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자
귀곡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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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사에 관한 계책을 낼 때는 응당 양권 量權을 통해 해당 국가의 국력을 세심히 살피고, 군주에게 유세할 때는 응당 췌정 揣情을 통해 군주의 속마음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모든 계책과 판단을 바로 '양권췌정'에서 나온다... 기본 술수는 모두 같다. 선왕의 도와 성인의 계책을 갖고 있을지라도 '양권췌정'이 없으면 은밀히 감춰진 의도를 찾아낼 길이 없다. 이것이 계책의 근본이고 유세의 법칙이다.  _ 귀곡자, <귀곡자 鬼谷子> <췌정 揣情> 7-4 , p254


 귀곡자(鬼谷子, BCE 4C ? ~ ?)의 <귀곡자 鬼谷子>는 종횡가(縱橫家)의 사상이 담긴 책이다. 종횡가들은 전국시대 당시 군주들을 찾아다니며 유세(遊說)를 했고, 군주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펼치는 일단의 사상가들로 소진(蘇秦)의 합종설(合縱說)과 장의(張儀)의 연횡설(連衡說)은 그 중 성공적인 종횡가와 유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움직이는 술수에 대한 내용이 담긴 <귀곡자>.  술수의 핵심은 바로 '양권궤정 量權揣情'에 있다. 


 대상에 따라 9가지 유세방안이 있다. 첫째, 지혜로운 자와 말할 때는 박식 博識에 기댄다. 둘째, 박식한 자와 말할 때는 사물의 이치에 밝은 변석 辯析에 기댄다. 셋째, 변석에 밝은 자와 말할 때는 간명하고 핵심적인 간요 簡要에 기댄다. 넷째, 신분이 높은 자와 말할 때는 권세 權勢에 기댄다. 다섯째, 돈이 많은 자와 말할 때는 고상 高尙에 기댄다. 여섯째, 가난한 자와 말할 때는 이득 利得에 기댄다. 일곱째, 신분이 낮은 자와 말할 때는 겸허 謙虛에 기댄다. 여덟째, 용맹한 자와 말할 때는 과감 果敢에 기댄다. 아홉째, 어리석은 자와 말할 때는 예리한 지적인 예봉 銳鋒에 기댄다. 이것이 유세술이다. 사람들은 통상 이와 정반대로 유세한다. _ 귀곡자, <귀곡자 鬼谷子> <양권 量權> 9-5 , p326


 흔히 <귀곡자>의 많은 내용이 유세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기에 책을 설득하는 방법의 자기계발서 정도로 생각하거나, 종횡가들을 단순한 궤변가 정도로 인식하기 쉽지만 <귀곡자>의  본문 처음과 끝의 내용은 이러한 우리의 편견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다.


 성인 聖人은 사람을 관찰할 때 상대의 장단점과 허실을 살펴 판단하고, 상대의 기호와 욕망에 근거해 그 의지와 의도를 읽는다. 또 상대의 말과 반대되는 측면에서 그 허점을 찾아낸 뒤 짐짓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기초해 반문하는 방법으로 실정을 파악함으로써 상대의 속셈을 읽는다. _ 귀곡자, <귀곡자 鬼谷子> <벽합 捭闔> 1-3 , p16


 <귀곡자>의 시작 <벽합>은 유세를 하는 주체가 성인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성인 또는 도(道)와 하나되어 천지합일(天地合一)의 진인(眞人)이 그 도를 만물의 변화에 맞게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유세다. 개인적으로 이들 문장을 통해 <논어 論語>의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나 <중용 中庸>의 지성무식(至誠無息)과도 통하며 <도덕경 道德經>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린다. 천지를 마음에 품고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수양한 후 그 길을 세상으로 확장시키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을 종횡가들은 난세(亂世)를 '유세'라는 방법을 사용해 극복하고자 했던 뜻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사상이 아닌 방법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도 또 다른 왜곡임과 함께 궤변가가 아닌 종횡가의 다른 면을 <귀곡자>를 읽으며 바라보게 된다...


