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스무 명도 넘게 아픈 아이를 만나 온 지 10여년째. 진료실 문을 조심스레 밀치고 아이와 함께 들어오는 엄마와 눈을 마주칠 때면 늘 가슴 한쪽이 아파 온다. 며칠 못 잔 듯 피곤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퀭한 눈. 거기에는 아이를 걱정하는 불안감과 함께 그 엄마가 겪어 온 좌절의 고통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 엄마는 또 그 동안 얼마나 전쟁 같은 일상을 견뎌 왔던 걸까. 그 견딤 속에서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몰아세웠을까. (p55)「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중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아토피•천식 안심학교라 학부모 중 많은 분들이 아토피 자녀를 두고 계십니다. 잠을 못 이루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가 지쳐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저절로 들지만, 아픈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은 주변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일 것입니다.

최근 이코노미 인사이트 4월호 기사에서는 ‘예민한 부모가 아토피를 키운다‘는 제목으로 아토피 어린이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플러의 이론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산만함,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과민 반응이 질병의 형태로 터져 나올 위험이 커진다. 리플러는 이것이 바로 심각한 아토피성 질환의 증가로 생각한다.(p32)... 리플러의 주장은 최근 활기를 띠는 ‘정신적 측면과 면역체계의 연관성‘ 연구 분야에서 발견된 사실과 일치한다... 오늘날 우리는 심한 스트레스와 피부 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를 치료에 반영한다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p32)... 임신 기간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천식•아토피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p33) 「이코노미 인사이트 4월호」- 예민한 부모가 아토피를 키운다 -중

기사에 따르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선진국에서는 전체 유아 중 최대 15%가 아토피를 앓는다고 하니, 아토피는 대표적인 선진국 질병 중 하나입니다. 산업화, 공업화로 인한 환경 오염과 더불어 스트레스 또한 아토피, 천식 발병의 주요한 요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토피•천식 치료에 사회도 책임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이유로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부모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개인이 살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시작은 개인에게 주어진 짐을 덜어주어야 하는 것부터 출발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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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26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이 어렸을 때 아토피 피부 질환에 걸려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은 증상이 거의 사라져서 무난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동생의 아토피였어요. 아토피 자녀를 둔 부모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자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들어 해요.

겨울호랑이 2018-04-26 08:15   좋아요 3 | URL
그러셨군요...아픈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보다 속상한 경우는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토피 등 아이가 아픈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cyrus님 동생분께서는 지금은 완쾌되셨다니 다행이네요. 다른 아이들도 사회의 보살핌 속에서 쾌유되기를 바라 봅니다.^^:)

2018-04-26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6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6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6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6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은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면서,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p306)... 벤담(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p309)... 수감자에게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상태가 만들어진다. 감시작용에 중단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도록 하고, 권력의 완벽한 상태는 권력행사의 현실성이 점차 약화되도록하고, 건축의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계장치가 되도록 한다.(p311) <감시와 처벌> 中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속에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가 구상한 판옵티콘에 대한 구상을 언급하고 있다. 중앙에서 수감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하는 '판옵티콘' 구상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1984> 속에서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黨)이 만들어낸 '빅 브라더(Big Brother)'와 '텔레스크린'의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1. <1984> 감시의 도구 : 텔레스크린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벅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p10) <1984> 中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그가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 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p11) <1984> 中


2. <1984> 통제의 도구 : 신어


 어느 한 순간이라도 기호와 의미작용을 대립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착각이다. 의미작용은 기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기호의 역(逆)경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정신에 속한 동일 개념의 두 형태들이며, 이는 마치 종이의 앞면과 뒷면에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로 이 종이를 가위로 자를 수 없는 것과도 같다.(p144) <일반언어학 노트> 中


 프랑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는 <일반언어학 노트 Ecrits de linguistique generale>에서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와 의미작용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의미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소쉬르의 이론을 <1984> 속의 오세아니아 지배계급은 받아들인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신어(新語 Newspeak)를 보급하여 대중들을 사상적으로 제약을 가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택하고 있다.


