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2 - 이데아총서 14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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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의 분석이 성공을 거둔 곳은 역사주의적 예언을 한 곳이 아니라, 역사주의적 분석을 한 곳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깊은 모멸감과 비참에 빠져 있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의 건설에 대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예언적 종교는, 우리의 비판적 이성의 지원을 받아 세계를 변화하려는 평등주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온통 내동댕이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65


 칼 포퍼(Karl Riamund Popper, 1902~1994)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The Open Society And Iti's Enemies 2>에서 열린 사회에 대항하는 역사주의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사상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1권에서 플라톤(Platon, BCE 428/427 ~ BCE 348/347)에 대한 포퍼의 비판이 매우 날이 서있다면, 2권 마르크스에 대한 포퍼의 비판은 사뭇 결이 다르다. 비록 역사주의에 빠져 비과학적인 교조주의적인 논증을 폈다는 점에서는 플라톤과 같지만, 최소한 마르크스에게는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으며, 이 점에 대해 포퍼는 분명히 인정한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는 보수주의자였던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세계의 변화를 지향하는 그의 태도 속에 나타난 그의 행동주의는 오히려 역사주의(역사결정론)에 의해서 밀려나는 형편에 있음을 본다... 마르크스는 지식사회학적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도덕론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엄청난 영향력의 비결은 그의 도덕적 호소력에 있다. 그의 자유에 대한 사라오가 사회적 책임감은 계속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죽었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77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에서 포퍼의 비판 초점은 주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에 있다. 플라톤이 고대의 부족주의를 부활시켜 소규모의 전체주의를 구현했다면, 헤겔은 이를 계승하여 정신의 흐름을 통해 민족과 국가 수준으로 고양시켰다. 이후 등장한 파시즘은 이러한 헤겔의 바탕 위에 더 넓게 자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포퍼는 헤겔의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헤겔은 현대 역사주의의 원천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후손이다. 그의 철학의 위력과 매력은 그것이 무엇이나 다 척척 해답을 주는 만능의 철학이라는 것과, 그가 당시 프러시아 제국의 비호 아래 프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어용철학으로써 당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과 부분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그의 전체주의적 사상은 플라톤의 전체주의 사상과 현대의 전체주의 사상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56


 비록 지적 원천에서는 헤겔의 좌파인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이 거의 동일하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인도주의적 충동이 밑에 깔려 있다. 더구나 헤겔우파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절박한 문제에 합리적 방법을 적용하려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가치는 그 노력이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는 사실에 의해 감소되지 않는다. 과학은 시행착오에 의해서 진보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123


 물론,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에서 사상의 주된 비판은 마르크스로 향한다. 그가 주장한 잉여가치론, 계급갈등,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 등 그가 사회과학적 방법을 통해 제시한 예언은 본문을 통해 철저하게 비판된다. 대신, 그가 인정받는 것은 <자본론 1>을 통해 통계적으로 제시된, 실증적으로 제시된 처참한 노동현실과 그에 대한 정당한 분노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플라톤에 비해 덜 하다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이 성공을 거둔 곳은 역사주의적 예언을 한 곳이 아니라, 역사주의적 분석을 한 곳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깊은 모멸감과 비참에 빠져 있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의 건설에 대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예언적 종교는, 우리의 비판적 이성의 지원을 받아 세계를 변화하려는 평등주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온통 내동댕이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65


  무엇보다도 포퍼의 마르크스 경제론에 대한 최대의 비판은 '국가권력에 대한 경시'다. 앞서 헤겔의 사상이 국가의 의미를 한껏 고양시켜 자유를 억압시켰다면, 마르크스는 이와는 반대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 간 대립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력의 부재. 물론, 여기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이 당대의 현실에 기반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움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당대의 현실에 갇힌 마르크스 이론은 '민주주의 체제'라는 훌륭한 대안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혁명의 당위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교조주의라 하겠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는 정치력으로 경제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의 증대가 지닌 잠재적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국가 권력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 주지 않으며 오직 부르주아의 손에 든 힘만이 고약한 것이라고 그들은 보았다. 우리가 너무 많이 계획하면, 즉 우리가 너무 많이 국가에 힘을 부여하면 자유가 상실된다. 이것은 모든 계획의 종말을 뜻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171


