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1 - 만남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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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린게이블즈의 매슈 커스버트 씨죠? 만나뵈어 정말 반가워요. 어쩌면 오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되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만일 오늘 저녁에 오시지 않는다면 철길을 내려가 저 모퉁이의 큰 벚나무 위에 올라가 밤을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하얀 꽃이 가득 핀 벚나무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잠자다니, 멋지겠지요? 마치 대리석 깔린 넓은 방에 사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게다가 오늘 밤 안 오시면 내일 아침에는 꼭 오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p. 42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2순위를 차지했던 이유는 내가 앤을 질투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격이 이상하고 공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릴 뿐더러, 특히 다이애나라는 친구가 있어서였을거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따돌림을 받는 한 소녀가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 (특히 못생긴 외모 면에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그 소녀가 잘 살고 무엇보다도 '영혼의 친구'를 사귀었다고 할 때 그 복잡한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빨강머리 앤에 대한 내 복잡한 심경을 말하자면 그렇다. 주인공이 잘 되었다고 하니 기쁘기는 하지만 그 타오르는 부러움과 질투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절박한 심정으로 그림책 뒷면에 '나도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다이애나에게 쓰다가 엉엉 운 기억이 있다. 아무튼 빨강머리 앤은 내 어린 시절 격한 감정과 머릿속을 배회하는 상상력을 대변하는 책이었음엔 틀림이 없다. 난 앤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했다.

 아직도 그런 심정이 남아있었는지 책을 읽으면서 '앤도 이런 단점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매우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길버트와 앤에 관련된 이야기에 매우 공감을 했었더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자애들은 질색이었으니까. 근데 나이가 들어서 읽어보니 앤이 길버트를 너무 오래 피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화해를 했다고는 하지만 둘의 사이가 진전되기는 좀 힘들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역시 안 좋은 일은 빨리 잊는게 최고구나... 그런 생각이 났다. 또한 소설에서는 애니메이션판이나 아이들 그림책에서는 나오지 않는 정치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 여자에게는 중요한 생리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고나 할까... 그런 여자애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뭐 독신으로 사는 자매가 11살 고아여자애를 기르는 이야기부터가 파격적이긴 하지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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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그만둬, 그만두라고! 내려와! 여긴 좋은 곳이야. 볕이 잘 들고 나무가 있고 물소리도 들리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먹을 것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그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낮은 웃음소리도.
아아. 이 유혹은 진실과 비슷하다.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속에서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하지만 피는, 산에서 자란 나의 바보 같은 피는 역시 집요하게 외친다.
ㅡ싫어!- p. 107

 

 

최근에 오바타 타케시가 인간실격을 리메이크해서 그렸지만, 난 그 작품은 보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제 오바타 타케시는 뭘 그리든 데스노트의 라이토를 연상시킨다는(...)

개인적으론 오시미 슈조가 그렸으면 인간실격의 결말부분을 좀 더 잘 표현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나중에 만년의 후기를 보니, 다자이 오사무는 이 만년이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어언 10년간을 미친 놈처럼 살았다고 독백처럼 고백했다 한다. 실제로 인간실격은 여러모로 그의 인생을 반영한다는 인증도 있고 하지만, 만년은 인간실격에서보다 훨씬 더 성찰적이고, 더 자기비판적이다.

 

 인간실격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상당히 죽인 채 진행하다가, 느닷없이 '아버지가 잘못이다' 따위의 독백으로 끝내서 상당히 허무했던 감이 있었다. (물론 본인이 인간실격을 읽고 쓴 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부모는 굉장히 비열한 방식으로 자녀의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탓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케이스가 상당히 복잡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실격 후기를 참조하기를.) 하지만 만년에서는 자신의 인격을 쪼개어, 주요 등장인물에서부터 매우 사소한 인물 하나하나를 연기하도록 시킨 기분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어수룩하게 연기하는 광대를 보는 느낌. 게다가 말이 단편소설이지 장면 하나하나는 매우 짤막하다. 인간실격만 봤지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은 벌써 '잎'만 보고서 책을 덮었으리라 생각한다. (섬뜩하게도 아무 연관 없어보이는 잎의 구절들 하나하나가 그의 인생 하나하나에 절묘하게 연결되면서 소설 하나가 완성된다. 엔하위키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검색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작가의 소설을 이해하려면 그의 인생을 이해해야 한다.)