 도는 신명 神明의 본원으로 도가 변화하는 단초가 된다. 덕 德이 5기(신기 神氣, 혼기 魂氣, 백기 魄氣, 정기 精氣, 지기 志氣)를 기르고 마음이 대도에 부합해야만 능히 도에 이르는 도술을 얻을 수 있다. 도술은 마음의 기를 머무는 곳에서 이끌어내는 것으로 여기서 신기가 나온다. 인체의 구규 九竅와 십이사 十二舍는 기가 드나드는 문으로 마음이 총괄한다. _ 귀곡자, <귀곡자 鬼谷子> <본경음부칠술 本經陰符七術> 1-1-1 , p434


 이런 위세가 마음속에 내재하는 것을 신화 神化, 몸에 체화된 사람을 '진인 眞人'이라고 한다. 진인은 처지와 함께 대도에 부합하는 까닭에 오직 '하나'인 도를 견지한다. 만물을 생육하고, 천심을 가슴에 품고, 덕혜 德惠를 베풀고, 무위로 사려 思慮를 지도하는 이유다. 진인은 이런 방법을 통해 위세를 떨친다. _ 귀곡자, <귀곡자 鬼谷子> <본경음부칠술 本經陰符七術> 1-1-2 , p436


 심기가 전일하면 욕망이 심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 없고, 그리하면 지기가 뜻하는 이른바 지의 志意가 쇠미해지지 않고, 지의가 쇠미해지지 않으면 사유의 이치인 사리 思理가 창달하게 된다. 사리가 창달하면 심기가 조화롭게 통화는 화통 和通이 이뤄진다. 화통이 이뤄지면 어지러운 기운이 마음을 혼란하게 만드는 일이 없게 된다. 마음속으로 '양지술'을 행하는 자는 사람의 그릇을 단박에 아는 지인술 知人術이 밖으로 드러난다. _ 귀곡자, <귀곡자 鬼谷子> <본경음부칠술 本經陰符七術> 1-2-1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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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창은 이제 더 이상 ‘여론‘을 대표하지 않는다. 시민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으로 떠올랐으나 어느새 ‘여론 조작의 매개‘ 혹은 ‘정화가 필요한 오염된 공간‘이라는 악명으로 더 자주 불리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포털도 점차 규제·축소하는 방향으로 뉴스댓글 공간을 관리해나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대체할 만한 마땅한 온라인 공론장이 마련되어 있느냐이다. - P15

사람들도 모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뉴스 댓글은 "소수의견에 불과 (55.8%)"하고 "조작이 의심되(55.7%)"며 "유용한정보가 별로 없 (65.2%)"고 "감정이 여과없이 표출된다(75.8%)"며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김선호·오세욱, 2018). 그런데도 같은 조사에서 같은 응답자들은 ‘왜 포털 뉴스 댓글을 읽느냐는 질문에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84%)"하고 "댓글을 읽는 것이 재미있(64%)"고 "기사가 다루고 있는 이슈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망설여져서(55.8%)"라고 답했다. 별다른 대체 공론장이 없기 때문이다. - P17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그래도 여전히 뉴스 댓글난은 공론장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다만 트래픽만이 목적이 아닌, 좋은 공론장으로 기능하도록 책임을 질 의지가 있고 각오가 되어 있는 댓글관리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별도인력과 기술을 투입해 댓글난을 엄격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해외 주요 언론들처럼, 우리도 댓글에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 포털은 그 역할을 못한다. 언론사가해야 한다. 이용자에게 뉴스 댓글에 관한 다른 경험을 주기 시작하면 사회 의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공론장으로 충분히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 P19

