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동화집 허밍버드 클래식 6
야코프 그림.빌헬름 그림 지음, 허수경 옮김 / 허밍버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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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그림 | 야코프 그림 (지은이) | 허수경 (옮긴이) | 아서 래컴 | 월터 크레인 | 카이 닐센 | 허밍버드 | 2015-11-20

 

 

 

 남겨진 생각들  

 

 동심과 감성을 자극하는 동화는 이제 더는 어린이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어요. 어른 동화도 많이 출간되고요. 세상이 각박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부담스럽지 않은 글밥과 따뜻한 이야기의 동화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중 클래식 동화의 경우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요. 어릴 땐 신기한 마음으로 동화들을 읽었다면, 이제는 언뜻언뜻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줄거리와 장면들을 떠올리며 웃으면서 읽게 되죠. 어릴 적 고사리손으로 넘기며 읽던 이야기를,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꼼꼼히 읽어보는 느낌은 정말, 뭔가 달라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오랜만에 만나보았어요.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백설공주, 라푼젤…… 이 유명한 동화들을 포함하여 16편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이 살짝 낯선 게 있는 듯하다가도 읽어보면 "아, 이 이야기!"라고 반가움이 밀려와요.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그림 형제의 순수 창작물은 아니랍니다. 그들의 고향 '헤센 주'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형제가 편집하고 엮은 동화들이지요. 그래서 원래는 마냥 순수하고 귀여운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자극적인 장면들은 최소화한 이야기 버전으로 담아냈어요.

 

 어렸을 적 많이 좋아했던 '라푼젤', 왠지 모르게 노랫말 같았던 '룸펠슈틸츠헨', 모든 것을 버리고서야 행복을 만끽하는 역설적인 동화 '운 좋은 한스' 이야기들은, 제가 무심코 기억 속에서 잊어버렸던 이야기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독일판 신데렐라 (?) '아셴푸텔' 이야기도 기억에 남네요. 우리나라 전래동화 '콩쥐팥쥐'와도 비슷비슷해서, 다른 듯 색다른 매력이 있죠.

 

 

 이 책의 시리즈인 <허밍버드 클래식>에서 돋보이는 점은 현대 문학가들의 번역이에요. 클래식 동화의 경우, 줄거리나 이야기 흐름을 많이들 꿰고 있으니, 작가들의 감수성을 빌려 신선하게 읽히게 하는 시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원문이나 다른 번역가의 동화를 옆에 두고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 잘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에요. 개인적으로 번역에 둔감한 편이기도 하고, 짧은 동화라서 그런지 크게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독일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동화 원문을 반복해서 읽으며 행복감을 느꼈던 허수경 시인의 감수성은 이 이야기에 분명 녹아들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예쁜 삽화와 빈티지한 속지, 동화의 따뜻한 분위기가 만나 읽는 내내 좋은 기분으로, 여행하듯 읽었답니다. 독일에, 그림 형제와 그림동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화 가도(Maerchen Strasse)'라는 여행 코스가 있다는 애길 들었는데, 이 동화를 읽으니 갑자기 여행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는 『허밍버드 클래식』 출간된 5종 중 하나를 구입하면, '동화 속 문장'이 쓰여 있는 미니북 성냥을 선물로 증정하고 있어요. 성냥이 가득 찬 성냥갑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여러모로 감성을 예쁘게 자극하는 책이라, 기분이 한껏 좋아집니다.

 

 

Written by. 리니

 

"빨간 모자야, 부엌에 물통이 있을 거야. 어제 소시지를 끓는 물에 데웠거든. 그 물을 가져오너라."

빨간 모자는 함지에 가득 찰 만큼 물을 실어 날라 채웠다. 그러자 소시지를 데운 물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늑대의 콧속으로 밀려왔다. 늑대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늑대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길게 목을 빼었고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42쪽, 빨간 모자)

우물 속 깊이 빠진 돌을 제 눈으로 보고서 한스는 기쁨으로 소스라치며 뛰어올랐다.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 어린 눈으로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런 자비를 내려주시다니, 자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방법으로 짐이 되었던 무거운 돌에서 해방시켜 주시다니.

