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트 니어링의 희망
스코트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보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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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onscience of a Radical 이다. '근본주의자의 양심' 정도일까?

그는 자신을 '근본주의자 radical'라고 칭한다.
끊임없이 선을 택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조화로운 삶은 결코 안정되지도, 안전하지도, 편하지도 않다.
조화로운 삶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조화로운 삶은 한 계단 한 계단이 다음 계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빼는 것이 아니라 더하는 것이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것이다.
파괴가 아니라 건설이며 소멸이 아니라 창조이다.

이런 맥락에서 근본주의자들은 좋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생활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여기 비해 <자유주의자>들은 조금 나쁜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꾸며서 좋게 보이게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나쁜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반동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나쁜 것을 강요하고 싶어한다.
<근본주의자>들은 해로운 것, 불리한 것을 거부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근본주의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남들이 환경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는 이미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 기준은 참 명확한 듯 하다.
요즘 한국 정부에서 '자유주의자'들이란 자들이 범하는 일들을 보면 해괴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보수주의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나쁜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기준에 부합한다.
FTA 같은 것을 받아들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기준. 미국 쌀이 들어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정부...

조화로운 근본주의자의 삶은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제 구실을 하는 삶이다.
주변에서 유행하는 웰빙이란 말에는 분명히 이 네 가지 요소가 다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도, 유난히 육신의 웰빙에만 제한적으로 쓰이는 듯 하다.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극도로 배드-빙으로 치닫고 있는 듯 한데 말이다.

근본주의자로서 그는 <부르주아 세계>의 핵심을 '재산, 착취, 특권, 권력'이란 네 낱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본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적은 글이지만, 마치 오늘날의 미국이란 패권주의 보스 국가를 비판하는 듯한 그의 글을 읽노라면, 서늘한 선비정신이 느껴진다.

앞으로, 자유주의자란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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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배하는 개들
로랑 제라 글, 모르슈완느 그림, J-P 뒤부슈 채색, 이승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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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 가는 도서관에 가면 '독서 치료' 코너가 있다.
내 마음도 치료(?)할 겸, 상담 심리 공부도 할 겸 그 코너를 자주 가는 편인데, 이 책이 거기 있었다.
표지엔 빈라덴, 놈현, 부시, 후세인의 삼단계 진화 과정(?)인지 퇴화 과정인지가 실려 있다.
원래 한국 대통령이 그렇게 중심에 있었던 건 아닌 거 같고, 일종의 합성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 그 갈등의 중심이 한국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슬픈 일이면서 믿을 수 없다.

이 책의 정수는 뭐니뭐니 해도, 인물 캐릭터의 삼단 변화에 있다. 어쩜 그렇게 비슷한 개새끼로 둔갑을 시키는지 재주가 메주다.

전미 애견대회에서 - 이 대회는 일직이 전세계 국민이 개판이라고 인정한 공인대회이며 수상자에게는 하얀집이 선물로 주어진다. - 수많은 결격사항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경쟁자를 가까스로 따돌리면서 ... 전 세계가 오존층 파괴로 걱정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에 개똥을 뿌리고 다닌다.... 부시를 비꼰 풍자의 한 대목. 부시가 변신한 개는 개중에 제일 별나고 철없이 날뛰고 기르기 힘들다고 소문난 어메리컨 코카 스패니엘.

한국개 진돗개와 노무현 대통령이 <사냥개 및 전투견> 코너에 속해있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프랑스 넘들이 보기에, 조선이란 나라는 미국 따까리로 전투에 기어나가는 주요 교전국으로 보이는 모양.
특히 신문사 사장집 고양이와는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있어... 성격 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 그 검사가 일반 검사일 때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자국 대통령 자크 시라크도 프랑스산 포인터로 변신한다. 이넘도 사냥개로 핵실험을 하는 등 비판을 받는다. 역시 불어로 언어 유희를 즐기기엔, 자국 사정을 잘 아는 만큼 프랑스 대통령 편이 가장 적절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불어를 모르니 그 언어 유희에 빠져보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제2 그룹으로 경비견 및 작업견에는 바오로 교황, 슈뢰더 독일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샤론 이스라엘 총리, 아라파트 의장, 카다피 리비아 원수 등이 있고,

제3 그룹으로 애완견 및 호사견에는 영국 총리, 여왕, 만델라 대통령, 코피아난 유엔총장, 장쩌민 중국 주석, 달라이라마, 시츄로 변신한 고이즈미 등이 있다. 영국이나 유엔, 일본이 이 그룹에 든 것은 좀 요상하다.

