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좋아하는 「추리천재 엉덩이 탐정」시리즈.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엉덩이 탐정 탐정은 도서관 대출도 어려울 정도로 대기자도 많고, 아이도 갖고 싶어해 매권을 갖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니 주된 갈등 구조는 엉덩이 탐정과 괴도 유를 통해 전형적인 선 vs 악 대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가깝게는 「명탐정 코난」의 코난과 괴도 키드의 대립 구조를 이어받은 것으로, 멀게는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과 명탐정 홈즈의 대결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듯 합니다.

뤼팽과 홈즈. 추리소설계의 전설과도 같은 라이벌 구도가 현대에까지 리메이크 되는 것을 보면서 고전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엉덩이 탐정은 아이가, 명탐정 코난은 아내가, 괴도 뤼팽은 제가 좋아했던 인물들이라 살짝 다른 이야기 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봅니다...^^:) 이웃분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ps. 개인적으로 이들 작품에서 그리는 라이벌 구도는 조금 차이가 느껴집니다. 엉덩이 탐정과 명탐정 코난은 홈즈가 주인공이어서 라이벌 구도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오지만, 뤼팽과 홈즈의 대결에서는 르블랑이 저자여서인지, 뤼팽이 한 수 위로 나오는 점은 차이라 생각합니다. 특히,「기암성」에서 홈즈는 초기 탈락하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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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19-12-08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시적에 ㅎㅎ
그때가 참 아득하네요~
정말 뤼팽을 좋아했어요^^
저는 홈즈보다는 뤼팽쪽이 더 좋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19-12-08 18:38   좋아요 2 | URL
저도 머리 쓰고 딱딱한 홈즈보다는 행동력있고 유머가 있는 뤼팽이 더 호감이 갑니다^^:) 두 사람을 보면 은근히 프앙스인과 영국인의 전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2019-12-10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0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년 10월과 11월 사이에 할머니 산소가 있는 전라도 강진을 갑니다. 하루동안의 짧은 일정이지만, 산소에 들르고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 다음 강진과 해남의 문화재나 유적지를 돌아본지도 5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산 유배지, 김영랑 생가, 백운동 별서정원 등을 들렀고 이번에는 병영(兵營) 성터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병영성터는 황금색 벌판과 어울어져 마치 황금성처럼 보였습니다. 곡창지대인 호남에서도 병영이 위치한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천연의 군사요새임을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병영과 관련한 내용을 해설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병영(兵營) 조선의 전라도 육군 전체를 호령하던 병마도절제사영(兵馬都節制使營)이다. 원래 광주(光州)에 있었는데, 1417년(태종 17년) 도강고현(道康古縣)으로 옮겨온 것이다. 전라도는 물론 제주의 군대를 총괄하는 본부였기에 소속 군인들과 몰려든 상인들로 제법 큰 고을을 이루었다. 17세기 중반, 제주도에 표류한 네델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 일행이 곳에 8년 동안 억류되기도 하였다.(p247) <해설 대동여지도> 中


 전라도 육군을 총괄하는 군사기지인만큼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성 가까이 다가가 보겠습니다.



 원래 성터만 남은 곳이었으나 최근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제법 모습을 갖춘 읍성(邑城)의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치 서산의 해미읍성(海美邑城)을 연상케 하는 성의 외관입니다. 복원된 성에는 성곽 일부분을 외부로 돌출시켜 적을 제압하는 옹성(甕城)도, 외적으로부터 침입을 방어하는 해자(垓字)도 갖추어져 있어 작지만, 완벽한 요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읍성(邑城)은 고려 말에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가 들끓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관아가 있어 나라를 다스리던 지역에 쌓기 시작하여 조선시대로 계승된 것이다. 세종, 성종 때에 많은 읍성들을 축조하였는데, 기존의 토축성을 석축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95개소,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104개소의 읍성들이 있었다고 한다. 읍성의 모양은 방형과 원형이 많은데, 이는 산 위에 건축되기보다 평지나 구릉지에 축성되기 때문이다. 또 때로는 부정형의 읍성도 있다. 성내에는 관아, 객사, 향청, 훈련원, 중영, 군기고 등을 두어 나랏일을 보고 평시나 비상시 성을 방비한다. 현재 전국에는 동래읍성 등 109개소의 읍성이 남아 있다.(p229) <한국건축사> 中


 역사 속에서 병영은 하멜(Hendrik Hamel, 1630 ~ 1692)과 그 일행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에서 하멜과 일행은 1656년부터 1663년 대기근이 일어나 남원, 순천, 좌수영(여수)로 분산되기까지 약 7년간 머무르게 됩니다.


