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위기의 원인이 외부와 내부 모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부분적으로는 내부적으로 일어난 문제들, 특히 간언의 실천을 포함한 올바른 정치적 규범과 고대의 이상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탓했다.

국가 세입의 상당한 증가가 꼭 중앙정부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지는 않았다. 상업세와 이금은 1860년대 이후 본질적으로 지방 재정이 되었고, 이는 정치적 탈중앙화와 함께 이루어진 지속적인 재정적 탈중앙화 과정의 일부였다.

청 부흥의 가장 큰 제약은 국방 공업, 철도 건설 같은 다른 현대화 계획을 위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는 능력의 부재였다. 민간 영역은 투자하기를 주저했고, 정부는 세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중국의 정부 세입 부족은 청 정부가 폭넓은 공업화의 달성과 경제 현대화를 진전하는 데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중국 경제의 측면에서 1895년 이후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활동의 폭발과 극적 성장 국면의 시기였다. 일본에 그리고 최혜국 조항으로 다른 모든 외국인에게도 공장을 설립할 권리를 인정했던 1895년 조약의 조항들이 뚜렷한 영향을 미쳐 공업과 광업 사업에 대한 해외투자의 빠른 팽창으로 이어졌고, 마찬가지로 중요한 결과로 그들과 경쟁하는 중국 민간 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패배한 전쟁들은 두 가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중국에 위험이 닥쳤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요구와 제안이 더 긴급하고 급진적이 되었다. 중국에 민족주의가 나타나서 강력한 정치적 요소가 된 것이 이 시기였다. 둘째, 전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심각한 좌절로 통치 엘리트들은 자강운동이 실패했으며 중국은 그 운동을 재설정하고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청의 경제·사회·재정 정책의 핵심 문제는 정치적 중심이 권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을 주저하는 것이었다. 인구 증가, 1인당 세입의 정체와 감소, 세계적 경쟁이라는 상황에서 중국은 제도적 고갈로 무력해졌다. 제도 변화와 혁신의 부재는 새로운 행정적 계획을 실행하거나 전국적 비상 상황을 다루고자 자원을 동원하는 정치 중심의 능력을 제약했다.

근본적으로, 중국은 국가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작고, 너무 저비용으로, 너무 약한 채 있었기 때문에 잘못 통치되었다. 중국의 재정적·행정적 쇠퇴는 도광 불황 때 시작되어 19세기 내내 악화되었다. 18세기 중반의 전성기와 비교해 볼 때, 청은 훨씬 더 지불 능력이 없었으며, 부패하고, 비효율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혁이 제국을 지배하던 정치적·경제적 지도 집단들의 지위, 소득, 미래의 전망 등을 위협할 때마다 결합력을 제공했던 같은 회복력이 제도적 개혁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단기적으로 회복력은 위기 동안 청 제국의 영토를 온전히 보존시켰다. 그러나 필요한 변화를 지연시킨 것은 격동의 20세기의 급진화와 갈등에 더해진 장기적 비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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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요인은 OTT의 영향력 확대와 티켓 값 상승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OTT를 통한 시청각 경험이 극장을 대체했고 영상을 소비하는 패턴 자체가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 P12

"글로벌 플랫폼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나 새로운 인재의 등장이 경색되고 위축된 시기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 같다. 토종 OTT도 사정이 어렵고 잘되는OTT도 제한적이라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기회가 역설적으로 줄고 있는 셈이다." - P13

티켓 가격의 가파른 상승도 이런 요인을 부추겼다. 팬데믹을 거치며 요금이 약 40% 인상돼 1만원 언저리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로서는 허들이 높아진 셈이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이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서 인식했다기보다 여가 시간을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측면이 있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 P13

영화발전기금도 고갈된 상태에서 작은 영화나 중간급 규모의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공적기금의 수혈이 필요하다. 어디를지원함으로써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인지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점이다. - P15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가리키는 ‘카르텔‘이 뭔지 여전히 뿌옇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야당, 시민단체, 노조를 넘어 사교육 시장까지 카르텔로지목되면서 카르텔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카르텔인플레이션‘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공방이 뒤따른다.  - P20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번 인사를 무게추가 용산(대통령실)에 쏠린 ‘다목적 가능성비 인사‘라고 평가한다. 2024년 총선을고려하면 대통령실로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입혀 선명한 성호과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 비서를관들을 정부 부처에 내려보내 국정 장악력을 극대화한 뒤 속도감 있게 국정과제를 달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 P23

돌봄 영역에서의 수요-공급 불일치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 진단이 곧바로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6월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주최한 ‘이주 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국회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공적 돌봄제도정비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육아휴직이나 긴급휴가,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더 나은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 P31

