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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평점 :
김영민... 철학 교수인 모양인데, 단행본 25권의 저자라고 프로필에 나온다.
그의 책을 찾아 읽은 적 없으나, 이 책을 보고 나니, 한번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스물 다섯 권이면 올 여름은 너끈히 나겠다.
그의 '동무론'이나 '연인과 동무' 정도는 제목만 들어본 정도.
이 책은 <공제의 비망록>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공제는 '덜어낸다'는 뜻이고, '비망록'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메모장을 뜻한다.
수필처럼 생각을 골몰하여 글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떠오른 단상들을 기록한 것이다.
만화가 허영만 씨는 "메모는 내 머리의 일부분"이며, "메모야말로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캐릭터가 쏟아져 나오는 보물 창고"라고 한다. "인터넷, 편하죠, 그러나 그곳의 지식은 향기가 없고 감정이 없습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자신만의 지식 창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메모입니다."라고 한다.
블로그도 충분히 메모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음에 낯설어하는 말이겠지만,
암튼 '공제의 비망록'에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자라게 하고, 길들게 하고, 다투게 하는 다양한 꼭지들로 가득하다.
철학이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와 관계를 짓고 사는 사람들, 직장이나 기관, 국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더럽고 잡다구레한 것들을 다 따져보고 생각하여 이야기하는 것인데,
철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언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산책길에서 만난 '며느리밑씻개'를 통하여 '며느리'란 낱말에 묻은 애환의 단층을 짐작케 한다.
가족들 사이의 교통을 맨몸으로 개척했던 '며느리'를 그 구조의 사북으로 여기는 일도 당연했을 터.
그러면서도 그 첫 고비에 치러야 할 비용이 그토록 높았다는 사실은 나와 타자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지악스레 드러내는, 히스테리 전설의 표현... 며느리-꽃.(41)
한국 사회는 아직도 '봉건' 사회다.
며느리와 '시-'의 관계가 가장 그러하다.
그 사이에서 가족은 '외가'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다.
'시-'들이 착취한 과거를 생각하면, 자연스런 세태다.
철학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사회는 말라 죽게 되어있다.
한국 사회의 '시-'들은 시들어 죽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눈물 젖은 '며느리-꽃'들이 마치 '친정-나-시집'의 갈등을 상징하듯,
매끈한 삼각형 이파리로 젖어 나올 것이다.
'봄날은 간다' 꼭지에서
노인들이 '죽음의 준비' 테마 이야기하다가,
<산 사람들과 이별을 위한 화해>가 등장한다.
"죽기 전에 다 찾아가서 화해해야지, 아무렴."한다.
이런 것이 뭔 의미가 있을까?
형식적으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걸 철학자 아저씨, 어려운 말로 설명한다.
콘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의 동거,
아무런 실질적인 변화 없는 낭만적 화해, <며느리 밑씻개>
따짐도 헤아림도 분명하지 않은 감상적 청산,
결국 망각에 불과할 뿐인 용서...
이들은 내게 한심한 나태, 두루뭉술한 미봉에 다름아니다.(95)
콘텍스트(맥락)을 무시한 텍스트의 동거...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만큼 이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관계가 있는가?
봉건적 사회 질서에 불과했던 관습에 얽매인 사고는... 미봉에 의하여 많은 사람에게 상처만 줄 따름인데,
시간이 갈수록 골은 깊어만 가는 것 같다.
봄날이 가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무나 그 사실을 살아내진 못한다.(228)
콘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를 살아내는 것만으로 봄날의 가는 것을 슬퍼만 해선 안된다.
자기가 봄날을 살고 있음을, 그 지난한 삶에서
잠시 나온 이 소풍같은 삶이 아름다웠음을 웃으며 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동무'가 필요한 게다.
J에게란 글이 짧으면서 좋다.
생각이 좋은 사람보다 글(쓰기)이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글이 좋은 사람보다 말(대인대물 상호작용)이 좋은 사람이 되면 더 좋지요.
말이 좋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면 생활 양식이 좋은 사람일 겝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은 '희망'이 좋은 사람이니,
그런 사람이 되도록 애쓰십시오.
물론 이중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152)
희망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희망은 '실천'하고 있는,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희망'이어야지,
생각만 하는 '희망사항'에 불과해선 안된단다. 정말, 그렇다.
그가 '부사'에 몰두하는 면은 신선하다.
많은 위대한 사상가 중에 소크라테스만이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지 않았단 사실은 매우 중요한 강점이다.(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진리를 말하겠다는 의욕 속에는 이미 혼잣속의 글이 진행되고 있어 퇴행적이다.
