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칼의 노래…필사에 좋은 책들



한겨레 | 입력 2010.11.04 12:10
 

[한겨레] [매거진 esc]


간결하고 시적인 표현 많은 책이 좋아…금강경·도덕경도 추천대상

문장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노력해야 한 줄의 글을 얻을 수 있다. 수많은 문장가들이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욕심내며 필사적으로 필사한 책은 어떤 것일까.





 

 

 

 

선행자들이 주로 베껴 적은 책은 조세희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 김승옥의 < 무진기행 > , 신영복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 오정희의 < 유년의 뜰 > , 이효석의 < 메밀꽃 필 무렵 > , 이순원의 < 은비령 > , 김훈의 < 칼의 노래 > < 화장 > , 이상의 < 날개 > 등이다. 필사를 통해 소설가의 길을 찾은 신경숙 작가를 비롯해 수많은 소설가·기자 지망생들이 따라 써본 이 책들은 문체가 간결하고 시적인 표현들이 유려하다는 특징이 있다.  


 

 


 

 

 

 

<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책 > 의 저자 명로진씨는 "문장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글을 쓰고자 하는 초보자들이 손문장을 익히기 좋다"며 김훈의 작품을 필사해볼 것을 권했다. 안도현 시인은 < 녹색평론 선집 1 > (김종철 엮음, 녹색평론사)에 실린 '시애틀 추장의 연설-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16~21쪽)를 추천했다. "매우 시적인 문장이 담겼다"는 게 그의 추천의 변이다. < 프레시안 > 에서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는 백승권 강사는 < 금강경 > < 도덕경 > 같은 경(經)을 써보라고 한다. "글이 길지 않고 짧게 토막이 나 있어 천천히 적어가면서 쉬엄쉬엄 뜻을 음미하고 묵새기기에 좋습니다." 
 

 


 

 

 

 

 

 

2009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분야에서 < 안녕, 피터 > 로 상을 받은 신인작가 황지운은 필사해본 책 중 기억나는 책으로 김연수의 < 첫사랑 > 을 꼽는다. 내용이 너무 낭만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던 구절은 이렇다. "나는 앞뒤를 살핀 뒤, 크게 반원 모양을 그리며 자전거를 반대편 차로로 돌렸지. 잠시 자전거가 비틀거리면서 등에 멘 가방에서 빈 도시락 소리가 났어.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너를 사랑하기로 결심했어.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 도시락 소리가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라도 되는 양. 그렇게 찾아온 가슴뛰는 그 느낌 사이로 내가 첫사랑이라고 믿었던 뭔가가 찾아왔지. 그 사랑이 모두가 깊이 잠든 밤에 몰래 들어온 도둑처럼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내 마음 깊은 곳의 빈터에 자리잡았지. 레몬즙으로 쓴 글자처럼 그 뜨거움에 노출되기 전까지는 아직 어떤 글씨가 씌여져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랑이 내게 찾아온 거지."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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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이던가. 서울대에서 대입 논술 시험을 시행하겠노라면서 발표했던 고전 목록이 있었다. 장장 200권에 달하는 꽤 규모가 되는 목록이었다. (물론 순서가 한참 뒤바뀌었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고전 교육을 통해 논술 능력부터 기르고서 대입 시험을 쳐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국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도 없었던 책들까지 마구잡이(?)로 넣어놓았던 어이없는 목록이었고... 고등학생 대상이라기 보다는 대학교 및 대학원 과정 정도에서 소화해야 할 내용들이었으나 단지 서울대에서 발표한 목록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당연하게 이를 얄팍하게 정리한 해제집들이 다급한 수험생들의 당장의 필요에 부응해 나왔었다. 그 중 그래도 잘 짜여졌던 책은 이런 정도?   

 

 

 

 

 

 

시간이 흘러 2005년, 서울대에서는 다시 권장도서를 100권으로 추리고 직접 해제집을 펴내기도 했다. 진작 이런 책부터 먼저 내면서 선정의 이유와 의의를 밝히는 것이 순서 아니었을까. 목록 하나 덜렁 내고 십년이나 지나서 책이 나오면 너무 늦쟎은가.

 

 

 

 

 

 

 

 

그리고... 

