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이성비판 - 개정판 대우고전총서 5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A226 V125 최고선을 위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인 한에서, 자연의 최상 원인은 지성과 의지에 의해 자연의 원인(따라서 창시자)인 존재자, 다시 말해 신이다. 따라서 최고의 파생적 선(즉 최선의 세계)의 가능성의 요청은 동시에 최고의 근원적 선의 현실성, 곧 신의 실존의 요청이다. 무릇 최고선을 촉진함은 우리의 의무였다. 그러니까 이 최고선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일 뿐만 아니라 요구인 의무와 결합된 필연성이다. 최고선은 오로지 신이 현존한다는 조건 아래서만 생기므로, 그것은 신이 현존한다는 그 전제를 의무와 불가분리적으로 결합한다. 다시 말해 신의 현존을 상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필연적이다.(p221) <실천 이성 비판> 中 


 <실천 이성 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인간이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해 선(善)을 행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뒤이어, '선을 행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하는가'라는 다음 질문이 따라나오게 되는데, <실천 이성 비판>은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을 한다. 본문에서 칸트는 덕과 행복이 일치된 최고선이 성취된 곳을 '신의 나라 Reich Gottes'라고 부른다. 신의 나라를 현실에서 이룩하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칸트가 생각한 인간의 길이고, 물음에 대한 답이다. 이를 먼저 확인하고 이번 리뷰에서는 실천 원칙으로부터 우리가 행해야할 바를 순차적으로 따라가 보도록 하자.


 A35 V19 실천 원칙들은 의지의 보편적인 규정을 함유하는 명제들로서, 그 아래에 다수의 실천 규칙들을 갖는다. 이 원칙들은, 그 조건이 주관에 의해서 단지 주관이 의지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으로 간주될 때는, 주관적이다. 즉 준칙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조건이 객관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타당한 것으로 인식되면, 객관적이다. 즉 실천 법칙들이다.(p73) <실천 이성 비판> 中


  칸트는 실천 원칙들이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객관성을 결여한 실천 원칙들은 준칙에 불과하며, 이것은 도덕의 실천 원칙에서도 마찬가지 때문에, 도덕법칙을 세우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충족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고, 이는 법칙을 세우는데 장애요소가 된다.


 A38 V21 욕구 능력의 객관(질료)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든 실천 원리들은 모조리 경험적인 것이며, 어떠한 실천 법칙도 제공할 수가 없다.(p76)...  A41 V23 모든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은 의지의 규정 근거를 하위의 욕구 능력에 둔다. 그리고 의지를 충분하게 규정하는 순전히 형식적인 법칙이 전혀 없다면, 어떠한 상위의 욕구 능력도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p78) <실천 이성 비판> 中


 A71 V42 에피쿠로스의 행복설에서 열거된 원리들은 모두 질료적이다. 둘째로, 그것들은 가능한 모든 질료적 원리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로부터 마지막 결론이 나온다. 질료적 원리들은 최상의 도덕법칙으로는 아주 부적합하기 때문에, 그에 준거해서 우리의 준칙들에 의한 가능한 보편적 법칙 수립의 순전한 형식이 의지의 최상의 직접적인 규정 근거를 이뤄야만 하는 순수 이성의 형식적 실천 원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원리이며, 이것은 정언 명령들, 다시 말해 (행위들을 의무로 만드는) 실천 법칙들로 적합하고, 판정할 때나 인간의지를 규정함에 있어서 그에 적용할 때 윤리성의 원리로 적합하다.(p107) <실천 이성 비판> 中


 또한, 우리가 욕구하는 모든 것은 경험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객관적인 법칙을 가져올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칸트는  도덕의 법칙이 '정언 명령'의 형태로 선험적으로 주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 결론 내린다. 


