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Hydrogen) - 태양은 혼자서 초당 6억톤의 수소를 소비하며 이를 5억 9,600만톤의 헬륨으로 전환시킨다. 나머지 400톤의 수소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들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2에 따라 에너지로 전환된다. 초당 3.5파운드가 줄어들면서 방출되는 에너지는 동이 틀 무렵 서서히 번지는 밝은 빛을 만들어 낸다. 수소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가벼운 원소다. 수소는 물리학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원소인데 그 이유는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전자를 가지고 있어 양자법칙에 정확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p15) <세상의 모든 원소 118> 中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처럼 우주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수소. 이러한 수소에 대해 <수소 혁명 The Hydrogen Economy>(2002)에서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은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에너지 대신 수소 에너지가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소는 우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소 가운데 가장 가볍고 가장 보편적이다. 수소를 에너지로 이용할 경우 '영구 연료'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수소에는 탄소(C) 원자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산화탄소(CO2)도 방출되지 않는다. 수소는 물, 화석, 살아 있는 생명체 등 지구 어디에나 존재한다.(p17) <수소 혁명> 中


  저자가 말하는 탄소 에너지의 문제, 특히 석유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석유의 생산지가 특정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지정학적 문제와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환경오염이 더 가속화된다는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 - 이제는 상식(常識)이 되어버린 - 에서 논의는 시작된다.


  석유 문제가 불거질 경우 특히 대표적인 두 사태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세계 석유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르게 될 시기를 둘러싸고 전문가들조차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일단 최고조에 이르면 남은 미개발 매장지 거의 모두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 영토일 것이다. 그 결과 현재의 세계 세력 판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p12)... 둘째, 세계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가운데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이 절정에 이른다면 각국 정부는 물론 에너지 업계도 석탄, 중유, 타르샌드 등 더러운 화석 연료로 눈을 돌릴 것이다. 더러운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고 지구 온도도 예상보다 높아지며 지구 생물권에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p13) <수소 혁명> 中


 리프킨은 이러한 탄소 에너지의 사용이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대규모(大規模) 집중화(集中化)를 가속화시켰다고 논리를 펴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화석연료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특정지역에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채굴을 위해서 대자본(大資本)이 필요하고, 그 결과 오늘날의 권위주의적 대기업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기에 결국 오늘날 현대 문명의 치료를 위해서는 사용 에너지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화석 연료 시대의 특징으로 상의하달식 조직 체계를 들 수 있다. 상의하달식 조직 체계는 에너지를 관리하고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야기된 결과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처리 비용에 엄청난 투자 자본이 필요했다. 그 결과 거대한 에너지 업체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화석 연료는 상거래 활동의 속도를 높이기도 했다. 상거래의 높아진 비중과 빨라진 흐름을 관리하다 보니 고도로 중앙 집중화한 권위주의적 영리기업 형성이 훨씬 강화되기에 이르렀다.(p14) <수소 혁명> 中 


 그렇다면, 이러한 석유 에너지 시대를 마무리하고, 수소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프킨은 이를 위해 공공기관과 비영리 단체의 협업을 강조하여 다수에게 에너지 주권이 이양되는 것을 <수소 혁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수소가 '만인의 에너지'로 등장하느냐 못하느냐는 초기 개발 단계에서 수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소 에너지 공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공 기관과 비영리 단체, 그중에서 특히 수억의 인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공공 소유 비영리 전력업체들과 세계적으로 7억 5000명 이상의 회원을 거느린 수천 개 비영리 협동 조합이 새로운 에너지 혁명의 초기 단계부터 뛰어들어 모든 나라에 '분산전원 협회'(DGA)가 설립되도록 도와 줘야 한다.(p19) <수소 혁명> 中 


 <수소혁명>이 쓰여진 2002년으로부터 약 1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수소 경제에 대한 관심이 선진국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증가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리프킨의 예견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수소에너지가 가장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부분은 현재 수소 전기차 부문이다.


[기사] 수소 에너지 사회를 앞당기는 일본(한국경제) : 출처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7123127081


 우리 나라의 현대 자동차에서도 개발중인 수소전기차는 수소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선사항이 많다. 단적으로, 물에서 전기분해를 하여 수소와 산소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을 때 전기는 무엇으로 생산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만일 전기 에너지를 화력 또는 원자력에서 얻는다면 '수소 에너지= 친환경 에너지'라는 구호는 헛된 외침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수소 혁명' 이전에 '태양광 발전'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자연스럽게 <제3차 산업혁명>(2012)과 내용적으로 연계된다.


[사진] 수소연료전지차(출처 : 현대자동차 브랜드 홈페이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안은 전기자동차(BEV)와 수소전기자동차(FCEV)가 될 수밖에 없다. 치열하게 대립하던 전기차와 수소전기차의 논쟁은 미국 테슬라의 출현으로 전기차 쪽으로 기울었다... 수소 전기차는 여러 단점이 있다. 수소 전기차 자체는 친환경적이지만 수소 추출부터 운송, 보관, 사용 등 모든 과정에서 환경 부하가 크다.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천연가스를 개질해 추출한다.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방식은 추출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물을 전기분해하려면 전기가 필요하다.(p75) <이코노미 인사이트> 3월호 中


  수소 경제의 바탕은 이미 마련되고 있다. 앞으로 수년 안에 컴퓨터, 통신 혁명이 수소 에너지 혁명과 융합되면서 21, 22세기의 인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강력한 혼합물이 탄생할 것이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수소는 적절히 이용만 하면 고갈되지 않는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수소는 적절히 이용만 하면 고갈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인류가 '강한 힘'을 얻게 되면서 수소는 사상 초유의 진정한 민주 에너지로 등장할 전망이다.(p17) <수소 혁명> 中


 또한, 리프킨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혁명이 에너지 혁명과 결합되면서, 그가 주장하는 에너지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수소 혁명>을 통해서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새롭게 나타난 IT 공룡은 다른 분야에서 집중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워싱턴 전가와 여러 경제학자는 IT 대기업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아마존은 미국 전자책 시장의 75% 넘는 지분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은 자회사 인스타그램, 와츠앱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 시장을 지배한다. 구글은 검색어 사업을 거의 홀로 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독점이다.(p25) <이코노미 인사이트> 3월호 中


 비록, 15여년 전에 <수소 혁명>에서 그렸던 미래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는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서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통찰을 제시한 책이라 여겨진다. 진정한 수소 혁명의 출현은 리프킨에 따르면, '분산형 태양광 발전'으로부터 출발한다...