더불어 어울리게 되면, 너도 나도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 대화적 긴장의 부사성 속에서 은근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체감되기 때문이다.(부사, 혹은 무기록의 삶)(163)
'게임'이라는 것들이 놀이-몸들의 어울림을 통해 부사적으로 공동체성을 현시할 수 있었던 잠시의 장소-를 추방시킨 것처럼, 볼거리 속에 각색, 극화되어 재생산되는 행운은 행복의 길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동사나 명사에 대조적으로 '부사'는 겨우 곁따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문장에서 결정적 성분이 아니다.
없어도 되는 이것은, 있음으로써 얻는 소득과 그 보람 속에서 어떤 징후를 보인다.
명사와 동사적 존재들의 명목 가치가 기존 체제와 그 질서를 지킨다면,
실은 인간의 무늬에 유의하는 사람에게는 이 존재들의 체계 탓에 <어긋나는 삶>으로 경험된다는 것인데,
명사와 동사로 구성되는 정신문화적 '경부고속도로'의 바깥에서 이 어긋남을 어긋냄으로 되받아치는 것을
'부사적'이라고 하며, 그같은 움직임, 생활양식, 의욕을 '동무'라고 부른다.
'동무'라는 움직임 혹은 관계를 부사적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것이 체계나 제도에 접속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며, 오히려 거기 틈을 내고 방향을 바꾸는 의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당신이 접속 on 하면서도, 그 논리와 욕망을 바꾸며 어긋내는 against 벡터일 때,
우연찮게 포함되긴 하지만 소속될 수 없는 희망을 지펴 살아갈 때,
동무들은 당신을 한 템포 느리게 '동무'라고 부르는 것이다.(275, 명사에서 동사로, 동사에서 부사로)
부사는 부차적이다.
그러나, 그 부차적인 <어긋남>의 클리나멘의 존재로 인하여,
삶은 윤기가 난다.
명사와 동사가 삶의 기본 뼈대인 문장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본 문법의 틀만으로는 발전이 없다.
말해지지 않는 진리가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듯이,
중심적이지 않은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다.
그 부사적 움직임(벡터)는 정태적인 삶(스칼라)를 희망차게 간질여서 웃게 만들 것이다.
그게 '동무'의 할 일이다.
신 나고 즐겁고 기쁘고 재밌게 살게 하는 힘, 그것이 '동무'와 '부사'의 노릇인 셈이다.
그는 학생과 그 애인들을 통해 '인력과 척력'의 관계를 고찰한다.
내게 있어 학생과 그 애인은 자기동일성의 타락과 타자성의 심연이라는 두 대극적 이미지로 유형화된 셈이다.
인력이 있어 타락이었다는 변함없이 새로운 발견과 그 충격,
그리고 척력 역시 형적 없는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213)
인간은 '밀고 당기기'를 통해 관계 맺는다. 거기서도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는 바,
제자와 스승의 만남에서도 여지없이 보이더란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의 '가난'론은 서글프면서 공감이 간다.
가난이 가난일 뿐이었다면, 나 역시 낙엽처럼 바스러졌을 것이지만,
나는 기이할 정도로 유년기의 기억을 거의 소실하고 말았는데...
물론 이것은 유년기의 외상을 회피하려는 끈질긴 방어기제다.
내가 파편으로 분열되거나 상처로 응축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의 자기 최면이 것이다.
미래를 앞서 초대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최면술.
내가 수많은 독서의 내용을 깨끗이 기억하는 것과 실로 의이할 만한 대조.
프랭클의 말처럼 에로틱은 메타-에로틱이고,
만하임의 말처럼 이데올로기는 메타-이데올로기이며,
노직의 말처럼 유토피아 역시 메타-유토피아라면,
내게 가난은 메타-가난이었으리라.(242)
'메타-'란 것은 무엇의 기저에 작용하여 다른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적 작용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린 시절의 가난은 삶의 모든 사유, 행동, 삶의 편린들에 원리적으로 작용한다.
메타-가난... 실로 무서운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과외 열풍' 내지 '제 자식 감싸기'의 원인은 이런 것들이다.
김영민의 메모장들을 들여다보면,
윤기로 반들거리기보다는 버석거리고 푸석푸석해 뵌다.
그건 그가 '공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제의 비망록...의 의미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다.
어쩜, 그건,
봄날이 가는 걸~ 봄날을 지내놓고 아쉬운 맘이 들고서야, 알게 되는 서러운 이치나 한가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 봄날은 간다.
재밌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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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9제... 49재가 맞다.
재(齋)는 인도 산스크리트uposadha의 번역어로 재계齋戒와 재회齋會의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