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담배를 낀 손가락에, 오늘도 남편에게 선물받은 묘안석 반지를 끼고 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p. 210
오랜만에 슬픈 멜로물 봤더니 감당이 안 된다 흑흑흑...
그래도 옛날에 엉엉엉 울면서 다시는 안 읽겠다며 책을 내동댕이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행복한 내용을 읽고 싶었다고 ㅠㅠ
전반적인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오이라는 일본 여자는 일본 대학에 다니게 된다. 그러나 일본이란 곳이 험난해서, 이탈리아 스타일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이겨내기 험난한 곳이었다. 그녀가 마음둘 사람은 쥰세이라는 남자 한 명 뿐이었다. 그도 미국에서 태어난 남자로, 아오이가 묘사한 대로라면 꽤 자유분방하고 거친 남자였다. 서로의 자취방에 묵으면서 살던 아오이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쥰세이도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언제나 먼저 현실에 맞닥뜨리는 건 여자일 뿐. 결국 그녀는 겁에 질려 아이를 지우게 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걸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쥰세이의 분노 뿐. 그녀는 맥없이 자신의 고향 아닌 고향, 밀라노로 돌아가게 된다.
밀라노의 한 보석가게에 취직하게 되고, 마빈이라는 재벌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지만, 그녀의 인생은 살얼음을 밟은 것처럼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딱히 쥰세이를 좋아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완벽하게 '조용한 생활'에서 안주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 때문이다. 그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안주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일 뿐이다. 이 책은 딱히 세계화로 인해 진정한 고향이 없어진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외로움을 느끼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다.
한 장의 편지와 한 번의 만남으로, 남녀는 과거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풀게 된다. 시원스럽지는 않지만 깔끔한 한풀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10년이 지났다. 30대로 접어든 그들은 젊었던 시절처럼 서로에 대한 사랑을 마음 놓고 표현하지 못한다. 서로의 갈 길도 있으며, 아오이는 밀라노의 보석가게를 꾸려나갈 책임이 생겼다. 결국 그들은 마음 속에 서로를 간직하고 평생 살아가리라. 그렇지만 영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상처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 요즘 30대는 인생이 꽃필 나이라던데, 그들은 벌써 속늙은이가 되어버린 듯했다.
쥰세이는 어떤 마음으로 아오이를 그리워하며 10년을 살았을까. 이 책을 읽으니 그의 시점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심장이 떨리는 순간.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