조정훈 의원 법안이 ILO 협약은 우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암초까지 피해 가기는 어렵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처우를 장담할 수 없다. 이들만의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을 정한다고 해도 지켜질지 알 수 없고, 인권침해 소지가분하다. ‘국가가 관리에 신경 쓰면 될 일이라고 넘어가기 어렵다. 가사노동자는 개인 거주지에서 일하기에 일반 사업장처럼 관리되지 않는다. - P32

지리산은 1967년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육상에서가장 넓은 국립공원으로, 둘레가 320여km나 된다.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지리산에 속한 각 지자체가 이 산을 두고 어떤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정리했다. 이번에 찾은 구례와 남원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 역시 저마다 케이블카 따위 사업계획을 들고 나왔다. - P38

의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종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고, 그 문턱을 통과하면 고소득과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점점 더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는 의사들이 있다. 의료 본연의 역할이라 할 ‘생명을 살리는 과‘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전통적으로 필수의료로 분류돼온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 더해 환자의 목숨이 걸린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신경외과 등 ‘바이탈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 P40

실손보험이 도입된 이후 통증주사,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시장은 더욱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병원에서 수술방에 들어가는 마취과 의사들은 줄고, 통증의학과 의원들은 건물마다 들어서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처럼 비급여 진료로 무한정 수익을창출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의료 행위에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필수의료는 수가를계속해서 높여주더라도 기피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P42

북한의 위성 기술은 낙후한 것으로알려졌다. 북한이 궤도 진입에 성공한 광명성 3-2호, 광명성 4호는 모두 위성의기능을 하지 못한 죽은 위성이다. 두 위성은 궤도 진입엔 성공했지만 이후 흔들거리며 불안정한 운행을 해왔다. 지금까지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아서 지상과 송수신 능력이 없어 보인다. - P53

교육학에서 다양성은 전세계 학자들이 인정하는 가치다. 그러나 어퍼머티브 액션이 ‘목적이 아닌 수단만보면 헌법·법률상 차별‘이라는 앞선 판결들을 살피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예컨대 다양성을 추구해 얻는 교육적 실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계층과 인종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 게 다양성 추구에 가까운가? 어떤 인종이 소수집단인지 다수단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P58

그 변화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새시대를 대표한다는 여성 그룹은 입을 모아 나를 이야기하고 나에게 집중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나‘는무엇보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의세대와 공명했다. 셀프 브랜딩에 능하고 ‘부캐‘ 하나쯤은 기본이라는 요즘애들‘과 맥을 함께 한 셈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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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주의 탄생의 역사에 내재된 취약성과 불확실성 안에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고대 기록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바는 일단 그 안에 포함된 모순과 은폐, 재해석을 간파하고 나면 민주주의는 그 착상과 발전이 확실히 보장되었던 적도, 개인적 욕망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도 없으며, 주요 인물들과 역사가들, 그리고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폴리비오스는 기원전 160년대에 로마에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명망 높은 스키피오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파란만장한 당대의 역사를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가 압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하면서, 그 주요 요인으로 로마의 군사조직과 공화정체를 꼽았다. 폴리비오스는 그리스인이었지만 처음부터 아테네의 (이제 기울어가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더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로마가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한 후에도 계속해서 아테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갔다는 점이다. 공화국 수립 직후 로마 대중과 리더들이 다수의 권리와 소수의 권력 간의 균형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던 격동의 반세기 동안, 로마의 입법자들은 아테네에 체류하며 그곳의 법률 제도와 헌법?특히 로마인 자신들과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다고 여겼던 솔론의 개혁?을 연구하여 로마에 도입했다.

폴리비오스에게 12표법 도입은 반세기 전 왕정 타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로마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28 그 이유는 무엇일까? 12표법은 폴리비오스가 통치 모델의 전형이라 여긴 기틀을 제공했다. 즉 12표법은 군주(집정관), 귀족(원로원), 민주주의(켄투리아회와 평민회)적 측면을 모두 가지면서, 동시에 사회 각 집단의 권리와 책임을 법으로 규정했다.

