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작은거인 14
오카다 준 지음, 김난주 옮김 / 국민서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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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물을 가지러 학교에 간 두 아이가 용을 물리치는 기사를 만나 겪는 소동을 그린, 판타지와 현실 세계를 적절히 배합해 놓은 동화. 상징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대화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용'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오카다 준은 판타지 동화를 선보이는 일본의 동화작가로, 이 작품에 앞서 <신기한 시간표>, <사토루의 2분>이라는 작품을 읽어본지라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내용을 선보일지 관심이 갔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내 안에 자리한- 친구 간, 동료 간, 이웃 간에 알게 모르게 품은, 혹은 쌓고 있는- 나쁜 감정을 '용'이라는 가상의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거쳐 학교에서는 같은 반으로, 8년을 함께 친구로 지내 왔던 '나'(야스오)와 유키는 커가면서 주변 여건으로 인해 조금씩 멀어져 서먹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꿈 많은 '나'에 비해 꿈이 없는 유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둘은 함께 학교 교실로 가는데 그 곳에서 "용을 물리치는 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연극배우인 듯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제리가 용을 물리치기 위한 기사가 되기 위해 시작한 일은 슬리퍼 정리해 놓기~. 이처럼 생뚱맞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제리에게 유키는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것'과 '용을 물리치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질문한다.

 두 아이와 제리의 대화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과 사악한 용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가끔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내 안에 존재하는 사악한, 혹은 편협한 감정들이 불쑥 고개를 쳐들곤 하는지라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다. 은유적인 표현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어린 독자를 배려하여 '나'가 제리의 상징적인 말들을 '나'가 직접적인 것으로 풀어서 말하기도 하므로 초등 중학년 아이들 정도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00쪽이 되지 않는,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작은 거인'시리즈에 속해 있음) 

  제리의 말이나 행동을 연기로 보며 용이 보인다는 유키의 말을 의심하던 '나'도 마침내 용을 보게 된다. 작품은 어른이 된 15년 후의 '나'를 통해 꿈을 이루어가는 유키와 제리가 교실에서 물리친 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의 꿈은 무엇이며 내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혹은 어떤 종류의 용들을 자리 잡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의 또다른 작품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일간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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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아이들 책보다 그냥 제가 읽는 책에 몰두해서인지 이런 리뷰를 볼 때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집니다. 특히 작은 아이는 책을 별로 접하지 못한 채 벌써 엄마가 책에서 손을 떼서 독서록이다 뭐다 할 일이 많은데 혼자 다 처리하는 눈치예요.
좋은 리뷰 보고 가요.

아영엄마 2008-08-20 04:06   좋아요 0 | URL
책을 별로 접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독서록 같은 것을 혼자 해내는 것이 저는 더 대견하게 느껴지는 걸요. 말씀 고맙습니다. (^^)>
 
내 이름은 타이크 창비아동문고 237
진 켐프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오승민 그림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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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게, 그리고 작가가 숨겨 놓은 반전-이라기보다 나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고 읽은 탓-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고 만 동화이다. 카네기 메달(1977)을 받았으며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필독서로 지정된 작품으로,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장애인 친구를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 등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 준다. 개성이 철철 넘치는 타이크와 학교 친구들, 지방의원으로 출마한 아버지를 비롯한 타이크네 가족, 재미있는 역사 수업과 전쟁놀이 등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동화 <장수 만세!>에서 그림을 접한 적 있는 오승민씨가 이 책의 삽화를 그렸는데, 각 캐릭터의 모습을 작품 내용에 맞게 참으로 잘 표현하여 작가의 의도에 일조하고 있다. 외국 작가의 동화에 우리나라 화가가 삽화를 그린 작품 중에 작품 내용과 삽화가 어울리지 않아 겉도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가끔 있던데, 이번 작품은 내용과 삽화가 찰떡궁합을 이루어 상승작용을 해 주고 있다.