"나처럼 운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든 짐에서 풀려 나와 그는 뛰어갔다. 집으로, 어머니에게로 도착할 때까지. (148쪽, 운 좋은 한스)

"형, 이제 당나귀랑 말 좀 해 봐."

방아꾼이 "브리클레브리트!" 하고 말하자 마치 그 자리에 폭우가 내린 것처럼 순식간에 황금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나귀는 모두 짊어질 수 없을 만큼 많은 황금을 쏟아 내고서야 멈추었다. (그래, 당신 표정을 보니 꼭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하는 눈치군.) 그 다음 셋째는 작은 식탁을 가지고 와서는 말했다.

"형, 이제 식탁이랑 말 좀 해봐."

가구공이 "식탁아 차려 주렴" 하는 주문을 끝내기도 전에 식탁이 차려지며 가장 좋은 그릇들이 식탁을 뒤덮었다. 착하고 늙은 재단사의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만찬이었고, 모든 친척들이 밤이 될 때까지 같이 즐겼다. (212쪽, 요술 식탁과 황금 당나귀와 자루 속이 몽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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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강아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75가지 놀이 방법 - 동물행동학 전문가가 전하는 두뇌 활성 놀이
클레어 애로스미스 지음, 강현정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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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애로스미스 (지은이) | 강현정 (옮긴이)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11-23 | 원제 Brain Games for Dogs (2010년) 

 

 

  남겨진 생각들  

 

 날씨가 유독 추워진 요즘,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보면 길거리에 다른 강아지 친구들이 현저하게 줄어든 느낌이에요. 추운 날씨 탓인지, 낮에도 많이 보이지가 않죠. 제 반려견은 털도 북실하고 몸집도 커서 눈밭에서도 뛰어다니지만, 단모종이나 소형견 친구들은 엄청나게 두꺼운 외투 없이는 겨울에 산책하기가 힘들 것 같더라고요. (옷을 입고도 떨고 있는 단모종 강아지를 보고 최근 안쓰러웠던 경험이;;;)

 그렇다면 집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데, 작은 공간에서 강아지와 할 수 있는 놀이는 어떤 게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더라도, 강아지들의 특성상 계속 새로운 놀이와 장난감을 찾게 되니, 집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줄까도 참 중요한 문제니까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강아지는 종일 우울하고 심심해하며, 게다가 외부 소리에 대한 경계나 짖음도 심해질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해요.

 

​ 제 반려견 둥이와 집에서 고정적으로 제일 많이 하는 놀이는 물어오기, 밀고 당기기 놀이에요. 산책을 다녀와도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애라 집에서도 놀아달라고 애교를 부리는데요. 장난감을 한번 가져와서 놀아달라고 하면 백번 이백 번 다시 물어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똑같이 저도 던져주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걸 계속하고 있으니 지루해지더라고요. 둥이도 괜히 에너지만 발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럴 때마다 새로운 놀이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도구 없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였으면 더욱 좋겠죠.

 『내 강아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75가지 놀이방법』에는 훈련과 연계된 기본적인 놀이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도구를 가지고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반려견 혼자 하는 놀이'도 소개되어 있다는 점. 너무 오랜 시간 '혼자 놀기'는 지루할 수 있겠지마는, 어느 정도의 혼자 놀기 방법도 반려견의 스트레스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참고로 둥이는 라텍스나 고무로 된 장난감은 씹는 질감이 좋은지 그냥 온종일 물고 놀 때도 있어요. ^^

 

 이 책은 '브레인 게임',반려견에게 정신적인 자극을 주는 활동을 중심으로 놀이방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1장에서는 놀이의 중요성과 기본 기술, 원칙 등을 소개하고 있고 2장부터 본격적으로 자세한 놀이 설명이 들어갑니다. 반려견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기초적인 놀이방법부터 시작되는데, 동작 하나하나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어요. 초보적인 방법이라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기초 훈련들이 점점 더 난이도가 높아지는 놀이들을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오래 걸리더라도 익히고 넘어가는 게 좋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반려견이 지칠 만한 강도로 하는 건 놀이가 아니라는 것! 뭐든지 적당히!)

