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독서계의 거봉, 대영백과사전출판사(Encyclopaedia Britannica)의

그레이트북스(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총서입니다.

(한길사에서 나오는 고전 총서명은 이 총서에 대한 오마쥬이련가요?)

 

영미권의 고전 총서 중에서는 시카고대학의 고전읽기 프로그램과 결부되어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총서입니다.

(비슷한 성격의 총서로 하바드 고전 총서 가 있습니다.)

 

 

 

 

 

 

 

 

 

 

 

 

 

(독서의 기술 신판과 구판, 그리고 원서입니다. 제목이 바뀌었군요.)

 

 

 

 

 

 

 

 

 

 

 

 

 

 

특히나 허친스, 아들러 등의 편집자들이 제시한 독서 프로그램과 개론 부분에 해당하는 첫 3권은 이 총서만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럭셔리한 하드커버 양장제본, 금박 테두리, 그리고 지나치게 빽빽하여 부담감을 주는 2열 조판은 전형적인 고전의 모습입니다. 책은 참 좋은데, 읽기는 싫어지는 ... ^^

 

 

 

 

 

 

 

 

 

 

 

 

위 사진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1990년도 제2판입니다. 총 60권.

(클릭하면 해외직수입 상품이 나오는데, 음 ... 그냥 클릭하지 마세요.)

한국브리태니커 홈페이지에서는 정가 1,560,000원으로 매겨져 있는데, 역시 품절 상태로군요.

 

(얼마전에 브리태니커 본사에서 더이상 자사의 백과사전이 종이책으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발표를 했었는데요, 아마 이 그레이트북스도 비슷한 운명을 밟게 될 것 같습니다.)

 

(벌써 이런 식의 전자책을 향한 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원저작이나 번역물 모두 저작권 시효이 만료된 책들이 많다 보니 ...

 

프로젝트 구텐베르그 오스트레일리아

http://gutenberg.net.au/greatest-books-a.html

 

인터넷 아카이브

https://archive.org/details/greatbooksofwest02ency

 

리브리복스

http://wiki.librivox.org/index.php/Great_Books_of_the_Western_World_Year_One

http://wiki.librivox.org/index.php/Great_Books_of_the_Western_World_Year_Two

http://wiki.librivox.org/index.php/Great_Books_of_the_Western_World_Year_Three

 

 

아들레이드 대학 도서관 및 보충 작업

https://ebooks.adelaide.edu.au/l/literature/gbww/

http://prodigalnomore.wordpress.com/great-books-of-the-western-world-as-free-ebooks/

 

이스턴 대학 도서관

http://libguides.eastern.edu/greatbooks

 

등등 입니다.)

 

엄청나게 비싸죠? 뭐, 여차저차 해서 이 책을 찾는 분들은 대개 1952년도에 나온 초판을 구하게 되죠. 규모 있는 헌책방에 가보면 한 질 정도는 있습니다. 

 

(제 서가에는 1971년도에 찍은 초판 19쇄가 얼마 전에 들어왔습니다.

십 년도 더 전에, 한성대 근처의 어느 상가 건물에 있던 ...

사람 좋은 웃음으로 항상 반겨주시던 주인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서는, 사려고 돈을 뽑아 왔더니

그 사이에 팔려버렸던 아픈 추억이 있는데 ... 결국은 손에 넣게 되네요 ^^

그 헌책방은 몇 년 못 가 문을 닫았었는데 ... 할아버지 뭐 하시려나요~) 

 

초판은 총 54권으로, 여기에서 4종이 빠지고 20세기의 주요 저작을 비롯한 몇 가지가 추가되어 2판의 60권이 구성되게 됩니다.

 

주의할 점 : 초판의 표지 종류가 다섯 가지 정도 있습니다.

 

1. 이런 주황색 가죽 표지에 제목과 숫자 부분에 다른 색이 쓰인 것이 있고 ...

(그레이트 북스 전용 장식장이 서비스로 제공되었군요!

기부자들을 위한 특별판 정도로 추정됩니다.)

 

 

 

 

 

2. 갈색 가죽 표지에 제목과 숫자 부분이 검은색으로 된 것도 있군요.

 

 

 

 

 

3. 주황색이 아닌 약간 갈색의 클로스(로 추정되는) 표지로 된 것이 있고요.

