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다상담 1 - 사랑, 몸, 고독 편 강신주의 다상담 1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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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살기 참 어렵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쥐?

 

이럴 때, 철학관에 가서 물어보면... 답을 준다.

대신, 복채를 두둑히 내고, 답을 얻긴 하는데, 현대인은 애초에 점쟁이의 말을 신뢰할 마인드를 갖고 가지 않는다.

좀 용한가 하고 테스트를 한 다음에, 자기가 취할 것을 취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 철학자는 어떨까?

 

제가 철학자니까, 옳은 거는 옳은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못 살아도 옳은 것은 옳은 거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사시나요?

저는 그렇게못 사라아요.

잘살지 못해도 저렇게 옳은 얘기를 해도 되는구나. 저를 보고 희망을 얻으세요.

옳은 거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는 것처럼만 하지 않으면 돼요.(232)

 

이 책에서는 '사랑, 몸,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푼다.

 

강신주를 탐독하는 독자라면 그가 '사랑'에 목매다가 '고독'에 몸부림치는 작자인 줄 알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랑' 이야기는 '몸'과 떨어지지 않는다. 현실적이다.

 

인간을 악기에 비유하는 그의 의견은 탁견이다.

그래서 그를 찾아 읽는 것이다.

 

여러분의 몸은 악기예요.

여기서 무슨 소리가 날지 모르죠.

앞으로 수천 곡의 음악이 만들어 질 거예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 그저 하나의 악기로 툭 던져진 거예요.

무슨 소리가 날까요?

무슨 소리가 나려면, 악기는 무언가에 접촉을 해야 되죠?

악기는 연주해줄 사람을 요구해요.(105)

 

그래서 궁합이 딱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신이 나고 흥이 나서 살아갈 것이고,

웬수를 만난다면, 불협화음을 지속적으로 내게 될 것이니 그 의견은 일리가 있다.

그리고 그 몸이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화음을 내지를 때,

행복하다고 여길 때,

사랑의 마음 역시 아스라히 울려퍼지는 것이다.

사랑과 몸은 떼어놓고 생각해선 안되는 것이다.

몸 없는 사랑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사랑은 철저히 유물론적이다.

맞다. 몸이 없는 사랑은 신념이나 강박에 가까울 것이다.

 

행복은, 드물고 아주 희귀해요.

용기있는 사람만이,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거예요.(157)

 

행복은 희귀하단다.

그러니, 우리는 그 희귀한 행복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를 그토록 소망하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그렇게 몰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그런 '몰입'의 경험은 드물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몰입' 에서 벗어나 '객관'의 안경을 가장한 '고독'에 빠진다.

 

몰입할 것을 찾으면 고독을 피할 수도 있다.(175)

 

그래.

사랑이 가장 큰 몰입의 경험임을 다 알기에,

성인들 역시 새로운 사랑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어린 시절 그토록 궁금해하던 '몸'이 성인들에게선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고,

사랑과 몸의 부딪힘이 별개의 것임을 금세 깨닫고 더욱 고독함에 휩싸이는 수도 많다.

 

자전거에 미치는 사람도 있고, 도박이나 주식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바둑에 영혼을 파는 사람도 있고, 산이나 낚시와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몰입은 고독의 도피처다.

그렇지만 그 몰입은 현실의 자신을 잠시 부정하게는 해도,

다시 돌아와야 할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몰입은 해결책이 아님은 당연하다.

 

우리는 결코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백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중간으로 미끄러져서 들어간다.

우리는 리듬들을 취하거나 아니면 리듬들을 부여하기도 한다.(263)

 

인간의 존재는 이미 중간에 존재한다.

순수한 시작의 시점에 놓일 순 없다.

삶의 지혜는,

그래서 관계와 리듬이다.

나를 행복하게 연주해줄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갖고,

나를 불행하게 연주하는 사람과는 적절한 거리를 갖는 일.

그래서 삶은 힘겹다.

 

눈독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마

손을 타면

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

물방울 하나<이인원, 사랑은, 265>

 

사랑의 아슬아슬함이여.

오롯이 관심을 집중할 때,

소름 끼치게 짜릿한 집중을 보이는 그 순간의 마음의 움직임은 그대로 살아있는 서정시다.

울렁거리면서 흔들리는 매 순간의 소름의 순간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삶의 이치가 그렇다.

