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Homo Deus>는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전망한 미래 전망서다. 전작인 <사피엔스 Sapiens>에서 종교,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과학과 결합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의 중심에 섰다는 과거 분석을 했다면, <호모 데우스>에서는 이러한 과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를 과감하게 예언 豫言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의 논리적인 예언을 살펴보자.


 1. 一神之下 萬物之上


 호모 사피엔스는 '총, 균, 쇠'로 대표되는 기아, 역병,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연약한 포유류에서  '일신지하 만물지상 一神之下 萬物之上' 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배경에는  바로 '인본주의 人本主義'와 '과학혁명 科學革命'이 있었다.


 '기아, 역병, 전쟁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무력한 인류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불가피한 비극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관리할 수 있는 난제가 되었다.'(p37)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유신론자들이 '테오스 Theos'를 경배하는 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경배한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인본주의 종교들의 창립이념은 호모 사피엔스는 특별하고 신성한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의미와 권위가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선 善 또는 악 惡이 된다.'(p142)


 가. 과학혁명


  과학혁명에 관해서는 전작인 <사피엔스>에서 많은 내용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사피엔스>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과학혁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종교와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과학과 결탁한 사피엔스 최후, 최대 혁명이다. <호모 데우스>에서도 과학혁명은 강조된다. 


 '실제로는 과학도 종교도 진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둘은 쉽게 타협하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협력도 할 수 있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우선시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p275)


 '근대에 이르러 이 악순환이 마침내 깨졌다. 미래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그에 따라 신용거래라는 기적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신용이란 신뢰를 경제적 수단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여기저기서 성공을 거두면,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증가하고 신용거래도 확대된다. 그러면 이자율이 떨어져 사업가들이 더 쉽게 돈을 조달할 수 있고 경제가 성장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미래에 더 큰 신뢰를 가지고,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그와 함께 과학도 발전한다.'(p283)


 나. 인본주의 


 과학혁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종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기성 종교를 대신한 새로운 종교의 이름은 '인본주의'다. 인본주의는 기성 종교와는 달리 지식의 원천을 주관으로부터 찾았고, 인본주의 사상의 결과 우리는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듯 근대 계약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힘을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뭘까? 근대 계약은 우리가 힘을 얻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이 서늘한 욕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요구를 따랐다면 아마 우리는 윤리, 미학, 동정이 없는 암흑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p305)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 = 성경 * 논리"였다. 어떤 중요한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자신의 논리로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p326)... 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 = 경험적 데이터 * 수학"이다. 어떤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그 질문과 관련한 경험적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p327)... 인본주의는 여기에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지식 = 경험 * 감수성"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다면, 내면의 경험을 꺼내 예리한 감수성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경험은 세 가지 주요 성분인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다.(p329)'


 '자유주의의 물결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진정한 쓰나미로 변해 막강한 소련제국을 쓸어내고, "역사의 종언"이 도래할 거라는 기대를 높혔다. 패배와 좌절의 몇십 년을 겪은 뒤 자유주의는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상처를 입긴 했어도 인본주의 종교전쟁에서 당당히 살아 돌아왔다.'(p368)


 다. 자유주의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등장


 인본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자유주의는 과학의 반격을 받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 <빈 서판>등에서 언급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위치를 '선택된 피조물'에서 그냥 '개체 個體'로 전락시켰다. 자유의지를 잃게 된 사피엔스는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단순한 철학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유기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 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p393)


2. Homo Deus의 등장

 

'인간과 동물의 노동력을 기계 에너지가, 나중에는 핵 에너지가 대신하고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가 대신하기까지 산업의 발달은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무한한 생산과 아울러 소비의 도상에 있으며, 과학과 기술에 힘입어서 우리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리라는 확신 말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제2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막강한 존재, 즉 신(神)들이 되어가고 있었고, 자연이란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물을 지을 벽돌이나 공급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에리히 프롬 Erich Seligmann Fromm (1900 ~ 1980)


 가. 한 손에는 '생명공학', 다른 손에는 '컴퓨터 알고리즘'


 자유의지를 잃은 사피엔스는 이제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고,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신이 된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로, 새로운 종교는 '데이터교'가 된다.


 '21세기 초, 진보의 열차가 다시 정거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열차는 아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정거장을 떠나는 막차가 될 것이다. 이 기차를 놓친 사람드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좌석을 얻기 위해 당신은 21세기의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p378)


나. 컴퓨터 알고리즘


  개인 차원에서는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의사 결정을 해나가듯, 사회 차원에서는 '전자 알고리즘'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발전해 간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AI (artificial intelligence)를 통해 스스로 학습해가면서 진화하기 때문에, 잉여 인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p405)... 사실을 말하면, 경헌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을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재료로 이용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다시 경험하는 자아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p410)


 '21세기 기술로는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은 붕괴할 것이고, 권한은 개인들에서 그물망처럼 얽힌 알고리즘들로 옮겨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p451)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의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p435)


 다. 생명공학


  그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된 인간들은 발달된 과학의 힘을 활용하여 스스로 신 神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스스로 신이 된 이들과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세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종교는 '데이터 교 Data 敎'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직면한 세 가지 실질적 위협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인간이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유지하더라도 개인은 권위를 잃고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위협은,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거라는 점이다. 이런 초인간들은 전대미문의 능력과 전례 없는 창의성을 지닐 것이고, 그런 힘을 이용해 세계적으로 중요한 대다수의 결정들을 계속 내일 수 있을 것이다.'(p474)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神性)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p76)...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p77)


3. 데이터교의 탄생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p503)... 데이터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은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고,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 전체를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p517)


 <호모 데우스>에서 저자가 그린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언한 그의 책 결론 부분을 읽으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유명한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의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의 글도 우리에겐 오히려 희망적으로 비춰진다.


 '비록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은 자연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며, 또한 역으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과학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확신에 찬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p550)


  앞 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비관적인 관점이 파격적으로 비춰지지 않은 것은 어린 시절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은하철도 999>에서 과학과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지금보다 이른 1970년대에 이미 접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 은하철도 999


[그림2] 은하철도 999 : 메텔.


