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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내가 있었다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제고 읽어보려고 마음 먹고 있던 <라스 만차스 통신>의 저자의 작품이라는 점에 끌려 읽은 책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존재 자체가 사라져 가는 어느 한 소녀와 소녀를 잊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흔히 망자를 두고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마음 속에 살아 있다"는 표현을 한다. 이 말처럼 내가 죽더라도 이 세상에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된다. 만약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진다면, 그것도 살아 있는 동안에 그렇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떤 느낌일까?
주인공 다카시는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으로 어느 날 '착실하게 보이지 않는' 안경을 맞추기 위해 들린 안경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한 소녀를 보게 된다. 오리베 아즈사, 그녀의 이름이다. 학교에서 우연히 아즈사를 다시 만나 한 학교 학생임을 알게 되고, 둘은 수업을 빠지고 함께 유원지에 놀러 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순간 흐릿해져 버리는 아즈사에 대한 기억. 움켜쥐려고 해도 어느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물처럼 아즈사와 관련된 것은 어느 사이에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다. 아즈사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존재했다는 것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찍은 사진이나 DVC 테이프조차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다는 것을 '지식으로서' 알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싶은데 도저히 그 모습을 머리 속으로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없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사실 기억이란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하기 마련이다.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곤 하는데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리지를 못하게 되어 안타까워지곤 한다. 그러나 부모님이 실재했고, 자식들을 위해 애쓰고 사랑해 주신 것은 어딘가에 적어 놓지 않아도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다카시는 아즈사를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 아즈사와 관련되어 알게 된 사실이나 생각, 느낌을 기록한 노트를 날마다 읽고, 그녀를 페이드아웃 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애쓴다.
반면 아즈사는 자신이 사람들, 심지어 부모님에게조차 잊혀져 버리는 것에 대해 체념하고 완전히 사라지는 때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권태로운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이라는 싯귀로 시작하는 마리 로랑생이라는 시인의 '잊혀진 여인'이라는 시를 보면 마지막 연에 "죽은 여인보다 더 불행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점점 '페이드 아웃'되어 가는 아즈사는 그런 면에서 죽은 여인보다 더 불행한 여인인 셈이지만 단 한 사람뿐일지라도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다카시가 있었기에 조금은 덜 불행하였으리라... 책을 덮으며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이 세상에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 책의 외관에 대한 비평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좀 언급을 하고 마무리하련다. 뒤 쪽 책 표지를 넓게 잡아 책제목이 적힌 또 하나의 책등을 만들고 책날개가 앞 속지까지 오게 한 점이 처음에는 색다르고 근사해 보였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좀 구겨지기도 해서 실용적인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재질이 두꺼운 종이를 쓴 탓인지 책을 완전히 펼쳐서 보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보통의 경우 책장의 한 쪽만 누르면 되는데 이 책은 그럴 경우 반대쪽 책장들이 다 넘어와서 책이 덮혀 버렸다. 힘으로 눌러 펼칠 경우 책이 갈라질 수도 있을 듯 하여 책을 보는 내내 책장 양 쪽을 붙들고 있어야 했는데 다음 쇄를 찍는다면 이런 점을 보완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 20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