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생각과 힘 - 과학과 왕립학회 이야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자연철학과 자연과학의 걸죽한 향연. 이 책을 한마디로 얘기해본다면 그렇다. 너무나 걸죽하다. 이야기라는 수프를 한 수저 뜨자 걸죽한 묘한 덩어리들이 바닥까지 죽 느려뜨려진다. 너무나도 걸죽해서 (나에게는) 먹기도 전에 질리고, 느끼했다. 어렵다는 감상을 떠나서 매우 압축적인 각각의 글 꼭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이 책은 20명의 과학 저술가 혹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연구하는 영역안에서(어쩌면 영역밖을 넘어서) 펼쳐졌던 하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과학사에 종종 등장하는 거인들은 뉴턴 이전 시대의 거장들이다. 거인이 어디에서부터 등장했는지 잠시 다른 책을 살펴본다.

   
  "내가 더 멀리 보아왔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오(If I have seen fa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아이작 뉴턴은 1676년에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사실 그것은 광학에서의 발견에 대한 언급이었을 뿐, 좀더 중요한 중력 이론이나 운동 법칙에 관한 것이 아니었지만, 과학을 비롯한 문명 전체가 그 이전에 이루어진 성과 위에 새롭게 구축되는 일련의 누적적인 진보라는 것을 밝혀 주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언급이었다...(중략)...

스티븐 호킹 편저,『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중 서문에서 발췌, 까치, 2006.
 
   

『거인들의 생각과 힘』은 스티븐 호킹이 편저한 책의 발췌문에서 표현한 것처럼 우리 세계를 이룬 누적적인 과학의 진보의 과정을 여러 에세이들로 묶은 책이다. (인용문의 굵은 글씨나 밑줄은 내가 임으로 한 것임..) 그러니까 도대체 누적적인 진보가 뭘까? 그에 대한 답은 '경험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사고실험을 통한 결과를 대화로 풀어가며 내 생각, 니 생각 어떻게 꿰어보고, 또 반론해보고 나름대로 결과를 유추해내는 것이 아닌, 한마디로 보고 듣고 수행한 일에 대하여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 보고서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그와 유사한 일에 대해 또 같이 사유해보고 기록하는 요즘말로 일련의 과학을 수행하는 초기 버전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과학적 지식을 모으는 것이 아닌 과학적 지식을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이 책은 기록에 대한 증언이다.

서론은 '빌 브라이슨'이 썼는데 왕립학회란 어떤 곳인지 개략적으로 설명을 한다. 빌 브라이슨이 말하는 왕립학회는 먼저
'비국수적이고 중립적인 국제적인 단체로 회원 자격으로는 과학적 성실성과 창의성을 우선적으로 꼽으며,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권위를 자랑하는 단체'쯤으로 요약된다. 빌 브라이슨의 서문을 읽어보면 과학적 통찰과 영감 혹은 사실의 발견보다는 그런 것들을 이룬 사람들에게 더 애정을 보인다. 왕립학회에서 발굴한 과학적 사실보다는 발굴의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내었던(물론 발굴자를 포함한) 그 사람들의 삶의 투쟁(학문적 투쟁)이 곧 왕립학회의 역사라는 의미이다. 그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낸 결과물은 단지 하나의 보답물쯤으로 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보답물인 실험기자재들을 포함한 자료들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보물로 왕립학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앞서 중립적 단체라 함은 왕립학회(Royal Socity)라는 단체명에 왕이라는 정치적 지칭어가 들어갔음에도 런던을 붙여 놓음으로써 중립적 위치로 돌린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즉, 영국 왕립학회가 아닌 런던 왕립학회가 정식명칭이다. 이 학회 멤버들은 요즘 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의 VJ들이다. 이상하거나 희귀한 사건이 벌어지면 일단 회원들을 보내 조사하게끔 하고 보고서를 받는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왠지 코믹쪽 요소가 보인다. 그 고전적 VJ들의 과정의 이야기가 곧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며, 또 현대의 VJ들 그러니까 현재 왕립학회 멤버인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러한 허무맹랑을 좇는 상황을 '마거릿 애트우드'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비교하여 들려준다. 미친짓같이 보이지만, 결국엔 미친짓은 아니라는 소리이다.

왕의 시대에는 신의 이름으로 민중위에 군림한다. 신이 만들어낸 모든 현상들은 왕이 알고 있어야 하며, 왕에 의해서 이름 지어진다. 물론 그 이전에 일련의 이런 과학적 발견이나 물질의 발견은 왕의 이름으로 헌상되어지는 것이 관례이다. 그렇다고 왕 스스로가 이름짓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왕과 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럴듯한 이름 붙여지며, 우주의 기초가 되는 사상에 맞추어 이름 지으려 노력한다. 합리주의적 철학이나 경험주의적 철학과 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은 우주를 규정하고 세상을 규정하고 왕의 권위를 세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레베카 뉴버거 골드스타인'의 <이름에 담긴 뜻은?> 이라는 꼭지에 실려있다.

'사이먼 샤퍼'의 <전기를 가진 대기> 이야기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피뢰침에 관련한 이야기이다. 벼락을 맞아 불에 탄 건물을 조사하던 중 그 건물이 최첨단 기술이었던 피뢰침이 설치된 건물이었음을 알게된다. 사람들은 지적 미로에 빠져버렸다. 피뢰침 자체가 번개의 피해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는 생각이 틀린 생각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서부터 너무나 뾰족하면 의외로 부작용이 생겨 번개를 불러온다는 의구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골치아픈 문제로까지 번졌다. 사실 왕립학회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론을 수용했다. 더구나 그의 논리적 이론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실험은 왕립학회 멤버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었고 프랭클린에게 메달과 왕립학회 회원 자격까지 수여하였다. 이제 하나의 반증이 나타남으로써 피뢰침에 대한 의구심이 곧 미국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제 미국과의 전쟁에 군수품을 공급하던 군수원에도 이러한 보고가 들어갔고, 전면적인 재조사에 들어간다.

