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세밀하고 순수한 질료로 구축된 자연세계와 이질적이고 분리된 지점에서 우주에 운동을 부여하는 지적인 힘이라는 개념, 즉 ‘지성nous’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이었다. 반면에 아낙사고라스가 지성의 특징으로 지목하는 신성한 요소들의 근거는 사실상 원형arche의 신성화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자연철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어떤 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것에 대해 논리logos를 추적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아울러 이러한 논리는 지적인 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필연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이다

건강과 병이 자연적인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면 오감을 통해 이들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생각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육체의 변화 현상을 주목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사의 관찰은 지적 행위인 동시에 선별 행위여야 한다. 그는 감각을 토대로 하는 정보들을 이성적 기준으로 분류하고, 신체적 변화의 징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그만이 알 수 있는 기호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후’는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예후』는 이 개념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고대 비평가들이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썼다고 간주해 온 이 저서는 병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그 경로를 추적하는 의사의 능력을 다룬다.

그렇다면 이 소피스트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들은 말 그대로 앎의 전문가들, 다시 말해 사고와 언변에 탁월한 능력과 기술을 가졌던 이들이며 오늘날의 문화 비평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위인들 가운데 최초로 못생긴 인물이었다는 말은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라는 용어가 상징하던 이상적인 결합, 즉 한 개인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보장하는 미美와 선善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요소들의 이상적인 결속력을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무너트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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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첼 카슨 전집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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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가장자리에 서서 넓은 염습지 위를 움직이는 안개의 숨결을 느끼며, 수백만 년 동안 조용히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 모래톱 위를 나는 새들의 비행을 지켜보는 것은 이 지구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인간이 바닷가에 나타나 경이에 가득한 눈으로 대양을 바라보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7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1907~1964)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Under the Sea-Wind>를 통해 바다와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생명을 말한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매 장면을 눈을 감고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에서 독자들은 영상에 제약되지 않은 바다 생명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겨울 동안 어린 거북은 남아 있는 노른자를 영양분 삼아 버텨냈을 것이다. 겨울이 길고 추위가 모래 속까지 스며들어 많은 새끼가 얼어 죽었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약하고 무기력해서 태어날 때보다 줄어든 몸체를 알 속에서 잔뜩 웅크렸다. 그러다 알에서 깨어나면 부모 거북이 새로운 후손을 낳아 묻어놓은 모래 위를 힘없이 움직였다... 풀숲 끝자락에서 쥐가 거북의 보금자리를 노려보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왜가리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북쪽 해안으로 날아갔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41


 저자 레이첼 카슨은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바다라는 삶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상상하되, 인간이라는 척도의 기준을 버릴 것을.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 대신, 자연이 허락한 기준인 빛과 어둠, 밀물과 썰물, 거스를 수 없는 해류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수온 등. 우리에게 단어로 존재하는 조건들이 바다 생물들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상상력의 날개는 활짝 펴질 것이다.


 진짜 바다의 시작은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아니라 깊이로 판단한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107


 바다의 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면 상상력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또 인간이 지닌 많은 특징과 인간 중심의 척도를 잠시라도 포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계나 달력으로 재는 시간과 세월은 해안의 새나 물고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바다에서의 삶이 지닌 특징을 알 수 없고, 우리 자신을 그 속에 투영할 수도 없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9


 그러면서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을 의인화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안의 동물들은 열망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하는데 춥고 배고픈 것을 피하려는 생명의 본능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 욕망이라는 요소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생명의 삶이 영위될 수 있다면, 인간의 욕망이란 불필요한 사족(蛇足)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쉬기 위한 고등어의 열망이 자신의 명예를 구하려는 아킬레우스의 열망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다른 한편 물기기와 새우, 해파리, 새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그들을 실제 있는 그대로의 생명체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행동에 대한 비유에서 지나치게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물고기는 물리적으로, 인간은 심리적으로 반응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물고기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9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고등어 떼는 항구 입구의 바위를 지나 물살이 급하게 몰아치는 곳으로 향했다. 바닷물은 염분으로 인해 짜고 깨끗하고 차가웠다. 바위와 물고기가 뒤섞이다 보니 수면이 온통 여기저기 갈라져 산소를 구하는 움직임으로 들썩였다. 고등어는 주둥이로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 온몸을 흔들어대며 흥분에 겨워 돌진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며 또 강렬히 열망했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144


