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9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종국, 완결 미생 9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바둑을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가 바둑을 두지 못하셨고, 무엇보다 그런 잡기를 할 시간이 없는 노동자의 삶을 사셨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만화를 읽었다.

그런데, 점점 몰입이 되면서,

스토리의 힘과 평행하게 달리는 '바둑 이야기'에 매료되는 중이다.

 

바둑은 결국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사는 길은, 적을 죽이는 길과 같다.

흑백 논리 이외의 논리는 바둑에 통하지 않는다.

바둑에서 상생이란 '법'은 없다.

 

아생 즉 살타이다.

왜 하나만 살고 하나는 죽는가?

밥그릇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나눌 수는 없나?

바둑판에서는 나눌 수 없다.

무승부라도 '반집승'으로 결판을 내도록 규칙을 정해둔 곳이 바둑판이다.

 

계가를 해야할 정도로 치사 빤스인 판도 있고,

불계승일 정도로 대마가 맥없이 사로잡히는 수도 있다.

 

같을 일을 반복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패'의 경우에도,

그것을 통해서 수를 버는 사람도 있고, 상대의 패에 휘말려 망치는 사람도 있다.

 

아직 살지 못한 바둑은 자칫 금세 죽는 바둑이 될 수도 있다.

삶 역시 그렇게 엄중하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뜻이 향하는 것, 지향.

 

처음부터 지금의 나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게되는 근거는 지향에 있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갖고 싶어 그것을 향하게 되고,

그러다 당장의 자신을 배반하는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지향하는 바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포기를 해도

지향하는대로 살기란 매우 어렵고,

지향하는 바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회한과 깊은 고독에 빠진다.

 

지향은 곧 길이고

그 길을 걸을 뿐인 누군가는 길의 끝에서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그 거울에서 소박하게 만족한 미소를 띤 누군가가 서 있을 수도,

괴물이 되어있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미생 8, 216)

 

아직 살아있다고,

승리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은,

계속 불안감에 휩싸여 자신의 지향점이 어디에 놓인 것인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다시 정주행하면서,

바둑 이야기를 곱씹으며 읽고 싶다.

마지막 9권이 나온다고 한다.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미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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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9-2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생이기 때문에 슬프고, 미생이기 때문에 희망스럽죠. 제목이 참 절묘하더라구요....

글샘 2013-09-27 13:1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오과장, 그 빨간눈에 천막머리
참 사랑스럽고 사람스럽죠. ^^
두고두고 생각날 거 같습니다.
 
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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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해피엔딩은 만국 공통이다.

그래서~ 행복하게 자~알 살았답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백설이에게 그렇게 잘 대해주었던 난쟁이들에게는 아무 관심없는

키 크고 백마탄 왕자만 밝히던 백설이는, 과연 그 남자를 따라가서 행복했을까?

 

어쩜, 백마탄 왕자는 백설이가 조금 지겨워지자,

벼룩시장에서 그 마녀가 갖고 놀던 '거울'을 사서 외치지나 않았을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냐?"

"네, 전에는 백설 공주님이었지만, 지금은 잠자는 숲속의..."

그럼 이 왕자 출신 아저씨는 다시 길을 떠나지 않았으려나?

그리고 혼자 남은 백설이는 이를 갈며 예쁜 여자를 해치는 마녀로 늙어가진 않았을래나?

 

한국 사회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에는 개인의 감정만 뒤섞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속박이 들어있고, 가족의 바람이 들어있고, 사회의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소설가 소설'이자, '귀신 소설'이자, '애정 소설'이자, '심리 소설'인데...

어느 것 하나 성공하고 있는 분야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사회 소설'의 하나로 사랑을 드러내 보이지도 못한다.

김려령이 '완득이'에서 보여주었던 '입담'과 '완득이와 똥주 선생'이라는 개성 넘치는 인물 창조에 실패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사람을 죽이는 작가와 무조건 벗기는 작가에 대한 부분이다.

그 인물들은 완득이나 똥주처럼 살아있다.

그리고 며느리를 울궈먹으려 작정한 시어머니의 형상화도 조금 더 잘 되었더라면 성공할 뻔 했다.

 

그런데, 죽어버린 아내의 얼음같은 모습은,

주인공 역시 꽁꽁 얼려 놓았다.

 

거기다가 현실성없는 '영재'라는 인물과의 뜬금없는 사랑 이야기는 소설의 개연성을 놓친 작가가

억지로 얽어맨 이야기로 흘러 버리게 한다.

