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1 소설 조선왕조실록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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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에 꽂혔고,

김탁환에 갸웃했다.

 

결국, 정도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김탁환엔, 역시나...랄까.

 

소설같은 데는 개인적인 선호가 많이 작용하게 되지만,

난 김훈의 문체나 박범신의 사색 같은 데는 혹하지만, 김탁환의 스토리, 문체에 대해서는 별로란 느낌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 몇 가지.

정도전의 전체 모습을 그리려 했다면,

그의 혁명에 대한 소견보다는 그의 혁명적 발걸음과 그 발자욱을 지우려던 이들의 아귀다툼이 그려졌더라면 더 광활한 인간을 드러내는 데 가까아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래서 이런 18일간의 기록이 담은 편년체, 일기체 기록이 이성계, 정몽주와 정도전을 테마로 끌고 가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작가의 의도가 과연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

 

정도전이 품은 꿈이 과연 조선의 개국과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얼마만큼 실현이 되었으며,

어떤 지점에서 태종과 부딪혀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지적 열망...

 

격화소양이란 말이 있다.

隔靴搔癢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

 

역사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 인물들이 그 역사적 상황에서 기록에 남을만한 이유는,

어떠한 배경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일까를 실감나게 느끼고 싶은 마음일진대,

이 소설의 아쉬움은,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적여 '소양증'은 가시기보다 외려 더 감질나게 된 느낌이랄지... 그런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일들이 많아,

나의 뇌가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황당할 뿐 아니라 억울할 법도 한데

포은은 따지거나 반발하지 않고, 그믐처럼 넘겼다.

나도 죽기 전에 포은의 핑계가 되고 싶다.(상, 90)

 

그믐같은 남자. 포은... 멋지다.

 

눈은 비보다

떨어질 곳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눈이 비로 바뀔 때가 더 힘들겠어.

떨어질 곳을 마지막까지도 모른 채 자유롭게 눈으로 떠돌다가,

갑자기 전후좌우 움직이지 못하고 오직 아래로만,

딱 한 곳으로만 떨어지는 비...

계속 비로만 내리던 녀석이랑,

눈에서 비로 바뀐 녀석이랑 무척 다를 거야.(상, 244)

 

혁명을 꿈꾸다가 혁명에 몸바치는 이를 비유한 표현이다.

이런 부분도 꽤나 낭만적으로 아름답다.

 

그대는 나의 활,

그대는 나의 화살... 운운하며 즐기던 시절.(하, 124)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존재.

이성계와 삼봉, 포은은 그런 존재들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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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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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이름을 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망설였던 제목 가운데 18.44가 있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다.

여기사 스트라이크가 나오고 번트가 나오고 장외홈런이 나온다.

병살타도 나오고 데드볼도 나온다.

이만큼이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가 아니겠는가?

뜻은 좋은데, 두어번 읽다 보니 '씨팔, 좀 사, 사!'로 읽힌다.

시집을 제발 좀 사달라고 떼를 쓰는 꼴이다.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지워버렸다.

'의자'라고 이름을 올려놓으니,

세상이 다 제 무게를 놓고 바닥에 스미는 것 같다.

이 쓸쓸하고 환한 자리에 발목 아픈 그대를 부른다.(뒤표지에서...)

 

같은 우리말이라도,

그걸 가지고 언어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같은 낱말 꾸러미를 몇번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그걸 또 어딘가에 적어둔다. 짠하기도 하고 굉장한 재주이기도 하다.

 

삶은 모두 쓸쓸하다.

인생이란 길은 모두 허전하고 그러면서도 무겁다.

그런 타인에게 의자 하나 내민다.

발목 아픈 타인이 쓸쓸하고 허전하고 무겁던 몸으로 힘들어하다가,

마음 한 켠,

환해진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처하는 데 따라 주인이 되면

서는 자리 모두 진실된 곳이다.

 

삶의 고통은, 타인에게 내가 짓눌리는 무게가 싫어서다.

나를 의자로 내줄 염을 내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싫어하는 이가 나를 깔고 뭉갤 때, 삶은 고통의 바다인 법.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 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 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더딘 사랑, 전문)

 

삶의 고통, 타인에게서 겪는 지옥을 이겨내는 힘을 천천히 차오른다.