 

  

 초반에 등장하는 쉬운 난이도의 놀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신기하고 "이것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놀이도 많더라고요. 중간쯤에는 홈메이드 장난감 만드는 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간식과 함께 꼰 헝겊 장난감은 정말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실타래 장난감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둥이가, 간식까지 끼어 있으면 아주 즐거워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 번 인터넷에서 본 '상자 놀이'는 개들의 필수 활동인 '노즈워크'를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네요. 상자 속에 간식이나 사료를 넣어 구긴 종이들을 넣고, 냄새를 맡아 보물찾기하는 '노즈 워크' 놀이는 워낙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이렇듯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로 구성된 『내 강아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75가지 놀이방법』은 초보 견주들에게도, 집에서 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견주와 반려견에게도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줄 것 같아요. 매일 매일 산책을 하더라도, 남는 우리 개의 에너지. 즐거운 놀이로 행복하게 발산시켜 보아요.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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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6 고은 - 고은 편 - 우주의 사투리,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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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은이) | 스리체어스 | 2015-10-06 

 

 

 남겨진 생각들  

 

  독서 리뷰를 쓸 때 보통 부제는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 느낌 그대로 새로 정하곤 하지만,『바이오그래피 매거진』 리뷰를 쓸 땐 책에 딸린 부제를 그대로 쓴다. 그보다 절묘한 문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호 '고은'의 부제는 '우주의 사투리'다. 우주의 사투리라니! 생전 듣도보도못한 조합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고은'이라는 이름에 붙인다면 이보다 절묘할 수가 없다. 단지 책 속에서는 이 부제를 잘 찾을 수 없음에 아쉽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뜨는데…… 군더더기 없는 표지에 부제까지 붙는다면 조금은 욕심일까 싶지만, 이 멋진 부제들은 숨어있기에 꽤 아까운 생각이 든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호의 주인공 '고은'에 대해서는 역시나 '잘' 알지는 못한다. 시집 한 두권을 읽어본 게 전부고, 노벨상 수상자를 가리기 위해 일년마다 돌아오는 그 기간 불쑥 그 이름이 들어오곤 하는 정도였다. 그의 시집 ​『허공』은 문학, 특히 시에 익숙하지 않을 때 단순히 그가 궁금해서 낯선 기분으로 읽어보았고, 생각보다 거친 시어들의 반복에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순간의 꽃』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시집과는 다르게 제목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시들이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그 두권만으로 '고은'의 시 세계를 만끽하기란 부족했다.

 

 

 

나는 어제보다 더 어리고 어제보다 더 독야청청하다. 나는 살아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 내 유골도 시를 쓸 것이다. (103쪽, IN-DEPTH STORY)​

 

 '고은'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학 보다도 단순히 '사람'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판부터 편집자님의 서문에 푹 빠지고, 그가 가장 애송하는 시라는 <최근의 일기>는 가슴을 쿵쿵 울리고 있었다. "서서 / 소리칠 수 없으면 / 누워서 / 소리칠 것 // 죽어서 소리칠 것". 아, 아마도 이 때부터 감동의 시작이었다.

 

 

 ​승려가 되어 불교 신문을 창간하고, 환속하여 문단에서 수많은 시를 남기며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큰 획을 그어나간 '고은' 시인.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며,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해외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그 중 '황금화관상'의 역대수상자들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대중들의 의견을 정리한 페이지에서도 '노벨 문학상'은 빠짐없이 거론된다. 한국어의 번역 문제, 문학상의 가치 문제, 다양한 얘기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문학이 꼭 상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그의 일대기는 참 파란만장하다. 일제강점기, 전쟁, 피난으로 죽음과 허무로 가득찬 삶이었다. 승려가 되고 난 후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귀에 청산가리를 들이부어 왼쪽 고막이 녹았다. 여러번 포기하고 싶은 삶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놓지 않았다. 자살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어느 순간 전태일의 죽음을 생각했을 때,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도 질곡의 역사였지만, '고은'은 시에 시대를 담기 시작했다.