로랑 제라가 글을 썼는데, 프랑스어의 풍부한 언어 유희를 잘 살려 쓰느라고 고생 꽤나 했을 듯 싶다. 자기 소개에 특이한 말이 많다.
나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달라짐(그건 그렇군.)
가족관계 : 가족하고는 관계를 갖지 않음(녀석 하고는...)
출생지 : 프랑스 천재들의 본고장 브레스(???)
sex : active, 자유롭게
oral : active, 부드럽게
교육 수준 : 글은 아무나 쓰나
좋아하는 스포츠 : 누군가 그랬다. "스포츠는 마약과 같다" 고 미안하지만 난 마약 안 한다.(이 말 정말 맘에 든다.)

그림을 그린 모르슈완느도 장난꾸러기다.
이넘 왈. 나이 : 먹을 만큼
sex : 어마어마함
구사언어 : 프랑스어 많이, 영어 어느 정도, 스페인어 조금
좋아하는 스포츠 : 윈스터 처칠과 같은 생각(이 넘도 맘에 든다.)
건강의 비결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처칠은 한 손엔 위스키, 한 손엔 시가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No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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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치료 저도 받아야 될 것같아요 무작위 독서라서

글샘 2006-04-22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치료는, 무작위 독서를 치료하는 게 아니고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거던데요. 마음이 아프세요?ㅋㅋ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현대송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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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뉴스에서 많이 듣던 말이다.
라면 머리를 한 고이즈미(난 小泉 고이즈미를 들으면 故 이즈미란 상상이 떠오른다. 죽은 샘물이랄까)가 묵념을 드리는 신사.

한자로 쓰면, 靖國 神社인데 그 정자는 '편안하다. 다스리다. 조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 악장 중에 정도전의 정동방곡()이란 작품이 있는데, 거기 쓰이는 글자다.
동방이 우리나라의 이름이니 나라를 조용하고 편안하게 평정하는 노래... 이런 뜻이렸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일본을 싫어한다. 감정적으로 일본이 밉다. 우리 조상을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한 역사로 볼 때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일본은 만화 영화와 각종 오락 캐릭터로 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일본 공포 영화가 수입되곤 한다.

일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본어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현충일에 대해서 일본어로 설명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난 현충일은 노는 날,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는 날로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현충이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충이란 ' 충성심을 널리 알리기 위해 드러내는 일'이 되겠다. 국가주의 애국심의 발로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국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일본놈들, 정신 못차리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A급 전범이 모셔져 있고, 일본군 외에도 조선인 21000, 대만인 28000명이 합사되어 호국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전쟁 찬양>, <애국 현창>, <죽음의 기쁨>의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니라 은총이자 행복함이라는 <국가주의의 억압>으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의 기제가 <야스쿠니 신사>의 숨어있는 은유다.

과거 침략 전쟁을 긍정하고, 앞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하는 당당한 일본을 선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죽은 샘물 고이즈미'의 속셈이리라.

애써 전쟁 책임, 비전 명시, 추도 대상 과거에 한정하는 추도의식이라고 하지만, 전쟁을 부정하는 일본국 헌법을 굳이 부정하는 모습이 다시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둘러싼 정치적 혼네(本根)가 아닐까?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하잇, 소우데스카? 하는 다테마에(立前)를 갖고 있다. 그토록 상냥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다. 섬사람들의 조화를 중시하는 '와(和)'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을 공부하려면 혼네를 잘 읽어야 한다. 그들은 좀체 혼네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다테마에만 보고 '별것 아니군' 했다가는 된통 당한다.

한일 경제 수역 협약을 맺을 때도 된통 당했고, 지금도 동해/일본해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전사한 시점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 다시 일본인이 아닌 것으로 될 수는 없다.
일본의 군인으로 죽으면 야스쿠니에 혼령이 모셔질 거라는 마음으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유족의 요구만으로 철회할 수 없다.
내지인과 똑같이 전쟁에 협력하게 해달라고 해서 일본인으로 싸움에 참가한 이상
야스쿠니에서 제사는 당연하다.
대부분의 유족은 합사에 감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조선출신 영혼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썩을 놈들.

