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자는 소진과 장의에게 유세를 전문으로 가르친 종횡가지만, 도가사상(道家思想)이 성행하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면 신선방술지사로 인식되기도 했고,
8)
민간 전설에서는 군사 전문가인 손빈(孫?)과 방연(龐涓)까지도 귀곡자의 제자라는 이야기가 있어 병가(兵家)와도 관계되어 있으며, 심지어 점치는 사람들까지도 귀곡자를 끌어다 대고 있다.
9)

성인은 세상에서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도(道)가 동일했다. 그렇지만 사물은 변화가 무궁해 각기 귀의하는 바가 있다. 어떤 것은 음(陰)이고 어떤 것은 양(陽)이며, 어떤 것은 부드럽고 어떤 것은 굳세며, 어떤 것은 열려 있고 어떤 것은 닫혔으며, 어떤 것은 느슨하고 어떤 것은 팽팽하다.

음양이 서로 추구함은 패합의 길을 통해서다. 이것이 천지간 음양의 도이며 사람들에게 유세하는 방법이다. 이것이야말로 만사를 처리하는 선결 조건으로, 이것을 ‘각종 수단 변화의 길’
48)
이라 한다.

언어의 상징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을 상징해 나타내는 것이며, 사물의 비교라는 것은 사물을 표현하는 언사(言辭)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형상이 없는 도리
52)
로써 소리가 있는 언사를 탐구하는 것이다. 상대의 감춰진 생각을 유도해 내는 말이 사리에 부합하면 그 사람의 실제 정황을 얻어낼 수 있으니, 이는 마치
53)
그물망을 쳐놓고서 짐승을 잡을 때 짐승이 모이는 곳에 그물을 많이 설치해 두고 기회를 엿보는 것과도 같다.

대상이 크든 작든 간에 또한 책략을 올리든지 물리든지 간에 그 운용의 원칙은 매한가지다. 반드시 먼저 도모하고 고려해 계책이 정해지면 그 이후에 비겸술
110)
을 써서 이를 시행한다.

지혜로운 자와 이야기할 때에는 박식함을 드러내야 하며, 우둔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분별하기 쉽게 해야 하며, 말 잘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간단히 핵심을 찔러야 하며, 존귀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기세에 의지해야 하며, 부유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고아함을 드러내야 하며, 빈궁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이익에 근거해야 하며, 지위가 낮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겸손에 의지해야 하며, 용감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과감한 결단을 드러내야 하며, 과실이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예리함에 기대야 한다. 이상의 것들이 이야기하는 기술인데 사람들은 항상 이러한 규율을 위반한다.

군주가 물어야 할 범위는 첫째 하늘, 둘째 땅, 셋째 사람이다.

도는 만물을 창조하고 하늘을 낳았으며, 무형의 화육(化育)의 기를 포용하고, 천지 이전에 형성되었는데, 누구도 그 형체를 보지 못하고 누구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신령한 것이라 한다.
186)
그러므로 도는 신명(神明)의 근원이며, 하나[一]는 도의 변화의 실마리니, 이러한 까닭에 덕으로 오기(五氣)를 기르고 마음속에 하나[一]를 지킬 수 있어야 비로소 도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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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화합에 대해서 집착이 없다. 이와 같이 물건의 진상을 파악해서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집착하려는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이다. 따라서 이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지혜의 눈으로물건을 관찰하면, 모든 것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됨이 없고, 즐거움이라 괴로움이라 단정할 수도 없으며 ‘나‘도 아니요 ‘나‘가 없는 것도아니며, 공이라고도 공이 아니라고도 단정할 수도 없어서, 이것이라고 확정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 이것이 실로 물건을 바르게 보는 견해이다. - P914

"색에 대해서 이것은 영원한 것, 이것은 영원하지 못한 것이라고 차별하는 망령된 분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망령된 분별을 떠나면 그대로가 반야바라밀의 큰 지혜이다." - P920