그리고 그 힘은 금세 바닥으로 게이지가 떨어질 수도 있다.

천천히 차오르는 더딘 사랑의 힘을 믿어야 산다.

 

진창에 처박힌 벼 이파리의 안간힘 때문에

몸살을 앓는 봄 논,

물은 저 떨림으로 하늘을 품는다...

물끄러미, 개구리밥을 헤치고

마음 속 진창을 들여다본다

눈물 몇 모금의 웅덩이에 흙탕물이 인다

언제 눈물샘의 물꼬를 열고

깊푸른 하늘을 들일 수 있을까

정처만이 흙에 뿌리를 박는 것,

마음 바닥에 물끄러미라고 쓴다

내 그늘은 얼마나 오래도록

물끄러미와 넌지시를 기다려왔는가?

물꼬 도란거리는 마음과

찬물 한 그릇의 눈을 가질 때까지

나는 왜가리 발톱이거나

꺾인 벼 이파리로 살아가겠지만, 끝내

무논의 물결처럼 세상의 떨림을 읽어내기를

써레처럼 발목이 젖어있기를 (물끄러미에 대하여, 부분)

 

물이 잡힌 논

써레질을 해 놓은 논은

<진창에 처박힌 벼 이파리의 안간힘 때문에 몸살을 앓는 봄 논>이다.

겨우내 메말랐던 논에 물기 가득해 마음 든든한데,

시인은 물끄러미 그 물을 바라보다

물결이 읾을 본다.

떨림

그 떨림을 바라보는

<물끄러미와 넌지시>한 마음...

 

십 년도 더 된 옻나무 젓가락

짝짝이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한쪽만 몰래 자랐

나? 아니면

한쪽만 허기의 어금니에 물어뜯겼나?

 

  어머니. 이 젓가락 본래부터 짝짝이였어요? 그럴

리가. 전 그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간데요. 저런 싸

가지를 봐. 같은 미루나무라도 짧은 쪽은 네 놈 혓바

닥처럼 물 질질 흐르는 데서 버르장머리 없이 크다가

물컹물컹 제 살 아무 데나 쓸어 박은 것이고, 안 닳은

쪽은 산 중턱 어디쯤에서 나마냥 조신하게 자란 게지.

출신이 모다 이 어미라도 동생들 봐라. 물컹거리는 녀

석 있나? 장남이라고 고깃국 먹여 키웠더니, 뭐? 그

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가라고? 배운 놈이 그걸 농

이라고 치냐? 젖은 혓바닥이라고. (옻나무 젓가락, 부분)

 

 

이정록 시의 팔할은 농촌 사회와,

농촌 사회 그 자체인 부모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하긴, 인간의 무엇 하나 땅에서 신세지지 않은 것 없지만,

시인의 예리한 눈길과

그걸 부지런히 적어대는 손길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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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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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에 투신하여 미싱사로 '노동 운동의 대모'로 살아온 김해자.

그이 시들을 좋아했는데,

이 책은 제목이 눈에 확 띄어 골라 잡았다.

한창훈의 '꽃의 나라'에 나오던 말이다.

사람은 모두 다 조금씩 이상하다는 말.

 

그 소설에서는 어른들이 정말 이상하다.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간혹은 자상하게 챙기는 아버지조차도 이상하다.

 

김지하, 박노해처럼, 노동 해방과 인간 해방을 부르짖다가,

어느 날 '도사'가 되어버리는 인간들은 재수없다.

물론 '도사'가 되는 일이 나쁘진 않지만, 중립을 자처하는 도사들은 갑자기 독재자들과 친하게 지낸다.

황석영 역시 마찬가지다.

차라리 원래 이외수처럼 도사연하는 사람은 상관없다. 그는 원래 그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김해자를 읽으면서, 어, 이 사람은 이럴 사람이 아닌데?

풀꽃 도사가 되어버린 김해자를 이해하기엔 이 책을 한참 읽어야 했다.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고, 그리고 삶을 감사히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의 글이란 걸 알고 나서는,

나의 고정관념을 반성한다.