PS1. <수소혁명>은 최초 20페이지에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다. 시간이 없는 분들이 이 책을 읽고자 하신다면, 앞 부분만 읽어도 거의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PS2. 물리학자들이 수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Lectures on Physics  volume 1> 19장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 1918 ~ 1988)은 수소를 통해 화학 원소들의 주기성을 설명하고 있다. 흥미있는 분들은 피곤하지만 잠이 안 올때 읽으시면 좋을 듯하다... 

 

 양자역학 역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은 몇몇 간단한 원자들이 나타내는 스펙트럼 및 화학 원소의 표에서 나타나는 주기성을 상세하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였다. 이번 장에서 드디어 이 귀중한 발견에 이르게 되었는데, 특히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것이 주 목표이다. 동시에 화학 원소들의 신비로운 성질들을 말로 풀어 설명할 것이다. (p19-1)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volume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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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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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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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3-28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와 A.I.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A.I.의 출현은 정보의 축적이고, 이는 negentropy의 상승이며, 거시적으로 볼 때, 지구의 에너지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구의 약한 부분을 더 망가뜨리는 것이 아닐까?

겨울호랑이 2018-03-28 15:19   좋아요 0 | URL
A.I의 출현이 negentropy의 상승이라는 마립간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우리의 제도, 과학 기술의 발전 등이 크게 봤을 때 네겐트로피의 증대에 기여하겠지요... 그리고, 결국 또다른 빅뱅과 같은 다른 특이점에 이르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그 속도를 얼마만큼 늦출 수 있는가의 문제라 여겨집니다...

2018-03-28 17: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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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8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8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경시대(眞景時代)라는 것은 조선 왕조 후기 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난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던 문화절정기(文化絶頂期)를 일컫는 문화사적인 시대 구분 명칭이다. 그 기간은 숙종(1675 ~ 1720) 대에서 정조(1777 ~ 1800)대에 걸치는 125년간이라 할 수 있는데 숙종 46년과 경종 4년의 50년 동안은 진경문화의 초창기라 할 수 있고, 영조 51년의 재위 기간이 그 절정기이며 정조 24년은 쇠퇴기라 할 수 있다.(p13) <진경시대 1> 中


 <진경시대 1>과 <진경시대 2>는 조선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시대를 미술사(美術史)적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또한, 이 시기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 1759)으로 대표되는 진경산수화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로 대표되는 풍속화의 시대이기도 하다. 

 

조선후기의 산수화에서 남종화풍과 함께 더 없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진경산수화의 발달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명산승경(名山勝景)을 소재로 하고 남종화법에 토대를 둔 한국적 화풍으로 그려낸 것이 이른바 '동국진경(東國眞景)', 즉 진경산수화다.(p492) <한국 미술의 역사> 中


 조선 후기의 회화에서 또 한 가지 지극히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풍속화의 발달이다.(p503)... 그런데 이 시대의 풍속화는 비록 다루는 주제는 달라도 우리 주변을 관찰하여 주제를 포착하고 사실적 표현을 기본으로 하여 그리되 예술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진경산수화와 기본적으로 공통성을 띠고 있다.... 조선시대의 회화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듯이 풍속화도 초기 단계에서는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등의 사대부 화가들이 그리기 시작하여 그 기초를 다졌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기반 위에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같은 탁월한 화원들이 출현하여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룩했던 것이다.(p504) <한국 미술의 역사> 中


 고등학교 때까지 조선 후기 회화풍에 대해 관념(觀念)적이며 이상(理想)적 산수를 그렸던  조선시대 전기와는 다른 화풍(畵風)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진경산수화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화풍이 조선 후기 시대정신의 변화로부터 발생했다는 정도로 배워왔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여기에 실학(實學)사상과 결부시켜 이를 조선시대 근대사상이 싹튼 근거로 제시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진경시대>는 이와는 다른 사실을 말해준다. (물론, 내가 수업시간에 졸아서 잘못 기억했을 수도 있다...)


 율곡은, 일찍이 금강산으로 출가하여 불교 대장경(大藏經)을 섭렵함으로써 주자성리학의 우주론적 철학체계의 원형인 불교철학을 근본적으로 관통한 실력을 바탕으로,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이기의 상호작용이라 할지라도 기(氣)만이 작동하고 이(理)는 기에 편승할 뿐이라는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을 주장하여, 만물의 성정이 기(氣)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심화시켜 놓는다. 결국 이(理)는 만물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인데 기(氣)만 대상에 따라 국한됨으로써 만물의 차별상이 나타난다는 주장이니, 이를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이라 한다. 이는 분명 주자가 아직 발명해내지 못한 심오한 학설이었고 주자성리학이 도달해야할 궁극의 경지이기도 하였다.(p15) <진경시대 1> 中


 다소 거칠게 표현해서, 이(理)를 보편/추상적인 원리라 하고, 기(氣)를 감각적/개별적인 존재라고 했을 때, 율곡의 사상은 보편적인 이(理)가 대상에 따라 기(氣)로 다르게 표현된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통국기설이라는 결론에 이른 조선성리학은 이론적으로는 완벽을 구가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이 처한 현실은 이와는 달리,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을 겪으며 청(淸)나라에게 항복하고, 당시 황제국이었던 명(明)은 멸망을 당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조선의 사상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한 여진족이 무력으로 중국을 차지했다 해도 중화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야만 풍속인 변발호목(辮髮胡服)을 한민족(漢民族)에게 강요하여 중화문화 전체를 야만적으로 변질시켜 놓았으니 중국에서는 이미 중화문화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니 중화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주자성리학의 적통(嫡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조선만이 중화문화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이제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p22)...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주의가 조선사회 전반에 점차 팽배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워내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할 리가 있었겠는가.(p23) <진경시대 1> 中


 종주국(宗主國)인 명이 멸망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남은 중화(中華)의 적통은 소중화(小中華)였던 조선에게만 흐른다고 판단한 것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 1689)을 중심으로 한 노론(老論)의 당론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이 조선 후기미술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진경시대>의 공저자 중 한 명(최완수)은 말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저자는 우리 산수(山水)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의 근원은 소중화 사상과 주리(主理)적인 사상이 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와는 다른 견해를 보이는 또 다른 연구자(유봉학)의 관점도 우리는 같은 책 <진경시대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저자에 따르면 조선시대 풍속화의 경우 조선시대 선비(士)의 기득권이 붕괴하면서, 이른바 '선비의식'의 확산 결과로 조선 후기 풍속화는 독자적인 양식을 수립할 수 있었다.