재밌는 것은 번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번개를 불러들이는 회로를 설치해야한다는 딜레마이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을 '프로메테우스적 자유'라고 불렀는데, 이 자유를 얻기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내포된 위험성에 노출되는 이중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원칙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부 지역과 사람들만 신뢰할 수 있었다...(중략)...대법원장은 '과학의 문제에서 과학자의 주장에는 과학자만이 답변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누가 '과학자'인가를 결정하고, 위험스러운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였다. 타이탄이 불을 훔치고, 그에 대해서 지독한 벌을 받은 것은 자유 탐구와 그에 대한 벌칙을 뜻한다.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는 1794년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훌륭한 논평에서 '성직자들이 엄청난 강요의 구조를 세워놓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녀는 오히려 '우리는 인간이 더욱 지혜로워지면 아무 생각도 없이 서로에게 더 큰 행복을 제공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딸인 메리 셸리가 과학적 야망과 그것의 두려운 결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등장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부제가 바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The Modern Prometheus)」였다.

『거인들의 생각과 힘』중에서, p.161~162.
 
   

사실 간단하게나마 다른 이야기의 꼭지들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나 방대해져서 '리뷰'라는 목적에도 맞지 않게 되어버린다. 물론 내가 완벽히 소화한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읽는다고 해서 그러니까 독자의 눈이 흰 바탕의 검은 글자들을 따라간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머리속에 이미지화 되는 그런 책이 아니다. 문자를 이미지화 시키기에도 독자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거인들의 생각과 힘』은 한 권의 책이지만, 과학 이슈를 담은 과학잡지를 보는 듯 하다.  그만큼 읽을거리,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특별한 최신 이론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과학자들을 소개함으로써 흔히들 지나치기 쉬운 과학사의 틈새를 메꿔준다. 사실 이 책은 당장 우리에게 어떤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기 보다는 다른 과학서적의 독서에 도움을 주는 배경 지식을 깔아준다. 20여편의 에세이에 등장하는 소재는 다양하다. 천문학, 우주론, 광학, 생물학, 진화론, 비행역학, 지질학, 화석학, 양자역학 등등으로 말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DNA를 발견한 과학자를 우리는 안다. 또 X선을 발견한 사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DNA를 X선으로 찍은 사람은 누구일까? 뭐, 이렇게 직관적인 물음으로 시작하는 책은 전혀 아니지만, 읽다보면 알아서 스스로 정보를 조합할 수 있다. 참, 답은 '빌 아스트버리(FRS 1940년)' 이다. 여기에서 'FRS 1940년'이란 Fellow of the Royal Socity의 약자로 1940년에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얼마전에 『막스플랑크 평전』을 읽었다. 그 책은 독일의 근대 과학사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영국의 과학사 특히 왕립학회를 통해 펼쳐지는 과학사를 들려준다. 두 권의 책에서 서로의 대척점은 없을지라도 그만큼 개인적, 단체적, 국가적으로 얼마나 과학에, 학문에, 지식에 힘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지 느끼게 한다.

음,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과학의 증언에 힘을 쏟고 있겠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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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은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끄집어 내기 위해 적은 글이긴 하지만 작성해 나갈 수록 히말라야를 등반해버려 삭제하고 다시 작성.

Xbox Lips Lily Allen "The Fear" music video from FIELD on Vimeo.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광고이긴 하지만 상품은 드러나있지 않다. 사실 영상에 제목이 있지 않았다면 광고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메타정보(여기서는 영상 제목)가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주가 될 수 있는 정보, 그러니까 한 조각 클립 영상은 오로지 즐거움, 함께함, 음악만 보여준다. 뭐랄까. 덩어리가 빠져 있다라고 할까. 무거운 기업의 이미지는 없고 대신 감성과 창조성만이 넘실댄다고나 할까. 그리고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고전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 (이미지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광고판...아마 여가수일 듯..기억이 가물가물...)




오프라인이 엔터테인먼트라 한다면 온라인은 어뮤즈먼트 정도라 할까? 우리 표현으로는 어떻게 나타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엔터테인먼트가 일회성의 감성을 폭발시킨다면 어뮤즈먼트는 다시 되돌아가 감성을 재발산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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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상도 처음 봤을 때 뭔가 울림을 주었다. 좋은 광고다. 첫번째 영상이 즐거움이라는 감성을 느꼈다면, 이 두번째 영상은 먹먹한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영상을 보고 무슨 기업(혹은 브랜드)의 광고라는 것까지 안다면 약간 웃음이 난다.
이 광고는 그것까지 노렸을까? 일단 감성을 울리고 또 뭔가를 깨닫고, 살며시 웃음 짓고 다시금 영상을 본다면 방금까지 느꼈던 그 감성만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마치 나의 감성, 감정이 증발한 것처럼..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머...광고이기에 가볍게 즐기고 나면 그만이지만, 한 번 생각해 본 것이 포스팅까지 해보게 되었다.
두번째 영상에서 가장 격정적인 부분을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으로 뽑는다면 감동보다는 재치가 드러나는 광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어뮤즈먼트와 엔터테인먼트 ... 그것은 creativity와 (hi)story의 차이일까?

Lily Allen - The Fear (유튜브 링크 : 소스코드가 비공개..)를 들어보자.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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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힘과 기술의 축구를 인정한다. 물론 한국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아르헨티나가 운이 좋았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한국이 먹은 모든 실점은 우리팀의 실책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불운을 탓하기 보다는 역시 실력 부족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전을 다시 한번 복기해본다.