 <인구론>과 마찬가지로 <호모 데우스>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밝지 않기 때문에 여러 논란이 있다. 모든 이들의 생각이 같을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너무 어둡게 볼 문제는 아니라 생각된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의견이 나와 같다면, 생각을 함께 하는 이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의 비관적인 미래를 스스로 바꾸어 가면 조금은 나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큰 관계는 없지만,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난 후 떠올랐던 조주 趙州 선사 (778 ~897)의 예화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느 날, 조주가 선원에서 신참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조주가 한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가?"

 승려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차 한 잔 들게나."


 그 다음에 조주는 다른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승려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 차 한잔 들게나."


 원주 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 차 한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여기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 한잔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조주가 큰 소리로 불렀다. "원주!" "예?"

"차 한잔 들게나."


PS. 늦었지만, <호모 데우스>를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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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02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리, 그대 쓸데없는 얘기 말고 차나 들게나...ㅋ
그런 말씀이세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2 20:35   좋아요 1 | URL
뭐 그냥 이런 말도 있다는 것이지요...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33   좋아요 2 | URL
하라리 책은 미래를 묘사하지만, 현재에 촛점 맞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문제 없거나 문제 있더라도 미래는 좋아질거라 생각하면 그냥 쿨하게 오케이 하면 그만이지만, 아니라면 진정 미래를 고민할 필요 있는 거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2 22:42   좋아요 2 | URL
^^: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대로 하나의 가능성 측면에서 바라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45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가능성을 어찌 보는지 다들 나름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거 같습니다. ^^

oren 2017-07-02 21: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라리가 너무 혹세무민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인용문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지나친 과장과 비약이 난무하는 말들을 너무 쏟아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마치 지지난 세기말의 <서구의 몰락> 같은 분위기도 좀 느껴지고요..맬서스의 인구론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농업기술 혁명‘을 간과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뻥‘을 친 책으로 조롱받은 바가 있었고요.. ‘인간이 알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 모든 이론들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니체가 ‘새로운 신이 다시 나타난다‘고 외치는 하라리를 보면 과연 뭐라고 말할런지, 그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2 21:31   좋아요 2 | URL
네... 저 역시 한편으로 점술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예언이 맞는다면 자신의 점괘가 심통해서이고, 안 맞는다면 자신의 말을 들어 조심했기 때문이라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하라리가 강조하는 분야가 이스라엘 자본이 장악하는 분야(생명공학, IT부문)라 다소 약장수(?)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일관된 논리가 있어 생각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42   좋아요 3 | URL
니체 생각이 옳지 않거나 생각이 짧았다면, 하라리 생각이 옳은 건가요? 넘 위험한 표현 아니신가 궁금합니다. 어차피 누구의 주장도 단지 이론 아닌가 생각되어서요. 잘 몰라 여쭙니다.

oren 2017-07-03 00:26   좋아요 5 | URL
니체의 생각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니체의 생각이 짧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그 철학자만큼 ‘신‘에 대해 ‘길게‘ 생각한 사람도 드물 테니까요. 단지 생각을 길게만 한 게 아니라 철저하고도 깊게, ‘신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 사람이라고 봐야 맞겠지요. 그가 쓴 대부분의 저작들이 ‘신‘이라는 ‘우상‘에 대한 ‘파괴‘와 ‘전복‘에 촛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유발 하라리가 워낙 도발적으로 ‘신의 등장‘을 주창하니, 2,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신의 지배‘를 마침내 자신이 무너뜨렸다고 생각한 니체가 느닷없이 생각나서 ‘제 짧은 생각으로‘ 그런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마침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었는데, ‘니체‘나 ‘신‘이나 하리리로부터 ‘아주 별 소리를 다 듣는구나‘ 싶었겠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말이지요...

개인기록용 2017-07-02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 있어요. 한자는 만물지상인데 만인지상으로 적혀있네요

겨울호랑이 2017-07-03 08:16   좋아요 0 | URL
^^: 개인기록용님 감사합니다. 개인기록용님 덕분에 오타를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2017-07-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3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7-02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가 어흥할 정도의 페이퍼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3 00: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이지요? ㅋ

cyrus 2017-07-03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앙일보에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사를 봤어요. 글쓴이가 로봇을 만드는 공장에 직접 방문한 것을 보고 기록한 글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사람의 움직임이 연상되는 로봇 기술을 소개하면서도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사람 뇌와 흡사한 인공지능 기술이 당장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3 16:59   좋아요 1 | URL
^^: cyrus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러한 현실에 추가적인 요인으로 AI혁명이 가시화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경기 침체, 중산층 몰락 등의 이유로도 자본의 집중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기술 혁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7-03 19:34   좋아요 1 | URL
<지능의 탄생> 이대열 저자도 그렇게 말했죠. 가능하려면 멀어도 넘 멀었다면서ㅎ
그러니 더 차나 한 잔 마시게나^^? 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3 18:04   좋아요 1 | URL
^^: 날도 습한데 우리 다같이 커피 한 잔 할까요?

cyrus 2017-07-04 11:58   좋아요 1 | URL
아아가 최고죠. ‘아아‘ 모르면 아재 인증입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4 12:01   좋아요 1 | URL
아이스 아메리카노? ㅋㅋ 맛있는 점심 드시고 한 잔들 하시지요. ^^:

나와같다면 2017-07-03 21: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감수성‘과 ‘예민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중에서 ‘감수성‘ 부분은 좀더 깊게 읽게 되더라구요..