이 시기(정조 대) 풍속화의 유행은 사(士)의식과 사인적 생활을 공유하는 사계층이 확산되면서 사로서의 소속감을 가졌던 화원화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풍속화에는 그들의 자아의식과 생활경험이 투영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속태를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색태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 점차 풍속화의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풍속화의 새로운 면모는 순조대 이후 조선의 주자학적 질서가 전면적으로 동요하는 가운데 더욱 심화되었다.(p256) <진경시대 2> 中


 풍속화의 이러한 변천은 조선 후기 사회와 사상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조선사회를 지탱하던 주자하적 명분론과 문화자존의식이 무너졌으며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사의 위상이 변화하고 사의 확산으로 사와 민이 혼효되는 가운데 사의 그림이었던 동국진경도 변화해 갈 수 밖에 없었다.(p256) <진경시대 2> 中


 이러한 연구자들의 의견을 대략적으로 종합해보면, 조선 후기 회화의 대표적 화풍인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함께 피어났다기보다는 일종의 대체적인 화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산수에 관심을 가졌던 '동국진경'은 당시 선비들의 중화사상의 결과물인 반면, 선비의식의 확산으로 민(民)의 작품인 '풍속화'가 산수화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들은 '같은 듯 다른' 출발점을 가진 화풍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와 다른 견해를 보이는 미술사학자들도 있다.) 


 <진경시대1> <진경시대2>에는 이처럼 여러 연구자들이 조선 후기 미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담겨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故 오주석(1956 ~ 2005) 교수의 단원 김홍도에 대한 연구 결과도 담겨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된다. <진경시대> 시리즈의 장점은 다양한 시각에서 조선 후기 미술을 보여준다는 점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내용 면에서 다소 딱딱할 수는 있지만, 크게 지루하지 않게 조선 후기 미술을 훑어볼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한국미술의 역사>에 담긴 대표적인 진경산수화 작품과 풍속화 작품 설명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그림] <금강전도> (사진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21866704600232541/)


 <금강전도(金剛全圖)>(1734)는 금강산을 부감법으로 조망한 그림으로 원형구도를 보여준다. 왼편 아래쪽에 나무가 우거진 토산들을 배치하고 오른편 대부분의 화면에는 첨봉(尖峰)의 다양한 암산들이 빽빽이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그림 맨 위쪽 끝에는 비로봉을 묘사하였다. 이 산들과 하늘이 마주치는 여백의 가장자리에는 연한 푸른색을 칠하여 허공을 나타냄과 동시에 첨봉들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원형 구도, 암산과 토산의 대조, 부감법의 활용 등을 통해서 넓은 면적의 금강산을 일목요연하게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토산의 표현에는 일종의 피마준과 태점(苔點)을, 암산의 묘사에는 가늘고 날카로운 수직준(垂直皴)을 구사하여 산들이 지닌 특성과 형태상의 다양함을 능란하게 묘사한 점이 주목된다. 화면 전체에는 이 때문에 힘찬 생기가 넘쳐 흐른다. (p493) <한국 미술의 역사> 中



[그림] 밀희투전 (사진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42766221616682106/)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 ~ 1822)의 <밀희투전(密戱鬪戰)>은 특히 인물묘사의 뛰어남을 보여준다.  앞편의 인물들보다 뒤편의 인물들을 크게 그려서 역원근법을 나타낸 것은 전통과 관계가 깊지만 돋보기를 쓴 인물의 출현은 북경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서양 문물의 영향을 말해준다. 오른쪽 위의 개평꾼인 듯한 인물은 눈이 거슴츠레한 모습이어서 밤늦도록 계속되는 투전판의 열정과 피로를 느끼게 한다. 그의 뒤편에 놓여 있는 술상은 이러한 노름판의 분위기를 더욱 돋구어 준다.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이 능숙한 솜씨로 묘사되어 있다.(p514) <한국 미술의 역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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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3-27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공기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님,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3-27 17:38   좋아요 1 | URL
미세먼지가 오늘도 심하네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한 하루 되세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 ~ 1823)는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통해서 지대(地代 rent)의 발생 근원을 토지의 사유화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차액지대(different rent)론을 통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고 농산물 생산이 늘어감에 따라 기존에 경작되지 않던 토지도 점차 경작지로 활용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토지 개간비용 역시 농산물 가격에 포함되면서, 농산물의 가격도 오르게 된다. 그 결과 생산자이기도 한 지주는 이로 인해 이중(二重)의 이익을 얻게 된다. 리카도에 따르면 지주가 얻는 지대에는 일정 부분의 불로(不勞) 소득이 포함되는 것이다.


 토지의 사유화와 그 결과 생겨난 지대가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과 무관하게 상품의 상대가치에 변화를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해봐야 한다... 지대는 대지의 생산물 중에서 토양의 원천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능력을 사용하는 데 대해 지주에게 지불되는 몫이다.(p69)... 지주의 지대를 말할 때 생산의 곤란성은 농산물의 교환가치를 인상시키며, 지주에게 지대로 지불되는 농산물의 비율을 인상시키기 때문에, 지주는 생산의 곤란성으로 이중의 혜택을 봄이 틀림없다. 첫째로 그는 더 큰 몫을 차지하며, 둘째로 그가 받는 상품의 가치가 더 커진다.(p85)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中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토지(土地)의 공공성(公公性)과 관련한 저서로 헨리 조지(Henty George, 1839 ~ 1897)의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진보와 빈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현대 문명에서 발생한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해결책은 토지의 공동소유로 하자는 것이 저자인 헨리 조지의 주장이다.