일본에서 가장 인기를 얻기 좋은 정치 전략은 <국가주의 전략>이다.
축구가 아무리 일본을 이긴다 해도, 제 밥그릇만 움켜쥔 한국 정부로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감을 놓든 배를 놓든 상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 밥그릇만 움켜쥔 한국 정부로선 말이다.
오히려 제 밥그릇에 침이 튈까봐, 강제 징용, 위안부, 야스쿠니 합사 문제는 외면하고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란 지랄같은 전망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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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4-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샘..흥분하셨네요. ㅎㅎ 요즘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글샘 2006-04-20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흥분했군요. 그렇지만 이 책 읽고 나니깐, 막 짜증이 밀려오더라구요.
일본과 우리 정부에... 정치란 것이 원래 짜증스런 것이지만 말입니다.
 
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 두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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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 우리 모두는,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새로 태어난 자유에 대한 찬양과 희망을 선사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극심한 인간적 재앙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인류가 자랑스럽게 여길 사회로 태어나야 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땅에서 사람에 의한 다른 사람의 탄압이라는 경험이
절대로 절대로 그리고 또 절대로 재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인간 승리 위에 태양은 계속 비칠 것입니다.
자유가 번창하도록 합시다. 아프리카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남긴 연설문이다. 아, 얼마나 뜨거운가.

이 책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공짜로 책을 받았고, 그래서 책을 읽기도 전에 이벤트까지 했건만,
정작 이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950쪽이란 분량도 만만하지 않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한 내 무지가 이유였다.

그저,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겨내고 27년만에 출옥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정도의 상식적인 지식만으로 아프리카를 만났다.

이 두꺼운 책을 덮고 책에 손을 얹어 본다.
책 속에서 들끓는 함성들이 아직도 쟁쟁하다.
그 함성의 주체는 짓눌려왔던 갈색 피부의 인류이기도 하고, 원혼이기도 하고, 아직도 진행중인 용서의 과정이기도 하다.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은 10년 전에도 아태평화재단에서 번역된 일이 있다. 독재에 저항하다 투옥되었다가 죽음을 넘어 노벨상을 타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심정적으로 만델라에게 마음이 많이 갔을 것이다.

만델라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의 의식은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따라 변화해 갔는데, 투쟁의 장면에서 쉽게 공산주의 혁명에 경도되지 않고 끝까지 민족의 자주성을 견지하는 태도는 인상깊었다. 공산주의의 최대 장점인 세계 동포주의가 역으로 가장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그는 깨달았던 것일까? 세계 동포주의는 자칫 '부족'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적 전통과 대립된다면 또다른 피를 부를 것임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 분리 정책에 저항하면서 비폭력주의에 기대었던 초기와는 달리, 결국 '민족의 창 MK'이란 무장 단체를 결성하여 기소되고 만다.

그 자신이 변호사의 신분이어서 법적으로 상당히 유연하게 대응한 면도 있고,
'이 죄수의 말이 옳다!', '기소 내용의 법적 타당성을 찾지 못했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신선해 보인다.

진보가 머뭇거리고 퇴보가 뒤따르기 마련인 수감 생활 동안 그는 끝없이 토론하고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운동은 긴장을 해소시키고, 긴장은 평온의 적이란 그의 의견은 한국 사회에서 장기수 생활을 한 사람들과 상당 부분 통하는 듯 하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부당한 지배, 그리고 그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인종 차별과의 지난한 싸움 와중에도,
흑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놓치지 않는다.
보통 '주적'이 사라지고 나면 '내부의 적', '자신이라는 적'과 싸워야 하는데,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이 여기서 붕괴되기 쉽다.(한국 정치는 아직도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거나 아닌지...)
만델라는 상당히 유연하면서도 확고한 사유를 보여주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만델라의 업적 중 가장 탁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아니었을까?
forgivness without forgetting.
용서한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망각하지 않는 용서.
망각에 맞선 기억의 전쟁.을 표방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활동은 아프리카 적인, 그리고 가장 남아공적인 업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뉴른베르크의 나치 전범 재판과는 상황이 달랐던 살얼음 같은 현실을 제대로 꿰어 보았으며, 다시는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용서>와 <화해>는 <진실>이 규명된 뒤라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지난 2주간 넘나들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머나먼 동쪽의 나라 한국과 오버랩된다.
로벤 섬의 감옥은 한국의 장기수들의 비참했던 실존과의 투쟁을 떠오르게 했으며,
<진실>에 대한 용서와 화해로 민족을 되찾은 그들과, <진실>을 외면하는 한국 현대사를 겹쳐 보게 하였다.

이 두꺼운 책에서 가장 나를 뜨끔하게 한 한 마디.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재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법무부 장관도, 교도소장도 아닌 바로 자기 동의 간수라는 말.
학교에서 생활할 때,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교육부 장관도, 교육 정책도 아닌 바로 자기 반의 담임이란 말로 내 가슴에 가시가 되어 남았다.

