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루이스 멈포드 지음, 김종달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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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기술이 처음에 지리적 탐험에 진 많은 빚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탐험이 결국 변화를 위한 초석을 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관념화, 구체화, 합리적 공식화의 초기 국면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결합시키는 국면으로 지금 막 넘어가려 하고 있다... 지리적 탐험은, 짧게 말해 엄청난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양적이면서 동시에 질적인 혁명이었다. 지리적 탐험은 지구 전체 사람들 간 교류를 성립시켰고, 전 지구적으로 에너지 자원의 증가, 재화, 식물, 사람, 사상의 교류를 가져왔다. 이것은 많은 적응들을 쇠퇴시켰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509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90)의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The Myth of the Machine: The Pentagon of Power>은 이른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로 불리는 지리적 탐험 이후 가속화된 과학(科學 science)와 기술(機術 technology)의 결합 그리고 사회적으로 관료제(官僚制, bureaucracy)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가 거대한 기계 그 자체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총체적 효과는 인간의 삶을 포함해 자연적 존재의 표현에 대한 외부적 통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공식적으로 결합되지 않았다면, 양자는 용해되기보다는 무시하기 쉬운 느슨한 관습법의 관계를 지속했을 것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154


 경험적 사실로부터 귀납적으로 일반법칙을 도출하는 추상화가 과학이라면, 증명된 과학의 법칙을 일반화시켜 일상생활에 보편화시키는 연역화는 기술의 영역이다. 과학법칙에 의한 사고의 변화는 기술을 통해 생활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생활로부터 얻어지는 잉여는 과학에 재투자되면서 일종의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순환구조를 통해 생성되는 힘은 점점 더 거대해지면서 사회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된다. 


 기술과 과학에 공통되는 주요 전제는 지식, 물질적 재화, 환경 통제의 증가에는 바람직한 한계가 없다는 관념, 즉 수량적 생산성 자체가 목적이고, 모든 수단은 계속적인 확장을 위해 사용됭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학이 예견과 통제의 영역을 넓히면서, 지금까지 침입할 수 없었던 자연의 신화에 침투하고, 모든 측면에서 인간의 힘을 증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우리는 풍요의 경제로부터 야기된 새로운 곤궁에 직면하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180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새로운 시대,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이 거대한 힘의 원천은 플라톤(Platon, BC E427~ BCE 348)과 중세 스콜라 철학 이래의 추상적, 형이상학적 사고에 기초한 수학에 있었다. 추상적 사고와 수학이 충분히 성숙했을 때 그것은 중세의 복합문화를 깨고 단일화되고 경직된 근대화를 불러오게 된다. 


 과학과 과학에 바탕을 둔 기술은 상상의 실체와 가설적 관계를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중세의 능력이 수학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때까지는 번성하지 못했다. 중세 신학이 부족했던 점은 엄격한 추상성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풍성함, 운명 그리고 고결함의 구체성을 이해하는 능력이었다. 여기에 심미적 자연주의는 많은 기여를 해왔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45


  복합기술의 장점 중 하나는 기술, 심미적 판단과 감상, 상징적 이해가 특정 계급이나 직업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전체 공동체에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복합기술은 그 특성상 단일하게 축소되고,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시스템, 중앙 집중적인 통제 아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복합기술의 많은 부분은 여자의 관심과 여성 방식의 작업이 많았던 신석기 문화로부터 도출된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197


 중세의 추상적 사고에 의해 대체된 것은 복합문화 뿐만이 아니다. 이 시기 지식의 소유계급 브라만(Brahman) 또한 신학(神學)의 과학(科學)으로의 이행과 함께 성직자로부터 과학자들로 대체되었다. 고대와 중세 시대 국가권력과 결탁을 통해 호국(護國)의 이데올로기로 성(聖)의 권력으로 생존해온 종교(宗敎)와 마찬가지로 과학 또한 정치적 중립 또는 기술관료로서 충성을 통해 새로운 기계 시스템의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데 성공한다. 


