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채택한 송금 정책은 그 시대 다른 나라의 산림 정책과 달리 민간의 식재 장려보다는 벌채 금지 위반자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수군의 미숙한송금 관리가 학정을 불러왔고 설상가상으로 조선 왕실과 권세가의 봉산 침탈은 산림을 더욱 황폐화했다. - P78

송계는 17세기 후반부터 자생적으로 결성되었고,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 덕분에 송계산의 금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종계는 산림을 지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공용자원으로 육성되었으며, 개인의 다양한 수요도 적절한 수준에서 충족시켰다. 송계는 정부 주도로서 호서 지방에서 1710년 전후에 시범 운영되었지만, 지속하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정부가 산림 금양에 민간의 참여를 끌어낼 소중한 수단을 포기함으로써 산림 황폐화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  - P241

조선 후기 널리 보급된 온돌은 우리 산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주거 시설에 부분적으로 온돌이 설치되기 시작한 때는 조선 전기였지만, 본격적으로 온돌이 설치된 시기는 17세기였다. 특히 17~18세기에 도래한 ‘소빙기(Little Ice Age)‘ 기후는 남부 지방의 가옥뿐만 아니라 궐내까지도 온돌 보급을 촉진하였다. 은돌이 보급된 17세기부터 왕실과 권세가들은 연료 확보를 위해 산림 점유를 강화했고, 그 부작용으로 산림 황폐도 점차 확산하였다.  - P307

수목 인식은 수목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이 성과를 산지에 적용하여 산림을 육성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사대부의 빈약한 수목 인식은 산림 자원 육성에 관한 지식의 부족을 의미한다. 조선의 지배층이 산림 전문 관료는 물론이고, 산림에 관심을 가진 유학자나 실학자를 양성하거나 보유하지 못했던 것은 저급한 산림인식 수준의 당연한 결과였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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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전영우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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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 황폐화는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거주 인구가 많은 도성 주변에서 시작되었다. 1611년의 실록은 벌목으로 인해 도성 안팎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한 책임을 한성부 당상에게 묻고 있다. 나라에서 금령을 엄히 다스려도 "도성 사방에 있는 산들이 볼품없이 벌거숭이가 되어 이미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는 1621년 기사는 산림 파괴의 심각성을 증언한다. 18세기에 이르러 헐벗은 한양의 사산(四山)에서 유출된 토사가 청계천의 하천 바닥을 높여 도성에 물난리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청계천 준설(1760)로 이어져 도성 주변이 모두 헐벗었음을 전한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41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헐벗은 민둥산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산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붉은 흙으로 덮인 민둥산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 수탈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참화로 여겨지지만, 전영우의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는 이러한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이미 조선 후기부터 산림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결국 조선의 산림 황폐는 산림 정책 부재, 조림/양묘 기술 미비, 민간 참여 배제, 권력층의 부패, 목재 및 땔감 생산 체계 부재와 온돌의 전국적 보급이 결합한 결과였다. 산림 황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이 모든 원인은 산림 자원의 가치와 중요성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조선 사회와 그 당시 지배층의 잘못된 산림 인식 탓이었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11

저자는 본문에서 산림(山林)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지배층의 인식이 효과적인 정책 수립과 실행을 방해했고, 이러한 한계 속에서 효과적인 임업자원을 유지 관리하기위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또한, 과도한 중앙집권적 관리 체제 안에서 임업정책은 민간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산림이 일종의 '공공재'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의 산림 파괴는 '공유지의 비극'이 되고 만다.

송금(松禁)의 실패 원인을 제시한 정약전과 김대길과 노성룡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것은 산림 자원의 고유특성인 지속 가능성을 간과한 사실이다. 산림이 보유한 지속 가능성이 훼손되거나 파괴될 때 산림은 사회 안정을 무너트리고, 종국에는 한 국가의 존립 기반이나 문명까지도 붕괴시킬 수 있음을 무시했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335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참상이 황폐한 산림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황폐한 산림이 조선을 쇠약하게 만들어 일제 강점기로 이끌었는가. 단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하나의 정책 안에 담겨있는 시대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을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는 잘 보여준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가 그 나무의 나이를 말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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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마찬가지로 인도양에서도 그러한 연안 항해는 전쟁 중인 지배자들과 국제 외교의 그늘에 가려 역사적 각광을 받지 않은 채 번성했다. 근해 운항은 수천은 아닐지라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채 오로지 예측 가능한 바람의 리듬으로만 이어진 여러 민족과 국가들 간의 연결을 촉진했다. 긴밀하게 상호 연관된 몬순 세계는 그렇게 생겨나 동아프리카 해안과 홍해에서부터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멀리 동남아시아와 중국까지 뻗어 갔다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이집트 돛단배는 대략 기원전 3200년 것으로 추정되는 항아리에 등장한다.6 상이집트 아비도스에서 발굴된 장례용 배는 총길이가 대략 25미터로 길고 좁았으며 대략 30명이 저었다. 초창기 선박의 또 다른 인상적인 사례는 카이로 인근 기자의 피라미드 곁에 나란히 놓여 있다. 목재 수요가 엄청났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삼나무 통나무를 레바논 해안에서 나일 강으로 대량으로 실어 날랐다

