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이 있어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소 피곤함을 느끼던 중 우연히 책 한권에 눈길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많은 이웃분들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이웃분이신 유레카님의 포토에세이 <소리 없는 빛의 노래>였습니다. 어제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책이 손짓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와 닿는 사진과 에세이를 작가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옮겨 봅니다...


바다가 보내준 기별


넓은 마당이 있는 집 한켠에 우체통 하나. 이른 아침,

집배원 아저씨 모이 뿌리듯 엽서 한 장 툭 밀어 넣고 이내 사라진 자취따라

게워내듯이 열었다.

오래 전 잊혀졌던 이가 가을 바닷가에서 보내준 낙엽처럼 날아온 조개엽서.

바다는 오늘도 잘 있다며 안부의 기별은 보낸다. 얼핏 파도 내음 스며 나와 그리움이 스쳤다. 

바다가 전해준 기별 당은 기포 한 방울 차마 못다꺼진 채로 남아 있었기에.




당시 유레카님 포토에세이와 함께 시(詩)를 잘 모르는 저를 위해 한 권을 책을 더 보내주셨습니다. 여태껏 고이 모셔두었지만, 어제는 <소리 없는 빛의 노래>와 같이 손짓하는 느낌이 들어 마찬가지로 펼쳐 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와닿는 송광순 시인의 시(詩)가 있어 옮겨봅니다.



밤바다


한 해가 저무는 밤

물끄러미 쳐다보는 내 눈을 보고

밤바다 파도가 말을 건다

처 얼 썩

'너 많이 아프구나?'


속으로 들이키는 한 숨 소리 듣고

또 말을 건넨다.

처 얼 썩

'그래. 오래 동안 아팠구나?'


금세 붉어지는 내 눈을 보고

속삭인다

처 얼 썩

'다 내뱉지 못한 말이 많았구나'


가슴 속 검은 덩어리 하나.

끝내, 새벽 파도 위로 왈칵 쏟고나니 

하얀 포말로 떠나며 다독인다.

쏴 아 아

'그래, 그래 잘 했어. 힘들면 또 와'


다른 좋은 시(詩)도 있지만, 어제는 시(詩)가 마음에 스며든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직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바라보지는 못하지만, 제 마음을 잘 표현한 시를 만나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시(詩)를 가슴으로 읽는다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껴본 어제였습니다.

 

 책을 받은 지 벌써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포토 에세이에 담긴 많은 내용을 얼마나 가슴으로 깊게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책이 손짓하며 부를 때 그때마다 찾아간다면 언젠가는 많이 이해할 수 있겠지요. 



 책 앞 편에는 유레카님께서 적어 주셨던 글이 있어 사진으로 올립니다. 이웃분들과 함께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감을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유레카님, 덕분에 시(詩)에 대해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 저 역시 기쁩니다. 새로운 시(詩)의 맛을 알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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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1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을 알지 못했으면 지금만큼 사진과 시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제 독서에 커다란 영향을 줬던 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유레카님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11 18:18   좋아요 3 | URL
^^: 아 그렇군요. 유레카님께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군요^^:

dys1211 2017-08-11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또 놀라운 사실과 따뜻함이....^*

겨울호랑이 2017-08-11 18:19   좋아요 3 | URL
^^ 네. 저 역시 유레카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에디터D 2017-08-14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시도, 유레카님의 마음도, 또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시는 겨울호랑이님도 어쩜 이렇게 고울까요.^^

겨울호랑이 2017-08-14 22:44   좋아요 0 | URL
리제님 감사합니다^^: 알라딘 이웃분들로부터 책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고, 리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런 식으로 수천 년을 살아오던 어느 날, 선형세계의 종교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칼루자 K.라인  Kaluza-K. Line이라는 생명체가 무언가 대단한 진리를 깨달아, 수많은 선형생명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앞-뒤에 있는 이웃 생명체들의 눈을 수년 동안 관찰하던 끝에, 선형세계가 1차원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선형세계가 사실은 2차원인데 하나의 차원이 너무나도 작은 공간 속에 숨겨져 있다면, 우리는 그런 세계를 1차원으로 착각하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내 말이 맞다면 지금부터 우리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질 것이다.'(p295) <엘러건트 유니버스>


 <엘러건트 유니버스 the elegant universe>에서 저자인 브라이언 그린(Brian Randolph Greene, 1963 ~) 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차원의 확대를 설명한다. 끈이론에 따르면 10차원, M이론에 의하면 11차원까지 논의는 확대된다. 우주이론의 차원 확대가 공간과 시간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확대라고 봐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관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들의 관계를 정의하자면 '당구장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들이 당구장 관계인지는 페이퍼 마지막에서 밝히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3차 산업 혁명'을 중심으로 4차 산업 혁명과의 관계를 살펴보려 한다. 먼저 '3차 산업 혁명'부터 시작해보자.


1. 제3차 산업혁명 : EU, 에너지 인터넷, 사회적 가치 창출

 

<3차 산업혁명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 은 서문에서 3차 산업혁명이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여기에 3차 산업혁명을 위한 5가지 핵심 경제계획을 더한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대부분의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넷 기술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들이 곧 서로 융합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3차 산업혁명(Third Industrial Revolution, TIR)을 위해 새롭고 강력한 기반을 창출할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는 수억의 사람이 가정이나 사무실 또는 공장에서 자신만의 녹색 에너지를 생산할 것이며, 현재 우리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창출하고 교환하듯 "에너지 인터넷"으로 에너지를 주고 받을 것이다. 이런 식의 에너지 민주화는 인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 비즈니스와 정치, 자녀 교육의 방식은 물론이고 시민 생활에 참여하는 방법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p10)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혁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듯 '에너지 인터넷'을 에너지를 교환하는 사회가 곧 도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재정립 역시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분권화된 사회, 수평적 권력 구조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EU에서는 2000년 초반부터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2000년 경, EU는 지속 가능한 경제 시대로 이행하기 위해 탄소 의존도를 현격히 줄이는 여러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유럽인은 그에 따라 목표와 벤치마크를 준비하고 연구개발 우선 사항을 재설정하며 새로운 경제적 여정을 위한 규약과 규정, 표준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p11)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삶의 모습이 변화하는지에 대해 <3차 산업혁명>에서는 사업 방식의 재창조되는 과정을 '3D 프린터'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게임의 중심에 '인터넷 Internet'이 위치한다.