출판사 중에서는 아마 최초로, 서울대 선정 인문 고전 50권을 한 권 한 권 새로 재구성한 시리즈물이 나왔다. 바로 김영사에서. 김영사 정도의 규모 있는 출판사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운 기획이지 싶다. 1993년에 나왔던 최초의 권장도서 200선에서 추리고 추려 50권을 선정했다. (마지막에 슬며시 끼어 있는 [명심보감]은 1993년 및 2005년 권장도서 어디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선정도서이다. 너 거기서 뭐하니?) 

만화라는 형식으로 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 고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서울대 선정 고전, 특히나 1993년도 목록의 책들이 상당한 난이도를 가진, 기실 대학 교양과정 내지 전공과정 수준의 책들이 많다는 것.  

[간디자서전]이나 [삼국유사], [사기열전] [백범일지] 같은 책들이야 그럭저럭 한다 치더라도 대체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같은 책들은 어떻게 한 권의 만화책 안에 우겨넣을 수 있었을까. 제목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만화로 재구성한 필진의 고심이 역력히 느껴지는 기획이다. 굳이 서울대 선정 고전이라는 타이틀에 묶이다 보니 나온 결과이겠지만, 200권 중에서 청소년들에게 읽힐 수준의 책들이 그렇게도 없었나 싶기도 하고(뭐 위에서 예를 든 책들이 무슨 불온도서라거나 해서는 결코 아니다!), 에둘러 가지 않는 정공법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김영사, 하면 한 때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약간 노골적인 타이틀을 단, 하지만 그 빛나는 타이틀에 비해 큰 재미는 못 봤던- 수험생 대상의 논술 서적을 펴내기도 했었으니 수험서 시장을 향해 꾸준한 입질은 계속 했었던 셈이다. 오히려, 이런 50권 시리즈 같은 아동-청소년 교양물이 좀더 김영사의 정체성에 걸맞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남을 수 있는 기획이 아닐까 싶으니 당시의 실패는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해도 될까?

 

 

 

 

 

 

참, 출판사 중에서 최초라고 했는데, 기실 서울대출판부에서도 자신들이 제시한 고전 목록들의 정본 완역 작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얼마나 추진력 있게 진행하는지,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 없는 기획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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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해봤더니...  

"열대우림" 독서 취향 비옥한 창의성, "열대우림" 독서 취향  
아멜리 노통브, 기형도 같은 거침없이 창의적인 글 좋아함
지능에 의존하는, 소심한, 식상한 글 싫어함

 

지구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진 곳. 어마어마한 태양 에너지로 인해 엄청난 양의 강수량과 엄청난 생산력의 동식물군이 번성한다. 열대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 지구 표면의 3%에 불과하지만, 이곳엔 전지구 생물의 15%가 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생물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 아직도 인간에 발견되지 않은 동식물들을 헤아릴 수 없다.

극단적으로 다양하고 비옥한. 열대우림의 자연적 특성은 당신의 책 취향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 밀림 같은 포용력:
    마치 열대우림과도 같은 극도로 다양하고도 조밀한 책 소비 행태를 보임. 그 어떤 극단적인 내용이라도, 그 어떤 괴상하고 수상한 내용이라도 이 취향에선 대체로 기꺼이 소비되는 편. 가장 다양한 종류의 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지적인 대식가' 계층.


  • 태양 같은 직관력:
    중요한 사실은 돼지처럼 무작정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가치있는 책을 정확히 판단한다는 점. 이런 심미적 분별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임.


  • 원시적인 진실성:
    당신의 취향은 뭔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내용과 표현을 선호함. 비록 조잡하고 미숙하더라도, 책이라면 무릇 솔직하게 자신감있게 꾸밈없이 쓰여져야 함.


당신의 취향은 전체 출판 시장의 약 5% 정도에 불과하지만, 소비 규모는 15% 이상일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유명 소설 작가의 상당수가 이 취향에 속합니다. 당신의 취향 중에도 작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 많을 듯.

다음은 당신의 독서 취향을 자극할만한 거침없는 작가들입니다.