 

뭐, 사랑의 짜릿한 순간만을 탐닉한다면,

우리 심장의 미세한 박동의 배터리는 순간 먹통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그 '사이'의 콤마 하나를 요리 굴리고 조리 음미하면서,

'사이'를 인지하고, '사이'를 인정하고,

드디어 '사이'로 들어가는 일...

그게 사는 일이고,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이성복, 267)

 

너, 나

이 둘은 콤마로 인하여 구분지어지는 것 같지만,

또 이 둘 사이는 콤마로 연결되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된다는 말은,

사랑을 통하여 '주체가 변용'된다는 말이다.

콤마를 서러워하기만 해서는,

'사이'를 통해 만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없을 게다.

 

이 책은 상담 장면을 옮긴 것이라 좀 어수선하고 좀 잡다하다.

그렇지만 강신주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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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철학을 말하다 토트 아포리즘 Thoth Aphorism
강신주 엮음 / 토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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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하고 습한 남도 지방에서는 생선을 보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장을 손질한 생선에 소금을 가득 뿌려서 젓갈로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썩지 않고 삭은 것은

이전의 원재료와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을 내준다.

상큼하고 발랄하던 미각을 희생하여 만든 그 맛은,

진득하고 깊어진 것이 미각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 오랫동안 웅숭깊은 맛을 감돌게 한다.

 

이 책은 남도 젓갈같은 그런 책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추천하고 싶은 철학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영어, 한문과 함께 모아 두었다.

 

처음엔 얄팍한 상술인 줄 알고 심드렁해 했는데,

곰곰 읽어볼수록 깊은 맛에 빠져들게 된다.

원래 철학이란 그런 것 아니었던가.

독서의 달콤함이나 싱싱함을 던져버리고,

곱씹고 곰삭아 원래의 맛과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을 느끼게 할 때 철학은 비로소 발효의 미학을 드러내는 법.

 

이 책 역시 한 번 읽고 만다면, 그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없다.

영어로 번역된 부분까지 섬세하게 읽고 음미하며

오랜 시간을 곰삭도록 반추한다면 제 마음 속에서 몇 가지 줄기는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진 젓갈로 발효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귀는 '양주'다.

 

옛날 사람들은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서

천하게 이롭데 된다고 하여도 뽑아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기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처세술이라기보다는, 정치 철학이다.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아야 좋은 정치다.

천하를 한 사람에게 바친대도 받지 않아야 좋은 정치다.

정치의 기본은 이렇게 쉽다.

'최선을 다 하자', '하면 된다'가 판치는 세상은 그래서 나쁜 세상이다.

 

온전한 삶이 가장 위이며,

부족한 삶이 그 다음이며,

죽음이 그 다음이고,

핍박받는 삶이 가장 아래다.(화자)

 

이 역시 정치 철학일 것인데,

인간을 인간으로 온전케 하는 것이 최상의 정치이자 삶의 철학이다.

왜 부유한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은지... 이 철학은 보여준다.

가난한 삶은 온전한 삶의 다음일 수 있으니 그렇다.

그러나 부유한 나라에서 스스로 스스로를 핍박하여

더 높은 곳, 더 많은 곳으로 채찍질하는 삶은 최선이 아니라, 최고를 위하는 체하는 최하의 삶인 것이다.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의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이 고통스런 이유다.

 

옛날 참다운 사람들은

잠을 자더라도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있다 하더라도 걱정이 없었다.

그들의 음식은 달지 않았으며, 그들의 숨은 깊었다.

참다운 사람들은 발뒤꿈치로 숨을 쉬고 보통 사람들은 목구멍으로 숨을 쉰다.(장자)

 

양생 - 웰빙을 이야기하는 장자의 이야기다.

웰빙은 정치철학이자 처세술의 핵심이다.

불면증과 우울증, 음식에의 탐닉과 얕은 호흡이 잘못사는 길이란다.

 

깊은 숨...

발뒤꿈치까지 호흡이 닿을 정도로 스스로를 관조하는 삶이라면,

인생에서

불면과 우울의 나날을 보낼 일은 없을 수 있을라나?

 

머리는 교환의 신체기관이지만,

심장은 반복을 사랑하는 기관이다.(들뢰즈)

 

머리로는 주고 받는 것을 따진다.

그러나 심장은 오고 가는 것을 넘어서는 '반복을 통한 익숙해짐'의 감정을 느낀다.

이 책 역시 머리로 '배울 것, 얻을 것'을 따질 책이 아니다.