 

완득이란 소설에서 똥주가 부잣집 아들이고, 교회에서 다문화 일선에서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 어울리지 않듯,

이 소설에서도 작가가 잘 아는 부분은 컬러가 잘 도드라져 있지만,

왠지 흑백처리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은... 아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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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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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만세'

韓國言論自由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1960년 김수영 <김일성만세>)

 

ㅋㅋ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자유자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우겨대는 자들이 다시 도래했다.

 

김수영이 앞선 시인인 이유는,

핵심에 곧장 다가서는 시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은 1960년,

4.19 직후 잠시 번득였다.

 

최인훈의 '광장'이 그랬고,

김수영과 신동엽이 그랬다.

 

그리고 다시 오래 잠들었다.

지금,

김일성 만세가 다시 회자되는 것은,

언론과 정치의 자유가 죽었기 때문인가, 살아났기 때문인가.

 

김수영이 간 지 45년이 지났건만,

그 시는 어쩜 이렇게 오늘 아침 발표한 것처럼 뜨겁게 살아 있는지...

 

한번 정정당당하게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검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년)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날뛰는 그들 앞에서...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해서...

이제 정서로 가로놓여서... 옹졸하게... 옹졸하게

먼지처럼, 모래처럼..... 작은 것을 느낀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달나라의 장난, 1953)

 

인간의 실존은

나라는 개체는

스스로 도는 힘으로 도는 팽이와 같다.

따로 따로 따로,

한 걸음 한 걸음,

팽이는 따로 돈다.

하나의 팽이에 중심은 하나 뿐.

 

팽이들에게 '단 하나의 중심'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

공통된 '우리'를 위하여 울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것도 무자비한...

 

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럽다.

 

다시 김수영을 꺼내읽는 일은,

그래서 청동 거울을 닦는 일과 같다.

잘 비쳐지지 않는 거울 속에 내 얼굴을 들이밀고... 비추어보려는 일처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신동엽도, 김수영도... 그립고,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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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09-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ㅠ ㅠ

글샘 2013-09-08 02:15   좋아요 0 | URL
시대가... 아.... 하게 만듭니다.
ㅠㅠ 대신 쓰바~ 하고 욕해야 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통진당 사태를 보며 김수영을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늘 민노당'을 지지했지만 경기동부연합을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뉴스에 나오더군요. 이석기 처리 동의 투표에서 반대표, 기권표가 30표 정도 나왔다고 말이죠..
이 현상을 어떠게 보아야 하나, 라는 토론이...

미친 사회 아닙니까 ? 100% 동일한 표가 나오면 그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죠.
반대표가 30표 정도 나온다는 것은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표인데 그것을 오히려 심각하게 보더라고요.
참... 어이가 없습니다.

글샘 2013-09-08 02:16   좋아요 0 | URL
국정원의 부정을 토로하던 민주당이,
국정원이 만든 프레임에 쏙 들어가서 이석기 욕하는 거 보니... 참 씁쓸하데요.
이 사건으로 시간 끌다가 추석 넘기고 어물쩡 하려는 작전이... 성공하겠죠.

순오기 2013-09-06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추천만....

글샘 2013-09-08 02: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조용하지만... 다들 알고 있겠죠.

아무개 2013-09-06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님 이러시다 내란음모동조죄 뭐 이따위거로 하룻밤새 긴급체포되시는거 아닐런지요 ㅠ..ㅠ

김수영의 시가 이제야 가슴에 팍팍 꽂히네요.....

글샘 2013-09-08 02:18   좋아요 0 | URL
국가보안법은 '거물'을 잡아들이는 법인데요. ㅋ~
아무래도 이석기는 거물 급에 들지 못하는 듯... 국보법의 위신을 떨어뜨린 처사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김수영 시라니깐요?

테레사 2013-09-0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그래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구나...정의가 승리한다? 그건 우리들의 바람일 뿐이구나..사필귀정? 그것 역시 현실성이 없는 위안의 말일뿐이구나..저는 그저 이 증오의 시대가 무섭습니다..

글샘 2013-09-08 02:19   좋아요 0 | URL
철학자 과학자들이 그래서 연구하잖아요. 시간은 앞으로 흐르나? 이러고...
역사도 개인의 삶도 다 반복된다잖아요.
그래도 미래는 좀더 밝아질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은 가져 봐야죠.

2013-09-06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3-09-08 02:19   좋아요 0 | URL
뜨끈뜨끈해서 슬프죠.
뜨거운 만두 먹다 입이 데어서 눈물이 주르륵 나오듯...
김일성 만세~를 외치진 못해도, 관심을 놓치진 말아야죠.
 
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지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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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은 내게 특별한 시인이다.

그의 시 한 편 때문이다.

 

그래서 황인숙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세상은 참 추악하다.