4:1이라는 대패의 요인은 한국 선수 개인에 있기 보다는 우리의 허술한 팀 자체로 돌리고 싶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슛은 강력한 슛도 아니었고 특별히 상대팀 개인 플레이어의 기술이 먹혀 들어간 것도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골이 우리 수비수와 상대 공격수가 똑같은 위치에서 이루어졌다는데에서 실망감을 가진다. 아르헨티나는 전진이었고 우리는 후진이었다. 특유의 끊어먹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오히려 거의 골대와 일직선상에서 골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수비수의 위치가 아쉽다. 골대쪽에 밀려있더라도 수비의 포메이션을 유지만 했다면 머리로든 다리로든 충분히 끊어 놓을 수 있었는데 포메이션이 정착되지 못했을때 상대의 골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리 수비의 백코트는 예전 90년대 축구와 다를 바 없다. 한가지 다행이라는 점은 육탄방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게나마 의미를 찾아본다. 육탄방어는 수비수들에게 있어서 엄청 체력소모가 요하는 수비이다. 또 육탄방어는 지역방어 대신 개인방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육탄방어가 없다는 점은 최소한의 수비가 팀플레이로써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우리의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될 때 그물망 수비가 아예 무너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완벽한 지역방어로써 끊어먹기가 통해야 할 듯 싶다.

또 다른 대패의 요인은 역시나 수비 진영인데 특히 우리의 오른쪽 윙백이 지워졌다는 점이다. 차두리보다 좀 더 개인기가 좋은 오범석을 넣었지만, 공격에서 딱 한 번 뒤로 돌아간 것 빼고는 오범석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그리스의 경우 차두리는 최소한 우리가 인지할 정도로 위치 선정이 괜찮았다. TV를 통해 차두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때고 확인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의 경우 오범석은 그냥 우리 수비수 한 무더기안에 있었다라고 추정할 뿐 그가 TV화면에 잡힌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윙백은 공격 성향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중앙으로 볼 배급을 막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영표의 경우 오버래핑을 자제하긴 했지만 중앙으로 볼을 배급하는 상대를 어느정도 잘 막았다. 하지만 오범석의 경우 오른쪽에 위치해야 했지만 그가 어디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기억 조차도 없다. 오범석이 가령 지워졌다면(그가 오른쪽 위쪽에 위치했다면) 그 자리를 메꾸는 사람은 윙어 이거나 최소한 중앙 수비수가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자리를 중앙 수비수가 메꿀 수 밖에 없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최소한 보란치는 중앙 수비수 위치에 들어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너무 쏠려 있는 바람에 중앙에 위치한 선수는 왼쪽 윙백인 이영표 선수 였다. 그 말은 이영표 뒤쪽으로는 아무도 없다는 의미이다. 어느 누구도 달려 든 사람이 없었다. 물론 천천히 달려온 선수는 있었다. 그 선수가 염기훈이다. 하지만 그는 공격수 이기에 전력을 다해 들어오진 않는다. 다만 지역 방어 위주로 설렁설렁 들어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있을 선수는 김남일이어야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정을 해보자면 그는 끊어먹을 위치 즉, 페널티 박스 쯤에 있었을 듯 싶다. 결국 중앙 수비수는 이영표가 되었을 수 밖에...

팀의 패배를 한 선수에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최소한의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는 염기훈이 될 것이다. 염기훈은 엄연히 공격수이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그를 계속 기용한 이유는 그의 왼발 능력을 추켜세우는 것도 있지만 공수를 넘다드는 체력일 듯 싶다. 이는 염기훈에게 수비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수비적 능력은 거의 빵점이다. 또 그의 드리블 실력은 역대 최악이다. 그는 우리 플레이의 맥을 끊어먹는 일등 공신이다. 이것은 여러차례 평가전에서도 들어났고, 심지어 그리스전에서도 어느정도 보였다. 우리 공격의 맥을 끊는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앞서 나온 수비수들에겐 지옥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개인기가 좋은 아르헨티나 선수를 지역방어로써 막기엔 너무 늦어지게 된다. 준비도 없이 역습을 맞는다라고 할까. 암튼 나는 염기훈이 월드컵에 나왔다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코너킥 혹은 프리킥을 위해 그를 기용했다면 정말 개도 웃을 일이다. 우리에게는 최소한 기성용이나 박주영이 있지 않은가. 암튼 허정무의 최대 실수는 염기훈의 지속 출장이다. 그것도 선발로.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너무 구멍이 많았다. 특유의 그물망 수비도 없었고 심지어 숏패스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우리의 숏패스 실력은 우리가 안다. 사실 허접이다. 하지만 숏패스는 삼각편대나 압박을 통해 이루어진다 봤을때 숏패스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겁지겁 걷어내기에 바빴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우리가 여유롭게 공격할때 상대 선수가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허둥지둥 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통용된 이야기이다. 너무 성급했다. 최소한 점유율이라도 높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실종됐다.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 공격은 후반 초반이었다. 최소한 그때는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압박 수비가 어느정도 통했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후반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확실히 체력적으로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긴급한 백코트 순간에도 그 자리를 매운 선수들은 수비수 3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위에 위치했다는 의미이다. 수비수가 어느정도 지연시킬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아르헨티나는 운이 좋았다. 4골 중 2골이 하나는 자책골이고 하나는 골대 맞고 튀어나온 장면임을 상기하면 역시나 스위퍼로서의 역할을 골기퍼인 정성룡에게 떠넘긴 꼴이 되었다. 정성룡은 그 몫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는 역시나 염기훈이 들어가면 안된다. 그가 놓친 골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 경우에 뭐라고 책망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여전히 우리 공격과 수비의 구멍이라는 것. 특히 공격. 한 두번 잘했다고 나는 그를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그는 공격수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수비를 한다고 해서 또 특출나게 막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염기훈은 아웃이 되어야 한다. 16강에 올라가더라도 그는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아르헨티나전의 4:1은 사실 쪽팔린 점수이다.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고도 생각되어진다. 3:2나 2:1로 진 경우보다 차라리 원점에서 다시 재고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뭐가 문제인지는 확연히 들어났다. 우리 특유의 장점은 상대의 압박이지만 또 우리의 단점은 상대의 압박이다. 우리는 압박을 할 순 있지만 압박을 당했을 경우 빠져나오기 상당히 어렵다. 압박 당하면 숏패스 조차도 되어지지도 않고 의미없는 롱패스만 양산할 뿐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우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압박에서 상대의 공을 차단하고 그게 역습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상대가 수비 위치에 모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거의 골을 넣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단점은 상대에서도 단점이다. 수비수 위치가 정해지기전에 압박해서 볼을 차단하고 역습한다는 것. 수비수 위치가 정해지면 우리의 최상의 공격수 박주영마저도 지워지게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는 안타깝지만 차라리 배수의 진을 칠 기회가 있다는 자체에 감사한다. 지난 독일 월드컵때 토고를 승리하고 프랑스에 비기면서 한층 기운이 살아나긴 했지만 스위스전에서 첫 실점하면서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나이지리아전에 배수진을 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역시나 뒷공간이다. 뒷공간 뿐이 없다. 우리의 단점은 상대에게도 단점이며 우리의 장점은 상대에게 굉장한 압박이다. 확고한 포메이션을 유지하며 한 발 한 발 전진해야 할 듯 싶다.