 일단 과학자들이 신학, 정치학, 윤리학, 시사(時事)를 논의 영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자, 그들은 국가 지배자에 의해 환영받았다. 보상으로 과학자들은 습관적으로 공적인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외견상 '충성'스러웠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정신적 고립은 새로운 거대기계의 톱니로 운명 지워졌다... 과학은 수도원의 구도자들이 자신의 규율을 위해 그러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바쳐 헌신하는 많은 '성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소외와 자기기만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64


 이러한 종교를 대신한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저자 멈포드는 복합기술에서 단일 기술로의 표준화가 인간 개인에게는 가치를 박탈하고 소외의식을 불러왔으며, 사회 전체적으로는 '진보(進步)'라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 제시와 이의 실현을 위한 전체주의적 사회가 형성되었음을 비판한다. 


 모든 측면에서 노동은 인간의 마음을 넓히고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 사람이 단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은 사고력을 자극하고 신체의 능력을 확장해 온 많은 활동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의 목적을 위해, 어떤 이는 인간의 기본 속성을 도구 이용과 도구 제조로 정의하는데, 이는 인류학적 정체성을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면 기계화와 자동화가 인간이 지닌 적응성 있는 사고력에 영향을 미칠 때 기계화와 자동화의 축적된 결과에 대해 인간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243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과거 부정과 파괴 후 재생산을 통해 사회 자체는 끊임없이 운동하지만, 운동을 통해 더 집중화되고 획일화되는 과정 속에서 발전을 통한 빈곤화가 가속화된다는 일종의 역설이 거대 기계화의 숨겨진 면이다.


 끝없는 기계적 진보의 전망, 전체주의적 유토피아, 과학적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현실적 외삽법 등은 모두 보통 실현되는 것보다 실제 일상의 변화에 더 활동적인 역할을 했다.이러한 예상되는 주관적 선동은 항상 실제 경험에 앞섰고, 끈질기게 유인하고, 다음 단계에 앞서 지적하고, 그리고 변화의 템포를 감소시키거나 방향을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는 우주의 속성상 당연히 예정된 것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저항을 깨부수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308


 거대기술은 결핍이라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해결하기 곤란한 새로운 형태로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사용할 수 없고 인내하지 못하는 풍요로움에서 직접 기인하는 삶의 심각한 결함이다. 그러나 결핍은 남는다. 명백히 기계가 만들어낸 물질적 상품과 기계적 서비스의 결핍이 아니라, 생산성, 속도, 힘, 위신, 금전적 이익 이외의 가치에 기초하는, 보다 풍요로운 개인적 발달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모든 것의 결핍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448

 

  기계화란 무엇인가? 루이스 멈포드는 <기계의 신화>를 통해 현대 인류에게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지는 기계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로부터 저자는 기계화가 단순히 물질문명을 지탱하는 생산공정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거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오랜 역사적 산물임을 주장한다. 리바이어던이 갖는 오랜 역사만큼 그 올가미는 단단하고 우리를 강하게 옭아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문화에서 선사시대의 복합화를 위한 엘랑 비탈(Ellan Vital)을 해야 할 것이다.


 지리적인 미개척 영역은 이제 끝났지만, 덜 피상적인 탐험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탐험이며 객관적 현상뿐만 아니라 주관적 현상으로의 탐험이다. 이 새로운 탐험은 원인-결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거의 탈출할 수 없고 묘사될 수 없는 복잡성의 패턴을 다루는데, 이 복잡성은 시간을 통해 흐르고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510


 글의 마지막은 본문에 언급된 핵(核)과 관련한 최근 두 주제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자.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Edward Nolan) 감독의 <오펜하이머 Oppenheimer>와 24일부터 개시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서로 다른 두 주제를 거대한 기계의 신화를 통해 생각하면서 글을 갈무리한다...


 핵폭탄을 발명하면서, 신 거대기계의 핵심적인 인간 요소는 공간적으로 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최고사령관이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353


  현재까지 핵분열이라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의 부정적 결과가 어마어마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핵폭탄에 관한 한, 유일한 긍정적 이익은 일시적으로 새로운 거대기계를 만드는 산업의 관료적, 과학적 조직들이 생겨나는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다음에 원자로 통제를 통해 성취한 가장 큰 이익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측면이다. 우주 실재에 관해 풍부해진 인식, 즉 살아 있는 유기체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점유하게 된 우주와 공간의 본질에 대한 심화된 통찰력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402