그 추악함에 맞서기 위하여 삶은 무겁다.

 

언어는 추악한 것을 가리려 하지만,

또 언어에 의하여 추악한 것을 드러난다.

 

삶의 가벼움을 시를 통해 만나는 일도 즐겁다.

 

고양이가 가짐직한 존재감.

그 사뿐사뿐함과 그 착지의 완벽함.

순간순간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발현하여 보이는 존재.

 

그 고양이에 비하면,

인간의 둔탁한 발걸음은,

황인숙의 말을 빌리자면, <자명한 산책>이 되는데,

그 발걸음의 어색함은, 고양이의 그것에 비하면, 참 촌스럽기 그지없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강)

 

나는 아무의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자유로)

 

이렇게 씁쓸한 현실 인식 속에서도,

인간은 때론,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곤 한다.

그때, 그의 발걸음은 <자명하게> 고양이의 그것을 닮아간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조금 침울하지만, 뭐 그정도 침울함이야 어떠랴.

소중한 이가 거기 있어서

삶은 달려가고 싶을만치 가치로운데 말이다.

 

그런 운명의 무거움과 경쾌함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통일체로서의 음악이 있다.

바로 파두다.

 

잠이 걷히고

나는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어떤

암울한 선율이

방울방울

내분비(內分泌) 됐다

공기가 으슬으슬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한층 더 으슬으슬하고 축축한

어둠이었다

 

끝없이 구불거리고 덜컹거리는

산도를 따라

구불텅구불텅

덜컹덜컹

미끄러지면서

 

(이 파두, 숙명에는 기쁨이 없다.)

 

나는 점점 더

부풀어 올라

탱탱해졌다

오줌으로 가득 찬

방광처럼.(파두-리스본행 야간열차)

 

포르투갈의 짙은 대서양빛 바다와

지중해에서 부딪치는 물살의 무지갯빛 물안개가 가득 비치는 듯한

탱탱히 부풀어 오르는

인간의 심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파두.

 

파두를 듣는 기분으로 황인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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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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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고향은 충청도지만, 충북에서도 동쪽이다.

충주, 제천은 아무래도 강원도에 가까운 이북 말투와 비슷하다. 촌스럽기 그지없고 나름 억세다. 별로 느리지 않다.

청주, 대전은 평야지대에 가까워 느리면서 나름 부드럽다.

 

남덕현이란 사람의 충청도 이야기는

음식이라면 별로 강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심심한 이야기들 속에서

제6의 맛, 감칠맛을 찾아내는 <미원>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인생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이런 이야기 속에서는 삶의 희로애락과 애환, 페이소스와 좌절 속에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란 것이 남아있다.

 

사랑 이야기도 재밌는데, 이런 말은 자못 심난하다.

 

인연은 미수꾸리가 안 되는 것이구,

현다 혀도 헐렁하게 쩜매야지

흘릴께비 꽁꽁 묶으믄 못쓴다.

낭중에는 반다시 도로 풀르야 쓰는 것이 인연인디

꽉 쩜매믄 손톱 발톱 다 빠져두 절대 못 푼다.

그라니께 집이를 지 옆이다가 꽁꽁 묶아 둘라고 허믄 못쓴다 맴먹었슈~(111)

 

인연이란 미수꾸리가 안 된다는 말이... 쓸쓸하게 들리면서도, 그려, 그게 진리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덜 사는 꼬라지는 이 지경인디

여섯시 내고향 같은 거 보믄 시골 사람덜 죄다 부자여, 부자.

우덜 고향은 고향두 아니래니께. 우덜만 빙신인겨 빙신...(217)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나, 세상에 대한 자조...

이런 것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권 획득'만을 정말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렇게 냉소적으로 자조적으로 변해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 지은이는 '논설문'을 쓰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 속을 무지르는 '느릿한 어조'를 통해서,

<소통>이 중요하지,

내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의 <미수꾸리>는 풀어질 것이 이치임을 알아야 한다고 드러낸다.

 

그래.

모든 인연은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잡아 두려고 하면, 오히려 애만 쓰다 망치게 된다.

 

------------------ 어색한 쓰임 몇 가지...

 

46. 조시(시작)를 살피지는 못할 망정... 조시...는 일본어다. ... '시작'으로 번역하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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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8-0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왜 저 말을 다 알아듣는 저는 역시 충청도군요...."현다 현도 헐렁하게 쩜 매야지" 오랫만에 들어 보는 말입니다. 충청도 사투리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제가 대학에 와서 MT를 갔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상추를 올려 놓을 접시를 후배에게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야! 가서 앞사라 부셔와!" 그 후배 한동한 멍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