 

 현대 문명을 저주하고 위협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인이 토지사유제에 있다는 점을 보았다. 이 제도가 존재하는 한 생산력이 향상되더라도 대중에게 지속적인 혜택을 주지는 못하며 오히려 대중의 생활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보았다. 또 빈곤을 구제하고 부의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추진되고 있거나 제시되는 해결책을, 토지 사유제 철폐만 제외하고, 모두 검토하였지만 효과가 없거나 실제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보았다.(p313)... 그리하여 현대 문명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부의 분배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이것이다. 토지를 공동소유로 해야 한다.(p314) <진보와 빈곤> 中


 토지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토지가 다른 경제재와는 다르게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천혜자원(天惠資源)이기 때문이며 , 이러한 이유로 토지에 대한 인간의 소유권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연은 상속무제한 토지소유권(fee simple)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지의 배타적 소유를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합의하여 토지에 대한 자기들의 평등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후세대의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p325)... 확실한 토지 문서가 아무리 많고 토지를 아무리 오래 보유해 왔더라도 자연적 정의는 다른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부정하는 개인의 토지 보유 및 향유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p326) <진보와 빈곤> 中


 이를 위해 저자는 리카도가 말한 지대의 환수를 주장하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조세(租稅)를 활용하는 방안을 <진보와 빈곤>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정리하면, <진보와 빈곤> 속의 내용은 조세를 통한 부당이익 환수를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사유토지의 매수도 환수도 아니다. 매수는 정의롭지 못한 방법이고 환수는 지나친 방법이다. 현재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토지를 가지게 한다. 각자 보유하는 토지를 지금처럼 자기 땅이라고 불러도 좋다. 토지매매도 허용하고 유증, 상속도 하도록 한다. 속알만 얻으면 껍질은 지주에게 주어도 좋다. 토지를 환수할 필요는 없고 단지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p391)... 이미 우리는 지대의 일부를 조세로 걷고 있다. 그러므로 단지 조세의 방법만 약간 바꾸어 지대 전체를 걷으면 된다. 그러므로 저자는 지대를 모두 조세로 징수하자고 제안한다.(p392)  <진보와 빈곤> 中


 최근 대통령 발의 헌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토지공개념'의 헌법 명시가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시장(市場)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시장의 원리에 반(反)하는 사회주의적인 개념이라고 반론을 펴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 ~ 1924)의 <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속의 다음의 내용을 읽어보자. 

 

 신생국에서든 오래된 국가에서든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가는 다른 형태의 부(富)보다도 토지에 대해 법률을 제정할 때 미래 세대에 대한 좀더 큰 책임감을 느낄 것이며, 경제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윤리적 관점에서도 토지는 언제나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반드시 별개의 것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복하도록 이끈다. 만일 처음부터 국가가 진정한 지대를 직접 계속 보유했더라면, 비록 아주 드문 경우에 신생국에의 정착이 다소 지연될 수도 있겠지만, 산업의 활력과 축적이 손상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p576) <경제학 원리2> 中


 앨프레드 마셜은 케임브리지 학파(新고전학파)에 속하는 전형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셜 역시 토지는 다른 형태의 경제재와는 구분되는 특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私)적 개인에게는 공공의 복지를 훼손할 권리가 없음을 그의 저서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높은 임대가치의 원인은 성장하는 세대의 활력과 기쁨을 약화시킬 만큼 중대하게 신선한 공기와 햇빛과 놀이공간의 희소성을 위협하는 인구의 집중이다. 그렇게 풍부한 사적 이득은 성격상 사적이기보다는 공적인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 뿐만 아니라 공적 부의 주된 형태의 하나를 희생시키면서도 발생한다. 공기와 햇빛과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지출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원천은, 국가의 대표자인 왕이 유일한 토지보유자였던 때부터 부지불식간에 서서히 성숙된, 토지에 대한 극단적인 사유재산권인 것처럼 보인다. 사적 개인들은 공공의 복지를 위해 일할 의무가 있는 토지보유자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과잉건설을 통해 공공의 복지를 훼손할 정당한 권리가 없다.(p577) <경제학 원리2> 中


 그렇다면, 우리가 불노소득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토지에 대해 과세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의 불평등 심화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를 통해 부동산 투자를 통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부동산 수익은 역사적으로 4~5%의 자본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보장하지만, 자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 정도의 수익률에도 절대 금액은 자산가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 반면, 임대료를 내야하는 세입자에게 이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된다는 것이다. 

 

 21세기 초반인 현재 부동산 투자 수익률은 19세기와 비슷한 4~5퍼센트 정도이거나, 특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임대료가 동반 상승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이따금 이보다 약간 낮다....집주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연간 3퍼센트의 자본수익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정도 임대료도 집주인에게는 상당한 소득을 의미하고, 전적으로 노동소득에만 의존해서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는 이 정도면 매우 큰 금액이다. 나쁜 소식은 상황이 항상 이와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도의 임대료는 자본수익률이 약 4퍼센트가 될 때까지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세입자의 임대료는 장차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집주인의 연간 투자수익률은 결국에는 아파트 가치의 장기적 자본이득 capital gain(자산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차익)에 의해 상승할 수 있다.(p71) <21세기 자본> 中


 이러한 경제적인 요건 이외에도 토지를 공적인 자산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토지(부동산)이 우리 삶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와 관련을 맺는 공간은 자본의 소유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자본이 없는 이들은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하게 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부의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의 <세계의 비참 La Misere du Monde>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 특히 분배된 귀한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은 소유하고 있는 자본에 달려 있다. 자본은 달갑지 않은 사람들과 사건들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반가운 사람들과 사물들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도록 해준다. 그럼으로써 그러한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는 데 필요한 지출(특히 시간)을 최소화시켜 주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이 없는 자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귀한 재산들로부터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거리감을 유지하게 되어 있으며, 뿐만 아니라 달갑지 않고 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나 재산들과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본의 결여는 유한성의 체험을 증대시키는데, 이는 자본이 없을 경우 한 장소에만 매이게 되기 때문이다.(p265) <세계의 비참1> 中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을 통해 부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토지 공개념을 도입했으며, 이의 구체적인 수행 방안으로 지대에 대한 과세를 주장했다. 이처럼 토지에 대한 과세 문제는 헨리 조지가 급진적인 진보주의자여서가 아니라, 토지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특성에 기원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시장주의자인 앨프레드 마셜 역시 토지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과세를 그의 저서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또한, 토지에 대한 점유는 부의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을 낳고 있음을 우리는 <21세기 자본>과 <세계의 비참1>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최근 토지 공개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토지를 사유재로 볼것인가, 공공재로 볼것인가에 대해서는 각각의 논거가 있기에 어느 일방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역사(歷史) 속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우리는 이미 1년 전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대통령을 파면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파면이 가능했던 것은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혼란으로 인한 손실보다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개인의 재산권 수호와 사회의 모순 해결이라는 상충되는 문제의 해결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페이퍼를 마친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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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2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2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2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기 적절한 리뷰입니다. ㅎ
토지공유제가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사람들에게 꼭 일독을 권유하고픈 책입니다. ^^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이 토지공유제를 도입해서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제도를 도입한 스웨덴, 영국, 호주, 덴마크 사례는 왜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8-03-22 20:08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는 토지 공유제에 대한 내용을 무조건 공산주의식 개헌이라는 가짜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토지 공유제에 반대하는 이들 대다수가 사실은 이 제도의 수혜자라는 진실이 얼마만큼 알려질 수 있을지...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북유럽 선진국 사례는 보려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라 생각됩니다...