 바다 생명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담긴 <바닷바람을 맞으며>속에서 대부분 인간의 모습은 풍경화 속의 배경처럼 주변에 머무른다. 그렇지만, 이따금 미래 닥칠 재앙에 대한 예언과도 같은 다음 구절은 지나가듯 나타나지만, <침묵의 봄>에서와 같은 저자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모든 만과 강에서 몰려나온 물고기들이 대륙붕을 가로지르고 고깃배들은 남쪽으로 향했다. 온갖 낚싯줄과 그물을 매단 배들이 겨울 바다 곳곳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다. 겨울 휴식처를 찾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북쪽 항구 곳곳에서 몰려온 저인망 트롤선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송어와 넙치, 도미와 민어는 만과 해협을 벗어나면 어부의 그물로부터 안전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선박들이 오더니 긴 자루 같은 그물을 드리웠다가 끌어당겼다... 트롤망 어선은 매년 연안 어류의 겨울철 서식지에서 수백만 킬로그램의 물고기를 잡아들였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11


 <바닷 바람을 맞으며>는 제목 그대로 평안한 바닷가에서 보다 깊은 바다로 시선을 옮기며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바다지만 삶의 터전으로 그곳 또한 치열한 생명의 약동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결코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평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글의 마지막은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잘 설명한 서문의 글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며 끝맺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의 구성은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해 분투하는 각각의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격렬한 투쟁에 입각한 다윈주의적 결정론이 아니라 기회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생명체가 살아남는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 바다 생명체에 대한 카슨의 이야기는 고요한 느낌을 전해준다. 카슨의 글이 특별한 것은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반응하는 자연의 냉철한 위력을 과학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 관련있는 개별적인 생명체와 공감하는 동일시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문, p17

제비갈매기는 수면에 거의 붙은 채 강 상류로 1.5킬로미터 정도를 날아가 늪지 위를 크게 빙빙 돈 다음 다시 강어귀로 내려왔다. 아침 안개를 뚫고 물고기와 해초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어부들이 목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그물에 매달린 고기를 떼어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물을 배의 평평한 바닥에 쌓으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 P48

고래 사체는 몇 달 전 해안가로 떠밀려 왔는데, 겨울 내내 만 근처에 사는 까마귀와 그 친구들의 먹이가 되어주었다. 폭풍으로 인해 얼음 덩어리가 움직이며 고래의 사체를 밀어 보낸 것이다. 먹이를 보고 지른 툴루각의 환호성에 다른 세 마리 까마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툴루각의 뒤를 따라 순록 뼈에 붙어 있는 살점 몇 조각을 먹기 위해 툰드라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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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29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때, 레이철 카슨의 책을
사모았는데... 읽지는 못했네요.

그 때 사지 못한 책이라 더 애잔
하다는 느낌이...

바다를 오염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대멸종의 시대에 쉽지 않은 미션
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8-29 21:21   좋아요 1 | URL
생명이 넘치는 바다에 독을 푸는 행위는 정말 인류에 씻지못할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고 폭주를 막아야겠지요...

베이글 2023-08-30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곧 내면의 바다에 침잠해 있었는데, 너른 자연의 바다로 시선을 돌려주는 책이네요.

