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레드케이스 포함) -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이동진 지음, 김흥구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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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아키아의 실내 건축 설계는 그렇게 특정한 규칙으로 수렴되지 않고 뻗어나가는 무한공간의 모티브를 어느 정도 가져왔다. 수집품도 파이와 관련한 것들이 적지 않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매달려 있는 파이 시계는 3시 14분에 멈춰있다. 초침 역시 영원히 60에 도달할 수 없는 59에 놓이도록 했다. 소수점 이하로 반복되지 않은 채 무한대로 뻗어가는 파이 숫자의 행렬을 최대한 많이 담아놓은 포스터도 구하고 싶었다... _ 이동진,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中

파이아키아, Pi + architecture+ia. 파이와 건축물 또는 파이가 있는 건축물.

영화평론가이자 애서가, 장서가, 수집가인 이동진의 수집품과 개인 작업실이 소개된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개인적으로 책이나 음반 등을 소장하거나 수집하는 편이 아니기에 2만여 권의 책과 1만여 장의 앨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사연있는 수집품 등을 보면서 별로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대신 원주율 파이(Pi)처럼 하나하나의 작품에 얽힌 무한히 풀려나오는 작가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작가의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대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열정임을 깨닫게 된다. 3만여 수집품이 저마다 무한한 원주율을 가진 서로 다른 원(圓)이라면, 그 수집품들이 조금은 부러울 듯하다. 아니, 하나의 파이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무한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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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01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동진 평론가님 글만 잘쓰시는 게 아니라 말씀도 넘 잘하시고
Plus 이렇게 자본을 쌓아가시는 기획력도 좋으시고^^ 부럽네요

겨울호랑이 2023-08-01 13:21   좋아요 1 | URL
네, 이렇게 탄탄하게 쌓아온 자본이 밑바탕이 되어 좋은 평론이 가능케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 연설들에서 눈에 띈 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충만한 감각이었는데, 마오는 "사회주의가 승리할지 자본주의가 승리할지는 아직 진정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라는 문제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계급투쟁이 사회주의하에서도 오랫동안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혁명이 활성화되고 강화되어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집단화에 대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당은 끈질기게 대규모로 군사화된 인민공사와 집단 식당을 밀어붙였는데, 이는 더 생산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약속을 실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약진의 즉각적인 결과는 끔찍한 자산의 낭비와 소름 끼치는 생명의 파괴였지만, 매우 중요한 장기적 영향도 남겼다. 기층 수준에서 촌민들이 스스로 기근에서 살아남고 생존을 위해 싸우도록 방치되었다. 공산당은 빈곤을 없애고 굶주림을 막겠다는 사회주의 국가의 약속을 지키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 이름과 달리 문화대혁명은 전혀 문화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우귀사신牛鬼蛇神을 쓸어버리고’,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 폭력적이고 혁명적인 대중운동이었다. 문화대혁명의 공인된 목표는 ‘일체를 타도(打倒一切)’하고 ‘전면 내전’全面內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마오는 대약진의 비극으로부터 다른 지도자들과 같은 결론을 끌어내지 않았다. 그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의 근본 원인을 반역자, 사보타주하는 사람, 노동 인민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억압의 복귀 등으로 보았고, 적극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문화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마오가 자신과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의심한 주요 간부들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비록 대약진보다는 자산과 인명 피해가 적었지만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 전체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단기적으로는 물론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 정책에서의 좌충우돌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후퇴했고, 상품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정부 기관의 능력을 퇴보시켰다.

중앙집권화된 국가는 배타적인 정치제도인 당-국가에 기초하기도 했다. 당-국가는 통제를 행하고 자원의 추출로부터 혜택을 받도록 공산당의 권력을 보장했다. 일당제하에서 국가의 중앙집권화는 특히 기반시설, 교육, 복지 등 부분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지만, 착취적 정치제도하에서 발전은 국가와 국가의 자원 추출을 장악하려는 공산당 내부의 라이벌 분파들의 내분을 부추겼기 때문에 허약하고 불안정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첫 30년 동안 공산당이 무척 새로웠던 엘리트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제도를 만들어내고 안정화할 수 없었다는 관찰에서 비롯되었다.
51 그 대신 공산당은 오랫동안 권력과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여러 불안정한 연합에 의존해야 했다. 마오주의는 국가와 정치 체계의 혁명을 의도했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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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부구청장 등 공무원 11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당시 구청장은 휴가 중이라 형사처벌을 피했다). 이들은 지난해 1심에서 전원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참사는 반복됐다. 백승주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관계 공무원들만 처벌한다고 안전해지지 않는다. ‘안전점검‘ ‘관리 통제‘라는 매뉴얼이 있다면, 컨트롤타워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매뉴얼대로 조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P17