 1656년 3월 어느날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에는 태창(泰倉 큰 창고) 혹은 전라 병영(兵營)이라 불리는, 성채가 있는 어떤 큰 고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관찰사 다음으로 권위가 있는 전라도 군사령관인 절도사 節度使의 관저가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제주로부터 9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해안과 가까운 곳이었다.(p55) <하멜표류기> 中


 <하멜 표류기> <조선왕국기>로 처음으로 서양에 조선을 소개한 하멜이기에, 그가 한동안 병영에 머물렀다는 사실때문에, 병영성 근처에는 하멜 박물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병영과 조선에서의 기억은 하멜에게 그리 좋은 기억만은 아닌 듯 합니다.


 신임 좌수사가 7월에 부임해 왔는데 그도 역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많은 일을 시키려 했다. 우리들 각각에게 매일 일백 패덤(fathom 약180m)이나 되는 새끼를 꼬라고 했다. 우리는 이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전임자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제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종류의 일을 시키겠다고 협박했다. 만약 그가 우리에게 일을 시키면 후임자들도 계속 똑같이 할 것이며, 일단 그런 관행이 이루어지면 쉽사리 바꾸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노예가 될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구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모색했다. 이 심술궂은 사람들 밑에서 매일 슬픔에 젖어 노예 상태로 사느니보다 차라리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p68) <하멜표류기> 中


 그렇다면, 조선에게 하멜은 좋은 방문자였을까 생각해보면 이 역시도 아닌듯 합니다.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하멜은 밀린 급여를 받기 위해 일지를 썼으며, 조선의 풍습, 지리 등을 기록하는 것이 제국주의(帝國主義) 국가들의 초기 탐색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조선에게도 하멜은 그리 달가운 손님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원전인 <하멜일지>는 헨드릭 하멜이 조선에서의 억류생활 후 탈출해 네덜란드로 돌아간 다음에 쓴 기록이며 보고서였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목적은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함이었다.(서문)... 조선을 서해안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동해안과 남해안에는 만의 안쪽과 입구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절벽과 암초가 많기 때문이다. 조선의 수로 水路 안내인은 우리에게 서해안이 가장 접근하기 좋다고 말했다.(p141)<조선에 관한 기술> 中


 하멜과 조선과의 관계는 하멜의 말처럼 포로 - 간수의 관계 이상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원수일지도 모를 이들의 관계를 오늘날 우리가 필요에 의해 친한 관계로 포장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병영성을 떠나왔습니다... 



 러나 우린 이교도의 국가에 잡혀 있는 불쌍한 포로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우리를 살려 주고 죽지 않게 먹여 주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이 모든 고통을 견뎌야 했다.(p66) <하멜표류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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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06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정민 선생님과 함께 한 강진 답사
에서 하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하멜 표류기가 사실은 하멜이 소속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인가에서 보험금
을 받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라는 이야
기도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납니다.

겨울호랑이 2019-12-06 09:2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하멜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한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어 의도치 않게 조선을 소개한 역사적인 책이 되버린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머뭇거림은 내가 영원히 뉴요커들의 특징으로 여길 성격, 즉 소심함을 본능적으로 또한 즉각적으로 밀어내는 특성을 자극할 뿐이었다. 처니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차를 모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냥 한번 해봐. 그리고 즐겨봐. 이것이 그녀가 말하려는 메시지였다.(p113)

 아이가 없을 때는 이런 일로 인한 좌절감을 사소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풀타임으로 일하는 엄마로서 절반 동안만 곁에 있어주는 배우자를 두고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인내심이 차츰 줄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아예 바닥났다. 버락이 집에 오면, 화내는 나를 만나거나아예 못 만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집 안의 불이란 불은 다 끄고 부루퉁하게 잠자리에 든 뒤였다.(p273)

남편이 정치인인 탓에, 정치와 권력이 돌아가는 양상을 가까이에서 목격해왔다. 그래서 모든 선거구에서 투표자가 몇 명씩만 빠져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 후보자가 당선되느냐 저 후보자가 당선되느냐만이 아니라 이 가치 체계와 저 가치 체계 중 무엇이 채택되느냐가 달라진다는 걸 알았다.(p366)

여성들은 평생 그런 모욕을 겪는다. 길거리에서 듣는 성희롱, 더듬는 손길, 성폭력, 억압 행위를 통해서. 그런 일들은 우리를 상처 입힌다. 우리의 힘을 앗아간다. 어떤 상처는 간신히 눈에 보일 만큼 사소하다. 반면 어떤 상처는 거대하게 쩍 벌어져 있고, 평생 아물지 않을 흉터를 남긴다. 어느 쪽이든 상처는 누적된다. 여성들은 학교나 직장을 오갈 때도, 집에서 아이들을 기를 때도, 종교 활동을 하러 갈 때도, 한 발 전진하려고 애쓰는 모든 순간에 그런 상처를 품고 다닌다.(p540)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인내와 수고가 둘 다 필요하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p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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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5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우주가 과학의 법칙에 따라서 무(無)에서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근간이 되는 기본 가정은 과학적 결정론이다. 일단 우주의 초기 상태가 주어지면, 이후의 그 진화는 과학의 법칙이 결정한다. 이 법칙은 신이 결정한 것일 수도,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은 법칙에 간섭하거나 법칙을 깰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법칙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신에게 남는 것은 우주의 초기 상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뿐인데, 이 초기 상태마저도 지배하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신은 애초에 아무런 자유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p62)

