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동서설 - 감춰진 동이(東夷)의 실체와 고대 한국
부사년 지음, 정재서 옮김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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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사년의 <이하동서설>은 중국의 고대 문명을 남북 간의 이항구조로 파악하던 전통적인 관념을 뒤집고 동서 간의 대립으로 인식을 전환시켰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으며, 이(夷) 곧 동이의 실체를 드러내고 정치적, 문화적 지위를 부각시켰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p42)... 다만 부사년은 은(殷)과 이(夷)의 관계에 대해서는 하(夏), 주(周)와 대립된 동방의 국가라는 차원에서 친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종족적, 지역적, 기원적으로 구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 애매한 느낌을 준다. 은(殷)을 고조선과 같은 계통으로 보는 반면 이(夷)의 활동 범주를 대륙 내지인 산동(山東) 등에 국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대 한국은 동이계로 간주하지 않는 셈인데 다소 의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p43) <이하동서설 : 해제> 中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說>은 중국 역사학자 부사년(傅斯年, 1896 ~ 1950)에 의해 이 주장된 내용으로, 중국 고대사를 '하(夏)'와 '이(夷)'의 대립으로 본다는 면에서 1930년대 당시 중국 학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학설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 동쪽의 거대한 지역은 하천에 의해 충적된 대평원이어서 산동반도에 있는 산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가 해발 1,200m 이하의 평지다... 이에 반하여 서쪽의 거대한 지역은 산과 산 사이에 끼인 고원지대여서 도시는 늘 하천의 양안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는 동쪽의 평지를 동평원구(東平原區), 거대한 산 속에 끼인 서쪽의 고지를 서고지계(西高地系)라고 간략히 부르겠다.(p231)... 분명 이(夷)와 은(殷)은 동쪽 체계에 속하고 하(夏)와 주(周)는 서쪽 체계에 속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235)<이하동서설> 中


 부사년은 먼저 서쪽 고원 지대와 동쪽 평원 지역으로 이루어진 중국 지형에 주목하고 이러한 지형으로부터 '동(東) - 서(西)' 간의 대립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하동서설>에서 말하는 동이(東夷)는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구이(九夷)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다양한 민족이 포함된다. 또한, 은(殷) 또는 상(商)은 동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넓힌 고대 중국의 제국(帝國)이었다.


 무릇 은상(殷商)과 서주(西周) 이전, 혹은 은상이나 서주와의 동시기에 지금의 산동성 전 지역과 하남서의 동부, 강소성(江蘇省)의 북부, 안휘성(安徽省)의 동북부 전체, 아울러 하북성의 발해(渤海) 연안 및 바다 건너 요동(療東)과 조선의 양안(兩岸)까지 일체의 지역의 모든 부족과 모든 성씨들을 전부 '이(夷)'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夏) 한 시대의 대사(大事)란 바로 이러한 이인(夷人)들과의 투쟁이었다.(p155) <이하동서설> 中


 [지도] 하나라 영토 지도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mir98&logNo=6021019475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동이(東夷) 가운데에는 부여(夫餘), 읍루(揖婁), 고구려(高句麗), 구려(句麗)[맥이(貊耳)], 예(濊), 한(韓)[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왜(倭) 등이 있다.(p268) <이하동서설> 中


 상인(商人)이 세웠던 제국은 전성기 때 무력이 몹시 강대하였으며, 패망한 이후에도 쓰러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쪽으로 해동에서 일어나 서족으로 기양(岐陽 : 섬서성 기산(岐山)일대)에까지 이르렀던 이 대제국이 당시의 문화 수준에서 건립될 수 있었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위대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특수한 무기나 견고한 사회조직에 힘입고서야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p122) <이하동서설> 中


 부사년은 이러한 '동-서' 대립 구조의 사례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춘추(春秋)전국(戰國)시대 이래 후한(後漢)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립이 있어 왔으나, 이후 이(夷)가 동화되면서 이러한 갈등은 점차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진(秦)이 6국을 통합한 것은 서가 동을 이긴 것이요, 초(楚)와 한(漢)이 진(秦)을 멸망시킨 것은 동이 서를 이긴 것이요, 평림병(平林兵)과 적미군(赤眉軍)이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왕실에 대적한 것은 동이 서를 이긴 것이요, 조조(曺操)가 원소(袁紹)에 대립한 것은 서가 동을 이긴 것이다. 그러나 양한(兩漢) 때에 이르면 동서의 융합은 이미 상당히 심화되어 대치하는 형국이 삼대에 미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p238) <이하동서설> 中