우리나라는 방재 관련해서 기술에 중점을 둔다. IT 기술을 활용해 예측·진단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실행 단위에서 활용을 안 하면 무슨 쓸모가 있나. 정부가 1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이 있지만 이태원 참사 때도, 이번 오송 참사 때도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예방이나 처벌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재난이 발생했을때 대응력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 P19

강연에 가면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가 시민들이 흘린 피로 성장한 것처럼, 재난 역시 그래 왔다고. 사고가 난 뒤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계속해서 싸웠기 때문에 하나라도 바뀐 거고, 우리는 그 변화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거라고. 우리처럼재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당사자들이 조직화되고 목소리를 낼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시민들이 이 과정을 많이 지지해줘야 한다. 끝까지 싸우는사람들이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후 올해 최초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장 대상 재난안전교육이 진행됐다. 자원자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싸우지 않았으면 이런 변화조차 없었을 거다. - P20

"타당성 조사에서 노선이 예타안과 달라질 수 있지만 시점이나 종점 변경은 큰변화다. 사업비, 경제성, 기술 측면, 교통량, 환경 등을 분석해 노선 변경이 원안보다 상대적으로 우위라는 데이터를 계량화한 수치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변경안이 더 우수하다는 판단도 내릴 수 있다." 즉, 2022년 7월부터 2023년 1월까지국토부가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변경안‘을 우선순위로 올리게 됐는지, 이 ‘블랙박스‘를 여는 것이 의혹을 푸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 P31

그런상황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하면 세계적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만 궁리했다. 지금은 더 쉬워졌다. 우리도 자체 AI를 만들고 있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문제 풀기가 더 쉬워질수록, 자기 자신에대해 잘 아는 게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난 뭘 좋아하고 잘하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하지? 전반적으로 사회도 부모도, 모두가 그 아이를 믿고 결국은 알아서 길을찾겠지‘라고 기다려줬으면 한다. 자기를탐색할 시간을 많이 줘야 한다. - P34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첨가물 바로알기> 같은 저서를 통해 식품 안전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다. 그는 이번에 아스파탐 발암성 문제가 커진 데에는 ‘식품 안전의 기본원리‘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했다고 설명한다. "어떤 위해인자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는 해가 되지 않는다. 자외선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을 미량의 위해요소가 인체에 섭취된 경우는 그 위해성을 무시하고 ‘안전하다‘라고 간주하자는것이 식품 안전의 기본원리다." - P39

거꾸로 보면 아스파탐이 논란 대상이된 것은 그만큼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설탕에 대한 공포‘가 결정적이었다. 설탕이 비만과 질병의 근원이라는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아스파탐 같은감미료가 건강과 다이어트의 ‘구원자‘로등장했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은 전세계 대체 감미료 시장이 118억 달러(약14조9000억원) 규모이고, 2028년이면 현재의 두 배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P41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는 보장되는 게맞다고 생각한다. 고대영 사장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보장돼야 공영방송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바람직할 것이다. 문제는 공영방송이 늘(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교체되는) 정치적 ‘후견주의‘로부터 자유롭지못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여야 방통위원을 선임하고 이 방통위원들이 KBS이사를 선임하는 구조 탓이다. 후견주의적 요소를 없애는 방향으로 방송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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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16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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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사회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닫힌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에 그대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닫힌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반(半)생물학적 유대에 의해 함께 묶여 있는 사회이다... 열린사회는 이와 반대로 유기체적인 특성이란 없는 추상적인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인간 상호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는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83


 칼 포퍼 (Karl Riamund Popper, 1902~1994)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ume I: The Spell of Plato>에서 계(界)의 경계에서 질량과 에너지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계(open system)와 이에 반대되는 에너지 교환만이 가능한 폐쇄계(closed system)라는 과학의 개념을 사회학에 접목시킨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와 자유, 평등이 균일하게 보장되는 열린사회를 거부하고, 소수에 의한 권력추구를 열망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포퍼가 지적하는 열린사회의 적들이다.