​돌아눕기도 어려운 좁아터진 방에서 고은은 죽음을 체험했다. 깜깜한 방 안에선 현재가 없었다. 오늘과 내일이 없고 남은 건 어제뿐이었다. 시골 머슴부터 동네 아낙까지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일평생 만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시로 그리겠다. 이런 다짐만이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되어 주었다. (59쪽, BIOGRAPHY 중에서)

 

  실제 1933년의 출생기록 이전의 먼 옛날부터 1847년까지에 쓰여있는 이력이 돋보인다.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은의 전생을 상상한 부분이 재미있고 독특하다. 아마도 먼 옛날에도, 그는 시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언어를 제멋대로 굴려, 사투리로 만들어.

 

 

 문학인을 다루는 만큼, 중반부에는 여러 편의 시를 수록해놓았다. 흑백의 페이지에 나열된 '고은'의 시는 'Poetry'라는 글씨를 채운 세찬 파도처럼 고요함 속에 우렁차게 메아리 친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는 한 편의 문학을 보는 것 같았다. 왕성한 창작력에 대한 물음에 그는 "신명이 나를 내달리게 하고, 내 마음 속엔 춤이 차 있어 몸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신명'에 대해 "나는 울음도 길었고 글도 길어요"라고 말한다. 숨쉬듯 시를 쓰는 것이고, 백지는 종교이고, 식욕이고, 성욕이라 한다. 그대로 배껴 여기에 데려오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말들을, 우주의 사투리를 제멋대로 펼치는 '고은 시인'이다.

 ​나는 시가 나에게 오고 내가 오는 시를 마중 나가서 함께 날 저문 귀로로 돌아옵니다. 임신한 아낙처럼, 부상당한 전사처럼, 목마른 혼백처럼. 그것이 내 시의 밤이 되는 거예요. 나는 천체물리학과 입자물리학에 사로잡혀요. 그 첨단 과학이야말로 나의 샤머니즘이니까. (128쪽, IN-DEPTH STORY)

 ​ 더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가 읽히지 않은 시대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선사 조상들의 언어 이전의 언어인 '아!라던가 '오!'라던가 하는 그 경이와 공포 속의 발신 행위 자체가 이미 인간의 시입니다. 인류사는 시의 역사이기도 해요. (...) 그동안 시는 너무 많이 세상의 감성과 지성을 감당해 왔어요. 이제 좀 쉬게 해도 됩니다.' (128쪽,  IN-DEPTH STORY)

 하지만 나는 뒤늦은 지금, 그의 시를 읽으려고 한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을 만나고선 그의 시집을 꺼내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집 38권, 역대 가장 과감하고 놀라운 기획 '만인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조각난 파편들을, 그 속에 품은 벅차오르는 감정과 순간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밖에 없기에, 그의 시를 더 읽어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의 아쉬움을 말하는 건 그 다음이다.

 

 
 
Written by. 리니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지만, 리뷰는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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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그래프 Monograph No.1 최현석 - 창간호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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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읽고 나서

 

 여러 번 리뷰를 남겼던 인물 잡지 『바이오그래피 매거진』과 연계로 새롭게 창간된 『모노그래프』 매거진 입니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이 정계나 예술, 학문 등의 인사를 중심으로 진지하고 빼곡하게 다뤘다면, 『모노그래프』는 현재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멘토를 선정합니다. 무게감은 이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면서도, 꼭 '가볍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스리체어스'만의 디자인과 구성으로 빼곡하게 한 권을 채우고 있습니다.

 

 창간호에서 다룬 인물은 '최현석'입니다. '쿡방', '요섹남'등의 용어도 만들어질 만큼, 셰프 전성시대인 요즘입니다. 그중 최현석 셰프는 방송에서 '허세 컨셉'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리사로서의 실력 또한 갖추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각인된 분이죠. 『모노그래프』는 방송에서 볼 수 없던, 최현석 셰프의 인생과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보이고 있습니다.

 

 

 셰프가 주인공인 만큼, 목차는 메뉴판으로 대신합니다.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면, 이전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에서의 'TALKS AND TALES'이 댓글 창으로 바뀌었습니다. 살펴보았더니 아이디와 이모티콘이 있는 댓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가독성은 그리 좋지는 않아 뭔가 낯선 기분도 듭니다.