 A55 V31 순수 실천 이성의 원칙 :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p91)...  A56 순수 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이고, 우리가 윤리 법칙이라고 부르는 보편적 법칙을 (인간에게)준다.(p93) <실천 이성 비판> 中


 A52 V29 실천 법칙의 질료, 다시 말해 준칙의 객관은 결단코 경험적으로밖에는 주어질 수 없고, 그러나 자유의지는 경험적인 (다시 말해, 감성 세계에 속하는) 조건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규정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는 법칙의 질료에 대해 독립적으로, 그러면서도 법칙 안에서 규정 근거를 발견해야만 한다. 그런데 법칙의 질료를 제외하면 법칙 안에는 법칙 수립적 형식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함유되어 있지 않다.(p88)... 자유와 무조건적인 실천 법칙은 상호 의거한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의식되는 것은 도덕법칙이다. 도덕 법칙은 우리에게 맨 처음에 주어지는 것이다.(p89) <실천 이성 비판> 中


 '자유'는 이성 체계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자율'은 의무에 대한 유일한 원리다. '신의 나라'에서 이성은 자유에 기초하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안고 경험적으로 물자체를 인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도덕 법칙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할 개념들은 도덕법칙에 의해 간접적으로 규정되어지기에, 우리가 선(善)을 행하기 위해서는 이에 복종해야 한다.


 A111 V63 선악의 개념은 도덕법칙에 앞서서가 아니라, (얼핏 보면 심지어 이 개념이 도덕법칙의 기초에 놓여야 할 법하지만), 오히려 (여기서 보이는 바대로) 도덕법칙에[의] 따라서[뒤에] 그리고 도덕법칙에 의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p138) <실천 이성 비판> 中


 A5 V4 무릇 자유 개념은, 그것의 실재성이 실천이성의 명증적인 법치에 의해 증명되는 한에 있어서, 순수 이성의, 그러니까 사변 이성까지를 포함한, 체계 전체 건물의 마룻돌[宗石]을 이룬다. 그리고 아무런 받침대도 없이 순전한 이념들로 사변 이성에 남아 있는 (신이니 [영혼의] 불사성이니하는 등의) 여타의 모든 개념들은 이제 이 개념에 연결되어, 이 개념과 함께 그리고 이 개념을 통하여 존립하여 객관적 실재성을 얻는다.(p52) <실천 이성 비판> 中


 A58 V33 의지의 자율은 모든 도덕법칙들과 그에 따르는 의무들의 유일한 원리이다. 이에 반해 의사의 모든 타율은 전혀 책무를 정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책무 및 의지의 윤리성 원리에 맞서 있다. 즉 법칙의 일체의 질료(곧, 욕구된 객관들)로부터의 독립성과 동시에 준칙이 그에 부합해야 하는 순전히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한 의사의 규정에서 윤리성의 유일한 원리가 성립한다.(p95) <실천 이성 비판> 中


 그렇다면, 도덕법칙의 근거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여기에 복종해야 하는가? 이는 도덕법칙이 '우리 안의 신(Deus in nobis)'에 의한 준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도덕법칙에 복종한다는 것은 이성이 인도하는 바에 따라 최고선에 한걸음씩 가까이 간다는 것이기에 우리는 도덕법칙에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칸트의 주장은 정언명령을 깨달아, 끊임없이 실천해 최고선에 도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떠올리게 한다.


  A145 V82 도덕법칙은 곧 최고 완전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서는 신성성의 법칙이고, 그러나 모든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서는 의무의 법칙이자, 도덕적 강요의 법칙이며, 법칙에 대한 존경을 통해 그리고 자기 의무에 대한 외경에 의해 이성적 존재자의 행위들을 규정하는 법칙이다... 우리는 이성의 훈육 아래에 서 있는바, 우리는 우리의 모든 준칙들에서 이 훈육에서 아무것도 덜지 않도록 이에 복종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p165) <실천 이성 비판> 中 


 A233 V129 도덕법칙은 순수 실천이성의 객관이자 궁극 목적인 최고선의 개념을 통해 종교에, 다시 말해 모든 의무들을 신의 지시명령[계명]들로 인식하는데에 이른다. [도덕법칙은 의무들을 곧] 남의 의지의 제재[制栽], 다시 말해 임의적인, 그 자신 우연적인 지령들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자유로운 의지 자신의 본질적인 법칙들로 인식하는 데에 이른다.(p226) <실천 이성 비판> 中


