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퀴티데스(Thoukydides, BC 460 ? ~ BC 400 ?)는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Ho Polemos ton Peloponnesion Kai Athenaion>를 통해 BC431 ~ BC404 사이에 발생한 펠로폰네소스(스파르테)인과 아테나이인들 사이의 전쟁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전쟁은 '헬라스(그리스)인들뿐아니라 일부 비(非)헬라스인들에게도, 아니 전 인류에게 일대 사변'(제1권 1.2)이었다. 이후 아테나이에서는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 ~ BC 429)로 대표되는 50년간의 황금기가 막내리게 되었고, 스파르테는 페르시아에 의존한 패권(覇權)을 잠시 누리다가 이후 테바이에게 헬라스의 패권을 넘기는 등 두 강대국 모두 몰락의 길을 걷게 었다. 헬라스 전체로도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of Macedon, BC 356 ~ BC 323)와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에 이 전쟁은 헬라스인들에게는 진정으로 파멸적인 전쟁이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30여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서 '투퀴티데스(투키디데스) 함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투퀴티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기에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 예일대 교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The Peloponnesian War>와 크세노폰(Xenophon, BC 430 ~ 354)의 <그리스 역사 Hellenica>를 통해 전쟁 전체를 조망해 보자.



[지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출처 : http://m.blog.daum.net/picodrim/9873968)


 1. 펠로폰네소스 전쟁


 가. 전쟁의 배경 


 투퀴티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페르시아 전쟁(BC 499 ~ BC 450) 이후 해군력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한 아테나이 제국(델로스 동맹)에 대한 스파르테의 견제로 인해 발생했다고 기술한다. 그리고, 케이건 교수는 이와 관련한 공포, 명예, 이익이 현대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기본동기라는 점에서 이 전쟁이 현대에도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 도시 사이의 대립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델로스 동맹이 성장하여 아테네가 성공적으로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점차 제국적인 야심을 드러내면서 시작되었다.(p34)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아테나이의 세력 신장이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인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다. (1권 23,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아테나이의 국력이 누가 보아도 절정에 이르고 아테나이인들이 자신들의 동맹국들 권리를 침해하기 시작하자, 라케다이몬인들은 마침내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이번에는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있는 힘을 다해 공격하되 가능하면 아테나이의 세력을 말살하기로 작정했다. (1권 118,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투키티데스의 이 세 가지 설명 방식은 모두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동기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정당화한다. 공포, 명예, 이익이 바로 그것이다.(p7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이러한 배경하에서 일어난 전쟁에 임하는 두 나라가 해군(海軍) 중심의 아테나이와 육군(陸軍) 중심의 스파르테였기에 이들은 서로 다른 전략으로 전쟁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 없었기에 이 전쟁은 장기전(長期戰)으로 돌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전쟁 양상은 로마와 카르타고 간 발생한 포에니 전쟁(Bella Punica)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몸젠의 로마사>에서 다루도록 하자.)


나.  아테나이의 전략 : 페리클레스 전략


 아테나이의 장점은 해군력과 스파르테를 압도하는 경제력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최대한 스파르테에 압박을 가한다면, 아테나이가 승리할 수 있다고 페리클레스는 판단했다. 페리클레스의 전략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을 때 상황은 아테나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지만, 여기에서 벗어났을 때 아테나이는 패배에 몰리게 되었다.


아테네의 핵심자원은 도시를 지키는 성벽, 바다를 장악한 함대, 해군을 부양할 돈을 공급하는 제국이었다.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남겨둔 채로 거둔 승리의 가치는 제한적이었으므로 스파르타는 공격에 나서야 했다. (p83)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페리클레스는 전쟁이 터지고 2년 6개월을 더 살았고, 전쟁에 관한 그의 선견지명은 그가 죽은 뒤 더욱 널리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인들이 은인자중하며 함대를 증강하고, 전쟁동안에는 제국을 확장하려 하지 않고, 도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은 모든 점에서 정반대로 했으며, 분명 전쟁과 무관한 다른 업무에서도 개인적인 이익이나 야망에 이끌린 나머지 아테나이에게도 그 동맹국들에도 해로운 정책을 추구했다. (2권 65,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페리클레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테네에서 계속 유지되었던 그 전략은 비록 어느 정도의 제한된 공격적 요소가 있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방어적이었다. (p7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다. 스파르테 전략 