나와같다면 2018-03-24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학생때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이 필독서 였는데..
요 몇일 이 책이 계속 생각 나더라구요

성경적인 관점에서의 토지소유와 희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4 22:54   좋아요 2 | URL
개헌과 관련해서 저도 <진보와 빈곤>이 떠올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희년이면 매 70년마다 빚을 탕감해준 이스라엘 율법을 말씀하시는 군요^^:) 그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나와같다면님이세요!

나와같다면 2018-03-27 15: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땅을 영구히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외국인이요 나의 소작인일 뿐이다. 너희는 너희가 소유한 땅을 누군가가 되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레위기 25장 23~24절

우리는 토지의 사유가 허락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 죽어야 하므로 결국 우리는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토지는 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현재 소유자들이 훗날 전체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현재 소유자는 토지 소유권을 다른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4 22:56   좋아요 2 | URL
네 말씀하신 대로 토지와 관련해서 우리 모두가 채무자임을 기억해야할 것 같습니다. 자연으로부터, 후세로부터 빌린 언젠가는 갚아야할 현재의 부채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토지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雨香 2018-03-27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토지공개념 관련해서 책들과 내용을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가나안 성도(교회 안나간다는 의미의 용어입니다.)인 저는 헨리 조지를 기독교 매체(뉴스 앤 조이)에서 접했습니다. 헨리 조지는 기독교적 바탕에서 토지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의 기독교는 그냥 돈(토지를 포함해서)만 섬기는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혼란으로 인한 손실보다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개인의 재산권 수호와 사회의 모순 해결이라는 상충되는 문제의 해결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 더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7 11:06   좋아요 1 | URL
우향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향님께서 말씀하신 기독교적 바탕은 나와같다면님께서 말씀하신 성경 구절과도 연계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이 정치, 사회적 혼란이라는 한국 현대사 흐름 속에서 강조된 결과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더 크게 드러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사실, 이 부분은 한국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 종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겠지만요.) 우향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8-03-28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포스팅을 읽을때면 경제학을 전공한 제가 넘 초라해집니다.ㅠ
차근차근 매진하는 호랑이님의 열정과 학문에 대한 겸손함이 배어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8 10:32   좋아요 2 | URL
사실은 저도 경제학 전공을.... ㅜㅜ.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제학은 누구나 하는 학문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북프리쿠키님 칭찬에 감사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많이 부족한지라 뒤늦게 책을 읽고 있기에 많이 부끄럽기도 하네요^^:) 북프리쿠키님, 미세먼지 심한 하루지만, 건강히 보내시고 함께 성장해 가자구요! ㅋㅋ

북프리쿠키 2018-03-28 10:49   좋아요 1 | URL
와우~호랑이님과 공통점이 둘이나ㅎ 경제학전공에 딸바보라는^^
뿌듯해지는걸요~
저야말로 책에서 읽은 걸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수준입니다. 거창한 이야기지만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고, 지식의 체계바깥에 있는 또다른 이면을 사유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그 길을 밟아보고 딸애와 공감하는 게 저의 막연한 희망중에 하나입니다.
같이 걸어가 주실꺼죠?ㅎㅎ


겨울호랑이 2018-03-28 10:52   좋아요 1 | URL
ㅋㅋ 북프키쿠키님이야말로 먼저 가시면 반칙입니다. 앞에 가는 사람 도오두욱 뒤에 가는 사람 겨엉차알 ~~ ㅋㅋ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8-04-03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 아들들아, 인간은 그 금단의 열매를 맛본 이래 우리들 중의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도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잃은 선과 얻은 악의 지식을 자랑케 하라... 이제 한층 대담해진 그 손이 생명나무에도 뻗쳐 그 열매 따 먹고 영원히 살 수 있지 못하도록 적어도 그렇게 망상하지 못하도록 그를 낙원에서 쫓아내어 그가 태어난 땅, 그 적합한 흙을 갈아먹도록 명령하노라."(제 11편 84 ~ 98)


 "O sons, like one of us man is become 

  To know both good and evil, since his taste 

  Of that defended fruit ; but let him boast

  His knowledge of good lost, and evil got...

  Lest therefore his now bolder hand

  Reach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dream at least to live

  Forever, to remove him I decree,

  And send him from the garden forth to till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fitter soil.


 존 밀턴(John Milton, 1608 ~ 1674)의 <실락원 Paradise Lost>에는 인간들이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노동과 함께 할 것을 명령받는 장면을 위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노동(勞動)은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 하면서 문명(文命)을 만들어왔지만, 이제 우리는 노동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노동 없는 세계는 과학자, 엔지니어, 기업주들에게는 고되고 정신 없는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량 실업, 전세계적인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이라는 우울한 미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제조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어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p31) <노동의 종말> 中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 오고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면화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p375) <노동의 종말> 中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를 통해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은 1994년에 이미 자동화된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이 소외된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보편화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도입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최근 인공지능이 의사자격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하면서, 인공지능의사에 의한 진료는 가까운 미래가 된 듯 하다.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인공지능(AI)의 상업화가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의료와 인공지능의 결합은 다양한 기업을 끌어들였다. '빅3'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는  물론 아이플라이텍과 뉴소프트도 전국 각지에서 기반을 다졌다. 의료 인공지능과 스마트병원에 기대치가 높다. 의료서비스 개선을 넘어 전체 의료체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p62) <Economy Insight> 3월호 '중국의 스마트병원 구축 열풍'  中


 인간의 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세상은 이미 1994년에 저자 리프킨에 의해 예견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자동화로 인한 인간 소외, 노동 소외의 문제가 제기 되고 있다. 미래의 노동 없는 세계가 <노동의 종말>의 주제다. 