 얼굴에 있는 주근깨만큼이나 장난끼가 가득할 것 같은 주인공 타이크는 학교에 무슨 문제-선생님 지갑에서 돈이 없어지거나 강당에 쥐가 나타나는 등-가 발생하면 일단 지목대상이 되는, 선생님들에게는 요주의 대상인 학생이다. 그렇지만 타이크는 말을 더듬는 대니의 대변인-거의 통역 수준-이 되기도 하고 대니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한 마디로 의리파 친구이다. 함께 놀기도 하고, 때로는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전단지 배달도 같이 하러 나가고, 비밀 아지트도 공유하고...

  타이크는 대니가 장애가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감싸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 수 있는 친구이니까, 정상인 친구를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대할 따름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배려와 도움,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는 터라 타이크의 이런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무엇보다 말썽을 피울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 정직성과 그 당당함이 바로 타이크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타이크는 마침내 학교를 엉망으로 무너뜨리기(?)에 성공하고 마는데 과연 어떤 일이 타이크를 폭발하게 만든 것일까? 

 막바지에 작가가 준비한 히든카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읽어나가던 터라 작품 말미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다가왔다. 이는 타이크와 대니 주변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과 인물들의 특성에 몰입한 나머지 다른 생각을 가질 틈을 주지 않은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도 별수 없이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준 작품. 막간에 독자에게 작은 웃음을 안겨주는, 각 장을 시작하는 부분에 실린 두세 줄의-썰렁한 듯 하면서도 촌철살인적인- 짧은 유머도 작품의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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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툴라는 못 말려! 내친구 작은거인 18
베벌리 나이두 지음, 강미라 옮김, 피에트 그로블러 그림 / 국민서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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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 왕 사자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못 말리는 꾀보 토끼 무툴라! 표지 속의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표지 속의 토끼를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솔솔 인다.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도 꾀 많은 토끼가 종종 등장하는데 다른 나라에 전해지는 이야기 속의 토끼는 어떤 꾀들을 발휘하는지 궁금해진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미국에 출판된) 브레어 토끼 이야기의 뿌리는 아프리카라고 한다. 여러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단편적이지 않고 앞의 내용과 연계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더 크다. 

 [대단한 줄다리기]는 무툴라가 꾀를 발휘하여 두 동물이 엉뚱한 상대와 줄다리기를 하게 만든 이야기이다. 덩치 큰 코끼리, 힘 센 하마도 당하고 마는 무툴라의 꾀에 [사랑에 빠진 사자왕]마저도 당하고 마는데, 사자왕은 심지어 자기 먹잇감이랑 춤을 추기도 한다. [작은 동물은 큰 동물을 놀리면 안 돼!]에서는 털이 길고 북슬북한한 꼬리를 가지고 있던 산토끼들이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짧은 꼬리를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노라면 무툴라가 늘 다른 동물들을 약 올리고 때로는 애꿎은 다른 동물들을 곤경에 처하게 할 때도 있는지라 은근히 얄미운 마음이 인다. 그래서 한 번쯤 무툴라도 다른 동물의 꾀에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살짝 드는데 [물웅덩이 소동]과 [달리기 경주]는 바로 이런 독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야기이다. 거북이 쿠두가 달리기 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며 무툴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달리기 경주]는 흔히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과의 경기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 거북이가 무툴라를 속이기 위해 가족을 이용하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 본 그림 형제의 "산토끼와 고슴도치 부부" 이야기와 유사한 면이 있다. 

 무툴라가 오디 주스가 먹고 싶어 작은 뿔을 구해 머리에 붙이는 [산토끼와 뿔]에서는 땅돼지 타카두가 무툴라의 꾀에 당한다. 무툴라의 간교함이야 널리 알려져 있나니, 어찌 타카두를 멍청하다 비난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는 악어를 구해주려다 도리어 잡아먹히게 생긴 한 소녀가 무툴라 덕분에 살아난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옛이야기인 '토끼의 재판'과 비슷한 형식을 띄고 있다. 이처럼 읽다 보면 다른 이야기책이나 우화에서 접해 본 적이 있는 듯한 내용도 간간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는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여운이 남는 마지막 문장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130여 쪽의 분량의, 저학년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동화.