아멜리 노통브
타슈 선생은 자신이 그 무시무시한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 적잖은 자부심을 느꼈다. 속칭 '연골암'이라 하는 이 병은 19세기에 엘젠바이베르 플라츠라는 의사가 카이엔에서 발견해낸 증상이었다. 강간 및 살인죄로 그곳에서 감옥살이를 하던 죄수들 여남은 명이 그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 병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진단을 받고 나서 타슈 선생은 난데없이 귀하신 몸이 된 기쁨을 맛보았다. 뚱뚱한 데다 수염도 없어서 목소리만 아니면 영락없이 내시 같은데, 죽는 것마저 심장 혈관계 질환같은 미련스런 병으로 죽을까봐 저어하고 있던 터였다. 선생은 묘비명을 지을 때 독일인 의사의 고상한 이름도 빠뜨리지 않고 적어 넣었다. 그 덕에 멋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 살인자의 건강법 中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 옆에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열일곱 아님 열여덟? 내 예상이 맞다면 나보다 고작 서너살 위인 것이다. 당분간 같이 좀 지내야 되겠는데요. 오빠는 낡고 뾰족한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섰다. 남의 집 들어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여자애는 오빠 등뒤에 숨어 쭈뼛거리고 있었다. 오빠는 어서 올라오라며 여자애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다가, 내 이 연놈들을 그냥, 하면서 방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쳐나와 오빠에게 달려들었다. 오빠의 허벅지를 노린 일격은 성공적이었다. 방망이는 오빠허벅지를 명중시켰다. 설마 싶어 방심했던 오빠는 악,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꺾었다. 못생긴 여자애도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계속 당하고 있을 오빠는 아니었다. 아빠가 방망이를 다시 치켜드는 사이 오빠는 크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처럼 아빠의 허리를 태클해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빼앗아 사정없이 아빠를 내리쳤다. 아빠는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를 두들겨맞으며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자기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나쁜 자식, 지 애비를 패? 에라이, 호로자식아. 이런 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왔지만 오빠는 못 들은 체 하고는 여자애를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물론 방망이는 그대로 든 채로였다.
- 오빠가 돌아왔다 中 



 

 

 

커트 보네거트
이 재향군인은 지하실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는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결혼반지가 그 요란한 장식에 걸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바닥이 내려가자 그는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고 천장에 짓눌려 으깨지고 말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전화로 불러 주자, 등사 원판을 뜰 그 여자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 사람 아내는 뭐라고 했죠?"
"부인은 아직 몰라요." 내가 말했다. "이제 막 일어난 일이니까."
"그 여자에게 전화해서 뭐라는지 알아봐요."
"뭐라고요?"
"경찰서의 핀 경위라고 하면서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해요. 그러고는 그 소식을 전하고 그 여자가 뭐라는지 들어보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했다. 그 여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아기가 있다. 기타 등등.
내가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그 여자 서기는 순전히 사적인 호기심에서 내게 물었다. 그 으깨진 남자가 어떤 꼴이더냐고.
-제5도살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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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해봤더니...    

http://book.idsolution.co.kr/index.php
 

 

이렇게 나왔다 :

"서안 해양성" 독서 취향 우수에 젖은 휴머니즘, "서안 해양성" 독서 취향  
생텍쥐베리 같은 감성적이고 고상한 책 좋아함
뻔하고 틀에 박힌, 극단적이고 거친 책 싫어함

 




대륙의 서안 지역, 위도 45°에서 55° 사이에서 발생되는 서안 해양성 기후대. 편서풍과 해류의 영향으로 일년 내내 수더분한 기온을 유지하지만, 비가 자주 내리고 구름이 많은 편이라 우울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특징. 세계 최대 낙농업, 현대 유럽 문명, 그리고 울적하고도 아름다운 문학 작품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우아한, 고상한, 우수에 젖은. 서안 해양성 기후의 특징들은 당신의 책 취향과 크게 닮아 있습니다.

흘러가는 편서풍처럼:
뭔가 계획적이고 열심히 꾸며진 내용에 거부감. 지적인 강박관념 같은 것도 싫어함. 그보다는 물 흐르듯, 바람 불듯, 섬세하고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내용을 선호함.


일년 내내 안정적인: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같은 취향. 너무 뻔하고 틀에 박힌 내용에도, 너무 극단적이거나 거친 표현의 글에도 거부감. 그러나 그런 거부감마저도 돌려서 점잖게 표현하는 편.