 선남자여, 모든 법은 끝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도 끝이 없고, 모든 법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므로 반야바라밀도 또한 그러하다. 허공과 대해가 끝이 없는 것과 같이, 또 수미산의 장엄이 극진한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으며, 끝이 없는 큰 장엄을 가지고 있다. 허공은 때로는 뜻하지 않은 천재를 일으키지마는 허공에 아무런 선악의 사려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닌 것같이, 반야바라밀도 또한 아무 분별이 없는 것이다.  - P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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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 상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
페르낭 브로델 지음, 남종국.윤은주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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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에서는 장기 지속의 역사를 넘어 좀더 개별화된 리듬의 역사, 즉 집단의 역사, 집단적 운명의 역사, 전체적 움직임의 역사를 파악할 생각이다. 이것은 사회사이다. 사회사에서는 인간이 사물을 이용해서 만들었던 것들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에서는 사회구조, 따라서 느리게 변해가는 구조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또한 구조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둔다. 그리고 그것은 전문용어로 구조(structure)와 콩종튀르(conjoncture)라고 부르는 것, 즉 움직임이 없는 것과 움직이는 것, 느리게 움직이는 것과 빨리 움직이는 것이 서로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11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2>를 통해 우리는 에스파냐 제국이라는 구조 안에서의 콩종튀르를 통해 제국이 직면한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 1588년 무적함대(Armada Invencible)의 패전 이후에도 상당기간 유지되었던 에스파냐의 패권. 브로델은 무적함대의 소멸이 직접적인 에스파냐 제국의 몰락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에스파냐 제국은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고 변화하는 콩종튀르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몰락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한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문제. 이는 거대한 제국이 갖는 공간(空間)이었다. 

 

 에스파냐 거대 제국은 당시로서는 유례없이 거대한 해상과 육상 수송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제국에서는 끊임없는 군대의 이동 외에도 수많은 명령과 소식들이 날마다 전달되어야 했다. 펠리페 2세의 정책은 이러한 연결망, 군대의 이동과 귀금속의 수송, 환어음의 원활한 유통을 필요로 했다. 이것이 바로 펠리페 2세의 제국 경영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며, 또한 프랑스가 에스파냐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준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35


 북유럽 저지대와 이베리아 반도, 남부 이탈리아와 신대륙에 걸친 거대 제국을 하나로 연결시키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힘들었기에 정치면에서는 적절한 행정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경제면에서는 상품과 이에 대응하는 화폐의 교환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고, 유통속도(Velocity) 또한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상품 순환의 지체는 이 세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상품, 화폐, 환어음이 사방으로 움직이고, 서로 스치고 마주치고, 서로를 기다려야 했다. 모든 상거래 중심지는 상품, 화폐, 환어음이 만들어내는 다각적이고 변화무쌍한 콩종튀르를 끊임없이 경험했다. 그러나 느리게 순환하는 상품, 화폐, 환어음은 오랫동안 길 위에 머물러 있었다. 16세기에 개인 은행들에게 닥친 비극이 고객의 돈을 너무 느리게 순환하는 상품 거래에 부주의하게 투자하는 바람에 시작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기나 공황 사태가 발생하면, 며칠 안에 대금 지불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했다. 거리라는 치명적인 지체 요인에 발목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42


 화폐 순환은 인간 삶의 일부 영역만을 관통한다. 중력의 영향으로 강물의 활발한 흐름이 낮은 지대를 향하는 것과는 달리, 화폐의 순환은 경제생활의 높은 단계로 간다. 순환은 끊임없는 불평등을 낳는다. 역동적인 지역 - 도시 - 과 농촌처럼 화폐가 없는 지역 사이에, 근대적인 지역과 전통적인 지역 사이에, 개발 지역과 저개발 지역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했다. 경제 활동 분야들 사이에도 불평등이 존재했다. 왜냐하면 수송, 산업, 무엇보다도 상업과 징세가 화폐 흐름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135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금과 은은 에스파냐 본국에서 빠르게 제국의 내외부로 흘러나갔다. 산업의 중심지였던 북유럽 저지대 국가들로의 유출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로의 금, 은 유출은 불가피했다. 신대륙으로부터의 막대한 금과 은이 도착했지만, 제국의 모세혈관까지 혈액을 공급하기 위한 출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대륙에서의 막대한 수입 이상의 지출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1580년 이후 에스파냐만큼 아니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진정한 은화 분배 중심지가 이탈리아의 중요 상업도시들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핵심을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넘쳐나는 에스파냐 은화의 일부를 레반트 지역으로 유출키시는 역할을 통해서 큰 이익을 얻었다. 그것은 수월하게 이익을 남기는 일이었다. 또한 이탈리아는 은화와 환어음뿐만 아니라 금화까지도 네덜란드 구석구석에 공급하면서 이익을 얻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185