 반면, 헬라스 최고의 육군을 보유했던 스파르테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쟁을 전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제1차 펠리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테의 군대는 조기에 아테나이를 포위하였으나, 아테나이인들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 뒤에 숨으면서 장기화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핵심은 펠로폰네소스인과 보이오티아인으로 구성된 그 찬란한 중무장 보병이었다. 이것은 아테네의 중무장 보병 팔랑크스보다 두세 배 더 컸고, 세계 최고의 군대라고 널리 인정되었다.(p85)... 플루타르코스는 기원전 431년에 아티카를 침공한 스파르타 군대가 6만 명이었다고 한다.(<페리클레스>33,4) 그 숫자는 너무 크지만, 분명히 스파르타의 군대는 아테네의 전투 중장 보병보다 2:1 또는 3:1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p8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라. 시칠리아 원정 : 아테나이 파멸의 시작


 전쟁이 계속되면서 스파르테 군대에 의해 포위된 아테나이는 좁은 지역에 밀집하면서 발생한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에 의해 인구가 격감하게 되고, 도시 밖 경제활동이 제약됨에 따라 주변 제국에 대한 세금을 올릴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포위의 결과 발생한 아테나이 내/외부의 불만이 고조됨에 따라 아테나이는 전황(戰況)을 변화시킬 필요가 생겼으며, 이 결과 시켈리아(시칠리아) 원정을 감행했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원정의 결과 아테나이는 파멸에 이를 정도의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시칠리아의 곡물이 펠로폰네소스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욕망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사태였다. 스파르타인의 아티카 유린의 기간과 강도는 어느 정도 침공군의 식량 공급에 달려 있었다. 시칠리아의 수확물을 상실하면 미래의 침공은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시칠리아를 복속시키려는 시도는 전시에 제국을 확장하지 말라는 페리클레스의 충고를 명백하게 어기는 것이었다.(p154)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이 사건(시켈리아 원정)은 이번 전쟁 전체를 통틀어, 아니 내가 보기에는 기록에 남은 헬라스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이긴 자들에게는 가장 빛나는 승리였지만 패한 자들에게는 비할 데 없는 재앙이었다. 아테나이인들은 모든 전선에서 완패했고, 그들의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보병이며 함대며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 많던 자들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온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상이 시켈리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7권 87, 5 ~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마. 페르시아의 등장


 시켈리아 원정의 파멸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이는 서서히 힘을 다시 키워가면서 스파르테는 전쟁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아테나이 해군의 힘을 꺾기 위해 스파르테는 지날날 살라미스 해전(Salamis batle, BC 480)에서 자신들을 적대했던 페르시아의 힘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파르테는 아테나이의 해군을 봉쇄할 힘을 얻게 되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아테나이의 붕괴를 위해서는 내부로부터의 붕괴가 필요했다.


밀레토스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티사페르네스는 급히 그곳으로 가서 스파르타인과 대왕의 동맹을 맺었다. 이 일방적인 문서는 다리우스에게 그나 그의 조상들이 보유했던 모든 영토와 도시들을 반환했고, 페르시아인과 스파르타인은 이 지역들에서 아테네에 대한 세금 지급을 중지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페르시아인에게 살라미스 이전에 그들이 소유했던 모든 그리스 영토를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반대로 페르시아인이 스파르타인에게 제공할 지원에 대해서는 재정적이건 그 어떤 것이건 명문화된 것이 없었다. (p39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특히 현재 상황에 비판적인 리카스는 칼키데우스가 맺은 협정도, 테리메네스가 맺은 협정도 잘못되었다면서, 대왕이 자신과 자신의 선조가 전에 지배한 모든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섬들과 텟살리아 지방과 로크리스 지방은 물론이고 보이오티아 지방에 이르는 모든 헬라스 땅이 다시 노예가 되고, 라케다이몬인들은 헬라스인들에게 자유 대신 페르시아의 지배를 안겨주었음을 의미하게 되리라고 했다. (8권 43, 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왜 스파르타의 지도자들은 또 하나의 불리한 조약을 체결했던 것일까? 그것은 스파르타의 협상 위치가 너무나 불리했기 때문이다. 부활하는 아테네인 앞에서 페르시아의 돈과 지원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원했던 것은 바로 스파르타인이었기 때문이다.(p412)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바. 아테나이의 몰락


 아테나이의 몰락은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민주정에서 체제의 수호를 원한 자들과 과두정을 원한 이들의 대립은 아테나이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아테나이는 스파르테와 굴욕적인 조건으로 강화를 맺으며 전쟁을 마무리하게 된다. 투퀴티데스의 저서에는 전쟁의 후반부를 다루지 않았기에, 이 부분은 크세노폰(Xenophon, BC 430 ~ 354)의 <그리스 역사 Hellenica>를 참고해본다.