 저자 부사년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동-서' 대립이라는 일련의 역사법칙을 도출해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 속에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하동서설>에서 동이(東夷)라는 단어지만, 사실 부사년이 말하고 싶었던 바는 '하(夏)'다. 1928 ~ 1937년까지 은나라의 중심지였던 은허(殷墟) 발굴을 주도한 그는 중국 역사를 보다 이른 시기인 '하'나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하동서설'을 주장하였고, 이 책은 이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한 학설은 이후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해 <이하동서설>의 연구결과는 현재 거의 폐기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동서설'은 중국 '동북공정 東北工程'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핵심 이론 중 하나라는 점과 그가 만든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많은 재야학자들의 이론이 생산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변증법적 규칙을 따라 전국 시기에 융합 혼재하게 되었으니 이 과정이 바로 하(夏), 상(商), 주(周) 왕조가 교체되어 온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민족 간의 갈등이 바로 동서방간 이(夷)와 하(夏)의 투쟁인 것이다. 진(秦) 왕조가 시작된 이래 2,000년간에 걸친 고대 중국의 민족적 갈등은 남북간 투쟁으로 개괄될 수가 있으므로 광대한 연해지방 이인(夷人)들은 혹은 북쪽으로 이주하여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거나,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여러 섬들 및 심지어는 남태평양을 거쳐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p325) <이하동서설 : [부록] 동이(東夷)와 그 역사적 지위> 中


 대개 은나라 사람들은 동방의 이인(夷人)들 가운데에서 가장 선진적인 일부였을 것이며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지니고 갔던 일정한 사회풍습은 은상(殷商)과 떼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사물의 발전추이란 언제나 불균형성을 띠고 있어 선진성과 낙후성이 곧잘 동시에 공존하기도 하므로, 광범위한 동방의 이인(夷人) 지역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원시부락과 그들의 사회적 유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p314) <이하동서설 : [부록] 동이(東夷)와 그 역사적 지위> 中


 <이하동서설>과 [부록]에 수록된 글 속에서 우리는 동이(東夷)가 중국 문명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반(反) 역할을 수행하는 변증법의 요인에 불과함을 확인하게 된다. 후한 시대 이후 중화 문명이라는 하나의 합(合)으로 녹아들어갔다는 그의 학설 속에서, 고구려 역사가 중국 지방 정부의 역사라는 구도로 발전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야 사학에서 이러한 '동 - 서' 대립 구도를 그대로 차용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존재하는 것은 우려가 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이하동서설>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하동서설>을 읽어야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을 위해서가 아닐까. 역사(歷史)는 진실(眞實)이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에서 교훈(敎訓)을 끌어내는 것은 후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바른 역사관의 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하동서설'은 목적 역사관의 한계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역사관은 아니지만,  관련하여 고(故) 리영희님(李泳禧, 1929 ~ 2010)의 언론관과 관련한 명언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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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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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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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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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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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05: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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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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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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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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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1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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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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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세계사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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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은 진동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간 네트워크를 따라 전달되었다. 그 길을 따라 순례자와 전사 戰士, 유목민과 장사꾼들이 여행하고, 먼 곳에서 온 물건이 거래되었으며, 사상이 교류하고 수용되고 다듬어졌다. 이 길은 번영뿐만 아니라 죽음과 폭력, 질병과 재앙도 실어 날랐다. 끝없이 뻗은 이 연결망은 19세기 말 독일 지질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 Ferdinand von Richthonfen에 의해 명명된 이후 그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실크로드 silkroad다.(p14) <실크로드 세계사> 中


[사진] 실크로드(출처 : 위키백과)


 피러 프랭코판(Peter Frankopan)은 <실크로드 세계사 The Silk Road : A new history of the world>속에서 고대부터 2010년대까지 문명 교류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인 시기는 매우 짧았으며, 오랜 기간 세계의 중심은 중앙아시아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유수의 지적 증심지는 유럽이나 서방이 아니라 바그다드와 발흐,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였다... 그들은 사상을 주고받으면서 철학과 과학, 언어와 종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p16)... 그러나 근대 초기에 진보의 주역이 바뀌었다. 15세기 말 두 차례의 해양 탐험이 가져온 결과였다... 갑자기 서유럽은 지방의 벽지라는 위치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통신과 수송과 교역 시스템의 구심점으로 탈바꿈했다.(p17) <실크로드 세계사> 中 


 중앙아시아 중심의 세계사를 표방하는 <실크로드 세계사>는 로마보다는 페르시아가, 십자군보다는 셀주크 투르크가 역사의 중심에 놓여 있다. 마치, 지도를 거꾸로 보는 것과 같은 인식 변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대 사회가 결코 분리된 각각의 문명권이 아닌 서로 영향을 깊이 미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약 900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읽을 때마다 벽에 부딪치고 말것이다. 그러니, 일단 아래의 내용을 인정하고 넘어가자. 인류 역사는 고대부터 교류의 역사였다.


 고대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로마를 서유럽의 시발로 보는 것은 로마가 줄곧 동방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방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인도를 페르시아만 및 홍해와 연결하는 교통량이 늘면서 고대의 초기 실크로드는 활기를 띠었다.(p59) <실크로드 세계사> 中


 후대에 '비단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실크로드를 따라 종교, 문화, 사상, 질병 등이 활발하게 퍼져나가게 된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이 이 길을 따라 전염되었으며, 이 길을 통해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통일  신라에도 전파되었고, 불교와 기독교 역시 이 길을 통해 동과 서로 퍼져나갔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전파되면서 서로 혼합되고 받아들이면서 영향을 끼쳤다. 동방 기독교는 영지주의(gnosis)와 결합하면서, 서방 기독교와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중국의 불교는 도교(道敎)의 영향으로 선(禪)사상을 결합시키는 등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7세기 초의 문헌들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자기네의 생각을 불교와 조화시키려 노력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저 불교와 상충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대체로 말해서 기독교가 바로 불교라고 중국에 갔던 한 선교사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 사상과 불교 사상을 체계적으로 융합하려 노력했다.(p110) <실크로드 세계사> 中