서문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생명체가 살아남는다‘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제가 머물 적절한 곳은 어딘지 지금 이 시기에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3-08-30 12:35   좋아요 2 | URL
가끔은 확신에 차서 걸어가고 있는 길이 사실은 잘못가는 길이기도, 불확실하게 고민했던 길이 좋은 선택이었던 경험을 해봅니다. 아무래도 현실이라는 벽에서 넓게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면에서 지금 어두운 현실에서 많이 힘이 들지만, 훗날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좋은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베이글님 말씀처럼 저도 바닷가에서 육지 쪽이 아닌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 건너에 있는 희망을 상상하게 됩니다. 베이글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3-09-02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십년 전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을 읽다가 치명적인 고발내용에 빨려들어 밤을 꼬박 지새웠던 기억이 소환되게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3-09-02 17:22   좋아요 0 | URL
저도 <침묵의 봄>을 읽은 후 바다 3부작을 접하는데, <침묵의 봄>과는 다른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작가의 다른 면을 보게되었습니다 호시우행님 좋은 하루 되세요! ^^:)
 

한 인간이 살아온 기간을 가리키며 ‘지나간 시간’을 의미하는 ‘아이온’은 ‘크로노스chronos’, 즉 ‘측량된’ 시간, 예를 들어 날이나 계절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아이온’은 생명력으로서의 시간이고 ‘크로노스’는 계산된 시간이다. 시간에는 ‘아이온’과 ‘크로노스’ 외에도 ‘카이로스kairos’, 즉 순간이 있다. ‘카이로스’는 예기치 않은 순간, 놓치지 말아야 할 절호의 기회("카이로스는 모든 것의 으뜸이다." 헤시오도스, 『일과 날』, 694),

이러한 시계들의 사용을 뒷받침하는 고대인들의 ‘주기적인’ 시간 개념 옆에는 동시에 ‘직선적인’ 시간 개념이 존재했다. 이는 훨씬 방대한 시간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른바 ‘기준시’를 정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간 개념이다.

소리가 자연적 원리를 내포한다는 사실이 피타고라스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이를 토대로 산술학적, 기하학적, 화성학적 비율에 대한 수학적 탐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렇게 디오니소스 살해라는 오점을 등에 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디오니소스 의례는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인류가 속죄를 구하고 이 오점으로부터 정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르페우스 의례에서 정화 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주제는 ‘환생metempsicosi’, 즉 사망 후에 영혼이 새로운 육신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이었다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는 헤시오도스와 같은 선상에 위치시켜야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영감의 원천인 신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맡긴다는 점, 다름 아닌 지혜가 신들에게서 온다고 믿는다는 점, 그리고 ‘장르’의 차원에서 6행시를 선호한다는 점 등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르메니데스가 변화와 탄생과 죽음이라는 특징에서 벗어나 있는 단일한 실재(동시에 물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실재)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실재에 대한 탐구,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는 실재들, 예를 들어 수학적인 실재들에 대한 탐구를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이 전하려는 내용을 하나의 로고스, 즉 사람이 손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변화의 ‘규칙’이나 ‘이성’으로 상정한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해력이 부족한’ 인간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axynetoi’가 신비주의 문헌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이해력이 부족한’ 독자는 바로 신비주의에 ‘입문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유동성이 안정성만큼이나 중요했고 상반된 것들의 대립이 이들의 통일성 못지않게 중요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극단적인 유동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영속성의 상징이기도 한 ‘불’에 사물의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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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한국의 과학과 문명 19
김영식 지음 / 들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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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인 것이 서양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가 아니라 처음에는 중국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는데, 이 같은 간접성은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1910~1945)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정도는 약했지만 얼마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동화하는 정도와 수준을 크게 제약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0


 김영식은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은 서구 과학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드러나는 조선 후기 간접성과 주변성 등을 지적한다. 중국 중심의 중화(中華)주의와 유교적 신분 질서가 조선 시대 전반을 지배했기에 기준은 언제나 명(明)과 청(淸)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서는 조선 전기 세종 대에 이루어진 세계적 수준의 과학적 성과도 중국의 시스템 내에서의 응용에 불과하고, 조선 후기 서양 과학 문명의 수용도 중국의 뒤를 이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과학의 역사에서 중국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나카야마가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요한 발전들이 거의 언제나 먼저 일어나고 이후 '주변'으로 그 발전이 확산되는 '중심'이었다. '중국=중심'의 지위는 과학 분야에서 특히 철저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183