(신세계의 발견과 이로 인한 19세기) 퇴보의 결과, 기계적 신세계가 인간 정신 내부의 ‘낭만적 신세계‘를 대체했다. 낭만적 신세계는 기존 질서의 진정한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현실 도피자의 몽상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신과 새로운 종교의 결합으로부터 새로운 기계적 세계관이 생겨났다. 모든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모든 성공적인 새로운 발명과 더불어 새로운 기계적 세계관은 자연계와 인간 문화의 다양한 상징들을 단지 기계적 측정에 의해 재단된 환경으로 대체시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탈인간화된 환경을 우선시한다 - P43

인간의 첫 번째 정교한 기계는 주로 인간적 부분으로 구성되고, 마음에 의해 기계화, 조직된 것이었다. 기계체의 의식적 발전은 특히 인간적 특성인데, 나무와 금속 부품의 기계에서처럼 언어와 예절의 조직에서 볼 수 있다. 정신 자체는 유기체 고유의 기계를 창조, 이용, 초월하는 방법으로서 대부분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 P140

진보에 대한 최초의 사고는 아마 신성한 목적을 위한 자기 완벽이라는 기독교적 생각에서 배태되었을 것이다. 황금기로의 복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 완벽의 이상적 완성은 천국에서 정적인 미래의 완성이었다. 이 진보의 관념은 천년왕국 즉, 먼 천국으로의 통로가 아니라 땅에 강림할 더 실체적인 천국에 대한 당시의 믿음에 뿌리내리고 있었다(p270)... 개선은 안정적이고, 지속적, 필연적으로 축적된다는 세계상은 계몽주의 지식인의 온화한 낙관주의뿐만 아니라 인류사에서 그들 자신의 자리라는 자기 아부적 관념까지 반영했다. - P271

국가 조세로부터 비롯된 엄청난 증여가 현대 경제의 경제적 역동성을 지탱하는 이윤동기를 대체해 왔다. 이윤과 손실, 비용과 편익이란 계산은 결코 거대기계의 작동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없다. 비용은 다시 편익으로 전환된다. 즉 군사적 노후와 노골적인 파괴를 통한 예기된 손실은 신선한 기업 이윤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또는 예상되는 전쟁을 통해 거대기계는 그 범위를 증대시켰고 권력을 확대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가 작동을 규제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두었던 피드백 형태를 제거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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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계보는 단순히 복잡한 구조를 지닌 서사 혹은 다신주의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원시적인 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이 계보는 오히려 신들의 역사를 추적하고 이들이 세계에 행사하는 권력의 지도를 그리면서 신들의 혈연관계나 탄생 경로를 토대로 이들의 본질을 묘사하는 아주 복잡한 인식 도구에 가깝다.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는 신들이 탄생과 결합과 동맹과 분쟁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나누어 가졌고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할당된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이야기한다. 제우스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티탄들은 반대로 타르타로스의 심연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바빌론의 「에누마 엘리쉬」에서 태초의 쌍은 물을 다스리는 신들로 구성되지만 그리스신화에서는 흔히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다. 바빌론의 서사시에서는 승리를 거둔 마르두크가 태초의 신 티아마트의 몸을 해체하면서 우주를 창조하지만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생식 욕구와 생성의 역동성(예를 들어 태초의 에로스)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우주의 주권자로 등극한다. 또한 히타이트의 계승 신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헤시오도스의 계승 신화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가이아의 존재가 있다.

