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곰브리치 세계사 2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은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곰브리치 세계사>다.

일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에서, 곰브리치가 잘 쓴 면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물은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총명한 아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한 단어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한국의 많은 교과서들이 너무도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 개념의 집합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교사들은 안다. 그렇지만, 또한 초중고 교과서가 제대로 위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초등때 불필요한 것들을 숱하게 배우고, 중딩때는 더더욱 많이 배운다.
그런 불필요한 지식에 대한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는 기관이 각종 <사교육 기관, 학원>이다.
그런 기관을 위해 존재하는 구조가 바로 각종 <경시 대회>와 <급수 시험>인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석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학교에서도 과목별 석차만 존재한다.
이것은 매달 수십 만원을 투자하는 부모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불안한 투자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데, 이놈의 자식 교육이란 기제에는 인풋만 있고 아웃풋이 도통 없는 것이다.

유치원 시절만 해도, 완전 까막눈이던 아이가 한글을 깨치는 것으로도 부모는 만족한다. 아니 자기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하면서 기뻐한다.
그러나 유치원 교육부터 아이에게 <네 옆에 있는 그 애보다더> <더 나은 인간>, <더 가치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눈에는 내 아이가 어떤 수준인지 가늠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학원 봉고에 오른다. 해저물녘 놀이터에서 "밥먹어라"고 불러야 할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교육은 <낱말> 주입 교육이다. 특히 암기과목으로 인식되는 사회, 국사, 지리, 과학... 이런 것들은 완전 <낱말> 주입식이다. 그래서 낱말이 많이 주입되어있지 않은 아이의 경우, 완전 곤란한 지경을 만나게 된다.

역사가 왜 중요한지, 지리는 왜 일찍부터 발달했는지, 사회 과목에 비해 역사, 지리가 왜 필요했던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회나 역사나 지리는 몽땅 암기과목일 따름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시간에 따른 역사와 공간에 따른 지리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강조되는 것은 근대 이후, 식민지 시대 이후의 사조다. 특히 미국같은 인종의 샐러드 보울에서나 통용되는 그런 것.

중세를 별이 빛나는 밤으로,
피렌체에서 빛나던 르네상스 시대를 맑고 청명한 아침으로 옮길 수 있는 저자의 시선은 탁월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 세계사는 어디까지나 유럽 대륙에서 태어난 그의 손자, 손녀들에게나 유효한 세계사일 따름이다. 그의 세계에 반만년 역사를 가진 한반도는 포함되지 않았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도 지중해 일대의 일부만 세계에 편입되었을 따름이다.

세계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지,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어도...
모든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저자가 모든 나라에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나라',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근대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시오노 나나미처럼 <로마의 역사>에 붙잡힌 시선이 훨씬 신선해 보인다.
<십팔사략>을 읽으면서 <중화>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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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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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경식이란 이름을 듣고,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란 책 제목을 보고, 문득 서준식이 생각났더랬는데,
읽고 보니 정말 그의 동생이었다. 서준식, 서승 형제의 동생으로서 생각하는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는 추방당한 유태 민족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라고 한다.
지구 위에는 유태 민족만 추방당한 것이 아니고, 
일본에 살 수밖에 없는 재일조선인들, 
부모가 버리고 조국이 버려서 입양이란 가시밭길을 걸어간 아이들.
윤이상처럼 추잡한 조국을 스스로 버린 이들도 모두 디아스포라에 속한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국민방위군이란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버렸고,
보도연맹이란 이름으로 또 숱한 국민을 버렸다.
한국 전쟁(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봐선 조선 전쟁)을 통해 버림받은 사람들 외에도,
독재 시절, 숱하게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국가의 버림을 받았다.

독재자 박정희가 총맞고 난 뒤에도, 
시대의 어둠을 넘지 못한 땅, 빛 고을에서 또 수천이 버림받은 나라.

알베로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면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동화되지 못하고 이방인이 되었지?
식민지에서 사는 버림받은 자들의 아픔을 난 몰랐던 거다.

