이보다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가? 시간에 대한 이 절차상의 정의 덕분에 상대성 이론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고, 그 이후 물리학은 완전히 새롭게 변화한다.(p20)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에서는 물리학에 의한 시간 통합의 과정이 잘 서술되어 있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에 의해 직교좌표계가 도입되었고, 칸트(mmanuel Kant, 1724 ~ 1804)에 의해 직교좌표계에 시간과 공간이 개별 변수로 할당된 근대 이후 시간과 공간의 기준점이 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치열해졌다. 


 [사진] Space and Time(출처 : https://www.archive.scienceandnonduality.com/lost-in-space-and-time/)


 결국 공간은 프랑스의 미터(meter)법에 의해, 시간은 영국 그리니치(Greenwich) 천문대 기준으로 본초자오선이 설정되면서 세계의 시간과 공간의 기준점은 영국과 프랑스로 분할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세계는 통합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좌표화된 십자선들로 구획이 나뉘었다. 열차 선로, 전신선, 기상 관측 네트워크, 경도 측량, 이 모든 것들이 관찰 가능하고 점차 보편화되어가던 시계 시스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푸앵카레와 아인슈타인이 도입한 시계 좌표화 시스템은 세계의 기계였다. 처음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동기화된 시계들의 방대한 네트워크가 구현되었고, 21세기로 넘어갈 무렵에는 범선이 끌어주는 해저케이블 네트워크가 되었고 위성을 수신하는 극초단파 방송망이 되었다.(p370)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시간이 시간 기록과 완전히 일치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지구 전역에 절차나 거리상의 동시성을 기술정치적으로 확립해주는 통일 시간이 있었던 적도 전혀 없었다. 이전의 평범했던 시스템들과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의 시계 동기화 시스템은 시간을 절차적인 동기화 문제로 한정시켜 전자기장 신호로 시계들을 연결했다. 사실상 시계 단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계획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도시, 국가, 제국, 대륙, 세계를 넘어 마침내는 현재 전체적으로 유사 데카르트적인 우주라고 일컫는 무한대까지 확장하는 것이었다.(p373)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시간과 공간의 통합이 가져온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제국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었던 열강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충돌한 결과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대신한 새로운 제국인 미국은 과거의 제국과는 문화(culture)를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의 출발에는 세계의 시간과 공간의 통합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중심에서 방출된 전자기 신호가 바로 옆방이든 아니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든 떨어져 있는 지점들에 다다르는 것, 이것을 동시라고 정의한 사람이 비단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만은 아니다... 전기 신호의 교환을 바탕으로, 철도 계획자들은 열차 시간표를 짜고, 제독들은 군대를 소집하고, 전신 교환원들은 사업 거래를 타전하고, 측지학자들은 지도를 그린다.(p349)... 무선 기술은 파리와 파리 근료의 모든 지역에 시간을 분배해줄 것이고, 낡은 증기 시스템뿐 아니라 전신을 전달하는 전기 시간에 사용되는 불편한 지상의 전신선들을 몰아낼 것이었다.(p350)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中


 미국에서는, 신문이 공간을 지배한다는 점 때문에 커뮤티케이션 독점을 크게 발달시켰으며 이는 시간 문제의 경시를 의미했다... 공간을 강조하는 종이 편향과 지식 독점은 새로운 매체인 라디오의 발달로 견제를 받았다. 그 결과는 시간 문제에 대한 관심 증대, 계획 성장과 사회주의 국가 등장으로 나타났다. 커뮤니케이션 편향을 막을 수 있는 정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과 공간 및 시간의 의미에 대한 평가는 제국의 문제, 서구 세계의 문제 과제로 남겨 놓을 수 있다.(p286) <제국과 커뮤니케이션> 中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는 이처럼 상대성 이론이 가져온 인식의 변화가 20세기 초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작된 변화는 인터넷(Internet)을 통해 세계가 통합된 오늘날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과 생물학의 진화론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6-18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8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루앙 대성당'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으로 똑바로 걸어간 후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라고 했다. 호크니가 좋아한다는 이 일화처럼, 한 방향에서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둘러보며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대상이 제대로 보인다. 