 '고도로 자본화된 거대 중앙 집권형 공장만큼 산업화 시대의 생활상을 더 잘 나타내는 것도 없다. 육중한 기계들이 들어차 있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조립라인에서 대량생산 제품을 찍어내는 그런 공장 말이다. 그런데 만약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각자 집이나 일터에서 일괄 생산 제품 혹은 개별 생산 제품을 제조한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그 품질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선진 공장 제품에 못지 않고 가격과 배송도 더 싸고 빠르다면 어떠할까? 수백만 명의 사람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3차 산업혁명 경제의 발달로 가능해지듯 새로운 디지털 제조 혁명으로 내구재 생산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새 시대에는 누구나 자가 전력회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자가 제조업자도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분산형 제조의 세계가 열리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p173)


 '인터넷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경젱의 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은 수백만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거의 공짜로 이어 주었다. 도매업자와 소매상 등 중간 상인들은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분산형 네트워크로 대체되었고, 공급망의 단계마다 추가되던 거래 비용도 사라졌다.'(p175)


  위에서 본 바와 마찬가지로 '제3차 산업혁명'은 EU가 중심이 되어 일어난 일련의 에너지 혁명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러한 혁명의 시대에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 '인터넷', '3D 프린터'등의 등장은 첨단 과학의 결과물로 이러한 분야의 발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러한 흐름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실리콘밸리에서 내놓는 "킬러 앱(Kill app)'과 최신 장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주택 보유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유량 주택담보대출)가 바람을 넣은 부동산 시장 호황에 흥분과 기대감에 빠져 들었다.'(p11)


2. 패러다임 (Paradigm)


 그렇지만, 미국은 이미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 제조업 강국 일본을 물리치고, IT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다시 부활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paradigm shift을 통해 IT기술주 등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급등했던 경험을 2000년대 초반 '벤처 열풍'과 'IT 혁명' 을 통해 우리 역시 체감했었다.( 비록, 기술주 거품이 빠져서 NASDAQ 대폭락 사태가 바로 뒤를 잇지만). 여기서 잠시 패러다임을 살펴보자. 


 

'이 책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성취는 더 나아간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한동안 인정한 것을 말한다.(p73)... 이 저술들은 두 가지 본질적인 특성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것들의 성취는 경쟁하는 과학 활동의 양식으로부터 끈질긴 옹호자 집단을 떼어내어 유인할 만큼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재편된 연구자 집단에게 온갖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충분히 융통성이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띠는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부르기로 한다.(p74)' <과학 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


 1990년대 중반 제러미 리프킨과 EU에 의해 주도된 '3차 산업혁명'에 대항하여, 미국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내세우고,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용한다. (2017년 한국 대선에서도 이 패러다임은 영향을 미쳐 '삼디 3D프린터', '오지5G'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3. 4차 산업혁명 : 미국, 사물인터넷, 대기업 이윤


 제4차 산업혁명(第四次 産業革命, 영어: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4IR)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낸 혁명 시대를 말한다. 18세기 초기 산업 혁명 이후 네 번째로 중요한 산업 시대이다. 이 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과 같은 6대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다.


 세계 경제 포럼 창립자 겸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의 저서 《제4차 산업 혁명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서 이 네 번째 혁명이 기술 발전에 의해 특징 지어 졌던 이전의 세 가지 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관리를 통해 자연 환경을 재생산 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출처 : 위키백과]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본다면 3차 산업혁명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설명하고 있는 3차 산업혁명의 내용은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의 '3차 산업혁명' 과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 제어 자동화'를 의미하여, 대량 생산의 진화의 다른 말이다. (관련 자료 : http://www.newsquare.kr/issues/1206/stories/5003) 그렇기 때문에, <3차 산업혁명>의 3차 혁명과 4차 산업 혁명은 시간적으로 연속선상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4차 산업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4차 산업 혁명의 충격>의 서문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말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그것과 구별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라고 보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속도와 범위 그리고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이다. 현재와 같은 비약적인 발전 속도는 전례가 없다.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비교하면, 4차 산업혁명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모든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산업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혁명에 따른 변화의 폭과 깊이는 생산, 관리, 통제 전반에 걸쳐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한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 연결된 수십억 인구는 전례 없이 빠른 처리 속도와 엄청난 저장 용량 그리고 편리한 정보 접근성을 갖춤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해질 것이다.'(p18)


   슈밥의 논리에 따르면 이전과는 달리 빠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다. 시간에 뒤쳐지게 된다면, 결국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그의 논리 속에서 결국 '집중(集中)'의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4차 산업에서 강조되는 것은 자본(資本, capital)이다. <3차 산업 혁명>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인적 결합(人的 結合)'이 강조된다면, 4차 산업 혁명에서는 '자본'이 결합된다. 대표적인 4차 산업 혁명의 분야로 불리는 '사물인터넷 IoT', '인공지능 AI'등의 분야를 살펴본다면, 이들 분야의 발전에는 '인간'보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4. 자본의 질서