디아스포라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통해서, 내가 별 의식 없이 사용하는 <한국>이란 말이 얼마나 찐득거리는 소유의 개념인지를 깨닫게 한다.

망명객으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처지의 시선은 그런 것이었다.
다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낯선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눈길.
잘못한 것 없으면서 죄인같은 눈빛.
대학교 졸업할 때쯤, 내가 즐겨 불렀던 정호승 시인의 맹인 부부 가수가 떠오른다.
그 어쩔 수 없는 소외감과, 눈물과, 억눌린 울음이...

맹인 부부가수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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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2006-03-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맹인부부가수"를 보니까 생각나는 이야기 한토막. 아마 대학에 입학해서 신입생 환영회 비슷한 행사에서 행사가 끝나고 총학생회에서 나눠 준 노래책 제목이 아마 "맹인부부가수"였을 겁니다. 아니면 그 안에 있던 노래 중의 하나였던가? 아무 생각없이(?) 가방에 집어 넣고 집에 가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서울역에 내렸다가 검문을 당했지요. 한 건 했다는 전경들의 발길질과 함께 근처에 주차해 둔 닭장차로 끌려갔지요. 몇 번의 뒤이은 발길질과 욕지거리. "이제 빨간 물이 드는군" 등등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는 신입생이라 봐준다며 풀려났던 더러운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그 뒤론 검문받는 게 재수없어 전철을 타면 중간에 내리지 않게 되었답니다.

글샘 2006-03-1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그 시절엔 대학생도 디아스포라였죠. 날마다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 같던 자아를 보며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던 날들... 이젠 그 보잘것 없는 자아를 부등켜 안으려고 또 하루를 사는지도 모릅니다.

소금연못 2006-09-0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이 시대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디아스포라일 것입니다 . 쓸모있을 때는 저렴한 가격으로 쓰고 부담스러워지면 얼마든지 노동력 대체가 가능하니까...
맹인부부가수는 오랫동안 제가 좋아하던 마음 아픈 노래... "점득이네" 란 동화를 보면 주인공 점득이가 아마도 노근리로 추정되는 곳에서 학살당할 때 눈을 잃고 이 사회에서 춥고 힘들게 살며 눈내리는 날 저녁에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죠 . 점득이는 아내가 아니라 평생 수발해주는 누나와 함께 다닙니다 . 아직도 이 사회는 소수자, 약자들에게는 디아스포라가 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훌륭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 민족의 형성과 민족 문화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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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고시된 제7 차 교육과정에는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으로 10개 교과를 정해 두었다.
그 안에 국사는 없다. 사회 과목 안에 국사가 포함되어 있다.
난리를 치자, 국사를 분리한다고 했는데, 아무튼 아직도 국사는 없다.

무식하기로 유명짜한 국개의원들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고 눈이 뒤집어졌더랬다.
이런 빨갱이 책으로 애들을 가르쳐선 안된다고 발광을 했다.
교과서를 쓴 사람들은 다시 완전 오른쪽을 보고 교과서를 수정했다.
그래서 여러 종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교과서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썼다.
역시 교사의 눈은 학생의 시선을 많이 맞추게 되는 모양이다.
보통 교과서에 <특정 본문과 상관 없음>의 사진을 많이 싣는 반면,
이 책에선 사진, 지도, 그림 들이 교과서 본문과 짝짜꿍이 맞아 떨어진다.