 

 위에 인상깊은 구절은 '원숭이 섬'이라는 소설에서 따온 구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마네스크'와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가 제일 재미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자신을 신랄하게 까대는 소설이라서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악의 꽃' 만화에서 자신의 동물적 본능과 실수들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카스가를 문득 떠올렸다. 책을 다 읽은 아직도 오시마 슈조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그런데 샛길로 빠진 이야기지만 소문에 의하면 오시마 슈조의 아내가 평범한 성관계로는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고, 오시마 슈조 자신은 정작 아내를 만나기 전엔 정상적인 남자(...)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여자가 없었다면 남자문학가가 탄생하지 못했을 거라는 작가들 사이의 여담이 어느 정도는 맞을 지도.)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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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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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괜찮아요, 회사?"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어떻게든 될 거야. 히데요시는 아키코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회사가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구조개혁이니, 불량채권의 근본적 해결이니 하는 말들이 매일처럼 나오고 있다. 일주일 정도 전에, 도대체 구조개혁이란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약한 놈은 죽으라는 거야. 히데요시의 대답이었다.- p. 97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IMF에 이어 지금까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 단어이다. 요즘에는 맨얼굴로 뉴스에 내보내기엔 좀 많이 거북한지 '희망퇴직'이라고 치장을 시킨다. 

 내가 깜짝 놀랐던 건 1988년 무능한 보수파와 오합지졸 노조들을 규탄하며 제 3의 길로 파시즘을 꿈꾸었던 강렬한 소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과 완전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2010년대에는 북한과 관련된 코믹한 정치소설도 내놓았던 걸로 알고 있다. 재태크 등에서의 성공과 SM의 성적 예술적 쾌락에 극도로 젖어있던 무라카미 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뀐 것일까. 일본의 말랑말랑한 가족소설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한 컬쳐쇼크를 주겠지만, 문체로나 줄거리로나 상당히 읽는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피지의 난쟁이>도 끝까지 읽어봤던 나로선 그래도 제법 달달한 소설이었다.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에세이를 소설화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 에세이를 읽어보지 않으신 분은 먼저 그것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히키코모리 방이 이렇게 깨끗한 건 조난 처음본다 ㅋㅋㅋㅋ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이지만 밝은 창문만 빼면 소설 속 주인공 방이 이렇지 않을까 해서 올려본다.

 

 풍지박살날 것 같았던 집안 식구가 저마다 사랑?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변화를 겪기 때문에 어찌보면 가족파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결말이었다. 결국 무라카미 류의 말대로 되었다. 이제 1인가족이라거나 주말부부라거나 하는 단어가 우리나라에도 낯설지 않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티비에서는 상당히 좋지 않다는 듯이 방영이 되고 있지만. 물론 문제이긴 하다. 요즘엔 노인이던 꼬마애건 가족이라는 형태에 기대지 않고 치열하게 자기개발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살기 힘든 세상이 온다는 걸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야 하며, 옛날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그 인생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설령 이 소설 속 목수같이 단순직으로 살더라도 아무 철학없이 아무 고통없이 살면서 마냥 행복하기란 무리인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 곳이 좁은 시골 동네라 소문이 두려워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무지한 건지, 세상일엔 도무지 깜깜이고 심지어 영어같은 기초 외국어조차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을 시키려 해도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기 전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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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버지니아 울프 전집 6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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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화분에서 머리를 들어 산 울타리의 틈새를 보았어. 그녀가 그에게 키스하는 걸 보았어. 지니와 루이스가 키스하고 있는 걸 보았어. 이제 나는 나의 괴로움을 손수건으로 싸려 해. 세게 비틀어서 똥그랗게 만들고 말 거야. (...) 너도밤나무 뿌리 밑에 내 고뇌를 내려놓을 거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차근차근 조사해볼 거야. 그들은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나무 열매를 먹고 가시가 있는 관목을 헤치며 새알을 찾을 거야, 내 머리칼은 당연히 엉켜 있을 것이고 나는 산울타리 밑에서 잠이 들 테고 도랑물을 마시고 거기서 죽겠지.