 최현석 셰프의 이야기에 앞서, 셰프의 의미나 그와 관계된 셰프들을 비교한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최현석의 인생 요리'나 '크레이지 레시피' 등 그를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것 같은 이야기도 있군요. 전체적인 구성의 흐름이 참 좋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최현석 셰프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특별한 이력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리를 배우려면 유학을 가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 그리고 해외파 셰프가 넘치는 요리계에서 실력으로 한 계단씩 정상으로 올라섰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도, 엄마도, 형도 요리사였던 집안에서 자라긴 했지만, 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적도 없고 해외에서 요리를 배워온 적도 없습니다. 순전히 실전에서 한층 한층 올라섰습니다. 'Poisson', 최현석 셰프의 인생 전환점을 요리로 표현한 부분에서 그의 인생 스토리를 엿보게 됩니다. 밥벌이를 위해 자연스럽게 요리사를 생업으로 택했지만, 처음 취직한 레스토랑에서 20킬로가 넘는 홍합을 갔던 기억, 요리사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계란말이의 맛,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는 요리 철학을 갖게 된 에피소드, 자신의 요리를 알아주고 발전하게 해준 미식가 손님 'cosmos7'의 이야기. 그에게도 역시나 그 자리까지 올라오게 한, 시련과 우여곡절이 많았더군요.

  

 

 

* 분자요리 - 음식을 분자 단위로 쪼개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하는 요리법 

 

 요리에 대한 기본 철학을 완성하고, 자신만의 직관으로 레시피를 만들다 보니 '분자 요리'*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최현석 셰프. 끝없는 연구와 국경 없는 레시피는 그에게 '크레이지 셰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죠. 그와 관계된 '크레이지 레시피'도 이 책 속에 들어 있습니다. '두부김치 모양의 엔다이브 샐러드'. 생긴 것은 우리나라의 포기김치 같은데, 이탈리안 정통 대표 음식이라 합니다. 가짜 두부, 가짜 김칫소를 만들어 넣은 이 맛이 무척 궁금합니다. 점점 군침이 돌고 입맛을 다시는 글이 잔뜩인데, 엎친 데 덮친 격 '오감에 대한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함민복의 시집 이름에서 빌려왔다는 <우울 氏의 一日>이라는 짧은 단편이 오감을 자극합니다. 역시, 광고가 잔뜩 실려있는 잡지와는 다른 색다른 매거진이라는 느낌이 이런 곳에서 나오지요.

  

 이어서 나온 장에는 최현석 셰프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요리계의 조직문화, 셰프의 취미, 논란이 되었던 '강레오' 셰프의 발언, 연예계로 진출하는 셰프들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하고 솔직한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인상 깊은 이야기는 이런 거네요. 재벌 집으로 들어가 요리해준 이야기를 하다가 이어지는, 그의 말.

 

"살면서 점점 더 느끼는 건 자기가 대단하다고 사람 무시하는 것. 그게 제일 병신 같은 거예요. 다 똑같거든. 그 사람들은 하루에 몇천끼씩 먹는 거 아니잖아요? 삼시 세끼 먹는 거 똑같은데.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고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위의 사진은 그에게 필름 카메라를 주고, 생활 속 장면들을 찍으라고 해서 나온 사진입니다. 주방에 꽂혀 있는 칼, 그리고 유러피안 음식을 만드는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라면. 까만 배경의 사진 한 장이 때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여러 명의 후배 셰프들과 함께 찍힌 그의 사진을 보니 더없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요리계의 '크레이지 셰프', 그리고 방송계의 '허셰프'. 언제까지나 그 균형을 잘 맞추어 우리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셰프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젊은 멘토를 조명한 『모노그래프』.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이든, 『모노그래프』이든, 누구나 있을 삶의 진솔한 부분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 매거진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 『모노그래프』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Written by. 리니

잡지, 매거진/ 인물 잡지/ 트렌드, 젊은 멘토/ 크레이지셰프, 허셰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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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5 최재천 - 최재천 편 -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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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고 나서

 