 중요한 것은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느냐'이다. 이것은 정치적 문제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임을 뜻한다. 평등에로의 역사의 진보는 권력을 제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11


 이처럼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그 적들>은 직접적으로는 역사주의에 함몰된 전체주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으나, 반증과 검증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사회공학, 사회과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정과 이에 기반한 논증은 결국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과학은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본문에 실린 칼 포퍼의 비판은 분명 예리하며, 무비판적으로 <국가>, <법률> ,<정신현상학>, <자본>을 읽었던 이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쉘러와 만하임에 의해서 과학적 지식의 사회결정론으로서 개발되었다. 지식사회학에 의하면, 과학사상, 특히 사회/정치문제에 관한 사상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대부분 무의식적 수준에서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은 무의식적 요소가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바로 그 장소, 즉 그의 사회적 서식처를 구성한다. 한 인간의 사회적 서식처가 거의 사상체계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그의 사상은 적어도 그에게는 아주 자명한 틀림없는 진리로 보인다. 이렇게 일련의 사상체계를 지식사회학자는 이데올로기 총체라 부른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96


 그렇지만, 추상과학이라 할 수 있는 수학 역시 공리(axiom))와 공준(postulate)을 자명(self-evidence)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증명을 펼쳐나가고, 실험에 의해 경험적으로 증명되는 현상 역시 특수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과연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관찰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결과값이 달라진다는 양자역학의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더라도 포퍼가 주장한 진정한 객관성은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이데아(Idea)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과학적으로 이데아를 추구하는 칼 포퍼야말로 본문에서 그렇게 플라톤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닐런지 생각하게 된다... 


 과학적 객관성은 학문에 종사하는 한 개인의 심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방법이 지닌 상호주관적인 공적 성격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첫째로 자유로운 비판이 그것이며 둘째로 과학적 서술이 논리와 경험에 의해 시험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짜여져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과학적 방법의 공적 절차가 객관성을 점진적으로 높여 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97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목적론은 플라톤의 변화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낙관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모든 변화는 원형인 완전한 형상 즉 이데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퇴화의 과정 즉 파멸에로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는 궁극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궁극 목적은 다름아닌 사물이 지닌 본질인데 그것을 형상이라고 그는 불렀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의 변화는 결국 사물이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 P24

플라톤과 더불어 ‘파멸하는 사물은 본질에 그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헤겔이 말하긴 햇지만 헤겔은 플라톤과는 반대로 본질도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세계 속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에서처럼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다. 그리하여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획득하기 위해 플라톤에 의해 애초에 도입된 본질도 여기서 면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변화는 파멸이 아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낙관적이다. - P69

인간의 삶의 물질적 측면인 생산과 소비는 인간의 신진대사의 하나의 연장이라고 마르크스는 보고, 인간의 자유는 바로 이러한 신진대사의 필수품들에 의해 재한을 받는다고 보았다. 그는 헤겔과 같이, 자유가 역사발전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또 헤겔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영역과 인간의 정신적 삶의 영역은 동일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순수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는 신진대사의 필수품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품위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며, 노동조건을 평등화하며, 또한 단조롭고 기계적인 힘든 일들을 가능한 한 줄임으로써, 인간 모두가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삶에 대한 중심 사상이다 - P147

한 때의 소수파 정당이 다른 정당을 폭력이나 다수표에 의해서 억압하기를 계획한다면, 그것은 현재 다수파 정당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현재 다수파 정당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압박에 대해 불평할 도덕적 권리마저 상실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자를 힘에 의해서 억압하려고 하는 현재 지배정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 P224