 누군가는 호크니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 즉 풍경이나 실내, 초상화 등이 가볍다고, 혹은 회화라는 양식 자체가 낡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크니는 그린다는 것이 본질이 무엇인지, 작품으로써 되묻는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매일 다른 것이므로 풍경은 아직도 낡지 않았다. 실험을 계속하는 한 회화에는 여전히 새로운 것이 있다. 그의 그림이 낡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본질은 어떤 순간에도 바래지 않고 제빛을 낸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와 이웃분의 소개로 그의 이름을 접하기 전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는 내게 낯선 화가였다. 호크니가 유명한 화가이며,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읽게 된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책은  호크니의 작품과 인생를 가볍지만, 진솔하게 알려준다. 책에서 그리고 있는 호크니의 모습 중에서도 '평행 투시법'과 '사진과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미술가'가 그의 회화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와 이미지라 생각되는데,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적고자 한다.


1. 원근법과 평행 투시법

 

 이제 중심광선이 남아 있습니다. 중심광선은 평면과 맞닥뜨릴 때 어느 방향에서건 인접 각도가 항상 똑같은 유일한 광선입니다. 중심광선의 특징으로는 모든 광선 가운데 가장 예리하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겁니다. 또 중심광선이 위에 놓여 있을 때 그 면적이 가장 커 보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모든 광선들이 이 중심광선을 한 가운데 두고 에워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중심광선을 두고 광선의 리더 혹은 군주라고 합니다... 중심광선의 위치와 거리는 시각 활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더 없이 큰 역할을 합니다.(p87) <회화론> 中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ista Alberti, 1404 ~ 1472)의 <회화론 On Painting> 속에서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한다. 중심광선을 기준으로 3차원의 세계를 2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기법인 원근법은 이내 대표적인 기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같은 시기 원근법으로 유명한 화가 파울로 우첼로(Paolo Uccello, 1397 ~ 1475)는 원근법을 철저하게 구현한 화가였는데, 이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 ~ 1574)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파울로 우첼로, <대홍수 Noah's ark> (출처 :http://www.theflorentine.net/news/2016/03/restored-paolo-uccello-frescoes/)


 그(파올로 우첼로)는 원근법 문제에 사로잡혀 소실점을 항상 머릿속에 간직했다. 그는 관찰하는 모든 사물, 즉 들판, 경작지, 개천, 그밖에 모든 자연을 건조하고 딱딱한 스타일로 처리했다. 만일 그가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사물들을 작품 속에 잘 선택했다면 참으로 완벽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여러 면에서 우수한 작품이므로 파울로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의 초상들은 원근법의 선으로 축소되어 있으며, 각종 물건이 그려져 있고, 몇몇 사람이 쓰는 피렌체풍으로 장식된 모자 등이 매우 아름답다.(p578)... 이 그림에는 또 원근법으로 그린 통이 있는데 구부러진 선들이 여간 섬세하지 않다. 또 포도넝쿨로 덮인 격자세공이 그려져 있는데, 그 모퉁이가 소실점으로 멀어져가나 파울로는 여기서 오류를 범했다. 물건이 놓여 있는 평면의 선들이 격자세공의 선과 평행하여 떨어지나 통은 같은 선을 따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같이 세밀하고 조심성 많은 화가가 이런 큰 오류를 범했는지 나는 가끔 놀라곤 한다.(p579)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1> 中


 르네상스 시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회화 기법의 중심에 위치한 원근법을 호크니는 거부한다. 중심광선을 기준으로 입체가 평면으로 재구성되는 원근법 대신 중심선이 없는 중국의 기법에 더 끌린 호크니. 원근법이라는 서양 회화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 그의 작품 세계안에서 게이(gay)라는 이유로 영국을 떠나 오랜 기간 미국 LA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의 삶을 발견한다면 다소 무리한 해석일까. 


 초기 회화 작품 중 상당수는 평행 투시법으로 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소실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그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p57)... 나는 외부의 소실점과 내연 기관을 소개한 것은 서구의 큰 실수였다고 말해왔습니다. 외부 소실점은 당신을 밖으로 멀리 밀어냅니다.(p58) <다시, 그림이다> 中


 [그림] 중국 고전 회화(출처 : http://kr.chnmuseum.cn/tabid/705/Default.aspx?ExhibitionLanguageID=212)

 

 우리는 고정된 시점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그 두루마리 그림을 볼 때는 거대한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두루마리 전체를 펼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돌려가며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양 측면에 경계선이 없습니다. 아래쪽 경계선은 보는 사람이고 위쪽 경계선은 하늘이 됩니다. 그러므로 책으로는 두루마리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책장이 접히면서 넘어가기 때문이지요.(p179)... 이제 우리는 중국인들이 11세기에 소실점의 개념을 거부했다는 것과 그 이유가 보는 이가 거기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는 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요.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p180) <다시, 그림이다> 中


 2. 사진과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미술가


 <다시, 그림이다> 안에서 호크니는 사진에 대해 부정적인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우리가 실제라고 믿게 만드는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호크니에 따르면 기하학적인 복제만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여기에 심리적인 해석이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한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 방식은 이러한 철학 위에 이루어진다.