 신어의 창안 목적은 영사(英社,  영국사회주의 English Socialism)의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영사이외의 다른 사상(思想)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사상이 언어에 의존하는 한, 신어가 전면적으로 사용되고 구어가 완전히 잊혀지게 되면 이단적 사상, 즉 영사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상은 그야말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 비정통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을 없애고 한 어휘의 제2차적 의미를 삭제함으로써 가능했다... 개념이 없으면 낱말도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p419) <1984> 中


 신어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 창안된 것인 만큼 이것은 신어의 창안 목적을 간접적으로 달성시키는 역할을 했다.(p420) <1984> 中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가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가. <1984> 속에서 언어가 표현하는 실재(實在)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재가 아니다. '현재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과거의 기록도 왜곡되고, 미래는 통제된 언어를 통해 제약되면서 역시 당의 지배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 언어를 통한 시간과 공간의 지배. 그것이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모습이다.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네. 그것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p347) <1984> 中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여졌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 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p220) <1984> 中 


  1940년대 한 지식인이 그린 40여년 후의 미래 모습은 이처럼 음울했고, 우리가 피해야할 미래로 생각되어져 왔다. 시간적으로 1984년이 지나가고,  1980년대 말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1984> 속의 미래는 마치 '빗나간 예언'처럼 생각되어져 왔다. 그렇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는  <1984> 속의 통제받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된다.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술을 중국 기술자들이 이미 만들어낸 것이다. 새로운 감시도구인 보행인식 시스템은 대상과 50m 떨어진 거리에서도 작동하며, 얼굴을 가려도 아무 소용이 없게 한다.(p36)...중국에 디지털 붐이 형성된 것은 최소 5가지 요소가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한 통제, 수년간 쌓인 대기업의 자산,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적극성, 제조업 기반, 서구권에선 회의론이 커지는 새로운 기술을 열정적으로 환영한 대중이다.(p37)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 Insight> 2018. 4월호. <디지털 레닌주의의 빛과 그림자> 中 



 [사진] 5G와 사물인터넷(출처 : 데이터넷)


  5G로 연결된 사물인터넷을 통해서 일상생활이 연결된다면, 어느 특정한 불온한 개인을 감시하고, 그의 생활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물 인터넷'이 과연 편리한 생활을 가져다 주는 도구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최근 Facebook의 개인정보 유출 스캔들을 보면서, 우리는 편리해진 생활만큼 사생활 보호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1984> 속에는 이처럼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에 따라 윈스턴과 줄리아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을 통해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소설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그림은 '우울한 미래'가 되겠지만, 독자들이 가진 여러 배경 지식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과 인류(人類)의 영원한 과제인 '집단-개인'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1984>를 읽은 후 드는 의문. 반당(反黨) 단체의 리더인 '골드스타인'이라는 존재 또한 당이 만들어낸 실재(實在)라는 이름의 허상(虛像)은 아닐런지... 골드스타인 속에서 우리 나라의 북풍(北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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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23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크닉의 발전이 과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네요.

페이스북 사태는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바로 광탈해 버렸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23 15:51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지만 이미 우리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전자파들이 마치 오랏줄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저는 아직 페이스북 탈퇴는 하지 않았습니다만,페이스북만의 문제일까요... 이제는 제도에 대한 규제가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4-23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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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문은 공공의 참여를 제공하는 개인적인 고백의 형태이다. 신문은 사건을 이용해서, 또는 전혀 이용하지 않고도 사건들을 채색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에 복잡한 <인간적 흥미 위주의 기사>적인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매일 다양한 기사들이 배열되어 대중 앞에 제공되기 때문이다.(p288) <미디어의 이해> 中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 1911 ~ 1980)은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를 통해서 신문(新問)이 공공의 참여를 제공하는 개인적 고백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문은 최근 경쟁 매체들의 등장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움베트르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그의 저서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을 통해 신문의 생존법을 제시한다.


 서구와 같은 문화 내에서는, 작용 면에서나 실제적인 면에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주장이 종종 충격으로 여겨진다. (p35) <미디어의 이해> 中


 에코에 따르면 이미 1960년대부터 신문의 기능은 뉴스의 제공이 아니라, 다른 권력 기관과 결탁을 위한 메세지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할은 1990년대까지도 이어지지만,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제 주도권은 '텔레비전(television)'으로 넘어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있었던 신문의 기능과 성격에 관한 논쟁은 두 개의 테마를 둘러싸고 전개되었습니다. (1) 뉴스와 논평 사이의 차이, 그러니까 객관성에 대한 관심의 환기, 그리고 (2) 신문은 정당이나 경제적 집단들에 의해 운영되는 권력의 도구라는 것이었지요. 정당이나 경제적 집단들은 의도적으로 비밀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들의 진짜 기능은 시민들에게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머리 위를 지나 다른 권력 집단에 암호화된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p15)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예전에는 신문들이 맨 처음 뉴스를 전했는데 나중에 다른 매체들이 개입하여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것, 신문은 <편지가 뒤따름>이라는 말로 끝나는 전보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962년에는 이미 전송(電送) 뉴스가 저녁 8시에 텔레비전 신문에 의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p21)...풍자, 격렬한 논쟁, 특종의 제작은 이제 텔레비전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p23)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그렇다면, 신문과 텔레비전은 미디어로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잠시 살펴보자. 맥루언에 따르면 신문과 텔레비전 모두 '모자이크 적 형태'로 참여를 요청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텔레비전이 보다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눈 앞의 현실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두 매체의 차이가 된다. 최근 인터넷이 보다 보편화되어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 (streaming service)와 시청자의 댓글 참여는 정보 제공과 참여의 주기를 더욱 짧게 만들고 있다.