심장으로, 반복을 사랑하는 책으로 삼고 싶은 그런 책이다.

 

 진지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글자 그대로,

'진짜로 무언가를 꽉 잡는다'는 뜻이다.

그렇다.

무엇인가를 꽉 움켜잡아야

거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중)

 

곰삭은 젓갈의 맛은 입맛을 꽉 움켜잡는다.

원래의 맛을 버리고 죽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한다.

 

그게 젓갈의 맛이자,

젓갈이 곰삭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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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8-0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자 백가의 귀환 양주와 묵자편 너무 기대되요. 언제쯤 나올런지...

이곳은 지금도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아랫쪽은 엄청나게 덥다고 하더군요.
물론 비가 온다고 해서 덥지 않은건 아니지만 ...
건강 유의하시구요...리뷰 늘 잘 읽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13-08-0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다상담 1, 2 >가 신간으로 나왔는데 관심이 가더군요.
강신주 님의 책은 어떤 책이든 잘 팔릴 만큼 마음을 끄는 것 같아요.

글샘 님, 이 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나요?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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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책이 좋아진 것은 오래지만,

최근의 책들은 나름의 트렌드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쏘옥 맘에 든다.

 

이 책은 지승호가 강신주와 며칠 밤을 새면서 대담한 것을 적은 기록이다.

대담을 몇 번 했다는데,

왜 '인문정신'인지로 시작해서ㅡ 김수영의 정신으로 번져간다.

그의 철학이 왜 '제자백가'로 귀결되는지 이야기하고 있고,

결국 '자본주의'에 맞서는 철학이 되어야 함을 강변하고 있다.

 

가장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그의 인문학에서 핵심어는 '사랑'이다.

그의 '김수영을 위하여'가 '김수영을 지향하는' 의미로서의 러브레터였다면,

이 책은 왜 김수영을 지향하는지를 쓰고 있는 'The art of love' 사랑의 기술~ 정도라 볼 수도 있다.

 

이 책은 절절한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모든 인문학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왜 종교를 뛰어넘는 인문학이어야 하는지... 종교에는 결국 인간을 버리고 신에게로 도피하는 무기력이 내재하기 때문.

 

서로 맨얼굴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세밀한 얘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좋은 거죠. 행복하고.(582)

 

가족이나 가정이라고 해서 맨얼굴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가족은 또다른 가정의 연장이어서, 오히려 가족간의 페르소나가 '화병'을 돋우기도 한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성숙해진 다음에 사랑할 때,

내가 독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랑할 때는 다르다.

내 욕망을 내가 선택하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선택한 거니까.

사랑의 기준은 나한테 기쁨을 주는 것인데,

여기서 기쁨이란 그 사람을 만나서 내 삶의 의지가 확장되는 것.

가능성이 더욱 열리는 것.

그 사람을 만나서 삶을 더 누릴 수 있다는 느낌, 확장된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한번 어른이 되면 어른인 것.

자기 욕망을 갖추는 것이 어른이 되기 위한 기본.

핵심은 내가 타자를 선택한다는 것.

저 사람이 있어야 내 삶이 더 확장된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타자의 욕망을 선택하는 것.

그럴 때 어른이 되는 것.(567)

 

그가 사랑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

올바로 사랑하는 법이 곧 '인문학'이고 '철학'이므로 그의 사랑 이야기는 초지일관 꼿꼿하다.

그래서 그의 글들이 폭신하고 다사롭다.

처절하고 철저하지만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그의 철학은 철저히 사람을 향해 있다.

외롭고 눈물나는 사람, 갑옷 속에 갇혀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에게 그가 내미는 철학의 열쇠.

 

대화로 끝까지 결판을 보자는 것.

그렇게 했을 때 철학자로서 존재감을 느껴요.

내가 살아있을 만한 가치가 있구나,하는

나는 열쇠 찾아주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잃어버린 열쇠를...(99)

 

인문학의 가치는 '공명', '보편성'을 느끼는 데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 서적, 자기계발서, 안철수... 등에 기대려는 나 자신이 보이는 행태의 근원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해, 밑바닥을 말끄러미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그야말로, 열쇠를 건네주는 셈.

