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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넓이 4막 16장 - 해리 포터에서 피버노바(FeverNova)까지
김용석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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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릴케가 로댕의 '지옥문'을 구성하는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이런 소릴 했단다.

고요하게 닫혀있는 공간 속에 <생각하는 사람>의 형상이 앉혀 있다.
그는 이 전체 장관의 위대함과 모든 경악을 본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침잠한 채 묵묵히 형상들과 사상의 무게를 지고 앉아 있으며, 온 힘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행동하는 사람의 힘이다.
그의 몸 전체가 두개골이며 혈관 속에 흐르는 피는 모두 뇌수이다.
그의 위로 가로 테두리 위에는 남자 셋이 더 서 있지만 이 문의 중심점은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중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뇌수의 비대와 발달에 있다.
인간 뇌수의 활동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생각'이고 이 생각을 학문으로 만든 것이 '철학'이며, 이 철학을 가장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김용석은 조용한 학자다.
그래서 그는 조용한 곳에서 세상의 가로와 세로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직조되는 과정을 성찰한다.
세상은 이제까지 세로지르기에 몰입했다.
자기 전문성을 가지자고 고등학생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눴던 것이다.

그 결과 엄청난 과학 발전을 가지고 왔지만, 그 과학은 인류 멸종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환경 오염과 전쟁에 대한 몰상식함은 더이상 세로지르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드디어 학문간의 통합, 통섭인 가로지르기를 시도한다는 것. 이렇게 세상의 흐름을 읽어주는 책을 만나면 반갑다.

퓨전, 하이브리드, 하이퍼텍트스, 통섭, 크로스오버로 특징지워지는 현대 문명의 가로지르기를 김용석은 소월의 시로 끝맺는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그런데, 우린 마치 황우석의 유전 공학에는 엄청나게 심오한 뭔가가 있을 것임에 틀림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마법 상자가 열리면 희망이란 요정이 튀어나오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다만 장난감 유령이 튀어나오는 박스에 불과했는지도 모르는데... 황우석이 사기꾼이 될 수 있는 것도 시대의 탓이리라. 그로지르기로 표상되는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황우석의 사기가 밝혀지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첨단의 첨(尖)자를 그는 이렇게 읽는다.
첨단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뾰족해야 하지만, 그것을 받치는 몸통은 두텁고 굵어야 한다고...
이 두터운 부분을 형성하는 것이 인간성에 대한 관심과 '생각', 철학 활동이라고... 그렇다.

미녀와 야수의 개스통이 "아니 어떻게 이런 책을 읽을 수가 있어? 그림도 하나 없는 책을 말야!"라고 할 때, 벨은 "흥,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지."하고 응답한다." 개스통이 죽었다 깨나도 벨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 "그런데,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을 무엇에 쓴담?" 하는 말은 현대의 이미지성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상상력의 이미지의 화면으로 등장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새로운 '앙가주망'의 시대에 지식인의 비판적 참여에 필요한 것은 <정치 현실에 언제 비판적으로 개입할지 모르는 준비된 지성인의 존재가, 준비없는 참여보다 무서운 것>이란 말에 나는 치를 떤다.
한완상, 유홍준에게 우리가 가졌던 환상은 바로 앙가주망의 화신, <준비된 지성인>으로 바라 보았던 것이었는지도... 노무현, 유시민을 비롯한 개혁 세력의 한계가 바로 <준비 없는 참여>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러면서 촘스키와 하워드 진 선생님이 강하게 떠오르고... 북한을 위해 인세를 바치신 성자, 고권정생 선생님이나 고이오덕 선생님이 그리워 지는 것도 '지성'의 덕이라 생각 된다.

현대의 앙가주망은 '사회적 연대'여야 하고, '철학'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하는 '느림'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느림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엄청 분주하고, 느림 세미나에 가느라고 서둘러야 하며, 느림 캐릭터를 만들고 소비하느라 바쁜 인간들...

그야말로, 요즘 자주 등장하는 죄민수의 '아무 이유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김용석의 글들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필력에 그 힘과 신뢰감이 느껴진다.
좀 길에서 쉽게 읽어내기 어렵기도 하지만, 조용한 양산골의 산골에 파묻힌 그에게서 학자로서의 차분함이 느껴져 즐거운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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