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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여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평점 :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눈사람 여관, 부분)
눈사람 여관이라...
여관에만 잠시 머무는 건 아니다.
내 애인이랑만 잠시 친한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곳은 여관보다 금세 비켜줘야 하고,
내 애인이든 아내든 금세 시들고 죽는다.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운 달도
나흘 정도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모든 애인은 눈사람처럼 애잔하게 녹아버릴 존재냐?
그럼 모든 사랑은 잠시 여관에 들러 몸 녹이고 갈 정도로 짧은 것이냐?
문득, 김이듬의 '겨울 휴관'이란 시가 떠올랐다.
아마, '관'자로 끝나서 그런가보다.
'장미 여관'도 떠오른다.
뇌란 그런 웃긴 거다.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
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
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
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 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
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
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
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
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
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
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김이듬, 겨울 휴관 전문)
'이별의 실패'는 아마도 김이듬이 이야기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하는 깨달음과도 비슷한 거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병률의 이 시집에선 사랑을 본 느낌이 든다.
사랑을 말로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명가명비상명... 이름을 이름지을 수 있다면, 진짜 이름 아니듯,
사랑을 이렇게 사람 마음에 실루엣으로 남게 하면 잡는 데 가까울 수도 있다.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붉고 찬란한 당신을, 전문)
붉고 찬란한 당신이니,
붉은 심장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잡으려 들지 않는다.
두 번이나 '놓아줄까'라는 말을 써서, 놓아주기 싫은 심사를 드러내지만,
허공 속에 풀어지고,
물 속에 번지도록 놓아줘야,
거기가 당신 있을 자리고, 그게 자신의 사랑을 유지하는 법임을 본다.
눈으로 본다.
눈사람 당신이 녹는 것을 바라보듯...
가령 콜트레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겐 그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과,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찾아오는 절망과,
설령 그를 만난대도 그 본질은 알 수 없으리라는 체념,
나의 환영과 황홀의 정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본능적 뉘우침이 뒤범벅되어 떠오른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했으므로, 더 알고 싶거나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다.(유희경 발문 중)
유희경의 '애정론'에 맞춤한 시가 있다.
'애별'이란 시다.
어찌된 일이길래 마을 이름이 애별인가
태어났으니 감옥이란 말인가
한번 안았으니 이별 또한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저기 저 내리는 눈발의 반은 사랑이고 또 절반은
이별이란 말인가
어제는 미안해서 오늘은 이별을 하자는 말인가
아름다웠던 날들의 힘으로 달은 뜬다는 말일까
마음을 주면 표정의 한쪽이 파인다는 말을 듣고도
한 사람 등 뒤에 영원히 앉아있으란 말인가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저릿저릿할 때는 사람의
눈발을 외면하자는 말일까
세상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단 말인가(愛別 전문)
애별 -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 마을 이름
시인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듣는 사람이다.
듣고 적는 사람이다.
그렇게 언어의 변방에서 놀라운 속도로 혹은 이동으로) 중심에 닿는 이다.
그들에게 언어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그리될 수 없다.
계시와 예감으로 가득찬 그들은 순수 언어의 여과기이다.(유희경 발문 중)
독자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병률의 시를 두고,
유희경이 애를 쓴다.
애를 쓰나, 역시 '거리감'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역시 그 거리감을 인정한다. 발문 제목이 '조용한 거리'니까.
유희경이 애쓴 잔에,
툭 성의 없이 부딪는 이병률의 술잔은 가볍다.
무엇에도 닿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말은 있다.
어쩌자고 불[火]이라고 써놓고 불[不]이라고 읽는다.
아무리 무심하려 해봤자 어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것을 세상의 나머지라 부르겠다.(뒤표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