경험과 감수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우리는 양심을 완비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상처를 주고받고, 동정을 베풀고 받는다. 주의를 기울이면 도덕적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축적된 경험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옳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가치 있는 윤리적 지식의 원천이 된다.
p329~330

겨울호랑이 2017-07-03 21:41   좋아요 3 | URL
하라리는 경험과 감수성은 사피엔스 개인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호모 데우스 세계에서는 인공지능 학습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는 것 으로 파악한 듯 하네요..마치 DNA의 이중나선 구조처럼 얽힌 이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7-07-04 14:21   좋아요 4 | URL
저는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둘다 인간의 윤리, 도덕적 수양이 더 중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라리가 많은 외연을 가지고 와서 말했지만 핵심은 그거 였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죠. 기술, 권력, 이념의 추동으로는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4 14:20   좋아요 2 | URL
하라리의 핵심이 인간 윤리와 도덕적 수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결론에는 동의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0:40   좋아요 3 | URL
저도 AgalmA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ㅎ
그래서 하라리의 다음 책은 인간 윤리 혹은 도덕적 수양인 책을 낼 것 같습니다. 그건 우리가 행복을 어떻게 다르게 보고 느낄 것인가의 책일 것 같습니다. 500원 걸고 장담합니다. ㅋ
믿는 구석은 하라리 전공이 ‘행복‘이더라구요. ㅎ

겨울호랑이 2017-07-06 21:04   좋아요 3 | URL
^^: 호모 데우스가 인류 역사의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독자에 따라 다르게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라리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나와같다면님, AgalmA님, 북다이제스터님과 같이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되네요...^^:.이젠 하라리의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바꾸기위한 노력을 각자의 자리에서 기울일 때라 생각합니다 ㅋ 날도 더우니 수박 한 조각하실까요?ㅋㅋ 편한 밤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1:23   좋아요 2 | URL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각처럼 실천하는 삶이요. 역사와 구조의 무게가 너무 커 개인이 할게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짓누릅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7-06 21:30   좋아요 2 | URL
^^: 왜 그러세요.. 박덕여왕을 503으로 만들어 정권 교체도 하신 분들인데...^^: 힘이 들겠지만, 저는 독서의 완성은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들 할 수 있구요.
(사실, 그렇게 본다면 저는 읽은 책이 거의 없긴 합니다만...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1:34   좋아요 2 | URL
매일매일 인생과 타협하며 사는 제 삶이 한스러워서요. ㅠ 오늘 댓글은 넋두리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7-06 22:24   좋아요 1 | URL
^^: 우리 모두는 the negotiator of my life 잖아요.ㅋㅋ 문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라. ㅋㅋ 기운내세요. 북다이제스터님 아무래도비가 많이 온다니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화이링 입니다!

AgalmA 2017-07-06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왜 그러세요. 님이 읽은 책이 거의 없다 하심 전 뭐라고 해야 하나요ㅋㅎ;;
독서는 아무리 해도 완성되지 않으니 그래서 우리의 행동은 늘 어느 정도는 어리석고 모자르게 보이는 걸까요ㅎ?
장 뤽 낭시는 책이 열림과 닫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보이기에 ‘저장용기‘로도 ‘저장내용‘으로도 못 박을 수 없다고 얘기하죠. 저는 책이 지식을 쌓게 해주는 거보다 자신을 더 잘 바라보게 해주고 계속 반성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행동할 용기도 주는지 몰라요. 틀려도 사람과 달리 책은 반성할 기회도 많이 주니까^^

겨울호랑이 2017-07-06 22:23   좋아요 1 | URL
^^: 읽은 책도 사실 많지 않지만, 제 머리는 휘발성이 강해서요 ㅋ 말씀하신 장 뤽 낭시의 말이 와 닿네요... 저 역시 많은 것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콩나물을 키우는 심정으로 제 자신을 키워 갑니다. 물은 쫙쫙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지요.ㅋ
 

동(動)과 정(靜)은 상반된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움직임'과 '정지'는 개념적으로는 반대지만, 정지가 '속도가  0인 상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둘의 관계는 반대라기보다 상태(狀態)의 변화(變化)로 해석되는 편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운동(movement)와 정지(stop) 또는 유량(流量 flow)과 저량(貯量 stock)의 문제를 여러 분야를 통해 바라보고자 한다.


1. 역학적 에너지 :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고전역학에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합으로 역학적 에너지가 결정된다는 법칙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보존력만이 일정하게 작용하는한 , 역학적 에너지란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의 합으로 구성되므로 이 값이 항상 일정하게 정해진다. 예를 들어 처음 운동한 높이가 1 m일때 위치에너지가 10 J이였다면 이 때의 운동에너지는 0이다. 이 물체가 낙하할 때에는 위치 에너지는 점점 감소하는데 정확하게 감소한 만큼 운동 에너지가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물체가 낙하할 때에는 항상 위치 에너지는 감소하고 운동 에너지는 증가한다. 그리하여 물체가 낙하할 때 어떠한 지점에서든 그 물체의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의 합, 즉 역학적 에너지는 항상 같다. (출처 : 위키백과) 

  


이러한 관계식에 대해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1716)는 그의 저서 <동역학의 시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물체 A와 C가 무게를 가지고 있고 (그림2), 이 물체들이 A는 1배의 속도를, C는 2배의 속도를 가지는 순간에 그들이 수직 진자의 극단인 PA1와 EC1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듯이, 이들이 자신의 힘을 위치의 상승으로 변환시킨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속도 1을 가진 물체 A가 수평선 HR 위로 최고의 높이인 A2H로 1피트 올라가면, 속도 2를 가진 물체 C도 또한 최고의 높이인 C2R로 4피트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갈릴레이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시된 바로부터 확실하다...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하여, 동일한 물체의 힘은 그들의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고, 따라서 물체의 힘은 일반적으로 물체를 한 번 곱하고 속도를 두 번 곱한 것에 비례한다는 사실이 추론될 수 있다.'<동역학 시범>(16),p201 > 


 위의 내용에 따르면 결국 V(속도)와 h(높이)는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별도 증명 생략) 위의 내용은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에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에너지를 통해 생명체가 유지된다면, 사회를 유지하는 활동 중 하나인 경제학 Economics에서도 우리는 에너지를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에너지 전환 문제를 이번에는 경제학 經濟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보다 상세한 내용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 ~ 2006) 의 저서 <화폐경제학 Money mischief> 를 통해 확인해본다. 


