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범람하는 신변잡기적 에세이 풍의 표지와 제목의 분위기에서, 가끔 저녁 준비나 좀 하는 이야기에, 자주 하는 요리 레시피 몇 개 나오겠거니 하고 큰 기대 없이 들춰봤다가 큰 호통 들었다.
날달걀간장밥 정도가 직접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최대치였던 남편은 아내의 부상을 계기로 집안 식구들의 모든 식사를 죄다 도맡아 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한달에 한 권 가량의 책을 번역해내는 중노동을 하는 와중에.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과 업무를 병행하는, 거의 수도승에 가까운 고행을 이십여 년 동안 꾸준히 해왔다는 것에 저절로 경건한 자세로 각 잡고 읽어나가게 됨.
그러더니 언젠가부터는 자그마한 텃밭 스무 평을 빌려서 채소를 기르더니 드디어는 (그간의 노고를 가상히 여긴 아내분께서 통크게 사주신- 이거 중요! 밑줄 쫘악!) 꽤 큰 텃밭에서 어지간한 채소류는 직접 길러 자급하는 체계를 갖추기도 했다. 그뿐인가, 직접 키운 배추로 김장도 하고 장도 담그고 ... 대체 이 분은 그 무슨 수퍼맨인가 위버멘쉬인가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남자(상 차리는 남자)'의 자세, 요리로 정을 나누는 '식구食口'의 모습, 텃밭 농사가 가지는 생태적 의미 등등 꽤나 많은 것을 곱씹어보고 성찰하게 되는 책.
P.S. 어쩔 수 없이 두어 해 전에 반짝 회자되었던 [숲속의 자본주의자]와 비교를 하게 된다. 명문대 출신 부부가 미국 어느 숲속에 들어가 월든 같은 삶을 꾸리는 투쟁기를 기대하고 펴들었다가 어 이게 아닌데 싶어 살짝 실망했었다면, "자본주의에 반대하거나 귀농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언하는 그 책 대신 이 책을 집어들면 되겠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말랑말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 책이 함의하는 메시지는 꽤나 과격하고 근원적이니까 ... [펜 대신 팬을 들다] 같은 아재 냄새 물씬 풍기는 말장난 대신 부제를 [숲속의 반자본주의자] 정도로 한다거나 ... 으응? 물론 농담이고 ... 이 책 펴낸 출판사는 [아내를 위한 레시피]라는 제목과 흔한 에세이 풍 표지로 봐서는 아마도 남성 독자층은 포기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요리가 아니라 귀농이나 전원 생활 등의 키워드로 홍보 돌리면 독자층의 외연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