  4차 산업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면, 3차 산업에서 말한 '인적 결합'과 달라지는 부분은 무엇일까? 노동의 대가인 임금(賃金)과 자본의 대가인 이윤(利潤)은 상품가격을 구성함에도 이들은 다른 원리에 의해 규제된다. 자본가의 이윤에 대한 기대는 자본가 자신의 직접 노동이 아닌 투입되는 자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 노동의 대가인 임금의 원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국부론>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이 특정한 사람들의 손에 축적되자마자 그들 중 약간의 사람들은 근면한 사람들에게 원료와 생활수단을 제공하면서 일을 시켜, 그들이 만든 것의 판매에 의해, 또는 그들의 노동이 원료에 추가한 가치에 의해,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p61)... 그런데 이 자본의 소유자는 거의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윤이 자기 자본에 정비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품가격에서 자본이윤은 노동임금과는 전혀 상이하고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규제되는 구성부분을 이룬다.'<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上>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 (p63)


 특히, 자본의 경우 '고정비용(Fixed Cost)'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초기에 대규모의 설치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첨단 과학(Science) 분야의 경우에는 이러한 대규모 설치비용은 진입장벽(market entry cost)으로 작용하게 되며, 소수 대기업이 독점 기업화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자본 중심주의의 결과 노동자들은 '수평적 권력' 대신 '수평적 분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본>에서 발견한다.

 

'작업도구와 함께 그것을 운전하는 기술도 노동자에게서 기계로 이전된다. 도구의 작업능력은 인간 노동력의 인적인 한계에서 해방된다. 이리하여 매뉴팩처 분업이 기초해 있던 기술적 토대는 파괴된다. 그리하여 매뉴팩처의 특징을 이루는 전문화된 노동자들의 위계구조를 대신하여, 자동화된 공장에서는 기계의 조수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균등화 또는 수평화 경향이 나타나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부분노동자들간의 구별 대신 연령과 성(性)이라는 자연적 구별이 중요해진다.'<자본  Das Kapital: 1-1>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p567)


 '공장법전에서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자신의 전제(傳制)를 - 부르주아 계급이 그토록 좋아하는 권력분립이나 또 그 이상으로 좋아하는 대의제 가운데 어느 것도 없이 - 사적 법률로 마음대로 정해놓고 있는데, 이런 공장법전은 다만 대규모 협업이나 공동의 노동수단(특히 기계)의 사용과 함께 필요해지는 노동과정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자본주의적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자본 1-1>(p572)


5. 제4차 산업혁명 : 또 하나의 패러다임 


 '과학혁명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서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누적적이지 않은 발전의 에피소드이다.'(p184) <과학 혁명의 구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제4차 산업혁명'이란 하나의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이 아닌, 이를 대체하는 또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고, 이러한 패러다임 논쟁 속에서 일본 조정의 주도권을 놓고 다퉜던 '겐페이 전쟁'을 생각하게 된다.


[그림] 겐페이 전쟁(출처 : 위키백과)


 겐페이 전쟁 (일본어: 源平合? げんぺいかっせん 겐페이 캇센[*]) 는 1180년부터 1185년까지 헤이안 시대 말기에 벌어졌던 내전이다. 이 전쟁에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헤이시(平氏)와 지방세력인 겐지(源氏)는 일본의 각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국 헤이시는 패배하고 겐지가 전국을 장악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朝)는 막부의 수장인 쇼군이 되었다. "겐페이"는 源平을 일본 한자음으로 읽은 발음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일본 연호를 이용한 지쇼·주에이의 난(일본어: 治承??永の? じしょう?じゅえいのらん 지쇼·주에이 노 란[*])이 있다. 겐페이 전쟁은 조정의 주도권을 둘러싼 수십 년간의 헤이시와 겐지의 갈등이 폭발하여 발생한 것이다. 겐지는 이전에도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에서 헤이시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패한 겐지의 유력인물들은 처형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대학교 때 당구장에서 '겐뻬이'라는 용어를 많이 들었지만(당구를 못치기에 듣기만 했다), 그 유래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었다. 그 뒤에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졸업한 후로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요즈음 '3차 산업 혁명',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을 우리는 요즘 흔히 입에 올리고 있다. (심지어는 6차 산업이라는 용어도 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농림축산식품부의  홈페이지 http://www.6차산업.com/portal/main.do 에 들어가보시라.) 이런 유행어 같은 '제 *차산업 혁명' 이라는 용어 속의 의미를 우리는 한 번 되새겨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와 함께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요소(p59)


1.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한다.

2. 모든 대륙의 건물을 현장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로 변형한다.

3. 모든 건물과 인프라 전체에 수소 저장 기술 및 여타의 저장 기술을 보급하여 불규칙적으로 생성되는 에너지를 보존한다.

4.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대륙의 동력 그리드를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로 전환한다.

5. 교통수단을 전원 연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륙별 양방향 스마트 동력 그리드 상에서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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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8-08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운 페이퍼입니다. ^^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08 16:14   좋아요 0 | URL
^^: 제가 생각해도 놀랍게도 간단한 내용을 아주 길게 늘려썼습니다.ㅋㅋ 감사합니다.