 사진은 우리 모두가 매우 따분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보게 합니다... 우리는 미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엄청난 수의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훨씬 더 의심스럽습니다. 그것들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p52)...  우리는 사진이 궁극적으로는 실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기하학적으로 보지만 또한 심리적으로 보기도 합니다.(p53) <다시, 그림이다> 中


 TV 영상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TV 영상과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훑어보고 초점을 이동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상을 위해 카메라는 고정되어야 하고 많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치 세계에 대한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만드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것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p164) <다시, 그림이다> 中


  회화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이라는 호크니의 관점에서 사진은 '관점의 복제'라는 장점을 가진 매체였다. 그래서, 사진을 통해 여러 관점을 조망하고 이를 조합해서 전체를 바라보고 자신의 예술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호크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에 저점 더 많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많은 경험은 층 쌓기이다. 층 위에 또 하나의 층을 쌓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그 이후로 더 많은 층을 더해가며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은 변해간다.(p115) <다시, 그림이다> 中 


 호크니는 한 번에 하나의 캔버스만을 그렸고, 작업을 마치며 J-P가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고 출력했다. 이를 통해 호크니는 이전에 한 작업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언제든지 항상 비교해볼 수 있었다. (호크니) 거의 즉각적인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이라는 컴퓨터의 기능을 활용했습니다. 디지털 사진을 통해 직사각형의 전체 화면을 구성해가면서 모든 것을 함께 볼 수 있어 작품 전체의 진행 과정을 즉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컴퓨터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기는 하나 그것을 잘 사용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p73) <다시, 그림이다> 中


  새로운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위해 적극 활용하는 호크니의 열린 마음은 사진의 활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이패드(ipad)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하나의 소실점에 머무르지 않고 원근법을 탈피한 그의 기법과도 연결된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자세를 통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하나의 본보기라 여겨진다.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p192)...투명함을 그리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각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니까요.(p195)... 한편 아이패드가 가져다준 전혀 새로운 측면은 드로잉의 과정이 손가락을 두드리며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p196) <다시, 그림이다> 中

 

 <다시, 그림이다> 안에서 호크니는 자신의 그림뿐 아니라 인생(人生)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에 담긴 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그의 그림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이 정도로 호크니에 대해 예습은 마치도록 하고, 이제는 시간을 내어 전시회에 갈 일만 남은 듯 하다... 


 사람과 로봇이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이다. 대표적인 시나리오는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에 제시된 마음 이전 mind transfer이다. 사람의 마음을 로봇으로 옮기는 과정은 '마음 업로딩 mind uploading'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면 사람이 말 그대로 기계로 바뀌게 된다. 로봇 안에서 사람의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마음이 사멸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p14) <마음의 아이들> 해제 中


[그림] 호크니, <첨벙> (출처 : https://www.telegraph.co.uk/culture/art/art-reviews/9672351/A-Bigger-Splash-Tate-Modern-review.html)



PS.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은 <16세기 문화혁명>에서 알베르티의 원근법을 과학 혁명의 출발점으로 해석한다. 원근법이 수학과 이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을 대표하는 미술 방식이라면 호크니의 평행 투시법은 이성과 과학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 정신을 표현하는 기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11세기 중국 미술에서 이미 표현된 기법이라면 동양철학에서 21세기 시대 정신을 발견하는 작업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알베르티의 이론은 협의의 원근법에 머무르지 않고 3차원의 공간과 물체를 2차원 도상으로서 평면 상에 표현하는 과학적 방법을 일반적으로 고찰한 것이었다. 이는 근대 기술과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3차원 구조물에 대한 2차원적 표현 기법은 동시대 화가와 기술자의 손에 의해 한층 진보했다.(p66) <16세기 문화혁명>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에 의한 육지의 분리가 가장 중요하다. 분리의 영향은 분리의 정도에 달려 있다. 관건은 분리가 완전한지 아니면 불완전한지, 따라서 육지가 섬의 형태인지 아니면 반도의 형태인지 하는 것이다. 또한 관건이 되는 것은 분리하는 바다의 폭이다. 왜냐하면 협만이 좁은 경우에는 생물이 뛰어넘을 수 있으며, 이는 기후학적 영향을 거의 미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그 원인을 지질적 현대에 두고 있는 현상, 따라서 기후와 인간 생활에 대해서는 큰 의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동/식물의 분포에 대해서는 중요한데, 이는 종과 속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른 과거로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으며, 현재는 바다인 육지상에서 빈번히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258) <지리학2> 中