나는 김해자의 발톱에 낀 때만큼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주제에,

그가 어떻게 사는지에 배놔라 감놔라 하는 수준이어서는 안되는 주제니 말이다.

 

천상 여자로, 미싱으로, 손바느질로 온갖 이쁜 작품을 다 만든다.

그리고 초보 농꾼으로 농사일도 바지런하게 해낸다.

대안학교 같은 데서 미술 치료도 하고, 독서 이야기도 한다.

시골 사람들과 하나로 어울려서 재미지게 산다.

 

가진자들이 보기엔 김해자야말로 '이상한 사람'에 들 것이다.

도대체 왜 저런 삶을 사는지 말이다.

 

단순한 게 반드시 위대하지 않지만,

최고인 것은 반드시 단순하다.

그 단순함의 비의를 알기까지

그 단순함의 신비를 사랑으로 채울 때까지 날마다 땀흘려야겠다.(36)

 

죽음 앞에까지 '데드 슬로우'로 다녀온 이라면,

어떤 이야길해도 수긍해야 한다.

더군다나 그가 땀흘리고자 한다면...

 

단순함.

이것은 인간의 '잘난체 함'에 대한 반성이란 말일 게다.

인간은 '사회적'이든, '생각하는 갈대'든 암튼, '동물'의 하나다.

동물의 미덕은 단순함에 있으니...

 

생을 풀어야 할 수학문제나 숙제로 살지 않고,

무궁무진한 신비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75)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 삶은 꿈을 위한 과정이나, 마시멜로우를 얻기 위한 인내의 도중이어선 안 된다.

순간순간 만나는 이들과의 신비로운 조우로 받아들이는 자세. 배울만 하다.

 

니체의 책을 자주 읽은 모양이다.

 

너는 너 자신을 멸망시킬 태풍을 네 안에 가지고 있는가.(207)

 

스스로를 좌지우지할 태풍.

니체 역시 평생을 앓으며 살았던 사람이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경구처럼, 스스로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태도로 치열하게 살 일이다.

 

아- 병들어 보지 않았으면

나는 인간이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코우스 스스무, 240)

 

김해자가 몸의 이상을 느껴

스스로를 정리하면서 두 시간을 보낸 후 병원으로 간다.

그 동안, 그는 아주 길고 깨어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잊지말라.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수필집이다.

 

김해자의 다음 시집을 또 만나고 싶다.

그 찬찬하고도 탐스런 생각들이 가득한 말의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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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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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소설집에는 9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기왕의 작품집들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의 작품세계가 어떠한지를 이해하긴 힘들지만,

이 책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관심은 이 사회의 상처에 닿아 있다.

 

불평등의 심화라는 말 속에는,

절대 빈곤의 심화라는 폭탄이 들어 있고,

그 속엔 다시 여성이나 어린이들의 상처가 가득하다.

그 상처에 대한 치유따윈 국가의 '복지'에 들어 있지않다.

 

침묵에 대해 숱하게 불평했던 여자친구는

침묵의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법이다.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말할 때는 헛소리를 하게 되니까.

묻는 말에는 거짓으로 답하게 마련이고.

거짓말과 헛소리를 빼면 어떤 이에게는 울음만 남고 어떤 이에게는 침묵만 남는다.

진실은 울음과 침묵 사이에 있을 것이었다.(183)

 

이 문장을 오래 씹었다.

진실은 울음과 침묵 사이에 있을 것이었다.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침묵한다.

 

빈곤은 울고 국가는 침묵한다.

약자는 울고 부자는 외면한다.

삶의 진실은 그 사이에 있을지 모른단다.

 

99%가 울면서 뛰쳐나와 '아큐파이~!'를 외쳐도,

1%는 외면한다.

1%는 '타워'와 '팰리스'를 지어 놓곤, 그 성채 안에서 안전하다.

 

진실이 울음과 침묵 사이에 있다면

사랑은 떨림과 두려움 사이에 있다.

울음이 떨림이라면 침묵은 두려움이다.

그러니 우는 자는 떠는 자고 침묵하는 자는 두려워하는 자다.(187)

 

울음과 침묵,

떨림과 사랑...