 2. 화폐 수량 방정식


 '어빙 피셔 Irving Fisher(Irving Fisher, 1867~1947) 에 따르면 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MV=PT, M은 명목 화폐 수량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경우 연준(FRB)에 의해 결정된다. V는 유통속도로 일정 기간 중에 1달러가 평균적으로 구매에 사용된 횟수를 나타낸다... V는 일반 국민에게 현금잔고가 얼마나 유용한가 그리고 그 보유 비용이 얼마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 방정식에서 M과 V의 곱은 총지출 혹은 총소득을 나타낸다. 우변에서 P는 구매되는 재화와 용역의 평균가격 또는 평균가격지수이다. T는 거래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매되는 재화와 용역의 총량 지수로 풀이된다. 오늘날에는 T는 실질소득을 나타내는 Y로 대체되었다. 위의 형태 그대로 방정식은 하나의 항등식이며 자명한 진리이다. 여기서 모든 구매를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하나를 지출된 화폐금액으로, 다른 하나는 재화와 용역의 구매량에 지불가격을 곱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좌변에 화폐 금액을 기입하고, 우변에 수량과 가격의 곱을 기입하고, 모든 거래에 대해 합을 구한다는 것은 복식부기의 표준적 사례이다.'(p60)


 방정식의 좌항은 화폐량과 유통속도를 표현한다면, 우항은 국가소득을 설명한다. 국가 소득을 화폐와 재화, 용역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는 화폐 수량 방정식의 구조를  살펴보자. 좌항을 동(動)이라고 한다면, 우항은 정(靜)을 상태를 설명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화폐 수량 방정식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의 다른 형태의 표현이라 생각할 수있겠다. (실제, 화폐 수량 방정식의 아이디어는 19세기 후반 미국 천문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사이먼 뉴콤 Simon Newcomb에 의해 고안되었다.) <화폐경제학>에서 언급된 화폐 수량 방정식의 일반적인 원리는 '대차평균의 원리'다. 대차평균의 원리로 생성되는 회계학의 두 양식인 재무상태표(BS, Balance Sheet)와 손익계산서(IS, Income Statement)'는 다음과 같은 관계를 가진다.


3.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관계



[그림]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관계 (출처: http://quida.tistory.com/95)


 판매하여 생기는 매출액에서 소요된 비용을 차감해서 생기는 순이익(순손실)은 자본으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자본을 결정된다. 또한, 재무상태표에서 자산(資産)은 그 자산의 권리 관계에 따라 부채(負債)와 자본(資本)으로 나누어진다. 자산은 자본의 규모에 따라 결정되기에, 자산(資産)은 소득(所得)활동의 결과로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산의 상태를 정(靜)적인 것으로 본다면, 소득 활동은 동(動)적인 활동으로 해석한다면, 회계학에서도 동(動)과 정(靜)은 서로 전환되면서 상생(相生)하는 관계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이와 같은 전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우리는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에서 이와 같은 전환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생기는 문제를 확인하게 된다. 그 문제는 자산소득자과 임금소득자의 소득증가와 연결된다.

 

4. 부와 소득 분배 문제

 '불안정을 초래하는 주된 힘은, 민간자본의 수익률 r이 장기간에 걸쳐 소득과 생산의 성장률 g를 크게 웃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p690)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부동산 등 자산(자본) 수익률이 일반 노동소득 이익률보다 빠르게 증가하기에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가 심화된다고 해석한다. 정(靜)과 동(動)의 균형이 파괴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폐단은 쌓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적폐(積弊)가 된다. '고인물이 썪는다'는 말처럼 끊임없는 순환이 필요한 것은 개체(個體), 사회(社會), 자연(自然) 모두라 생각된다. 결국, 동(動)과 정(靜)의 문제는 결국 순환(循環)의 문제라고 여겨진다. 여기에서 잠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BC535 ~ BC 475)의 말을 통해 순환의 문제를 확인해 보자. 


'53. 체체스 (DK22B126) '차가운 것들은 뜨거워지고, 뜨거운 것은 차가워진다. 젖은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젖게 된다. '(<일리아스 강의>에 대한 외곽주석)


'54. 플루타르코스(DK22B88) '동일한 것...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깨어 있는 것과 잠든 것, 젊은 것과 늙은 것. 왜냐하면 이것들이 변화하면(metapesonta) 저것들이고, 저것들이 다시 변화하면 이것들이기 때문에.' (<아폴로니오스에게 보내는 위로의 말> 106e)'


(이상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끊임없는 움직임과 정지(또는 휴식)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生)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삶에서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휴식(休息)'이 필요한 것 아닐까. 휴식의 문제는 버트런트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1872 ~ 1970)의 말을 통해 확인해보자. 


5. 그리고 여가(Leisure)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에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한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p33)


 우리에게는 움직임만큼의 휴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마치, '휴식=악(惡)'으로 규정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행복 역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 이제 페이퍼를 마무리할 때가 다가온 듯하다. 동(動)과 정(靜)으로 시작한 이번 페이퍼는 물리학(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경제학(화폐수량방정식)을 지나 회계학(대차평균의 원리)를 거쳐, 사회학(사회문제 : 경제적 불평등)을 찍고 여가의 필요성까지 살펴봤다. 그럼 결론은? "이웃분들 지난 한 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 행복한 주말되세요!"가 되겠다... 여러곳을 돌고 돌아 주간의 문안 인사를 끝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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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4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7-06-24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리학, 경제학, 회계학, 사회학을 통하여 여가의 필요성을 통섭하는 글이라서 인상적입니다. 겨울호랑이 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6-24 19:40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휴식이 필요할 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오거서님도 즐겁게 하루 마무리 하세요^^:

나와같다면 2017-06-24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이 페이퍼가 얼마나 깊은 의식의 흐름에서 나온지 조금은 알것 같아요..

어제 ‘알쓸신잡‘에서 유시민님이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언급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겨울호랑이님의 이 글도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24 21:40   좋아요 3 | URL
^^: 제가 항상 나와같다면님과 이웃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 글에 대해 수즌 높은 해석을 해주시니 의도치 않게 깊이있는 글이 되버렸네요 ㅋㅋ 나와같다면님 감사드립니다. 예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서니데이 2017-06-24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비가 오면 더위도 살짝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6-24 21:41   좋아요 2 | URL
^^: 제가 사는 곳은 비가 조금 내렸어요. 월요일까지 ‘비님‘께서 오신다니 참 즐겁습니다.