2017-08-08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8-08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그때에 비로소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

겨울호랑이 2017-08-08 20:11   좋아요 1 | URL
^^: 스티븐 호킹이 그런 말을 했군요.. 우리가 신의 마음을 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7-08-08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8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8 18: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소개되었던 혁신 기술들이 재인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겨울호랑이님이 인용한 ‘4차 산업혁명‘ 위키백과 항목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 인공지능, 로봇공학, 나노 기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분야는 이미 오래전, 3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던 시절부터 쭉 개발되어 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산속도, 산업의 규모 발전 등이 과거와 다르게 발전 확대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새로운 발전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의 기술 수준이 임계점을 넘어 섰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게 실제로 있다면 제 주장을 반론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세상에 충격을 줄만한 획기적인 결과물이 한두 개 정도 나왔다면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을 대체하는 패러다임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지금의 시간을 역사로 기록하는 다음 세대의 몫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새로운 용어인 마냥 과잉 사용하는 분위기를 보면 세상의 변화 과정을 순차적으로 짜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호들갑을 떠는 것 같습니다. 용어에만 주목하고 ‘실체’를 보지 않는다면 4차 산업혁명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8 20:21   좋아요 1 | URL
저도 cyrus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신석기 혁명이나 영국 산업혁명은 역사의 검증을 받은 역사적인 혁명이지만, 그 이후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슬로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3차 산업혁명>의 저자인 리프킨도 3차 산업혁명이 자리잡는데만도 40년이 소요된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그 과정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cyrus님의 말씀처럼 기다려 봐야하겠지요.현재 많은 과학기술의 변화가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삶의 변화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도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첨단 기술의 결과물인 ‘스마트 폰‘이 사회변화에 준 영향이 과거에 개발된 ‘치실‘의 변화만큼 우리 삶을 바꿨는가?하는 질문을 해본다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dys1211 2017-08-08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글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적 통찰력과 예술적 감수성˝이 생각납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9 06:24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도 마찬가지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 글에서 인문학적 통찰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발견하셨다면 그것은 아마도 부족한 제 글을 통해서도 너그럽게 읽어주시는 이웃분들의 높은 안목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 dys1211님 항상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7-08-10 05: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 따라하는 건 아니고 미래는 이미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구성원들이 공조할 패러다임이 제대로 구성되지 못하는 게 난제겠죠. 이미 3d 프린터로 집도 뚝딱 짓더군요. 가격과 내구성을 거론하지만 그거야 해결하기 나름이고 여기서 문제란 자본과 지대 아니겠어요.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소유 개념이 바뀌면 문제는 180도 달라질 겁니다. 피케티도 지적하다시피 상속, 세습 같은 게 한국에서는 ‘재벌‘이란 용어를 낳을 만큼 후진적 혹은 본질적 경제 딜레마이긴 하지만 이 4차 혁명 시기는 참 흥미로운 지점 같거든요. 화폐, 정보, 재화 등이 물질성에서 점점 탈피되고 있단 말이죠. 이때 인간이 무엇을 더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그려질 텐데... 요즘 보면 이념들로 보호막을 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참....맑스가 그때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싶기도 하다니까요. 도토리 모으는 다람쥐 같은 경제 인식으로는 미래의 답은 없을 겁니다. 당장 틈만 보여도 아파트 분양 사재기하는 것 좀 보세요ㅎㅎ 그런데 공포에 떨며 혹은 욕망에 취해 내 주머니 채우는 이건 동물적 본능 같은 것이기도 해서...인간은 참 떨쳐내기 어려운 듯. 대부분 시스템 속에서 적당히 적응하며 살다 죽겠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만들고 생산을 위해 생산하는 이런 틀을 바꿔야 하는데 모두 한마음으로 바꾼다고 해도 실패할 혁명이거나 또다른 전체주의가 되거나 그러겠죠.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제 댓글이 점점 선문답 혹은 궤변이 되어가는 거 같아 여기서 대책없이 마무리 할께요^^;

겨울호랑이 2017-08-10 06:18   좋아요 1 | URL
^^: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합니다.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현실 적용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 현실에서는 수많은 방법이 같은 이론의 배경하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참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런 혼란은 아마 모든 이론의 기본 ‘가정‘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주장한 ‘합리적 인간‘인데, 현실은 ‘감정적 인간‘이니, 이하 이론은 ‘형이상학‘에 머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감정적 측면, 이기적인 측면을 고려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경험적 사실에 대한 과도한 믿음도 경계해야할 것 같군요. 과거 20세기 대량생산 시대에서 얻어진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은 ‘저출산 고령화‘, ‘환경 변화‘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에게 과거와는 다른 해결방식을 요구하니까요... 여러 면에서 우리는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험볼 때 최선의 방법을 과거 기출 문제를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그처럼 새로운 길을 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새롭게 적용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며, 저역시 대책없는 댓글 마무리 합니다.^^:
 

 더운 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두 책의 주제는 List(目錄)이며,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같은 듯 다른 두 책의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비교, 대조해 봅니다.


1.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 공간(空間) 속의 목록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에서 일본 언론인, 작가, 평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 (立花隆 たちばな たかし, 1940 ~ )는 자신의 서재이자 작업장인 '고양이 빌딩'에 소장된 책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가이드처럼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는 책의 구성 덕분에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느낌을 준다. 


'이쪽 서가는 저자별로 되어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에드워드 윌슨 등 과학론이 모여 있습니다.(p96)... 여기에 있는 <멋진 신세계> 등 올더스 헉슬리의 책들은 고서점에서 세트로 산 겁니다. 그 고서점에서는 낱권으로 팔지를 않았거든요. 본격적인 고서점들 중에는 그런 곳이 꽤 됩니다...(p97)'


 이 책에서는 단순히 소장도서를 소개하는 것에 그지 않는다. 언론인인 저자가 취재하면서 얻은 내용도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깊이 있게 들어간 내용도 발견하게 되며, 이를 통해 저자의 넓은 지식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대표적인 부분이 <구약성경>의 창세기(Genesis)의 전승자료와 관련한 다음의 내용이라 생각된다.