"석조 도시"는 단순한 건축학적 유행 이상이었다. 석조 도시의 출현은 번영하는 도시 상인 계층의 성장과 일치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부를 지배했고 따라서 정치권력에 접근해 갔다. 석조 도시 건축은 가장 오래되고 명망 있는 도시 가문인 와웅그와나를 정점으로 스와힐리 사회 내에 서로 다른 집단들이 존재한 현실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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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오히려 87년체제 이전으로 퇴행하는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이 정부를 어떻게 퇴진시킬 것인가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석열정부의 집권 자체가 촛불혁명이 야기한 ‘변칙적 사건’이라면 이 ‘변칙’을 바로잡는 것도 촛불혁명일 수밖에 없다 싶어요. 대전환의 중장기적인 과제는 무엇보다 막바지로 갈수록 포악해지는 자본주의체제에 적응하면서 극복하는 일입니다

저는 대전환의 뒷면은 대환란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전쟁 위협과 전쟁·분쟁은 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생태 위기 같은 더 큰 위기들에 맞닥뜨려 있잖아요. 정치가 엉망인데 기후위기까지 가중되면 사람들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고, 이주와 난민이 대거 발생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수단이나 예멘 등 아프리카와 중동 사람들의 유럽행 난민은 물론이고 라틴아메리카에도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죠. 저는 우리 사회로 들어오는 이주민도 늘어날 거라고 봐요. 이미 많은 이들이 노동자로 오고 있고, 출생률 저하를 고려하면 이주민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고요. 그래서 돌봄·생태·젠더 등 기존의 여러 의제와 더불어 이주와 난민 문제도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장애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복지’(social welfare)라는 단어가 한번도 안 들어가더라고요. 반면 우리는 장애인 관련 정책을 펼친다고 하면 아직도 ‘약자’ 운운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의에서 출발한다 해도 장애인을 약자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에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는 무의식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장애인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미(未)장애인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는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도 예기치 않은 사고나 질병, 노화 등으로 장애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기보다는 장애인과 미장애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주장에서 나온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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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따 3 - 2장 회당: 세상을 건 노름 : 명예와 혼을 팔아 천하를 얻은 자, 형제와 아내와 자신을 팔아 명예를 잃은 자 마하바라따 3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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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을 아무리 어려도 어느 누구도 빼지 않고 다 생각해봤소. 그러나 덕에서 여러 나이 든 사람들을 끄르슈나가 능가했던 것이오. 그래서 끄르슈나가 가장 공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오. 그는 브라만의 무르익은 지식과 끄샤뜨리야의 뛰어난 용맹을 겸비했소. 이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은 끄르슈나뿐이었소... 보시, 재치, 학식, 용기, 겸양, 명예, 명료한 생각, 겸손함, 영예로움, 당당함, 자족함, 위풍당당함, 한결같은 마음, 그는 이 모든 자질을 갖춘 스승이며 어버이며 어른이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3>, p149

브라만의 지식과 끄샤뜨리야의 용맹을 모두 갖춘 끄르슈나. 세상의 기원이자 끝인 끄르슈나에 대한 찬미가 <마하바라따 3 : 회당>에 나온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골육상쟁의 비극에 괴로워하는 아르주나에게 격려를 하는 비슈누의 화신 끄르슈나. 그는 모든 것을 생성하는 창조신이자 절대신이다.

끄르슈나는 세상의 근원이며 끝이오. 세상 만물이 끄르슈나로 인해 생겨난 것이오. 그는 드러나지 않은 근원이며, 창조주이며 영원한 분이오. 그는 만 생명 너머에 존재하는 가장 큰 어른이시오. 명료한 생각, 마음,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즉, 바람, 빛, 물, 땅 그리고 공간이 그분 안에서 생성되고 존재하며 네 가지 생명도 모두 끄루슈나에게서 삶을 찾는다오. 해와 달과 별과 행성들, 사방과 팔방도 모두 끄르슈나 속에 있지요. _ 위야사, <마하바라따 3>, p150

끄르슈나를 찬미하는 이들도, 그에 적대하는 이들도 모두 끄르슈나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찰나의 모습으로만 인식한다. 브라만의 지식을 통해 끄르슈나가 만들어낸 세상을 차츰 알아갈 수도, 끄샤뜨리야의 용맹을 통해 그의 덕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공간 상에서 다르마(dharma)를 깨닫고 여기에 맞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넘어설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속절없이 깨지고, 이러한 깨어짐을 통해 운명(運命)을 절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서는 그런 영광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나를 도와줄 동지도 찾지 못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입니다. 꾼띠의 아들에게 굴러 온 막대한 재물을 보니 운명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이 아무 쓸모도 없는 것 같습니다. 수발라의 아들이여, 옛날에 나는 그를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연꽃이 물속에서 자라나듯 그의 세력은 점점 더 커져가기만 합니다. 이 때문에 운명이 인간의 힘을 압도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3>, p180

아르주나여, 사람에게는 자손과 행위와 배움, 이 세 가지 별이 있다고 데왈라 성인께서 말씀하셨다. 이것들로 인해 인간이 태어나기 때문이지. 생명을 떠난 텅 빈 몸뚱이는 불결하여 친지들도 이를 외면하지만 이 셋은 몸뚱이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3>,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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