 그리고, 이러한 문명의 교류와 발전의 중심지는 바로 중앙아시아였다. 동과 서의 교류 중심지로서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교역품과 금(金)과 은(銀)이 모이는 풍요로운 곳이었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Tigris- Euphrates)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오랜 기간 인류에게 에덴(Eden)동산이었다. 그렇지만, 15세기에 들어 실락원(Lost Paradise)의 시대가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가 개척되던 초기 많은 양의 금과 은이 중앙아시아로 흘러가면서 중앙아시아는 크게 부흥하게 되지만, 분위기가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그다드는 이슬람 세계의 풍요와 왕권의 중심지, 후원과 위신의 완벽한 상징이었다. (p165)... 많은 자료들은 대규모 교역품이 페르시아만을 드나들고 중앙아시아에 이리저리 뻗어 있던 육로를 따라 이동했음을 입증한다... 9세기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7 만점의 도자기를 실은 배가 난파한 사실은 당시 엄청난 교역 물량을 보여준다. 이 시대는 황금기였다.(p168) <실크로드 세계사> 中


 당시 황금시대가 시작된 것은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발칸 반도에서부터 북아프리카까지 오스만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다. 그 자금은 계속 늘고 있는 조세 수입으로 충당했다.(p384)... 그러나 서아시아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에서 흘러들어오는 금, 은과 기타 보물들의 홍수로 돈을 벌고는 있었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수출품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바로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였다.(p386)... 유럽과 인도의 영화는 아메리카 대륙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p392) <실크로드 세계사> 中


[사진]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Cajamarca)


 15세기 유럽이 중심이 된 것은 과학, 종교, 자본주의의 결합을 통해 이룩한 것이었다. 풍요로운 부(富)를 과시하는 중앙아시아에 비해 가진 것이 없던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통해 폭력을 행사할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동양에 대한 인식의 변환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부정적인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형성되는 것도 이즈음부터다.


 유럽이 1490년대의 대탐험 이후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그들이 폭력 및 군국주의와 굳건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p423)... 싸움과 폭력과 살육도 정당성이 있는 한 미화되었다. 이것이 아마도 종교가 그렇게 중요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p424)... 유럽 각국 정부는 군비에 충당할 자금이 부족하자 대출 시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미래의 세금 수입을 담보로 돈을 뜰어올 수 있었다... 정부 부채에 대한 그들의 투자는 애국심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국가 재정에 투자하는 것은 출세하는 길이었고, 또한 부자가 되는 방법이었다.(p428) <실크로드 세계사> 中


 표면 아래서 강력한 흐름이 눈에 띄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가 뻣뻤해지고 있었다. 동방을 이국적인 초목과 보물로 가득한 놀라운 나라로 보던 태도를 바꾸어, 현지 주민들을 아메리카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쓸모없는 사람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p451)... 아시아에 대한 태도는 얻을 수 있는 이득으로 인한 흥분에서 노골적인 수탈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었다.(p451) <실크로드 세계사> 中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시작된 식민지화는 19세기 들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중국이 반식민지 상태에 빠지면서 제국주의(帝國主義) 시대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동시에, 중앙아시아 역시 교역의 감소와 더불어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인도의 대부분이 영국의 손에 넘어가자 육상 교역로가 생명력을 잃었다. 구매력과 소비력, 자산과 관심이 결정적으로 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군사기술과 전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기병대의 중요성이 떨어진 것 또한 수천 년 동안 아시아를 이리저리 연결해주던 길을 따라 운송되던 물량의 감소를 촉진했다. 중앙아시아는 그 이전의 남부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p457) <실크로드 세계사> 中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과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대립은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1813 ~ 1907)으로 치닫게 된다. 이제는 전쟁터로 바뀐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영국, 오스만 투르크의 격전장이 되버렸다. 아직 석유를 주동력으로 사용하기 이전, 이 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기에는 세계적인 밀의 생산지 우크라이나가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인 이는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였다.


[사진] 우크라이나 밀(출처 : https://www.agweb.com/article/higher_wheat_prices_more_complex_than_ukraine_turmoil_naa_ben_potter/)


 문제를 러시아의 영토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면서 자신감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p468)... 크림 반도와 아조프해에서 벌어지고 다른 곳들에서 잠깐 비쳤던 어렴풋한 전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익이 걸려 있었다... 러시아를 통제하고 암묵적으로 인도에서의 영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은 크림 반도와 캅카스 전역의 통제권을 오스만에 넘겨주는 것이었다.(p477) <실크로드 세계사> 中


당시 식량부족으로 힘들어 하던 히틀러는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Unternehmen Barbarossa)을 통해 소련을 침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침공 결과는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Schlacht von Stalingrad)를 통해 독일의 패배로 끝나게 되지만, 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 바르바로사 작전(출처 : http://www.stalkerzone.org/collapse-barbarossa-stopped-hitlers-death-machine/)