[사진] Mediterranean Lingua Franca(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editerranean_Lingua_Franca) 


 알프레트 헤트너(Alfred Hettner, 1859 ~ 1941)는 <지리학 Die Geographie: Ihre Geschichte, Ihr Wesen und Ihre Methoden>에서 지리의 자연 분류에서 바다와 육지의 관계가 자연환경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한 위의 이론은 기후가 생태계에는 영향을 미치는 반면, 인간 생활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헤트너의 이론은 역사(歷史)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과 데이비드 아불라피아(David Abulafia, 1949 ~ )를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지중해 지역의 삶을 포근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매력적인 풍경에 의한 착각이다. 경작지는 부족한 반면 메마르고 척박한 산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강우량도 고르지 못하다... 이밖에도 지중해의 물은 항상 따뜻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섭씨 13도를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p68)... 지중해의 생명선은 대서양과 연결된 좁은 해협이었다. 만약 제방을 쌓아 지브롤터 해협을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중해는 십중팔구 염수호로 변할 것이고, 그 안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p69) <지중해의 기억> 中


 패르낭 브로델은 유고작 <지중해의 기억 Les-Memories de la Mediterranee>에서 지중해의 역사를 기후, 지리 등 자연환경과 연관지어 분석하는데 반해, 데이비드 아불라피아는 이러한 브로델의 관점을 비판하며, 인간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다.

 

 브로델의 접근 방법에는 '모든 변화는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과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관점 모두에 반대되는입장을 취한다. 특정 시대를 고찰하여 지중해의 특성을 파악한 브로델의 수평적 역사 서술 방식을 지양하고, 시대에 따른 지중해의 변화에 주안점을 두는 수직적 역사 서술 방식을 지향하려는 것이다.(p24) <위대한 바다> 中


 이 책도 바람이나 해류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보다는 지중해를 넘나든 인간들의 경험이나, 바다를 생계 수단으로 삼은 항구 도시 및 섬들에 거주했던 인간의 삶을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것뿐이다. 인간의 힘은 브로델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것보다 한층 더 지중해 역사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p28)... 이렇듯 룰렛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회전 바퀴를 돌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손이었다.(p30) <위대한 바다> 中


 이러한 저자의 입장이 반영되어 <위대한 바다>에서 자연의 변화는 역사의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불라피아의 지중해 역사에서 변수(變數)는 인간이고, 자연은 상수(常數 constant)다. 그런 면에서 <위대한 바다>는 의지를 가진 위대한 인간이 활동한 바다를 그려내는 역사책이라 할 것이다.


 브로델은 정치사를 '사건들(events)'로 치부하고 경멸에 가까운 조소를 보였다. 사건보다는 지형이 지중해 유역 내에 일어나는 일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보았다. 그는 지중해의 진정한 중요성은 다른 곳, 예컨대 지중해를 둘러싼 육지 지형과, 지중해를 오가는 사람들이 항로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바람과 해류 등 지중해 자체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p24) <위대한 바다> 中


 그렇지만, 서문의 브로델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명(文明 civilization)의 초창기 역사에서 자연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초창기 풍부한 식량과 자원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교역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위대한 바다>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브로델의 관점을 비판하고 인간의 역사를 강조한 아불라피아의 역사관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기원전 5000년 무렵의 이른바 중석기 시대, 도구를 만드는 기술은 착실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축산, 도기, 곡물 경작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과도기에는 시칠리아 섬의 선사 시대인들의 식량이 도미류와 농어류 같은 바다의 산물로 바뀌었다.(p38) <위대한 바다> 中