나는 도덕적 실증주의(특히 헤겔의 도덕적 실증주의)에 관해 언급했는데, 그것은 이런 이론이다. 지금 있는 도덕적 표준 이외에는 아무런 도덕적 표준이 없다. 지금 있는 것이 합리적이며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힘이 정의다. 이 이른의 실제적 의미는 현존하는 사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역사주의적 도덕론(마르크스의 도덕론)은 도덕적 실증주의의 또 다른 한 형태에 불과하다. ‘도래하는 힘이 정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 대신에 들어섰을 뿐이다. - P286

역사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역사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부여한 의미이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수동적으로 끌려가야 할 역사의 의미나 법칙은 없다. 역사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우리는 역사 자체가 지닌 법칙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예언하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가 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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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18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저도 2권 찾아놨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8-18 08: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좋은 시간 되세요! ^^:)
 

최씨와 안씨에 대한 법원 판단을 종합하면, 안씨는 사업 과정에서 최씨와 공모해 허위로 잔고증명서를 만들었다. 최씨를 대리해 부동산 매매계약과 이와 관련한 민사소송, 개인사업자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등에 사용했다. 쉽게 말해 ‘잔금을 치르거나 대출금을 갚을 동업자(최씨)가 재력이 있어, 돈 떼일 일 없으니 안심하라‘는 취지로 활용한 것이다. - P15

2020년 3월27일, 최은순씨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을 수사한 의정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효상)는 최씨를 재판에넘기며 다음과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①동업자 안 아무개씨와 공모해 2013년 4차례에 걸쳐 통장에 거액 (4개 증명서 총합 347억원, 사문서 위조)이 있는 것처럼 잔고증명서 위조 ②위조 잔고증명서 중하나를 민사소송 중 법원에 제출해 사용(위조 사문서 행사) ③다른 사람 명의로부동산 소유(부동산실명법 위반). - P17

그러나 비용편익(B/C) 값이 절대적기준은 아닐지라도 사업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기본적이고 중요한 근거라는사실은 분명하다. 국토부가 타당성 조사를 맡은 용역업체에 해야 할 일을 정해주는 ‘과업지시서‘에도 비용편익 값 산정과경제성 분석을 하도록 돼 있다. - P21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누구든 신고만 하면 집 밖에서 집회를열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인정되지 않는다(헌법 제21조 1항 및 2항)." 온라인 댓글을 바탕으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이중의 정당성문제를 낳는다. 조직적 투표 독려가 가능한 이 창구가 여론을 대표한다고 볼 수있을지 불분명하고, 설령 99%가 찬성해도 그 내용이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을 제한할 수는 없다. - P26

그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학교 내에서평교사와 교장·교감은 완전히 다른 집단이며, 엄격한 상하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바꿔말하면 교장·교감이 어렵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대응하면 교권 침해 등 학교 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장혜진 교사 역시 교권 침해 과정에서 교장·교감의 ‘무성의한 대응‘ 탓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 P29

 리튬이온전지의기본이 되는 리튬 가공은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담당하며, 세계 코발트 가공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원료 가공과정에서는 각종 환경오염이 유발되는데, 여타 선진국과 달리 환경규제가 약하다는 점도 가공산업에서 우위를 점하는요인이 되었다. 전 세계 이차전지 기업이 모두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P36

그러나 이차전지 시장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차전지 산업에서도 역시 중국은 최대의 수요처지만, 최대 공급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 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파고들기가 어렵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는 IRA로 인해 중국 기업을 견제할 기회가생긴 셈이다.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은 이미 미국 현지에 많은 공장을 건설했기에 부담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점은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다. 중국이 아닌, 미국과 FTA를맺은 나라들로 공급선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 P37

우려되는 건 이렇게 쏠린 자금 중 적잖은 비율이 ‘빚‘이라는 점이다. 아래 그림>에서 한국 증권시장의 신용거래융자는 7월 19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개인(가계)의 저축액도 상당 부문 이차전지를 비롯한 자산시장으로 넘어갔으리라는분석도 가능하다.  - P43