 우리는 이미 제3차 산업 혁명과 거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세계로의 역사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실리콘에 기초한 새로운 문명화에로의 길을 열어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로부터 소외될 것이고,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가라는 문제이다.(p369) <노동의 종말> 中


 그렇지만, 노동에 있어 인간 소외 문제의 기원은 이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는 그의 저서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O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를 통해서 소외된 노동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맑스는 노동을 인간임을 나타내고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본질적인 생명활동이라고 규정(출처 : 맑스 사전)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생명활동의 결과인 생산물이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속하는 것에서 발생하며, 이로인해 노동자들의 소외가 발생하게 된다고 맑스는 해석하고 있다.  

 

인간은 다름아닌 대상적 세계의 가공 속에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신을 유적 존재로서 증명한다. 이 생산은 그의 활동적인 유적 생활이다. 이 생산에 의하여 자연은 인간의 작품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현실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의 대상은 인간의 유적 생활의 대상화이다.... 따라서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그의 생산의 대상을 빼앗음으로써 그의 유적 생활, 그의 현실적인 유적 대상성을 빼앗고, 동물에 대한 그의 장점을 단점으로 변화시켜 그의 비유기적 몸, 즉 자연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소외된 노동은 자기 활동, 자유로운 활동을 수단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간의 유적 생활을 그의 육체적 실존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p79)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中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 귀속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이 더 크면 클수록 노동자에게는 더욱더 대상이 없게 된다.(p73)... 그의 생산물 속에서의 노동자의 외화가 지니는 의미는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 하나의 외적 실존으로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로부터 독립되어, 그에게 낯설게 실존하며, 그에게 적대적이고 낯설게 대립한다는 것이기도 하다.(p74)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中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단 맑스주의자들에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누르시아 성 베네딕트(St.Benedict of Nursia ; AD 480 ? ~ AD 543) 역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영웅적인 단식이나 기묘한 형태의 자학적인 고행을 하도록 요구되지 않았으나, 청빈과 순결 그리고 복종의 이상에 따라 매우 규율이 엄격한 삶이 영위하여야 했다... 베네딕트의 계율은 수도승으로 하여금 매일매일을 노동과 기도로 보내도록 규정하였다.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해 수도승은 매일 여러 시간 육체 노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처음부터 대부분의 힘든 밭일은 예능(villein ; serf)에게 맡겨졌음이 분명하다.(p112) <서양 중세사> 中


 이처럼 노동은 단순히 고된 작업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이 없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노동의 종말>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독립된 소규모의 공동체로 운영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부터 찾고 있는 듯하다.


 수도원 행정은 "수도원의 가장 家長"인 수도원장이 떠맡았다. 각 수도원은 수도승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토지를 기증받고 있었다. 이처럼 베네딕트 수도원은 주변의 사회가 아무리 크게 붕괴된다 하더라도, 자체의 질서잡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급자족적이고 독자적인 공동체가 되었다.(p112) <서양 중세사> 中


 미국 정치에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제3의 힘의 토대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에만 협소하게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미국인의 생활에는 제3부문이 존재하고 있다.(p315).. 제3부문은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서비스를 타인에게 판매하는 데 근거한 인위적인 시장 관계를 대체하는 영역이다... 제3부문의 부흥 및 변형 가능성과 이것을 활기찬 탈시장 시대의 창조를 위한 견인차로 이용할 가능성을 신중하게 탐색하여야 한다.(p316)<노동의 종말> 中


 제3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재난은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보다 효과적이고 수익성 있는 기계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막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제3부분은 좌절하고 있는 수많은 실업 대중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참가 정신의 점화 및 공동체 의식의 재건 노력은 탈시장 시대에 있어서 독립 부문이 변혁의 주체로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를 상당 정도 결정할 것이다.(p368)<노동의 종말> 中


 

<노동의 종말>에서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을 대체하는 제3부문의 공동체 연대를 통해 노동 없는 세상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제안된 공동체 연대는 이후 저작들인 <소유의 종말>을 통해 공유(共有)경제를,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는 원자력과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는 소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논의가 확대되어 간다. 비록 지금은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도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리프킨의 전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련기사 :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를 위한 변명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5894


 사회적으로는 노동 없는 사회를 소규모 공동체가 주축이 된 제3부문의 활성화를 통해 극복할 것을 <노동의 종말>에서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를 개별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 유례없는 장기 호황 속에서 자동화되지 못한 영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독일 수공업자들의 모습 속에서 <노동의 종말> 시대를 대처할 노동자들의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Economy Insight> 의 해당 기사를 마지막으로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은 수공업에서 대규모 기계공업으로 산업의 기초를 전환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양식의 기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수공업자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세기를 뛰어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지금 수공업자들이 뜨고 있다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독일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독일의 장기 호황을 등에 업은 건설업을 중심으로 업종마다 수공업자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일감을 주는 쪽이 일감을 받는 수공업자의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p16)... 독일 수공업계가 요즘 최고 호황기를 누리지만,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을 수공업에 접목해 더 효율적인 작업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p20) <Economy Insight> 3월호 '산업의 역주행' 수공업자 전성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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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3-21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초의 노동과 현재의 노동 성격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용의 노동과 거래의 노동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태초의 노동이 아닌 현재의 노동 종말에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3-21 23:05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가치는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생각하면 ‘노동의 종말‘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호모 루덴스‘수준의 노동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21 23:11   좋아요 1 | URL
호모 루덴스 수준이 절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

2018-03-21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8-03-23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은 어떨런지요?

겨울호랑이 2018-03-23 07:07   좋아요 0 | URL
네 bookholic님 말씀처럼 기본소득도 노동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현재 적용되는 것처럼 많은 복지 혜택이 폐지된다면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노동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른 면에서 우리가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기본소득은 좋은 방안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나와같다면 2018-03-25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생각하시는 키워드랑 저랑 겹치네요. 토지 공개념. 노동..