로마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리고 기원전 449년 이후 수세기 동안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 전 계층이 체제를 비판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쪽이 더 혜택이 크다고 믿게 만든 정교한 견제와 균형 체제였다. 폴리비오스의 눈에 로마는 "수많은 투쟁과 소요를 극복"하고 마침내 콩코르디아 오르디눔(계급의 화합)을 이루었다. 폴리비오스가 글을 쓸 무렵에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한 로마가 더 이상 아테네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가 투표권을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상 모든 권력은 국가 지도층이 보유하도록 계급 차별이 도입되었다." 이 체제는 정치적·사회적 현실만큼이나 군사적 현실도 반영했다. 전투에서의 승리, 곧 로마의 성공적인 방어는 기병대인 에퀴테스 계급과 그들이 보유한 말과 무기가 제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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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 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페르낭 브로델 지음, 남종국.윤은주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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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라는 존재 속에서 변화하는 것, 움직이는 것이 꼭 문명을 구성하는 전부도, 가장 좋은 면도 아니다. 결코 아니다. 문명 속에는 단기적인, 지속적인, 때로는 장기지속적인 콩종튀르와 구조가 있다.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의 영역으로 의미 있는 침투를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난폭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혹은 역사의 사건들이 만드는 우연이라는 변수들만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하나의 패턴이 처음부터 너무나 굳건하게 정해져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16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2>는 16세기 지중해 시대의 문명(文明 Civilisation)에 초점을 맞춘다. 앞선 2-1권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가져다 준 정치, 경제가 주제였다면, 2-2권에서는 그러한 정치, 경제체제의 결과물인 사회의 변화가 주제다.


 우리는 경제적 콩종튀르와 비경제적 콩종튀르를 분리해야만 한다. 후자 역시 시간의 길이에 따라서 측정되어야 하고, 위치가 정해져야 한다. 세기적인 트렌드와 유사한 것으로는 장기적인 인구 변동, 국가와 제국의 크기 변화, 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유동성의 유무, 산업 성장의 강도가 있다. 장기적인 콩종튀르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산업화, 국가 재정, 전쟁 등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13


 결과적으로 브로델은 본문을 통해 자연의 만들어낸 구조사(構造史)의 큰 흐름이 이미 결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흐름은 국면사((局面史)를 통해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냈음을 말한다. 서로 다른 상황과 움직임 속에서 여러 계층, 집단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각 상황에서는 최선의,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다만,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적인 최적화를 달성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였고, 그에 따라 지중해의 역사 속에서 부르주아, 귀족, 왕, 유대인, 베네치아 등등의 세력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며 당대의 시대상을 만들어왔다.


 문명은 번영의 시기 ,단기적으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창조의 시기, 경제적인 승리를 구가하는 시기, 단기적인 사회적 시련의 시기를 거치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그러나 토대는 그대로이다. 토대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도 천 배는 더 견고하다. 문명이 천 번을 죽는다고 해도 토대는 견뎌낸다. 수세기 동안 단조로운 이동이 계속되지만, 전체적인 토대는 변하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40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에서 브로델의 결론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는 더이상 세계의 중심, 세계의 바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제조업에서의 주도권이 북유럽으로 넘어가고, 영국-에스파냐 전쟁(1585 ~ 16045) 이후 동지중해를 중심으로 교역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이미 콩종튀르(Conjoncture) 관점에서 분명 지중해는 활력을 잃고 있었다. 이 시기 지중해의 번영과 쇠퇴는 다른 중심지에 의해 종속되는 변수였다는 사실은 세계 패권(hegemony)를 둘러싼 전쟁은 대서양과 북유럽 플랑드르 지역에서 치뤄지고 있었으며, 지중해 연안국들은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힘을 이미 상실했음이 브로델에 의해 상세하게 논증된다.


 전쟁은 없었다. 이것은 또한 지중해가 더 이상 전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즉 전쟁비용을 치를 수 없었다는 증거였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고, 만물의 자식이며, 수많은 수원을 가진 강이고, 해안이 없는 바다였다. 전쟁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지만, 평화 그 자체의 창조자는 아니었다(p700)... 이제 대전쟁은 대서양을 따라 북쪽과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전쟁의 거점은 세계의 심장이 뛰는 그곳에서 수세기 동안 머물렀다. 이러한 이동 자체가 지중해의 후퇴를 말해주었고, 두드러지게 보여주었으며, 확고하게 만들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01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를 통해 우리는 '지중해의 황혼(黃昏)'을 보게 된다. 에스파냐의 칼레 해전 패배 이후 다시 돌아온 듯한 베네치아의 번영도,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에스파냐의 움직임도 이미 거대한 판 위에서 결정된 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구조적 움직임에 대한 고려가 없는 가정, 예를 들면 '에스파냐가 네덜란드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제국을 유지했더라면 어떠했을까?'라는 물음은 마치 체스(Chess)에서 폰(pawn)이 여왕(queen)처럼 움직이는 것을 가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할 것이다. 이제는 지중해에서 1권 구조사와 2권 국면사를 넘어 이제 마지막 사건사를 다룬 3권으로 넘어갈 차례다...