 

게으른 나는, 또는 삶에 바쁘단 핑계로 날마다 대충 건너뛰며 사는 나는,

그 열쇠로 내 마음의 자물쇠를 철컥, 열 용기가 없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또 건성건성 북의 핵심을 두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상처받지 않을 권리', 이번에 쓰는 정치 철학,

그리고 앞으로 쓸 사랑과 가족에 관한 책,

이 세권이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드에게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사람들의 허점과 약점, 비겁함과 남루함, 오해를 바로잡는 책을...(376)

 

그의 책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철학이 '그들'의 이야기를 건너서,

'우리'의 이야기로 넘어와, '나'를 건드릴 때,

인문학적 심성을 가진 자로서의 '나'의 '철학'은 사유되기 시작할 것이므로...

 

바쁘다는 핑계로 '진면목'을 놓치고 사는 '나'에게 '나'를 찾는 여행을 들려줄 그의 철학이야기가 기대되는 것이다.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시대>를 읽어봐야겠다.

 

시각문화는 스펙터클을 가능하게 하고,

관조하게 만들고,

실천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 그 위험성이 있어요.

드보르의 주장은 우리가 관조하면 관조할수록 더 못살게 된다는 거고요.(472)

 

이 책에선 '시선'의 방향과 주체성, 감각의 중요함 등을 사랑을 소재로 섬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공부의 폭을 넓히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자기계발에 대한 이해도 날카롭다.

 

자기계발과 자살은 사뭇 구조가 유사해요.

(자본주의) 세계를 죽여야지 왜 자기를 죽여요.

서서히 죽이다가 자기계발에 실패하면 죽어요.(489)

 

삶보다 중요한 문제는 '죽음'이다.

마지못해,

비루하게,

그냥저냥

왠지도 모르게,

하루하루,

대책없이,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왜 '죽지 않는가?'를 고민한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철학해야 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책은 사랑을 가르친다.

어른이 되는 것을 가르친다.

세상을 보지만 말고,

촉감으로 느끼라는 말로 가르친다.

온몸으로 통과하는 것만이,

자기의 철학이 될 것임을...

그래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사랑학 원론'으로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

 

 

425. '교육인적자원부' 인재를 왜 키워요. 그 발상을 없애야 해요. 그게 노무현 정권때 명칭이잖아요. ---> 2001년 국민의 정부 시절에 생긴 이름임.(김대중 정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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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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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1937년,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가장 성하였던 시절 나왔던 청소년 철학서임을 알고,

왜 지금 이런 책을 펴냈을까?

그것도 괜찮은 청소년 도서를 내기로 정평이 나있는 양철북에서?

이런 의문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있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를 미리 읽었더라면, 그런 의문은 미리 풀고 갔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 과정을 몰랐기에 꼬부장한 눈으로, 이상한 구석만 나와봐라, 욕해줄 테다! 하는 자세로 읽게 되어

책을 더 비판적 시각에서 골똘히 읽었던 것 같다.

 

2012년 여름,

청와대가 수상하다.

미국이 제시한 것이 당연한 '한일 군사 정보 동맹 협정' 같은 것을 맺으려 한다.

일본에게서 한국이 읽어낼 군사적 정보가 많다면 모를까,

제1 교역국 중국과 비겨보자면... 좀 무모한 도전인상 싶은데...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한 사실을 잊었나?

아하~ 친일파들은 이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일본이 상륙해주길 기다리시나?

그런 거야?

 

일본이 군국주의에 미쳐 날뛸 때,

청소년들이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자라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일본 소국민 문고'를 16권 내는데,

그 첫번째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엊그제 안철수 원장이 힐링캠프에 나와서, 한국을 진단한 말.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나왔듯,

자살률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품질의 삶을 누리는 현재,

출산률로 보아 세계에서 최악의 미래를 보장받는 사회.

뭔가 바꾸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동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묻고 대답하며 부딪치고 깨닫는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철학적 사고가 담겼으면 하는 부분을 삼촌의 노트로 기록해 주고 있다.

 

약 80년 전인데도, '작가 중심' 사고에서 '독자 중심' 사고로 전환한 획기적인 책이라 볼 수 있다.

1930년대라면 작가가 '나를 따르라' 하면 독자는 넵~ 하고 읽어야 하던 시대이니 말이다.

 

코페르란 이름에서 주인공 아이는 철학의 '반전'의 핵심에 다가선다.

 

당연한 것을 생각하는 건 절대로 우습지 않아.

알고 있다고 믿었던 어떤 것을 좀 더 깊이 파헤치고 생각하다 보면

절대로 알고 있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란다.(75)

 

생각은 이런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철학은 거기서 정지한다.