 <실천 이성 비판>에서는 이와 같이 인간 인식의 한계로 최고선을 알 수는 없지만, 정언명령을 통해 최고선에 이르는 길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로부터 예전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예전 깊은 산중에서 너무도 짙은 어둠 속에 놓여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도는 듯한 느낌과 나무들에 둘러싸여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을 때, 들려오던 물소리.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에 물소리를 따라 계곡을 내려가면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친 나를 일으켜 세웠고, 시간은 걸렸지만, 내려올 수 있었다. 칸트가 보여주려 한 희망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칸트의 희망이 더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것은 희망의 소리가 밖이 아닌 내 안에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실천 이성 비판>을 통해 희망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A237 V131 우리 인격의 인간성은 우리 자신에게 신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이제 당연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도덕법칙의 주체요, 그러니까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의 주체이며, 이 주체를 위하여 그리고 이 주체와 일치해서만 도대체 무엇인가가 신성하다고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도덕법칙이 자유의지인 인간 의지의 자율에 기초해 있고, 자유의지는 인간의 보편적 법칙들에 따라 반드시 그가 복종해야만 할 것에 동시에 일치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p229) <실천 이성 비판>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천이성비판 - 개정판 대우고전총서 5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순수 이성 비판‘을 통해서는 형이상학으로서 존재론이 불가능함이 밝혀진 것이라면, ‘실천 이성 비판‘을 통해서는 형이상학으로서 윤리학이 정초된다.(p42)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GMS:IV, 429)

칸트는 기독교의 순수 이성(ratio pra)인 ‘신의 이성‘ 을 ‘인간의 선험적인 초월적 의식‘으로 대체한다. 필멸의 인간은 불멸의 신에 미치지 못하기에, 인간의 초월적 의식은 세계를 창조할 수도, 심지어는 완벽하게 인식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칸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주어지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에 귀기울이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꾸준히 나아간다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할 수 있다는 복음(the gospel)을 전해준다.

인간은, 요컨대, 세계 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이로써 칸트의 ‘이성 비판‘은 우리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이지만, 그러나 인간에게 ‘가치 있는‘ 일은 논리적 사고 활동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도덕적 완전성, 그리고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 실현된다는 희망 내지 확신을 가지고 역행(力行)하는 일임을 일깨워준다.(p331)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내세(來歲)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도 우리 안의 도덕법칙이 하늘의 별과 더불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묘비명처럼.

그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큰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kpV, A288=V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리형이상학 정초 대우고전총서 16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B3 선의지는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것이나 성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세워진 목적 달성에 쓸모 있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p7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6 IV401 최고의 무조건적인 선은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되는 결과가 아니라 법칙의 표상이 의지의 동인인 한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에서만 생기는, 이 법칙의 표상 자체만이 우리가 윤리적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탁월한 선을 이룰 수 있다. 이 탁월한 선은,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인격 자체 안에 이미 현전하는 것으로, 비로소 그 행위결과로부터 기대될 필요가 없다.(p92)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윤리형이상학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인식의 한계가 있는 인간이 과연 도덕적 법칙에 맞는 존재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해 칸트는 자신의 답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선의지'로부터 시작한다. 선의지는 순수한 이성적 존재자의 실천을 지향하는 이성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칸트는 선의지는 필연적인 실천 명령으로 주어지며, 의무로부터 주어지는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B7 우리에게는 이성이 실천능력으로서, 다시 말해 의지에게 영향을 미쳐야 할 그런 것으로 품수되어 있으므로, 이성의 참다운 사명은, 가령 다른 의도에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선한 의지를 낳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단적으로 이성이 필요했던 것이다.(p83)... B8 선의지라는 개념을, 즉 우리의 행위들의 전체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언제나 상위에 놓여 있어 여타 모든 가치의 조건을 이루는 이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의무 개념을 취해 보기로 한다.(p84)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3 IV399 다른 모든 경우에서와 같이 하나의 법칙이 남는바, 그것은 곧 경향성에서가 아니라 의무에서 그의 행복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그의 태도는 본래적인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실천적 사랑은 의지 안에 들어 있지, 감각의 성벽(性癖)에 있지 않으며, 행위의 원칙들에 있지 애잔한 동정에 있지 않은바, 이런 실천적 사랑만이 지시명령될 수 있으니 말이다.(p8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그렇다면, 의무로 행해진다는 것만이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칸트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자연의 다른 사물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선한 것을 선별할 수 있다. 이성적 존재자들은 이러한 '의지'를 가지지만, 동시에 윤리법칙에 종속되어 있기도 하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러한 윤리 법칙이 '명령'으로 주어진다고 보았다.