역시 제목과 숫자에 색깔이 들어갑니다.

(이게 보급판의 성격을 지닌 것이라 합니다.)

 

 

 

 

4. 자, 이제부터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숫자 부분이 브리태니커 문장 위에 올라갑니다. 표지는 클로스 재질인데, 이 클로스에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가면서, 제목을 검은색 배경에 넣었습니다. 이게 대략 과도기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책등에서부터 앞, 뒤 표지의 2/5 가량은 가죽으로,

나머지 앞, 뒤 표지 3/5 가량은 클로스 재질로 장정을 한 판본입니다.

책등이 검은 가죽이니 제목과 숫자에 색깔이 들어가고요.

 

 

 

 

아마도 흔히 접하게 되는 판본이 바로 이것일텐데요,

국내에 수입된 책들은 대부분 이 판본이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헌데, 한 가지 문제가 ... 

독재정권 시절에는 출판물에 대한 검열이 있었던지라,

해당 시기에 수입된 책들은 50권에 해당하는 Marx Engels 가 빠진 채

유통되었습니다. 총서를 사면서 이빨이 빠진 상태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걸 팔아야 하는 한국브리태니커도 곤혹스러웠을 것이고,

사는 사람들도 씁쓸했을 겁니다.

당시엔 이 총서가 부잣집 서가 장식용으로 그렇게 인기였다고 하니,

뭐 별로 씁쓸하지 않고 오히려 不敢請이어늘 固所願이었으려나요? ^^

 

근데 그걸 중고로 사는 나 같은 사람까지 이빨 빠진 총서를 봐야 한다는 거 ...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요? 한국브리태니커에서 제50권만 좀 팔아주려나?

 

당시에 제50권만 수입이 금지되었다면, 그 책은 브리태니커 본사이든, 일본 지사이든(아마도 일본 지사에서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한국 지사이든 하여간 어딘가의 창고에 처박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십년동안 총서 중에 한 권이 빠진 채로 판매가 되었다면 그 책만 수백, 수천 권 분량이 어딘가에 모여 있거나 ... 아니면 설마 혹시나 그냥 폐기처분되거나 했을텐데 ... 대체 그 수백, 수천 권의 제50권의 운명은 어찌 된 것일까요?

 

만약 그 책이 어딘가에 잘 모셔져 있다면, 지금이라도 한국브리태니커에서 당시에 제50권을 사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판매를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빨 빠진 총서를 살 수 밖에 없었던 한국 독자들에 대한,

이빨 빠진 총서를 팔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지사의 마땅한 책무 아닐까요?

 

200년이 넘게 이어진 전통은 이런 것 하나를 지켜줄 때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 아버지 때 샀던 총서의 결권을, 아들에게 전달해준다 ... 멋지지 않습니까?

 

 

(추가1: 한국브리태니커에 문의해 보니, 1992년도에 판매금지가 해제되고서 그전까지 판매는 못하고 보관만 하던 제50권을,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판매했었다고 합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사셨다고 하네요. 저와 상담하신 분도 몇 년 전에 이런 요청이 있어서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다고 하시네요.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재고가 없다고 하는데 ... )

 

(추가2: 처음 상담하고 다음날, 회사에 오래 계셨던 분과 통화가 되었습니다. 50권을 판매하고서 남은 분량은 더 이상 찾는 이가 없어 그냥 폐기처분했다고 하십니다. 설마 혹시나 했더니 진짜였어 ... 나쁜사람~ 나쁜사람~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헌책방 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말인데 ... 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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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anbun.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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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각종 참고서적, 영어로는 Reference Book을 사계(斯界)에서는 흔히 공구서라 불러왔다. 전통적으로 소학(小學)이라 불리는 범주에 포함되는 문자학, 음운학 등의 서적들인데, [이아], [강희자전], [옥편], [사해], [사원], [설문해자], [동국정운], [홍무정운] 등이 다 이 범주에 속한다. 
 

 

 


 

 

 

 

 

 

나의 경우, 십여년 전에 장만한 동아 [새한한사전]을 (오자를 잡아가면서..) 아직까지 쓰고 있는데, 요즘의 새 사전들을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일단 [새한한사전]만 해도 중국어 발음 기호를 웨이드-자일 식에서 한어병음부호로 바꿔 [백년옥편]이란 이름으로 새 판이 나오지 않았겠나.