아테네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함대의 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층 계급들과 그들의 민주파 지도자들과의 협력에 의지해야 가능했다.(p448)... 극단주의자들은 민주정의 복원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적군을 끌어들이고, 배들과 성벽을 포기하고, 오직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아테네에 관련된 모든 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8,91.3)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라케다이몬인은 헬라스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공헌한 헬레네스의 도시를 파괴하는 데 찬성하지 않고, 대신 장벽을 허물고, 페이라이에우스에는 12척을 제외한 모든 배를 포기하고, 추방된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라케다이몬과 같은 친구와 적을 가지며, 뭍이거나 바다거나 어디든지 라케다이몬인들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이미 굶주림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중이라 다수가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고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스 역사 2권(p51)


 이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리자는 누구였을까. 헬라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스파르테, 그 뒤를 이었던 테바이 모두 두 번 다시 페리클레스 시대 만큼 헬라스를 번영하게 만드는데 실패했다. 그런 면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전쟁 당사자 모두를 파멸로 이끈 전쟁이라 할 것이다.  이제, 투퀴티데스 함정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다.


기사출처 : http://www.hankookilbo.com/v/2538a200b1e94befaa0d19e9bccec112/


 아테나이의 번영에 대한 스파르테에 대한 시기, 질시로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두 강대국 모두에게 독(毒)이 되어 모두를 쓰러뜨렸다.  최근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질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이 세계 석학들이 지적하고 있는 '투퀴티데스 함정'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상의 투퀴티데스 함정과 킨들버거 함정을 종합해 보면, 다음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미국이 경제적 선두의 위치에서 내려와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경제적 선두를 필요하지만, 중국은 아직 경제적 선두를 받을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킨들버거 함정) 세계 경제 공공재로서의 경제적 선두가 없다는 현실 자체도 위협적이지만, 만약 미국이 최근의 중국의 눈부신 성장에 시기와 질투를 느껴 이를 견제하려 한다면 파멸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투퀴디데스 함정)


 세계 석학들은 미국의 고립주의와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해 '킨들버거 함정'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군사적 충돌보다는 관세 전쟁을 통한 경제면에서의 충돌이 더 우려되기도 하지만,  어느 면에서의 충돌이든 세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보다 현명한 선택과 대응이 요구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번 페이퍼의 주제와 관련하여 맹자(孟子, BC372 ~ BC289)의 한구절이 떠르게 되는데, <맹자>의 해당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孟子曰 以力假仁者覇  覇必有大國 맹자왈 이력가인자패 패필유대국

以德行仁者王 王不待大 이덕행인자왕 왕불대대

湯以七十理 文王二百里 탕이칠십리 문왕이백리

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이력복인자 비심복야 역불섬야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이덕복인자 중심열이성복야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실제로 힘에 의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인仁의 명분을 빌어 정벌을 일삼는 자는 패자 覇者이다. 패자는 반드시 강대한 국가를 소유해야한다. 자기 내면의 덕에 의지하면서 인정 仁政을 행하는 자는 왕자 王者이다. 왕자는 반드시 대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임금은 사방 70리의 나라를 기초로 하여 혁명을 성공시켰고, 문왕은 사방 100리의 나라를 기초로 하여 혁명을 성공시켰다.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대항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내면적 도덕의 힘으로써 사람을 복종케 하는 것은 마음속 한가운데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이 우러나와 진정으로 복종하는 것이다.(p246) <孟子 맹자 公孫丑 공손추  上 상 2a-3> <맹자 사람의 길 上> 中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11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1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고립주의를 택하면서 글로벌 리더의 자리를 스스로 포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과는 정치적으로는 북핵 문제와 남지나해 문제 등으로, 경제적으로는 보복 관세 부과등을 통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진] 트럼프의 무역쇄국(출처 : 매일경제)