나이지리아전은 2:0 승리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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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플랑크 평전 - 근대인의 세상을 종식시키고 양자도약의 시대를 연 천재 물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미선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막스 플랑크 평전>을 보았다.

 
다른 책들은 젖혀두고 이 책만 보았는데 쉽진 않았다. 이 책은 과학자라는 신분을 지닌 한 인간의 삶이 세상에 어떻게 귀속당하여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격변의 시대상을 막스 플랑크라는 지식인의 눈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개인이 대중으로 또 국가라는 하나의 거대한 몸통('몸체'라고 쓰고 싶기도 하다)으로 점점 흡수당하여 획일화되는 부자연스러운 세상이었다. 마치 파란색 잉크병에서 잉크 입자만 뽑아내려 하듯, 생각과 사상의 엔트로피가 제거되어가는 세상. 개인의 자유도가 하나씩 떨어져나가는 세상. 모든 정보의 통로가 막혀있는 세상. '히틀러'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그런 세상. 히틀러라는 단수 명사가 복수 명사가 되어가는 세상이었다. 곳곳에서 히틀러들이 작용하는 세상이었다.

 당시대의 작용자는 전쟁이었다. 어디든 전쟁이 있었고, 누구든 전쟁을 피해다닐 순 없었다. 막스 플랑크도 예외일 순 없었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참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그의 삶을 야금야금 집어 삼키는 와중에도 연구와 학회일 그리고 독일의 물리학 성과를 위해 열심히도 뛰어다녔다. 삶의 곳곳에 물리학의 장막을 쳐두고 그안에서는 최대한의 자유와 긍지를 누리려고 하였다. 물리라는 장막을 걷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 동료, 그리고 가족들이 장막을 걷어치우고 저 포연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결국엔 막스 플랑크도 장막을 걷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틈에 나치를 위한 어용 물리를 해야했고, '하일 히틀러'를 외쳐야만 했다.

 세상은 참 쉽게 바뀌어갔다. 어렵게 표현하면 격변이었고, 쉽게 말하면 생기는 족족 망해버리는 시기였다. 막스 플랑크는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가 통치하고 있을 무렵 태어났다. 얼마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이 황제로 등극을 했고, 그 후 손자인 빌헬름 2세가 황제 자리를 이어받았다.
동시에 독일은 세계 강대국과 발맞추어 제국주의로 돌아섰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제국주의는 몰락(황제가 네덜란드로 도망갔다)하였다. 사회민주당에 의해 '바이마르공화국'이라는 별칭을 가진 민주공화정이 탄생하였지만, 우익이 한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바람에 히틀러가 총리가 되어 정권에 발을 걸칠 수 있었다. 얼마 뒤에 대통령이 죽고, 총리만 남은 독일은 시간을 멈추었고, 나치당이 제1여당이 되어 더 이상 정치적 변모는 하지 않게 된다. 대통령과 총리를 조합한 '총통'에 오른 히틀러는 본격적인 독재정치로 들어선다. 이 히틀러를 총통으로 모신 나치는 글로벌화를 위해 제 3제국 건설 착수에 들어간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다시피 제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프로이센의 유산, 공화국의 유산, 나치의 유산 이 모든 것이 싹 쓸려버린다. 패전국이라는 도장을 찍은 곳도 베르사유 궁전이었다(일명 베르사유 조약).

 19세기부터 과학계 전반은 뉴턴이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분해되는 시기였다. 분해되는 만큼 과거의 거인들에게 이어받았던 뉴턴의 철학적 유산은 곳곳에 뿌려졌다. 행성간의 힘의 법칙은 전기와 자기의 힘과 장의 법칙으로 나타났으며, 광학은  뉴턴이 프리즘으로 빛을 나눴던 것 그 이상의 영역(가시광선 영역을 더 벗어난)으로 확장되어 분광확이라는 학문으로 진화되어갔다. 스펙트럼을 통해 드러난 새로운 원자들의 존재는 화학을 분자나 원자의 시각 수준에서 들여다보게끔 하였다. 뉴턴이 곳곳에 작용하는 과학계였지만 결국엔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적 관점으로 이동하였다.