 



 

 

 

 

그 몇년 뒤에 나온 것이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이 되겠다. 옛날에 일본 사전 그대로 세로쓰기로 나왔던 책을 요즘에 맞게 편집을 새로 한 것인데, 동아 사전보다 표제어는 약간 많았지만 들고 다니기에는 약간 무겁고, 그렇다고 집에 놔두고 보는 사전으로는 약간 모자라, 한마디로 좀 어중간한 사전이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였다.

 


 

 

 

 

 

 

 

 

 

 

 

 

 

그런데... 요즘 주변의 자문도 있고 해서 둘러보다 최근에 나온 [한자사전]을 보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였다. 일단 사이즈는 기존 [한한대자전]의 최대 단점인 휴대성을 보강하여 [백년옥편]보다 약간 작은 정도로 만들어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

표제자는, 물경(勿驚) 31000자라고 한다. [백년]이나 [대자전]보다 두배나 되는 글자수이다. 물론 이런 엄청난 표제자를 상재하기 위한 희생은 따르는 법. 대신 단어 설명 부분을 완전히 없앤 것이다. 즉, 오직 낱개의 글자 설명만 있는 전통적인 자전 체제로 돌아간 것이다. 뭐, 사실 단어 설명은 그리 활용도가 높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때 표제자를 위한 이 정도의 희생은 그닥 아쉬울 것은 없는 부분이다.

대신 기존 [대자전]에서 약했던 일본어 음과 훈이 대폭 보강되었고, 설문해자 등의 전통 공구서의 직접 인용이 많아 단어 이해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 설문해자를 바로 인용했다는 말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냥 영한사전이 아니고 영영한사전이라는 말 되겠다. 게다가 구하기가 약간 까다로운 설문해자나 기타 전통 공구서들이 인용의 형태로 들어 있으니 떡을 먹으라고 입앞에 대어주는 꼴이 아니겠는가.

아, 난 한동안 [한자사전]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꾸욱 참고 고색창연한 웨이드-자일식 영문 표기를 자랑하는 문제의 [새한한사전] 초판이나 뒤적이다, 거기에 안 나오는 한자는 서가 한 칸을 온통 차지한 [대한화사전]을 힘겹게 뒤적여야 할 것이다! 날로 학인들의 수요에 맞는 공구서가 출판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때늦음은 한탄할 일이다.

 

200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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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 수도 있다. 처녀작으로 권위있는 문학상을 움켜쥐며 화려하게 등단한 신예작가도 가끔은 조야한 상상력에 기반한 별 볼일 없는 장르소설을 써내거나 -[오분후의 세계]- 거울을 보다 어느덧 내려앉은 세월의 더깨를 느끼며 '아, 나도 이제 중년이구나'라고, 길게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일게다.

 

 

 

 

 

 

 



암으로 아내를 사별한 중년남성 아오야마 시게히루(靑山重治)가 문득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7년만에 드디어 재혼이란 것을 해볼 생각을 한다. 문제는 방법. 그는 친구 요시가와의 제의로 여배우 선발을 가장한 마누라 오디션을 꾸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눈길을 끄는 제목의 전말이다. 오디션에서 만나 홀딱 반해버린 '묘령의 여인' 야마사키 아사미(山崎麻美)와 사귀게 되면서 인생의 봄이니 하는 것까지 다시 느끼게 되는 남자.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중년남성이여, 힘내라'류의 소설이다. 오디션을 통한 아내 구하기란 소재도 '예쁘고 머리 좋고 집안도 좋은, 고전적인 훈련을 쌓은 천사같은 여자 열명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p.30)하고픈, 남정네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환타지를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사귄지 몇달 만에야 드디어 둘만의 밀월 여행을 떠나는 그 남자, 그 여자. 하지만 날카로운 첫날밤의 추억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지고 만다... 그 뒤의 결말이 문제인데, (아직 책을 읽지 아니한 분들을 위해 세세히 말하는 것은 삼가토록 하겠다) 결말 자체도 의외인데다 그것이 별다른 개연성 없이 갑작스레 전개되면서 독자를 몰입시키지 못하고 겉돌게 만들고 있다. 독자를 소설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할 수 있는, 여자의 행태를 설명해 주는 세부적인 심리묘사가 너무나 부족하다. 아니, 아예 전무하다고 말해도 좋을 지경이어서 뜬금없기조차 하다.