 세종 대의 역법 관련 작업에 관해 살펴보면서 이 작업을 한양을 기준으로 조선의 독자적 역법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주적' 노력으로 보아온 그간의 견해와 달리, 이를 중국 수준의 역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노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았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정조(正祖) 시기인데 중국 역법의 틀 안에서 진행된 이 시기의 조선 역 확립과 역서 출판 과정은 조선의 과학이 지니는 독자성, 자주성의 성격과 한계를 보여준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190


 저자는 본문에서 조선시대 과학 전통의 한계와 오늘날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을 연결짓는다. 실용에 치중하는 과학계 풍토, 근대 과학 도입 시기 일본에 대한 과다한 의존, 사안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들의 자세 등 여러 문제점을 언급한다. 저자가 본문을 통해서 주장하는 내용은 이미 앞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뒷받침되기에 한편으로 수긍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면서도 다른 면에서는 의문을 품게 된다.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이 과연 문제점만 있는 것인가? 또는 지적한 문제가 한국 과학계만의 문제인가? 하는 물음.


 한국 근현대과학기술의 초기 단계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과학기술이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특히 경제적인 효용과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추구되는 것이라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공리주의(功利主義)적인 과학 기술관이었다. 이 같은 과학기술관의 밑바탕에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 '도(道)'와 '기(器)'의 이분법이 깔려있다(p251)... 이 같은 생각에 따라 과학기술은 '도'가 아니라 '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과학과 기술은 한국 문화와 학문의 다른 영역들로부터 대체로 유리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1


 저자는 한국 과학사에서 공리주의적인 성격이 강했음을 비판한다. '과학+기술'에서 '기술'이 강조되고 '과학'이 경시되어 보다 깊은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동서양의 사상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신-인간-자연'을 각각 다른 존재로 보고 각각의 법칙을 규명하려 한 서양 문명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동양 문명의 차이. 이러한 차이가 이른바 기초과학에서 취약성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있는 그대로 '기술 중심의 한국 과학기술문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 첨단 과학기술이라는 반도체에서도 '설계-소재-조립'등 분야가 세계적으로 분업화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 우리가 잘 하는 분야인 기술에 더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 편으로, 과학자들이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한 채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에서 사제집단으로 자리한 것을 우리나라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인계층 문제를 지적한 것은 다소 과도하게 다가온다.


 중인 계층 사람들이 나중에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중요한 결과를 빚어냈다. '중인의식(中人意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계층 사람들 특유의 태도인, 자신들은 단지 그 주변인에 불과한 전체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은 결여한 채 자신들의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에 치중하는 태도가 사라지지지 않고 현대 한국 과학기술계에서도 두드러진 특성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5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계의 신화>를 통해 근대 서구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의 결합이 가져온 인간 소외의 비극과 함께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와 과학자라는 새로운 사제 계급의 문제를 지적한다. 멈포드가 지적한 이런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는 주변적이고 간접적인 한국 전통에서 인간소외와 환경 파괴를 비롯한 현대 과학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이러한 대안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인 듯하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보다 더 높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은 유가 사상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지속되었다... 유가 사상의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자연현상은 대부분 지각(知覺) 가능한 규체적 성질들과 물리적 효과를 수반하며 따라서 ‘형이하(形而下)‘에 속하기 때문에 유학자들에 의해 빤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것들이 지각되는 형태대로 받아들여졌다. 겉으로 드러난 경험적인 데이터를 넘어서는 더 깊은 탐구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P28