 힘을 넘어선 에너지라는 개념의 완성이었다.   
  

 

   
 


에너지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세계의 사건들 및 과정들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물체의 운동이 지닌 특성이며, 다른 하나는 열의 특성이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운동을 기술하려는 노력은 17세기 말이 되어서야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 뒤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씨름한 끝에 과학자들은 마침내 열의 특성을 밝혀내는 데도 성공했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였다.  


<'갈릴레오의 손가락' 중에서... P. 142~143>

 
   

막스 플랑크의 양자가설은 현재의 양자역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 해가 딱 떨어지는 1900년 이다. 기존 물리학에 고전이라는 단어가 붙어버림으로써 또 같은 의미로 현대물리가 태동함으로써 과학사라는 타임라인에 시간적 분할이 이루어진 듯하지만, 실은 공간적 분할이었다. 우주가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로 나뉘고 당시 우주를 지배하는 언어는 새로이 나뉜 틀을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러렀다.

  당시까지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중의 하나는 흑체복사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뜨거운 물체(모든 전자기파를 흡수한 이상적인 물체를 흑체라 한다)에서 방출되는 (그러니까 관측된) 빛의 스펙트럼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보이긴 하는데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론적인 내용이야 다른 책들을 보면 될터이다.
아무튼 드디어 실마리를 얻었다. 막스 플랑크가 해낸 것이다. 빛을 믹서기로 갈아버린 것이다. (물론 믹서기라는 단어에 혼동을 할 터이지만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끄집어 내었다.) 그러니까 믹서기로 진짜 갈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 행위로 보면 된다. 가령 사과가 100개 있다고 하자. 사과를 하나, 둘, 셋,... 이렇게 셀 수 뿐이 없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식으로도 셀 수 있다. 사과를 몽땅 믹서기에 넣고, 갈갈이 갈은 뒤 1리터 짜리 그릇들에 담으면 하나, 둘 이렇게 개체로 세던 방식(그러니까 한마디로 무게 또는 질량인 kg이나 g으로 세던 방식)을 단위가 리터인 부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총 질량이 얼마인가가 될 사과 100개가 몇 리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피로 측정가능하게 되었다. 막스 플랑크가 내놓은 플랑크 상수가 한마디로 이런 믹서기 역할을 한다. 빛을 작용양자 플랑크 상수에 비례시켰더니 에너지(흑체에서 방출되는 관측된 빛의 스펙트럼)로써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빛의 진동수(Hz)를 에너지(J, 줄)로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갈려서 액체가 된 사과즙은 연속적 값이 아닌 불연속적인 값을 보인다는데에 문제가 있었다. 마치 1리터, 2리터 이렇게 말이다. 1.5리터는 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런것이 그때 알아낸 자연의 진리였다. 이런 불연속적인 값으로 인해 고전물리에서 현대물리로 도약하였다.  

   
 
에너지와 시간이 만들어낸 산물은 어떤 우연한 배열이 아니다. 이러한 물리학적 기본량의 조합을 '작용'이라고 한다. 따라서 h는 가끔 '작용의 플랑크 양자' 혹은 '작용양자'라고도 불린다. 이를 통해 자연 안에 존재하는 근원적이며 본래적인 틈(Lucke)이 자세히 설명된다. 그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작용 즉 에너지와 시간이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막스 플랑크 평전' 중에서... P. 136>
 
   

 

플랑크는 그때 필요한 상수 h를 작용양자라 불렀는데, 후세에 플랑크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용'이라는 물리적 의미는 앞의 사과의 예를 들어 '그램(g)을 리터(L)로 조합 시킨다'는 의미이다. 진 동수 Hz는 사실 시간단위이며 에너지는 그 자체로 에너지 단위이기에 에너지와 시간이 만들어낸 생산물로 표현한 것이다. 플랑크는 이런 불연속적인 에너지, 즉 에너지 알갱이들을 '양자(Quantum)'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쉬운 의미로 '한 스푼'쯤 된다.

  결정론적 인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철학관에 의하면 태양이 있음으로 해서 지구는 미래로 달려가지만 결국엔 이 모든 것이 신의 의도와 맞물려 결정되었다. 태양, 지구, 다른 별들의 궤도는 결국 일상이라는 루틴을 만들어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또 가을, 겨울을 겪다보면 다시 봄이 온다는 우주의 결정론적 인식은 농업 생산이라는 삶의 과제이자 인류의 큰 숙명이었다. 또 이런 원인과 결과에 따른 명제를 착실히 수행한 결과 농업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다른 수단으로도 삶이 영위될 수 있다는 기계론적 관점 또한 더불어 확장되었다. 그것은 바로 힘의 사용이었다. 빛을 전기로 받아들이고, 말의 힘을 엔진으로 대체시켰다. 그런데 이 모든 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플랑크는 새로운 이론으로 학계를 놀래켰지만 권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실험결과에 맞추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합리성이란 권위였지, 대중을 위한 쉬한 이해와 같은 것과는 멀었다. 그러니까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뜻은 권위자들이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바로 시대의 대중성이었다. 아무튼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또다른 권위자들에게 이해가능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런 양자도약을 기존의 고전물리의 틀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지만, 이미 나침반의 바늘은 새로운 곳만 가리켰다.