더더더~~~ 생각하는 자세는 '알고 있었다'는 말을 넘어 선다.

그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될 거다.

 

흔히들 '고맙다!,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는 뜻으로 '고마움'이라는 말을 쓰고는 하는데,

그 말은 본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란다.

나는 본디 이렇게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그게 바로 고마움이라는 마음이란다.

고마운 마음이 '고맙다'라는 말이 되어 나타나고,

그 말에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러나는 거란다.

이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지금의 너를 되돌아보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122)

 

일본어의 언어 철학의 일단을 볼 수 있는데,

'아리가토오~'보다는 '스미마셍' 또는 '스마나이'의 의미 풀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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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란 말을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

대체로 아래와 같은 때에 사용을 합니다.

 

1.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경우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2. 타인의 집이나 가게에 들어설경우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3.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경우 "잠시만요, 실례하겟습니다"
4. 상대방에게 호의를 받은경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5. 타인을 조심스럽게 부를때 "저기요, 여보세요, 잠깐만요"

 

같은 말인데도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을 하는데,

도대체가 스미마셍이란 말의 정확한 뜻은 뭘까?

일본인들도 스미마셍이란 말의 어원 즉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을 두가지로 보는데,

'済(스마스)'와  '澄(스마스)'인데,

두가지 모두 '스마스'이긴 한데 뜻은 다릅니다.

済는 우리말로는 '제'로 읽으며 '이루다'란 뜻이며

澄은 우리날로는 '징'으로 읽으며 '맑다'는 뜻입니다.

일본인들은 두가지 한자를 모두 '스마스'로도 읽습니다.

그리고 'ません(마셍)'은 '않다'라는 부정을 뜻하는 말인바

'済みません(스미마셍)'은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뜻이되며

'澄みません(스미마셍)'은 '(마음이) 맑지 못하다'는 뜻이 됩니다만.

두가지 모두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다' 즉 '찜찜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은 상대방에게 충분한 감사를 하거나 사죄를 해야 하는데,

다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최대한 상대방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즉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어떤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NE007&qid=3JPrT&q=%EC%8A%A4%EB%AF%B8%EB%A7%88%EC%85%8D%20%EC%96%B4%EC%9B%90&srchid=NKS3JPrT <다음 '지식 검색'에서> 

펼친 부분 접기 ▲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위인이란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것은 당연지사.

 

영웅으로 또는 위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은

인류가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업적 가운데서 가치있는 업적을 꼽는다면

인류의 진보라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은 일 뿐이다.(169)

 

위인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나치게 국가주의에 입각한 위인상을 내세우고 있다.

하긴 지폐에 대한민국 사람은 없고 순 조선인들만 가득한 나라다보니... 과거에 얽매인 성리학의 나라다.

현대 세계의 위인이란? 이런 것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크다.

 

뜰에서 느낀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의 본능은 몇 천 년이라는 역사 속에서도 똑같이 움직여온 것이다.(256)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문화를 돌아보고,

그 면면한 역사를 발전,계승시켜나갈 후임자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야기는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건전한 삶의 지혜를 길러줄 필요,

현대가 될수록, 마마보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언가 생산해내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예요.

이만한 일은 나도 할 수 있어요.

내가 이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요.(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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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7-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내용이 청소년용?
저처럼 덜 자란 어른에게도 좋을듯 한데요^^:::

글샘 2012-07-26 09:58   좋아요 0 | URL
덜 자란 어른은 소주를 마셔야죠~ ㅎㅎ 자라게~~~
근데 넘 더워서 소주는 못 마시겠죠?

아무개 2012-07-26 15:14   좋아요 0 | URL
전 맥주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가능하면 소주로 쭉~ 달리는 편입니당.
땀을 바가지로 흘려도 전 지글지글~ 삼겹살에 소주가 좋아요 ㅎㅎㅎ
 
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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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철학 교수인 모양인데, 단행본 25권의 저자라고 프로필에 나온다.

그의 책을 찾아 읽은 적 없으나, 이 책을 보고 나니, 한번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스물 다섯 권이면 올 여름은 너끈히 나겠다.

그의 '동무론'이나 '연인과 동무' 정도는 제목만 들어본 정도.

 

이 책은 <공제의 비망록>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공제는 '덜어낸다'는 뜻이고, '비망록'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메모장을 뜻한다.

수필처럼 생각을 골몰하여 글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떠오른 단상들을 기록한 것이다.