 마코위츠는 수익률뿐 아니라위험을 함께 고려해야 최적의 투자 전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트폴리오 이론의 핵심이다. 투자자들은 수익률과 위험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 투자 전략을 결정하는데, 이들이 위험회피(risk-averse) 성향을 갖고 있다면 두 변수의 최적 (optimal) 조합을 찾을 수있다는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두 개 주식의 수익률이 같다면, 그 중 위험이 낮은 주식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 P51

위의 예에서 보았듯 A와 B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경우 각각의 위험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주식에 투자할 경우 ‘개별 기업 수준의 위험‘
은 분산되어 사라진다. 반면 코로나19의 창궐 같은 좀 더 거시적인 위험은 종목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없앨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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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신 선생은 고려청자에서 나온 산화철의 함량이 평균 1.8퍼센트로 송나라 청자의 3퍼센트보다 적다는 걸 분석해냈습니다. 그리고 고려청자의 색이 송나라 것보다 더 회색빛이 나는 까닭이 망간(은백색 광택이 나는 중금속 원소)의 함량이 더 높기 때문이란 것도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성분 분석만으로는 결코 고려청자를 재현해내지 못합니다. 도자기는 재료, 유약의 종류, 굽는 온도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거든요.

조선백자는 결코 고려청자보다 못한 도자기가 아닙니다. 사실 백자는 청자만큼이나 만들기가 힘듭니다. 보통 흙에는 산화철이 들어 있어서 불을 만나면 푸르게 변합니다. 이 때문에 백자를 만들려면 산화철이 없는 자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열을 받으면 푸른빛을 내는 요소가 유약 속에도 들어 있기 때문에 유약을 더 정제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기술의 우열로 가리기보다 취향의 차이로 봐야 합니다.

목판본은 새길 때 공이 많이 들지만 인쇄 분량이 많을 때는 효율적입니다. 반면 금속활자는 조립과 해체가 쉽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을 조금씩 찍을 때 목판본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죠. 중국은 인구가 어마어마한 만큼 책을 값싸게 공급할 때는 목판본 인쇄가 금속활자 인쇄보다 더 유리했겠죠? 그에 비해 고려나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대체로 다품종 소량 인쇄에 적합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나 조선이 중국에 비해 금속활자 기술 개발에 훨씬 적극적이었던 겁니다.

질긴 한지의 비밀은 찧고 두드리는 과정에 있습니다. 나무의 섬유 조직은 많이 찧고 두드릴수록 세게 뭉치면서 광택이 있고 희고 두꺼운 종이가 되거든요. 중국이나 일본의 종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이런 전통을 줄곧 유지했습니다.

화차는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바퀴를 달아 이동성을 높였고, 각도 조절의 폭을 넓혀 훨씬 먼 곳까지 신기전을 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신기전이나 화차 같은 무기가 19세기 초에나 등장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크게 승리한 것도 신기전과 화차 덕분이었습니다. 화차 3백 대가 있었기에 3만 명에 달하는 왜군을 불과 2300명의 병사로 무찌를 수 있었던 겁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은 빼어난 아름다움과 과학적 설계를 자랑하는 건축물입니다. 옛 성들이 단순히 적을 막는다는 개념으로 지어진 반면, 화성은 공격과 방어를 위한 각종 설치물이 세심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그런 설치물들이 눈에 띌 겁니다. 대충 지나치지 말고 주의해서 보기 바랍니다