 신문이란 애초부터 책의 형태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모자이크 적 형태, 즉 참여를 요하는 형태를 지향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인쇄와 취재의 가속으로 인해 이러한 모자이크적 형태는 인간 공동 사회의 지배적 양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모자이크적 형태란 <분리된 견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297) <미디어의 이해> 中


 텔레비전 시대 10년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깊은 관여를 향한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의 문화가 지닌 먼 앞날의 시각화된 목표는 그 충동 때문에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자신들과는 관계 없는 것처럼, 더 나아가 무기력하고 활기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p464)... 텔레비전 어린이는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학습에서든 인생에서든 간에 단편적이고 단순히 시각화되어 있기만 한 목표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p465) <미디어의 이해> 中


  텔레비전은 보다 효과적으로 미디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기에 신문은 텔레비전의 보조 수단으로 위치가 격하(格下)되었다. 그리고, 에코는 신문들이 보다 지역화(localization)하거나, 보다 객관화된 정보의 제공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 이상의 두 가지 대안을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신문은 이제는 이미 텔레비전의 시녀입니다. 소위 말하듯이 신문의 일정표를 확정하는 것은 바로 텔레비전입니다.(p31)... 신문이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앞장서서 텔레비전을 특권적인 정치 공간으로 설정하였고, 자신의 자연스러운 경쟁자를 지나칠 정도로 선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문은 과도할 절도로 공연을 정치화하였습니다.(p35)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이러한 모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신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길은 <피지 Fiji 방식의 길>입니다. 지극히 초라한 신문들은 단지 통신사의 메시지들에 의존하면서도 그 전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들을 단 몇 줄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피지 방식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물론 신문의 경우 판매 부수의 엄청난 격감을 암시합니다.(p50)... 또 다른 길은 제가 <확산된 관심>이라 정의한 길일 것입니다. 즉 일간 신문이 버라이어티 주간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뉴스들의 엄격하고도 신빙성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지요.(p51)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에코는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속에서 엄격하고 신빙성 있는 정보 제공자로서의 신문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신문이 선택한 길을 이와는 달라 보인다. 


 신문이 <주간지화>되었습니다. 일간지는 점점 더 주간지와 비슷하게 되었고, 버라이어티, 풍습, 정치 생활과 관련된 소문들에 대한 논의, 공연 예술계에 대한 관심에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p24)... 일간지들은 주간지화 하기 위해 페이지 수를 늘이고,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해 광고를 확보하려고 싸우고, 더 많은 광고를 싣기 위해 페이지 수를 더욱 늘리고 부록들을 고안해 내고... 때로는 뉴스가 아닌 것을 뉴스로 만들기도 합니다.(p27)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생존을 위한 신문들의 노력은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의 생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언론이 대기업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진] 4대 재벌의 언론사 광고 지배력(출처 : JTBC)


 사회 내에서 자동화가 지배적일수록, <정보>가 중요한 상품이라는 점과 형태를 갖춘 상품은 정보 이동에 뒤따르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광고주는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시간과 공간을 산다. 광고주들은 독자나 청취자나 시청자의 일부를 사는 것이다. 그들은 그 방법만 안다면 기꺼이 독자, 청취자, 시청자에게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준 대가를 직접 지불할 것이다.(p292)... 광고란(그리고 주식 시세란)은 신문의 기초를 지탱하고 있다.(p293) <미디어의 이해> 中


  또한, 뉴스의 반복-확대 재생산의 고리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 거짓 뉴스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현실 속에서 점점 신문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신문으로 대표되는 언론이 처한 위기의 단면이다.