 이것이 역사주의라 불리는 태도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다. 역사주의의 핵심적 원리란,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우리가 이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주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순한 형태는 선민사상에 의해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p13)... 유신론적 역사주의인 선민사상은 현대의 가장 중요한 두 역사주의 이론인, 파시즘의 역사철학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이 공유하고 있다. 인종주의에서는 선택된 민족이 선택된 인종으로 대체되며,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서는 선민이 선택된 계급으로 대체된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14


 포퍼가 지적한 열린사회의 적들은 플라톤(Platon, BCE 427 ~ BCE 347)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다. 다소 거칠게 보수적인 측면에서 열린사회의 적이 플라톤이라면, 진보적인 측면에서의 적은 마르크스다. 플라톤의 역사의 법칙을 퇴행으로 바라보고 민주주의 정체에서 수호자 중심의 귀족정으로 되돌리려는 반동(反動)주의자라면, 마르크스는 역사의 법직을 진보로 해석하고, 자본이 갖는 필연적 모순에 의한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를 꿈꿨다는 점에서 다른 방향성을 전망한 같은 역사주의자들이다. 이들 중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은 2권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먼저 플라톤에 대해 살펴보자.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에는 유사성이 대단히 많지만, 헤라클레이토스와는 반대로 플라톤은 역사적 운명의 법칙, 부패의 법칙은 인간의 도덕적 의지로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확실히 부패로 치닫는 일반적인 역사적 경향과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시킴으로써 정치 면에서의 더 심한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35


 플라톤은 정체(政體)에서 끊임없는 퇴행을 보았다. 완전한 이데아의 국가에서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으로의 끝없는 퇴보 속에서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 BCE 470~ BCE 399)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플라톤은 스승의 뜻과는 다른 의미로 부패와 타락의 확산을 막기위한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폐쇄된 사회로의 지향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열린사회주의자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로 전달하는데, 후대 독자들이 플라톤의 대화면에서 때로 낯선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신념, 평등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념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자는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재능 있는 제자였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얼마 안 가 그를 배반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공개적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하였기 때문에, 플라톤은 그것을 닫힌사회에 대한 신념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84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진실로 지혜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오만한 진리의 소유자이며 학식 있는 현인이었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요구하는 것은 현자지배인 것이다(p231)... 철인왕의 첫 번째 기능이며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국가의 창건자와 입법자로서의 기능이다... 철인왕의 주권 이론 배후에는 권력에의 추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32


 우둔한 데모스(demos)에게 권력을 주는 것은 최종적으로 몰락에 이르는 길이기에 플라톤은 개인이 아닌 집단을 강조한다. 지식과 힘을 가진 소수에 의한 영속적 지배. 플라톤은 이러한 단절을 통해 끊임없는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현실의 아테네 대신 라이벌 스파트타에서 가야할 과정을, 이제는 사라진 아틀란티스(Atlantis)에서 이데아(Idea)를 발견하면서, 플라톤은 열린사회의 적(敵)이 되버렸다.


 플라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개인주의를 극렬하게 혐오했고, 이를 분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혐오는 플라톤 철학의 근본적인 이원론에 뿌리박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개인이란 플라톤에게는 악 그 자체였다. 이리하여 국가의 이익이라는 오직 한 가지의 도덕적 기준이 등장한다. 이것은 집단주의나 정치적 공리주의의 법전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선이란 나의 집단이나 나의 부족, 혹은 나의 국가 이익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148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에서 저자는 플라톤의 역사주의에 기반한 반동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거부하는 퇴행적인 움직임을 비판한다.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의 최적화를 보장해주지 않지만, 그 역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에 대한 거부와 획일적인 접근이 갖는 위험성을 저자는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지적한다. 


 저자 칼 포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riedrich Hayek, CH, 1899 ~ 1992)와도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전체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열린사회와 그 적들 > 에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전체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한다면, 포퍼는 전체주의는 사회주의와 함께 보수적인 요소도 있음을 본문을 통해 보여준다. 파시즘과 사회주의는 동일한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하이에크는 '그렇다', 포퍼는 '그렇지 않다'는 다른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과학자가 바라본 사회학.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이런 점에서도 한 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유토피아주의에는 플라톤적 접근법의 독특한 특성이 되는 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유토피아주의의 전폭성, 즉 돌멩이 하나도 그대로 두지 않고 사회를 전체적으로 다루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확신이며, 세상에 어떤 품위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 버려야 한다느 확신이다. 그것은 비타협적인 급진주의이며, 탐미주의이며, 완전주의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비타협적인 급진주의이며, 탐미주의이며, 완전주의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지금보다 좀 더 낫고 좀 더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함이 전혀 없는 세계, 참으로 아름다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62