 이러한 현실 속에서 1년 전 미국의 석학 조지프 나이(Joseph Samuel Nye, Jr., 1937 ~ ) 하버드 대학 교수가 미국이 '킨들버거 함정'과 '투키티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했던 기고문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이번 페이퍼와 다음 페이퍼에서는 킨들버거 함정과 투키티데스 함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당 서적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기사출처 : http://www.hankookilbo.com/v/2538a200b1e94befaa0d19e9bccec112/

 

 <경제 강대국 흥망사 : 1500 - 1990 World Economic Primacy : 1500 to 1990> 를 통해 찰스 P.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 1910 ~ 2003)는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선두의 등장과 쇠퇴에는 일종의 cycle이 존재하며, 이러한 주기를 움직이는 요인은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최적의 제도 역시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 속에서 말하는 킨들버거 함정은  마셜 플랜을 설계한 찰스 킨들버거가 제시한 이론으로, 새롭게 등장한 패권 국가가 기존 패권국이 생산하던 공공재(public goods)를 제공하는 데 실패할 때 전 세계적 재앙이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선두의 정의는 무엇인가부터 살펴보자.


 1. 경제적 선두와 공공재

 

킨들버거에 따르면 경제적 선두란 지배의 개념이 아닌 '리더십에 따른 공공재'를 의미한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공공재에는 국방, 사법, 대규모 SOC건설 등이 포함되지만, 이러한 구분은 국내에 한정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 차원의 리더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선두(economic primacy)는 국민소득(총소득과 1인당 소득), 성장률, 기술혁신의 수와 그것이 장차 개화될 가능성, 생산성 증가율, 투자 수준(국내투자와 해외투자), 원료 및 식량과 연료의 통제, 각종 수출시장 점유율, 금 보유고와 외환 보유고, 자극 화폐가 다른 나라에서 교환수단, 계산단위, 가치의 축적 수단으로 쓰이는가의 여부 같은 것 중 어느 하나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것들과 함께 또 다른 경제적 기준들이 혼합되는 가운데 - 그리고 그때의 가중치는 시간과 장소마다 다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 경제적 우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경제적 선두는  최상의 경우 지배나 헤게모니보다는 세계경제의 리더십에 따른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가 된다.(p28)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 1900> 中


 애덤 스미스는 세 가지 형태의 공공재를 언급한 바 있다. 국방, 사법, 그리고 민간부문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여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큰 규모의 건설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카테고리는 더 다양한 정부의 업무로 확장할 수 있다.(p54)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 1900> 中


 몇 해 전에 나는 1930년대의 세계공황에 대한 책에서 경제적 리더십을 가진 국가는 상품, 자본, 외환의 국제시장을 유지하고 거시경제 정책을 조정하며 위기시에는 최후의 신용공여자(信用供與者)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된다고 쓴 바 있다.(p15)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 1900> 中


 세계경제의 리더십에 따른 공공재로서 '경제적 선두'의 역할 중 하나를 킨들버거의 다른 책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 Manias, Panics and Crashes : A History of Financial Crises>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궁극적 대여자


 국가 차원에서 궁극적 대여자는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초래될 경제적 파탄을 방지할 책임을 가진다면,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국제 단위 환율 변동 등을 막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맡아야 하는 기본적 책임은, 국내 유송성의 부족이 채물지불 능력의 문제로 확대됨으로써 투매와 경계 매도(precautionary selling)가 없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파산을 야기하게 될 개연성을 줄이는 일이다...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맡아야 하는 기본적인 책임은 필요한 환율 변동의 범위를 개선하고 경제적 펀더멘털 측면에서 불필요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유동성을 제공하는 일이다.(p395)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 中


 국제적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여러 나라들이 장기균형 환율에서 이탈한 시장 환율의 괴리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를 창출하는 일에서 한 가지 문제는 그 활동을 통제하게 될 법률적 틀과 운영규칙을 수립하는 것이다.(p398)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 中


 금융면에서 경제적 선두의 대표적 역할은 기축통화(基軸通貨, 영어: world currency)이 공급이라 할 수 있다. 최근까지 세계의 소비국으로 물건을 소비하고,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면서 달러를 공급하던 미국의 역할은 트럼프의 정책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미국 이후의 글로벌 경제 리더의 역할을 받을 나라가 아직 없다는데 있다.