AgalmA 2017-06-26 0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혼자 휴식의 시간을 가지신다 그래서 이후 겨울호랑이님이 이런 글 쓰실 줄 알았다니까요ㅎ
우리 모두 또 한 주 기운차게 살아야 하겠네요. 어후;;

겨울호랑이 2017-06-26 10:08   좋아요 1 | URL
^^: ㅋㅋ 이젠 제 글방향도 파악하셨군요.. AgalmA님 다시 한 주가 시작되네요.. 움직여야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즐거운 한 주의 시작 되세요^^:

카이젠의 후예 2017-06-26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여전히 다독 하고 지내시는군요~^^ 고맙습니다!^^ 근 1년간 해외에 체류해서리 못 들렀네요. 이제 또 새기분 새독으로 열씨미 다독 하렵니당.지도 편달 부탁 드리구여~^^

겨울호랑이 2017-06-26 21:43   좋아요 1 | URL
^^: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한동안 못뵈었군요. 다시 카이젠의후예님을 뵙게 되어 저 역시 반갑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편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카이젠의 후예 2017-06-26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넵~ 다시 열독모드로 회귀했으니 많은
조언 부탁 드릴께요. 오랜만에 비가 오니 너무 좋아요 ㅎ

겨울호랑이 2017-06-26 21:47   좋아요 1 | URL
네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정말 반갑네요^^:

yamoo 2017-06-28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은 이 정도는 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 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6-28 22:07   좋아요 0 | URL
^^: yamoo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1. 협주곡 Concerto


'지금의 독주악기가 오케스트라와 경합하는, 일반적으로 3부로 구성되는 악곡을 "콘체르토 Concerto", 즉 협주곡이라고 부르죠. 이 단어 자체가 그런 뜻이에요. "경합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콘체르타레 Concertare"에서 나왔죠. 콘체르토는 주인공이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죠. 눈부신 진행의 기회는 주인공에게로 한정되어 있어요. 보통 1악장 끝에서 오케스트라가 최고조에서 음악을 딱 멈추고 독주자가 그 곡의 테마를 기교를 뽐내며 연주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죠. 이걸 카덴차라고 하죠.'(p173)


2. 협주곡의 형식과 소나타의 탄생


'협주곡이 교향악 형식을 예비했다고 하는데, 일단 작품 전체의 개요라는 면에서 그래요. 토렐리가 채택한 "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라는 도식은 비발디와 바흐도 따랐죠. (p174)... 바흐가 비발비의 협주곡 형식들을 차용하고 정리했다는 사실은 알죠? 하지만 타그린씨도 잘 아는 <하프시코드와 현을 위한 협주곡 1번 D단조 BWV 1052>에서 바흐는 첫 부분에 알레그로의 두번째 테마를 추가했어요. 이게 결정적인 혁신의 시초가 되어 두 개의 기본 테마를 대비시키는 소나타 형식이 탄생합니다.'(p175)



 '바흐의 협주곡 D단조의 알레그로 도식은 단순해요. 첫 번째 테마가 바로 나오죠. 이 테마가 때로는 으뜸조로, 때로는 딸림조로 매우 여러 번 반복됩니다. 두 번째 테마는 A단조로 나오는데요. 피오노만의 카덴차가 있고, 첫 번째 테마가 다시 나오고, 두 번째 테마가 이번엔 D단조로 나와요.'(p175)


3. 민요에 대하여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서민들은 자기들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죠. 멜로디적인 요소는 학문적 음악에서 빌려왔든가 작업의 리듬, 노동의 추임새, 일하는 이들의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빌려왔을 겁니다... 노래하는 민중은 자기네들의 관념은 만들지 못할지라도 자기네 스타일은 만들어 냅니다. 쳐내고, 또 쳐내고, 변형하고,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가장 은밀한 심중을 드러내 보이죠. 노동과 나날, 고뇌와 기쁨, 삶의 모든 상황들이 이 신비롭고도 분명한 유기적 조직을 이루는데 일조합니다. 그 완벽함에 우리의 앎은 도저히 필적할 수 없으니 마냥 겸손할 밖에요.'(p164)




4. 조금 더 깊이 읽기 : 협주곡에 대하여...


 가. 협주곡


 '전형적인 협주곡 1악장에는 바로크 협주곡의 리토르넬로 형식에 등장하는 요소가 여전히 유지되었다. 즉 관혁악 리토르넬로가 독주자의 성격을 가진 에피소드와 교대로 등장하며, 이것은 소나타 형식의 대조적인 조성과 특징적인 주제적 재료와 결합된다. 코흐가 묘사한 형식에 의하면 세 개의 독주 섹션은 어떤 면에서 소나타 형식의 주요한 세 악절과 동등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섹션은 4개의 관현악 리토르넬로에 둘러싸여 있는데, 첫 번째 섹션에서 전체 주요 악상이나 대부분의 악상이 제시되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짧다. 본질적으로 협주곡의 1악장은 리토르넬로 형식의 틀에 기초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 협주곡은 한 가지 중요한 측면, 즉 끝에서 두 번째 리토르넬로를 간단히 관현악으로 규정하여 대치한다는 점에서 코흐의 설명과 차별화된다'(p561)


나. 카덴차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 ~ 1782)가 활동하는 시기에는 마지막 관현악 리토르넬로가 등장하기 직전 대개는 독주자가 즉흥적으로 카덴차를 연주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져 있었다. 카덴차는 원래 다 카포 아리아의 도입 부분이 되돌아오기 전 가수가 끼어들어 빠른 패시지와 트릴로 노래하던 연주에서 발전했다. 관습에 의하면 협주곡 카덴차는 전형적으로 무게감 있는 제2전위 화음으로 도입되며, 독주자는 딸림화음 위에서 오랫동안 트릴을 연주하여 오케스트라에 재등장한다는 신호를 보낸다.'(p563)


PS. '민요' 부분에 소개된 프랑스 민요는 별로 와닿지 않아서, 우리나라 민요를 넣었습니다. 삶의 애환을 담은 민요는 민족 정서와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다음의 민요처럼 널리 알려져 가락만으로도 마음에 와닿는 민요도 있겠지요... 한창 가뭄이 심한 요즘이지만, 내일 비소식이 예정되어 있어 기대가 됩니다. 예전에는 습하지 않은 여름을 기대했었는데 한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예전 장마철이 그리워 집니다. 이웃분들 모두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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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4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은 겨울호랑이님 음악공부하는 날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06-24 12:37   좋아요 2 | URL
^^: 네 주말 아침은 편안하게 시작하려고 해요.. 몰랐던 것도 채우면서요 ^^: 기회가 되면 악기도 ?ㅋㅋ

2017-06-24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6-25 1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요..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서민들이 자기들의 노래를..