유학자들은 격물을 표방하며 과학기술의 주제들을 공부하고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 사물들의 개별적 ‘리‘들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 결코 격물 작업의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격물의 궁극적 목적은 여러 개별 ‘리‘들을 통해 하나의 ‘리‘, 즉 ‘천리(天理)‘에 도달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 P78

전문직 중인들은 품계와 승진 등에서의 명시적인 차별에 더해서 지배 계층인 양반들로부터 멸시당하고 사회 중대사의 결정에 아무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양반사인들이 이들에 대해 지닌 편견이 뿌리 깊고 차별대우가 심했다. 전문직 중인들이 종사하는 전문 분야의 실무가 양반 지배계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데다가, 서얼들의 잡과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서얼에 대한 차별 의식도 전문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P147

조선 유학자들은 중국의 서적을 통해 서양 과학지식을 접했을 뿐 아니라, 실제 서양 과학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서적들을 구하는 데서도 중국 학자들을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이처럼 중국을 통한 ‘간접적‘ 도입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조선 유학자들이 서양 과학지식을 접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었음은 당연했고 그에 따라 그들의 서양 과학 이해의 수준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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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을 두고도 시끄럽다. 대표적으로 김태우전서울강서구청장(국민의힘)이 꼽힌다. 형이 확정된지 3개월만에 사면이단행된 데다, 그의 공익신고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을 부인하는 대통령실·여당의 발언이 계속 나온다. 김 전구청장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으로인해 다시 치러지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의지를 드러냈다. 야당에서는 "법치주의 유린" "법치의 사유화"라고 지적한다. - P13

지금까지 총 세 차례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사면에는 ‘자기부정‘이라는 단어가 곧잘 따라붙는다. ‘검사 윤석열이 유죄를 이끌어내고, 대통령 윤석열이 사면·복권해준‘ 이들이다수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이다른 대통령의 사면보다 더 문제적인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6년 국정 농단특별검사 수사팀장을 시작으로 문재인정부 당시 2017~2019년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작업의 선봉에 섰다. - P13

이첩 당일인 8월2일 오전 10시께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일단 이첩 출발은 시켰다"라고 보고했다. 김사령관은 "내가 중지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었고, 박 대령은 "직권남용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답했다. 김사령관은 1분 정도 생각한 후 "알았다"라고 말했다. 박정훈 대령에 따르면 ‘최초의명령‘을 받은 시점은 이날 오전 10시51분이다. 김 사령관이 전화로 "당장 인계 멈춰"라고 말했다. 박 대령은 "이미 인계 중이다. 죄송하다"라고 답한 뒤 인계 중인하급자에게 멈추도록 지시하려 했으나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날 오후 박대령은 보직 해임됐다.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박정훈 대령의 주장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 P25

감사원의 이번 5차 감사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금강·영산강의 일부 보 해체를결정할 때 그에 따른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하게 이루어졌으니 환경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방안을 마련하라. 둘째, 당시보처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4대강 조사·평가단‘의 위원회가 불공정하게 구성되었으니 환경부에서는 이를 허용한 담당자를 인사 조치하고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업무를 철저히 하라. - P29

물론 하천의 특성에 따라 준설을 통해 치수 사업을 펼쳐야 하는 곳도 있다. 퇴적량이 많아 문제가 되는 일부 구간에, 일시적으로 활용할 경우 치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지류·지천의 강바닥을 퍼내 만드는 ‘물그릇‘은 본류보다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퇴적의 속도 역시 빠를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임시대책인 것이다. - P31

미국과 유럽연합은 중국과 대결을 강조하는 디커플링 (decoupling)보다는 경쟁과 협력에 방점을 둔 디리스킹 (derisking)으로 정책 전환을 하고 있다. 자칫하면 국제정세의 흐름과 동떨어진 채 한반도에서만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시대의 진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협력과경쟁을 택하면서, 대결 수요를 한반도에서 충족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미래에 낀 먹구름이다. 북·러 밀착 관계나 군사협력은 한반도에서 진영 대결 구도 형성을 촉진할 것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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