 히틀러는 1940년 7월 말 새로운 모험을 발표하면서 그것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위장했다. 이제 볼셰비즘을 제거할 기회라고 그는 요들 장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원자재와 무엇보다도 식료품이었다... 바케는 독일의 문제에 소련이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했다.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면서 스텝 지대는 유목민들의 목장에서 곡창지대로 서서히 변모했다.(p612)... 우크라이나는 열쇠였다. 흑해 북안과 카스피해 너머까지 펼쳐지는 풍요로운 농작물 평원을 손아귀에 넣으면 독일은 천하무적이 된다.(p613) <실크로드 세계사> 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대신해서 중앙아시아에서 소련과 대립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레이건의 아래 말이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은 '검은 황금'이라 불리우는 석유의 생산지인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결코 잃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란-이라크 전쟁(1980 ~ 1988)', '걸프전쟁(1990)', '미국 -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 ~ )', '미국 - 이라크 전쟁(2003 ~ 2011)'등의 사건이 직간접적으로 미국과 연계되어 이어지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소련과 따뜻한 바다 인도양의 입구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소련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 그 나라를 점령하고, 가능하다면 이란과 파키스탄까지 점령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란에 매장된 석유는 세계 경제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p795) <실크로드 세계사> 中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계속된 유럽-미국의 패권은 최근 중국(中國)의 부상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어가는 중국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실크로드 세계사>는 마무리 된다. 


[그림] 일대일로(출처 :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C%9D%BC%EB%8C%80%EC%9D%BC%EB%A1%9C)


 중국 정부는 물자와 에너지원에 연결되고 도시, 항구, 대양들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꼼꼼하고도 신중하게 구축하고 있다. 교역의 물량과 속도를 대폭 늘리기 위한 기반시설을 개선하거나 아예 새로 건설하는 데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는 발표가 매달 새로 나온다.(p854)... 시진핑이 2013년에 제시한 일대일로 一帶一路 비전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은 중국이 미래를 계획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p862)<실크로드 세계사> 中


 <실크로드 세계사> 가 다루는 시대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약 9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해당 시기의 주요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서술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다. 동시에,  실크로드의 역사 전체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세계사의 우리의 시각이 확장됨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살펴보자.


  많은 경우 우리는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 개인의 극단적인 분노의 결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처럼 엄청난 일이 개인의 단순한 증오에서만 비롯되었을까? 여기서 당시 히틀러가 단기간에 유럽을 지배하면서 식량과 원자재가 부족했었다는 점을 연계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자원 부족을 절감한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게 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자원을 소모하는 인구(人口)를 줄이려는 목적으로도 유대인 대학살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유태인 학살은 나름의 위기 탈출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태인 학살을 독일 국내 문제, 히틀러 개인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이처럼 새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 세계사>는 이렇게 새로운 관점을 여러 곳에서 제시한다.


 이처럼, <실크로드 세계사>는 우리에게 문명권들간의 영향력과 배경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국내'요인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세계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실크로드 세계사>는 좋은 문명교류사 입문서적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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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26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 주셨으니 기대되는 책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8-07-26 18:28   좋아요 0 | URL
두꺼운 페이지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만,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큰 부담없이 즐겁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읽자나 2018-07-26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 특히 영국이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분쟁의 씨앗을 심어 놓았는지 보고 화났던 기억이...

겨울호랑이 2018-07-27 09:55   좋아요 1 | URL
네 읽자나님의 말씀처럼 현대 중동 문제의 씨앗을 유럽 열강들이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중동 및 아프리카의 난민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서니데이 2018-07-2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무척 더운 날씨입니다.
겨울호랑이님,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7-27 18:28   좋아요 1 | URL
정말 계속 더운 요즘이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사통 (한정보급판) - 오천 년 중국사에서 가장 탁월한 역사서 사통
유지기 지음, 오항녕 옮김 / 역사비평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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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통 史通>은 당나라 역사학자 유지기(劉知機, 661 ~ 721)가 저술한 '역사 歷史'에 관한 책이다. 내편 內編 10권 36편, 외편 外編 10권 1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통>은 내편에서는 사관 史官으로서 역사를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외편에서는  과거 사료 특히,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86?)의 <사기 史記>, 좌구명(左丘明, BC 556 ~ BC451)의 <춘추좌전 春秋左傳>, 반고(班固, 32 ~ 92)의 <한서 漢書> 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


  역자 오항녕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통>은 '동양의 역사란 무엇인가?'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번 리뷰를 통해 중국 역사서의 서술과 역사관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유지기가 생각하는 동양의 역사는 무엇일까? 역사는  '불후의 사적을 남기기 위한 인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역사 기록자인 사관은 이를 충실하게 기록할 의무가 있다.

 

 '위로 제왕으로부터 아래로 보통 사람들까지, 또 가깝게는 조정의 관리로부터 멀게는 산림에 묻혀 숨어 있는 사람까지, 누구나 조바심을 내면서 공적이나 명성을 열심히 추구한다. 이는 왜인가? 불후의 사적 事績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불후의 사적이라고 부르는가? 바로 역사서에 이름이 남는 일이다.'(p597)


 유지기는 <사통>의 내편 14편에서 22편에 이르기까지 사관들의 역사서술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4. 칭위 稱謂 : 호칭 사용의 정확성


 '칭위'는 사람 인물을 기재할 때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기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유지기는 사관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기재한 일관성 없는 호칭을 비판한다.