  B36 IV412  자연의 사물은 모두 법칙들에 따라 작용한다.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만이 법칙의 표상에 따라, 다시 말해 원리들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 내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법칙들로부터 행위하는 능력, 내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법칙들로부터 행위들을 이끌어내는 데는 이성이 요구되므로, 의지는 실천 이성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B37 의지란 이성이 경향성에 독립해서 실천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다시 말해 선하다고 인식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능력이다.(p115)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38 IV413 객관적인 원리의 표상은, 그것이 의지에 대해 강요적인 한에서, (이성의) 지시명령이라 일컬으며, 이 지시명령의 정식을 일컬어 명령이라 한다. 모든 명령은 당위('해야 한다')로 표현되며, 그게 의해 이성의 객관적 법칙과, 주관적 성질상 그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 의지에 대한 관계(즉, 강요)를 고지한다(p116)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에서 명령을 정언적 명령과 가언적 명령으로 나눈다. 정언적 명령이 목적이라면, 가언적 명령은 수단이 된다. 칸트는 정언적 명령만이 윤리법칙, 실천 법칙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천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보편성과 필연성(타당성)이 필요한데, 우리는 명령의 타당성을 즉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명령이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B39 IV414 모든 명령은 가언적으로거나 정언적으로 지시명령한다. 전자는 가능한 행위의 실천적 필연성을 사람들이 의욕하는 (또는 의욕하는 것이 가능한) 어떤 다른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표상하는 것이다. 정언적 명령은 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어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 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그런 명령이겠다.(p118)... 행위가 한낱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해, 즉 수단으로서 선하다면, 그 명령은 가언적인 것이다. (반면에) 행위가 자체로서 선한 것으로 표상되면, 그러니까 자체로서 이성에 알맞은 의지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즉 의지의 원리로 표상되면, 그 명령은 정언적인 것이다.(p11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51 IV421 내가 가언 명령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나에게 조건이 주어질 때까지 나는 그 명령이 무엇을 함유할 것인가를 미리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정언 명령을 생각할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을 함유하는가를 즉각 안다. 무릇, 명령은 법칙 외에 오로지, 이 법칙에 적합해야 한다는 준칙의 필연성만을 함유하지만, 법칙은 그것이 제한받았던 아무런 조건도 함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남는 것은 오로지, 행위의 준칙이 그에 적합해야 할, 이 법칙 일반의 보편성뿐이며, 이 적합성만이 명령을 본래 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한다. B52 그러므로 정언 명령은 오로지 유일한 즉, 그것은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는 것이다... 의무의 보편적 명령도,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132)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칸트는 이로부터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필연성과 보편성을 모두 갖춘 정언명령을 도출해낸다.


 B66 IV429 무릇 최상의 실천 원리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인간의 의지에 관련한 정언 명령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누구에게나 목적인 것의 표상으로부터 의지의 객관적 원리를 형성하고, 그러니까 보편적 실천법칙으로 쓰일 수 있는 그러한 것이어야만 한다. 이 원리의 근거인즉, 이성적 자연본성은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한다는 것이다.(p147)...  B67 IV429 실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p148)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그렇다면, 도덕법칙이 정언명령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만약 인간이 신적인 존재라면, '의지의 자유'가 언제나 '의지의 자율성'과 일치할 수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B87 IV440 의지의 자율이란 의지가 그 자신에게 (의욕의 대상들의 모든 성질로부터 독립적으로) 법칙인 그런 의지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자율의 원리는 선택의 준칙들이 동일한 의욕에서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으로서 함께 포섭되는 그러한 방식 외에는 아무런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16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97 IV446 의지는 생물이 이성적인 한에서 갖는 일종의 원인성이다. 자유는 이런 원인성의 특성일 것인바, 자유는 그것을 규정하는 외래의 원인들에 독립해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자연필연성은, 외래 원인들의 영향에 의해 활동하게끔 규정받는, 모든 이성 없는 존재자들이 원인성의 특성이다.(p17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그렇지만, 인간은 지성과 함께 감성을 가지고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지의 자유'와 '의지의 자율'이 항상 일치할 수 없다. 때문에, 인간에게는 도덕법칙이 필요하며, 이는 당위(當爲), 정언적 명령으로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은 자신을 그 아래 세우면서 인격적 존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논지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면,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도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우리가 선(善)을 직관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성과 감성의 결합을 통해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세계를 알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언명령을 통해 도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에서 말한다. 이런 전체적인 틀을 가지고 <실천 이성 비판>으로 나가보자...