- 아난시'를 주인공으로 한 아프리카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서 'ㅋ, ㅌ' 같이 발음이 강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름-무툴라, 느트주, 투루, 쿠부, 츠웨네 등은 아프리카 (세츠와나) 언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별 네개를 찍을까 했는데 이 책을 재미있게 본 작은 아이는 별 다섯, 큰 아이는 별 넷 반을 준지라 다섯으로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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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3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오랜만이어요~ 많이 바쁘셨나봐요!
브리핑에 뜨길래 반가워서 성큼 달려왔어요~~~ ^^

아영엄마 2008-05-01 00:24   좋아요 0 | URL
바쁘게 산다기보다 개인적인 일로 컴을 멀리 하고 지내다보니 자주 안 들어오게 되네요. 반갑게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8-05-0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가운 마음에 들어와 봤어요.
건강하신거죠?
 
할머니의 열한 번째 생일 파티 낮은산 키큰나무 5
라헐 판 코에이 지음, 김영진 옮김 / 낮은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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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손녀가 치매 환자인 증조할머니에게 행복한 기억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내용은 담은 작품이다. 이전에 종종 접한, 치매환자를 돌보는 어려움을 그린 책들과 달리 치매 환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그린 작품이라 인상 깊게 다가왔다. 치매를 다룬 작품이지만 내용이 가라앉아 있거나 어둡지 않으며, 노라와 카린 간호사의 갈등 구도로 작품 분위기에 긴장감을 실어 주고 있다. 노라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는 할머니와 다른 노인들에게 행복을 일깨워 주는 과정을 통해 어떤 방식의 간호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고민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이들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말하는 일종의 진실게임을 하게 된 노라는 놀이에 전혀 낄 수 없어 화가 난다. 이 날의 주제가 노라에게는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 하지만 저녁 시간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에게 증조할머니가 있음을 기억해 낸다.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간 노라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라즈베리 주스를 통해 할머니의 기억이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고는 노라 자신이 열 살 무렵의 '트라우디'의 상상 속의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솔직히 증조할머니를 집으로 모시자는 노라의 말에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반대하는 엄마의 입장에 먼저 공감이 갔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동반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카린 간호사는 노라로 인해 업무 순서도 뒤죽박죽이 되고, 병동이 무질서해졌다며 노여움을 표한다.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해 전문전인 간병 활동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간병수칙을 내세우면서 노라의 연극을 반대하고 어려움을 겪게 하기도 한다. 이런 카린 간호사가 냉정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내가 이모저모 따져보는 어른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치매 환자가 예전에 살던 집으로 찾아가거나 작품 속 노인들처럼 아이 때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부분의 파괴가 비교적 늦게 시작되기 때문에 현재보다 과거의 일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병세가 초기여서 (본 정신으로 돌아올 때마다) 자신의 증세를 자각하는 경우에는 환자 자신도 많이 두려울 것 같다. 작가는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자 가족들과 단절하고 요양원으로 들어간 세바스티안의 할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병세를 인지하고 느끼게 되는 노여움과 두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의 외할머니도 말년에 치매 증세가 깊어져 가족들이 힘들어 하다가 결국 요양원으로 모셨고 그 곳에서 임종을 맞으셨다. 요양원에 계시면서 가족들이 자신을 버렸다 싶으셨는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게 되어서인지 예전에 비해 기운없이 지내셨다고 한다. 노라가 침묵 속에 잠겨 있는 할머니에게서 조잘대며 즐거워하는 소녀 시절의 행복한 모습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며 현실에서도 치매 환자가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게 된다. 노라는 친구 다니엘, 세바스티안, 고물장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사히 증조할머니의 열한 번째 생일 파티를 연다. 그리고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고, 마침내 카린 간호사도 마음을 여는 결말이 가슴 따뜻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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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헐 판 코헤이 '바르톨로매는 개가 아니다'의 작가라서 이 책도 기대되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히 잘 읽었어요. 많이 바쁜가봐요, 잘 지내죠?