 

 '옛날부터 쭉 살펴보면 명칭을 정하는 방법은 한결같지 않았으며, 인정과 도리에 따라 만들어졌기에 본래 정해진 기준이 없었다.(p260)...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애증이 생긴 나머지 제멋대로 명칭을 부여하고 다시 그것을 삭제하는 것도 합당한 원칙 없이 자신의 붓끝에서 나왔으니, 이 같은 역사서는 내용도 결코 기준이 될 수 없고 각각의 편명도 해괴할 뿐이다.(p262)... 사론 한 마디, 한 구절은 주의를 기울여 올바르게 작성해야 한다(p264)... 어떤 이름을 버리고 채택하는 방식에 변함없는 규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근대의 역사서에 대체로 이러한 잘못이 많이 보인다.(p265)'


15. 채찬 採撰 : 사료 수집의 적절성


 '채찬'에서 저자는 동일한 사실에 대한 다른 여러 견해가 생길 수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면서 사관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비판적 판단을 통해 역사서에 이를 기재할 것을 요구한다.


 '대체로 동일한 사실을 기록해도 다른 견해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 말하는 사람마다 이거다 저거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쓰는 사람들 역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p280)... 그러므로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듣고 말하는 사실이 사리에 어긋날 수 있으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p281)... 아아! 떠나간 사람들은 아득한 구천에 있어 두 번 다시 살아날 수 없는데, 한 번 역사가가 잘못함으로써 그들에게 가해진 비방이나 칭송은 멀리 천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그러므로 학자라면 이상한 내용이나 의심스런 사실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다루어야 할 것이다.'(p282)


16. 재문 載文 : 문장 인용의 주의점

 

 '재문'에서는 문장 인용 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저자는 간략하게 사실만을 기술하여 후세에서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판단할 수 있도록 기술할 것을 사관들에게 요구한다.


 '위진魏晉 이후에는 모든 문장이 잘못된 쪽으로 부화뇌동하게 되었다. 그 문제점을 잘 헤아려 논해보면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거짓 설정(허설 虛設)이고, 둘째 얼굴이 두껍다(후안 厚顔)는 것이고, 셋째 남의 손을 빌리는 것(가수 假手)이고, 넷째 자기모순(자려 自戾)이고, 다섯째 분별없이 한 가지 기준으로 개괄하는 것(일개 一槪)이다.'(p290)


 '지금 역사를 저술하면서 문장을 수록할 때 내실 없이 화려하기만 한 것들은 버리고, 반면 바르고 실질적인 것들은 잘 모은다면 아무리 문장이나 꾸미는 작은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라도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고 옮겨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p301)


17. 보주 補注 : 주석의 득실과 우열


 '보주'에서는 역사가들이 주석을 붙였을 때 보다 신중하게 살펴 기재할 것을 요구한다. 역사가들이 신중하지 않게 작성한 주석은 후세에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해 작성되어야 한다. 


 '대체로 역사를 편찬하고 거기에 주석을 덧붙이는 경우, 다른 사람의 기록을 통해 사실을 설명하기도 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기록은 한이 없고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믿고 따를 만한 하나의 학설이나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모범을 만들기 어렵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상세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p311)


18. 인습 因習 : 인습의 오류와 병폐


 '인습'에서는 사관들이 과거 역사서의 잘못된 점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고쳐나갈 것을 강조한다. 


 '아아! 예로부터 두루 살펴보면 이 같은 종류의 실수가 매우 많았으니, 지워야 하는데 지우지 않은 것이 어찌 단지 갈홍의 이름뿐이겠는가. 어찌 이런 일로 해서 홀로 비웃음 섞인 꾸짖음을 자초하는가. 역사를 편찬하는 사람이 사건을 상세히 판별하고, 그것을 정밀하게 서술하여 한 구석을 보면 나머지 세 구석을 판단할 수 있고, 지나간 것을 보고 앞으로 올 것을 알 수 있다면 아마 큰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p325)


19. 읍리 邑里 : 출신지 기록의 오류


 역사가 흐르면서 지명(地名)은 계속 변화되어 왔다. 사관들이 이것을 일관성있게 기술하지 않으면 후세에 많은 혼돈이 생길 수 있으니, '읍리'에서는 이것을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잘못은 모두 누적된 버릇이 계속 전해지면서 차츰 습속을 이뤘던 데서 생겼으니, 미혹되었으면서도 고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함께 도모하기는 어렵지만, 만들어진 뒤에는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천 년 동안 따르면서 그대로 고사로 삼았는데, 하루아침에 바로잡으려고 하면 반드시 반대에 부딪칠 것이다.'(p335)


20. 언어 言語 : 언어 표현의 사실성


 사관이 역사를 기록할 때는 당시의 상황을 마치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기술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을 남겨야 잘된 역사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정치를 잘하는 자는 사람을 차별하여 다스리지 않기 때문에 풍속이 정밀하든 거칠든 누구나 그 교화를 입을 수 있다. 역사 서술을 잘하는 자는 일을 가려서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이 아름답든 추하든 모두 후세에 전해질 수 있다. 사실에 전혀 오류가 없고 언어도 분명 진실에 가깝다면 훌륭한 옛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먹다 남은 술지게미를 얻는 데 그치겠는가.'(p352)


21. 부사 浮詞 : 어쭙지 않은 말과 과장


 '부사'에서는 화려한 수식어 등은 들어내고 간략하게 표현할 것은 요청한다. 사족 蛇足이 될만한 말은 빼고, 핵심적인 내용만 서술할 것을 요청한다.