너무 어리거나 늙어 병들거나 장애가 생겨 취약한 상태에 놓인 시민은 아무리 돈이 없더라도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고가의 스포츠카를 갖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안타면 그만이다. 국가가 그런 사람을 위해 차를 사주지는 않는다. 돌봄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의료나 교육과 비슷하다. 어느 나라나사회서비스를 온전히 시장에 맡겨두지않고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관여하는 이유다. - P21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책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돌봄 노동의 질을 측정하거나 그 효과를 계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일은 신체적 부분만이 아니라 중독요한 감정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돌봄은 극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일대일의 접촉과 개인별 맞춤 지식이 필요하다. 표준화되거나 객관화될 수도 없다." - P22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가장 최소화하려는 것이 재정 투입이라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모순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선언한 것들이 몇 개 있다. 공공부문의 인력을 늘리지 않겠다고 했다. 증세가 아니라 감세를 표방했다. 서비스 질 관리를 하려해도 사람이 필요하고, 종사자 처우 개선을 위해선 관리감독을 전제로 수가를 올려야 한다. 사회서비스 문제를 해결할 선택지들을 정부 스스로 막아버렸다." 남재욱 교수가 말했다. - P26

은퇴한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부양을 받게 될 향후 10년 뒤면 한국 사회돌봄의 위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용 교수는 "돌봄의 위기가 닥쳐오는 상황에서 장기적 비전이 절실한데, 3대 돌봄 서비스를 누가 제공하게 하고 수가를 얼마로 정할지, 어떤 서비스를 어느 계층에게 분배하며 여기에 얼마를 투자할지, 그러니까 국가가 뭘 할지가 안보인다. 전임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로 시장화·산업화하면 해결될 거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면 각자도생하란 얘기밖에 안 된다. 우리가 정부를 조직한것은 다름 아닌 사회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국가의 역할을 생각할 때다"라고말했다. - P28

의사가 무분별하게 늘어나거나 혹은 직업윤리와 전문성을 갖추지못한 의사가 배출된다면 의료 시장의 특성상 공급자인 의사가 잘못된 의료 수요를 과다하게 유발할 위험이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의대 정원을 규율하고, 시험을 통해 의사 면허를발급한다. 사회적 필요에 알맞게 의사 수를 통제하고,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독점적 신분은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사가 비교적 높은 수입과 안정적 지위를 누리는 바탕이 된다. - P37

"순수하게 경제학적 관점에서 따져보면 의사 수를 대폭 늘려서 피부미용처럼현재 큰 소득을 올리고 있는 분야를 ‘레드오션‘으로 만들면 장기적으로 의사 배치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고 여러 부작용이예상되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하자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권정현연구위원)." - P38

그러나 엔화 가치 하락은 그보다 더 근본적 원인 때문에 발생했다. 바로 ‘수익률곡선 통제(YCC:Yield CurveControl)‘라고 불리는 일본의 제로금리정책이다. - P49

인공지능의 학습만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무궁무진한 산출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 산출물에도 저작권을 인정할지, 인정한다 :면 누가 저작권자가 되는지, 나아가 전자인간에 법인격을 부여할지 논의가 분분하다. 사실 저작권은 부차적 논점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 가능성, 투명성, 어떤 책임을 요구할지와 같은 근본적인 토론 주제가 쌓여 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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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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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을 잡고자 하는 자들은 언제나 사회의 약점이나 사람들의 두려움을 날카롭게 간파해 교묘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그것은 민족적인 차이일 수도 있고, 피부 속에 있는 멜라닌 세포 양의 차이일 수도 있고, 사상이나 종교의 차이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약물 사용, 폭력 범죄, 경제 위기, 공립 학교에서 기도 시간 허용 문제, 국기 같은 깃발의 '모독(冒瀆)'이나 '탈신성화(descrating)'일 수도 있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362/408


 칼 세이건(Carl Sagan, 1934 ~ 1996)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악령(惡靈)'은 단적으로 '폐쇄된 사회에서 만들어 낸 검증불가한 사실'을 말한다. 칼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의 두 저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과 <추측과 논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의 결론을 대중들이 알기 쉽게 쓴 책이다. 또한, 이 책의 정신을 담고 세이건 사후 2000년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정리한 매거진을 <스켑틱 SKEPTIC>이라고 생각된다.