이 책을 처음 펴들었을 때,
<역사는 왜 배우나요?>하는 단원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이제 조금 나아진 책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교과서는 검인정으로 허가받은 책은 아니다.
오죽하면 한홍구같은 역사학자도 <교과서 편찬>의 이전투구판에 들어서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한국 역사의 왜곡된 현장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 <역사는 왜 배우나>의 마지막 장 배경이 된 사진이다.
조선 600년의 수도를 감싸안은 북한산 앞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그리고 한국을 돌봐주는 미대사관이 오른쪽에 들어섰고, 한국 문화의 보고 문화회관이 왼쪽에 섰다. 가운데 어정쩡하게 선 광화문은 이 복잡한 삼거리에서 갈 곳을 몰라 땀을 흘리는 형국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쳐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마음 쓰기 어려운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국사>가 더 옳을까? <한국사>란 용어가 더 적절할까?하는 생각.
국사는 지나친 국수주의적 용어고, 상대적 포용성이 약한 용어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국사가 <한국><대한민국>의 역사는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라서, 두 권의 역사책 중 1권은 늘 고대사 중심인데... 왜 한국사지?

한국이 생긴 것은 60년 남짓이고, 그것도 국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 반토막의 분단국가의 호칭일 뿐이다. 한민족 7000만을 이야기할 때, 한국의 4000만과 북조선의 3000만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분단이 주는 상처는 이렇게도 골이 깊다.
무엇 하나 상쾌하게 해결이 나지 않는 것인가.

마지막에 수록된 연표를 곰곰 보면서, 연표를 좀더 다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60 제5대 정부통령 선거 실시
1963 대통령 선거 실시해 박정희 당선
1981 전두환, 대통령에 당선
1988 노태우, 대통령에 당선,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 대회 개막
1992 김영삼, 14대 대통령에 당선
1997 김대중 정부 출범

대통령 이름만 모아 봐도, 누구는 제5대고, 누구는 14대고, 누구는 당선이고, 누구는 출범이다.
좀더 일관성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은 개막만 한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두 번이다. 80년에 한 번, 81년에 한 번.
그런데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87년이다. 취임을 88년에 했을 뿐.
사소한 것이라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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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홋! 2006-03-1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 지금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역사는 반드시 피해야 할 과목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국사는 서울대준비생용, 세계사는 양많고 표점이 안나오니 패스, 근현대사만 좀 하는 편인 듯 합니당.
개인적으로 중학교땐 참 재밌게 배웠던게 역사과목이었는데, 어째 고등학교 오니까 효율성 떨어지는 과목이 되어버리네요^^
대학만 가면 세계사 공부해야지-_-ㅋㅋㅋ 라고 1학년때 부터 생각해왔는데, 과연 할지는 모르겠습니다ㅋ

글샘 2006-03-1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참 재미있는 과목인데, 학교에서 재미를 뚝 떨구고 있지.
대학가서 열심히 읽어 봅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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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을 쉽게 이야기한다. 공무원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교사도 중립을 지켜야 한단다.
사법부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사람들에게 중립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명쾌하게 말한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여기서 중립이라 함은 그 뱡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중립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득권자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저항하는 모든 세력에게 <중립>을 요구한다.
중립은 곧 흘러가는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중립을 버리려 한다.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얼핏 중도적으로 보이는 <모략>에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한국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일.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
한국에서 한 사람으로 산다는 일.
한국 사회는 갈수록 치명적으로 달리고 있다.
학교는 피폐해 지고, 양극은 벌써 벌어질대로 벌어져 버렸다.
이 때, 중립을 말하는 것은, 가진자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는 '당신같이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이 왜 이 나라에 살고 있는가?'하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은 독립선언서의 원칙들을 신봉하는 것이다.
정부는 인위적인 창조물로서 모든 사람이 삶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 전 세계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들 자신의 정부나 우리의 정부에 의해 빼앗길 수 없는 삶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 말이다.
어떤 정부가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질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라고...

흑인 인권 운동, 나치에 반대하여 2차대전 참전, 베트남 반전 집회 등에서 그는 진보적인 활동을 펼친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는 '유혈 참극에 뛰어드는 것이 파시즘에 맞서는 길일까?'를 고민한다.
전쟁에서 죽어간 두 친구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현재에 너무 압도당한 나머지 우리가 희망을 잃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그의 운동에 대한 철학은 단단하고, 건강하다. 가축몰이용 전기봉으로 흑인들을 구타하던 1960년 야만의 시대부터 그는 싸워왔다.