 당시에는 전쟁이 시대적 작용자였다. 전쟁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진행되고 멈추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대중성이었다. 민중들의 동의없이 공화정에서 전쟁을 치루기란 쉽지 않다. 대중성은 과학계에도 몰아닥쳤다. 한마디로 대중을 위한 과학, 그리고 (독일이 과학의 중심에 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국가를 위한 과학이 필요한 때였다. 대중의 이해를 위한 간결화(simple)가 필요한 때였다. 플랑크는 이를 위해 또 다른 발견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그의 두번째 발견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함으로써 플랑크의 물리적 기반(양자이론)을 확고히 해주었으며, 더불어 '대중의 관심'도 집중되었다. 그리고 후에 등장한 '슈뢰딩거'까지. 이 두 명의 과학자는 '대중성'과 '간결성(파동방정식이라는)'이라는 시대적 명제에 답을 하였다.

 문제는 시대가 시대였다는 것이다. 시대적 합리성 혹은 합법성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적 이론이야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철학적 순수성은 보장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부터 외국인이지 않던가. 순수성은 혈통으로 번져갔고, 막스 플랑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것들이 내뿜는 중력을 혼자서 감당하려 하였다. 정치적이지 않은 것에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걸려 있고, 정치적인 것에는 가족이 걸려 있다. 그는 버텨가며 물리학의 장막속에 있으려 하였지만 결국엔 장막이 들춰져 버렸다. 물리학계는 나치계가 점거해버렸다. 그렇다면 가족은? 큰 아들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죽었고, 작은 아들은 히틀러 암살 사건으로 유명한 '발키리 작전'에 연루되어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날 사형 당한다. 비극적인 개인사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막스 플랑크 평전>은 흥미롭다. 또 어렵다. 흥미로운 부분은 플랑크의 개인사이며, 어려운 부분은 역시나 물리학과 관련된 부분이다. 역사와 물리라는 두 거점을 왕복하는 이 책은 사실 아쉽기도 하다. 물리에 관한 부분에서는 좀 더 쉬운 참고서적이 필요할 듯 싶다. 짧은 책 안에 그것도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물리학을 펼쳐 놓으려 하니 들락날락 거리는 수많은 물리학자들과의 연계도 쉽게 이어지지도 않고, 또 개념들마저 압축시켜 놓으니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물론 읽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읽히겠지만 말이다. 플랑크의 개인사 관련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도 많지만, 이 역시 역사라는 실로 묶여 있기에 시간적, 공간적 이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역시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리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시 물리학계를 받쳤던 막스 플랑크. 아틀라스는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져 그로인해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천공을 들고 있어야만 하는 벌을 받지만, 막스 플랑크는 다른 이유로 평생 동안 물리학을 떠받쳤다. 그 이유는 오직 자기가 원해서이다. 물론 세계적 물리학의 완성에 다가서기 보다는 독일 중심의 물리학을 원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사람들을 배척하진 않았다. 순수한 목적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물리학에 도전했던 그 정신만은 순수함에서 나왔다고 본다.

어쨌든 한 개인이 어떻게 물리학과 역사를 쉼없이 왕복하고 있는지 과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PS.

1. 이 책에 쓰여져 있는 물리학적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의 개념보다는 그것 보다 더 근원적인 것들, 그러니까 에너지와 열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이해하여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이 평전을 읽으면서 '피터 앳킨스'의 <갈릴레오의 손가락>을 참고했다. '과학의 10가지 위대한 착상들'이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열, 에너지, 엔트로피, 양자와 관련 기본적 개념들을 그나마 쉽게 다룬다. 이 책 역시 추천하는 책이다.


2. '<막스 플랑크 평전>을 쓴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또 다른 책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추천하는 책인데 이 책은 사고실험과 관련한 책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실험을 할 수 없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돌리는 사고실험 관련 책이다. 하지만 분량은 많지 않아 오히려 <갈릴레오의 손가락>을 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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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원래 올해 책의 날에 이벤트라도 있을까 해서 기다렸건만 이벤트는 커녕 알라딘이 열리지 않아 좀 실망했었다. 뭐 책갈피라도 줄까해서..ㅋㅋ..

이 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분들 글을 읽고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몇 개가 떠올라 적어본다. 1번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는... 내가 관심있는 작가가 그리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관해서는 더욱.

그래서 뒷북 이벤트에 뒷북으로 거의 막판에 참여해본다.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마이클 크라이튼... 인생이라는 타이틀은 너무 거창할 듯 하고, 그가 나중에 쓰고 싶어했지만 쓰지 못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뭐가 있었는지 듣고 싶다. 그의 죽음이 여전히 애석하기만 하다.


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질문이 재밌다. 책 속의 등장 인물보다는 단 하루라는 단어에 시선이 고정된다.

그러니까 단 하루 동안만 등장 인물의 삶을 산 다는 말은 그 등장 인물의 일생 중 가장 찬란했던 그 하루를 말하라는 의미인 듯 하다.

그렇다면 뻔하지 않은가. 백설공주의 남편, 신데렐라의 남편, 개구리 왕자(구색 맞추기 위해 인간 아닌 동물 포함...), 이몽룡(구색 맞추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 포함...) 중에 하나 고르겠다.

음.... 그리고 그 하루는 당연히 책의 마지막 장...

"그 뒤 둘은 죽을때까지 행복하니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The End...." 에서 오래오래 살기가 시작되는 그 첫 날....

만약 단 하루가 아닌 그냥 일주일이나 한 달, 아니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아 참... 골라야지... 신데렐라 남편 뭐시기 왕자로 정했음... 백설공주 남편과 경합을 벌여 승리...


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낚였다는 의미가 기대했었다의 반대급부쯤 되므로 최근에 읽었던 책 한 권을 찝을 수 있겠다.

그 책은 '마크 해던'의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이다. 사실 재미없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별다른 감흥이 없었을 뿐이다.

기대했던 또 다른 '크리스토퍼(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주인공)'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름 묵묵히 읽어나가긴 했는데 SF치곤 외계인 침공을 저지하는 방법이 꽤 유아스러웠다.