 '말에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또한 이것인지 저것인지 결정이 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가 일단 한마디 하면, 역사서에는 그에  대한 두세 가지 다른 평가가 생기는 법이다. 번잡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올바른 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면 쓸수록 보는 사람이 혼란스러워진다.'(p362)


 '대개 오리 다리가 짧다고 다른 것을 이어 붙이면 괴로워지는 법이고, 역사서의 문장이 간략하다고 다른 말을 덧붙이면 오히려 누가 된다. 그러니 선대 역사가의 기록에 무언가를 더하고 빼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p367)


22. 서사 敍事 : 서사의 방법과 유의점


 '서사'에서는 사관이 역사 서술 시 유념해야할 점을 말한다. 역사서는 결국 개별 문장들의 집합이므로, 문장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은 핵심적인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담는다는 것이며, 사관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사실을 기술해야 한다.


  '무릇 훌륭한 국사 國史란 서사가 정교해야 하는데, 서사가 정교하다는 것은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담아대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니, 간략하다는 한마디가 담고 있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p379)


 '대개 사실을 서술하는 방법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재능과 행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건의 시말만 기록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모를 알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있다. 넷째는 저자의 평론을 빌려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경우이다.'(p381)


 '서사 敍事라는 것도, 산만한 문장이나 불필요한 이야기를 헛되게 덧붙이고 여기저기서 끌어오지만, 반드시 핵심이 되는 내용을 취하고자 하면 결국 한마디 한 구절에 지나지 않는다.' (p387) ... 말을 기호로 표현하면 글자가 되고, 글자를 짜놓은 것이 구절이 되며, 구절이 쌓이면 한 장 章이 되고, 장이 쌓이면 편 篇이 되는데, 편목이 나누어지면 한 역사가의 견해로써 세상에 통용된다.'


 '역사에서 가장 힘써야 할 데가 분명 문장과 관련된 훈련임을 잘 알 수 있다. 오경부터 삼사에 이르기까지 그 서술은 문장만 가지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모두 전달하고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근래의 저작은 이와 다르다. 그 서술에는 헛되이 수식을 더하고, 가볍게 채색을 일삼는다.'(p403)


 서양의 역사학자 E.H. 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라고 정의했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 시점에서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서양의 역사'라면, '동양의 역사'는 무엇일까?


  유지기는 <사통>에서 일관성있으면서도 간략한 핵심 서술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강조한 유지기의 사관 史觀은 서양의 근대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의 실증사관(實證史觀 Empirical History)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사관들은 무엇때문에 '불후의 사적'을 도모하여 애쓴 사람들의 기록을 간략하고 핵심적으로 남겼을까? 그 답은 비록 역사서는 아니지만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용비어천가 125장 (그림 출처 : http://simjeon.kr/file/yb/yb-3.htm)


 동양에서 역사란 후세에 재평가되고, 교훈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인 듯하다. 서양에서 역사란 '현재 시점에서 규정된 과거의 기록'이라면, 동양에서 역사란 '미래 시점에 해석될 수 있는 과거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유지기에게 역사는 '미래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는 아닐런지. <사통>을 보다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중국 고대 역사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통> 자체로도 동양의 역사학자들이 추구한 역사서 집필의 방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에 비록 <사통>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충분히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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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1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실한 리뷰의 양대산맥은 겨울호랑이 님과 사이러스 님이시군요. 리뷰 진국 인정합니다아 !

겨울호랑이 2017-06-01 16:15   좋아요 2 | URL
곰곰발님의 창의적인 페이퍼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2017-06-01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01 18: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한마디로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것 같은데요, 애당초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역사서가 과거나 현재까지 단 한번이라도 존재할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6-01 19:30   좋아요 3 | URL
^^: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아마도 그런 역사책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단어 선택에도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이 되네요..

cyrus 2017-06-01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채찬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했었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1 19:33   좋아요 1 | URL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혼의 정상화‘같은 말은 감히 못했을텐데요... 지금이라도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어 다행입니다.