운동에 대해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승리는 하나도 거두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판단으로 저항운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 종종 범하는 실수다.
사회운동은 많은 '패배' - 단기적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 - 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낡은 질서의 힘을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하게 된다.
저항자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하지만 분쇄되지는 않으며, 반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다시 일어서고 기운을 얻어 왔다는 말로 그는 후배들에게 용기를 준다.

물론 자유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람들이 계속 전진하고 있다면,
얼마나 멀든 간에 그 거리를 좁혀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오랜 시간이라는 게 과연 중요한 것일까?

더큰 행동을 닦기 위해 작은 행동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희생자들을 지켜주기 위해 고난을 줄이고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어 주기 위해 무언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
행동은 집중적이고 조절되어야 하며, 희생자들과 그들이 직면한 재난 사이에 개입해야하지만,
더 많은 희생을 낳아서는 안된다고 '행동'의 지속성을 요구하는 훌륭한 책.

그의 활동 중, 세세한 부분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어서 지루한 측면도 있지만, 그의 철학은 사람을 더 젊게 만드는 힘이 있어 보인다. 10년도 더 전에 쓴 책이지만, 사회역사적 의의는 아직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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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3-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강력추천....몇 번을 볼까말까 고민했었는데...보게 만드시네요.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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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미국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조 결성의 자유를 외치며 싸운 날을 기념하는 날이란다.

여성이 '인간'의 범주 안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종교계에도, 여자 목사, 여자 교황, 추기경... 이런 것들은 불가능하다.
불교에선 비구니를 인정하긴 하지만, 여성에게 주는 <계율>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왔다.

문제는, 그 차별을 차별인줄 모르게 받아들이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의식화'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슈퍼모델이자 유엔의 인권 대사인 와리스 디리의 자서전이다.
화려한 슈퍼모델의 이면엔 '여성 성기 절제'라는 비참한 아프리카의 인습이 담겨 있었다.
여성을 종속시키기 위한 인습에 대항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그들은 오늘도 어린 여자 아이를 노예처럼, 아니 노예보다 못하게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무지로 인한 인권 유린을 위해, 본인의 비극적인 과거를 말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사막의 꽃이라는 뜻의 이름, 와리스 디리.

그의 용기로 여성의 인권이 한 발짝 앞서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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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3-0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맞춰 잘 읽은 책이군요..
저도 사놓고 못보았는데...
제작년에 새벽일찍 꽃을 사서 교문에 들어서는 여선생님들에게 한송이씩 전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들 어색해하면서도 기뻐하더군요..

해콩 2006-03-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에서는 분회장님이 '사과'로 '사과'를 드렸지요ㅋㅋ

글샘 2006-03-0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어색한 것이 쌓이면 좋은 전통으로 남겠지요.
해콩님... 사과드릴 일은 아니잖나요? ㅎㅎㅎ

비자림 2006-03-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학교에서는 여성의 날을 소개하는 작은 엽서와 쵸콜렛을 여선생님들, 행정실 여직원분들께 선물로 드렸답니다. 전교조 분회에서 추진했구요. 이 책을 빠른 시일 내에 읽고 싶군요.

해콩 2006-03-0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오랜 세월동안, 그리고 요 근래까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행사한 모든 종류의 압력에 대해 남성 대표로 '사과'한 것이지요..ㅋㅋ(해석은 제 맘대로)
그리고 이건 자랑인데요,저희 학교에서는 교직원뿐만 아니라 급식소 아주머니들까지 다~~ 챙겼답니당 ^.^

글샘 2006-03-0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이 책 정말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재미있단 건, 저자는 엄청 고통스런 삶을 살았단 거죠. 반갑습니다.
해콩샘... 우리 학교는 그렇게는 못 챙겼답니다. 조합원 여선생님들께 초콜릿 하나씩 드리고 말았지요. 그래도 다들 기뻐하시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