로마인들이 ‘운명’을 무언가 ‘말해진fatum’ 것, 즉 신들이 천명한 것으로 이해했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운명’은 ‘연결되어’ 있거나 ‘고정되어’(이것이 바로 영어의 destiny, 이탈리아어 destino의 어원인 라틴어 동사 destinare의 뜻이다) 있는 것과 연관된다. 반면에 그리스인들의 ‘운명’은 무엇보다도 ‘분배’라는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삶과 운명을 하나의 ‘분량’으로 보는 관점은 그리스신화의 여러 이야기에 생명의 교환이라는 주제가 등장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양도하거나 물려준다는 이야기가 가능했다. 인간의 삶이 그에게 할당된 ‘분량’이라면, 적어도 신화 속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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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과학의 역사에서 중국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나카야마가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요한 발전이 거의 언제나 먼저 일어나고 이후 ‘주변‘으로 그 발전이 확산되는 ‘중심‘이었다. 물론 시기에 따라 중국 내의 여러 지역들 사이에서 ‘중심‘과 ‘주변‘ 관계의변동과 뒤바뀜이 일어났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중심‘과 ‘주변‘의 이러한 뒤바뀔은 결코 그렇게 자주 예컨대 서양의 경우처럼 자주 -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중심의 지위는 과학 분야에서 특히철저했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중국에 대해 정치적, 군사적, 또는경제적 측면에서 일시적인 우위를 차지한 경우는 있었지만, 과학에서 중국의 지배적 지위는 거의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렇듯 "중국=중심‘의 거의 절대적인 지위로 인해, 중국 문화권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도 대체로 중국 과학의 중심성을 인정했다. - P183

그에 따르면, 세종대의 한국인들이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하는 역산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자주적‘ 정신의 발로였기보다는 중국에 필적하는 역 계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시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자신들의 수도를 기준으로 하는 역계산법을 소유함으로써 중국의 수준에 달하려는 그들의 염원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역산 체계를 ‘역(曆)‘이라고 부를 수없었기 때문에 산(算)‘으로 명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명나라 조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명나라 황제만의 독점적 특권으로 여겨진 역산 체계를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했다는 사실을 만일 명 조정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조선 왕의 충성심을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사례 또한 조선이 여전히 중국의 중심성을 인정하고 있었음을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P189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실제 관측과 일치하는 정확한 수치들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역서에 중국 역서처럼 각 도에 해당하는 수치들을 포함시키는 것 자체였던 것이다. 중국과 같은 수준의 역서를 제작하여 사용하고 그 사실을 내세우려고 하는 이같은 노력은 역사서 편찬 주자학 체계 수립 등의 노력에서 보듯이 문화와 학문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과 같은 수준의 성취를 꾀했던 징조 시기의 다양한 작업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이런 작업들은 조선이 모든 분야, 모든 차원에서 중국과 같은 수준에 달하려는 희망을 보여주며, 역법과관련해서 이 절에서 살펴본 상황은 이 같은 작업들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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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삶과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마찬가지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증명하지 못한다.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대로 인간의 삶을 둘러싼 사물들의 신비와 이에 대한 경이에서 탄생한 것이라면, 이 놀라운 경험을 토대로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아낙시메네스Anaximenes의 학설이 탄생했고 이를 토대로 밀레토스에서 자연의 질서라는 개념이 이론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물을 만물의 원리이자 기원으로 봄으로써 변화의 물질적인 원인을 탐색하는 연구의 ‘선도자’ 역할을 했고 이와 함께 자연에 대한 탐구 및 철학 자체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그리스어 아르케arche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원리와 기원’이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신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인 불멸성을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이며 동시에 물리적인 존재에 부여하면서 이 존재를 변화하는 우주의 원리, 즉 아페이론*과 일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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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는 한국전쟁 거치고 휴전상태로 굳어지면서 체제화되었다고 봐야 옳을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이 중요한 것은, 분단이 하나의 체제가 된다는 것은 상당한 안정성을 갖게 된다는 얘기거든요, 그게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일정한 안정성을 지니게 된 겁니다.

그래서 분단과 분단체제는 구별할 필요가 있고요. 그렇게 해야 어떤 학자의 말이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분단 자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건지 판별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분단 자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은 내가 약간 비아냥조로 말한 후천성분단인식결핍증후군이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거예요.

베스트팔렌체제란 것은 인류의 정치·국가의 역사상 극히 한정된 시기에 한정된 지역에서 통하던 체제였고, 1차대전이 벌어지면서 그 원래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국제연맹을 만들자고 그랬잖아요,

보통 우리가 체제를 이야기할 때 핵심요소로서 경제체제를 이야기하면, 정치체제는 다시 따져야 되겠습니다만, 재산권 문제를 봐야 되고 그다음에는 거버넌스를 봐야 합니다. 거버넌스라는 건 우리가 시장이냐 계획이냐 할 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자원분배 시스템을 반드시 다루게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통상 소유제도를 보통 체제의 핵심요소라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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