'구약성서에는 사실 천지창조 신화가 둘 있습니다. 하나가 이 1장 1절에 나오는 대로 신(엘로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는 신을 엘로힘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E자료에 의한 천지창조 신화라고 부릅니다. 또하나의 천지창조 신화는 2장 4절 이하, 즉 에덴동산과 아담과 이브가 나모는 대목입니다. 이쪽은 신의 이름을 야훼JHWH라고 한다는 점에서 J자료에 의한 천지창조 신화라고 합니다.'(p202)


[사진] 고양이 빌딩(출처 : 한겨레 블로그)


[사진] 고양이 빌딩 서재 모습 (출처 : http://m.yna.co.kr)


 책 본문에서 저자는 여러 분야에 걸쳐진 책의 내용과 현재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책의 내용 속에서 우리는 저자의 공부법에 대해서도 짧게 나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책의 대부분이 일본서적이기 때문에 소개된 책 다수를 우리가 한국어로 접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감수한다면, '넓은 지식'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쪽에는 <싱할라어사전>, <피진어 사전>, <이누이트어 사전> 등 여러 나라 언어의 사전들이 있습니다. 물론 마이너한 언어들만이 아니라 라틴어도 있고 중국어도 있지요.'(p88)


 '석유 이야기에서 이스라엘과 중동 이야기로. 공산당 이야기에서 중핵과 혁마르, 그리고 적군 이야기로. 하나의 주제를 기점으로 취재할 것이 점차 증식되어 가는 것. 이것이 제가 일을 하는 방식이죠.'(p334)


2. <궁극의 리스트> : 시간(時間) 속의 목록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가 '서재'라는 공간(空間)속에 놓여진 책을 바탕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호메로스(Homeros, BC 9C(?) ~ 8C(?))로부터 앤디 워홀(Andy Worhol, 1928 ~ 1987)까지의 시간의 흐름 안에서 <궁극의 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궁극의 리스트>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와 달리 주제를 문학, 예술로 한정하여 보다 깊이 있는 목록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궁극의 리스트>는 '깊이있는 지식'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 맞는 책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일리아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일리아스>에 나오는 선박 카탈로그 사이에도 그만큼의 많은 세월이 존재한다. 이 책은 바로 <일리아스>에서 단서를 얻은 것이다. 한편 호메로스의 바로 그 책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서술적인 모델을 발견한다. 조화로운 완성과 종결이라는 기준에서 영감을 얻어 주문한 아킬레우스의 방패라는 모델이 그것이다.'(p7)


[사진] 아킬레우스의 방패 (출처 : http://valarmorghulis.tistory.com/5)


 다음은 <일리아스>에서 시인이 출전하는 함대의 목록을 읊기 전 나오는 대사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묘사한 장면의 일부를 가져와 본다.


 '이제 말씀해주소서. 올륌포스의 궁전에 사시는 무사 여신들이여! -그대들은 여신들이라 어디나 친히 임하시므로 만사를 아시지만 우리는 뜬소문만 들을 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나오스 백성들의 지휘자들과 지배자들은 누구누구였습니까? 하나 군사들에 관하여 일일이 이름을 들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이기스를 가지신 제우스의 따님들인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께서 일리오스에 간 모든 이들에 관하여 일일이 일러주시지 않는다면, 설사 내게 열 개의 입과 열 개의 혀가 있고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와 청동의 심장이 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일리아스 Ilias> 제2권 (484 ~ 493)


 '거기에 그(헤파이스토스)는 대지와 하늘과 바다와 지칠 줄 모르는 태양과 만월(滿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별들을, 플레이아데스와 휘아데스와 오리온의 함과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 곰을 만들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지켜보는데 이별만이 오케아노스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는다.'<일리아스 Ilias> 제18권 (483 ~ 489)


 <일리아스>에서 모든 병사들까지 다 말할 수 없기에, 주요 지휘관들과 지배자들만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주제별로 한정된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다. 다만, 다룬 내용 중 헤파이스토스가 세상 만물을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촘촘히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움베르트 에코는 지식의 목록을 가급적 촘촘히 새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궁극의 리스트>에 언급된 주제와 관련한 모든 작품을 언급하는 작업은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께서 일러주시지않는다면 호메로스도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호메로스에 미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목록에 대해 살펴보고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미학에서 무한이란 우리가 찬양하는 유한하고 완벽한 완전성에 따라오는 하나의 느낌인 반면, 지금 말하는 재현 형태는 거의 "물리적으로" 무한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것은 끝이 없으며", 형태로 종결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재현 방식을 "목록" 또는 "카탈로그"라고 부를 것이다.'(p17) 


3. 그리고 만남 : 교점(intersection point)


 공간적인 리스트를 X축으로 놓고, 시간적인 리스트를 Y축으로 놓는다면 실제로 이들 서재의 책들은 이들 사분면에 대응될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공통된 책을 찾기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구약성경> ,<신약성경> 정도 추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양이 빌딩에 수많은 책을 소장한 다치바나 다카시와 마찬가지로 움베르트 에코 역시 책목록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의 교점(intersection point)은 '목록을 통한 즐거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책 목록에 대한 취향은 세르반테스부터 위스망스, 칼비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켜왔다. 더욱이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타로그(확실히 실용적 목록으로 만들어진)를 무릉도원이나 욕망의 땅에 대한 황홀한 묘사처럼 읽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쥘 베른의 독자들이 고요한 심해 탐험이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얻듯이, 그들은 책 목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p377)


 마지막으로, 이 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작업이 미완(未完)의 작업임을 고백하면서 서문을 마치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독서, 공부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이기 때문에 리스트는 죽는 날까지 update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리스트의 완성(完成)'이고, 이는결국 우리의 몫이고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목록을 조사하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가 이 책에 포함할 것을 추려 내는 작업이었다기보다는 제외해야 할 모든 것을 추리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책은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궁극의 리스트> (p7)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가 이런 식이다보니 서가 앞에서 펼치는 나의 이야기는 경계를 넘어 끝없이 뻗어나가고, 한 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정리한 텍스트에 일단 교정의 붉은 펜을 대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가필하면서 또 사고가 끝도 없이 펼쳐져서, 이 책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간신히 여기서 끝낸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p12)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와 <궁극의 리스트>는 모두 독서를 위한 좋은 안내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종교, 과학, 역사 뿐 아니라 임사체험, 항공기 제작 등 넓은 분야의 책을 폭넓게 다루는 반면, <궁극의 리스트>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양의 문학, 예술과 관련한 책들 문장을 짚어주고 있다. 전자(前者)가 넓다면, 후자(後者)는 깊다고 해야할까.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나게 된다. 