온돌의 효율은 어떻게 높일까요? 온돌의 핵심 기술은 구들장이 오랫동안 식지 않게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구들장으로 쓰는 돌이 중요합니다. 운모, 편마암, 화강암 등 열의 보존과 전도가 잘되는 것을 구들장에 쓰는 이유죠. 다음으로, 열기를 오래 붙잡아둬야 합니다. 구들장이 채 달궈지기 전에, 또는 달궈지고 나서도 열기가 금세 빠져나가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개자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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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반도체 산업은 평화를 이끌었다. 싱가포르에서 대만과 일본까지, 베트남을 제외한 아시아 전체를 늘어난 투자와 길고 단단해진 공급망을 통해 미국과 더욱 밀접하게 엮어 냈던 것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혁신을 기반으로 삼아 전 세계가 단단히 연결되고 있었다. 심지어 소련 같은 적국마저 미국의 반도체 및 반도체 생산 수단을 베끼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편 반도체 산업은 미군이 미래의 전쟁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꿀 새로운 무기 체계가 등장하는 촉매 역할을 해냈다. 미국의 힘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1980년대는 미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스스로가 세계 첨단 기술 산업의 정상에 올라 있다고 생각했지만, 2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한 그들은 이제 실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일본과 서로 목숨 걸고 경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략에는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다. 페리는 노이스를 비롯한 그의 실리콘밸리 이웃들이 반도체 산업의 꼭대기에 남아 있으리라고 전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1986년이 되자 일본은 반도체 생산량에서 미국을 추월해 버렸다. 1980년대 말 일본은 세계 리소그래피 장비 공급량의 70퍼센트를 차지했는데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반도체 산업 지원 여부는 워싱턴에서 로비를 통해 결정되었다. 우선 실리콘밸리 사람들과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한 가지 사안이 있었다. 바로 세금이었다. 밥 노이스는 의회에서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를 49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낮추고, 퇴직연금이 벤처 캐피털 회사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금융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팰로앨토의 샌드힐로드에 자리하고 있는 벤처 캐피털 회사들에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음으로 의회는 반도체칩보호법Semiconductor Chip Protection Act을 통해 지식재산권 규제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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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은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 쓰던 검역 방식과 크게 달랐습니다. 검역은 돌림병이 도는 곳에 사람과 교통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돌림병이 도는 지역에서 오는 사람과 물건은 빠짐없이 조사해서 40일 동안 격리시킨 다음 별 문제가 없으면 출입을 시켰습니다. 피난이나 검역 모두 돌림병을 막기 위한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피난은 나만 살겠다는 소극적 방법입니다. 검역은 지역 공동체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할 일이었죠. 또 검역을 하면서 돌림병에 대한 지식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뜻을 모아 계를 만들었습니다. 돈을 내서 약재를 사 오고,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그 약을 쓰는 식으로 운영한 것이죠. 이처럼 계는 비싼 비용을 들여 약국을 차리지 않고도 약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민간에서 약재의 소비가 많아지자 약계는 더욱 발전하여 가게처럼 되었는데 그게 바로 한약방이었습니다. 약계는 1603년에 만들어진 강릉 지역의 약계가 잘 알려져 있고, 이후 240여 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조선시대까지 우리 의학의 역사에서 최대 사건은 뭘까요? 저는 다시 한 번 서슴지 않고 한의원과 한약방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뿌리내린 것을 꼽겠습니다. 《동의보감》 같은 뛰어난 의서가 있어도 왕족과 양반, 그리고 서울 사람만 혜택을 누린다면, 백성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이겠죠? 17세기 후반부터 이후 2백여 년 동안 ‘한의학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방에도 의원이 생기고 한약방도 생겨났죠. 한의학이 널리 퍼져서 보통 사람들과 지방 사람들도 이용하게 된 겁니다.

만파식적을 형상화했다는 설은 신라 범종, 더 나아가 그것을 계승한 우리나라 종의 특색을 잘 설명해줍니다. 신라 범종이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고유한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범종에 보이는 쌍룡을 한 마리 용(단룡)으로 바꾸고 대나무 모양의 음통을 만드는 기술 전통을 만들어나간 겁니다. 또 단룡과 만파식적의 모양을 갖추면서 좌우로 약간 비대칭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맥놀이 현상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음통이 음의 고주파 영역대 소리를 빨리 사라지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석굴암은 석굴 안에 본존불을 모신, 우리나라에서는 몇 안 되는 유적입니다. 게다가 유일한 인공 석굴로 석굴 안에 반구형으로 된 천장, 다시 말해 돔을 만든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습니다. 여기에 수학적 비밀까지 담겨 있으니 정말 놀라운 유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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