AgalmA 2017-06-01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가도 역사가지만 행정가도 중요하죠. 오늘도 100년된 근대문화유산을 어떤 협의도 없이 허문 인천구청장 규탄 소식이 들리고^^;;

북다이제스터 2017-06-01 21:03   좋아요 2 | URL
jtbc 보고 계시네요. ㅋ 저도 그걸 보는 중 입이다. 아, 국정 역사교과서 얘기 나오네요. ㅎㅎ 사효나라 ㅋ

AgalmA 2017-06-01 21:06   좋아요 2 | URL
시간에 늘 쫓기니 멀티로ㅎ;
JTBC도 문제가 자주 보여 걸러 들으며 봅니다ㅎ;

북다이제스터 2017-06-01 21:10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 글에 객이 자꾸 글 남겨 정말 죄송히지만, 뉴스룸도 손석희도 객관적이지 않죠. ^^

겨울호랑이 2017-06-02 02:08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처럼 역사를 기록하는 이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만드는 이도 중요하지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主體)니,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 생각되네요. 밤에 늦게 끝나 뒤늦게 확인하니 AgalmA님과 북다이제스터님께서 jtbc뉴스룸을 요약해 주시고, 평가까지 해주셨네요. 덕분에 뉴스시간 아끼게 되었습니다.ㅋ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6-01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 다닐 때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이가?> 가 필독서 였는데..
유지기의 <사통> 은 부끄럽게도 낯서네요..
1500년 전에 쓴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부제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전해지네요

겨울호랑이 2017-06-02 02:13   좋아요 2 | URL
^^: 유지기 <사통>이 번역된 것이 2012년이니 비록 1,500년 전에 저술되었지만, 최근에 발굴된 책처럼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해보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보다 사마천의 <사기>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보다 유지기의 <사통>이 보다 심도있게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볼 때, 동양의 지혜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좀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마천 2017-06-02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만에 들어본 이름이네요. 사통
이 책 까지 호랑이님 덕에 보게 됩니다
감사 ^^

겨울호랑이 2017-06-02 12:40   좋아요 1 | URL
^^: 사마천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기 세트」전집을 구매했고, 오늘 도착 했네요^^:

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책이기에 기쁨이 큽니다. 「사기세트」는 민음사(김원중 역)등 여러 출판사에서 이미 나와있지만, 위즈덤 하우스 판본은 다른 출판사와 다른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한문 원문이 실려있다는 장점에서 차별화가 됩니다. 그 이유로 이 판본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아래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지만, 사진과 같이 번역문과 원문이 같이 있기에 깊이 있는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시중에서 「사기 원문」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즈덤 출판사 본(신동준 역)이 마음에 들었으나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근 ‘칼 맑스전집‘과 ‘중세시리즈‘를 구입한 직후라 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알라진 중고서점에서 최상품을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는 말에 구입을 바로 했습니다. 집에서 ‘도서구입관련 청문회‘가 우려되었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이 들었고 19세기 영국 일화가 떠올라 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혹은 글래드스턴)이 이집트 정부가 내놓은 수에즈운하 주식을 매입할 때의 일화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수에즈 운하 지배권을 확보할 여유자금이 없어 유대인 거상(로스차일드 가문)에게 영국제국을 담보로 돈을 빌려 수에즈 운하 지배주주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이 나에게 ˝수에즈 운하˝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과 구매적기라는 생각에 지난 금요일에 주문해서 오늘 도착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일단 구매를 했는데 조금 눈치가 보이네요.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회해야할 것 같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하도록 하고 지금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기쁨을 나누고 싶어 앞뒤없는 글을 올려 봅니다. (다른 곳에서 이런 이야기하면 별로 공감하지 못해 북플을 통해 몇 자 적었습니다.)

먼저 cyrus님의 「법의 정신을 마저 정리한 후 천천히 들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글을 적다보니 서양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투스 「역사」와 비교해서 읽으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같이 비교해서 찍어봅니다^^:

ps. 이 글은 페이퍼에 가깝지만, 내용상 책의 장점도 언급되어 리뷰로 올립니다. 사기세가, 사기본기, 사기열전 등에 대해 리뷰는 차례로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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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ology 2016-12-20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 득템입니다. 청문회에서는 위증만 하지마시고 잘 대응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6-12-20 19:20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nomadology님 구매영수증을 가지고 진실만을 이야기해야겠지요.ㅋ 내 계정이 아니다 등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역풍만 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ㅋ

오거서 2016-12-20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축하합니다. 청문회에 불려가신다면 참고인 되어 드리겠습니다. ㅎㅎ 때를 놓치지않고 희귀본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제 힘을 보태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클래식 CD 세트를 반값에 구매한 적이 있는데 요즘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실실 웃는다고 아내가 가끔 묻곤 하지만 알려주지 않아서 제 기분을 알 턱이 없죠. 오랫동안 기분좋아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12-20 20:19   좋아요 3 | URL
오거서님께서 말씀하신 그 포인트입니다!^^: 이거 참 이해하는 분들은 알라딘 이웃분들만 계시는 거 같아요.^^:

서니데이 2016-12-20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즈덤하우스 에서 나온 사기는 처음보는 것 같아요. 원문은 제겐 그림(!)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좋은밤되세요.^^

겨울호랑이 2016-12-20 20:29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제게도 지금은 그림 문자입니다. 언젠가 의미가 통할 날이 오겠지요? ^^: 서니데이님도 편한 밤 되세요.

yureka01 2016-12-20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레어 득템이군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16-12-20 21:53   좋아요 1 | URL
^^: 네 유레카님 생각지도 않은데 횡재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후애(厚愛) 2016-12-21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님 맛있는 저녁 드시고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6-12-21 18:33   좋아요 1 | URL
후애님 감사합니다. 후애님도 평온한 밤 되세요^^:

우민(愚民)ngs01 2016-12-21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득템을 축하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16-12-21 18:38   좋아요 1 | URL
ngs01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동지 저녁 되세요.