귀부인 같은 문학성:
격식을 갖춘 표현력, 고상한 스토리, 수준높은 완성도를 갖춘 주류 작품을 선호함. 값싸고 조악한 글에 본능적인 반감을 느낌.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책에 관심이 많으며, 일류와 삼류를 분별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갖고 있음.
출판업계의 관점에서 볼때 당신 취향은 출판 소비 시장에서 2-3번째로 많은 인구 수를 차지하는 부류로, 책에 대한 취향이 다분히 '여성적'인 소비자 층입니다.

다음은 당신의 취향에 어울릴만한 작가들입니다.

은희경
어느날 아침 아내는 비명을 질렸다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 그녀의 손에 든 그릇 속에는 모래처럼 뻣뻣하게 마른 밥이 들어 있었다. 간장 접시 좀 보세요. 과연 간장은 죄다 증발해 버리고 검게 물든 소금 알갱이뿐이었다. 사과도 하룻밤만 지나면 쪼글쪼글해져요. 시멘크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 봐요. 이러다가 나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몸이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구요.
- 아내의 상자 中  



 

 

 

 

 

 

생텍쥐베리
언젠가 다리 건설 현장에서 부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한 기사가 리비에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다리가 한 인간의 얼굴을 이렇게 으깨지게 만들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 다리를 이용하는 농부 중에 다른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이렇게 끔찍한 얼굴을 만들어도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리를 세운다. 기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보편적인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할 것이 없습니다.'
- 야간 비행 中  



 

 

 

 

 

 

온다 리쿠
도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야말로 그 경계선에 앉아 있다. 낮과 밤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여러 가지 것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 일상과 비(非)일상, 현실과 허구. 보행제는 그런 경계선 위를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가는 행사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냉혹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갈 뿐. 고교생이라는 허구의, 최후의 판타지를 무사히 연기해 낼지 어떨지는 오늘밤에 정해진다.
- 밤의 피크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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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류 수집에 열을 올렸던 유명 작가로 나보코프가 있었던가.   

일제시대,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생물학, 그 중에서도 나비 연구에 힘을 쏟아 조선의 인시류(나비, 나방) 연구에서 세계적 반열에 오른 학자 석주명.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는 알아도(내가 사는 부산 동래에는 기념관 및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석주명의 이름은, 솔직히 책을 보기 전까지는 뉘신지? 라는 정도였다.  

낙제 점수를 받고서 대오각성, 촌음을 아껴가며 연구에 또 연구를 거듭하고, 남들이 대충대충 수집한 나비로 학명 올리기에 분주할 때 직접 조선 팔도를 다니면서 수만 개체의 표본을 수집해서 기성 학설을 뒤엎고 새 방법론을 만들어낸 업적은 정말 대단하다.

미쳐야 미친다 : 무슨 일이든 일만 시간 정도를 투자하면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남들을 뛰어넘는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모습은 가장 평범하지만, 그러기에 아무나 하기 힘든 것. (최근에 본 [아웃라이어]에서도 일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요즘 꾸준한 노력이 부족하니 이런 가르침을 주는구나 하고.)


   

 

 

 

내 고민거리 중 하나가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것인데 반성이 많이 된다. (그러고 보니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의 실제 주인공도 곤충수집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던 기억이 난다. 풍뎅이였나?)  



 

 

(정신세계사에서 나왔었는데, 요새는 제목이 약간 변경되어 다른 곳에서 나오고 있다.)  

위대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위대한 것이다 : 이런 전도양양한 세계적 곤충학자였던 그는 동란의 와중에 길 가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만다. 학자로서 기반을 다 닦아 놓고 막 펼치고 집대성하고... 할 무렵에 비명횡사. 데리다였던가. 60년쯤 연구를 하다 보면 대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던 사람이? 

헌데 엄청난 연구를 하다보니 가족과의 불화로 결국 이혼에까지 이른 모습을 보면 또 저렇게 되서는 안 될텐데, 요새 누가 저런 남편을 이쁘다고 봐주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일진데, 명예와 긍지를 소중히 여겼던 천상 조선 사람인 그는 죽어서도 학문의 세계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택했다면(명예욕의 충족)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 자본의 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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