[사진] 세월호 오보 사례(출처 : MBC) 

 

 신문이 뉴스를 제공하는 방식에 대해 비평적으로 말하는 것과, 이미 공개된 뉴스를 마치 새로운 뉴스처럼 사용하는 것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이제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저널리즘의 질병처럼 보인다. 어느 권위있는 사람이 나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문들이 더 잘 팔린다고(그리고 분명 비용은 더 적게 들 것이다.) (p58)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中


 20년 전 1월 14일의 신문이 가장 최근의 1월 14일 자 신문과 동일한 뉴스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문사의 잘못일까?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당시 일어난 것을 기록했으며, 동시에 현재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이 나라에서는 20년 전부터 많은 것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언제나 똑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p70)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中


 에코가 20년 전에 지적한 이탈리아 신문과 언론의 문제점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에, 그가 말한 신문의 생존 방법이 더 깊이 와닿는다. 


 일단 법이 성문화되면 힘없는 자나 부자나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다네. 그러면 부유한 시민이 나쁜 짓을 할 경우 힘없는 자가 비판을 할 수 있으며, 약자도 옳으면 강자를 이길 수 있다네. 자유란 이런 것일세. "누가 도시에 유익한 안건을 갖고 있어 공론(公論)에 부치기를 원하십니까?" 원하는 자는 이름을 날리고, 원치 않는 자는 침묵하면 된다네. 도시에 이보다 더 한 평등이 어디 있겠는가? (433 ~ 441)  <탄원하는 여인들 > 中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5 ~ BC 406)는 <탄원하는 여인들 Hekabe> 속에서 테세우스(Theseus)의 말을 빌려 민주정의 자유와 평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문과 언론이 처음으로 돌아가, 뉴스들의 엄격하고도 신빙성있는 원천이 되어, 민주주의의 자유와 평등에 기여했을 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며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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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9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19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문은 텔레비전의 시녀’라는 에코의 시각이 낡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TV와 언론은 SNS의 시동(侍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시녀’라는 표현도 마음에 안 듭니다. 일부 기자들은 SNS에 공유되는 게시물을 허락 없이 가져오고, SNS 게시물의 진위 여부를 살피지 않고 기사에 올립니다. 기자라는 명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한 아이들 수준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거죠.

겨울호랑이 2018-04-19 15:11   좋아요 0 | URL
cyrus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동시에, 에코가 이 글을 쓴 시점이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이라는 점을 감안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18-04-19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9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4-20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문의 쇠퇴는 우리가 정보를 운용하는 방식의 변화와도 관계 있어요. 인터넷 등의 발달로 우리는 더 빠르고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고, 지금처럼 신문이 광고주나 그들 사익 추구로 변질되면서 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죠. 정보의 질도 떨어지는데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죠^^;;

겨울호랑이 2018-04-20 11:44   좋아요 1 | URL
^^:) 그렇겠지요. 아마 정보 저장 매체로서 tape나 LP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최근 LP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다시 사랑받는 것처럼 신문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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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서 이웃분들로부터 감사하게도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영복의 엽서」역시 이웃님의 선물입니다. 영인본은 작성자의 필체를 느낄 수 있기에 저자와 교감하는 느낌을 전해 줍니다. 그런 면에서 영인본으로 작성된 「엽서」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을 해석하는 저자의 해석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거북이를 얕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그러나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1등을 한 거북이도 나쁘다. 화용이와 민용이와 두용이는 공부를 잘 한다고 게으름을 피우는 토끼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부 못하고 친구를 얕보는 토끼같은 사람이 되어서느 안된다. 친구를 따돌리고 몰래 혼자만 1등을 하는 거북이 같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 그런 멋진 친구가 되자.(p274)

하얗게 언 비닐 창문이 흐미하게 밝아오면, 방안의 전등불과 바깥의 새벽빛이 서로 밝음을 다투는 짤막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 때는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더 어두워지는듯한 착각을 한동안 갖게 합니다...저는 이 짧은 시간에... 작은 고통들에 마음 아파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청산하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 봅니다.(p178)

영인본 속의 글 속에서 ‘있읍니다‘와 같은 예전 표기법을 보면서 글 속에서 세월 또한 느끼게 됩니다. 내용 전달 이외에 저자의 일상생활에 초대받은 느낌을 전해 주는 영인본의 아름다움을 이번 선물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예쁜 파우치 역시 선물로 받았습니다. 마침 여권을 보관할 파우치가 없던 차에 여권을 넣으니 색과 잘 어울리네요.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다소 쌀쌀한 요즘이지만, 이웃님들 덕분에 봄의 아름다움을 더 풍성히 느끼게 됩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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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5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이 선물을 주셨는지 누군지 알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4-15 11:58   좋아요 0 | URL
^^:) 네 cyrus님께서 예상하시는 그 분 입니다.