소나무집 2008-04-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아이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은데 우리 아이들은 안 읽으려고 해요.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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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성장 배경을 지닌 열일곱 살의 완득이가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성장 청춘 소설. 개성이 철철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걸쭉한 입담이 웃음을 선사하고, 그들 앞에 놓인 반갑지 않은 현실에 울컥하는 마음이 이는 질펀하면서도 끈끈한 작품이다. 잠자리에 들어서 책을 잡은 터라 몇 장 읽다 다음날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 그날 새벽에 끝을 보고서야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이처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라 큰 아이에게 당장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직 초등학생(6학년)이고, 욕설도 간간히 등장하는지라 내년쯤에나 내밀 수 있는 것이 아쉽게 여겨진다.

 춤꾼인 난쟁이 아버지, 몸은 짱인데 말은 꽝~인 민구 삼촌, 저쪽(베트남)에서 시집 온 어머니, 혹사당하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 상대를 -대놓고 혹은 속으로- 비꼬는 것으로 일관하는 인물들이 상소리를 섞어 가며 툭툭 뱉는 대사가 전해 주는 웃음 뒤에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무시당하는 이들의 삶의 비애가 녹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수시로 웃으면서 읽어나가지만 어느 순간 가슴 한 쪽이 싸해지기도 하고,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완득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똥주를 죽여 달라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선생이 다니는 교회에 간다. 기초 수급자인 제자의 수급품을 빼앗아 먹는 담임 똥주가 옥탑방 이웃 간이기도 탓에 인생이 더욱 피곤하다.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는 지독하게 무심한 '싸움꾼' 완득이가 주먹을 쓰는 대상은 자신의 아버지를 놀린 사람이다. 그런 완득이가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항해 마음을 열어간다. 십오 년 동안 보지 못하고 살아온, 낯설게 느껴지는 어머니가 찾아와 자신들의 삶에 다가오는 것에 반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춤꾼으로 살아 온 난쟁이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춤을 배운 뒤로는 늘 따라다니는 민구 삼촌은 일하던 곳이 업종변경을 하는 통에 춤꾼 생활을 접고 올라와 지하철 행상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 생활 또한 구역을 지키는 패거리와 순찰하는 공익요원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탓에 녹녹치가 못하다. 먹고 사는 것이 어찌나 고단한지... 완득이과 똥주, 완득 아버지와 똥주 간에 의사소통을 위해 고성이 오갈 때면 감초처럼 곁들여 들려오는 앞집 아저씨의 "씨불놈"이라는 말이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똥주 아버지의 등장은, 한정된 등장인물들 간에 과도하게 얽히고설키는 TV드라마의 한계처럼 작위적인 느낌을 주어 작품의 현실감이 반감되어 버린 것이 아쉽게 여겨진다. 대신 완득이가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숨은 실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그리지 않은 점은 좋았다. 밤에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쿡쿡~거리며 웃었다. 사내들끼리 친근함을 바탕으로 일상적으로 주고받은 가벼운 욕설처럼 똥주는 시원스레, 완득은 속으로 서로를 갈구며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완득이가 기도하는 내용은 차차 바뀌지만 이러한 작품 분위기가 끝까지 이어진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데 책날개에 실린 사진이 아니었으면 여자 작가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억을 가져온 아이/2007>로 마해송문학상,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제8회>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려령이번에 <완득이>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한 번 더 주목받으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인식시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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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4-08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작가였군요. 저도 으레 남자 작가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말예요. 이 책 두루두루 호평을 받고 있네요. 자꾸자꾸 저도 궁금해져요. ^^

소나무집 2008-04-1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재미나게 신나게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게 읽었어요.
그리고 4학년 우리 딸도 읽었는 걸요.
엄마의 웃음 소리에 참지 못하고
그냥 읽게 내버려두었네요.
아영이도 읽으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