3. 세계경제 주도권 행사


 1973년 이전에는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행사하던 한 국가가 쇠퇴하면 대개 그 자리를 기꺼이 넘겨 받으려고 하거나 더 나아가서 그러기를 열망하는 다른 국가가 흥기(興起)했다. 프랑스, 독일, 일본의 경우가 말해 주듯이, 아직 그 자리가 비지 않았을 때에 이미 계승 후보자들이 존재하기도 했다.(p354)... 경제력을 갖추었다는 것과 세계평화, 안정, 성장과 같은 공공재를 구축하기 위해서 그 경제력을 사용하는 것 사이에는 모호성이 존재한다.(p355)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 1900> 中


 킨들버거도 이후 어떠한 국가가 세계 경제 리더쉽을 이어받을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중국이 미국 다음의 경제 대국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중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독자적인 무역대국으로서 중국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제력을 갖추었지만, 세계 공공재를 구축하기 위해 그 경제력을 사용하는데 모호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현대 중국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기꺼이 지도자 자리를 인수하려는 자가 없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이, 나우, 피터슨, 로즈크런스와 기타 여러 사람이 주장하듯이 미국 경제가 새로운 회복력을 보이고, 미국의 경제와 정치 리더십이 1950년대와 1960년대처럼 다시 압도하게 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p356)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 1900> 中


 만약 미국이 복귀하여 세계경제의 중심 혹은 리더의 역할을 계속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판단으로는 가까운 미래에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p357)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 1900> 中


 누군가는 최근 막 내린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속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이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선언한 것이 아닌가 주장할 수도 있겠다. 시진핑의 1인 집권을 장기화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환경 문제 해결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그 예로 들기도 하겠지만, 이 역시 '중화사상 中華思想'이라는 고립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편이 보다 더 정확다고 여겨진다. 



 [사진] 시진핑 주석의 19차 당대회 보고 주요 내용(출처 : 경향신문)


 사실, 중국이 경제적 선두가 되기 어려운 문제는 중국의 경제가 미국 의존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중국 수출품의 다수가 미국에서 팔리고, 중국의 첨단 기술 다수가 미국이 지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 속에서 '미국 없는 중국 경제 패권'은 아직 상상하기 힘들다.


 [사진] 중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출처 : 뉴스타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세계경제가 직면한 킨들버거 함정은 '너무도 빠르게 경제적 선두의 위치에서 내려온 미국과 아직 경제적 선두로 올라가기에는 경제력이 약한 중국'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지프 나이 교수가 지적한 투키티데스 함정은 무엇인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09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9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9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9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8-04-10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시는 글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4-10 09: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후애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도이 2020-06-01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글감사합니다~
 

는 어제 비제의 걸작을 스무 번째 -당신은 이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 들었습니다. 정신을 유연하게 다시 가다듬고 그것을 견디어냈으며 다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의 끈기 없음을 이겨낸 일이 나를 놀라게 합니다. 이런 작품을 어떻게 더 완전하게 만든단 말입니까! 사람들 자신이 이 작품과 더불어 '걸작' 이 되는데요. - 그리고 카르멘을 들을 때는 언제나 나 자신이 다른 때보다 더 철학자인 것 같고, 더 나은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나는 느긋해졌고 행복해졌으며, 인도적 Indisch이 되었고, 엉덩이가 무거워졌습니다. 다섯 시간을 앉아 있는다는 것 : 성인다움의 첫단계이지요! - 비제의 오케스트라 음색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참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음색이라고 말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비제의 음악은 완전한 것 같습니다.이 음악은 가볍고 탄력 있으며 정중하게 다가옵니다. 이것은 사랑할 만합니다... 비제의 음악은 악하고, 세련되었으며, 숙명적입니다. 이 음악은 풍부합니다. 이 음악은 간결합니다...(p17) <바그너의 경우> 中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가 완벽한 음악이라고 격찬한 비제의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곡(曲)은 <카르멘>이고,  그 중에서도  <하바네라 Habanera>가 일반에게 가장 친숙한 곡인것 같습니다.