시간을 아무리 거슬러올라가도 빅뱅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마침내 원인이 없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원인이 존재할 수있는 시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것은 창조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창조자가 존재할 시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p73)

허수 시간에서 경계가 없다는 것이 우주의 경계조건이라면, 우주는 단 하나의 과거만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허수 시간에는 수많은 역사들이 있고 그 역사들 각각은 진짜 시간에서의 역사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에 대해서 과잉 역사들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그럼 무엇이 우주의 가능한 역사들 중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특별한 역사의 집합을 선택한 것일까?(p94)

간편하고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지금도 가능한 방법은 기계를 보내는 것이다. 이 기계는 장거리 성간(星間) 여행을 견디도록 설계된다. 이 기계 장치가 새로운 별에 도착하면, 그 별에 착륙해서 채굴을 하고 더 많은 기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제작된 기계들이 더 많은 별들을 향해 떠난다. 이 기계들이 화학적 고분자가 아닌 전자 소자 기반의 새로운생명 형태가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DNA 기반의 생명을 대체할 것이다. 마치 DNA가 원시 형태의 생명체를 대체했던 것처럼.(p125)

 우리가 새로운 우주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최초의 민간 우주비행사는 선구자들이 될 것이고, 최초의 민간 우주여행은 대단히 비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우주여행을 할 수있게 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주로 나가게 되면, 지구 위에서의 우리의 지위와 지구를 관리하는 관리자로서의 책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우주 안에서의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이 우주에 있다고 믿는다.(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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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시백 작가의 <35년> 3권은 1910년부터 1925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일제무단통치부터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난 이 시기의 변환점은 역시 3.1혁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단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3.1혁명과 이의 좌절. 그리고 이어지는 투쟁이 시대의 큰 흐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5년 1권 : 1910 -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1910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임명으로 시작된 일제의 조선지배는 시작되었다. 사상, 언론, 종교, 교육의 모든 분야에서 내선일체(內鮮一體)을 지향하며 기존 질서를 뿌리부터 흔든 일본의 통치는 민족 탄압으로 이어졌으며, 일제는 강제 동화정책을 추진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한 토지수탈은 지주-소작제도의 정착과 함께 많은 이들을 국외(특히 간도)로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들이 훗날 해외독립투쟁의 주역이 되었다. 


<35년 2권 : 1916 -1920 3.1 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2.8 독립선언, 1919년 3.1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일본의 야만적인 진압으로 인해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를 통해 대중들이 깨어나면서 만주,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군 투쟁과 1920년대 대중투쟁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35년 3권 : 1921 - 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


 3.1혁명의 결과 일제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조선의 지식인들을 친일파로 포섭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 검열 등으로 민중에 대한 통제는 더 강화되었다. 또한, 산미증식계획으로 대표되는 식민지 수탈이 이 시기로부터 본격화되었다. 한편, 국외의 무장독립투쟁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성과를 올렸으나, 경신참변으로 대표되는 일제의 민간인 학살 등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고,  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그 세가 크게 꺾이게 되었다. 이후 독립 투쟁은 약산 김원봉으로 대표되는 의열단 활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뒤를 잇게 되었다.


 <35년>이 배경으로 하는 일제시대는 어둡고 희망이 없던 시대로 느껴진다. 원치 않은 식민지배의 역사는 아픔을 전해 주기에, 찢겨진 상처를 바라보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시기 역사를 똑바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10년대 조선에 신작로와 각종 근대화 설비를 가져다 놓으며, 일제 시대 이후 생활양식이 크게 변화한 것처럼, 우리 삶과 현대의 많은 문제들이 일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대로부터 결코 눈을 뗄 수 없다. 조선의 근대화를 부르짖은 개화기 지식인들과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들이 1920년대 이후 변절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1920년대 민족 신문인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1925년 일제탄압으로 인해 어용신문으로 변질되는 모습에서 현재 언론 모습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1921년 자유시 참변을 통해 한국전쟁 이전 동족상잔의 비극도 확인하게 된다. 또한, 1920년대 일제에 의한 학교설립 규제가 오늘날 사학재단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일제의 잔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많은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 삶과 직접,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고통스러워도 이 시기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박시백 작가의 <35년>은 암울한 시기의 역사를 만화로 그려내면서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시기의 문제점과 함께 과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결코 무기력하게 일본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국내, 하와이, 연해주, 만주 등지에서 치열하게 독립을 위해 싸웠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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