서니데이 2018-04-15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의 책은 소개페이지를 보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영인본이네요.
작은 엽서라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글씨가 예쁘고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좋은 선물 받으셨네요.^^

저희집 파우치를 예쁘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도 제가 찍었을 때보다 더 예쁘고, 여권이 들어가는 크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차가운 바람이 부는 흐린 오후예요.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4-15 18:1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좋은 선물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행복한 하루 되세요! ^^:)

oren 2018-04-15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교수님의 엽서를 보니 예전에 국한문을 열심히 혼용해서 썼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불과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소에 자주 한자를 써 봤고, 헷갈리는 때가 많아서 옥편도 자주 들춰보곤 했는데, 이제는 한자와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듯해서 화들짝 놀랄 정도가 되었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4-16 06:48   좋아요 0 | URL
oren님 말씀처럼 예전에는 신문에 한글과 한문이 같이 표기되어서 어린이 신문이 별도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한문이 어려워 한글으로만 표기된 신문이 반가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별도의 과목으로서 하는 공부보다 생활의 일부인 한문이 보다 우리 삶에 도움이 많이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4-16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10-09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의 엽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한껏 느끼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10-09 15: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애정을 갖지만, 제가 충분히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북프리쿠키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인기가 많은「고 녀석 맛있겠다」시리즈는 각 권의 구성은 비슷하지만, 많은 여운을 남기는 책입니다.

난폭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는 육식 공룡입니다. 때문에 다른 공룡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피하기 바쁘지만, 어린 초식공룡들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자신들을 잡아먹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에게 티라노사우루스는 ‘덩치 큰 어른‘일 뿐이기에 티라노사우루스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 초식 공룡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티라노사우루스는 당황하지만, 이들과 어울리면서 사랑과 우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됩니다. 동화책으로는 드물게 죽음과 이별을 다루면서도, 등장하는 공룡들 서로가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며 이야기가 마무되기에 시리즈 전체가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기보다 생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순수함‘으로 사랑과 우정이 꽃피우는 것을 그려내는 이야기는 아이보다 읽어주는 부모가 더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지만 이야기에는 공통된 장치가 하나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치는 서로 대립되는 육식공룡과 초식공룡 세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책에는 그러한 장치로서 ‘빨간 열매‘가 등장합니다. 이 열매는 초식 공룡들의 먹이가 되지만, 육식 공룡에게는 먹이가 되지 못하는 식량입니다. 그렇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빨간 열매를 먹음으로써 트리케라톱스나 스테고사우루스와 같이 공감하면서 사랑과 우정을 찾아가게 됩니다.

빨간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말해주지 않아, 저 스스로 생각을 해봅니다. 먼저 이 이야기 전체가 큰 ‘은유‘라 가정해 봅니다.

밖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육식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가 ‘어른‘ 또는 ‘부모‘이고, 어린 초식 공룡이 ‘어린이‘, ‘아이‘들이라면 이들이 어울릴 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순수‘ 또는 ‘동심‘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어른과 어린이가 교감했을 때 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시간이 흘러 어린 초식공룡이 자란 후에는 이들은 더 이상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런지.

‘빨간 열매‘를 통해 「고 녀석 맛있겠다」시리즈 ‘부모-자식‘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 - 자식 관계가 공룡들처럼 서로 잡아먹는 관계는 아니기에, 제 해석이 무리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대를 위해서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자식을 이해하기 위해 어른들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메세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멋대로 추측해 봤습니다...

아마도 틀릴 가능성이 많지만, 부모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책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고 녀석 맛있겠다」는 아이를 위해 부모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책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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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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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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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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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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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4-14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룡 나오는 책에 제목이 저러니까 사랑스럽고 친근해서 좋아요^-^ 아이들에게 다른 해석할 여지도 주는 것 같고.
연의는 공룡을 좋아하나봐요? 전 어렸을 때 공룡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ㅅ-;

겨울호랑이 2018-04-14 15:47   좋아요 1 | URL
유치원에 남자 아이들이 많아서... 축구나 칼싸움 등을 좋아한답니다..ㅜㅜ 아들같은 딸이지요 ㅋ

페크pek0501 2018-04-14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책을 무지 좋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5 00:13   좋아요 1 | URL
^^:) 동화책임에도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책이라 여겨지기에 pek0501님께서도 좋나하실 책이라 여겨집니다^^:)

2018-04-16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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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04: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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