오프라인 서점에 마실 나간 김에 잠깐 쳐다보고 나중에 집에 와서 구매한 책인데 책 끝에 들어가 있는 '작가의 말'에 이런 글귀를 오프라인 서점에서 읽었었다.

"... 그리고 2007년 말쯤, 옥스퍼드에 있는 성 필립 앤 제임스 학교에서 커다란 소포가 왔습니다. 앨리슨 월리엄스라는 선생님이 보내신 소포인데, 몇 년 동안 학생들에게 그 책을 읽혀왔고, 학생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왠지 재밌겠다 싶어 구매한 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이젠 제대로 '작가의 말'을 읽어 나가던 중 유독 이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라일락 4반....유치원 애들인가? 아마도 병설 유치원?

그래도 초반에는 나름 상상의 날개를 펼쳐들긴 했었다. 이 작가 아이디어 좋은데~~~ 하며...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요즘 보니 표지가 이쁜 책이 많이 나오는 모양인데(특히 문학쪽에서), 표지가 이쁘면 당연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최악의 표지만 아니면 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 모양.

개인적으로 이뻤던 표지는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이다.  정말 책들의 도시의 서가 다운 그런 그림이다. 그림 가운데에서 책을 읽고 있는 요상한 모양의 외눈박이 생물체가 있는데 '부흐링'족이다(아마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책들의 제목의 다양함이다. 책의 이름들에서 생기를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백조의 목에 걸린 매듭>이라든지, <손잡이가 없는 단지>, <차닐라와 오리개구리>와 같은 재치있는 책들이 등장한다.


 







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글쎄...아마존에서 눈팅하다 맘에 든 모든 책들은 반드시 나와주었으면 하는데, 사실 재밌는지 유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흥미가 가는 책들이 몇 권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기다리는 책이 있으니, 한 2년 넘게 기둘리고 있는 책(2008년부터 기둘리고 있음..)...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유명한 장하준 교수의 동생 장하석 교수의
<Inventing Temperature>이다.

예전 장하준 교수의 집안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는데 동생인 장하석 교수가 과학철학쪽에 몸담고 있음을 알고 나서부터 흥미를 가진 책.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어떤 오탈자냐에 따라 지극히 다르게 반응. 일반적인 반응, 그러니까 거의 99%는 "뭐야...다음판 살껄..."하고 1마이크로 세컨드 동안 찝찝해하다 잊는 경우가 다반사. 하지만 나머지 1%는 막 웃는다. 출판사나 역자 때문에 웃는게 아닌, 나 때문에...정말 그런 일이 있었음...말도 안되는 오자때문에...그리고 처음에 오자인지도 모르고 있다 오자인 걸 알고나서 그때까지 문맥에 맞추려 애썼던 내 자신이 너무 웃겨서...

'바람이 프랑스어와'에 대해 아는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람이 프랑스어와'라는 글귀에서...바람이 프랑스쪽에서 오는 것으로 망상적인 해석을 하고 무리없이 소화. 이렇게 해석해도 어느정도 이해될 수 있는게, 책 속 주인공은 대영제국의 해군 군인으로 맞겨진 임무를 완수, 전투도 승승장구(중간에 쪽박 찰 때도 있지만...), 쭉 계급이 올라가며 득템(계급이 올라가면 지휘할 수 있는 배의 격도 상승...)하는 마치 게임 플롯을 따라가는 듯한 전투 and 성장소설. 그런데 배를 타고 항해하다 보면 바람이 프랑스쪽에서 온다는 문맥이 그리 이상치 않았음. 프랑스 함대와 전투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전투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 후에도 상황에 맞지 않게 몇 번이나 등장하여 뭔가 잘못되어 있음을 직감(그러니까 너무 늦은 직감). 프랑스와 전혀 상관없는 바다에서 함포전을 하는데 프랑스쪽에서 바람이 분다는 것에 의문을 품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령 스페인 함대와 전투하는데 바람이 프랑스쪽에서 분다는 말은 말이 되질 않았고, 바다 한가운데서 도대체 프랑스라는 저 멀리 있는 육지를 왜 집어 넣었는가에 의문을 품음... 더 쉬운 예로, 우리나라 남해에서 배들끼리 전투하는데 저 멀리 베트남에서 바람이 온다고 생각하면 책을 읽다 그러니까 베트남이 남해의 그 전투장소와 같은 위도 상에 있는지 아니면 좀 북쪽에 있는지 아래쪽에 있는지 머리를 굴려야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 많은 장소중에 왜 하필 바람이 베트남에서 오는지 작가의 고귀한 상상을 이해하려하니 머리가 어질어질...이 부분에서 책의 문맥 밖을 막 돌아댕김...

암튼 알고보니 '바람이 프랑스어와'는 '바람이 불어와 '였다는... 이때는 정말 무슨 대단한 것을 발견한 냥 으쓱대기도.... 바람이 불다의 '불어'를 '프랑스어'로 적은 이 망칙한 번역 오류를 너무 늦게 깨달아 한심하여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번역으로 인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또 깊은 사색에 빠지고... 여전히 책의 문맥 밖에서...

이 책은 오타를 제외하면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다. 추천 책 중의 하나... 바다에서 싸우는 전투씬, 그리고 비밀임무 침투등등 열 권이나 되지만 정말 지치지 않는 책이다. 책은 'C.S. 포레스터'의 <혼 블로워>라는 열 권 짜리 시리즈물...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추리소설을 완독했다라면 좀 이상하지만, 정말 3번은 보았던 책이 있다. '스티븐 새건'의 <디스커버리>라는 책인데, 책 속의 배경인 불안한 중동지역에서 정확한 것은 기억나진 않지만 모세의 10계명인가 뭐 그런것을 찾는 장르소설이다. 그런데 세번이나 봤음에도 기억도 안나다니...다만 읽을 당시의 재밌게 봤던 감정만 남은 모양이다. 친구들에게 심지어 친구 여친에게도 책도 빌려주고 그랬는데 별 반응없이 돌아왔던 아픈 기억도 있다.