마르케스 찾기 2016-12-22 1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싼 가격덕에 중고등록신청 해둔 책이었는 데ㅋㅋ 매번 잠깐 늦어 구매를 못했었어요ㅋㅋ
겨울호랑이님이셨군요 >.<
ㅋㅋㅋㅋ
책이 어떤지 궁금합니다ㅋ
사기 셋트 무엇을 살까 몰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중고 등록 신청 모두 해두긴 했는 데,, 셋트는 잘 안 올라 오더라구요ㅋ
잠깐 사이 놓치고ㅋㅋㅋ

겨울호랑이 2016-12-22 15:05   좋아요 1 | URL
에고.. 그렇게 되었군요..저는 알림신청은 안했는데, 우연히 보고 질렀어요..근데 양이 많아서 리뷰쓰기가 만만치는 않을 것 같네요^^:

2016-12-24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사카 전투 혹은 오사카의 역( )은 1614년(게이초(慶長) 19년) ~ 1615년(게이초(慶長) 20년)에 에도막부(江戶幕府)가 도요토미 가문을 공격하여 멸망시킨 전투이다. 이 전투는 오사카 겨울 전투(大坂冬の陣)와 오사카 여름 전투(大坂夏の陣)로 나뉘어 벌어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오사카의 진()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말로 오사카의 난(大坂の乱)이라 불리기도 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림] 오사카 성 (출처 : http://www.ttearth.com)


오사카 전투는 서기 1600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14년 후 2차례에 걸쳐 일어난 전투다.  그 결과 도요토미(豊臣)가문은 히데요시-히데요리 단 2대만에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에도( 江戸) 막부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전투를 단순히 세력자의 교체의 계기로 파악할 것인가.


소설 <대망(大望)>에서는 오사카 전투의 의미를 단순히 실권자의 교체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당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일본 천하의 패권은 도쿠가와(德川)가문으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약 200여년간 계속 이어온 센고쿠 지다이(戰國時代)가 낳은 전문 무사집단인 일본의 낭인(狼人)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걸림돌로 남아있었던 시기였다. 전투가 직업인 이들에게 평화시대는 생계수단이 끊어지는 실업의 시기였고, 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었다. 


<대망>의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는 오사카성 전투를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전국시대의 어둠을 소멸시키는 전투로 해석한다. 그는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워 후대에 신격화 된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真田幸村)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에 의존하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음의 내용으로 생각된다.)


"오고쇼(大御所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백성들의 뜻을 모아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나는 어둠의 세력과 함께 지옥불로 사라지는 것을 통해 오고쇼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에 동참하겠다."


지난 한 주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청문회가 열렸다.

정치, 경제, 교육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비리가 세상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이며, 그 문제점이 드러난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면서 '오사카 성 전투'가 생각났다.



[그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청문회(출처 : 한겨레 신문)


국민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와 실망감을 느꼈다.  나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국민에게 버림받은 박근혜를 끌어안으려는 청문회 증인들의 모습에서 멸망해가는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성으로 '불나방처럼' 몰려가는 낭인들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거대한 시대의 빛 속에서 나방처럼 소멸해갈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섣부르게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진행중인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촛불 시위로 일구어낸 '국회 탄핵 소추안 의결'이 미완의 성공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재의 박근혜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리는 지금은 '오사카 전투'이전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대망>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지금의 시기를 비교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시대적인 배경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본의 세력판도가 바뀐 큰 전투였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새시대를 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에, 오사카 성 전투가 필요했다.

우리에게 평화로운 촛불 집회로 '탄핵 소추안 의결'을 끌어낸 것은 세키가하라 전투처럼 분명 커다란 승리였지만, 지금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열기에는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집권세력 교체를 통한 MB-박근혜 정부청산이 필요하다. 아마도 다음 대선 때까지가 끊임없는 전쟁이고 혼란의 시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을 힘들어야할 수도 있을 것이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부터 1614년 오사카 겨울 전투가 일어나기까지 약 14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촛불집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집권세력 교체가 아닌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라는 것을 우리가 잘 인식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준비하는 것은 촛불을 통한 참여 뿐 아니라,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주관(主觀)을 가지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차분히 준비를 해나가야 하는 때가 왔다.


PS. 요즘 친일(親日)과 관련해서 일본관련한 이야기가 민감한 시기라 다소 군국적 내용의 소설을 언급해서 그렇지만, 시대적 의미이외 다른 의미는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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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7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나쁘다고 평가하는 책도 리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사모처럼 책을 읽으면 위험해요. 단점은 일부러 보지 않고, 없는 장점까지 억지로 만드니까요.

겨울호랑이 2016-12-17 10:13   좋아요 1 | URL
cyrus님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토요일 되세요

cyrus 2016-12-17 10:22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2016-12-17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7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7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7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7 1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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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7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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