 


 이국주의와 사실주의가 결합된 비제(Georges Bizet, 1838 ~ 1875)의 <카르멘 Carmen>은 1875년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스페인적인 색채는 무엇보다 주인공 카르멘이라는 인물에서 나타났다.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은 순간의 쾌락만을 위해 산다. 그녀의 외설적인 의상과 행동, 도발적인 성적 매력과 언어, 비제의 음악, 이 모든 것들이 규범적인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그녀를 특징지으며 그녀를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인물로 만들어 낸다. 비제는 세 개의 스페인 선율을 차용했는데, 카르멘의 유명한 <하바네라 Habanera> '사랑은 다루기 힘든 새'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스페인적으로 들리는 음악의 대부분은 집시나 스페인 음악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은 현대적인 프랑스 양식과 혼합하여 비제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다. 그녀가 순진한 상병 돈 호세를 유혹하며 부르는 세기딜랴는 빠른 3박자의 스페인 노래의 한 유형이다. 기타를 모방하는 반주 패턴, 멜리스마와 우아한 음조의 성악 선율, 프리지아 선법의 화성 등의 특징들은 관습적으로 스페인 음악과 결부된 것들이다.(p149)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中


 한동안 미세먼지가 심하더니, 오늘은 덥지도 않고 흐리면서도 공기가 맑은 하루였습니다. 덕분에 밖에 놀기도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하바네라>가 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많이 생각납니다. 벌써 일요일 밤도 깊어 가고 있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상쾌한 한 주의 시작되세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09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9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4-09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제의 하바네라, 언제 들어도 진리네요.

카수의 인상이 목소리만큼이나 인상적
이었습니다.

마치 인상으로 노래를 부르는 듯...

겨울호랑이 2018-04-09 11:46   좋아요 0 | URL
니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레삭메냐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어찌하여 한 점
도화 꽃이 피는지를 아는가.

보오얀히 아지랑이 아리히는
이제는 안팎이 없는 나의 가슴 안

그 어느 촌스런 등성이 가지에
시방 한 점 도화가 꽃 버나니.

이제는 나가 아니란다.
나 안에 있는 너!

그 너가
시방 벌어 나나니.

아아 이렇게
보오얀히 아리히는 천지가 -나가-

나 아닌
너가! -「개화」유치환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중 -

어제는 오랫만에 날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개나리도, 목련도 핀 교정에서 봄을 느껴봅니다. 오늘 비가온다는데 이 비에 목련이 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사진에 담아 올려 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은까페 2018-04-01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련이 활짝 폈네요.
이곳은 아직은 봉우리랍니다.
좋은 날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4-01 08: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소은까페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 2018-04-01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나리와 목련이 활짝 피었네요.
제가 사는 곳에는 지난 금요일부터 조금씩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 정도예요.
날씨가 따뜻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조금 더 빨리 필 것 같은데도요.
겨울호랑이님,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4-01 09:02   좋아요 2 | URL
정말 날이 갑자기 더워졌지요? 미세먼지만 없으면 참 좋은 봄날일텐데요... 오늘 비에 먼지가 씻겨 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서니데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Dora 2018-04-0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답네요 부활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18-04-01 09:19   좋아요 0 | URL
Dora님도 행복한 부활절 아침 되세요^^!:)

bookholic 2018-04-0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우절 거짓꽃은 아니겠죠?^^
행복한 봄날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4-01 10:34   좋아요 0 | URL
^^:) 만우절 장난하기에는 블록버스터급이라 ㅋㅋ bookholic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18-04-01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동물원에 가보니 개나리는 물론이고
목련이 올라 왔더라구요.

이제 곧 벚꽃피는 계절이지요.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을 기대해 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4-01 10:40   좋아요 0 | URL
어제 진해 군항제 전야행사가 있었다네요. 봄꽃이 봄소식을 가져다 주는 시절임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레삭매냐님 행복한 4월의 봄날 되세요!^^:)

별이랑 2018-04-01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련이 어쩜 저리 예쁜지...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울동네서 보려면 아직 한참 먼 꽃구경 하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겨울호랑이 2018-04-01 14:26   좋아요 0 | URL
^^:) 별이랑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hnine 2018-04-01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 쓰신 시인줄 알았어요^^
시만큼 아름다운 사진이네요.