 

子曰 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이니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壽니라.  <논어 論語>옹야(雍也)편 제21장


 우리 자신의 리스트를 만들 때  스스로 슬기롭다 생각하는 사람(知者)는 물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면 좋을 듯 하고, 스스로 어질다 생각하는 사람(仁者)는 산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페이퍼를 마친다. 


PS. 슬기롭지도, 어질지도 않은 자신이기 때문에, 제 자신의 리스트는 더운 날을 피해서 산이나 바다로 한 번 놀러간 후에 천천히 만들어야겠다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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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6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푸가와 서곡


가. 푸가(Fuga)


모방대위법에 의한 악곡형식(樂曲形式) 및 그 작법. 원래 '도주(逃走)'의 뜻으로 음악용어로는  둔주곡(遁走曲), 추복곡(追覆曲) 등으로 번역된다. 그 전에는 카논을 뜻했으나 17세기 이후부터는 모방대위법에 의한 보다 완성된 음악형식과 악보 적는 법을 의마하게 되었다.


나. 서곡(序曲, overtura)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 모음곡 등의 첫부분에서 연주되어 후속부로의 도입 역할을 하는 기악곡. 그 자체가 정돈되어 있는 내용을 갖고, 완결되어 명확한 종지감(終止感)을 줌으로써 후속부와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이 점에서 같은 도입적 성격을 띄면서도 보다 소규모적으로 후속부와 계속적으로 접속되는 일이 많은 서주(西奏)와 다르다. 역사적으로 서곡은 우선 두 가지 중요한 형태로 분류된다. 17 ~18세기에서의 프랑스 풍 서곡과 이탈리아풍 서곡이 그것이다.'(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2. 음악의 기쁨


가. 푸가


'푸가는 단일 주제를 각 성부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변형하며 연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전개되지요. 그러니까 그 진행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예상 가능합니다.... 푸가의 원리는 사람 음성 높낮이의 자연스러운 분포에 이미 있어요.... 동일한 주제를 서로 간격을 유지하면서 따로따로 부른다면 카논이라고 합니다. 카논은 푸가의 기원이지요. 푸가는 카논의 자원을 끌어다 쓰지만 균일성을 깨뜨립니다. 여러 국면들이 에샤페(Echappee, 회피음), 반복과 함께 이어지다고 엄밀하게 예정된 단계에 따른 추적이 막바지에 이르면 일종의 함성이 일어나죠.'(p22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의 <평균을 클라비어 곡집 Das wohltemperierte Klavier>에는 선택할 수 있는 예들이 넘쳐나죠. 일단 여기 첫 번째 목소리로 등장하는 테마 혹은 주제가 있고요. 이 목소리가 뒤따라 나오죠. 짧은 선율적 부분이 제2주제를 끌어들여요... 첫 번째 성부에서 제1주제가 제2주제를 이끄는 동안에 두 번째 성부는 응답(Response)을 하는 겁니다. 응답은 딸림조로 옮겨진 주제죠. 두 번째 성부를 맡은 목소리의 테시투라(Tessitur, 편하게 낼 수 있는 적정 성역)에 해당합니다. 이 응답이 첫 번째 성부에서 나오면서 또다시 대주제(對主題)를 이끌겠죠. 이 모든 것이 소위 푸가의 제시부 Exposition를 이룹니다.'(p226)


'그 다음은 희유부 Divertissement가 오는데 이는 기본 테마에서 선율적 요소들을 따와서 반복적으로 전개하여 첫 번째 희유부를 구성합니다. 주제 혹은 대주제에서 가져온 희유부는 관계조들을 넘나들다가 으뜸조의 딸림화음으로 귀결됩니다. 푸가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부분이죠.'(p227)


'그 다음은 스트레타 Streta죠. 종결부에서 추적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주제와 응답이 점점 더 겹쳐갑니다. 드디어 "페달", 즉 베이스의 지속음이 종결부를 끌고 오죠. 그동안 주제, 응답, 대주제가 마지막으로 제시되고요. 푸가는 원조의 승리를 확인하는 카덴차로 끝을 맺습니다.'(p227)



나. 서곡 


'치밀한 형식과 극적 의미 전달이라는 바로 이 이중의 요구가 교향악 스타일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소재를 바로 공략해야 하고, 주테마들과 부테마들 사이에 조성 관계가 있어야 하고, 대비를 강조하되 균형은 유지해야 하고, 에필로그와 종합과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테마 혹은 리듬의 요소로서 음향적 조직을 견고하게 지킬 의무... 오페라의 서곡과 교향곡의 알레그로 악정은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풀어야 했지요. 그리고 이 공통의 문제들이 결국 오페라의 서곡과 교향곡의 알레그로 악장을 서로 가까워지게 했습니다.'(p238)


'베버(Weber, Carl Maria von, 1786-1826)의 <오베론 Oberon> 서곡은 무슨 즉흥곡처럼 보이는 동시에 마법적 주술의 매혹을 지니고 있죠. 이 음악은 아주 특별한 힘, 즉 사건들을 분명히 예고하되 위험 없이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힘을 지닙니다.'(p239)