소설의 전반부와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후반부의 뒷심 부족 때문에 소설은 작가가 말하는 '무서운 여자'를 형상화하지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있게 탐색하지도, 사랑의 다른 면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로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류의 어정쩡한 일본식 괴담소설이 되어버렸다.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와 심리에 대한 통찰에 기반하여 야마사키 아사미의 트라우마를 좀더 설득력 있게 드러내 보였다면, 이 작품은 어쩌면 빼어난 문제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흥미나 자극하고 괴상하고 예측키 어려운 결말으로 독자를 놀라게 만들기나 하는 센세이셔날리즘에 그치는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말이다.

 

 

 

 

 

 

 

200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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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rror, the horror!

 

흔히 이 책은 실제로 기선의 선장으로 아프리카 콩고 강 유역을 거슬러 올라간 콘라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탈과 착취를 일삼고 있던 19세기 당시의 제국주의를 비판한 책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수용되고 있다. 뭐 발표되었을 당시에야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의 눈으로는 그다지 대단한 제국주의 비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에야 자신의 작품이 저항문학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대로 이해될 수 있었다는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말을 조심스레 참조하며, 일단 모든 형태의 단정을 피한 채로 이 작품을 해석하자.



소재의 면에서 이 작품은 말로가 상류의 주재소까지 배를 몰고 가 그곳의 커츠라는 사람을 찾아가고,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로는 어릴 때부터 알지 못할 매력을 느껴왔던 오지에 가보고자 그곳에서 무역업을 하는 상사에 선장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주재소에 도착한 그는 상류로 올라가면 빼어난 상아 수집 실적을 자랑하는 커츠라는 인물을 만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배가 상류의 주재소에 다가갈수록, 말로는 주재소나 상아와 같은 목적보다 커츠만이 자신의 항해의 목적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주재소에서도 그는 커츠가 죽기 직전 며칠간만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뿐이다. 수많은 기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만난 신화적 존재가, 주인공과의 짧은 해후만을 한 채 죽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 말로는 물론이거니와 커츠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소설을 읽어가던 독자에게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평상시에 말도 안 통하는 흑인 부족들도 따르게 하고 그 족장들마저 그 앞에서 설설 기게 만들었던 커츠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평소 천둥이나 번개처럼 원주민들의 위에 군림하며 상아를 긁어 모아왔던 커츠마저도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이지 않았을까. 커츠 자신은 심지어 원주민들의 사교(邪敎)의식에 참여하여 자신의 영혼을 맡기면서까지 모종의 것을 추구한다. 커츠가 추구했던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뭇 사람들을 휘어잡던 위대한 인간인 그 자신마저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로가 커츠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그 유명한 장면, 이 소설의 마지막 절정을 이루는 장면을 잠시 보자 : “마치 베일이 찢어지면서 어떤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The horror! the horror!>”



말로는 자신은 말할 수 없던 삶의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커츠의 모습, 그의 마지막 순간의 눈초리에서 모종의 깨달음, 곧 삶은 죽음과의 질 수 밖에 없는 다툼이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사실에 대한 정직한 직시를 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 말로에게 더 이상 세상은 이전에 보던 세상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일 어찌 될지도 모르는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면서 “서로의 돈을 훔치거나, 그 맛없기로 악명높은 음식을 삼키거나, 건강에 해로운 맥주를 꿀꺽꿀꺽 삼키거나” 하며 삶의 진정성을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그냥 낭비할 뿐이다. 이렇게 커츠의 죽음을 지켜본 말로에게 세상 사람들의 덧없고 의미없는 삶은 더욱 부각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마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검은 대륙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가면서 정신의 고양을 이끌어주는 한 인간을 만나고, 그의 죽음이란 절대적 사건을 겪으며 생의 비의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이기에, 마지막에 “명상에 잠긴 부처의 모습”으로 앉아 있는, 말로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이렇게, 마지막에 묘사된, 커츠가 본 ‘무서움’의 실체와, 그것을 겪은 말로의 모종의 깨달음에 무게 중심을 옮기면 『암흑의 핵심』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장님처럼 모순에 가득찬 존재인 인간이 그 자신의 무의식을 탐구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의식의 고양을 그리며, 그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묘사한 작품으로 파악하게 된다.

 

200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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