 유사 과학은 틀린 과학과 다르다. 과학은 오류를 바탕으로 발전한다.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언제나 틀린 결론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잠정적이다. 가설들이 세워지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반박될 수 있다.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대안적 가설들은 실험과 관찰과 마주친다. 과학은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암중모색을 하고 여기저기를 헤맨다. 물론 과학적 가설이 반박되는 경우에 독특한 감정이 일어 마음이 상하기는 하지만, 반증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이라는 일의 정수(精髓)이다. 유사 과학은 정반대이다. 유사 과학의 가설들은 어떤 실험을 통해서도 반증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26/408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반(反)지성주의, 반 유사 과학, 종교, 외계인과 UFO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 자신이 <콘택트 Contact>라는 소설을 통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언뜻 본문의 내용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검증가능성'임을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신념마저도 비판(批判)대에 서슴없이 올려 놓을 수 있는 태도가 진정한 과학(科學)의 길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회의주의적 사고란, 결국 합리적인 논의를 구성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을 현혹하는 사기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일련의 추론을 통해 나온 결론이 마음에 드는가가 아니라, 그 결론이 전제 내지 출발점에서 제대로 유도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그 전제가 참인가 하는 것이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183/408


 우리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통해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하는 어떠한 형태의 도그마(dogma)도 거부하는 과학자의 모습과 함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저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 보편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의 실천과 같은 문제는 분명 과학적 증명의 대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위치는 바로 이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유사 과학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하지만, 동시에 전작 <코스모스>에서처럼 인간에 대한 세이건의 따뜻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차이는 한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른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형이상학에는 실험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42/408


 나는 남편의 기일에 남편의 무덤을 찾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하는 여자를 보고 비웃거나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한다.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183/408


 그와 함께 과학과 민주주의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그의 말 속에서 과학 또한 자유, 평등과 더불어 태어난 혁명(革命, revolution)의 결과물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칼 포퍼의 책을 통해 한 걸음 깊게 들어가보도록 하자...  


 과학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서로 잘 부합하며, 많은 경우에 구분이 불가능하다. 문명화된 형태로 구현된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바로 기원전 7~6세기의 그리스였다. 과학은 애써 배운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그 힘을 나눠준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41/408

군부, 정계, 정보 기관에는 내부 사정 때문에 비밀 유지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있다. 비밀 유지는 자신들의 무능과 그것보다 나쁜 오류에 대한 비판을 막고, 책임을 모면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밀주의는 국가 기밀을 취급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 계급이나 기득권 집단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런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반 시민 대중과 구분된다.(p87/408)

인간은 충분히 오랜 시간 속다 보면 속임수라는 증거가 나와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가장 슬픈 역사의 교훈 중 하나이다. 진실을 찾는 데 관심을 잃고 속임수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게 된다. 속임수에 낚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너무나 괴로운 탓에 사기꾼에게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고 나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오래된 속임수가 새로운 옷을 입고 계속해서 살아남게 된다.(p200/408)

과학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고약한 미신에서 해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고약한 불공정에서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보통 미신과 불공정은 종교와 세속 권력이 손을 잡고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은 실제로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혁명, 종교에 대한 불신, 그리고 과학의 부흥이 같은 시기에 연달아서 일어나고는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은 과학을 성정하시키기 위한 필요 조건일 뿐 그것만으로는 충분 조건이 아니다.(p279/408)

고통은 민주정이 작동하는 나라보다 독재정이 작동하는 나라에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냐하면 민주정보다 독재정이 행해지는 나라에서는 통치자가 나쁜 일을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하면 쫓겨나는 것, 이것이 정치에서 작동하는 오류 수정 장치이다.(p37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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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하던 1970년대에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 통념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의식하고 그것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자본주의란 것은 역사에서 늘 존재해온 시장경제와는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해방과 개방 그리고 다른 세계로의 접근"을 뜻하는 시장의 세계와 거대한 독점세력이 판치는 근대의 반(反)시장적 자본주의를 구별하고, 후자가 전자 위에 얹혀 동행해온 근대의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착각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맑스(K. Marx, 1818~83)와 월러스틴(I. Wallerstein, 1930~2019)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자본주의를 천착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실천적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각기 자기 시대의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작동원리에 따라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문명의 대전환을 꿈꾸었던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월러스틴은 그것이 역사적 체제이기에 소멸만 확실할 뿐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는 그 과정의 혼돈의 분기점에서 인간의 집단적 실천에 달렸음을 강조한다.