  B111 IV454 오성세계의 순전한 성원으로서 나의 모든 행위들은 순수 의지의 자율의 원리에 완전히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한낱 감성세계의 일부로서 나의 행위들은 전적으로 욕구들과 경향성들의 자연법칙에, 그러니까 자연이 타율에 알맞게 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p194)... 자유의 이념이 나를 예지 세계의 성원으로 만듦으로써 정언 명령들은 가능하다. 이 정언적 당위는 선험적 종합 명제를 표상하는 것인바, 왜 그런가 하면, 감성적 욕구들에 의해 촉발되는 나의 의지 위에 동일하지만, 오성세계에 속하는, 순수한, 그것 자체로 실천적인 의지의 이념이 덧붙여지고, 이 의지는 저 의지가 이성에 따르는 최상의 조건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p195)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10 IV453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를 오성세계의 성원으로 놓고, 의지의 자율을, 그 자율의 결과인 도덕성과 함께 인식하되, 그러나 우리가 의무지워져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를 감성세계에 속하면서 또한 동시에 오성세계에도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p193)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28 IV463 우리는 비록 도덕적 명령이 실천적 무조건적 필연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하나,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개념화 못함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바, 이것이 인간 이성의 한계에까지 원리적으로 나아가려 하는 철학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될 수 있는 것의 전부이다.(p212)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종에게만 세계 헤게모니를 쥐어 주고 다른 인종, 특히 니그로 인종은 백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 만족하거나 모든 것을 정복하려고 행진하기 전에 죽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암묵적인 그러나 명료한 현대 철학을 받아들인다. 이 철학은 바로 아프리카 노예 무역과 19세기의 유럽 확장이 낳은 산물이다.(p232)<니그로> 中 


  W. E. B. 듀보이스 (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 ~ 1963)는 <니그로 The Negro>에서 흑인은 역사와 문화, 능력이 없다는 20세기 초반 미국사회의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면서 인종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인 듀보이스에 의하면 인종주의 편견의 기원은 제국주의 시대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아프리의 베냉 지역에 존재했던 다호메이(Dahomey) 왕국이다. 


[지도] 19세기 다호메이 왕국(출처 : https://www.britannica.com/place/Dahomey-historical-kingdom-Africa)


 흑인에 반하는 현대인의 이른바 '본능적인' 편견은 무엇이라 말인가? (p139)... 우리는 피부색에 대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원인을 신체나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현대 니그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에서 찾아야 한다.(p141) <니그로> 中


  17세기 다호메이왕국의 번영은 노예무역의 활성화와 궤를 같이 한다.  다호메이 왕국은 지리적으로 베냉 협로라는 한계로 인해 국가 발전에 제약을 가지고 있었으나, 같은 시기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1664년까지 후추, 금, 상아가 기니 지역의 주된 무역품으로 다호메이 왕국이 무역에서 소외되었다면, 1672년 이후에는 노예가 새로움 무역품으로 떠오르면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다호메이 왕국의 노예무역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Karl Polanyi, 1908 ~ 1964)의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Dahomey and the Slave Trade: An Analysis of an Archaic Economy >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다호메이 사회를 커다란 긴장으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건은 경제영역에서 벌어졌으며, 또 그 시작은 외부에서 비롯되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번창하기 시작하자 노예무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것이 다호메이에 바로 인접한 기니 해안을 강타하였던 것이다. 이 시간이 낳은 충격은 아주 독특하였다.(p61)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中


 플랜테이션 농장은 엄청난 이윤을 낳아주었고, 서인도제도는 왕실과 최고위 귀족들의 사적 재산이 되었다. 이제 이를 위해 노예를 조달하는 것은 '절대적 필요'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농장에서 거두어들여야 할 작물의 양은 엄청났으며, 이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노예노동이 꼭 필요했다... 다시 말하자면 국제경제에서의 변화가 큰 물결을 일으켰고, 이 물결이 대서양을 건너서 불과 20마일 길이로 펼쳐진 아프리카의 어느 해안 지역에 몰아닥친 것이다.(p63)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中


 칼 폴라니는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에서 지리적 어려움과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시작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다호메이 왕국이 노예제도를 통해 축적된 부를 활용하는가를 보여준다. 노예무역과 인신공양으로 악명높은 다호메이 왕국에 다소 우호적인 칼 폴라니의 시각에 대해 비판점도 많지만, 이에 대해서는 책의 리뷰로 넘기 여기서는 간략하게 내용만 취하자. 다시 <니그로>로 돌아가서, 듀보이스는 노예확보를 위한 인간사냥이 가족과 국가의 약화라는 참혹한 결과가 아프리카에 주어졌음을 지적한다.