 문명의 첫 번째 실체가 경계를 설정하는 지리적 공간이라는 것 외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문명은 공간이자 영역이다. 이때 공간이라는 말은 인류학자들이 양날도끼 혹은 깃이 달린 화살 지역이라고 말할 때에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한계를 부여하지만 그 인간에 의해서 끝없이 변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p536)... 변화는 분명히 일어난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과정을 느낄 수도 없는 속도로 변화한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37


 이베리아 반도를 강타했던 곡물 위기로 인해서 이베리아 반도는 북유럽 국가들에게 막대한 양의 정화를 지불해야 했고, 이렇게 북유럽은 또다시 에스파냐의 "적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 대변동은 에스파냐, 베네치아, 피렌체, 심지어는 프랑스에서까지 가격 변동을 일으켰고, 교역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베네치아에서는 티에폴로 피사니 은행이 파산했다. 단기적인 위기, 경제생활의 극심한 혼란, 혼란의 전파와 변화무쌍한 성격이 지중해의 경제 변화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14


느리고 강력한 하나의 근본적인 움직임이 1550년부터 1600년까지 지중해 사회를 조금씩 뒤틀고 변화시켰다. 그것은 길고 고통스러운 변신이었다. 점차 커져가는 사회 전반의 불안은 공공연한 반란으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의 모습 전체를 바꾸는 사회적 성격을 가지는 격변이었음에 틀림없다... 사회는 나날이 광대해지는 토지재산을 보유한 부유하고 강력한 대귀족 가문과 점점 더 늘어나는 대다수의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로 분명히 양극화되어가고 있었다. - P512

지중해라는 혼합의 영역 속에서 많은 문명 집단들이 번성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더욱 풍성했다. 한편으로는 문명 간의 교류와 새로운 요소의 유입이 다소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각각의 집단들은 독자성을 유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파 작가들이 오리엔트의 항구를 그릴 때와 같은 분위기의 너무나도 혼잡한 항구들에서 문명들은 서로 뒤섞였다. - P523

주는 자가 지배한다. 베풂의 이론은 개인이나 사회뿐만 아니라 문명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베풂은 장기적으로는 궁핍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풂이 계속되는 한, 그것은 우위의 표지가 된다. - P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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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감당해야 위기를 극복할 힘도 나온다. 성차별, 노동, 농업, 교육, 복지, 저출생, 초고령화, 인구감소, 연금, 지역격차, 불평등, 부동산, 돌봄, 높은 대외 의존도와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대처하면서, 그것과 함께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한다.1 경제사회 현안 해결, 기후재난 대응, 온실가스의 획기적 감축, 장기적 사회생태 전환은 개념적으로 구분되지만 현실적으로, 특히 이행기에는, 다 같이 추진할 수밖에 없는 과제들이다.

생물권 내의 경제사회계와 생태계가 전체 ‘사회생태계’를 구성한다. 사회계와 생태계는 각각의 내부에서, 그리고 서로 간에 밀접하게 상호작용-상호의존하면서 변화에 적응하고, 회복력을 유지하고, 함께 진화(共進化)한다. 사회계와 생태계는 하나의 꾸러미로 작동한다. 환경이 악화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탈성장을 추구하는 견해에서는 서구의 복지국가·복지사회를 가능하게 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대량생산·대량소비는 글로벌 남반구의 노동과 자연을 착취하고 수탈하면서 이루어져왔고, 이는 결국 제국적 삶의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복지사회를 꿈꾸면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모두 제국적이라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복지사회에서 누리는 풍요롭고 안정된 삶은 자칫 제국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 있고, 현재 인류세(人類世)를 초래한 화석연료 기반 문명의 연장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현행 한국의 돌봄 관련 수당들은 개별 수당의 충분성을 평가하기에 앞서, 돌봄을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돌봄소득의 목표와 배치된다. 돌봄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가족에게 부여함으로써 가족 위주 돌봄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며, 그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기보다 타인을 돌보는 노동에 비해서도 낮게 보상함으로써 돌봄의 상품화를 부추긴다.12 돌봄소득과 유사하지만 사회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가 뚜렷한 정책인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돌봄에 대한 소극적 태도 못지않게 장시간 노동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임금노동 종사자들 대부분은 돌봄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돌봄이 더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방도를 찾고자 한다면 돌볼 수 있는 시간의 확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간의 감축이 핵심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감축을 돌봄문제로부터 사유하여 돌봄소득과 연결짓는 방식은 더욱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본주의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며 이제 그 말기국면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차츰 실감으로 자리 잡을 때 자본주의의 서사는 그 지속 불가능성 자체를 서사화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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