 북유럽이 필요로 하는 금과 환어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은화가 북유럽으로 유출됨으로써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금화는 인기가 높았고, 부피가 작으므로 쉽게 송금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금화와 은화는 계속해서 교환되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병사들의 급여 일부를 은화로 지불하거나 가능하면 직물로 지급함으로써 이러한 어려운 업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음을 분명하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195


 그 결과 제국은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과중한 세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과중한 세금 징수는 제국 내 민심의 이반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제국이 세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1588년 무적함대의 몰락이 가져온 대서양 패권의 소멸때문이었다. 대서양 항해의 안전성이 위협받으면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기존 레반트 지역의 무역이 재활성화되었고, 에스파냐 제국은 이로부터 지중해 패권 또한 위협받게 되었다.


 부당하게 배분된 이 엄청난 세금은 당시의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통해서 징수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세금 중 일부만이 왕실 금고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카스티야는 확실히 제국에 가장 좋은 납세자였다... 간혹 있었던 확실하지 않았던 잉여는 제국의 전체적인 재정 적자 속에 소멸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잉여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펠리페 2세의 통치를 받는 나머지 유럽 지역에서처럼 카스티야에서도 적자는 관행이 되었다. 따라서 모든 국가의 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236


 에스파냐의 실패 이유는 무적함대가 패한 이후 대서양에서의 항해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에스파냐의 패배는 동맹세력의 파산인 동시에 대서양 여러 지역에서의  후추 무역의 쇠퇴를 의미했다. 판매 가격의 상승으로 컨소시엄 소유의 후추는 베네치아 시장에서 레반트로부터 들어온 후추보다 더 비싸졌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274


 브로델은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에서 광대한 공간(space)이라는 구조를 갖추었으나, 변화하는 콩종튀르에 대응하는 충분한 속도(speed)를 갖추지 못한 에스파냐 제국의 사회사를 보여준다. 느린 속도는 제국을 동맥경화 상태로 만들어 정보, 행정, 교역면에서 효율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비록 치명상은 입지 않았으나, 군사적으로 제국은 한풀 꺾인 상태였고 그 결과 높아진 대서양 항해 위협은 경쟁자인 베네치아, 오스만 투르크에게 몰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미 펠리페 2세이 아버지 카를 5세의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부터 내재했으나, 강대한 제국의 위용 아래 숨겨졌던 약점들이 하나 둘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은 내외부적으로 어떤 도전을 받았는가. 이는 2-2권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제 제국에는 과거의 장식들만이 남아 있었다. 카를 5세의 웅대한 정책은 펠리페 2세 치세 초기, 1559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이미 1557년의 재정 파탄으로 갑자기 유죄선고를 받고 청산되어야 했다. 모든 것을 재구성하고 재출범시켜야 했다. 펠리페 2세의 통치 초기에 이루어진 강력한 평화정책은 제국의 약화를 보여주는 신호였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p409


인구 증가 없이 그 모든 영광의 역사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인구혁명은 가격"혁명"보다 더 중요했으며, 어떻게 이 사건이 아메리카의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기 전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인구 증가야말로 인간이 능력 있는 일꾼이었다가 점차 큰 부담으로 바뀌는 16세기의 승리와 재앙을 만들었다. 1600년경 인구 부담이 경제발전을 중단시키고, 범죄 같은 그동안 숨어 있었던 사회적 위기 현상을 조장했다. 이로 인해서 17세기에는 모든 혹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후퇴가 일어나고 곧 씁쓸한 내일을 맞게 될 것이다. - P72

문제는 16세기의 팽창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나타난 후퇴 국면을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는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상업 자본주의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난 뒤에 산업 자본주의가 그 뒤를 잇게 되었고, 산업 자본주의는 16세기 "귀금속 화폐"의 2차 등귀가 시작되면서부터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다. 결국 산업이 경제 후퇴를 만회했다는 뜻이다. - P105

가장 많은 양의 은을 유출시킨 원인은 에스파냐 국왕 자신과 전반적인 정책 기조였다. 푸거 가문이 그들의 슈바츠 광산에서 채굴한 은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사용하여 수익을 올린 것과는 달리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은을 국내 투자에 사용하여 다양한 투자 이익을 창출하는 대신에 국외로 유출시키게 되었다. 해외 유출량은 카를 5세 시절에 이미 상당했고, 펠리페 2세 시대에는 방대한 양이 되었다 - P165