다음으로, 역시나 장르소설... 집에 거의 모든 '시드니 셀던'책이 있어서 어렸을때 이미 다 읽었었다. 그 중에서 내 나름의 최고는 <최후 심판의 날의 음모>라는 책이다. 사실 절반은 정말 최상이고, 나머지 절반은 어리둥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당시 '시드니 셀던'이 아닌 '로버트 러들럼'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책이다. 이 책을 분실한 뒤 절망감에 휩싸여 헌책방 뒤져서 또 사왔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책들과 함께 버렸던 슬픈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봤던 책과 함께 사라지다 아니 버려지다.... (내가 온라인에서 최초로 산 책도 역시 '시드니 셀던'꺼.. 그 책 이름은 <어두울 때는 덫을 놓지 않는다> 라는 책...)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책에 관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은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모두 버린일이다. 군대가기전 책들 정리하면서 버리고, 이사가면서 버리고 해서 지금은 어렸을 때 봤던 책이 아예 없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책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오고 신동우 화백이 그렸던 칼라판 학습만화 '한국의 역사'라는 전집이다. 10권 짜리인데 이 책만큼은 지금도 왜 그렇게 아쉬운지...  정말 보고 또 보고 그랬는데...

이런 만화 있었으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뭐 좋은 책이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좋은 역사 관련 학습만화는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다.

인터넷에서 찾은 책 이미지가 있는 사이트(추천 블로그입니다. 한번씩 들어가 보세요~~) 링크를 해봅니다.
(링크 --> 만화의 숲 : 만화의 숲에 나무를 심는 행복한 아저씨)

 
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기껏해야 전집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10권짜리 수호지와 삼국지를 읽었고 그 중 특히 수호지를 좋아했다. 남들은 삼국지가 좋다는데 뭐 호불호를 가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의 경우엔 수호지가 좋았다. 뭐랄까...판타지성이 강하다고 할까. 영웅들만의 세상, 양산박에 모여 세상을 향해 몸부림 쳤던 그 영웅들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수호지나 삼국지는 많은 이들도 골랐을 테이고 심지어 무협소설들은 10권도 훨씬 뛰어넘는 책들도 있으니, 나는 좀 더 다른 책을 꼽아보고 싶다.

어렸을 때, 집에서 TV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끼쳤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런 대표적인 영화로 꼬맹이때 본 스타워즈와 슈퍼맨이 있다. 그런데 이런 SF말고 첩보물이 한 편 있었는데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그냥 거실에 앉아 뭐 재미난 거 없나해서 TV를 돌리다보니 제목이 화면에 올라오면서 막 시작하는 거였다. 중간부터 본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영화 시작이었는지라 보기 시작했는데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영화였다. 재미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하였다. 당시에 대여책방이 붐이라 읽을 책들 빌리러 동네 책방에 자주 가곤 하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난 지 얼마 안되어서 책방 가장 윗 칸에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였다. 그때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했다. 그런데 무슨 놈의 책이 이리 많은지, 1부가 세권, 2부가 세권, 3부가 세권이나 되었는데 정말 거짓말 않고 책장이 꽉 차 보였다. 그 9권의 책은 한눈에도 다 안들어올 정도로 너무 두껍게 보이기도 했고 또 거대해보였다(그러니까 심정적으로...). 작가는 '로버트 러들럼'.

그래서 <잃어버린 얼굴>을 가장 두꺼운(실은 두껍게 보인) 책으로 선정한다.

후속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해서 우선 1부 세 권을 빌려 룰루랄라 집에 들고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1권은 그럭저럭 재밌게 보았다. 그런데 2권이나 3권은 좀 진도가 늦어졌다. 그래도 예전에 봤던 영화를 떠올리며 봤는데 나중에 2부 세 권은 졸면서 봤다. 또 3부 세 권은 솔직히 끝까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이놈의 책이 읽어대도 끝이 보이질 않는데 정말 세상에서 그렇게 두꺼웠던 책은 첨봤다.

그런데 주위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모르더라. 친구에게 이런 영화가 있다고 하면 정말 그런 영화가 있냐고 보고 싶다고 주위에서 정말 난리가 아니었는데...내가 또 이야기도 재밌게도 했고...~~ 나중에 10년까지는 아니고 한 8~9년쯤 시간이 꽤 흐른뒤에 영화로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본 시리즈 3부작 중 1부인 '본 아이덴티티'였다.  그 뒤에 2부인 '본 슈프리머시'와 3부인 '본 얼티메이텀'이었다.

나중에 '잃어버린 얼굴'을 인터넷을 통해 봤는데 추억을 떠 올리며 보긴 했지만 왠지 모를 촌스러움이 보였다. ㅋㅋ...


 







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그저 적절한(혹은 조금 싼) 가격에 좋은 책을 내주면 그저 감사. '뿌리와이파리'도 좋아하고, '까치글방'이나 '승산'이나 '한승'도 좋아하고, '샘터','김영사'나 '바다'도 좋아함.. 문학이나 장르소설쪽 출판사도 좋아함...어렸을때는 '금성출판사'나 '계몽사'를 좋아했음...꽤 많은 전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디즈니 그림명작>은 꼭꼭 아껴두었다가 보려 했으나 군대 간 사이 분서갱유의 화를 당함...그러니까 그냥 버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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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10-05-1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에 책 제목이 안 올려진 것도 있고 링크도 빠지고 해서 다시 쪼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