겨울호랑이 2018-04-01 15:22   좋아요 0 | URL
에고, 설마 제가요..ㅋ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작가명도 적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nine님 행복한 봄날 되세요

자목련 2018-04-01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명하고 환한 봄이 가득하네요. 곧 사라질 봄, 즐겁고 기쁜 시간으로 채우세요^^

겨울호랑이 2018-04-01 18: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목련님도 행복한 봄날 되세요.!^^:)

북프리쿠키 2018-04-01 1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가면서 봄의 느낌이 달라졌어요ㅎ 더 소중해졌다고나 할까요^^

겨울호랑이 2018-04-01 19:15   좋아요 2 | URL
시간이 흘러가면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게 남아 있음을 많이 느끼는 요즘이라 저 역시 북프리쿠키님과 같은 느낌이 드네요..^^:) 북프리쿠키님 얼마 남지 않은 2018년 4월 1일 일요일 잘 마무리 하세요!ㅋ

마립간 2018-04-02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부터 우리 동네에 동백, 목련, 개나리, 벚꽃과 사과 꽃, 살구 꽃이 한꺼번에 꽃이 펴, ... (매화가 동백보다 새치기, 진달래는 동네에 없고, 철쭉만 순서를 지키는 듯,)

겨울에서 1주일 간 봄으로 퉁치고 바로 여름으로 넘어가는 ... ; 아침 운동할 때, 보기는 좋습니다만.^^

겨울호랑이 2018-04-02 15:30   좋아요 1 | URL
^^:) 정말 2주전에 눈 내렸는데 봄이 정말 짧아졌어요. 중간층이 없어지고 양 극단화되는 현상이 사회계층만의 문제가 아닌듯 하네요...

2018-04-03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3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전 제가 어렸을 적에 어른이 되고 싶은 2가지 이유와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합니다.

 Long long time ago, 어른이 되면 예방주사를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되고, 흔들리는 이가 빠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면 예방주사 대신 내시경을 해야한다는 사실과 결국 나이들면 틀니와 임플란트 중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면 결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하고 싶었던 일은 커다란 수영장을 ‘환타‘, ‘사이다‘로 채워 입만 벌리면 탄산음료를 먹을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뚱맞은 이야기는 이번 리뷰의 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달콤한 목욕」은 사이다로 목욕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뭄이 들어 물이 끊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물 대신 사이다로 샤워를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맛있는 탄산 음료 생각에 ‘환타 수영장‘까지 생각했음에도, 어른이 된 지금은 탄산음료의 끈적거림을 상상하면 ‘사이다 샤워‘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이처럼 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 안 좋은 면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성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달콤한 목욕」에서는 아이들 관점에서 끈적거리는 탄산의 느낌을 씻겨냅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내리는 비로 사이다도 씻겨 보내고, 가뭄도 멈추게 되는 행복한 결말 속에서 이제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간절했던 (지금은 잊고 지내는)소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예전 ‘환타 수영장‘을 꿈꾸었던 것과 같은 느낌을 두 번 다시 갖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잃어버린 시간의 느낌은 「피터 팬」에서 어른이 된 웬디에게 어린 피터 팬이 다시 나타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겠지요. 어른이 된 웬디는 피터 팬과 함께 다시 원더랜드로 가지 못했던 것처럼, 저 역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듯 합니다. 웬디가 다시 돌아온 피터 팬을 통해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했던 것처럼, 「달콤한 목욕」을 통해 1980년의 어느 유년 시절을 잠시나마 뒤돌아 봤습니다...

 ps. 「은하철도 999」에서 여주인공 메텔이 한 명대사가 떠오르네요.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소년 시절...‘

[사진] 은하철도 999 (출처 : http://elros.tistory.com/290#.Wr2vYC5uZhE)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3-30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30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8-03-30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환타, 사이다, 콜라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료였지요.
1년에 한두 번 소풍 때나 겨우 먹어볼 수 있었던 그 기가 막히고 짜릿한 맛을 멀리 하고,
이제는 소주나 막걸리를 더 즐겨 찾는 게 결국 변해 버린 ‘입맛‘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어른이라는 형편이 왠지 조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3-30 12:03   좋아요 1 | URL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만, 생각해보니 이제는 커피를 더 즐겨 마시게 되었네요. 어렸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짜장면‘도 이제는 좀 느끼하게 느껴지는 것도 oren님께서 말씀하신 변해버릿 ‘입맛‘때문인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결국 ‘변화 불변의 절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파르메니데스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세상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바라봤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AgalmA 2018-03-30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치과 가는 거 아직도 너무 고역ㅡㅜ)...
와이고, 연의 그새 또 엄청 자란 듯. 몰라보겠어!(언제는 직접 봤나;;;)

겨울호랑이 2018-03-31 12:06   좋아요 2 | URL
제게도 치과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운 일이지요. 치과 공포증은 언제나 극복되려나... 아이들은 무척 빨리 자라는 것 같네요^^:)

2018-04-03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3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