 

만화가 허영만 씨는 "메모는 내 머리의 일부분"이며, "메모야말로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캐릭터가 쏟아져 나오는 보물 창고"라고 한다. "인터넷, 편하죠, 그러나 그곳의 지식은 향기가 없고 감정이 없습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자신만의 지식 창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메모입니다."라고 한다.

 

블로그도 충분히 메모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음에 낯설어하는 말이겠지만,

암튼 '공제의 비망록'에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자라게 하고, 길들게 하고, 다투게 하는 다양한 꼭지들로 가득하다.

철학이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와 관계를 짓고 사는 사람들, 직장이나 기관, 국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더럽고 잡다구레한 것들을 다 따져보고 생각하여 이야기하는 것인데,

철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언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산책길에서 만난 '며느리밑씻개'를 통하여 '며느리'란 낱말에 묻은 애환의 단층을 짐작케 한다.

가족들 사이의 교통을 맨몸으로 개척했던 '며느리'를 그 구조의 사북으로 여기는 일도 당연했을 터.

그러면서도 그 첫 고비에 치러야 할 비용이 그토록 높았다는 사실은 나와 타자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지악스레 드러내는, 히스테리 전설의 표현... 며느리-꽃.(41)

 

한국 사회는 아직도 '봉건' 사회다.

며느리와 '시-'의 관계가 가장 그러하다.

그 사이에서 가족은 '외가'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다.

'시-'들이 착취한 과거를 생각하면, 자연스런 세태다.

철학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사회는 말라 죽게 되어있다.

한국 사회의 '시-'들은 시들어 죽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눈물 젖은 '며느리-꽃'들이 마치 '친정-나-시집'의 갈등을 상징하듯,

매끈한 삼각형 이파리로 젖어 나올 것이다.

 

 

'봄날은 간다' 꼭지에서

노인들이 '죽음의 준비' 테마 이야기하다가,

<산 사람들과 이별을 위한 화해>가 등장한다.

"죽기 전에 다 찾아가서 화해해야지, 아무렴."한다.

 

이런 것이 뭔 의미가 있을까?

형식적으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걸 철학자 아저씨, 어려운 말로 설명한다.

 

 

콘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의 동거,

 

아무런 실질적인 변화 없는 낭만적 화해,                                    <며느리 밑씻개>

따짐도 헤아림도 분명하지 않은 감상적 청산,

결국 망각에 불과할 뿐인 용서...

이들은 내게 한심한 나태, 두루뭉술한 미봉에 다름아니다.(95)

 

 

 

콘텍스트(맥락)을 무시한 텍스트의 동거...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만큼 이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관계가 있는가?

봉건적 사회 질서에 불과했던 관습에 얽매인 사고는... 미봉에 의하여 많은 사람에게 상처만 줄 따름인데,

시간이 갈수록 골은 깊어만 가는 것 같다.

 

봄날이 가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무나 그 사실을 살아내진 못한다.(228)

 

콘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를 살아내는 것만으로 봄날의 가는 것을 슬퍼만 해선 안된다.

자기가 봄날을 살고 있음을, 그 지난한 삶에서

잠시 나온 이 소풍같은 삶이 아름다웠음을 웃으며 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동무'가 필요한 게다.

 

J에게란 글이 짧으면서 좋다.

 

생각이 좋은 사람보다 글(쓰기)이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글이 좋은 사람보다 말(대인대물 상호작용)이 좋은 사람이 되면 더 좋지요.

말이 좋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면 생활 양식이 좋은 사람일 겝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은 '희망'이 좋은 사람이니,

그런 사람이 되도록 애쓰십시오.

물론 이중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152)

 

희망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희망은 '실천'하고 있는,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희망'이어야지,

생각만 하는 '희망사항'에 불과해선 안된단다. 정말, 그렇다.

 

그가 '부사'에 몰두하는 면은 신선하다.

 

많은 위대한 사상가 중에 소크라테스만이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지 않았단 사실은 매우 중요한 강점이다.(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진리를 말하겠다는 의욕 속에는 이미 혼잣속의 글이 진행되고 있어 퇴행적이다.

더불어 어울리게 되면, 너도 나도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 대화적 긴장의 부사성 속에서 은근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체감되기 때문이다.(부사, 혹은 무기록의 삶)(163)

 

'게임'이라는 것들이 놀이-몸들의 어울림을 통해 부사적으로 공동체성을 현시할 수 있었던 잠시의 장소-를 추방시킨 것처럼, 볼거리 속에 각색, 극화되어 재생산되는 행운은 행복의 길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동사나 명사에 대조적으로 '부사'는 겨우 곁따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문장에서 결정적 성분이 아니다.