아, 한국에서 현대사를 읽는다는 일은 수많은 <거짓>과 만나는 일이다.
수많은 거짓들이 <진실>과 섞여 썩어가고 있어서, <거짓>이 진실 행세를 하는 일도 많지 않은가.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이제 시작단계에 있지만, <거짓>이 이미 <진실>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리고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철학과 의지가 박약한 정권 아래서 <국민적 화해>와 <용서>의 그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밝지만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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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1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란한 아침 햇살에 거짓의 안개가 걷어지기를..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진주 2006-04-1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따끈따끈한 감동이 실린 리뷰네요.
이책 보내자면 서운하시겠어요^^

글샘 2006-04-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님... 안개라면 아침 햇살에 걷히겠지만, 저놈의 황사는 걷히지도 않고 심해지기만... ㅋㄹ콜록... 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인간을 아는 일... 나 자신을 알라고 하신 선현들의 말씀을 되새길 때입니다.
진주님... 서운하다기보다는 좀 시원한걸요. 어차피 놔둬도 두번 읽긴 힘든 책일 듯.ㅋㅋ 제가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성경책(군대 있을 때 세 번 정도 읽었음), 어린 왕자, 그리고 읽었단 사실을 잊고 두 번 읽은 책 몇 종류... 그렇군요.ㅎㅎㅎ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 대지의 슬픈 유랑자들 연해주 고려인 리포트
김재영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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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이 끝나고,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소련의 폭정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서 살고 있던 '고려인, 까레이쯔'들이 알려졌다.

내가 고려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정래의 '아리랑'을 통해서였다.
간도의 역사는 그나마 좀 알려져 있었지만,
연해주의 고려인의 역사에 대해 내가 그토록 달달 외웠던 국사책에선 듣고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는 그들을 잊으려 노력했던 것이다.

아리랑에서,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1937년 어느 날, 갑자기 강제 이주 명령을 받고 기차에 오른다.
화물칸에서 짐짝처럼 수십 일을 달려 다다른 곳이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달리는 화물차에서 숱하게 죽고, 그래서 눈 무덤까지 만들어 보냈던 눈물의 역사.
중앙아시아에선 그 팍팍한 황야를 오로지 맨몸으로 일구어냈던 사람들.

그들이 이제, 러시아의 붕괴 이후, 독립국가들에 의해 다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있다니...

간혹, 한국 내의 조선족, 이주 노동자의 삶이나 중국의 탈북자들의 인권에 대한 르뽀들이 나오지만,
연해주의 고려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만나게 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십여 년 전, 박재동 화백의 연변 기행 같은 데서 느껴지던 '정'이나 '공동체 의식'보다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주권 국가를 갖지 못한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안정감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교육, 의료 등의 기본권과 내 배불릴 식량조차 없는 그들에게 북한은 너무 가난하고 남한은 너무 배부른 '놀부'였다.

흥부가 부황이 들고, 매품팔이도 실패하자, 형네 집에 쌀을 꾸러 들어갔다가 형수에게까지 죽도록 맞았다던 희극적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만이 아니었던가...

텔레비전에서, '이것이 인생이다.'란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삶들은 정말 구절양장의 굴곡으로 점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쩜 그렇게도 팍팍한 인생들을 살아왔을까?
얼마나 심장이 상하고, 얼마나 간장이 녹았으며, 애가 탔을까.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을까...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서는, 눈물조차 메마른 고려인들의 삶이 아닌 삶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제 민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제 나라도 갖지 못한 디아스포라들.
내 눈물에도 그들이 흐르고 있었다.
자작나무 흰 살결이 유난히도 슬픈 연해주에서 보내온 사람 냄새는 슬픈 내음으로 가득하다.

작지만, 후원금을 보내야겠다.
이 글을 읽으시면, 이 홈페이지에 한 번 가 보세요.
http://koreis.com/index.htm
오른쪽에 '고려인 동영상'도 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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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1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글샘님 감동입니다 그래서 추천으로 느낌전달해요

글샘 2006-04-1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슬픈 이야기였습니다.ㅠㅠ

rrgjy 2007-01-2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려인돕기운동 홈페이지 주소가 트래픽으로 나오네요.
확인해보니 http://www.koreis.com 로 해야 되더군요. 또는 http://koreis.com 혹시 글샘님 이 글 확인하시면 본문에서도 수정해 주심이 좋을 듯.....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