 우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것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플라톤의 사회학적 진단이 우수했을지라도,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도 그가 추천했던 치료법이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천국에의 꿈은 지상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330


역사주의의 핵심적인 원리란,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우리가 이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유신론적 해석, 즉 신을 역사적 무대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작가로 해석함으로써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의 하나이다. - P16

플라톤은 국가를 인간 영혼과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국가의 질병, 즉 그 통일성의 분열은 인간 영혼 내지는 인간 본성의 질병에 대응한다. 국가 쇠퇴의 모든 전형적 단계는 인간의 영혼, 인간의 본성, 인간 종족의 각 쇠퇴 단계에 대응함으로써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부패가 종족적 부패에 근거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플라톤의 자연주의에서 생물학적 요소는 결국 그의 역사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 P100

플라톤에게서는, 미래의 지도자를 선정하고 그들에게 지도력을 습득시키는 일이 교육의 과업으로 등장하며, 이를 담당하는 기구가 국가의 문교부라 할 수 있다.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을 플라톤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제도이다. 이것이 권력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어도 고급 단계의 교육은 통치자에 의해 직접 통제되어야 한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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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31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1권만 번역되어서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데 왜 아직도 안나오는 것일까요?
저도 1권만 갖고 있어요

겨울호랑이 2023-07-31 13:52   좋아요 1 | URL
아, <열린사회와 그 적들 2>는 1989년에 번역이 되었네요. 1권은 현대 사상 신서로 개정판이 나왔는데, 2권은 구판으로 나와있어 지금 읽고 있어요. 곧 조만간 정리해서 리뷰 올리겠습니다 ^^:)

그레이스 2023-07-31 13:54   좋아요 1 | URL
^^
저도 구판은 있는데 이 판본 갖고 있으니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핑계가 생기네요 ^^
어딨는지 찾아보기도 싫고 ㅋㅋ

그레이스 2023-07-31 13:55   좋아요 1 | URL
리뷰 기다릴께요

겨울호랑이 2023-07-31 13:55   좋아요 0 | URL
^^:) 네 그레이스님 마음 동감입니다. 구판은 여러 면에서 개정판에 비해 아쉽게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ㅋㅋ
 

토지 개혁은 아마도 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사회정치적 목표였을 것이다. 토지의 재분배로 좀 더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농촌의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이 제거될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농촌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고 중국의 거대한 농업 생산으로부터 세수를 증대시키는 것과 같은 다른 목표들도 추구했다.

토지 개혁으로 토지가 좀 더 평등하게 분배되었지만, 농업 소득을 더 균등하게 분배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토지 개혁 이후 농촌 인구의 57% 이상을 차지하는 더 가난한 농민들이 중국 토지의 거의 절반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부농의 땅이 평균적으로 빈농 소유 땅의 두 배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토지 개혁은 더 공정한 토지 분배를 달성하는 농촌 사회 개혁을 넘어서서 다른 정치적 목표들도 성취했다. 국가와 농촌 사회의 관계 변화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토지 개혁으로 이전에 징세 담당자에게 보고되지 않았던 토지들이 측정되고 평가되었다.

호구 제도는 정부가 국내 이주를 규제하고 통제하게 했는데, 농촌에서 도시 지역 이주나 소도시에서 대도시 이주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반대 방향의 이주를 장려하기도 했다. 농촌 주민들이 도시에 들어와서 도시 거주자들을 위해 마련된 보조금으로 혜택을 보는 것을 방지하려면 그들이 도시에 진입할 권리를 제한해야 했다.

종합적으로 보아 호구 제도는 새 정부가 수립한 가장 중심적인 제도의 하나였다. 호구 제도는 인구통계적 개입의 강력한 도구일 뿐 아니라, 부족한 자원과 혜택에 대한 접근을 거주를 기반으로 규제하면서 1950년대에 도시의 구역들을 관리하는 핵심이었다.

중국 사회의 개조에서 또 하나의 핵심적 순간은 소수민족 주민들을 분류하는 체계가 채택되고 실행되었을 때였다. 사회 개조와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위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통일된 다민족 국가로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기획이었다.

농촌의 배급은 일반적으로 도시 지역보다 훨씬 적었다. 도시 지역은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았지만, 농촌 사회는 스스로 자원과 노동에 의지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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