 자연과학이라면 평생 담을 쌓고 살아온 저에게 '과학자'란 너무나 멀리 있는, 동경의 마음보다도 위압감이 먼저 드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중 유일하게도 친밀감 있게 다가오는 인물이 바로 최재천 교수님입니다. 몇 년 전 대외활동으로 기자단에 참여했을 때, 그를 대상으로 한 첫 기사를 썼죠. 당연히 매개체는 '과학'이 아닌 '책'이었습니다. 신간 출간으로 강의하시던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긴 하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과학이란, 저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 강의를 듣고 난 이후로, 그의 여러 책을 접하고 나서 호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반려견을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은, 그가 남긴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되새기곤 하죠.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에 항상 등장하는 TALKS AND TALES - 대중들의 의견 - 을 보면, 역시 흥미롭습니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문과와 이과를 모두 아우르는 '통섭'과 자연에 관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면에서 좋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학의 대중화에는 이바지했으나, 대중적인 글쓰기가 많고, 생물학에 국한한 지식을 보편적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하죠. 최재천 교수의 저서를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진득하게 과학을 탐구하는 책 (ex, 개미 제국의 발견, 다윈지능 등)은 읽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비판하는 말들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과학에 관련해선 크나큰 관심이 없는 제가 그의 책을 읽게 되었던 건 그가 그렇게 외치던 '통섭'의 힘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최재천 교수의 꿈은 시인이었습니다. 자연에서 맘껏 뛰놀 수 있었던 어린 시절 고향 강릉에서 많은 동물을 눈으로 보고 만지기는 했지만, 과학자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일장에서 장원한 경력으로 시인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에게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문예반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미술반에 들어갔고,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해 의예과에 지원했지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2지망이었던 동물학과, 담임이 쓴 것이었던 서울대학교의 한 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입학해서도 방황을 했지만, 미국 유학을 통해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남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죠.

 

 

 

 그에게 붙는 수식어들은 참 많습니다. 석좌 교수, 국립 생태원장,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 생태학자, 진화학자, 통섭학자……. 이 여러 수식어를 한 번에 통칭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는 '사회생물학자'입니다.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그의 발자취와도 가장 잘 어울리는데,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좀 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 생물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들의 행동과 생태를 진화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데, 그동안 제가 해 온 모든 일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사회거든요." 그는 넓은 범위의 '생물학자'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들에 관해 관심이 각별하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한국 사회의 굵직한 역할을 맡기 전, 그에게는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돈 잘 버는 학과만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안 좋은 시선을 받기도 했고, 동물들을 관찰하는 학과의 특성상, 연구 기간이 꽤 길 수밖에 없고 논문도 많이 나오지 못해 난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는 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냈고, 계속해서 다양한 연구를 하며 자신도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의 인생처럼 최재천 교수의 삶도 '우연과 필연'의 반복으로 이어져 왔지만,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겠죠.

 

 동생의 고등학교 지원이 가까워져 오다 보니, 학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 마련인데 요즘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말들이 '융합'과 '통합'입니다. 그리고 최재천 교수가 줄곧 외치는 '통섭'까지, 다양한 말들이지만 서로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만 같죠. 하지만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에서 최재천 교수는 이 용어들을 알기 쉽게 풀어줍니다.

 

 

통합은 외부 압력에 의해 강제로 섞이는 형식이에요. 통합을 해도 실제론 잘 섞이지 않죠. (...) 수소 분자 둘과 산소 분자 하나가 융합하면 물이 되는데, 융합이 되면 수소 분자를 알아채기 힘들어요. 물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는 게 융합이에요. 통섭은 융합하곤 또 달라요. 통섭을 해도 원래 것이 없어지진 않죠. (...) 정리하자면 통합은 물리적 합침이고 융합은 화학적 합침이고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이에요. (119쪽)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초기의 인간 -는 1년의 마지막 날, 심지어 아침도 아니고 오후도 아닌 매우 늦은 밤에야 등장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이 우주와 행성에서 가장 어린 막내라는 사실입니다. (142쪽)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으로 최재천 교수의 삶을 짚어 보고, 그리고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려 보게 됩니다. 무한한 우주 속의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모른 척 해왔던 존재의 미미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 그리고 수많은 '살아 있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수식어,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라는 말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은 것들이라도, 또한 누군가의 작은 생각이라도 변화시키는 모습이 너무나 좋습니다.

 

 

 

 

Written by. 리니

잡지, 매거진/ 인물 평전/ 격월간지/ 한 호에 한 인물을 소개하는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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