국가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덜 겪었다. 국가 재정은 세 가지 부문, 즉 재정 수입, 지출, 부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 번째이자 결코 덜 중요하지 않았던 부채는 가격 상승의 여파로 자동적으로 완화되었다. 그러나 지출과 수입은 동일한 리듬으로 증가했다. 모든 국가는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가격 상승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확실히 국가는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지출을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16세기에 서서히 확대된 엄청난 수입을 확보하고 있었다. - P233

에스파냐 경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대략 1580~1590년대에 큰 전환기를 맞았는데, 첫 번째로 농업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펠리페 2세가 1580년에 합병할 당시 포르투갈은 안에서부터 썩은 나라였고,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나 영양 결핍과 질병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16세기 말 유럽 전체의 후퇴에 앞서서 에스파냐를 강타한 전염병은 이를 잘 설명한다. 이러한 위기는 근본적인 균형을 뒤흔들었다. - P312

북유럽이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제조업 제품을 체계적으로 모방했고, 이렇게 생산된 저렴한 제품을 통해서 조금씩 이탈리아의 제조업 제품을 시장에서 몰아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유럽의 값싼 노동력 덕분이었다. 또한 대량으로 생산된 저질의 "새로운 모직물"은 가짜 상표를 붙이고 가짜 봉인을 해서 레반트 시장에서 베네치아 모직물인 것처럼 판매되었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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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능 출제기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는 딜레마다. 대통령은 과목융합형 문제를 콕 집어 비판했는데, 교육과정상 고교 교육 성취도를 온전히 평가하려면 교과 융합적 사고력을 물을 수밖에 없다. 출제자는 교육과 평가의 불일치를 감수하거나 대통령 뜻을 어겨야 한다. - P15

다양성은 공정한 입시나 사교육비 경감보다 더 무거운 의제이며, 그 기원은30여년전 5·31 교육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력고사 체제로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데 사회 전반이 합의했다. 그때 정치와 관료, 학자들이 구상한 대안을 역행한 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다.  - P15

킬러 문항은 비교육적이고 나쁜 문제다. 없애는 건 옳은 방향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면 쉬운 수능이 된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교육과정 안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출제해도 충분히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킬러 문항 제거 못지않게 교육 현장의 안정성 또한 중요하다. 수험생은 고등학교 3년간 학습 계획과 입시 전략을세운다. 시험 5개월을 앞두고 이런 지침이 나오면 ‘수능을 위해 준비해온 시간 전부가 흔들린다‘고 여길 수도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혼란을 부르고 수험생들을불안한 상태로 몰아간 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 P16

그는 런던의정서 준수그룹 부의장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런던의정서 제2조 ‘모든 오염원으로부터 해양 환경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것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런던협약·런던의정서 당사국총회 등에서 제기했고,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가져올 환경에 대한영향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전주의‘ 접근에 따라 오염수의 해양 방류 전에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P20

임대인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도 타인의 돈(보증금을 갚지못한다면 자신이 가진 재산, 즉 주택을 처분해 타인의 돈을 상환해야 한다. 지난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이는 상식일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규정상의무였다. 규제지역 내 주택을 담보로 대출할 경우 2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나머지 주택 한 개를 의무적으로 처분해야 했으며, 3주택 이상을 가진 경우엔 대출이아예 금지됐다. ‘주택을 담보로 대출하지말고, 가지고 있는 주택을 처분해 문제를해결하라‘는 메시지다. 그러나 올해 3월이와 같은 규제가 일괄적으로 폐지됐다. 집이 몇 채가 있든,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대출을 통해 전세금을 반환하는일종의 ‘돌려막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 P29

임재만 교수가 보기에 임대인이 주택을 처분하지 않는 이유는 집값이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비쌀 때 빨리 주택을처분하는 것이 이득이다. 반대로 주택을 팔지 않는 데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버티다 보면 언젠가 집값이 오를 것이고 그때 차익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깔려 있다는 것이 임 교수의 분석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부의 DSR 규제 완화는부동산 불패 신화를 강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 P30

면다만 어려움이 있다. 5일장 상인 등가 이동상인 대부분이 법 제도의 바깥에 존재한다. 5일장이 아무리 유구한 세월이어져왔어도 그곳에 개발계획이라도 한번잡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 만큼위태로운 토대 위에 서 있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대부분의 5일장과 이동 상인들은도로교통법, 식품위생법, 소득세법 등을위반한 불법 공간 속 범법자가 되어버린다. 푸드트럭이나 아파트 단지 알뜰장터도 여전히 ‘비공식 영업‘ 상태로 운영되는곳이 많다. 그런 공백 가운데 일부 선을넘은 상술 사례가 눈에 띄면 이동 상인전체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 P40