요즈음 노찾사의 ‘사계‘ ‘그날이 오면‘ 이 계속 듣고 싶었어요

민중의 노동, 연대, 저항 그리고 삶이 나타나는 이 곡들은 후대에도 살아남아 민요로 전해지겠죠..?

겨울호랑이 2017-06-25 15:26   좋아요 2 | URL
^^: 나와같다면님께서 말씀하신 곡들은 지금도 리메이크되면서 우리 곁에서 꾸준히 함께 하고 있는듯 합니다. 지금도 많이 공감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그저 추억의 노래로만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네요. 후대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 피아노 자신과도 거리를 둘 것. 그는 녹음이 있기 전 며칠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것의 정신적 형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의 손가락의 속박 사이에 일종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손가락의 속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 형상이 "그 개념의 순수성으로부터 한눈을 팔아 피아노에 부딪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p99)


피아노(Piano)


'작곡가는 책상에 않아 작곡하는 사람과 건반앞에서 작곡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Nikolai Rimsky-Korsakov, 1844 ~ 1908) -


'피아노는 명연주를 위한 악기일 뿐만 아니라 탐사 기구, 음악적 실체와의 접촉수단이다.' -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 - 


'피아노는 누가 치든 어느 정도 "만들어진" 소리가 납니다. 피아니스트는 이 기계적인 연주를 뛰어넘어 음표들이 노래하게 해야 해요.... 피아노는 두 가지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악기에요. 우선은 탐색의 악기라는 쓰임새가 있죠. 우리는 그 유용성 때문에 피아노를 씁니다. 그러면서도 피아노는 독주악기, 비르투오소의 악기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쓰는 악기도 하단 말이에요. 작곡가는 피아노 건반을 휘저으면서 다성음악의 구성요서들을 발견합니다. 건축가가 종이에 설계도를 그리듯 작곡가는 피아노로 교향악을 구상할 수 있어요.'(p112)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


'피아노는 모차르트에게 쓰임 받는 악기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들, 그러니까 그의 어린 시절 작품들은 모두 하프시코드를 염두에 두고 쓰였죠. 하지만 만 15세부터는 피아노와 친숙해져서 일상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p114) ... 모차르트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얼마나 깊은 행복을 느꼈을까요! 타그린씨, <환상곡 C단조> 도입부를 기억합니까? (타그린) 제가 여덟 살 때에는 그 곡이 피아노의 위대함과 고결함 그 자체였죠.'(p115)


리스트(Franz Liszt, 1811 ~ 1886)와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 ~ 1849)


'피아노 제작자들이 이 악기를 최신식으로 개량한 바로 그 시점에 리스트와 쇼팽이 출현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리스트와 쇼팽이 각자 페달을 새롭게 발견했다면... 쇼팽의 음표 하나하나가 피아노를 노래하게 만드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그 점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특히 <녹턴 C# 단조>는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페달의 실질적 활용 가능성에서 탄생한 변화를 아주 잘 보여주죠.'(p116)



초여름날이 느껴지는  6월 첫 주말이네요. 비가 없어 다소 건조한 날이지만, 청명한 일요일 오전입니다. 피아노 연주곡과 함께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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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4 12: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굴드는 비범해요. 피아노 연주를 오랫동안 해도, 몇 달 동안 피아노와 떨어져 있으면 연주 감각이 잃어버려요. 제가 어렸을 때 3년 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집에 전자 키보드가 있어서 학원 갔다가 집에 돌아보면 피아노 교본의 곡을 연습했어요. IMF가 왔을 때,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것을 그만뒀어요. 학원을 그만뒀어도 생각날 때마다 전자 키보드를 쳤어요. 중학생 되고 나니까 피아노 연주의 재미를 잃어버렸어요. 그때부터 연주 감각도 잃기 시작했어요.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은데, 피아노에 대한 관심을 책에 몰빵했으니 다시 배우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6-04 12:51   좋아요 3 | URL
cyrus님께서도 피아노를 배우셨군요. ^^: 저도 어린 시절 <체르니 40번>까지 쳤던 기억이 나네요.. 피아노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해도 선생님께 많이 혼나기만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요.. 당시 피아노와 태권도를 함께 배웠었는데, 태권도가 더 멋있어 보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이 태권도를 잘
하는 것보다 제 삶에 더 유용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cyrus님의 ‘손이 굳는다‘는 말을 누구보다 잘 실감하는 1인입니다.^^

2017-06-04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4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6-06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작곡가들은 악기를 만지며 얼마나 황홀경에 빠져들었을지 제가 늘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죠. 다시 안 태어나고 싶지만 혹여라도 태어나면 음악가가 되고 싶을 정도로ㅎ;

겨울호랑이 2017-06-06 10:39   좋아요 1 | URL
AgalmA님은 음악을 하셔도 잘 하셨을듯. 사실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왠지 악기 하나씩을 취미로 하실 것 같다는 편견이 제겐 있네요... ㅋ

커피소년 2017-06-0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예전에 어떻게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쳤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지금은 악보 봐도 뭐라고 써져있는지 모를겁니다.. 체르니..ㅎㅎ 오랜만에 들어봅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6-08 19:32   좋아요 1 | URL
^^: 저는 요즘 캐스터네츠로 바꿨습니다.ㅋ

커피소년 2017-06-08 19:35   좋아요 0 | URL
캐스터네츠..ㅎㅎ 그 또한 추억의 악기네요..ㅎㅎ 템버린,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가 삼총사였나요..ㅎㅎ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가 그린 웹툰을 출판한 책이다. 주로 제주 지역 민간 설화를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여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기존의 리뷰 작성 방식은  만화책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절치 않은 방식이라 생각되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본다. <신과 함께>에서 다루고 있는 설화 중 주요한 몇몇 인물에 대해 <살아 있는 한국 신화>에 수록된 원전(原典)의 내용과 저자인 신동흔 박사의 설화 해설을 옮겨 볼 계획이다. 결론 부분에 다소의 스포가 있지만, <신과 함께>의 많은 내용이 작자 창작이라는 점과  설화들 다수가 '해피엔딩'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서에 큰 방해는 안되리라 생각된다.