 수백 년 동안 큰 변화가 없던 몰타 섬과 달리 시칠리아 섬은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각종 자원이 풍부한 데다 접근하기 쉬운 커다란 땅덩이다 보니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리피리 제도에 흑요석이 흔한 것도 시칠리아 섬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요인이었다.(p46)... 모르긴 해도 토로이는 아나톨리아 내륙 및 흑해와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주석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을 것이다.(p53) <위대한 바다> 中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아불라피아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에 인간은 자연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의 역할은 점차 비중이 약해졌고, 이제는 무시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가능하다.  문명 초기 좋은 기후와 환경이 위치한 곳에 이미 인류 문명의 포석이 끝난 상태에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변지역으로 확장이 일어났다고 본다면, 결국 인류 문명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 기후의 영향으로 발생한 문명과 이의 확산 발전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 ~1823)의 차액지대론으로 보충설명한다면 반론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지중해 역사에서 자연(또는 기후)의 영향을 배제한<위대한 바다>의 아부라피아 관점보다는 이를 통해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지중해의 기억>의 브로델 관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한 나라에 사람이 처음 정착할 때는, 기름지고 비옥한 토지가 풍부해 매우 적은 부분만이 현재 인구의 부양을 위해 경작되면 되거나, 아니면 그 인구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으로써 실제로 경작될 수 있기 때문에 지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점유되지 않은 토지가 풍부하고 따라서 누구나 원하는 대로 그것을 경작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 때에는 아무도 토지의 사용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p71)... 사회가 발전하면서 2급 비옥도의 토지가 경작되면 1급 질의 토지에서 즉각 지대가 발생하며, 이 지대의 크기는 이 두 종류의 질적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p72)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中


 보나파르트는 처음부터 몰타 섬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1797년에 그가 아직 총재 정부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우리의 주 관심사는 몰타 섬"이라고 하면서 우호적인 기사단장을 확보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상사들에게 보낸 것도 그 점을 말해 준다... 나무와 식수가 부족한 것을 모르고 보급 기지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나폴레옹의 이 견해는 매우 정확한 판단이었다.(p773) <위대한 바다> 中


 또한, 개인적으로 브로델의 역사관에 더 끌리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역사의 변인(變因)을 외부에 두었을 때 역사의 보편성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  문명의 차이가 나타났고, 이러한 차이가 문명으로 표현되었다는 브로델의 관점과는 달리, 아불라피아와 같이 인간(또는 문명) 속에서 역사의 변인을 찾는다면, 자칫 선민(選民)사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도 별로 끌리지 않는다. (실제로 아불라피아는 유대계 영국인이다.) 


 사실 지중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지구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유럽-아프리카-아시아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대륙에 갇혀 있는 꼴이다. 이 거대한 땅덩어리는 그 자체로 지구라고 할 수 있으며, 처음부터 상품과 인간이 교류되었던 땅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렇게 세 대륙이 하나로 연결된 땅에서 역사라는 드라마를 공연해왔다. 또한 이 땅은 중대한 교환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p73) <지중해의 기억> 中


 '지중해의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지중해의 어떤 물리적 특성이 인간의 경험을 형성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지중해 역사를 몇 가지 공통 요소로 묶으려 하는 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지중해의 기본적 통합성을 주장하려는 그런 시도야말로 지중해 유역과 섬들에 거주했거나 또는 지중해를 오간 사람들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통합성을 찾기보다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p947)... 지중해 역사의 통합성은 역설적이게도 변화무쌍한 가변성, 상인과 유랑민들의 이산, 오래도록 고생에 시달린 이븐 주바이르나 펠리스 파브기 같이 겨울이 닥쳐 해상에서 발이 묶이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바다를 건너려 한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p956) <위대한 바다> 中


 개별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변수가 역사의 절대 변수인가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역사의 시간에서 어느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지중해의 기억>애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간 역사'와 <위대한 바다>는 '독립한 인간의 역사'를 확인하게 된다. 어느 역사가의 관점에 동의하는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우리의 시야를 넓게 해준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중해는 역사 초기부터 이러한 불균형, 즉 자신의 운명 전체를 결정한 원동력의 목격자였다. 우리가 이미 언급한 남분의 차이 그리고 수준의 차이를 보이면서 마침내는 문명간의 뚜렷한 갈등으로 비화된 동서의 차이가 바로 지중해의 운명을 결정한 원인이었다.(p115) <지중해의 기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인님, 불안해하지 마세요. 제가 덤불 속을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작은 주머니와 장화 한 켤레를 마련해주세요. 그러면 주인님이 그리 손해 본 것은 아니라는 걸 아시게 될 거에요.˝(p304) 「장화 신은 야옹이」중

눈빛을 보면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눈빛인데, 아직 장화 신은 마음은 없는 귀요미입니다. 이제 슬슬 밥값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좀처럼 세상밖으로 나갈 미음은 없는 듯하네요. 이웃분들 모두 귀요미 눈빛 사진과 함께 즐거운 금요일 밤 되세요!

ps. 간식을 먹고 바로 ‘안빈낙도‘를 실현하는 녀석을 보니 위대한 고양이 선조의 길을 따라갈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5-11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1 0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1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