3. 그라우트 서양음악사


가. 바흐의 푸가


'전형적으로 바흐의 푸가 형식은 협주곡의 빠른 악장과 매우 비슷하다. 푸가 주제는 관계조나 으뜸조로 되돌라오는 리토르넬로와 유사하게 기능한다. 위와 같은 음악적 진술 사이에는 에피소드가 위치하는데, 에피소드는 독주 부분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종종 더 가벼운 짜임새와 동형 진행을 갖고 있거나 조가 변화되는 형태를 지닌다.'(p482)


나. 프랑스 서곡


'프랑스 서곡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은 두 번 반복된다. 첫 부분은 수직화음적이고 장엄하며 부정리듬과 강박을 향해 몰아치는 음형으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부분은 더 빠르고 푸가와 같은 모방 비슷한 것으로 시작된다. 때로는 제일 마지막에 첫 부분의 템포와 음형이 되돌아 나오기도 한다.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 ~ 1687)의 오페라 <아르미데>(1686, NAWM 77a>의 서곡은 이 장르의 좋은 예다.'(p392)


다. 이탈리아 서곡


 이탈리아 서곡과 관련한 별도의 설명이 없어 유명한 주페(Franze von Suppe, 1819년 ~ 1895년)의 <경기병 서곡>을 대신하여 올립니다. <경기병 서곡>은 국민학교 음악시간에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나는 추억의 곡이네요.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이 남는 것을 보면 어렸을 때 배운 것들이 평생 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너무 많이 배우면 질려버리겠지만요. 태풍이 올라와서인지 어제, 오늘 무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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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8-06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유려한 필력이 클래식 음악 세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것 같습니다. 이런 글 한 편 쓰기가 쉽지 않지요.

겨울호랑이 2017-08-06 10: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오거서님.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잘 몰라서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모르는 음악 전문 용어가 많아 갈길이 멀었음을 매번 느끼게 됩니다.^^: 오거서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라로 2017-08-06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희 딸 바이올린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바흐의 푸가는 알수록 오묘하다고 하신 게 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이 나네요. 바흐는 정말 대단해요!!!

겨울호랑이 2017-08-06 15:38   좋아요 0 | URL
^^: 네 많은 음악가들이 규칙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흐르는 선율을 구현하는 것을 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그중 바흐는 카논과 푸가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주위에서 말씀하시네요 ㅋ ^^:

AgalmA 2017-08-10 0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엔 음악 공부. 정말 탁월한 공부 안배^^b

겨울호랑이 2017-08-10 06:21   좋아요 1 | URL
^^: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지는 것이겠지요. AgalmA님께서는 요즘 많이 바쁘신 듯해요. 지금도 아마 밤을 새우신 듯 하네요. 더운 날 건강 잘 챙기세요. ^^:
 

 아빠. 아버지.


 엄마, 어머니와 같이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 존재인 아빠, 아버지와 관련된 책을 정리해 봅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부모의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 유년기(아빠) :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은 일본인 아내를 둔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 ~ 1956)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내는 글과 그림이 담겨진 책이다. 책 중에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는데 이 편지를 통해 '인간 이중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만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귀여운 즐거움이여, 소중한 나만의 오직 한 사람, 나만의 남덕이여', '나의 귀여운 가장 멋진 남덕 군', '나만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군'  등으로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 많이 표현된 잘 표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연애때에는 쑥스러워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지금은 '가족'이라서(가족끼리 이러는거 아니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느새 결혼 8년차 남편이 되버린 나에 비한다면 이중섭 화가는 사랑을 잘 표현한 예술인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편지가 일본어로 쓰여져 편지 내용이 고(故)  박재삼 시인이 번역했기에 더 아름다운 표현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내게 더 마음깊이 다가왔던 것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두 번째인 유년기를 맞이한 아들들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를 보려 한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약 20편 정도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보다 양도 적고, 내용도 짤막한 편이지만 짧은 편지 속에 아빠의 사랑이 잘 담겨있다. 특히, 어려웠던 화가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편지를 쓸 당시 화가는 일본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와 있었다. 고국이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시련의 시기를 혼자서 견뎌야 했던 화가에게 편지는 삶의 낙이었으리라. 편지 속에서 아들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선물을 약속하는 화가의 모습은 지금의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빠가 보내준 그림을 보고 그토록 기뻐해주었다니... 아빠는 정말정말 기쁘다. 다음 편지에는 학교에서 재미있었다고 생각한 일들을 적어 보내다오. 아빠도 부지런히 그림과 편지를 보내주마.'(p191)


 '아빠가 가면... 이번엔 꼭 보트를 태워줄께. 몸 성히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어라. 아빠는 감기로 누워 있었지만 약을 먹고 이젠 아주 좋아졌단다.(p192)...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주마. 아빠는 감기로 닷새 동안 누워 있었지만, 이제는 다 나아 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어서어서 전람회를 열고서...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가지고... 갖고 갈테니... 몸 성히 기다리고 있어다오.'(p212)


 그렇지만, 화가의 삶은 그렇게 녹록지 못했던 것 같다. 전체 20편의 편지 중 7편의 편지에서 화가는 아들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한다. 매번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했지만, 가난했던 아빠는 끝없이 약속밖에 하지 못한다.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아빠의 마음.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달 후면 아빠가 도쿄로 가서 자건가 사주마.(p194)... 둘이서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가 가면 자전거 사줄께. (p198)... 이번에 아빠가 가면 자전거를 꼭 태현이에게 한 대, 태성이에게 한 대씩 사줄 참이란다.(p202)...이번에 아빠가 가면 틀림없이 근사한 자전거를 태성이와 태현이 형에게 하나씩 사줄 작정이다.(p204)... 아빠가 한 달 후면 도쿄 가서 꼭 자전거 사줄게.(p207)... 전람회가 끝나면 곧 아빠가 도쿄에 가서 자전거를 사줄게.(p208)... 전람회가 끝나는 대로 곧 도쿄에 가서 너희들에게 자전거를 사줄 참이란다.'(p210)


 그런 어려움에 대해 결코 시인은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지만, 지나가는 편지의 문장 속에서 화가의 가난과 좋지 않은 건강 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같이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였을까. 화가는 그림 속에서 두 아들의 모습을 참 많이 표현했다. 이중섭 화가의 편지는 유년기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의 아쉬움이 잘 드러낸다. 