 

 비록 끝까지 다 읽기는 했지만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다. 처음 읽기 시작한 때도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시간이 많이 걸린 책이다. 주인공 6명이 한꺼번에 독백을 해대는 통에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이 6명의 관계도 꽤나 북적북적해서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루이스가 제일 너무했다. 지니가 꼬시고 수잔이 잠깐 좋아했다가 말고 로우다가 그와 결혼할 뻔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인기 독식남인가 이 녀석은.

 이 책으로 인해 버지니아 울프가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 수많은 정신병들 중에서도 '정신분열증'이라는 증세가 들어가는데, 정작 이 소설을 읽어보니 본인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정신분열증 초기 증세라기보다는 <디 아워스> 영화에서처럼 남자고 여자고 자연이건간에 각기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 거미줄처럼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라 얘기해주는 듯했다. 아마도 소설 속에서의 뭐라 말할 수 없이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정신분열증을 생각했던 것이리라.

 

 

로우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디 아워스 중에서 이 장면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버지니아 울프는 본인이 끌리는 인물들을 다 자살로 죽여놓던데(...) 이 소설에서는 로우다가 그런 역할을 한다. 고독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범상한 여자들처럼 살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하지만, 그 인생은 꽤나 고독하고 힘들었으리라. 결국 수잔이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가 흐지부지 포기하지 않던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처럼 살기란! 처음엔 상당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한 명 한 명의 인생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면 버지니아 울프 소설 중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또 없다. 그녀의 평상시 소설보다 인간관계에 관해서 상당히 신경쓴 점이 돋보인다. 평상시 그닥 신경쓰지 않던 것들을 신경쓰면서 쓰느라 파도라는 소설이 그렇게 힘들어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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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대학교 - 몬스터 친구들의 대학 시절 대공개! 디즈니 무비 클로즈업 2
월트 디즈니사 글.그림, 지혜연 옮김 / 꿈꾸는달팽이(꿈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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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조스키 군! 계속 사람들을 놀라게 해봐."- p. 68

 

 

픽사에서 밀어주고 있는 몬스터 영화이다.

몬스터 주식회사가 처음으로 상영되었고 몬스터 대학교는 올해 상영되었다.

둘 다 내가 못 본 영화다. 낌새로 봐서는 시즌 2가 나올 것 같은데 볼까 말까 고민중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외전 격으로 몬스터 콤비의 대학교 시절 이야기라고 한다. 이번 굿모닝팝스에서 이 영화의 대본을 연재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위주로 하다보니 스토리가 자꾸 끊겨서 나오는 통에 궁금해져서 보게 되었다. 굿모닝팝스에서 나왔던 대사들이 핵심부분이었는지 영화를 간략하게 추린 이 책에서도 그 대사들이 그대로 나와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현재 12월 굿모닝팝스를 듣고는 있지만 영화를 볼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몬스터로서는 치명적인 '귀여움'을 타고나서 사람들을 놀래킬 수 없다는 운명을 타고난 마이크 와조스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당돌한 성격이라는 게 함정이다 ㅋㅋㅋ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복합적이다. 설리와 마이크의 우정이야기,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치고 올라가 성공하는 이야기, 교수에게 마구 들이대면 최소한의 인정과 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실전과 이론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용법과 쓸모가 있다는 이야기 등등. 처음엔 대학교라고 해서 단순히 대학교 시절의 아름다운 청춘을 다루는 이야기겠지... 했는데 인종차별이나 왕따같은 진지한 이야기들도 뒤섞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도 대학교의 입학과 졸업에 목숨을 거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꿈을 와장창 깨뜨리는 마이크의 대학교 중퇴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크게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는 걸 우화적 스토리로 전해준다고나 할까? 다른 영화는 몰라도 이 두 영화만큼은 꼭 다운로드 받아서 끝까지 보고 싶다. 혹시 이 내용 자체에 흥미가 있다면 김예슬 씨의 에세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어보기를.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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