 18세기 초 강력한 다호메이 왕국이 건설되었고, 지독한 전제 국가가 되어 19세기 초에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비슷한 왕국인 아샨티는 1719년에 정복을 시작해서 노예무역과 함께 발전했다. 이렇듯 서아프리카에서 국가 건설이 도시 경제를 대신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국가는 전쟁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인간 상품을 사고팔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장려했다. 토착 산업은 변화하고 와해되었고 가족의 유대와 정부는 약해졌다.(p154) <니그로> 中


 아프리카 대륙에서 많은 이들이 서인도 제도로 끌려가 사탕수수 농장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칼 마르크스(Karl Marx , 1818 ~ 1883)가 <자본론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에서 설명한 시초축적의 역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서인도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모습은 또다른 형태의 인클로저(Enclosure)운동으로도 비춰진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애서 '사탕수수가 사람들을 쫓아낸다' 로.


[그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인(출처 : https://www.africanexponent.com/post/10712-the-bitter-history-of-african-slaves-and-sugar-production)

 

 시초축적의 역사에서는, 자본가 계급의 형성에 지렛대로 기능한 모든 변혁들은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들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농업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것은 전체 과정의 토대를 이룬다.(p981) <자본론 1-(하)> 中


 <자본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럽 자본주의 발전 중 일정 부분은 아프리카 부의 강제이전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강제이주된 이들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의 제도 대신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가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에서 설명한 노예제의 산물로서의 '일부다처제'를 강요받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수탈과 가족제도의 붕괴는 이들을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로 안내한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노예제도가 사회에 끼친 영향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상황은 일부다처제의 니그로 가정을 새로운 형태의 일부다처제로 대체한 것이다. 니그로 가정은 이제 보호받지 못하고, 덜 효율적이며, 덜 문명화된 새로운 형태의 일부다처제로 대체되었다.(p187) <니그로> 中

 

 사실상 일부다처제는 명백히 노예제의 산물이었으며, 몇몇 예외적인 지위를 가진 자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일부다처제는 부자와 귀한 신분의 특권이며 주로 여자 노예의 구입을 통해 충원된다. 인민 대중은 일부일처제의 생활을 한다.(p72)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6 -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 > 中


 이외에도 듀보이스는 <니그로>에서 노예제도로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와 흑인의 수탈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듀보이스의 담담한 서술은 독자들에게 흑인이 무지한 존재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오해인지를 일깨운다.  <니그로>안에 담긴 메세지는 가볍지 않지만, 듀보이스는 무겁게 말하지 않는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듯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아프리카, 빈곤, 인종 문제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니그로>는 좋은 사회과학 입문서라 생각된다. 


PS. 개인적으로 <니그로>에서 언급된 시초자본 문제와 관련해서, 실비아 페데리치 (Silvia Federici)의 <캘리번과 마녀 Caliban and the Witch>를 떠올리게 된다. 수탈의 대상을 아프리카인이 아닌 여성으로 대치시켜 노예제도 이후의 자본주의 역사를 바라본 것이 <캘리번과 마녀>라 여겨진다. 이는 노동 문제, 인종 문제, 종교 문제, 성 문제 등 많은 문제가 '평등 平等'이라는 주제의 서로 다른  현상(現象 phenomenon)이라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했던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p272)... 노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의 레파토리에서는 마녀사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화와 기독교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으로 인해 식민화된 사회의 신체에 획실히 이식되어 피식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박해를 실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p341) <캘리번과 마녀> 中


 그들은 오늘날 발전의 맨 앞자리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위해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여성 해방, 세계 평화, 민주 정부, 부의 사회화, 인류애를 위하여.(p229) <니그로>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실천이성비판- 개정2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9년 8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오늘(17~21시) 사이" 택배 수령 가능
2020년 05월 25일에 저장

실천이성비판- 개정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09년 8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1% 적립)
2020년 05월 25일에 저장
구판절판
윤리형이상학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2년 3월
40,000원 → 38,000원(5%할인) / 마일리지 2,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오늘(17~21시) 사이" 택배 수령 가능
2020년 05월 25일에 저장

윤리형이상학 정초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4년 12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20년 05월 25일에 저장
구판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