이번 개헌안에서 ‘근로의 의무‘ 삭제하고 ‘노동은 의무가 아닌 권리‘ 라는 문구를 넣는 부분에 대해서 뭉클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4 23:15   좋아요 2 | URL
^^:)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으신 나와같다면님과 키워드가 같다니, 영광입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은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고, 되어가고 있음도 함께 느낍니다.

雨香 2018-03-27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레미 리프킨에 대한 비판도 많이 들었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사회를 읽어내는 그의 혜안에는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에서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을 대체하는 제3부문의 공동체 연대를 통해 노동 없는 세상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제안된 공동체 연대는 이후 저작들인 <소유의 종말>을 통해 공유(共有)경제를,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는 원자력과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는 소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논의가 확대되어 간다. ˝라고 리프킨의 사상을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동이 삶의 필요조건이 된 산업사회에서 노동없는 사회는 어떻게 될지 막막합니다. 인간소외에 대해 고민없이 단순히 효율만을 사회에서 이제 세상을 바꾸나 생각합니다만, 아침마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경제신문과 보수신문들은 1면부터 현정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3-27 11:22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제레미 리프킨을 언론에서 띄우는 미래학자 중 한 명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엔트로피>(1984) 이후 최근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까지 30년 동안 큰 줄기를 가지고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많은 미래 전망서가 금리변동, 트렌드의 변화 등을 통해 한탕주의 식으로 사회를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논조와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와 요즘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위 보수 언론들의 프레임 만들기가 요즘 더 심해진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달리 시민들이 많이 깨어 있어서 거를 것을 거르고 수용하고 있는 요즘이라 희망 또한 같이 느끼게 되네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 ~ 2018)은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를 통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현대 물리학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The illustrated a brief history of Time>(1988)과 <호두껍질 속의 우주 The Universe in a nutshell>(2001)을 통해 저자가 생전에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는 이 두 권의 책 속에서 보편적인 물리법칙(통합이론)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씌여진 <호두껍질 속의 우주> 속에는 분자, 원자, 전자들의 세계에 적용되는 양자역학(quantum theory)과 거시세계에 적용되는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이론으로 끈이론과 M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초대칭 끈이론(super symmetric string theory)라고 불리는 이론이 중력과 양자이론을 통합시킨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명칭과 마찬가지로 끈은 1차원적으로 확장된 물체이다. 끈은 오직 길이만을 가진다. 끈이론에서 끈은 배경시공(background space-time) 속에서 움직인다. 이 끈 위에 나타나는 파문(ripple)이 입자로 해석된다.(p52)... p-브레인은 p-차원에서 확장된 대상이다. 그 특수한 경우가 p=1인 끈과 p=2인 막이다. 그러나 p 값이 그보다 높은 10차원이나 11차원의 시공(M이론)일 수도 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4차원을 뺀 나머지 6차원이나 7차원이 워낙 작은 크기로 말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다.(p54).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설명은 여분의 차원들을 포함하는 모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그 모형들 사이에서 이중성(duality)이라고 불리는 예상치 못한 관계들의 망(Web)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그 모형들 모두가 본질적으로 등가(等價)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그 모형들은 그 밑에 내재하는 동일한 이론의 서로 다른 측면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재하는 이론에는 M-이론(M-theory)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p57)


 물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4가지 힘(전자력, 중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중 중력을 제외한 다른 힘들은 4차원 속에서 움직이는 반면, 중력은 다른 힘들과는 달리 4차원을 넘어서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중력(重力)의 구분되는 특징 때문에, 물리학 통합 이론에서 중력이론에 대한 부분은 현재까지도 미해결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시간의 역사>를 통해 중력으로 논의의 범위를 좁혀가게 된다.


 큰 여분의 차원들이라는 개념은 궁극적인 모형이나 이론을 찾는 우리의 탐구에서 무척 놀랍고 새로운 진전이다. 이 개념은 우리가 브레인 세계(Brane world), 즉 4차원의 표면이나 보다 고차원의 시공 속에 있는 브레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p180)... 물질, 그리고 전기력과 같은 중력이 아닌 힘들은 이 브레인에 속박될 것이다. 따라서 중력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것은 4차원 속에 있는 것처럼 움직일 것이다.(p181)... 다른 한편, 휘어진 시공의 형태 속에서 중력은 그보다 높은 차원의 시공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것은 중력이 우리가 경험하는 여타의 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p181)


 이러한 브레인 세계 모형들은 현재 연구가 한창 진행중인 뜨거운 주제다. 이 모형들은 지극히 사변적이지만, 관찰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것들은 왜 중력이 그렇게 약한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 이론에서는 중력이 매우 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분의 차원들 속으로 중력이 전파된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브레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중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뜻한다.(p199)


 이로부터 <시간의 역사>는 중력을 중심으로 논의를 펴나간다. 중력 문제에 있어 중요한 논점사항은 우주의 출발점인 빅뱅(Big Bang)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빅뱅 이후 시간과 공간의 팽창(inflation) 문제는 중력법칙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저자는 <시간의 역사>를 통해서 시간-공간 중에서 '시간'에 초점을 두고 중력의 문제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화살' 개념을 도입한다. 

 

이 책에서 나는 중력(gravity)을 지배하는 법칙들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었다. 그 이유는 네 가지 힘(중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전자기력)들 중에서 가장 약하면서도 우주의 대규모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중력이기 때문이다. 중력법칙은, 극히 최근까지도 옳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우주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와 양립할 수 없었다.(p231) ...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하거나 둘 중 하나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p232)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시킬 때,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space-time)이 함께, 특이점이나 경계가 없는 유한한 4차원 - 지구 표면과 흡사하지만 좀더 고차원인 - 공간을 형성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대규모에서의 균질성 그리고 은하, 별, 심지어 인간과 같이 소규모에서 나타나는 비균질성으로부터의 출발이 그런 특성들이다. 이 개념으로 우리가 관찰하는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도 설명할 수 있다.(p232)


 시간의 화살의 개념을 통해 저자는 '열역학적 시간 = 심리적 시간 = 우주론적 시간'을 주장하며, 먼저 열역학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이 같다는 것을 엔트로피(Entropy)법칙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시간에 따라서 무질서도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고 시간에 방향을 부여하는 이른바 '시간의 화살'이라는 것의 한 예이다. 시간의 화살에는 최소한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로 무질서도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시간의 방향을 가리키는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thermodynamic arrow of time)이 있다. 두번째는 심리적 시간의 화살(psychological arrow of time)인데, 이것은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방향,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는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cosmological arrow of time)이 있다. 이것은 우주가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시간의 방향이다.... 나는 심리적 시간의 화살이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에 의해서 결정되며, 이 두 개의 화살이 반드시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주장할 것이다.(p185)

 

[그림]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화살(출처 : <시간의 역사>)


1. 심리적 시간 = 열역학적 시간 : 엔트로피(Entropy)

 

 저자에 따르면 심리적 시간은 열역학적 시간에 의해 인간의 뇌(腦)에서 결정되는 시간이다. 열역학 제2법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는 법칙이기 때문에, 심리적 시간 역시 열역학적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게 된다. 