 1. 천지왕과 수명장자, 대별왕과 소별왕, 태초에 싸움이 있었다

 

[그림] 대별왕과 소별왕(왼쪽부터)


'수명장자가 도끼로 머리를 깨라고 하는 뜻밖의 상황에서 천지왕은 수명장자 머리에 씌웠던 두건을 벗겨서 돌아선다. 천지왕은 왜 그냥 돌아선 것일까?... 인간 세상의 일에 대해 신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사고가 거기 담겨있음을 본다. 인간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신이 달려와서 그를 쳐 죽인다든가 하는 것은 한국 신화의 사고 방식이 아니다.'(p44)


  '소별왕이 수명장자를 징치하고 세상의 질서를 잡은 것은 원시적 삶에서 문명적 삶으로 나아온 역사적 과정의 신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별왕(또는 미륵)의 존재다. 본질을 꿰뚫는 지혜와 생명을 살려내는 능력을 함께 지녔으면서도 이 세상을 책임질 수 없었던 진짜 능력자 말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저승이라 부르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사람들의 빛이 되었다.(p47)... 소별왕에게 이승을 넘기고 저승으로 떠나간 대별왕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존재가 된다. 그 구원은 저세상에서의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의 구원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p48)


[그림] 저승 삼차사 : 해원맥, 강림도령, 이덕춘(왼쪽부터)


 2. 저승 삼차사 : 백년해골을 모신 사만이와 저승 삼차사


 '명신손님처럼 멀리 낯선 땅에 깃들어 있으면서 긴 여행을 통해 이 땅을 찾아오는 신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어둠의 신 저승사자다. 그들은 저 멀리 저승 황천에 살면서 인간 세상으로 훌쩍 건너와서는 수명이 다한 사람들을, 또는 신의 노여움을 산 사람들을 왈칵 붙잡아서 아득한 어둠의 땅으로 데려간다.'(p134)


 '잠깐 저승사자 이야기를 해보자면, 염라대왕 명을 받고 사람의 영혼을 거두러 오는 이 어둠의 사자는 셋이 함께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삼차사"라는 말이 보편화되었을 정도다. 삼차사를 명차지 차사와 복차지 차사, 녹명차지 차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른 자료에서는 천황차사와 지황차사, 인황차사라고도 하고, 저승차사 이승차사 부왕차사라고도 하며, 일직사자와 월직사자, 이원사자(또는 강림차사)라고도 한다. 세 사자에게는 각기 해원맥과 이덕춘, 강림도령이라는 이름이 붙이기도 한다.' (p150)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초상에 임하여 저승사자를 위한 상을 차리는 풍속이 이어져 왔다. 혹시라도 저승사자들이 마음을 돌려 목숨을 살려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죽은 이를 편안하게 데려가주기를 기원하는 행위였다. 떠나는 이에 대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함으로써 아쉬움과 서글픔을 달래고자 했던 바, 그러한 마음의 표시를 미신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죽은 자와와 산 자가, 그리고 산 자와 산 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p154)


 3. 용사 강림 : 염라왕을 잡으러 저승으로 간 용사 강림


 '이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강림도령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차사다. 본래 이승의 차사였는데 능력을 인정받아 저승의 차사가 되었다.'(p443)


 '이 신화를 관통하는 기본 요소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다. 죽을 운명을 탐지하고 그것을 회피하려다가 결국은 운명에 맞닥뜨리는 버물왕 삼형제의 역정이 그러하며 억울한 죽음이 원수의 자식으로의 환생과 재죽음으로 이어지는 서사도 그러하다. 과양생이 각시가 김치원에게 요구한 것도 생사 문제의 해명이었으며, 강림이 염마왕을 찾아 저승길을 넘나드는 것 역시 생사의 경계를 오간 자취에 해당한다.'(p478)


[그림] 할락궁이, 황우양씨, 막막부인(왼쪽부터)


 4. 할락궁이 : 신비의 꽃세상서 천꽃밭 찾아간 할락궁이


 '신비한 꽃의 세상을 우리는 한 편의 본풀이 신화를 통해 제대로 만나볼 수 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신비의 꽃들이 가득한 꽃밭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서천꽃밭"이다. 그 꽃밭을 주재하는 신의 이름은 할락궁이(또는 한락궁이).'(p184)


 '이 이야기의 신화적 재탄생의 핵심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바로 서천꽃밭의 상상력에 있다. 사람을 웃기고 울리며 죽이고 살리는 신비의 꽃들이 가득 차 있는 꽃밭. 그 꽃밭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면 저 너머 또다른 세상이었다.(p201)... 서천꽃밭이 꽃이 표상하는 생사와 고락은 이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및 행로와 맥이 통한다. 이 신화 속의 사라도령과 원강아미, 할락궁이는 생과 사가 엇갈리는 경계 속에서 누구보다 큰 비애를 경험하는 존재들이다.'(p203)  


 '사라도령과 원강아미는 삶과 죽음을 경계로 갈라져야 하는 운명에 직면한다. 온몸으로 그 운명에 맞서보지만 마침내 남는 것은 회한과 절망이었다... 할락궁이는 그야말로 사무치는 원한과 분노의 화신이었다.(p203)... 할락궁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사의 경계에 놓인 채로 누구보다 크고 뜨겁게 희비의 쌍곡선을 경험한 그였다. 그러니 그는 세상 누구보다 밝은 거울이 된다.'(p205)


 5. 황우양씨와 막막부인 : 시험에 대처하는 황우양씨와 막막부인


 '<성주풀이>는 가신(家神)의 내력을 풀어낸 신화이다. 부부가 함께 가정에 깃들어서 아내는 집터의 신이 되고 남편은 집의 신이 되어 집안을 수호해주게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p416)... 이 신화의 서사적 맥락은 한 가정의 평화가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기본 줄기로 삼고 있다.(p417)... 이 부부의 동선에서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겉으로 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p419)


 '황우양씨와 집의 신인 성주신이 되고 막막부인이 집터의 신인 지신이 되는 것도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 화려함은 당연히 "집"의 몫이다. 하지만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이 터다. 터가 좋아야 집이 잘되는 법이다. 집은 허물어져도 터는 영원히 남는다.'(p422)