이런 단어들을 잘 어루만지면,

이 소설의 쓰라린 인생들이 그 품안에 들어와 잘 읽힐 듯 하다.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만 쓰는가,

왜 세상을 이렇게 어둡게 보는가,

이렇게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작가가 과연 훌륭한가,

이렇게 묻는 자 있다면,

그는 1% 안이 그 '성채'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자다.

 

중립은,

한없이 낮아지는 무게중심으로 평형을 맞춰야 하는 저울의 추와 같아야 하는 것.

 

과연,

당신은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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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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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눈사람 여관, 부분)

 

눈사람 여관이라...

여관에만 잠시 머무는 건 아니다.

내 애인이랑만 잠시 친한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곳은 여관보다 금세 비켜줘야 하고,

내 애인이든 아내든 금세 시들고 죽는다.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운 달도

나흘 정도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모든 애인은 눈사람처럼 애잔하게 녹아버릴 존재냐?

그럼 모든 사랑은 잠시 여관에 들러 몸 녹이고 갈 정도로 짧은 것이냐?

문득, 김이듬의 '겨울 휴관'이란 시가 떠올랐다.

아마, '관'자로 끝나서 그런가보다.

'장미 여관'도 떠오른다.

뇌란 그런 웃긴 거다.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
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
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
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 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
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
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
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
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
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
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김이듬, 겨울 휴관 전문)

 

 

'이별의 실패'는 아마도 김이듬이 이야기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하는 깨달음과도 비슷한 거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병률의 이 시집에선 사랑을 본 느낌이 든다.

사랑을 말로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명가명비상명... 이름을 이름지을 수 있다면, 진짜 이름 아니듯,

사랑을 이렇게 사람 마음에 실루엣으로 남게 하면 잡는 데 가까울 수도 있다.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붉고 찬란한 당신을, 전문)

 

붉고 찬란한 당신이니,

붉은 심장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잡으려 들지 않는다.

두 번이나 '놓아줄까'라는 말을 써서, 놓아주기 싫은 심사를 드러내지만,

허공 속에 풀어지고,

물 속에 번지도록 놓아줘야,

거기가 당신 있을 자리고, 그게 자신의 사랑을 유지하는 법임을 본다.

 

눈으로 본다.

눈사람 당신이 녹는 것을 바라보듯...

 

가령 콜트레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겐 그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과,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찾아오는 절망과,

설령 그를 만난대도 그 본질은 알 수 없으리라는 체념,

나의 환영과 황홀의 정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본능적 뉘우침이 뒤범벅되어 떠오른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했으므로, 더 알고 싶거나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다.(유희경 발문 중)

 

유희경의 '애정론'에 맞춤한 시가 있다.

'애별'이란 시다.

 

어찌된 일이길래 마을 이름이 애별인가

 

태어났으니 감옥이란 말인가

 

한번 안았으니 이별 또한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저기 저 내리는 눈발의 반은 사랑이고 또 절반은

이별이란 말인가

 

어제는 미안해서 오늘은 이별을 하자는 말인가

 

아름다웠던 날들의 힘으로 달은 뜬다는 말일까

 

마음을 주면 표정의 한쪽이 파인다는 말을 듣고도

한 사람 등 뒤에 영원히 앉아있으란 말인가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저릿저릿할 때는 사람의

눈발을 외면하자는 말일까

 

세상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단 말인가(愛別 전문)

 

애별 -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 마을 이름

 

 

시인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듣는 사람이다.

듣고 적는 사람이다.

그렇게 언어의 변방에서 놀라운 속도로 혹은 이동으로) 중심에 닿는 이다.

그들에게 언어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그리될 수 없다.

계시와 예감으로 가득찬 그들은 순수 언어의 여과기이다.(유희경 발문 중)

 

 

독자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병률의 시를 두고,

유희경이 애를 쓴다.

애를 쓰나, 역시 '거리감'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역시 그 거리감을 인정한다. 발문 제목이 '조용한 거리'니까.

 

유희경이 애쓴 잔에,

툭 성의 없이 부딪는 이병률의 술잔은 가볍다.

 

 

무엇에도 닿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말은 있다.

어쩌자고 불[火]이라고 써놓고 불[不]이라고 읽는다.

아무리 무심하려 해봤자 어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것을 세상의 나머지라 부르겠다.(뒤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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