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ㅣ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홍세화 씨 강연을 듣는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의식화 되는가를 이야기하다가, 선배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다는 우스개를 한 적이 있다. 나도 선배를 잘못 만난 덕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툭하면 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일본 극우들이 독도를 제것이라 떠들면 즉각적으로 국사 교육 강화가 나온다. 이제 파블로프의 개처럼 종만 울리면 침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의 국사책이 얼마나 편협되고 거짓말 투성이인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걸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쓰는 이 시간, 이번 토욜에는 처음으로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이 치러 진다. 웃기는 일이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노릇.
한겨레에서 <거짓말>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진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연극배우 오지혜의 재치있는 사회와, 내가 좋아라하는 사람들의 강연, 그리고 이어지는 수준 높은 질의,응답까지, 이 책은 국사 교육의 강화 이상으로 지적인 힘을 길러주는 <지성의 파워 워킹>이라 할 만 하다.
정혜신의 심리학 강의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라는 그의 말은 그만큼 인간이 완전한 척 하려는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수구 꼴통들은 <모호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수긍이 간다.
너 친노니?
아니?
그럼 반노구나.
이렇게 명확하지 않으면 한국에 살기 힘들다.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 나오면 빨리 집에 가는 게 수다. 아니면, 끝없는 미궁에 빠지고 소인지 닭인지도 모르는 괴물한테 물려서 집까지 돌아오는 실타래를 놓치기 일쑤니깐.
김동광의 과학사회학은 새로운 학문의 영역을 알게 해 준다.
황우석 사태의 배경이 되는 심각한 학문적 부조리와 과학적 애국주의, 상업주의의 문제들을 속시원히 파헤치고 있지만, 너무도 애국적이어서 진달래꽃 아름따다 뿌리고, 그들은 난자를 제공함으로써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려는 여인들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시스템 같으니... 이 대목을 읽다가 저녁 뉴스를 잠깐 보는데, 다시 서울대 수의대가 나오가 개새끼가 복제되어 뛰어 댕긴다. 결코 줄기 세포가 어디로 튈지, 국익에 보탬이 될는지,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불치병, 난치병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될 기미의 ㄱ자도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다시 진달래꽃을 서울대에 뿌리려는가?
한홍구와 박노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두 사람이다. (박노자의 강연이 오늘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있었는데, 피곤해서 못 가고 말았다. 해콩샘이 갔을 테니, 정리해 달라고 해야쥐.ㅋㅋ) 박노자 씨는 오슬로에서 날아 왔으니 만날 기회가 드물어 오늘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한국의 이상한 국사책의 시작인 <단군>과 한겨레의 신앙에 대한 거짓말을 집어내고 있다.
법학자 김두식의 거짓말 권하는 사회에서는 솔직하게 한국 법조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학 입학부터, 법관 말년까지 시달리는 콤플렉스를 털어놓는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하다. '왕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는 그의 이야기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거짓말 권하는 사회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 준다.
"저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생긴 기득권이 있다면 통일을 위해서 다 버릴 각오가 돼 있습니다."하는 새터민 김형덕의 말은 진실성이 뚝뚝 떨어진다. 통일에 대한 담론들이 가지는 거짓말의 혐오감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한국 국민이 정말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분야가 통일이 아닐까 한다. 남한이 북한보다 나을 것도 쥐뿔도 없건만, 늘 퍼주기 운운 하면서 생색만 낸다.
여성학 강사라는 정희진은 페미니스트가 제일 무서워하는 페미니스트라고 할 정도로 '여성만 주의자'는 아니다. 여느 페미니스트들이 갖는 단점이, 여성은 피해자이자 약자이고 소수자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폭력과 우월에 대하여 혐오감을 갖는 극단적인 말들만 늘어놓는 반면, 그는 <경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경계를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단점 중 하나인데, 정희진의 여성학은 페미니즘을 감싸안으면서 한단계 뛰어넘는 담론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성적 소수자와 약자를 무시하는 거짓말들.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는 정상인(?이라고 착각하는)들의 거짓된 시선들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라풀 비드와이란 평화운동가를 모시고 인도에 관한 거짓말들에 대해 듣는다.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읽은 인도는 신비롭고 정신의 온기로 가득한 철학가의 나라였다. 한국에 소개된 인도가 그런 느낌을 주는 데 가장 기여한 이는 류시화씨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도, 한국인들도 인도로 많이 갔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가난한 인도만 있을 뿐, 영혼은 없더라는 기행으로 가득하다. 오지혜씨는 오히려 인도가 깨끗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일부만 본 이야기리라. 또, 인도는 IT 강국이라는 말도 오해란다. 인도도 여느 나라처럼 물질적이고, 비슷하게 종교적일 뿐이란 것.
어떤 분야에서든, 신화는 존재한다.
나는 국어 교사로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글을 잘 쓸 것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교과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고...
편견에서 신화가 시작되고, 결국은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거짓말들이 횡행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하나가 <공론화 하기>, <토론하기>에 익숙해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뒷담화가 제일 무서운 문화, 그래서 지연, 혈연, 학연, 나중엔 주연으로나마 위로받으려는 어리석음 뒤에는 <솔직하지 못함>으로 가득하다는 것. 그래서 뻑하면 <솔직히> 같은 말을 습관처럼 되뇌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