[그림] 여산부인, 녹두생이, 노일저대(왼쪽부터)


 6. 조왕신 여산부인과 측간신 노일저대 


 '전체적으로 인물간의 대립 관계가 매우 극적으로 부각되어 있는 것이 이 신화의 특징이 된다.(p577)... 노일저대가 "배설"의 장소인 뒷간의 신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정확히 들어맞아서 오히려 놀랍다. 배설에 대한 본능적 욕구란 인간의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요소이다. 배설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리고 그 배설을 통해 생명이 자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의 어둡고 추한 부분이지만, 또한 그를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 노일저대에게 측도부인이라는 신직이 부여되는 것은 이러한 삶의 이치가 신화적으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p580)


 7. 불운의 신 지장


 '이름만 보면 "지장보살"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 신은 "지장이 많다" 할 때의 지장에 가까운 존재다. 살 煞이 끼었다거나 사 邪가 둘렸다 할 때의 부정한 그 무엇이 지장이다.(p588) ... 빛 속의 신과 그늘 속의 신을 갈라본다면 지장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그늘 가운데도 가장 어둡고 차가운 쪽에 자리 잡은 신이 될 것이다. 그러한 존재를 관심의 대상으로 여기고 신령한 의례의 대상으로 삼아서 한 편의 덩그런 신화를 전승해온 것이 지난 시절의 민중들이었다.'(p593)

 

 

<신과 함께>에 나오는 신 神 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차라리 낯설기까지 하다. 미남  美男, 미녀 美女의 모습으로 인간 위에 군림하는 그리스 신과는 달리 우리 신의 모습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며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멋지고 아름다우며 강령한 힘을 가진 신, 인간과 전혀 다른 차원의 전능한 신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신들이 우월한 능력으로 인간의 삶을 지켜준다면 참 고맙고 편안한 일 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간 신화는 왜 이렇게 굳이 남선비와 노일저대 같은 누추하고 험한 존재들을 신으로 삼는 것일까. 이는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성이 다른 데 있지 않고 그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p581)


  <살아 있는 한국 신화>의 저자 신동흔 교수는 신성 神性을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신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의 주요 신들이 태양신, 바다의 신, 달의 여신 등 멀리 떨어진 존재인 반면, 우리 민화에는  집을 지켜주는 가택신,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 대문을 지켜주는 문왕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누구나 될 수 있지 않다. 신들은 하늘과 맞닿은 올림푸스 산에서  '불멸 不滅'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그들만의 삶을 누린다. 인간으로서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신들의 피가 섞여 '반인반신 半人半神'의 영웅으로 살아가는 정도가 최선일 뿐 대부분, '필멸 必滅'의 존재인 인간은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은 신들이 살고 있는 올림푸스 산의 모습 속에 잘 드러난다.

 

[사진] 올림푸스 산 (출처 : 나무위키)


 그리스 신들이 사는 거처가 멀리 떨어져 경외 敬畏의 대상인 올림푸스산이라면, 우리네 신들(산신령)이 사는 산은 우리 주면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우리 앞 산, 뒷산이다. 엄마가 떡을 팔고 집에 오다가 호랑이를 만나기도 하는 곳. 우리 근처에 우리의 신들은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들은 결코 먼 존재가 아니었다. 민간설화가 많이 남아있는 제주의 오름을 보면 우리 '신들의 공간'을 느끼게 된다.

[사진] 제주 오름 (출처 : http://jejulover.tistory.com/24)


 신화(myth) 神話라고 하면 그리스 아프로디테가 바리데기 공주보다 더 익숙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신화를 읽다보면 그리스 신화에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아마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느꼈던 그런 감정이 아닐까.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우리 신화를 통해 느낀다. 바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잠시나마 시간을 내서 <신과 함께>와 <살아 있는 한국 신화>를 통해 따뜻함을 느끼고 우리 삶을 충전하는 것 또한 삶을 살아가는 작은 지혜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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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6-02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잡이라는 티비 프로그램 보는데 주호민 나와서 반가웠어요.
저는 저승편 3권만 본 것 같은데, 영화로도 만들어진다죠?^^

겨울호랑이 2017-06-02 17:54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올 여름에 영화 개봉한다고 하던데, 캐스팅도 하정우, 이정재, 차태현, 주지훈 등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되네요.^^:

2017-06-02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2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 2017-06-03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위력이 강한 곳에서 신들이 함께 머물려 인간을 돌봅니다. 일본도 비슷해요. 신과 함께 대단한 웹툰이라고 들었는데 제주에 뿌리를 두었군요. 오늘도 새로운 지식 나눔. 호랑이님 화이팅 ^^

겨울호랑이 2017-06-03 13:4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사마천님 말씀 들으니 그리스에 올림푸스산이 있다면, 일본에는 후지산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일본을 ‘신의 나라‘라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내용의 만화라 사마천님께서 편하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6-03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寒 氷 저승편에서 봤던 한빙지옥이 떠오르네요..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자를 심판하는 지옥..
마음이 얼어붙은 적도,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 적도 있기 때문에..

겨울호랑이 2017-06-03 14:53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저승편에서 7가지 지옥이 떠오르네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AgalmA 2017-06-03 2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이 글 쓰셔서 더 어울림요ㅎ ˝비나이다 비나이다 겨울호랑이님께 비나이다˝~ ˝에비~ 겨울호랑이님이 잡아 가신다!˝~ ˝만나면 반갑다고 곶감곶감~˝
(내 귀에 굿청장치)

겨울호랑이 2017-06-03 20:44   좋아요 2 | URL
ㅋㅋ 이런.. 졸지에 산신령 졸개 호랑이가 되버렸네요 ㅋㅋ

커피소년 2017-06-08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기억이 남는 신화는 단군신화입니다.. 예전에 만화로도 재미있게 봤습니드.. 호랑이는 사람이 못 되고 곰은 사람이 되고.. 생각해보면 곰이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동물이 사람이 되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겨울호랑이 2017-06-08 19:54   좋아요 1 | URL
^^: 저도 인간인지라 잘 모르겠네요. 인간이 새의 날개, 호랑이 이빨 등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자신이 없는 것을 동경하는 것은 아닐까요? 큰 머리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