 컴퓨터의 냉각 팬에서 뿜어내는 열은 컴퓨터가 메모리에 하나의 항목을 기록할 때 우주의 무질서의 총량이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컴퓨터가 과거를 기억하는 시간의 방향은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과 동일하다. 따라서 시간의 방향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 즉 심리적 시간의 화살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에 의해서 우리의 뇌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순서대로 사물을 기억해야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질서가 증가하는 까닭은 우리가 무질서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이다.(p189)


 심리학적 시간을 외부 사건의 주관적인 인식으로 정의한 저자의 주장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 ~ 1938)의 <시간의식>의 다음 구절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여겨진다.


 지각의 객체는 주관적 시간 속에서 나타나고, 기억의 객체는 기억된 주관적 시간 속에서, 상상의 객체는 상상된 주관적 시간 속에서, 기대된 객체는 기대된 주관적 시간 속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지각, 기억, 기대, 상상, 판단, 감정, 의지 - 요컨대 반성의 객체인 이 모든 것은 동일한 주관적 시간 속에서 나타나며, 더구나 지각의 객체들이 나타나게 되는 동일한 주관적 시간 속에서 나타난다. (p213) 


2. 열역학적 시간 = 우주론적 시간 : 약한 인류 원리


 저자는 우주론적 시간을 팽창(inflation)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열역학적 시간과 우주는 팽창한다는 우주론적 시간의 방향이 같아지는 이유는 '약한 인류 원리'에 의해 설명된다. 즉, 인류와 같은 지적 생물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생명 활동이 이루어지고, 이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성은 시간-공간이 팽창하는 국면에서만 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열역학적 시간과 우주론적 시간의 방향성은 같아진다. 결국,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열역학적 화살과 우주론적 화살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가?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왜 무질서는 우주가 팽창하는 시간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증가하는가? 우리는 약한 인류원리를 기반으로 이 의문에 답할 수 있다. 즉 수축 국면에서의 조건들은 '왜 무질서가 우주의 팽창과 같은 시간의 방향으로 증가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의 생존에 부적절하리라는 것이다... (우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미 우주가 거의 완전한 무질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무질서는 더 늘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지적 생명체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강한 열역학적 화살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적 생명체는 우주의 수축 국면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로써 우리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관찰하는 이유는 설명된다.(p194)


 저자인 스티븐 호킹은 이와 같이 <시간의 역사>와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통해 비교적 현대까지의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11개 차원과 존재하는 4개의 힘을 통합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으며, 특히 4개의 힘 중에서 '중력' 그리고 시공간 중에서 '시간'에 대한 많은 내용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시간의 역사> 속에서 3개의 시간의 방향성을 통해서는 열역학2법칙과 우주 팽창, 그리고 진화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우주가 무경계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팽창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블랙홀(Black hole), 시간여행 등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를 통해 독자들을 끝까지 이끌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록, 그 시도는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 같지만, 폭넓은 논의를 대중들에게 알기쉽게 설명하고자한 저자의 노력은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얼마전 호킹 박사의 별세(別世) 소식을 접하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시간의 역사>, <호두껍질 속의 우주> 페이퍼를 작성해 본다. 그의 책 중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1931 ~ )와 함께 토론한 내용을 담은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The Nature of Space and Time>은 로저 펜로즈의 <실체에 이르는 길 The Road to reality>을 마저 읽은 후 정리할 계획이다. 다만, <실체에 이르는 길>을 읽으면서 호킹 박사가 생전에 일반 대중에 대한 배려를 잘 해주었는가를 끊임없이 느끼게 된다. <실체에 이르는 길> 속에서 여름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처럼 많은 수식을 보고 나면, 수학에 약한 일반 대중을 배려한 호킹 박사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된다.


 <시간의 역사>를 읽으면서 허(虛)시간과 유클리드 시공을 이론의 배경으로 설명한 다음의 구절이 가장 인상깊었기에, 이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하며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호킹 박사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아직까지 양자역학과 중력이론을 결합시키는 완벽하고 모순이 없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통일이론이 갖추고 있어야 하는 일부 특성들을 상당히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한 특성들 중 하나는 양자이론을 역사총합에 의하여 정식화하자는 파인먼의 제안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허시간(imaginary time)이라고 부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입자 역사의 파동들을 합해야 한다.(p172)... 궁극적인 이론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두번째 특징은 중력장이 휘어진 시공으로 표현되다는 아인슈타인의 개념이다. 파인먼의 역사총합이론을 아인슈타인의 중력관에 적용시키면, 입자의 역사에 해당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역사를 나타내는 완전히 휘어진 시공(時空)이 된다. 역사들을 실제로 총합하는 데에서 부딪치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피하려면, 이 휘어진 시공은 유클리드 시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시간은 허시간이고 방향 면에서 공간과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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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9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19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ㅎ 그 흔한 중력이 문제고 가장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3-19 21:02   좋아요 0 | URL
^^:) 네 그래서 영화 <그래비티 gravity>도 우리에게 재밌고 대단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ㅋ

雨香 2018-03-19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감사합니다.
진작에 읽었어야 했는데, 몇 번 손에 들었다 놓기만 했습니다. 이제서야 그에 대한 책을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폭넓은 논의를 대중들에게 알기쉽게 설명하고자한 저자의 노력은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겨울호랑이 2018-03-19 22:40   좋아요 1 | URL
우향님 감시합니다. 저 역시 내용 정리를 계속 미루다 호킹 박사님을 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정리하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