 '아빠가 사다놓은 종이가 떨어져 한 장밖에 없어서 그림을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엄마와 태성이, 태현이 셋이 사이좋게 봐다오.(p189) ... 내 훌륭한 일들 아들 태현아, 종이가 모자라 한 장에다만 쓴다. 다음엔 길게길게 써 보내마.'(p203)


[사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출처 : http://m.blog.daum.net/prohklee/1765)


 2. 청장년기(아버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중섭 화가의 편지가 아직 어린 시기를 보낸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 ~ 1836)이 청년기, 장년기를 보낸 아들에게 보내는 내용이 담겨있다. 먼저의 편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드러낸 반면, 다산의 편지는 아들들이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다. 어린 자식들에게 어려움을 애써 보이려 하지 않는 이중섭 화가의 편지와는 달리, 다산의 편지는 현실을 직시한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37)


  다산의 편지가 깊은 울림이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걸었던 길을 자식에게 전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저 자식들에게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걸었던 길 속에서 깨우침을 전했기에 진심이 담겨있다. 그러한 편지를 읽다보면, 진정한 부모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너희들은 도(道)와 덕(德)이 완성되고 세워졌다고 여겨서 다시는 책을 읽지 않으려 하느냐. 금년 겨울에는 반드시 <서경(書經)>과 <예기(禮記)> 중에서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을 다시 읽는 것이 좋겠다... 역사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적는 '사론(史論)'은 그동안 몇 편이나 지었느냐?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기만 하고, 얄팍한 자기 지식은 마음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p33)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弟)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p39)


 또한, 아들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아들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아래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다산이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학습을 지시한 부모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선배(先輩)로서 공부의 어려움을 공감했기에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는 공부하는 부모의 전형을 우리는 다산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 동생 학유의 재주는 너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런데 금년 여름 고시(古詩)와 운이 안 달린 부(賦)를 짓게 했더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가을 무렵에는 <주역(周易)>을 베끼는 일에 힘쓰느라 독서를 많이 못했지만 그애의 견해는 제법이었다.'(p53)


  '아무쪼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국조보감(國朝寶鑑)>, <여지승람(與地勝覽)>, <징비록(懲毖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p57)


 공부를 통해 맺어진 공감대 가 있었기에 부모의 말이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다음과 같은 일상의 가르침 역시 자녀의 가슴깊이 와 닿았음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사진] 다산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infiniti&folder=5&list_id=8090481)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거나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저번에 이리저리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p61)


 

현대에도 어린 자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책은 많다. 예를 들어  4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하기 전까지 자식에게 남긴 편지를 엮은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책 역시 어린 자녀와 함께 하려는 아버지의 사랑이 잘 드러난다.


 이에 반해 청장년기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내용의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녀 교육'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학습법 관련 책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예전에 <부모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교양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고전공부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 책은 과목별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학습목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능력, 저자 자신의 경험 등이 수록되어 있어 홈스쿨링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자료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좋은 책이다. 그렇지만,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고전공부법을 파고들수록 어린아이들이 예리한 관찰자가 되도록,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교육 목표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가족이 즐겨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해변에서 상어 이빨을 찾는 것이다.. 과학 공부는 아이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치는 기회를 완벽하게 제공해준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이 정의롭지 못한 사실을 지나치지 않고 보기를, 자기 힘으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음을 알기를 바랄 것이다...'(p244)


 이 책을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지금 생각하게 된다. <부모 인문학>에는, 아니 대부분의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책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부모가 자녀들과 같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면 결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임에도 불구하고 <부모 인문학>에서는 매 장(章)에서 부모가 함께 공부하기를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부모가 갖춰야할 소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부모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서도 말하지 않고 있기에, 부모 자신은 TV 앞에 있으면서 자녀들에게는 들어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부모의 이러한 태도는 결코 자녀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 것지만, 이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책의 내용 중에는 현대 부모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복종시킬 것을 요구하는 다음의 단락을 본 후에는 책의 내용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가진 지각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개인 소유물처럼 복종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생각을 어떤 부모는 탐탁찮아할지 모른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복종심을 심어주고 혹독한 노력을 하도록 요구한 결과,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서 자유로워졌다.'(p240)


 저자의 아이들이 자유로워졌는지 부모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그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의 편지는 진정한 자녀 교육과 자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이제 정리해 보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한결같을 것이다. 다만, 자녀의 성장 시기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달라지는 것일뿐. 어려서는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다 중요했다면, 보다 성장한 후에는 그런 마음을 조금은 접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자의 위치로 자리매김해 가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 속에서 어려서는 많은 장난감을 안겨주다가, 성장기에는 아이들에게 '교육(敎育)'이라는 이름하에 부모들이 '공부하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자식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이중섭의 편지'와 유배지에서 자식을 자주 보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다산의 편지' 속에서 진정한 '사랑하는 아빠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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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갱지 2017-08-04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랑 학부모 얘기가 생각나요:-) 아직은 소년을 키우고 있지만, 앞에 ‘청‘ 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4 18:1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갱지님과 마찬가지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 부딪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2017-08-0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05 0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정도로 다른 이를 위하는 일에 기꺼이 애쓰는 게 바로 정의라고 김경집 교수가 그러더군요. 가족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두루 그런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겨울호랑이 2017-08-05 05:42   좋아요 2 | URL
^^: 그런 사회라면 재산이 많지 않아도 큰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서니데이 2017-08-05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위가 식지 않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시원한 저녁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