어떤 내용이길래 가장 앞선 형태의규제라고 하는 걸까. 핵심은 이 법안이 AI시스템을 그 위험(risk) 정도에 근거해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대응책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 P45

인건비나 효율성을 근거로 AI 시스템을 채택하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이 늘고있다. 1980년대 영화 속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유럽연합의 AI 법처럼 촘촘한 규제를 만들어 선제대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약한 고리를 의도적으로 찔러봄으로써 보완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 P46

그의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빼놓을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반대파들도 인정한다. 유산이라는 게 온전치는 않고정의당도 상황 자체는 좀 어려운데들여다보면 NL과 PD 계열이 같이 있다. 여기에 자유주의 계열의 ‘참여‘도 있고최근에는 페미니즘도 보인다. 다양한 입장들이 있으니 진보적 다원주의를인정하고 사민주의로 가자는 게 노의원의 생각이었다. ‘멜팅(용광로)‘처럼섞여 있지만 당이 리더십을 발휘해화학적 결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노 의원이 고민을 많이 했다. 노회찬이라는 남다르게 훌륭한정치인도 못해낸 걸 보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 P53

평전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이길 바라나?
내 바람과 무관하게 각각의 몫이 있을 것이다. 진보 정치인, 세상을바꾸는 혁명가로 인정해줄 측면도있지만 그보다 삶과 연관해 생각해볼 수있을 것 같다. 마지막 선택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기가 쉽지는 않은데, 본인의 기준에 따르면 행복한 삶을 살다 떠난 사람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직업으로 삼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사는조건 중 하나다.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 때문에 그렇게 됐으나 그의 삶전부가 재해석될 필요는 전혀 없다. - P53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재규어, 바질, 거미도 원래는인간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다른 몸에 스며들어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 우리 집에 있는 바질은 인간의 영혼과 식물의 몸을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바질도 기억과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건 식물의 몸에 맞게 변형되어나타난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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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과 청동기 명문의 마지막 부분은 살아 있는 자의 기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언어적인 유사성이 발생한다. 우리가 살펴본 이런 취지의 글은 혼령들이 후손에게 전하는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이 주목할 만한 언어상의 일치에서 우리는 청동기의 명문과 <시경>의 초기 시가에서 의례적인 언어가 포함되어 있고, 일상생활에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 P72

관중, 손자, 공자, 묵자, 장자, 맹자, 숫자 등의 사상가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후대의 어떤 사상도 이들처럼 심오한 사상을 지닌 다양한 경향을 낳지 못하였다. 거의 모든 그럴듯한 주장들은 옹호자를 찾아냈으며, 그들은 모두 논리정연하였다. 묵자가 논리를 활용한 반면, <도덕경>의 다수 저자들의 목소리는 신비로운 시로읊어졌다. 이들 사상가들의 주장은 국가에 대한 봉사, 인간의 본성, 혼령의 존재, 음악의 장점 등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던 이상적인 성왕(聖王)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다.  - P122

장안에 거주하건 투루판에 거주하건 제국의 주민들은 외구그이 영향에 대단히 개방적이던 중국적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에서 수입된 종교를 진지하고 열렬히 신봉하였다. 수와 당의 황제들은 불교를 후원하였고, 측천무후처럼 불교를 이용하여 통치를 정당화하였다... 당제국의 시민들은 외국인과 교역하였으며, 또한 외국인과결혼하고 그들의 관습을 받아들였다. 당대 사람들은 외국의 예술, 음악, 유행으로 가득 찬 문화적 융합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율령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에서 살았다.  - P265

왕조의 수명은 짧았지만, 여진은 중국사에 중대한 돌파구를 제공하였다. 여진의 통치하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중국인 학자들은 비한족 통치자에게서 관직을 받았으며, 자신들이 중국 문화의 대의(大義)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였다. 한족 군사의 숫자가 금나라 군대에서 여진족을 능가하였고, 남송의 장군은 1206년 화북의 한족들이금나라에 대해 봉기하지 않았을 때 몹시 실망하였다. 한족 출신의 문신관료들은 여진에게 중국식 통치방식과 중국을 모델로 한 관료제의 구상을 도와줌으로써 협력하였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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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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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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