없어도 되는 이것은, 있음으로써 얻는 소득과 그 보람 속에서 어떤 징후를 보인다.

명사와 동사적 존재들의 명목 가치가 기존 체제와 그 질서를 지킨다면,

실은 인간의 무늬에 유의하는 사람에게는 이 존재들의 체계 탓에 <어긋나는 삶>으로 경험된다는 것인데,

명사와 동사로 구성되는 정신문화적 '경부고속도로'의 바깥에서 이 어긋남을 어긋냄으로 되받아치는 것을

'부사적'이라고 하며, 그같은 움직임, 생활양식, 의욕을 '동무'라고 부른다.

 

'동무'라는 움직임 혹은 관계를 부사적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것이 체계나 제도에 접속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며, 오히려 거기 틈을 내고 방향을 바꾸는 의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당신이 접속 on 하면서도, 그 논리와 욕망을 바꾸며 어긋내는 against 벡터일 때,

우연찮게 포함되긴 하지만 소속될 수 없는 희망을 지펴 살아갈 때,

동무들은 당신을 한 템포 느리게 '동무'라고 부르는 것이다.(275, 명사에서 동사로, 동사에서 부사로)

 

부사는 부차적이다.

그러나, 그 부차적인 <어긋남>의 클리나멘의 존재로 인하여,

삶은 윤기가 난다.

명사와 동사가 삶의 기본 뼈대인 문장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본 문법의 틀만으로는 발전이 없다.

말해지지 않는 진리가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듯이,

중심적이지 않은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다.

 

그 부사적 움직임(벡터)는 정태적인 삶(스칼라)를 희망차게 간질여서 웃게 만들 것이다.

그게 '동무'의 할 일이다.

신 나고 즐겁고 기쁘고 재밌게 살게 하는 힘, 그것이 '동무'와 '부사'의 노릇인 셈이다.

 

그는 학생과 그 애인들을 통해 '인력과 척력'의 관계를 고찰한다.

 

내게 있어 학생과 그 애인은 자기동일성의 타락과 타자성의 심연이라는 두 대극적 이미지로 유형화된 셈이다.

인력이 있어 타락이었다는 변함없이 새로운 발견과 그 충격,

그리고 척력 역시 형적 없는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213)

 

인간은 '밀고 당기기'를 통해 관계 맺는다. 거기서도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는 바,

제자와 스승의 만남에서도 여지없이 보이더란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의 '가난'론은 서글프면서 공감이 간다.

 

가난이 가난일 뿐이었다면, 나 역시 낙엽처럼 바스러졌을 것이지만,

나는 기이할 정도로 유년기의 기억을 거의 소실하고 말았는데...

물론 이것은 유년기의 외상을 회피하려는 끈질긴 방어기제다.

내가 파편으로 분열되거나 상처로 응축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의 자기 최면이 것이다.

미래를 앞서 초대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최면술.

내가 수많은 독서의 내용을 깨끗이 기억하는 것과 실로 의이할 만한 대조.

 

프랭클의 말처럼 에로틱은 메타-에로틱이고,

만하임의 말처럼 이데올로기는 메타-이데올로기이며,

노직의 말처럼 유토피아 역시 메타-유토피아라면,

내게 가난은 메타-가난이었으리라.(242)

 

'메타-'란 것은 무엇의 기저에 작용하여 다른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적 작용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린 시절의 가난은 삶의 모든 사유, 행동, 삶의 편린들에 원리적으로 작용한다.

메타-가난... 실로 무서운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과외 열풍' 내지 '제 자식 감싸기'의 원인은 이런 것들이다.

 

김영민의 메모장들을 들여다보면,

윤기로 반들거리기보다는 버석거리고 푸석푸석해 뵌다.

 

그건 그가 '공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제의 비망록...의 의미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다.

 

어쩜, 그건,

봄날이 가는 걸~ 봄날을 지내놓고 아쉬운 맘이 들고서야, 알게 되는 서러운 이치나 한가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 봄날은 간다.

재밌게 살 일이다.

 

 

--------------

27. 49제... 49재가 맞다.

     재(齋)는 인도 산스크리트uposadha의 번역어로 재계齋戒와 재회齋會의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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