결국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경제나 임노동제 같은 특징들로 환원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체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러스틴은 만물의 궁극적인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사실 외에 자본주의는 구체적 역사를 통해 전개되는 양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인종과 성의 차별주의, 그리고 비자유노동과 결합된 형태가 늘 구조적 조건이 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탄생과 종말이 있는 역사적 체제이기에 다른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데, 생산비용의 장기적 상승으로 오늘날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진단이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체제가 민중과 자본가 계급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에 21세기 중반경에 종언을 고할 것이라 예측한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 이전의 역사적 체제들과 구분되는 두드러진 차이는 그 체제의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은 극소수 집단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분리해온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혹은 7분의 1)를 나머지로부터 분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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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는 조직 안에서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조정하는 기초적이고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구축한다. 제도는 과거로부터 계속 세대를 넘어 전달되면서 뒤이은 제도에 영향을 준다. 제도적 요소들은 사회적 기억과 인식 패턴에 연결되어 있다. 제도는 선호와 선택을 형성한다. 한 사회가 새로운 상황이나 도전에 직면했을 때, 기존의 제도적 요소는 가능한 반응의 범위를 좌우한다. 과거에서 전해져 온 제도는 새로운 상황에서 행위의 고정된 틀을 제공한다.

주요한 목표는 상향 유동성이 아니라 신사층, 군인, 상인 등의 출신 배경을 가진 엘리트들이 정부 내에서 제한적으로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험생 규모가 커지자 자격이 충분하고 잘 교육된 사회적 계급이 창출되어 소설 작가, 극작가, 의례 전문가, 족보학자, 의사, 법률 고문, 교사 등 다른 직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교육받은 지방 엘리트의 창출, 이들과 정부 인원의 사회적 순환은 후기 제국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발전의 열쇠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유교적인 통치 체계가 잘 작동했다는 사실은 중국 제도의 탁월한 생명력을 설명해 준다. 대체로 후기 제국 시기는 놀라운 공공복지, 안보, 안정을 보여주며, 특히 귀족들과 종교 세력이 수많은 전쟁을 벌였던 ‘암흑’의 중세나 초기 근대의 유럽과 비교할 때 그러했다. 그러나 후기 제국 통치자들의 자료와 자기 기술은 더 복잡한 현실을 다 반영하지 못하는 조화, 평화, 품위로 편향되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의례와 자비를 강조했는데도 폭력은 제국 통치의 관행에서 항상적 요인이었다. 폭력은 국가의 행정기구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의 사회와 경제에도 여러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청조의 핵심에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경을 넘는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지방 통치를 위한 공간을 남기고, 사회에 가볍게 침투하는 제국 관료제를 유지하게 하는 일련의 효율적 제도가 있었다. 과거제는 상속받은 권리보다 성취한 자격을 바탕으로 엘리트들이 통치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청의 전성기는 평화와 사회적 질서, 물질적 화려함, 문화적 세련됨, 기술적 진보는 물론 영토 확장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청 제국은 만주, 몽골, 중국령 투르키스탄, 티베트, 중국 그리고 (뒤에 논의할) 조공 체제로 알려진 조정 방문 시스템 속에서 청의 우위를 승인하는 국가들에 대한 정치적 통제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청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군사작전을 계속해 영토 확장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18세기 중반까지 청은 러시아 제국과 잠재적으로는 대영 제국까지 포함하여 확장하는 유라시아 제국들에 견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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